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살아남았지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집 에프 클래식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옥용 옮김 / F(에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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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우리에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잘 알려진, 모든 희망과 인간애가 말살되었던 나치 독일 치하에서 홀로 꿋꿋이 양심을 지킨 위대한 극작가이고 시인입니다. 특히 80년대 학번 어르신들은, 학생 운동의 와중에서 고문을 받고 녹화 사업 등 잔인무도한 권력의 폭압으로 목숨까지 잃은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특히 이 이 시를 자주 인용합니다. 자, 그 유명한 시가 바로 이 시선집에 실려 있습니다. 설레지 않으시는지요. 혹은, 마침내 마주하는 그 심오하고 처절한 고백의 원전 앞에 새삼 죄의식과 숙연함이 밀려오지는 않으시는지요.

사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다분히 의역에 가깝습니다. 화자의 감회가 철저히 절제된 중 극한의 슬픔과 좌절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도를 정확히 짚은 제목임은 분명합니다.

브레히트의 독일어 원문은 이렇습니다.


ICH, DER ÜBERLEBENDE (나, 살아 남은 자)


Ich, weiß natürlich : einzig durch Glück.

Habe ich so viele Freunde überlebt.

Aber heute nacht im Traum.

Hörte ich diese Freunde von mir sagen :

"Die Stärkeren überleben."

Und ich haßte mich.


이 짧은 시를, 역자 이옥용 선생은 이 예쁜 책에서 이렇게 한국어로 옮깁니다.




물론 난 잘 안다.
순전히 운이 좋아 (여기까지 웜문과 달리 역자께서는 행가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친구들과 달리 살아남았다는 걸 (역시 조금은 의역이며, 다른 친구들은 일찍 죽었으나 같이 죽었을 수도 있었을 나는 그보다 더 길게 지금을 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내 얘길 하는 걸 들었다 (여기서는 반대로, 한 행을 둘로 나누는 게 역자의 태도입니다)

"보다 강한 녀석들이 살아남는 게야."
난 내가 싫었다.

(이상, 이 책 p54에서 인용)

이 시는 80년대 학번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유명하지만, 대중적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박일문 소설가의 동명 장편(1992) 덕도 있겠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김광규 선생의 오래된 번역은, 마지막 행이 약간 의역되어 "그러자 나는 갑자기 내가 싫어졌다." 정도로 옮겨졌던 듯합니다(제 개인 기억이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또, 그 앞 행은 다소 건조하게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였어요.

또, 책 제목이자 이 시의 제목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 원문에 "슬픔" 같은 단어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간혹 보면 이 시의 영역을 두고 Survivor's sorrow라고 소개하기도 하는데, 영역자에 따라 그런 태도를 취하기도 할지 모르나 대개는 "I, The Survivor" 정도로 처리하는 게 주류입니다.

아무튼 이 책에서 이옥용 선생의 변역은, 브레히트의 원 어조를 그대로 가급적 살리면서, 적절히 역자만의 감각을 발휘하여 비장하면서도 참담한 분위기를 잘 살리는 듯합니다. 마치 윤동주의 시가, 그 자체로는 과도한 감상에 빠진다거나 철철 비감이 흐른다거나 하지 않는 미덕을 유지하는 것처럼요.

이 책은 이 명편 말고도, 브레히트의 다양한 작품집 중에서 오늘날의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어필할 만한 여러 시들을 예쁘게 간추려 놓은 시선집입니다. 브레히트가 동시도 썼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의외로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 3부 "어린이 십자군"에 11편이 수록되었습니다. 역자 후기에 보면 p109의 각주에서, "브레히트의 동시는 당시 시민 계급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은근히 강제했던 형식과 주제,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는 해설이 나옵니다.

챕터의 제목이자 개별 작품의 타이틀이기도 한 그 "어린이 십자군"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p66 중).


여동생을 오빠를, 아내는 남편을
군대에 빼앗기고
아이는 포화와 폐허 사이에서
끝내 아빠를 발견하지 못했어 (제2연)


독일어 원문을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In Polen, im Jahr Neunundreißig
War eine blutige Schlacht
Die hatte viele Städte und Dörfer
Zu einer Wildnis gemacht.

Die Schwester verlor den Bruder
Die Frau den Mann im Heer;
Zwischen Feuer und Trümmerstätte
Fand das Kind die Eltern nicht mehr.

Aus Polen ist nichts mehr gekommen
Nicht Brief noch Zeitungsbericht.
Doch in den östlichen Ländern
Läuft eine seltsame Geschicht.

Schnee fiel, als man sich's erzählte
In einer östlichen Stadt
Von einem Kinderkreuzzug
Der in Polen begonnen hat.

Da trippelten Kinder hungernd
In Trüpplein hinab die Chausseen
Und nahmen mit sich andere, die
In zerschossenen Dörfern stehn.

Sie wollten entrinnen den Schlachten
Dem ganzen Nachtmahr
Und eines Tages kommen
In ein Land, wo Frieden war.

Da war ein kleiner Führer
Das hat sie aufgericht'.
Er hatte eine große Sorge:
Den Weg, den wußte er nicht.

Eine Elfjährige schleppte
Ein Kind von vier Jahr
Hatte alles für eine Mutter
Nur nicht ein Land, wo Frieden war.

Ein kleiner Jude marschierte im Trupp
Mit einem samtenen Kragen
Der war das weißeste Brot gewohnt
Und hat sich gut geschlagen.

Und ging ein dünner Grauer mit
Hielt sich abseits in der Landschaft.
Er trug an einer schrecklichen Schuld:
Er kam aus einer Nazigesandtschaft.

Und da war ein Hund
Gefangen zum Schlachten
Mitgenommen als Esser
Weils sie's nicht übers Herz brachten.

