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 - 가치투자의 교과서『증권분석』핵심 요약판
벤저민 그레이엄 지음, 프레스턴 피시.스티그 브로더슨 요약, 김인정 옮김 / 이레미디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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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그레이엄은 전설이라 불려 마땅한, 증권 투자 기법의 귀재에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근 한 세기 전에 활약한 분의 통찰과 노하우, 근본 원칙이 이 정도 정치(精緻)함을 자랑하니, 확실히 천재적 두뇌는 남들과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는 점 절감하게 됩니다.

이 책은 그레이엄(발음은 "그램"이라고도 합니다) 원저의 완역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원저는 시대 흐름에 뒤처진 대목도 발견되고, 무엇보다 문체가 어려워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한국 독자 기준이 아니라, 영어 원어민을 염두에 둔 평가입니다). 그래서 정말 그레이엄의 레전드 교본을 읽고 주식 투자를 배우고 싶은 분들은, 이런 해설서 내지 요약본을 먼저 접해야 그의 "사상" 진수에 범접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요약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주석본에 가깝습니다. 만약 그레이엄의 원저에 일일이 누가 주석을 달고, 그 주석만 깔끔히 싹둑 뽑아온다면 이런 책 한 권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입니다. 그래서 책의 문장들은 "...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한다... " 같은 투로 아주 자주 시작됩니다. 이는 저자들이, 그레이엄의 저서에 깊은 존경심을 품고 그의 텍스트를 본격 탐구, 분석하면서 느낀 소회, 얻은 깨달음의 빛깔을 간접으로 드러냅니다. "그레이엄의 책인데 왜 문장 주어들이 '그레이엄은..'과 같은 식일까?" 이런 의문을 가진 분들은 책의 취지와 편제에 대해 그리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을 보시면 "증권 분석"이라 되어 있습니다. 증권이라 함은 주식뿐 아니라 채권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한국에서는 채권 투자가 그리 (주식에 비해서는)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그레이엄은 당시에 발표되었던 NYSB의 일곱 가지 평가 기준에 대해 자신의 해설과 비판을 전개합니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현대적 해석과 평가를 곁들이는데, 저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장기적으로 지급의무를 완전히 이행한 실적이 있는 발행 주체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 같아도 주식 카페 같은 데에서 여러 날것의 데이터가 나열된 걸 보고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은 까맣게 잊은 채 분위기에만 휩쓸리는 생각 없는 아줌마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자 보상 비율은 여러 방법으로 산출될 수 있는데, 흔히 투자론(재무관리론)에서 말하는 k 개념도 시장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건) 컨센서스로 잡고 요구하는 이율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이자 보상 비율은 어떤 기관이 규율로 강제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내 투자금에 이런 성격의 사업이라면 이 정도 보상을 해 줄 만하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 제시입니다. 이 정도 수익률을 약속 못 하는 기업에는 돈을 쓰지 말라는 뜻도 되죠. "금리가 낮을 때 장기채권을 사지 말라"는 금언도 여전히 유효함을 우리는 당장 오늘의 시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통 재무관리 교과서에서 만기가 짧다는 이유로 이율이 낮은 걸 "효율화를 추구하는 자본 시장에서 일종의 불가사의"처럼 취급하곤 하죠. 합리적 판단을 하는 투자라면 그저 기간의 길이만으로 위험을 평가해서는 안 되는데도 말입니다. 그레이엄은 이런 안이한 태도에 대고 단호한 경종을 올립니다. 즉, "장기 채권을 발행할 신용 등급이 되지 못해" 마지못해 이런 단기 채권이 찍히는 경우는, 투자자들은 오히려 역선택의 함정에 빠지는 꼴이 되니 말입니다.

"안정성은 계약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다" ㅎㅎ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경험 없는 이들이 사기꾼한테 당하는 가장 흔한 경로도, 객관적으로 아무 근거도 없는 걸 자기 느낌만으로 판단하여 자기가 구축한 함정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기꾼에게 속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겁니다. 남한테 속으라고 하면 아무도 속을 사람 없습니다. 사기꾼은 그 사람의 심리적 취약점을 노려, 스스로 환상을 꾸리게 조장한 후, 그 환상에 모든 걸 베팅하게 유도합니다. 주식 투자 초보들 역시 현실에서 별 재미를 못 봤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로로든) 한번 생성된 자기 기준에 요리조리 끼워맞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내 돈 갖고 내가 투자하는 게 무슨 상관인가? 어리석은 투자의 중대한 결과에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질 의향이 있다면 물론 상관 없죠. 그레이엄이 꼽는 "배제 원칙"도 눈여겨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회계학 배울 때 특정 지출을 그저 (일시적) 비용으로 처리할 것이냐, 아니면 "자본화"할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보수적 기준으로야 물론 전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투자자는 감사인이 아니므로 정 그 회사의 내재가치(너무도, 너무도 중요한 개념입니다)를 평가해 볼 요량이면 후자의 기준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레이엄보다도 더 앞선 이들까지) 지적해 온 진리입니다. 그레이엄은 흥미롭게도, P/L상의 고정 금융 비용에다 22를 곱하여 자본화해 볼 것을 제안하는데, 이는 4.5%라는 철도회사 채권 액면이율(책에서는 "금리"라고 썼군요)의 역수를 취한 것입니다.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이렇게 딱 떨어지는 숫자가 나오면 신기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처럼 근거는 충분한 것입니다(단, 여기서 든 예는 철도회사이며, 당시에 이 업종이 누린 특수를 감안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공공 유틸리티"라는 표현에 현혹되지 말라는 주문도 있는데, 이는 물론 시대상을 고려해야지 현대에 적용될 만한 사항이 못 되지만, 명칭에 혹해 객관적 실태를 살피지 않고 자기 기대만 일방적으로 투영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점은 고금이 다를 수 없습니다.

