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의 브랜딩 - 브랜드 전략이 곧 사업전략이다
우승우.차상우 지음 / 북스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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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내용은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알찬 지침으로 가득했습니다. 물론 상당수는 실제 기업의 경영 사례입니다만, 사례 중에서도 타 상황에 교훈으로 적용할 수 있는, 꽉 찬 사례가 따로 있기 마련입니다. 그 사례로부터 추출하는 명제 역시, 익히 들어왔던 것이지만 맥락 속에서 또다른 의미를 지닌 것들이 많아서, 밑줄 쳐 가면서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브랜드"란, 소모품과 동반자 사이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쥐틀, 철못 따위를 사면서 브랜드를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난 세기만 해도,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에는 소모품이 브랜드품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허나 지금은 대중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이에 따른 욕구 수준도 높아졌으며,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까닭에, 기업은 "판매"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再考)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만들고 나서 팔리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무엇을 소비하고 기대하는지 미리 예상하고, 타 기업에 앞서 시장을 선점하고, 선점에 앞서 아예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케팅의 본질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브랜드 하면 바로 이것이 떠오를 만큼, 컨셉과 개성, 스토리를 모두 갖춘 브랜드를 개발하는 게, 기업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성공하는 브랜드, 로컬을 넘어 글로벌 스케이프에서 선전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수 사례를 통한 개발상의 중요 포인트를 잘 짚어 주고 있습니다. 흔히, "내가 브랜드를 만들 것도 아닌데 뭐하러 그런 고민을?"이라고 하는데, 직장인이라면 회사(나아가 CEO)와 고민, 그에 따르는 전략 개발에 동조 동감할 줄 알아야 제 할 일을 다하는 거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이 시대 기업의 화두 "브랜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선 저자는 "우수한 브랜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에는 더 이상 강조가 식상할 만큼 유명한 사례로서 애플이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신기한 건, 1990년대 말만 해도 애플은 "고립적 브랜드. 타 제품과 호환이 안 되는 소수 마니아(이게 중요하죠)만을 위한 제품"으로 학계와 언론계에서 찍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성공을 위한 모범으로 아예 공인되고, "소수 마니마 운운"은, 시대를 앞서간 하위 세그멘테이션 전략이 지구를 제패한 대성공 모범"으로 180도 바뀌어 있습니다. 경영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비자발적 관심 유발은 아무 소용이 없는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기도 하지만, 캘빈 클라인의 유명한 광고("CK와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잘 말해 주듯, 효과적으로 소비자의 머리에 각인된 이미지는 언젠가 제 역할을 해 줄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선명한 이미지입니다. 추상적이어도 괜찮고("코크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같은 건 아무 효용도 주지 않습니다만, 대단히 성공한 카피입니다), 기능적이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일관성입니다.

일관성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이 책 2장에 나오는 에스티 로더의 브랜드 "오리진스"이 사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에스티 로더는 처음에 "오리진스"를 백화점 매장에서 다른 고급 브랜드와 경쟁하는 강력한 하위 브랜드로 포지셔닝할 생각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좀 엉뚱하게도 "friendly fire"를 맞게 되는데, 시청자(따라서 소비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오프라 윈프리가 자기 쇼에서 "나는 욕실에서 '오리진스'를 쓴다"고 발언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지도 않은 "지원"은 업계에서 큰 행운으로 여겨지지만, 에스티 로더 측은 오히려 당혹해했습니다. 그들이 지향한 브랜드 이미지는 고급품 레벨에다 다양한 기능성의 스펙트럼을 지닌 제품군이었지만, 오프라의 저 발언은 "아로마 제품" 정도로 이 브랜드의 컨셉을 훼손(나아가 오염)시킬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브랜드 전략이란, 일관성과 선명한 이미지의 각인이 그 핵심입니다. 일시적 판매 증가에 일희일비할 게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미지가 선명하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차별화 전략입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비슷비슷한 표준적 제품의 제조가 성공의 비결이었다면, 현대의 시장이 지난 시절과 확고한 선을 긋는 부분이 비로 이 대목입니다. 그런데, 무작정 차별을 한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한 차별이냐, 또 어떻게 수행하는 차별화인가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라고 하는군요.
"당신이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그리고 그 다음 질문은
"그게 시장(하위 세그먼트)에서 중요한가?"
"당신이 비교하는 대상(경쟁 상대)은 누구인가?"
라고 합니다. 참 정곡을 찌르는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포지셔닝에 대한 백 가지 정의, 천 가지 사례 열거보다 이 질문이 가르쳐 주는 바가 더 많습니다.