(이상, 이 책 기준 p68 중간까지 해당 분량입니다. 물론 이 책에는 전문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꽤 긴 시이니까요)


사실 어린이 십자군은 중세 때 사회의 광기가 빚은 참극 선동 중 하나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어른들의 꾐에 빠져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미친 곡조에 맞추듯 죽음의 행군을 하던 끝에 상당수가 기아, 질병, 부상 등으로 죽었지요. 브레히트는 1939년 폴란드에서 빚어진 참상을 두고 중세 한때의 비극을 떠올린 겁니다. 음... 이 책 p73에도 저자의 각주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제 생각을 잠깐 덧붙인다면, 여기서 브레히트는, 나치의 강점(强占)이 자리잡고 나서 곧바로 부역자들에 의해 벌어진 "세뇌 교육과 역사 왜곡" 등에 비판의 초점을 둡니다. 이게 바로 중세 노예 상인들과 정확히 매칭되는 심상이며, 유대계나 폴란드 소년 소녀들은 바로 노예로 끌려가는 그 희생양들과 패럴렐 관계를 이루죠.

나치 독일의 "최종 해결"은, 본래야 그런 뜻이 아니었으나 나치에 의해 극악한 행태로 악용된 후에는 희한한 환기를 부르는 어구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p78에 "해결책"이 실려 있는데 역시 브레히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6월 17일 봉기가 일어난 후,
작가 동맹의 비서는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스탈린 거리에 전단을 배포하게 했다


(이상에서도 같은 3행이지만 시어의 배치는 원문과 다소 다릅니다. 물론 우리말 통사 구조가 독일어와 다르므로 어쩔 수 없죠)




Nach dem Aufstand des 17. Juni
Ließ der Sekretär des Schriftstellerverbands
In der Stalinallee Flugblätter verteilen
Auf denen zu lesen war, daß das Volk
Das Vertrauen der Regierung verscherzt habe
Und es nur durch verdoppelte Arbeit
zurückerobern könne. Wäre es da
Nicht doch einfacher, die Regierung
Löste das Volk auf und
Wählte ein anderes



네, 시의 결론(?)은 그것입니다. "아니, 정부가 인민을 아예 해산시키고 다른 인민을 선택하는 게 더 간단하지 않은가?" 겉으로는 번드르르한 구호를 내세우며, 속으로는 근로 대중과 농민을 잔혹하게 탄압하며 노예처럼 통제한 스탈린 체제의 위선을 비꼰 내용이죠. 체제의 취지는 좋았으나 방법이 폭력적이라서 잘못이었다는 어설프고 사아하며 무지한 궤변이 어디 있습니까. 음주는 했으나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파렴치한 변명과 무엇이 다릅니까? 시인의 양심과 혜안은 이처럼 간악한 영혼의 독 가득 스민 언어의 허실을 모두 꿰뚫어 보는 겁니다.

"나, 살아남았지." 슬픈 마음이 가득 묻어나는, 순결하고 솔직한 짧은 독백입니다. 같이 죽었어야 마음에 떳떳하고 친구들 보기 부끄럽지 않고 세상에 바른 고개를 들 텐데, 그렇지 못하고 비루하게 살아남아 진리와 질서와 정의와 나 자신에게 오늘도 죄를 지으며 참담하고 참람된 생을 이어나간다는 고해(告解)입니다. 허나 시인의 진짜 고민은, "앞으로 이 생존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바른 삶 부끄럽지 않은 삶인지" 그 답이 안 보인다는 데에 더 큰 부분이 놓인 듯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런 말을 하죠. "가신 분들 몫까지 남은 자들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 또 이런 말도 합니다. "Life goes on." 헌데, 브레히트는 이런 이치를 몰라서 "살아남은 내가 밉다"며 힘 없는 자포자기성 고백만 했겠습니까? 어떤 시인은 "아우슈비츠 이후 시(詩)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까지 언명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비극과 불의를 겪고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며, 아니 애써 잊으려 들며 여전히 불의와 비겁함을 일상으로 물들이는 "살아남은" 우리 모두야멀로, 시인의 비전을 암운으로 가리는 부조리의 극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 무엇을 위해 생물학적 연명을 지속하는지, 인간다움과 이상과 순결은 어디에 내팽개쳤는지 진지하게 반성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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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리모델링 - 반만 일하고 두 배로 버는
정효평 지음 / 새로운제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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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비효율적인 사업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바꾸는 일련의 작업" 이것이 바로 저자가 내리는 "비즈니스 리모델링"의 정의입니다. 사실 현장에서 많은 컨설팅 업체가 다름 아닌 바로 이 일로 먹고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업을 운영하시는 CEO들께서도, 한 번 정도 자신의 패턴과 스타일을 객관적으로, 3자화하여 분석, 고찰, 반성할 수만 있다면야 구태여 비싼 돈 들여 컨설팅 업체에 일을 의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어쩌면 이 얇고도 컴팩트한 책 한 권만 잘 읽어도, 현재의 크고작은 곤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업체가 많아질지 모르겠습니다.