부동산 저당권이나 저당권부 채권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습니다. 사실 이 책에도 나온 그레이엄의 충고나 예언(?)을 충실히 지키지 않은 탓에, 십 년 전 그런 끔찍한 재앙이 터졌음은(최소한 개인 차원에서는 비껴갈 수도 있었던), 아무리 곱씹어 봐도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서 대체 뭘 배우지를 못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많은 숙고를 하게 만듭니다. 임대차 계약은 간접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보증하는 수단이 된다는 개념도, 물론 그레이엄 이전부터(혹은 동시대에) 이를 제안한 이들이 있었지만(특별한 혜안이라기보다, 거래의 현장에서 부지런히 뛰다 보면 자연 체득되는 "감'"애 가깝습니다), 그레이엄은 그런 "통념"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비판, 분석, 공식화를 시도하는군요. 미묘한 건 이런 임대차 계약이 사실상 수행하는(수행한다고 쳐도) 보증의 "질(quality)"에 대한 평가(혹은 암시)입니다. 고전은 확실히, 구사하는 언어에 상당한 정성과 공력이 깃들기 때문에 해석하는 관점, 전제 조건, 상황에 따라 판이한 결론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흔히 PER이라고 하는 주가수익비율에 대해 그레이엄도 이미 그 시절부터 자세한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량 기업에 대해 그는 과거 5~10년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20배를 아예 기준으로 찍어서 내놓습니다. 참고로 현재 한국 증시 기준 코스피 평균은 대개 12.5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20은 상한선이며, 그 이상은 비싸서 매수, 보유 시도의 가치가 없다는 쪽인데, 20이 넘어가면 이미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그레이엄은 주장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 대목에서 곰곰히 되씹어 볼 교훈은, 대체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어디에 놓으느냐는 점입니다.

이런 책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증시에서 대박을 칠지 그 비결을 가르쳐 주는" 내용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레이엄도 본문(정확하게는 필자들이 재인용하는 맥락)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것처럼, 이런 책의 목표는 요행이나 비정상적인 폭리 쪽이 아닌, 바보스러운 투기, 어이없이 치르는 손해를 막고 합리적이고 건전한 패턴으로 투자를 이끄는 것입니다. 이상한 건,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투자 원칙을 지키는 이들이 10, 20년 지나보면 꼭 부자가 되어 있다는 점, 반대로 일시 남부러운 초 대박을 친 이들이 세월이 흐르면 그 행운을 다 까먹거나 남보다 못한 처지로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이게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하긴 벌써 정상적인 투자관을 못 갖추었다는 증명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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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리움 베이직 - 마트 컨트랙트 입문에서 DApp구현까지 | 블록체인 4차 산업혁명의 열쇠! 4차 산업혁명 총론 5
조수현 외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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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리움은 근래 크게 각광받는 가상화폐 중 하나입니다. 가상화폐라고 하면 비트코인만 대뜸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나 현실의 (법정)화폐보다도 오히려 출현할 종류가 더 많이 상정될 수 있습니다. 법정화폐는 국제법상 인정 받은 국가만이 발행 가능하지만, 가상화폐는 재능 있는 어느 개인이라도 자유로이 창안, 유통할 수 있기 때문이죠. 허나 대중이 가상화폐라고 할 때 비트코인만 으레 거론하듯,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도 현실의 거래에서 다중의 신뢰(라기보다는 인지도)를 얻지 못 하면 사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화폐는 거래의 수단이므로 내 개인이 아무리 큰 선호를 가진다 해도 남들이 안 받아 주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이더리움은 가상 "화폐"에 그친다기보다 일종의 운영체제에 가까울 만큼 활용 폭이 크고 기능도 빼어나지만, 문제는 비트코인처럼 대중이 그 존재와 유익함에 아직 큰 시선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튼 베일에 아직도 싸여 있는 비트코인의 발명자 사토시 선생이지 뭔지 하는 사람의 정체와는 달리, 이더리움은 누가 만들었는지 동기가 무엇인지 그의 세계관이 대략이나마 어떠한지 지구촌 누구나(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는 게 다른 점입니다. 1994년생의 청년이며 다방면의 지식에 관심이 많은 천재형 인물이고, 온라인에서 여전히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도 있습니다.

사실 블록체인의 원리까지 처음 고안해 낸 "거인의 어깨"가 워낙 높았다 보니 그 위에 발을 디디고 올라서는 수고는 상대적으로 그리 대단히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또, 책을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더리움이 기반하는 솔리디티 언어는 대개 C언어 등과 유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체계 고안에 들인 개발자의 정성이랄까. 꼼꼼한 완결성 추구의 정신이 느껴져서 여튼 받곤 하는 인상은 묵직하고도 선명합니다. 아직 유통 범위 확보가 미미하다 보니(2위라고는 하나 이 정도면 아직 미미하다고 봐야 합니다. 편의점이나 분식집, 나이트에서 업소 PC에 클라이언트를 설치하고 이더리움 받아줄 날이 과연 언제겠는지 생각들 한번 해 보세요), 이렇게까지 편의를 두루 갖춘 장치, 수단이다 보니 우리 눈에 곧 친숙해질 때가 멀지만은 않으리라 봅니다. 투자, 투기 용도가 아닌 일상 속의 친구로서 말입니다.

비트코인은 1세대라서 결제밖에 못한다고 아쉬워할 수도 있지만, 대신 자매 프로젝트가 여럿 이미 발주되었기 때문에 제 생각으로는 지갑에 통합 설치하여 다양한 목적을 부여해 가며 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역시 제 생각입니다만 그러나 별개 프로그램 꼴의 여러 클라이언트를 합치는 과정에서, 예컨대 보안 문제가 다른 경로보다 더 복잡해질 우려는 있습니다). 여튼 당장 하나의 인터페이스 안에서 많은 옵션의 부여가 가능한 건 이더리움이죠. 책에서는 에스크로 기능을 독자적으로 부가할 수 있는 게 이더리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합니다. 중고카페 등에서 직거래를 했는데 판매자가 엉뚱한 물건을 보내고 돈만 챙겨 연락 두절인 경우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쓸 수 있죠. 사실 이 경우도, 반대로 (올바른) 물건만 받아챙기고 정작 송금을 안 하는 악질 매수인을 제재할 방법은 없긴 합니다만 이는 애초에 가상화폐한테 하소연할 일은 아니죠.