그런 고민을 통해 창출된 브랜드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여기에 대해서 여러 논의와 주장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정평 있는 "인터브랜드 방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분야는 전통적으로, "추상적이고 구름 잡는 논의"라며 일부 기술만능론자에게 비판 받아 왔지만(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동안 이론적 발전이 워낙 현저했기 때문이죠), 예컨대 회계학에서도 영업권 같은 것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합니다. 인터브랜드 시스템은 "브랜드가 창출하는 이익"과 "브랜드의 강도"를 곱해서 종합 가치를 측정합니다. "이익"을 산출할 때에는, 과연 창출된 소득의 몇 퍼센트 정도가 브랜드의 기여인지를 염두에 둡니다. 향수는 95%, 호텔은 30% 정도가 해당 산업의 평균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강도"의 측정에 있어서는, 이익(현재, 잠재)과 위험을 동시에 낮추는 게 그 핵심 지표이자 지향점입니다. 보통 수익과 위험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인데, 브랜드 젼략은 이런 "상식에 반하는" 결과를 안겨 준다는 점에서 기업의 관심사가 됩니다.

이 책은 기존 마케팅 교과서에서 많이 강조한 개념들이 충실히 잘 정리되고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정통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편입니다. "브랜드 확장", " 마케팅 믹스  4P" 등등... 그런 중에서도 최신의 사례를 소개하고, 이를 실감나는 서술과 유기적인 설명을 통해 독자의 머리에 오래 남게 하는 게 두드러진 장점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호텔 종합 체인인 메리엇 그룹의 사례에서 처음 들어보거나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서울 강터에도 있는 JW 브랜드가 그런 전략적 지향점을 지니는 줄은 처음 알았고요. 시계로 유명한 불가리 브랜드가 벌써 이 기업에 넘어간 사실도 처음 접했습니다. 여러 모로 유익했지만. 다만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도 발견되는데요, 이를테면 P&G의 사례에서, 지나치게 많은 컨셉의 창출로 인해 오히려 총 점유율이 줄어든 결과를 지적합니다만, 과연 어디까지가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며 어디부터가 그 초과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 설명은 없습니다(그저 결과론이죠). 또한, 21세기 폭스 사의 사명 변경은 오히려 브랜드 고수 전략의 예로 들어져야 맞습니다. 이름이 바뀐 건 루퍼트 머독이 새로 만든 모회사이며(따라서, "바뀌었다"고도 할 수 없죠), 영화 제작사는 아직 "20세기 폭스" 그대로입니다. 고민고민 끝에 원 명칭을 유지한 경우인데, 사실 모회사의 작명이 더 비판 받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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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패턴 - 경직된 사고를 부수는 ‘실전 차트 패턴’의 모든 것
토마스 N. 불코우스키 지음, 조윤정 옮김 / 이레미디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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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주식, 증시에 대해 (전혀 관심 없거나, 관심 있어도 소양, 실력이 부족한 분들이) 자주 묻는 주제가 "차트 보는 법"입니다. 자신이 차트만 잘 볼 줄 알면, 시장의 구조나 원리, 혹은 개별적인 회사(종목)의 현황을 몰라도 금세 전체 상황에 능통해질 수 있겠다는 어떤 환상, 착각 때문입니다. "말로 하는 건 다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놈의 차트가 발목을 잡네." 사실 이는, 자신이 가장 취약한 대목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일종의 자기기만입니다. "차트 보는 법"이 따로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차트를 본다고 해서 한꺼번에 주식 보는 안목이 팍 개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분이라고 해도, 정말 친절하게 "차트 보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 또 혹시 알겠습니까, 진짜 증시 보는 눈이 마치 득도나 하듯 확 트일지요. 아니면 적어도, "아 내가 주식을 어려워하는 게 그저 차트를 볼 줄 몰라서는 아니었구나. 다른 공부를 더 해야겠네."하고 새삼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겠지요.