"창업이란 실로 미친 짓"이란 저자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책 중에 적절히 서술된 대로 "자신이 채용하고 있는 비정규직들보다 더 적은 소득만을 챙기는" 사업주가 80% 이상입니다.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며 고객들은 매사에 불만입니다. 3년 안에 자신의 사업장을 닫는 업주가 태반입니다. 파산할 경우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도 불사합니다(p21:8). 이런 비참한 결과까지 맞지 않고, 우아하면서도 윤택한 장래를 꾸리기 위한 사업주의 바른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자는 "지금까지 당신은 많은 관련 서적(자계서나 창업 조언)을 읽어 왔을 터이나, 이 책은 그 이상을 알려 줄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하시네요. ㅎㅎ 어디 정말로 그런지, 호기심 가득히 품고 책장을 넘겨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인 저자이시다 보니, 사교육 시장이 워낙에 큰 한국의 실정을 감안하여 처음부터 그쪽 언급이 있으시네요. 애초에 시장 볼륨 자체가 적으면 CEO의 창의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효과를 보기가 어렵죠. 개탄해야 할지 그 실낱 같은 긍정적 작용을 기대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한국의 교육시장은 기존에 형성된 범위도 클 뿐더러 당분간은 성장 잠재력도 여전합니다. 어제 저소득층의 이쪽 섹터 지출이 크게 줄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으나, 대신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지불 의향은 여전하거나, 아예 다른 방향의 수요로까지 확산합니다. 이쪽도 부익부 빈익빈의 추세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안이한 인식을 가진 창업 희망자들에 대해 대번에 질타부터 하고 듭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재미를 못 보고 매번 망한 건, 남들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씀에 따르면, 예를 들어 학원은 앞으로도 극심한 레드 오션의 전형적 패턴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라는 겁니다. 남들 잘 된다니까 부화뇌동하며 거기 끼어든 거지, 앞으로 전망이 어떠할지 냉정히 분석, 계산해 본 적 있느냐는 겁니다.

솔직히 맞는 말 아닙니까. 대치동에서 학원이 하루에도 몇 개가 죽어나가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가하는 일침은, 당신이 지금 그 사업을 영위하는 목표가 무엇이냐고 되물어 보라는 겁니다. "돈 때문"이라면 당장 기본 마인드부터 뜯어고치라고 합니다. 아 물론, 당신이 예컨대 수학경시대회 고난도 문제를 푸는 고수이거나, 라틴어 등 희귀 고전어에 특별한 실력과 재능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대체불가능의 브랜드를 지닌 셈이므로 걱정 않아도 됩니다. 얼마든지 사교육 시장을 파고드십시오. 이 책은 그런 특별한 처지 아닌, 평범한 프리랜서나 사장님들을 위한 책입니다.

"시간과 일과 관습의 주인이 되어라." 아니 지금 먹고살기가 얼마나 팍팍한 과제이며, 다들 손톱만한 건수라도 찾아 혈안이 된 판에 무슨 한가한 충고인지요. 그러나 저자는 단언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패턴은 결국 본인을 관습과 패턴에 종속된, 다른 경쟁자들과 한 치 다를 바 없는 뻔한 지망생 그룹에 영원히 묶어 둡니다. 반면 주인이 된 인생은, 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발휘하는 그 창의력부터가 남과 다릅니다. 저자의 중간 결론은 "일을 하느라 돈 벌 시간이 없는 삶을 살지 말라"입니다. 역설 같으면서도 얼마나 큰 진리를 담고 있습니까.

당신은 일단 당신이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짓수를 줄여야 한다고 저자는 대뜸 조언합니다. 아니 이 취향 다각화의 시대에 뭔 소리냐 싶다면, 저자는 "당신 자신부터 포함해서,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대중이 '결정 장애'의 고민을 앓는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누가 골치 아프게 선택지 앞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따지고 있냐는 거죠, 요즘 세상에요.

저자는 곧이어, "당신이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떠드는 건, 어느 한 가지에도 확실한 자신이 없어서이다!" 라고 꼬집습니다. 카, 맞는 말 아니겠습니까. 알고보면, 비슷비슷한 아이템 여럿을 끄집어 늘어 놓는 것도, 뭐 하나 확실한 킬러 아이템이 없어서 아니겠습니까. 그게 바로 흔한 "남따라" 방식(앞에서 저자가 지적한)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과거에는 이런 걸 두고 "미투"라고 했는데, 요즘은 전혀 다른 쪽으로 사회의 거센 흐름이 하나 만들어져서 사용을 자제해야겠어요)

예를 들어 케이터렁이나 요식업이면, 자질구레한 부수 품목은 대거 줄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는 무려 반 세기 전 맥도널드 체인의 창업자가 그 효용을 일찍부터 증명한 진리이기도 합니다. "그저 맛에 집중하는게 살 길이다." 이걸 다른 말로 바꾸면 "나만의 브랜드화"입니다. 그토록 많은 마케팅 구루들이 "브랜드화"의 중요성을 인지했어도, 정작 우리는 실천에 못 옮기고 있었던 겁니다.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저스트 두 잇!"을 강조합니다. 설사 망할 계획이라고 해도 일단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뭘 배운다고 생각하고, 뭐라도 저질러 놓고 보라는 겁니다. 당신이 우물쭈물 쓸데없이 뭘 재는 동안 황금 같은 기회는 저 말리 날아가고 맙니다. 당신은 고작, 일어나지도 않은 재앙이나 실패를 모면할 수 있었다는 거짓 안도로써, 당신의 못난 깜냥과 재간을 호도하고 있던 겁니다. 왜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까? 그것도 당장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모두가 니치 마켓입니다. 널널한 장터를 마련하고 누구나 비슷비슷한 웨어를 들고 와서 여기저기서 좌판 깔고 장사 하게 도와 주는 마음씨 좋은 시장은 없습니다. 지금은 18세기 랭커셔의 싸구려 면직물을 이곳저곳에서 팔아대는 런던과 파리, 혹은 난징의 뒷골목 따윈 없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맘에 드는 딱 한 사람만 받습니다." 당신은 그 틈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고객도 자기 취향과 설 자리를 자각해야 셀러, 벤더에게 대접 받는 세상입니다. 어설픈 가짜 취향을 꾸미고, 안목의 부재를 과소비로 위장하려는 천박한 졸부는 오히려 판매자에게도 경멸 받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미투 소비자)에게는 팔지 말고, 당신의 상품, 브랜드를 진정으로 알아보는 안목 높은 고객만 상대해야 합니다.