책의 핵심은 스마트 컨트랙트를 어떻게 짜고 집행시키는지 예제 학습을 통해 사용자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저자(들)는 저 이름이 살짝 이상하게 붙은 건 아니냐고 독자들에게 되묻기도 합니다. "스마트 계약서"라고 하면 계약 당사자가 내용을 공개하고 그 이행이 강제되도록 수단을 마련하는 것으로 자칫 오해될 수도 있겠다고 하네요. 저는 처음에 그 이름을 접했을 때도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들었기 때문에, 이런 상상력이랄까 발상의 방향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비판이 아니라 계약 내용을 사전에 공개하든 안 하든 그 이행이 그 때문에 더 강제되는 효과는.. 그런 게 있겠습니까 과연? 이행이 안 되면 사후에 공개한다고 해도 망신을 준다거나 도망자 수배의 효과(혹 있긴 하다면)는 마찬가지겠죠.

"스마트 계약서"는 "멍텅구리 계약서"와 달리, 계약서의 존재 자체가 계약의 이행(그 일부라도)을 보장, 예정하는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즉 결제 기능은 물론, 결제 단계에 옵션을 깔았다면 그 옵션의 충족 확인 기능까지 포함해서, 싸인하고 도장 찍은(상징적 의미에서) 사람이 일일이 추가로 은행 찾아가고 버튼 누를 일 없이 "계약서가" 알아서 잔무를 집행해 준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종이 쪼가리에는 손발도 머리도 안 달려 있지만, 스마트 계약서는 작은 프로그램이므로, 일단 입력된 명령을 이해, 수행할 머리 정도는 있고, 망에 연결된 이상 손발도 달렸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 뜻이겠구나" 하고 감이 왔으며, 내용도 과연 그런 쪽이라서 뭔가 세상에 현명하고 똑똑한 공감 지향을 더 찾은 것 같아 매우 흐뭇했습니다.

이더리움은 주 결제단위와 여러 세부(하위) 단위를 따로 갖습니다. 결제의 목적, 용도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합니다. 이와는 별개로, 아무래도 운영 체제에 가까운 성격이다 보니 악성 코드를 배포하여 질서를 어지럽히는 시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개스 소모라는 장치를 두어, 혹 무한 반복 루프라도 실행되게 할 시 전송 측에서 그에 상응하는 개스를 소진하게 만듭니다. 개스는 필경 연료를 뜻하는 gasoline에서 유래했겠음은 책에 안 나와도 짐작이 가능하죠. 책에 역시 없긴 하나 "이더리움"이란 말도 "어디에나 존재하나 감지할 수 없는" 중세식 개념(한때 조소의 대상이었으나 현재 재평가되는 중입니다) 에테르에서 왔음을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이상하게도 이 서평 작성 시점 기준, 위키백과나 어떤 레퍼런스 사이트에도 어원 설명이 시원한 게 없더군요). 동전이나 지폐는 그나마 물리적 실체가 있지만 (이상적인) 가상화폐야말로 에테르에 가깝겠다는 걸 생각하면 아주 적절한 명명입니다.

한국 책이나 문서에는 이상하게도 "turple"이라는 표기가 자주 눈에 띄는데, tuple이 맞습니다(괄호 안에 변수를 여럿 묶어 선언하여 반복문을 줄이는 것). uint는 책에도 나오듯 음수를 포함하지 않는 변수 선언에 쓰이는데, unsigned란 "부호(주로 마이너스지만)"가 붙지 않은 꼴이라는 뜻이며, int는 정수 integer의 줄임에서 왔음도 분명하죠.

대개는 C언어와 비슷하므로 책을 따라하다 보면 어떻게 돌아가는 구조인지 문법에 대해 감이 옵니다만 이 책은 초보자들도 염두에 두었고 책 한 권만 보고도 이더리움의 "똑똑한" 활용에 익숙해지게 만들어야 하므로 아주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물론 주로 "따라해 보기"에 역점이 놓였고 "왜 그런지"에 대한 배경 설명이 소략하긴 하나, 어차피 초보자용 "베이직" 참고서에서 너무 많은 걸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내용이 너무 많으면 초보자들이 부담스러워합니다(사실 이건 학습자들이 잘못하는 거죠. 뭘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고 나중에 갖고 놀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냥 남들 하는 만큼 최소한으로만 수고를 들이고 학습 대상에 헌신할 생각을 안 먹으니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 도태되기나 좋죠).

서술은 경어체로 되어 있어서 독자는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좋습니다. "끝이 아닙니다" 같은 유행어도 구사되어 친숙한 분위기를 유발합니다. 챕터가 짧게 끊어져 있고 마치 회장체 대중 소설 연재하듯 다음 내용을 예고하는 형식이라서, 초심자가 거부감이나 위화감 없이 술술 읽고 따라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베이직"은 이처럼 "베이직 본연의 소명"에 충실한 게 가장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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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눈물
이동환 지음 / 한솜미디어(띠앗)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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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지닌 육신이란 필연적으로 정념의 발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그 정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종족 번식의 욕구는, 개체에게 좀 유발나다 할 성욕의 기제까지를 독자적으로 진화시켰는데, 이 때문에 어리석은 인간은 그 본연의 쓰임을 잊고 성욕 자체의 만족에만 몰두하다 파멸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인류는 안온하고 평화로운 가정이란 제도적 장치를 고안하여, 한창 나이의 암컷과 수컷이 그저 무작위로 문란한 말초적 욕구에만 빠져들어 타락하는 결과를 방지하려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의도가 정말 그쪽이었다면, 남과 여에 의무와 책임이 깃든 가시버시의 연분을 맺어 주는 이러한 공동체의 개입과 배려야말로 사람 사는 누리에 참다운 질서와 보람을 부여한 대성공이라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옆지기를 챙기고 보살피며, 그 과정에서 사랑의 결실로 얻은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한 번 더 어른이 됩니다. "남성과 여성은 결코 서로 투쟁하는 사이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상처 입지 않게 감싸안아야 할 관계인데, 어느 하나가 땅이고 하늘 행세를 하라니 그처럼 어이없는 규범과 폐습이 어디 또 있겠는가." 사랑의 힘은 참으로 위대해서, 개인의 눈을 어둡게 가리고 선한 본성의 만개를 막던 모든 장애를 삽시간에 썩은 문짝처럼 걷어치웁니다. 그래서 일개 철없는 수컷을 어엿한 성인으로 거듭나게 깨우치는 스승은 공자, 예수, 부처님보다 오히려 그의 평범한(평범해서 위대한) 배우자입니다. 눈물 나도록 절절한 사랑으로 사람을 다시 빚고, 홈빡 통회의 눈물을 쏟아 육신과 마음의 모든 노폐물을 배출하는 정화의 의식을 차르게 하는 건 바로 아내의 존재입니다. 남편은 현명하고 사랑 가득한 아내를 통해 궁극의 진리를 깨닫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마침내 우주와 합일합니다. 부부 간의 사랑은 그 궁극의 경지가 곧 득도에 다름 없습니다. 가정은 이 순간 작은 우주로 완결성과 도덕성까지를 갖춥니다.