요즘은 인터넷(덧글창이든, 익명 커뮤니티든 간에) "주식 좀 한다"는 게 꽤 유셋거리나 되는 양 통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상대를 비꼴 때 흔히 하는 말이 "차트나 볼 줄 아냐?"입니다. ㅎㅎ 정말 그런 말을 듣거나 구경하고선, "아, 난 정말 차트도 볼 줄 모르니까"하고 속으로 자괴감에 빠진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차트를 잘 봐 온 이들이라 해도 "혹시 내가 그동안 잘못 봐 온 부분은 없었을까?" 같은 점검을 할 필요는 있으니, 이런 잘 정리된 책을 통해 한 번 정도는 체계를 잡는 게 의미가 있습니다. 생각 외로, "그간 잘 통한다고 여겨 온 내 생각, 내 메커니즘"이 손 볼 구석, 개량할 구석이 많았다는 각성은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매우 필요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올해 초(1월 경)에 "양적 지표(중에서도 거래량) 위주로 보는 투자(가치 투자 이런 게 아니라)"를 다룬 다른 책을 리뷰한 적 있습니다. 그 책은 안 그런 척 하면서 은근 차트, 그 중에서도 그래프 추이 보는 법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사실 차트 보는 법에 정석이란 없습니다. 모든 논자들이 다 저마다의 내공, 감, 시야에 의해 독특한 공략법, 독법을 전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책 역시, 지지와 저항 영역이라는 큰 컨셉을 잡고, "왜 당신은 비쌀 때 사고선 꼭 떨어질 때 팔 수밖에 없었는가?"의 근본적인 해답을, 차트를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이큐 테스트의 핵심도 결국 "패턴 파악"이듯, 그래프의 패턴을 보고 "아 이 즈음이 살 때, 이 즈음이 팔 때로구나"하는 직관을 바로 얻어내는 자가 증시의 승자라는 겁니다. 만약 이렇게, 오로지 차트 읽기의 달인이 될 수만 있다면, 예컨대 워런 버핏처럼 매번 (때로는 먼 시골까지 찾아가) 시설 현황이나 CEO의 의지, 자질을 확인할 필요 없이, 오로지 그래프만 보고 매수와 매도의 적기를 척척 판단할 수 있을 터입니다(밀이 이렇다는 거고, 실제 투자는 각종 질적 지표를 다 고려해야 하며 정말 차트만 보고 투자하다간 집안 망조날 수 있습니다). 책 제목에서도 잘 나오지만, "차트를 본다"는 건 곧 "그 차트의 숨은 패턴"을 찾아내 본다는 겁니다.

이 책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불코우스키의 저술이며, 그간 네티즌 사이에 말로만 설왕설래했던 바로 그 책이 정작 무슨 내용을 담았는지 궁금했던 이들에게는 아마 속이 좀 시원해지는 면이 있을 겁니다. 이런 것도, 평소에 속으로 궁금했던 부분이 많거나, 혼자 힘으로라도 의문을 해결하고 싶어했던 이들이 읽어야 진도가 팍팍 나가는 법입니다. 그저 결론 위주로 맥락도 모르고 최소한의 노력만 들여서 실전에 어설프게 적용하려 들지 말고, 데드캣바운스다 이탈 캡이다 상승 확대 쐐기형이다 같은 개념을 정확하게, 공을 들여 이해한 후 진도를 나가야 합니다. "차트를 잘 봐야지"하고 평소에 마음이 성실하게 간절했던 이들은 이런 책 한 권을 읽어도 한 마디로 백 마디를 이해할 만큼 진도가 빠릅니다.

책은 예컨대 "내가 책을 이러이러하게 쓰면 아마존에 혹평이 잔뜩 달리겠지?" 같은 여유 있는 유머가 낄 만큼 독자들과의 소통을 언제나 염두에 두려는 저자의 자세가 돋보이며(당시로서는 꽤 참신했던 각종 개념, 발상 못지 않게), 역자 조윤정 씨도 그간 이 주제 관련 책들을 여럿 번역해 온 분이라 문장이 깔끔하게 이어져 설령 초보라고 해도 무리 없이 읽어나갈 수 있을 듯합니다(더군다나 개정판이니). 편집 역시 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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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의 일 - 스타트업, 유니콘이거나 혹은 바퀴벌레이거나
임정민 지음 / 북스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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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성공하는 창업인가?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앞을 내다보고 젊은 감각을 따르는 방식이라야 한다는 거죠.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1. 4050세대는 장소 중심의 고착된 창업을 고집한다.