"많이 벌기 위해서는 적게 일해야 한다." 요즘은 어떤 책을 읽어도 이런 주문입니다. 열심히 일한다는 핑계 하에 루틴의 노예를 자청하는 사람은, 이미 혁신을 회피하고 변화무쌍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남들 보라고 "쑈"를 하는 겁니다. 당신이 신명을 바칠 수 있는 일에 올인하고,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만들며,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리빌딩과 창의력 충전에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비즈니스 리모델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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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세상 2018-03-29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어마무시한 통찰력 이네요~~^^ 멋진리뷰 고맙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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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북유럽인들에 대해 이미지가 꽤 좋은 편입니다. 완벽한 사회보장 시스템이 갖춰졌고, 키 크고 이목구비 뚜렷하며 성생활 풍조도 자유분방하지만 사회에는 질서가 확고히 유지되며, 일광량이 적어 기분이 음울해진다는 엄연한 과학적 진실에도 불구하고 왠지 자연 풍광에조차 막연한 동경이 생깁니다. 스칸디나비아 누아르가 한때(대략 8, 9년 전) 대중문학 트렌드를 세계적으로 평정했었는데 이때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어서 열렬한 호응을 보냈더랬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고, 아무리 체제가 잘 구비, 작동된다고 하나 허점이나 모순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믿고 범죄율도 매우 낮게 유지되는 공동체이지만, 개개인은 그 나름의 아픔과 미련과 좌절된 이상을 갖게도 마련입니다. 이 책은 그런 북유럽 5개국에 대해 매우 유머러스하게 접근했고, 일반 상식적인 사항보다 작가 본인이 머무르며 몸으로 느낀 점들을 재미나게 풀어 준 내용입니다. 약간 산만한 감도 없지는 않고, 작가 개인의 관점이 전체 구성을 꿰뚫는 개성이라서 객관적 정보만을 짧은 시간에 추려서 정리(여행 등의 목적으로)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북유럽을 처음 방문하는 분들보다는, 이미 한번 정도 다녀오셨거나, 업무상 그들의 깊숙한 속사연에 더 관심 깊은 독자들이 "그랬었구나" 혹은 "그런 면도?" 같은 감상을 연발하며 파고들기에 더 좋습니다. 문체는 발랄하고 가독성은 거침없지만, 작가가 진짜 의도한 바를 정확히 캐치하려면 좀 심사숙고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긴 그 나름 천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겨레와 고장의 영혼을 엿보는 작업이 어찌 한 번 가벼운 눈길로 가능할까요.

모두 5장 체제인데 그 앞의 짧은 서문이 전체 내용을 잘 요약하며 이 책이 어떤 동기로 쓰여졌는지 독자에게 개념을 잡아 주므로 꼭 읽어 봐야 하겠습니다. 물론 재미난 수다투이기 때문에 부담 갖고 접근할 필요는 전혀 없고, 모든 문장이 흥겹게 재치있게 쓰였으므로 페이지만 펼치면 수다의 매력에 끌려 자연스럽게 페이지가 넘어가긴 합니다.

1장은 현재 작가가 체재하기도 한 덴마크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실 (책에도 나옵니다만) 덴마크는 한때 영국을 속국처럼 부렸고 스칸디나비아 일대를 호령한 초강대국이었으며, 바로 바이킹의 본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북방의 거대한 반도 영토를 모두 잃고 자그마한 유틀란드 고장과 그 오른쪽 섬만 보유하기에 우리는 이들이야말로 "바이킹 종갓집"이란 사실조차 잊곤 합니다. 영국의 오랜 기도문에 보면 "우리를 북쪽 사람들의 진노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 같은 구절이 다 있습니다. 데인인들이 대거 브리튼 섬을 침공해 왔을 때 거의 존망의 위기에 몰렸으나 한 군주의 용감한 거동으로 간신히 나라를 보전했는데, 이 군주를 가리켜 영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왕" 칭호를 붙이니 바로 알프레드 더 그레이트입니다. 여튼 그 정도로 이 덴마크가 역사의 지난 한 시절 무시무시했다는 소립니다.

책에서는 그런 아주 먼 지난 역사보다, 많이 위축되었지만 여전히 건실하고 탄탄한 사회를 지켜 내며, 높은 교양 수준으로 주변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는 현대 덴마크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잡아냅니다. 저자가 원래 영국 분이라서, 영국과 얽힌 과거사(근대사)도 자주 언급됩니다. 예컨대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석권할 때, 영국에서는 이 덴마크가 프랑스 편에 가담할까 우려하여 예방 전쟁 같은 걸 시도했다고 합니다. 두 차례에 걸쳐 코펜하겐을 포격했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프랑스와 애초에 나란히 설 생각이 없었던 덴마크인들이 기수를 거꾸로 돌려 영국과 적대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p37:11의 "...덴마크를 프랑스의 손에 넘기려는..."은 "넘기지 않으려는"의 오타로 보입니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국가를 꼽을 때 지표상 1위로 자주 선정됩니다. 하지만 이런 실사나 조사 결과가 과연 얼마나 진실과 객관을 반영할지, 저자나, 심지어 덴마크인들(저자와 개인적으로 만난)조차 회의감을 표현합니다. 확실한 건 덴마크 사회는 부유층도 빈곤층도 매우 적은(적어도 다른 서유럽 부자나라들과 비교해서) 편이며, 이 덕분에 심각한 사회 문제의 발생도 시민 사이의 갈등도 매우 적다는 겁니다.