주인공 방철만씨는 남북 분단의 상황이 초래한 남하 실향민 가정 출신입니다. 이북 출신 실향민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계시며, 일정 세대(노년층)가 공유하는 수도권 방언의 억양이 (젊은 세대의 그것과는 현저히 다르게) 평안도 색채가 강하게 끼어드는 건 워낙에 위에서 많이들 내려오신 영향이 커서입니다. 그런 사정 정도야 알았으나, 이분들이 "사실상 고아"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그토록 절박하고 처연하게 규정하는 줄은 전혀 몰랐네요. 유명한 분들이 많지만 구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 비교적 진보 성향의 정치인 차명진씨, 전 세계 챔피언 홍수환 씨 등이 여러 대담 등에서 "삼팔따라지 출신"이라며 분단 현대사의 비극상을 개인사로 편입하는 비장하고도 안타까운 모습을 접하기는 했습니다. 아마 가수 이문세씨 역시 집안 어르신들이 실향민이신 줄 압니다.

비록 고향의 끈끈한 연은 살벌한 무장 대치 전선 저편에 버려 두고 왔지만, 이분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의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대로죠. 이런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 역시 모범생처럼 사회의 정코스를 거치며 동요 없는 생의 경로를 걸어오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한데, 방철만씨 역시 그런 모범으로 꼽힐 만한 학생이었나 봅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주변이야 어찌 돌아가건 공부에만 전념하는 착실한 인성에다, 훤칠한 용모 덕분에 지나가던 여성이 한 번 정도는 다 쳐다보는 매력까지 갖춘 인재였습니다.

학생 운동에 캠퍼스 전체가 소용돌이쳤던 당시에도 대학생 방철만은 여대생들에게 아이돌처럼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자기 주관도 확실한 터라 (세칭) 조건 좋은 여성들이 아무리 대시해 와도 자신의 눈에 안 차면 매너를 가장하여 점잖게 거절하는 일점의 가식조차 없는 정직한 영혼이었습니다. 부창부수라고 이런 방철만에게 첫눈에 반한 한지순 역시 (이름만큼이나) 순결, 순수한 여인이었고, 이런 한지순을 보고 방철만 역시 번거로운 "작업" 절차 일체를 생략하곤 고백과 교제로 돌입합니다. 책 중에도 언급되듯,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흔한 일회용 사랑(모텔로 직행)과는 매우 거리가 먼 순정형 패턴이라, 두 분이 낙원의 아담과 이브처럼 몸을 섞은 건 (그 당시 드물었을) 해외 신혼 여행을 가서도 한참 후였다고 합니다.

방철만씨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건, "원칙을 잊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오로지 검은 잇속으로만 뭉쳐 다니는 더러운 인맥 사회" 그 민낯의 목격이었습니다. 배고픈 시간 강사 경력도, 일정한 고난의 계단을 딛고 나면 보람을 찾아 주리라 기대했건만, 교수 자리 하나 주선에 일억을 대놓고 요구하는 경악스러운 부패 풍조에 격렬한 혐오감을 느끼고부터입니다. 영문과 대학원까지 마친 그의 실력으로야 어느 학교 교수 자리이건 따놓은 당상이었겠으나, 끼리끼리 이권을 놓고 구린 품앗이를 일삼는 썩은 풍조 속에서 그가 버텨낼 재간은 없었습니다.

조선 시대 지조 높은 선비와도 같이 소신을 지키던 그는 처음으로 그간 그렇게 백안시하던 "사교육 분야"에 발을 들여 놓아, 인기 논술 강사로 오히려 보란 듯 성공하고 맙니다. 이에는 물론 학문적으로 탄탄한 그의 실력이 크게 작용했겠습니다만, 작품 중에서 누차 강조되듯 그의 훤칠한 외모도 무시 못할  팩터였겠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타고난 풍채가 좋아도 걸친 입성이 시원찮으면 쉽게 무시를 당하는 게 또한 (천박한) 우리네 풍조인데, 방철만 선생이 스타로 뜬 건 한지순 여사의 놀라운 코디 센스가 또 한몫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네요.