2. 2030세대는 "공간" 중심, 아이디어 위주 창업을 선호한다.

 

장소와 공간이 어떻게 다른가. 저자가 사용하는 의미에서, "장소"란 고착된 실체 개념입니다. 이른바 "목 좋은 곳"을 말합니다. 예전에 어느 외국 영화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해서, 곽정환 씨 소유의 서울극장을 보더니, "이곳은 정말 손님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는 노루목이다."라며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멀티플렉스 체제로 바뀐 지금은, 단일 극장이 어느 길목에 들어서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건물 내에서 어떤 시스템으로 컨텐츠가 운용되는지가 훨씬 중요한 세상이 되었죠. 서울극장처럼 좋은 길목을 잡아 두고두고 수익을 내는 방식이 4050이라면, 멀티플렉스 스타일은 2030입니다(자본의 스케일 문제는 일단 넘어가고요). CGV가 한국에 처음 이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만 해도 관계자나 관객 모두 낯설어한 방식이었을 텐데요. 이제는 보편적으로 정착한, 그것 외에는 상상이 힘든 표준 업태가 되어버렸죠. 여기서 알 수 있는 교훈은, 현재 기준으로 다른 이들보다 몇 발짝 앞서가는 젊은 감각이라야, 앞으로의 생존이 유망한 창업이라는 점입니다.

 

고착된 점포를 고집하는 방식은, 당장 지금부터도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예전부터 부동산(점포) 양수도의 공식적인 매매대금 수수 외에, 양수인이 "권리금"이라는 별도 명목의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회계 용어로는 "영업권"이라는 항목인데요. 이게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성행하다가, 한국 사회가 장기 불황으로 접어든 이후에는 잠시 뜸해졌죠. 아직 불황을 탈출 못 하고 있는 형편인데도,  (회사에서 밀려 나와)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이 워낙 많다 보니, 권리금의 수수 관행이 아주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특히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중심으로). 저자는, 구세대 창업은 이처럼 권리금 떼고 인테리어 비용 들이고 하는 통에 종잣돈을 다 날리고, 수익은 수익대로 박하게 거두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쉬움을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신세대 창업은 이런 전통 방식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가? 여기서 말하는 "공간 중심"이란, 아이디어가 효력을 미치는 모든 공간을 의미합니다. 내 가 서울 구로구에서 플랫폼을 돌려도, 나의 플랫폼이 구독자를 가지는 저 먼 전남 영광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식이죠. 정작 나는 내가 사는 곳에 점포는커녕 어떤 시설도 구비하고 있지 않지만, 거창하고 화려한 홀보다 더 큰 매상을 올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 배달의 민족"이라는 어플을 보겠습니다. 이 어플은, 어플 구독자가 살고 있는 지역 중심으로, 중식, 피자, 치킨 등 각종 음식 배달 업체를 소개해 주는 기능입니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이름도 참 재미있게 지었거니와, 어플이 딱딱하게 정보 중심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고, 마치 작은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재미있게" 짜여져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입소문으로 널리 어플이 퍼지고, 플랫폼에 입주하는 업체들도 늘어나서, 이 어플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치킨을 튀기지도 않고, 피자를 굽 지도 않으며, 면빨을 뽑지도 않으면서, 그 어떤 창업주보다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어플을 개발한 분은, "어떤 장소도 돈 주고 사들이지 않았으면서, 누구보다 많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지배하는" 업주입니다. 그는 권리금이라는 본전 생각에 전전긍긍하지도 않고, 임대차 계약 만료시 비싼 인테리어 설치비와 철거 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재미삼아 개발한 어플이라는 아이디어로, 그는 이처럼 나이 든 세대가 상상 못할 만큼의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여기서 잊지 않아야 할 점 또 하나는, 신세대 창업은 그 소비자의 재미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서 울보다 오히려 자영업 간의 경쟁이 치열한 부산 지역에 내려가 보면, 점포들의 간판이 대단히 재미있는 문구와 디자인으로 채워져 있는 모습이 의외였습니다. 같은 음식점이라도, 일단 외관에서 지나가는 손님의 눈을 확 끌만한 뭔가가 있어야, 같은 술 한 잔, 짜장면 한 그릇을 마시거나 먹어도 그 집에서 해결할 생각이 나겠지요. 서울과 달리 부산은 청년 자영업의 창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이런 현상이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역시, 지금은 4,50대 창업이 주류라서 보이는 보수적 컬러를 벗고, 언젠가부터는 더 활기 있는 와관이 대세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이디어 자체는 돈이 들지 않지만, 그 아이디어의 실행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그냥 돈이 적게 든다 정도가 아니라, 거의 공짜에 가까운 것도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돈이 부족하다 보니 자료를 카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물론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함부로 복사하는 건 불법입니다만), 때로는 복사 용지나 (업소에서 할 경우) 그 수수료조차 아까울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바로 이런 수요층을 노려, 카피 용지 뒷면에 실린 광고를 보는 대가로, 복사를 공짜로 해 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아이디어를 조금 발전시켜, 용지 앞면에다 광고를 싣는 방식으로 발전시켰구요. 제 생각에, 한국에서는 공짜 서비스라면 일단 이용하되, 일일이 뒷면을 살피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 고육지책이 아닐까도 싶더군요. 아무튼 평범해 보이는 소재에서 이처럼 사업의 소재를 발굴해 내었다는 게 신선했습니다.