평등이 이처럼 높은 수준의 만족과 "웰-비잉"을 보장한다는 점에 외부 학자들이 폭 넓게 동의하지만, 덴마크인들의 만족도는 한편으로 다소 위협을 받는 구석도 있습니다. 일각에서, "분명히 한계세율을 낮춘 결과로 이웃 스웨덴의 소득 수준이 상승한 걸 보라(p111)"면서, 살인적인 세율에 대한 불만이 제기됩니다. 일 년의 1/3 이상은, 오직 국가에 세금을 내기 위해 일함이나 마찬가지이고, 이런저런 간접세까지 너무 많이 붙습니다. 한때 고칼로리 유제품 소비를 줄이기 위해 "비만세"를 부과했다가, 국내 낙농업과 유통 섹터에 큰 타격을 주자 황급히 폐지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나는 소득 72%를 세금으로 내는 사람임!" 같은 자부심을 여전히 보유한다고 하죠. 한국 같으면 참 상상하기가 힘든 분위기입니다.

덴마크는 동화 작가 안데르센처럼 세계 문학에 큰 영향을 준 위인을 여럿 배출한 나라기도 하죠. 이 책에서는 "아네르센"이란 표기가 일관되는데, 이게 맞습니다. 덴마크어는 d 발음이 안 날 때가 많고 특히 nd 철자에서 d는 무조건 발음 생략입니다(단 ndr에서만은 다 발음됨). 뿐 아니라 현대 대중 문화에도 아이콘처럼 인식되는 인물들이 다수 있어서 이 책에도 이름이 여럿 거명됩니다. (근데 매즈 미켈슨 언급이 없어서 의외였어요. 이 책에서 여러 번 나오는 007에도 나왔고, 특유의 이지적이고 침울한 페이스 때문에 미드 <한니발>에서 주연인데도요) 저자가 강조하는 덴마크인의 민족성을 상징하는 단어로서 "휘게"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데 이 책의 백미이므로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2장은 핀란드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잘 알지만 핀란드는 코카서스인이 아니라 핀 족이라고 멀리 아시아에서 동진해 온 겨레입니다. 책에도 나오듯 정관사 부정관사 전치사가 없어서 유럽인, 특히 영국인 저자에게 매우 특이하게 보이며(사실 프랑스, 독일어 화자가 보면 영어도 참 이상한 말인데 자기 별난 점은 자기 눈에 안 보이나 보죠), 몽골어나 일본어와 혈족일지도 모른다는 언급이 책에 나옵니다. 우랄- 알타이 어족 가설은 사실 근래에 폐기 직전 단계인데 여튼 저 입장에 의하면 우리 한국어도 핀란드어와 계열이 멀지 않습니다.

핀란드는 사실 덴, 노, 스, 아 등 다른 4개국과는 이처럼 혈통이 다르지만, 오랜 기간 동안 덴마크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기에 스칸디나비아의 역사에 이들을 함께 개관하는 게 무리는 아닙니다. 표트르 대제가 18세기 초 21년 동안 "북방 전쟁"을 스웨덴과 벌여 결국 핀란드를 손에 넣었는데, 핀란드인들의 지도자는 노련하게 교섭을 벌여 지나친 수탈과 예속 상태가 발생하지 않게 외교를 참으로 잘 펼쳤다는군요. 이러다가 레닌이 10월 혁명을 일으킨 와중 은근슬쩍 독립을 해 버리고, 이후 명실상부 주권국으로 잘 살다가 2차 대전 직전에 스탈린에게 침공을 당합니다. 아마 스탈린은 이 약소국을 나치 독일이 선점할 경우 전개될 악몽을 막기 위해 벌인 조치이겠습니다만, 여튼 이 때문에 약소국 핀란드는 엄청난 피해를 겪습니다. 웃지 못 할 일은 이 작은 나라의 저항을 감당 못 해서, 스탈린 역시 큰 국력의 손실을 보고, 이 과정을 지켜 보던 히틀러가 소련의 부실이 어느 정도인 줄 짐작한 후 얼마 뒤 전격 소련 침공을 감행했다는 겁니다.

소련이 거세게 밀고 들어오자 핀란드는 (안타깝게도) 나치 독일과 손을 잡습니다만 이 부분은 약소국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다며 이후 연합국들도 다 양해를 해 줍니다. 영리하게도, 핀란드는 나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재빠르게 손을 바꿔 소련 등과 동맹을 시도하는데, 협상이 이뤄진 후 이번에는 자국 내에서 독일군을 몰아내려고 필사적으로 전투를 벌입니다. 한번 마음 먹으면 더 강한 적을 향해서도 매서운 투지를 보이는 민족성은 세계에 강한 인상을 주었고, 소련도 내심 겁을 먹고는 배상금과 일부 영토 할양 선에서 멈춥니다. 참고로 책에는 1/10에 가까운 영토를 빼앗겼다고 나오지만, 사실 카렐리아는 핀란드 본류인 핀 족과 좀 혈통이 다른, 또하나의 소수 민족 거주지입니다. 그나마 카렐리아 대부분은 여전히 핀란드 땅이기도 하고요.

책에도 나오듯 핀란드는 이후 냉전기에 소련을 향해 알아서 기며, 공산 국가가 아닌데도 언론 출판 영역에서 소련의 심기를 상하게 할 수 있는 주장이나 표현은 검열을 통해 공개 금지 처분을 하는 등 주권국가로서 다분히 체신이 더럽혀질 만한 길을 걷습니다. 이걸 핀란디제이션이라고 불렀다는 말이 책에도 잘 나오죠. 한편으로 저자가 재미나게 설명하는 것처럼, 핀란드는 공산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과는 대단히 우호적인 사이를 유지했는데, 특히 무역 부문에서 소련과 상호 보충 포지션의 물자가 많아 그야말로 찰떡 궁합의 재미를 장기간에 걸쳐 봤다고 합니다. 이러던 게 1990년대 들어 소련이 갑자기 무너지고 정정이 불안해지자 자국에도 일시 경제 공황이 들이닥칠 정도였다고 하네요. 우리가 의미 깊은 시사를 받는 건, 저 위 폴란드와는 달리, 영리하게 경제적 실리를 챙겨가며 강대국과 잘 지낸 그들 핀란드인들의 지혜입니다. "스칸디나비아인들보다 더 스칸디나비아적인 국민", 이것이 저자의 요약입니다.