남편은 물론 그럴 만한 소신과 신조 때문에 불혹의 나이에 이르도록 세상과 타협 없이 절조를 지켜 온 겁니다만, 아내는 그런 남편이 "철없이" 선비의 길을 걸을 동안 혼자 가정을 꾸리며 온갖 고생을 도맡아해 왔습니다. 방철만씨처럼 많이 배우고, 남한테 내세울 만한 에고를 갖출 자격이 있는 분더러 그저 철이 덜 들었다, 아내를 공연히 고생시킨다 같은 흔한 비판을 할 수야 없겠지만(또, 그를 곤경에 몰아넣은 건 부조리한 사회 구조이지 개인의 부덕이 아닙니다), 방철만씨는 자신이 고고한 불타협 노선을 걸을 동안 그 뒷감당은 불쌍한 아내가 다 짊어졌음을 뒤늦게 각성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방철만 씨가 청년 시절 구상한 작품 중 낙원의 아담은 신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위대함의 길을 제쳐 두고 하와와의 달콤한 사랑을 택했다고 합니다. 보통 아담 하면 간교한 뱀의 꾐에 넘어간 어리석은 여성을 계도하지 못하고 같이 우행을 저지른 원죄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나, 방철만이 새로 의미를 부여한 아담은 당당히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적 사랑을 선택하고 고난의 길을 걸은 주체적 존재로 우뚝 섭니다. 이는 일시적 충동을 건사 못하고 처량하게 낙원에서 축출당한 부적격자의 방황이 아니라, 이후 후손들이 걸어야 할 길을 모범으로 보여 준, 고독하지만 행복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담이 자립하게 도운 건 물론 그 사랑의 원천이었던 하와였겠고 말입니다. 하와는 그저 욕정의 복락을 함께 누리는 파트너가 아니라, 신을 대신한 스승이요 제2의 모성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내 살보다 더 살 같고 내 뼈보다 더 뼈와 같은...' 이 구절 역시 남자의 갈비뼈로 지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비하적 여성관의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내 육신보다 더 살갑고 사랑스러운 이성, 옆지기에 대한 아담의 절절한 사랑 고백으로 들린 건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새삼 들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앞에서 "진정한 사랑은 득도와도 같다"고 했지만, 늦게나마 부부 간의 참다운 애정(졸혼이나 뭐니 하는 천박한 일본의 풍습 규정, 유행어를 들여와 본고장에서보다 더 살뜰히 써먹는 일부에서는 정말 반성이 필요하죠) 그 진수를 깨달은 남편의 "법어"는, 이처럼 고작 지면을 통해 고백을 엿듣는 독자에게까지 그 그윽한 파장의 일단을 접하게 돕는군요.

내 귀한 딸자식 소중한 줄만 알았지, 그런 딸이 그 나름의 안목으로 척 골라 놓고 "동거'에 들어간 남의 집 아들내미 귀한 줄은 모르고 그 결합과 선택을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본 자신의 협량에 대해서도, 그는 아내의 죽음을 맞아 눈물로 반성하고 회개합니다. 직접 만나 보니 훤칠한 외모에 성정 바르신 양친의 사랑을 (역시) 듬뿍 받고 자라난 티가 완연한 청년이었는데,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딸의 마음에까지 상처를 줘 가며 반대했던 건가. 아집과 에고에 갇혔던 탓에, 누구 눈에도 분명했던 진실을 직시하지 못한 과거의 철만 안 든 (완벽한) 철만. 그와 이처럼 진솔한 결별을 이룬 것도,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남편과 딸 자영만 걱정했던 아내의 안타까운 마지막 모습이 아둔한 그를 일깨운 덕택이었습니다.

"눈물로 씨뿌리던 이들이 기쁨으로 마침내 곡식을 거두던 날". 어쩌면 인생이라는 길고 거대한 무대에서, 아련한 복선을 청년기의 철만에게 습작의 꼴로 심어(숨겨) 두고, 온갖 고생을 겪은 후에야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눈물을 통해 그 참맛(호손의 <큰바위 얼굴>처럼 아담이 곧 철만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한 섭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욕망에 달뜨고 에고에 갇혀 주변의 소중한 이들이 내게 베푸는 사랑을 그저 당연한 권리인 양 찾아먹을 줄만 알았던 이 땅의 모든 남성들이 어머니와 여성과 가정의 소중함을 보다 이른 시점에 깨달을 수만 있다면, 하와의 희생과 아담의 눈물은 원죄 아닌 공통의 교훈으로 모두의 가슴에 소중히 뿌리내리고 찬란한 꽃을 피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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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스타트 - 실리콘밸리의 킬러컴퍼니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나
브래드 스톤 지음, 이진원 옮김, 임정욱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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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밸리는 1970년대 처음 형성된 이래 80년대부터 전성기를 맞으며 지금까지도 미국과 세계 경제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기능하는 지식 산업의 메카입니다. 처음 이곳이 산업의 새로운 집적지로 자리매김할 때 그 유효기간을 대단히 짧게 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언제나 서투르고 가능성 높은 청춘의 단계에 머무를 것만 같았던 이곳은 이제 근 반 세기에 가까운 연륜을 맞이했습니다만, 여전히 젊고 여전히 역동적이라 누구도 그 외관을 중년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반면 전통적인 공업도시로 수십만의 직접 고용을 창출하며 꺼지지 않는 엔진의 화체와도 같이 떠받들어진 공업 도시들은 지금 황폐한 고스트 타운이 된지 오래입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소 지역이든 활기와 생동감을 줄기차게 유지하는 비결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상시적 파괴적 혁신의 기조를 지켜 나가는 길인데, "파괴적 혁신"이란 말은 이 책 중에서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

책에는 이런 파괴적 혁신을 이룬, 우리 시대의 총아라 부를 만한 두 기업이 중점적으로 다뤄집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파괴적 혁신을 달성한 모범적인 숱한 예를 거명하며 광범위한 분석을 시도한 책들은 많이 나왔고, 반대로 딱 한 기업만을 선정하여 그 성공 가도를 평전처럼 조명한 책들도 우리는 자주 접합니다(이런 책은 스폰싱을 받고 쓰여진 홍보성 성격이 짙기도 하죠.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객관적으로 선명한 문제 의식을 지니고 집필된 저서도 여럿 읽었습니다만). 그런데 창업자 사이의 인적 연계가 거의 없고, 그 활동 분야도 판이하게 다른 두 기업을 놓고 교차 조명하는 책은 좀처럼 보질 못했습니다. 이 책은 그처럼 신선한 시도와 편집의 시도 속에, 그 취하는 관점마저도 매우 신선합니다.