 

"악동 뮤지션"이란 그룹을 요즘 아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저자는 이 악동 뮤지션의 사례에서 두 가지 교훈을 추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악동 뮤지션의 성공이 "아주 대중적인 코드의 바탕에다, 한 줄 독 창적인 코드의 삽입으로 큰 호응을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독창적이라고 하나, 아이디어의 전 부분이 모두 독창적이라면 대중에게 호응을 얻기 어렵고, 오히려 반감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위의 "배달의 민족" 앱도 마찬가지죠. 어떻게 보면 기존 전단지를 앱으로 옮겼다는 것뿐이고, 약간의 게임 요소를 첨가한 것 말고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존의 익숙한 요소들을 "매시 업" 하는 그 감각, 센스가 바로 창업자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비결이란 말이죠.

 

다른 하나는, 이 악동 뮤지션을 발굴한 "프로튜어먼트"라는 기획사에 관한 교훈입니다. 이 기획사는 종래의 업체와는 달리, 신인 발굴에서 트레이닝까지의 아주 힘든 사업 프로세스를 생략하고, 주로 유튜브에서 장래성 있는 신인을 발굴하여, 그들이 이미 발전시킨 창의력과 개성을 최대한 살려 가며 연예 활동을 하게 지원해 준다고 합니다. 이러면 기획사 입장에서는 초기 대규모 투자라는 리스크가 없어서 좋고, 애써 발굴하여 키운 신인이 식상한 컨셉으로 시장에서 외면받을 위험을 배제해서 좋습니다. 이 역시 "제거, 간이화"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혁신을 이룬 좋은 사례입니다.

 

평생 직장의 신화가 무너진 지금, 창업은 어찌 보면 필수 코스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왕 하는 창업이면 필승의 각오로 벌여야 하며, 수동적인 회사 생활 하듯 창업을 한다면 냉혹하게 버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창업은, 중년들이 기존의 대세를 따라 벌였던 "늙은 창업"이 아닌, 통통튀는 감각으로 전개하는 "젊은 창업"이라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물리적 연령과 관계 없이 모든 이가 성공할 수 있는, 영원한 젊음의 사업 그 비결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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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된 재무제표 관찰
김명철 지음 / 광교(광교이택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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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액이란 항목은 생각보다 모호한 성격입니다. 이걸 내가 누구한테 팔기는 팔았는데, 구체적으로 언제 판 것인가, 언제 팔았다고 치고 장부에 적어야 하는가, 이 문제가 회계에서는 엄청 중요하죠. 마트 등에서 자잘한 아이템을 몇 팔고 어쩌구 하는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 대량의 물건을 상대측과 계약하고 매도했는데, 이걸 1) 계약 시점에서 이미 팔았다고 볼 것인지, 2) 중도금 정도 받았을 때 비로소 판 것일지, 3) 잔금까지 다 수령했으면 안심인지, 4) 하자가 있을 때 반품할 수 있는 기한까지 다 지났을 때라야 완전히 팔아치운 건지, 사업을 크게 벌이면 벌일수록 그리 단순히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이 정도만 짚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회계기준은 명확하게 표준을 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창 장사가 잘 될 때 (누진세액 등을 줄이려고) 이미 팔아치운 건(件)에 대해서도 "다음 연도로 돌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사(혹은 그냥 가게라고 해도)가 지금 심각한 상황인데도 남 보기에 잘나가는 듯 위장할 필요가 있어서 일부러 다 팔지도 않은 거래를 장부에 버젓이 완료된 양 올려 둘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장부상에 적는 거래란 의외로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미리 원칙을 정해 놓고 그에 일관되게 따라야 그 장부, 혹은 장부로부터 도출되는 기록을 우리가 신뢰할 수 있습니다.