아이슬란드는 아마 전세계에 큰 존재감을 부각한 게, 1980년대 중반에 있었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사이의 미소 정상회담일 겁니다. 한국도 이후 부시(부친)과 고르비가 제주도에서 잠시 만나는 이벤트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아이슬란드 역시 인구 적고 환경 쾌적한 곳에서 산뜻한 국가 체제를 이루고 사는 강소국으로 우리가 알지만, 이 책에서는 더 구체적인 역사를 조곤조곤 얘기합니다. 아이슬란드인들은 오랜 세월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고 독립의 역사도 짧지만, 특이하게도 여전히 덴마크인들과 친하게 지내며 선진 문화를 흡수함에 있어 덴마크의 조류를 일순위로 참고한다는군요. 이뿐 아니라 친족 중 덴마크에 한 사람 정도 연고가 없는 가정이 없을 정도랍니다. "우리는 촌놈들 아닌데 덴마크인들은 우리를 그린란드인들보다 좀 나은 정도로밖에 안 봐요!"라며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귀여운 투정을 늘어놓습니다. 이런 게 민족 간 적대 관계로 치닫지 않고 즐거운 이야깃거리 마련 정도로 그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노르웨이는 독립의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이웃 스웨덴하고도 꽤 긴장감이 남아 있고, 20세기에는 나치 독일에게 침공, 점령을 당했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덴마크도 비슷합니다만 이쪽은 왕실부터 해서 조금이라도 존중을 받는 분위기였는데, 노르웨이는 많은 굴욕을 당했고, 그래서 그 짧은 기간 동안 레지스탕스의 저항 족적이 매우 뚜렷합니다. 이웃들이 한결같이 짚는 민족성은, "노르웨이 사람들 참 따분하고 재미없다"이죠. 여튼 노르웨이는 석유의 발견, 또 전통적인 수산업의 발전, 풍부한 천연 자원 덕에 지금은 오히려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나아가 세계 정상권의 1인당 소득)입니다.

스웨덴은 정치적으로 참으로 안정된 체제이며, 노벨상을 수여하는 등 문화, 예술, 학문의 발전상도 두드러진 선진국입니다. 허나 특히 라이벌(?) 관계인 덴마크인들이 보기로 "답답하고 완고한 사람들"이 가득한 고장인데, 이는 워낙 낙천적이고 융통성이 큰 덴마크인들이 내리는 평가라서 그럴 수 있습니다. 또 스웨덴이 인접 착한 나라들의 우려를 사는 단 하나의 요인은 극우 정당의 존재입니다. 특히 노르웨이 같은 나라가 파시즘 때문에 얼마나 큰 시련을 겪었는지 고려하면 경계심이 드는 게 당연하죠.

전체적으로 스칸디나비아, 혹은 더 범위를 넓게 잡아 북유럽 5개국의 특징은, "평범한 사람이 태어나면 더없는 천국이겠으나, 뛰어난 사람은 매 순간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나라"입니다. 이들 나라에서 경제인들이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도대체 혁신이란 게 없다."입니다. 허나 사람이 받은 것 많게 큰 사람은 남한테 베풀 줄도 알고, 자신이 봉착한 위기도 여유와 슬기를 잃지 않고 잘 관리합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이 북유럽 국가들이 여태 겪은 경제적 위기만도 여러 차례인데, 그때마다 특유의 지혜로 돌파구를 찾아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여유 있고 신뢰가 가득한 사회(자전거에 자물쇠를 안 채운다고 하니 고대 중국 태펑성대를 가리키는 성어 "도불습유"의 경지가 따로 없겠어요)에서 자란 사람들이기에, 공연히 비뚤어진 못된 심사를 부리기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바른 길을 잘 찾는 겁니다.

책은 저자가 직접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육성"를 가득 담았습니다. 사실 추상적인 이미지나 지난 역사에 그 일면만이 담긴 채 왜곡되어 통용되는 민족성 등은 우리가 깊이 신뢰를 줄 건 아닙니다. 자신 개인의 경험을 과도히 일반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직접 겪어 보지도 않고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함부로 단정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즐거운 접촉, 소통이 풍성한 이야기를 읽으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사실은 다분히 유쾌하게 놀리는 어조입니다)"이 어디 북유럽에만 있겠나 싶었습니다. 작가의 후속작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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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섬으로 가다 - 열두 달 남이섬 나무 여행기
김선미 지음 / 나미북스(여성신문사)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꿀벌이 어느날 갑자기 멸종하면 인류 문명과 생존도 따라 중단되리라는 진단이 있었습니다. 실제로야 인간은 또다른 대안을 찾아내고 말겠지만, 그 와중에서 겪어야 할 엄청난 비용 소모와 희생, 그리고 혼란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죠. 아무튼, 마땅히 만나야 할 그 누군가, 무엇인가가 기어이 제 갈 길을 찾아 상봉하는 과정을 보노라면, 자연의 섭리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나무, 섬으로 가다." 제목부터가 아름답습니다. 본디 영어의 plant나 한자어의 식물(植物)이나, 한 자리에 고정되어 움직이질 못하는 본성을 지적한 데서 공통으로 어원이 비롯했지요. 그런 나무가 어찌해서, 자신이 잘 어울리고 가장 예쁜, 당당한 모습을 뽐낼 만한 환경으로 '갈"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 책은, 남이섬의 기기묘묘 아름다운 나무의 식생 기원을 중점으로 다루지는 않았습니다(언급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자연의 섭리가, 마치 충분한 영감을 받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예술가의 심사를 본따듯(아니, 이 말은 앞뒤가 바뀐 소리입니다, 사실), 어쩌면 이렇게나 알맞은 장소에 저 무수히 빛나는 나무, 나무, 나무들을 고루 빚어 놓았는지, 그럴 수 있었는지, 감탄하고 또 감탄하는 중, 나무가 발이나 달린 듯 성큼성큼 걸어 와 포즈를 잡기나 한 양 즐거운 상상에 잠기게도 됩니다.