책 제목은 "업스타트"입니다. 정확하게는 복수형인데, 두 기업을 다루니 그렇기도 하겠거니와, 이 두 "발칙한" 기업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실리콘 밸리의 생명력과 놀라운 적응력 비결을 보다 일반화한 카테고리로 정립하려는 의도도 있겠습니다. 책 서두에도 권위 있는 어떤 사전 항목을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어의를 제시하지만, 사실 그런 건조한 기술적 설명만으로는 느낌이 확 와 닿지는 않습니다. 영어권에서 누굴(혹은 어떤 곳을) 두고 "업스타트"라고 부르는 건, 십중팔구 폄하하는 의도입니다. 요즘 왜 유행어처럼 근본없다 근본없다 해 대는데, 업스타트는 지금 당장 잘나가기는 해도 뭔가 격이 떨어지는, 그런 자격을 충분히 못 갖춘 부적격을 은근히 암시하는(아니면 대놓고 비웃은) 의도로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뭐 오랜 세월을 두고 시장과 국가 거시 경제에 기여하며 장구한 성장을 이뤄온 기업들에 견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 가볍게 넘겼는데, 책을 읽다 보니 그렇지도 꼭 않았으며, 정말로 이 두 혁신 벤처 기업의 "근본 없는" 출세기를 다루는 의도에서 제목이 그리 붙었음도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두 벤처기업을 폄하, 고발하려는 목적이냐, 그건 또 당연히 아니죠. 모든 룰과 환경과 당연히도 여겨 온 전제가 송두리째 뒤집히는 이 격변의 세상에서, "얘네들처럼 발칙하고 근본 없는(!) 성장을 꿈꾸지 않는다면. 무작정 박살 날 각오하고 현실의 장벽에 도전 않는다면, 니네들(즉 우리 독자들)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책을 다 읽은 후 저는 결론 내렸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근본 찾고 체면 따지고 순서 챙기다가는 굶어죽기나 딱 좋다는 뜻입니다.

업스타트를 구성하는 형태소 둘의 순서를 바꾸면 (공교롭게도) "스타트업"이 됩니다. 이 책 서두에서도 대뜸 그런 문제의식부터 던지고 시작을 잡습니다만, 스타트업이랍시고 척박한 시장에 발을 디디는 쬐그마한 기업들 중 절대다수는 채 떡잎을 틔우지도 못하고 말라죽습니다. 업스타트로 성공하고 가벼운 고개를 쳐들며 잘난척하기도 전에 아예 태양빛을 못 본다는 뜻입니다. 스타트업 단계에서 고사하는 게 오히려 정상 패턴인 이런 살벌하고 가망 없는 판국에서, 이 두 발칙한 "업스타트"들은 어떻게 생존하여 오늘날 거시 경제 전반에 두루 영향을 끼치는 자리에까지 올랐을까요? 사실 현재 시점에서도,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마냥 탄탄한 위치라고만 평가할 수 없습니다. 우버는 현재까지도 여러 국가에서 실정법의 규제를 받거나 철퇴를 맞아 주춤거리며, 자신이 애써 확립한 사업 모델을 "보다 온건하고 타협적인 후발주자들"에게 내어주고 있습니다. 에어비앤비 역시 일부 가입자들의 일탈적 행태를 예견하거나 통제하지 못해 송사에 휘말리거나 번거로운 추문에 시달리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비전, 장래성을 가장 냉정하고도 정확히,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건 아마도 시장이 아닐까요? 실제로 투자자들은 이들의 장래를 매우 밝게 봅니다. 두 회사의 창업자들(물론 서로간에야 전혀 별개의 과정으로 성장해 온 이들)은 이 책 곳곳에서 털어놓듯(혹은, 저자에 의해 폭로[?]되듯), "내 다시는 투자금 유치를 위해 이런 구차한 구걸을 하나 봐라"라면서 아주 학을 떼듯 초기 곤경을 회고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그들도 팍팍한 자금 사정, 빠듯한 시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햄버거가 아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는 건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초기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들이 어렵사리 유치한 돈을 갖고서 부닥친 사업 영역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말그대로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위태로운 것들이 태반이었더군요.

우버나 에어비앤비나 이른바 "공유경제"라는 거대 트렌드가 배경을 받춰 주어야만 활개를 펼 수 있는 신생 섹터를 겨냥한 기업, 스타트업, 아니 "업스타트"들입니다. 안 그러면 도둑놈 소리나 듣기 딱 좋은, 그야말로 개척과 범죄의 판가름이 종이 한 장 차이인 와일드 웨스턴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아슬아슬 줄타기에나 비길 발걸음이, 과거는 물론이거니와 (놀랍지만) 현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 음원을 불법 공유하게 조장한다고 해서,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런 서비스를 인터넷에서 시행하는 업체들은 이해관계자의 험악한 저항에 여러 번 직면했습니다. 캘러닉 역시 그런, 언제나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에나 딱 좋은 한계성 영역에서 모험 산업을 영위하다 위기에 여러 번 처한, 어느 부모라고 해도 자녀에게 "커서 저런 사람이 돼라" 같은 소는 못 들을 법한 인생이라고 해도 될 발자취들이었습니다.

책에는 이들 파이오니어가 처음부터 맞닥뜨려야 했던 각종 규제와의 전쟁에 대해 자세히 서술합니다. 우리 독자들이 일단 표면적으로 원하는 스토리란, 예컨대 맥도널드 체인점이 초기의 각종 장애와 몰인식, 편견을 이겨내고 어떻게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모으며 당당한 승자로 거듭났는지와 같은 "감동적인" 미담입니다. 헌데 이들 "업스타트들"은, 처음부터 세상과 치고받는 사고뭉치들입니다. 법을 정면으로 어기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벌여 놓은 사업 때문에 이익을 뺏기거나(기업주), 실업자가 될 노동자 계층으로부터 끝없는 항의, 위협을 받습니다. 어떤 수사 미드를 보면 실제로 이런 갈등이 범죄, 살인의 소재가 되었다는 설정도 나올 만큼이니,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습니다. 사업 자체가 본래 전쟁에 가깝고, 제가 며칠 전 리뷰도 남긴 어떤 책에서도 "편하게 경제적으로 사업 하려면 남이 다 닦아 놓은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그런 상식과 편안한 편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듭니다.