건설도급계약의 경우 "진행기준"이 매우 중요합니다. 거액의 건설 공사를 맡았을 때, 어느 특정 연도 특정 월에다가만 왕창 전 금액을 다 올려 두면 그건 사업의 현황을 정확히 반영한 게 아닙니다. 만약 가계부를 쓰는 주부라면, 월 중 가장 많은 지출을 기록한 일자를 골라내려 들 때, 공과금이 집중 이체되는 날짜를 두고 "아 이 날이 내가 가장 많은 소비를 한 날이군." 같은 결론을 낼 수는 없지요. 정기권으로 통근하는 직장인의 경우, 교통비는 그 정액권을 구입한 날 하루에 다 몰아 기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소비 패턴, 혹은 정확한 사업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기장은 정확할 필요가 있습니다. 꼭 무슨 세무 관련 이슈로만 이런 원칙이 요구되는 건 아닙니다.

진행기준은 그래서, 공사가 진척되는 정도에 맞추어 대금을 분배하여 장부에 적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출액의 경우, 국제회계기준은 수행 의무가 기간에 걸쳐 있는 걸로 보고 매출액을 이 수행의무의 이행도에 비례하여 부분부분 인식하는 걸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실무상으로는, 보고 기간 말에 일괄하여 기장하는 게 압도적인 관행입니다(솔직히 누가 그런 걸 일일이 금액을 안분해서 - 무슨 장난도 아니고 - 나누고 쪼개서 적겠습닏까?). 이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게 이른바 "변동대가"인데, 이 대목은 다음 주에 다른 책 서평에서 더 자세히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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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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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부끄럽지만 김정운 교수님의 저서 <에디톨로지>가 이미 2014년에 초판이 나온 책인 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받아보니 그 책의 개정판이더군요. 제목만 잊은 게 아니라, 김 교수님 특유의 생기 있고 발랄한 필치로 세계 문명사, 최근의 산업 발달사의 주요 국면을 힘 있게 요약하며 통찰을 제시하던 그 구체적인 내용도 많이 잊은 상태라는 걸 책을 읽어 가며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내용을 잊었다면 다시 새로워진 기분으로 그의 제언에 귀를 기울이며 독자로서 생각할 거리를 다시 챙겨 가면 그만입니다. 이런 걸 두고도 (저자의 말씀처럼) "행위가능성(Handlungsmöglichkeit)"이 하나 더 생긴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쓸모보다는 디자인이다." 아이리버 역시 우수한 성능과 (저도 써 봤기에 알지만) 이런 것까지도 다 배려하나 싶은 부가 기능 때문에 유저들에게 큰 만족을 준 기기였습니다. 그러나 모 회사의 모 기기에 의해 시장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지요. 저자는 당시(초판 기준으로도 여전히 회고적 시점입니다) 소비자들의 반응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OOOO가 예뻐도 너무 예뻤다." 사실 큰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운영 체계의 한계) 1998년의 아이맥 역시 "예뻐도 너무 예쁜" 디자인을 자랑하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 과연 예쁜 디자인"만"으로 OOO이 시장을 제패했을까요? 저자는 바로 이어, 감압식과 정전식이라는 인터페이스상의 차이를 거론합니다. 무엇인가를 사정 없이 두드리는 것과, 그저 "만져 주는 것" 사이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가로놓여 있다는 겁니다. 어느 누구나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만져 보고 싶어하며, 또 누구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로부터 "만져짐"을 당하고(좋은 의미에서의) 싶어한다는 겁니다. 이런 유저의 원초적 감수성에 어필한 전략이, 유례 없을 만큼 시장을 완전 장악한 애플 사의 필살기였다는 게 저자의 분석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애플 사의 성공 비결"만을 용비어천가처럼 늘어놓는 일부 자계서의 태도에 거부감(정도가 아니라 엄연히 팩트상의 오류)을 느껴 왔습니다만, 이 책(의 이 대목)은 그런 류의 책들과 달리 "한때 MS에 밀려 고전하기도 했던 애플의 과거"까지 균형감 있게 다루어서 더 신뢰가 가더군요.