청평 댐은 1944년에 완공되었고, 이 청평 댐이 뜻하지 않게 물 속에 가두어 놓은 땅 한 자락이 바로 남이섬이라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평안북도의 수풍 댐이라든가, 부전-장전강 수력발전소 등 여러 곳에 이런 류의 공사가 행혀졌습니다. 동기는 다르지만 비슷한 시대 루스벨트 대통령이 벌인 사업으로부터 자극을 받긴 했을 겁니다.

책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알고보면 물 밑에서 뭍과 이어져 있지 않은 섬은 없다. 그렇다면 섬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시간적 격절을 뜻하는 것일까." 공간을 시간으로 치환 가능한 건 꼭 상대성 이론의 세계 안일 필요는 없겠습니다. 아니 어차피 상대성 이론 자체가 (알고 보면)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하지 않습니까.

"가슴에 사쿠라 꽃가지를 꽂아주며 식민지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던 야만의 시대도 지나갔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사실 특정 식물에 애써서 국적의 라벨을 붙이거나 문화적 심상과 연결짓는 건 천박한 시선입니다. 저자는 아픈 역사의 끝자락은 그것대로 아프게 되새기되, 예쁜 벚나무를 그저 벚나무로 바라보며, 이처럼이나 아름다운 꽃을 봄에 피우려면 겨우내 얼마나 에너지를 늙은 몸에, 사력을 다해 끌어모았을지를 먼저 상상해 보자고 하십니다. "벚나무가 다른 수종에 비해 수령이 짧아 백 년 이상 나이 먹은 걸 찾아보기 힘들다"는 문장으로부터도 저는 새로운 사실을 배웠네요.

유명한 관광지에서 특별히 보호 대상이 되는 몇몇 나무 중 유독 미선나무가 (제 개인 사례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으나) 자주 보였습니다. 이 미선나무의 "미선"은 궁정 시녀들이 왕이나 비의 곁에서 들고 있던 의장 부채를 가리키는 말로서, 열매가 그 부채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이 그리 붙었다고 하십니다. 옆에 선 "명자나무"를 두고는 참 이름이 촌스럽다고도 하시는데, 음... 특정 세대에 꽤 흔히 발견되는 이름이기도 하므로 글쎄요 그리 말씀하심은.... ㅎㅎ 다만 아가씨나무의 청초한 자채는 과연 그 이름의 풍취와 잘 부합한다고도 하십니다. 독자로서 저 역시 이곳저곳의 자연 풍광을 둘러볼 때 이 나무를 보고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파 대는 특이한 생리 때문에 유명합니다. 쪼여대는 나무가 얼마나 아플지, 아직 식물의 통각 체계(?)에 대해 학교에서 안 배운 어린이들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만도 하지만, 사실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 저자께서는 "아픔"은 고사하고, 이런 딱따구리의 습성에 대해 혹 나무의 기능을 해치지 않는지조차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어차피 본체를 떠받치는 죽은 조직만 골라서 파내는 행태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자연의 섭리란, 솜솜 따지고 들어보면 모두가 공존이요 공생의 길입니다. 아 물론, 임업인들이 그토록 골치를 앓는 소나무재선충의 창궐 같은 걸 두고도 같은 말을 태평히 해 댈 수는 없습니다. 모든 걸 인간 중심 시야로 재편하자는 게 아니라,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서 어떤 종과 동맹하여 다른 종을 격퇴할 수도 있는 겁니다.

"잣나무 열매는 높은 가지에서 익는다... 겨울 동안 쓰레기통이나 뒤지던 청설모들에게 얼마나 기다리던 행복한 순간일까." 역시 자연은 대립과 파괴보다는 서로의 속살을 살찌우는 다정하고 흐뭇한 연계를 더 자주 맺습니다. "멀리 있는 꽃은 높은 곳을 지나는 바람에만 기대기 때문에 땅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걸어야 할 바른 길, 어울리는 길은 따로 있기 마련이죠. 두더지와 지렁이는 열심히 땅을 헤집는 게 당당하고 본분에 맞는 처신입니다.

이 책은 "한 달에 한 번 남이섬이 그때그때 갈아입는 옷을 구경하기 위해 반드시 찾는" 저자님의 유별난 생태 사랑이 그 저술 동기입니다. 지금은 봄이 아직 겨울의 시샘을 받는 환절의 문턱입니다만,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 이제 신록과 녹음의 계절에 본 광경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소개됩니다. 사실 문장 문장이 너무도 좋아서, 기막히게 촬영된 사진들과 함께. 한 편의 장구한 산문시를 읽는 느낌도 듭니다.