허나 세상은 결국 그런 근본 없고 발칙한 개척자들이 타협 없이 벌여 나가는 좌충우돌이 모이고 모여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유 경제 역시, 과시적 소비에 쏟는 거품을 걷어내고 보다 도덕적인 효율을 달성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쏘스타인 베블렌이 처음으로 지적했듯, 이런 CONSPICUOUS CONSUMPTION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아무 기여하는 바가 없는 낭비적 프로세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학상의 오랜 난제는 결국 "소유에서 사용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의해 해결의 한 가닥을 찾는 셈입니다. 또, 자원과 공간이 한정된 지구라는 행성에서 수많은 인구가 이처럼이나 저마다 최대한의 (허상에 가득찬) 만족을 추구하다 보면, 모두가 파국으로 치닫게 됨은 결국 자명한 결말입니다.

업스타트들은 큰 그림을 보고, 결국 다중이 사는 미래가 이러이러한 모양으로 탈바꿈하리라는 확신이 서 있으므로, 거친 반대와 실정법의제재를 감수하면서도 자신들의 비전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는 그저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상만으로 절로 동력이 마련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힘들게 사업체를 꾸릴 게 아니라 바로 정계에 입문하면 됩니다. (실제로 이 책 중에도 여러 번 언급이 나오듯 어떤 이들은 청년시절부터 C-span의 폐인 시청자였다고도 합니다) 기업은 기업으로서의 고유한 소명과 기능이 있고, 이는 시장의 요구에 기민하고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예리한 후각과 반사신경, 매 순간 혁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하고도 정확한 혁신에의 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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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킹 - 누가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가
앨 라마단 외 지음, 신지현 옮김 / 지식너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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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브랜드를 만드는 과제도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아니, 브랜드 코인은 고사하고, 이미 시장과 영역이 정해진 판도에서 품질로 남을 압도하는 일등 제품을 만들기도 무척 어렵죠. 그런데, 과업의 난이도 자체가 반드시 그 수행자에게 합당한 대가를 안겨 주는 것도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이른바 "삽질"을 피하고 영리하게 과실을 따먹으려면, 경제적으로 투입된 효율적인 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저자들은 이런 적실한 노력을 두고 일러, "카테고리 킹이 되기"로 요약합니다.

카테고리 킹이 무슨 뜻일까요? 특정 섹터나 시장에서 그저 1인자로 잘나간다고 카테고리 킹이 되는 건 아닙니다. 1인자의 장점은 영리한 후발자들이 금세 따라 배웁니다. 시장의 충성도도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게 아니며, 대중의 변덕은 수시로 수면 위의 보트를 잔인하게 전복하게 마련이죠. "킹"은 선거로 뽑히는 존재가 아니라, (허구의 이론에 불과하지만) 신이 부여한 권리에 의해 핏줄을 따라 세습되는 존재입니다. "카테고리 킹"은 시장에서 불안정한 지위를 놓고 하위 신분과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한 번의 압도적인 수(手)로, 그 확고한 위상을 대물림시킬 만한 막강한 아이템입니다.

세상에 일찍이 없던 상품의 존재 영역, 기능, 그 소비가 부르는 놀라운 환희를 만들고, 이 시장 전체를 그 브랜드로만 기억되게 하는 획기적 개척을 두고 "카테고리 만들기'라 부를 수 있으며, 미개척의 카테고리를 만든 히트 상품을 두고 "카테고리 킹"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품의 상위 분류명이나 유개념을 정확히 거론 안 하고, 그냥 "호치키스"라든가 "OO밴드"처럼 부르는 게 다 이런 예입니다(사실은 GPS도 상표명에 불과한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않고 시스템 자체로 여긴다는 점에서 이 역시 확고한 카테고리 킹의 실례입니다). 소비자에게는 그 개별 아이템 자체가 해당 시장 전체와 동일시되고, 앞으로 그 대체품으로 갈아탈 기미도 별반 안 보이는 압도적 강자이자 유일한 "선수"를 지칭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국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공적을 쌓은 이가 이후 왕좌에 오르기도 하듯, 카테고리 킹은 여태 없던 걸 세상에 처음 빚어놓은 과감하고도 창의적인 혁신으로 대중의 뇌리에 새겨지는 존재입니다. p75를 보면 제품 디자인, 기업 디자인, 카테고리 디자인에 동시에 성공해야 이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잘 도시화합니다. 기존의 마케팅 이론에서는 제품이 그 자체로 뛰어나기만 해서야 성공할 수 없고(많은 스타트업들이 좌절하는 게, 그 자체로는 뛰어나나 시장의 운때와 맞추질 못해서입니다), 이른바 "시장과의 궁합"이 잘 맞아야한다고들 주장하죠. 이 책은 그 "막연한 논의"를, 제3장을 따로 할애하여 "카테고리 디자인"이 성공적이라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며 체계를 구체화합니다.

저자들은 흥미롭게도 무하마드 알리를 카테고리 킹의 좋은 예시로 듭니다. 그 이전에도 복서들은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난, 놀라운 스피드나 반사신경을 자랑하거나 강펀치를 뽐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성이나 인격, 깨끗한 매너까지 갖추어 타의 모범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대중은 복서 하면 그저 알리만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저자들은 이를 두고 "쇼맨, 챔피언, 반항아, 떠벌이, 이 모두를 한데 합쳐 놓은 카테고리가 여태 없었고, 알리가 이를 처음으로 만들어내었기에 불멸의 킹이 되었다"고 평합니다. 앞으로 아무리 뛰어난 PR 솜씨와 종목 적성을 지닌 이가 나온다 해도, 그는 "짝퉁"으로밖에 인식될 수 없으며, 영원히 카테고리 킹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어린이용 판타지 모험 소설 "카테고리"를 처음으로 주조한 JK 롤링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하는군요.