올해 FIFA 월드컵에서는 비디오 판독(이른바 VAR)도 도입되고, 중계 시스템도 현저한 발전을 보여 시청자들이 큰 만족을 얻었습니다. 이미 2014년 시점에서, 저자는 "한국 축구가 중흥하려면 먼저 중계를 신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사실 축구는 아무 생각 없는 이들이 (그 나름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제대로 그 맛을 알려면 생각을 많이 하고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완전한 몰입이 가능한 스포츠입니다(게다가 동체 시력도 좋아야..). 저자는 "축구는 마치 바둑처럼, 공간 편집을 잘하는 쪽이 이기는 스포츠"라고 단언합니다.

이 대목에서 크게 공감하게 되었는데(기억도 나고요), 요즘은 인터넷 게시판에도 고수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편이라서 예전처럼 맹목적인 국뽕, 반대로 근거 없는 국까 모드의 매우 일차원적인 반응은 보기 힘든 경향입니다. 축구를 재미있게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려면,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빈 구석, 혹은 (게임이 이렇게도 전개될 수 있었다 같은) 대체 현실(평행 우주?)를, 완전히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연상, 상상이 가능하게 돕는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야구처럼 상당 시간이 정적으로 진행되는 스포츠에서는 해설(컬러 코멘트)를 통해 빈약하나마 말로 이게 가능한데(물론 엉터리 해설자도 과거에 있었지만), 축구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결정적 순간들이 지나가기 일쑤이니 말입니다.

책에 나온 지적들이 거의 다 맞는 말씀이나, 사실 중계 시스템의 기술은 저 서유럽이나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선수들의 기량이고, 그 선수들이 속해 있는 클럽(구단)에 대해 일반 팬들이 바치는 충성도입니다. 물론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분들은 지금도 그들 혼자서 팀(그리고 나아가 K리그 전체)을 지킨다고 할 만큼 열성적입니다. 그러나 저변 확산이 (프로야구 등 타 종목에 비해) 미흡합니다. 이 역시 "에디톨로지"의 관점에서 어떤 혁신을 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의미한 공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편집 전략". 사실 이 구절이야말로 책 전체를 요약하는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합지졸"이란 말이 있듯, 수만 많다고 그에 해당하는 위력이 마치 물리법칙 F=ma에 수반하여 생기는 게 결코 아닙니다. 잘 정돈되고 조직화한 자원, 역량이라야 본래의 힘을 발휘하며, 책에서 잠시 소개하는 일본 전국시대 일화처럼 나가시노 전투에서의 혁신적인 성과도 가능하기 마련입니다. 일본에서는 "잡단행동"이란 말이 우리와 달리(저자의 지적처럼, 우리는 확실히 저 단어에서 무슨 갈데까지 간 집단이 막무가내로 저항이나 하는 험악한 경우에나 저 말을 쓰곤 합니다), 파편으로 흩어졌을 시 별 힘을 못 쓸 자원이 고도의 효율을 발휘하게 돕는 비결, 비책처럼 통용되곤 합니다. 저자는 "한 번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군대 가서 고된 훈련을 한 경험을 (아들이 군대 갈 무렵에서야 서서히) 잊기 시작하는 것처럼" 머리가 아닌 몸에 배워 둔 요령, 지식은 결코 그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고도 말합니다.

"사회적 경력, 학력을 제외하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과연 그래서인지 요즘 나오는 책들을 보면 학력 소개가 빠진 경우가 많습니다. 따로 찾아보면 의외로 명문대인 경우도 부지기수이지요. 저자의 뜻은, 경력도 좋고 학력도 우수하지만 구태여 그런 말을 간판에 걸지 않고도 "나는 어떤 사람이오"라고 내세울 수 있는 이가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텍스트는 고립된 채로 아무 뜻이 없고, 오로지 콘텍스트 속에서나 바른 의미를 찾습니다. 조작, 날조가 아니라, 진실되고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콘텍스트, 사연, 스토리를 누구 앞에서나 자랑할 수 있는 에디톨로지의 대가야말로, 이 혼란스럽고 갈팡질팡인 세상에서 타 성원에게 어떤 지표, 지향점을 제공할 수 있는 등불 같은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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