"지난달 남이섬 숲에서 가장 빛나 보이던 밤나무는 이제 무대 뒤로 숨었다. 이제 그 누구를 유혹할 필요가 없다." 저렇게 무엇인가가 그토록 자태를 뽐내는 이유가,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혹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 반드시 숨어 있어서일까요? 사람 위주의 편할 설명은 혹 아닐지요? 수컷이 암컷을 끌기 위해 유독 요란하게 단장하거나, 성별의 행동이 정반대로 바뀌었다거나 하는 건 물론 생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함이 맞습니다. 허나 나무는 무엇 때문에 이처럼이나 무대에 이처럼 아름답게 치장하고 오르는 걸까요? 어쩌면 답을 찾는 게 무익한 시도입니다. 자연의 모든 섭리는 그 자체가 원인이요 결과일 뿐 다른 무슨 "변호나 변명"이 필요하겠습니까.

"6월이 되면 낙상홍은 잎겨드랑이에 앙증맞은 꽃들을 다닥다닥 피운다는데 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저자님처럼 부지런히 자연과 나무들의 한껏 피어오른 자태를 즐겨 완상하시는 분도, 아직 구경 못한 모습이 따로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이나 자연의 장관은 천태만상이며, 어쩌면 필요한 때의 합당한 감상 고조를 위해 일부러 아껴 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11월은 도끼를 위한 달"이라고 읊은 알도 레오폴드의 구절을 인용하며 저자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내 몸에는 늑대의 피가 흐르나 보다"라며 농담처럼 말하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사실 차오르는 달을 보고 설레는 건 늑대뿐 아니라 생명체 대다수가 겪은 생리요 감정입니다. 도끼가 제 할 일이 잔뜩 생긴 11월은 사실 인간이 이기적 욕심을 위해 장작을 마련하는 시기입니다만, 나무를 사랑하시는 저자 역시 섬 곳곳에서 통장작 타는 냄새를 풍취 있게 즐기십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남이섬 중에서도 높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덕에, 사랑을 확인하려는 연인들의 성지"입니다. 그 왁자하던 연인들도 초겨울 햇살의 짧은 자취가 사라지면 서둘러 선착장 쪽으로 빠져나가는 쓸쓸하면서도 분주한 모습, 저자는 담담하게 책 속에 글로 사진으로 담아내십니다. "낙우송은 어긋나기를 하고, 메타세쿼이아는 마주보기를 하는 게 서로 다를 뿐 나머지는 닮았다." 얼핏 보기에 판이한 생태인 듯해도 닮은 점은 닮은 점대로 찾아내고, 다른 점은 그 가장 큰 대조를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 이는 사실 옛 성현들이 "격물치지"의 자세로 언제나 강조했던 학문 자세이기도 합니다.

남이섬에는 중국인 관광객도 자주 찾아오지만(이 책 전반부, 즉 봄의 풍광을 담은 대목에서 언급이 있습니다), 초겨울에는 낙엽의 풍광을 즐기고 마음을 깨끗이 하려는 무슬림들도 즐겨 방문한다고 하며, 놀랍게도 이런 종교인들을 위해 따로 시설을 당국에서 마련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잘한 조치입니다. 청소 인력과 즐거이 인사를 나누는 소년은 싱가포르 출신입니다. 싱가포르는, 대표적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인접했으므로 무슬림 인구가 15% 정도나 됩니다. 아무리 오래 전 대국과 절연하고 중국계 위주의 체제를 꾸렸다고는 하나 말입니다.

"이름이란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롭지 않겠는가." (우리가 잘 아는 로미오의 그 연인이)

사실 나무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주며 각각의 개성을 살피고 어여삐 여기거나 감탄하는 건 매우 유익하고 흐뭇한 소양입니다. 하지만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백과전서식으로 분류하기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저자도 말씀 않습니다. 단, 나무는 제게 스스로 이름을 달지도 않고 자만도 하지 않으면서, 은근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모든 욕심을 비우고 자연의 시선으로 온전히 교류, 공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나무의 모든 미덕과 장점을 오롯이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책 끝에는 가나다순으로 남이섬에 번식하는 거의 모든 수종이 잘 정리되었습니다. 소사전으로 요긴한 활용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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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터[630]번째 책이야기

테슬라와 아마존을 알면 데이터 금융이 보인다 / 김민구

내가 몰랐던 책 책이야기 텍스터(www.texter.co.kr)
테슬라와 아마존을 알면 데이터 금융이 보인다 / 김민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 일상의 혁명이 된, 4차 산업을 말한다!

2016년 1월 클라우스 슈밥이 “제4차 산업혁명을 뒷받침하는 기술들이 모든 산업에 걸쳐 기업에 거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고 이야기한 지 2년여 지난 지금 시중에는 관련 책이 넘쳐나고 어디를 가나 ‘4차 산업’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실제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확장현실(XR), 커넥티드 카, 암호 화폐와 블록체인까지,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4차 산업 테크 트렌드는 빠른 속도로 우리 일상생활과 가까워졌다. 특히, 과거 우리가 알던 금융이 점차 사라지고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데이터 금융의 시대를 맞고 있다.


미래의 화폐, 미래의 에너지는 데이터 융합이다!
이것이 4차 산업의 원동력이다!

이 책은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 기사화된 관련 내용을 읽기 쉽게 정리한 책이 아니다. 자율주행,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암호화폐, 블록체인, 핀테크, 공유경제, 사물인터넷 등에 대한 우리 생활 속 4차 산업 사례를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눈앞에 전개되고 있지만 추상적이었던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어떤 데이터를 어떤 도구로 분석해야 하는지 단순 명쾌하게 풀어내었다.
현금 대신 QR코드로 구걸하는 중국 거지의 모습에서 중국의 미래 10년과 함께 ‘핀테크’를 설명하고, 올겨울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 미세먼지를 통해 테슬라에 장착된 ‘생물 무기 방어 모드’를 이야기한다. 또 얇고, 가볍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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