이런 범주화를 생각하면 삼성의 선전(善戰)이 새삼 놀랍게 각인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애플의 스마트폰이야말로 역사에 남을 "카테고리의 창조"라는 점 누구도 부인 못 합니다. 그만큼이나 현대인의 일상에 밀착되고, 그만큼이나 기능성과 제품 환상을 동시에 갖춘 아이템이 앞으로 한 세기 동안 또 출현이나 할지 의문일 정도로 말입니다. 헌데, 책의 이론대로라면 삼성 같은 후발주자, 2인자는 진즉에 애플에 압살을 당했어야 맞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장 호평 받는 도전자로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이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체제 경쟁 지원이 한몫합니다만), 1인자의 신경을 여간 쓰이지 않게 만드는 쏠쏠한 실적을 올리는 게 대단하다는 뜻입니다. 하나의 왕국에서 이성 제후가 적통 1인자의 지위를 노리는 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워낙에 단호하고 박력 있는 말투로 "과연 카테고리 킹이라야 살아남겠구나" 같은 인식을 독자들에게 확실히도 전달하기에, 도리어 이런 예외가 더 두드러지고 훌륭하게 각인되늰 거죠.

하지만 카테고리란 기업이나 마케팅 책임자의 입장에서 최고의 기준으로 준수될 내부 규범에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야 "그렇군, 카테고리 킹을 빨리 만들어내야겠는걸?" 같은 절박함이 확고히 내면화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이를 어떻게 어필할까요? 애플도 과거 삼성과의 소송전이 한창일 때, 삼성더러 "그냥 공개 성명서로 우리는 애플의 카피캣입니다라며 인정만 하면 모든 소를 취하하고 봐 주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액션이었는데, 그저 감정상의 자존을 지키고 상대에게 굴욕을 주려는 데 그친 유치한 전략이 절대 아니라는 소립니다. 품질이나 기능 외에도 소비자 대중에게 "내가 카테고리 킹이요"라는 확고한 이미지를 주려면(=왕으로 등극하려면), 어떤 스토리를 통한 계기가 마련돠어야 합니다. 상대측의 공공연한 굴복은 매우 광범위한 실효를 내기도 하겠고 말입니다.

이걸 놓고 저자들은 POV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즉, 어떤 상품이 대중 사이에서 "카테고리 킹이다(이런 말 자체는 몰라도 그런 현실적 인식은 다들 공유합니다)"라는 공감대를 퍼뜨리려면, 그럴 만한 스토리가 먼저 유행하고 널리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인간이 취약한 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실화(사실은 100% 팩트가 아니며 그저 관점과 희구의 복잡한 대입, 윤색이 끼어들 뿐이지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우리 때문에 죄 없이 희생되신" 스토리 때문에 고대 로마 전역을 급속히 파고들었으며, 어떤 히트 상품도 그 창안자의 신화적 성공담이 제품 개성에 체화되어야 "카테고리 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을 보면 그 창안자의 잡스의 휘광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성공 맥락을 운명처럼 달고 다닙니다. "혁신의 아이콘"은 잡스에게 아호나 별명처럼 붙어 다니는데, 아이폰을 구매하고 이용할 때마다 소비자들은 그 혁신의 "기운"이 내게도 스며들기를 주술처럼 희구합니다. 이게 바로, 같은 상품 하나를 봐도 그 의미가 확연히 다른 색채로 다가오게 하는 마법인, "ponit of view"입니다. 그리고 어떤 상품을 카테고리 킹으로 만드는 건 다름아닌 효과적인 POV의 세팅과 파급입니다.

저자들은 또한 이런 POV를 시장에 충격적으로 퍼뜨리는 기법으로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를 강조합니다. 이는 말 그대로 번개나 벼락에 맞은 듯한 충격을 가리키는데, 현실의 자연에서 이런 기상 현상은 대피책도 있고 과학적으로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므로 그리 무서운 존재가 아니지만, 마케팅에서의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는 그야말로 날벼락처럼 경쟁사와 소비자 대중을 덮친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저자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보면, "... 시장의 잡음을 이겨내고 시장을 컨디셔닝하기 위해 기업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전사적인 이벤트(p227)"인데, 이 말 자체도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만큼이나 멋진 워딩입니다. 좀 오래된 예지만 IBM이 처음으로 1960년대 중반에 시스템/360을 각 기기업들에다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보급(거의 독점이었고, 이를 감히 넘보는 기업은 존재도 하지 않았죠)하던 사실을 책은 환기합니다. 저자들은 "... 벼락이야 상대를 염두에 안 두고 무작위로 들판 아무데나 떨어질 뿐이지만, 기업의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는 상대를 정확히 조준하여 그가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르게 가격하여 상품에 넋을 빼놓게 해야 한다(표현은 제 식대로 재구성한 거라 책과 불일치할 수 있습니다)"는 점에서 역시 일개 자연현상과는 차별을 짓습니다.

"카테고리 킹, 그거 매우 좋은 것이구나. 하지만 만들면 좋긴 해도 그게 현실에서 자주 가능하겠으며, 그저 남들 하는 만큼보다 조금 더 잘하기만 하면 시장에서 배겨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허황된 대박을 꿈꾸는 건... " 대략 이 정도가, 특별히 패배자 아닌 우리들이 평균적으로 품는 마인드셋입니다. 다 그걸 하면 다 스티브 잡스게? 저자들은, 바로 이런 구시대적인 안이한 마음가짐을 품는 당신이야말로, 책을 읽을 자격이 없고 당장 책을 덮은 후 익숙한 루저의 루틴에 빠져들기나 해야 할 1순위 독자라고 합니다. 책의 매력은 천지개벽을 시킬 카테고리 킹의 이론화, 체계화 시도에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제는 모두가 카테고리 킹이 되지 않으면 아예 살아남을 수가 없는" 현실에의 각성과 촉구 어조가 더 선명한 개성으로 다가오더군요. 책은 독자를 느긋이 쉬게 내버려 두지 않고, 닦달하고 격동시키고 들쑤십니다. "당신 이렇게 가다간 고꾸라지게 되어 있어!" 가끔은 그 다급한 어조가 불안하게도 느껴지지만, 만인 생산자 시대가 도래하고 대량 소비 구조가 시대에서 퇴조하는 지금, 모두가 자기 범주 안에서 왕이 못 되면 노예로 살아야 할 미래가 코 앞임을 생각하면, 어쩜 당연할지도 모르는 화급한 경고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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