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과 세금절세 및 세무신고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직접 하기 - 전2권 - 개정 5판, 자영업자의 성공 창업을 위한 사업자금 운용, 창업 관련 정부지원자금 활용, 1인기업 4대보험 관리와, 개정4판
이진규 지음 / 경영정보문화사(경영정보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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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실무를 살피다 보면 "내국 신용장"이란 게 나오는데, 신용장이란 건 본디 이 기업을 전혀 모르는 외국 측의 거래 상대방에 대해 일종의 지급 보증을 서 주는 증서, 제도의 일환입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외국과의 거래"에 소용되는 녀석인데, 앞에 "내국"이 붙으면 뭔가 모순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의 도입 취지는 수출 업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즉, 수출 기업이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 원자재, 혹은 하도급을 필요로 할 수 있는데, 그 상대기업들이 이 기업의 대금 지불 능력에 의심을 품는다든지 해서 거래에 선뜻 나서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중간에 은행이 나서서 "이 기업 괜찮으니 마음 놓고 거래를 트라"고 일종의 보증을 서 주는 것입니다. 신용장은 마치 어음처럼 활용되어, 신용장을 발급 받은 기업은 미리 이를 은행에 제시하여 자금을 끌어 쓸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업에 제품, 용역을 공급한 업체 역시, "수출품"을 취급한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렇게 되면 좋은 점 하나가 "영세율"의 적용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품 제조뿐 아니라 "용역"에도 적용되는데, 예를 들면 사우디로부터 우리 기업이 수주를 따낸 공사를 놓고, 일부를 국내 업체에 다시 하청을 주면, 이 하청업체 역시 "수출 기업, 수출 실적"으로 집계된다는 겁니다. 또, 당연히 매출 부분에 대해 영세율이 적용됩니다.

재미있는 것이, 면세사업자가 중간에 끼면 국고 수입이 늘어날까 줄어들까의 문제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면세"가 끼니까 당연히 줄어든다는 쪽으로 냉큼 결론이 미칩니다. 그러나 결론은 정반대로, "늘어난다"인데, 이런 걸 두고 "누적효과"라고 합니다. 이유가 뭐겠습니까? 면세사업자는 메출세액도 납입하지 않지만, 매입세액도 환급받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납입하지 않았던 매출세액을, 그로부터 공급받은 다른 사업자가 "매입세액 환급"을 또 못 받습니다. 이러니 오히려 국고수입이 증가하는 것이죠. 역설적이지만 그 이치를 알고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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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부가가치세법 강의 - 개정19판
오기수 지음 / 어울림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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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관련 어려워하는 대목이 있는데 "비영업용 승용차"가 대체 뭐냐는 반응이 그것입니다. 이게 부가가치세법에서는 이른바 "공급 간주(간주 공급)"으로 처리되어서 그렇습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운수업, 자동차 매매업자가 소형승용차를 다른 고객에게 판매하지 않고, 그냥 자기가 쓴다든지 할 때, 이걸 (자신이 자신에게) 판매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판매"를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면, 일반 소비자들은 차를 살 때 당연히 VAT를 포함한 가격으로 사게 됩니다. 그 부가세를 받아서 대신 세무 당국에 납부하는 쪽은 차를 판 사장님이고요. 이처럼 일반인들은 차 한 대 살 때 부가세를 내는데, 차 취급하는 사장님들은 차를 살 때는 매입세액 공제를 받아 놓고(여기가 포인트입니다), 그걸 자신이 쓰면서는 매출세액을 납부 안 한다면, 이들에게 부당하게 세제 혜택을 주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령 사장님 자신이 쓰는 차라고 해도 이런 건 자신에게 팔았다고 치고 부각가치세를 매긴다는 뜻입니다.

이것 비슷한 게, 인테리어 업자가 자신이 부업으로 경영하는 커피숍에 자기 인테리어를 설치했다 해도 이 역시 매입세액 공제를 받은 부분이 있다면 자기 판매로 간주해서 부가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 흥미로운 건, 예컨대 특별재난지역에 물품을 공급하면 이는 공급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어디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느냐 않느냐가 (이런 이유에서도) 매우 중요해지는 겁니다. 사업자들이 세금 부담을 안 느껴야 이런 지역에 "기부"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겠습니까.

또 하나 조심해야 하는 게, 사업자가 폐업을 할 때 취득 재화 역시 팔아치우지 못하고 보유하는 부분은, 이것 역시 자신에게 판매한 것으로 간주하는 겁니다. 폐업하는 분에게는 안된 소리지만 이런 상품의 경우 역시 사 들일 때엔 매입세액 공제를 받았겠으므로, 폐업한다고 세금 부담 없이 막 처분한다면 역시 부당한 결과라는 뜻에서입니다. 이런 "간주공급"은 재화뿐 아니라 용역(서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꼼꼼히 법제를 살피지 않고 널널하게 장사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내 주변에 아무도 그렇게 안 하던데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변명이 안 되는 게 "법률의 무지"입니다.

공급은 그럼 언제 이뤄지는가? 정확히는, "언제 공급이 이뤄져서 몇년도 분에 이 거래를 신고해야 하는가?"입니다. 대부분의 거래는 큰 문제가 안 되겠으나, 사업연도 경계선에 걸려 전년도냐 후년도냐가 액수 산정에 영향을 끼칠 때가 있긴 하겠으므로 이 경우를 대비해서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야 하죠.

몇 주 전 리뷰에서 "장기 공사"의 경우 매출이 언제 이뤄진 걸로 보느냐를 회계학에서 꽤 기교적으로 다룬다고 했는데 부가세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역시 완성도 진행에 따라 각 대가를 실제 받는 시점으로 나눠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부가세는 1970년대 말 많은 반발을 무릅쓰고 도입한 제도이며, 박 정권에 대한 저항이 특히 부산, 경남에서 거세게 일었던 게 자영업자들이 일으킨 조세 저항(정치적인 동기보다)이 그 실체라는 분석이 아주 유력합니다(고 이만섭 국회의장 같은 이가 이런 언급을 했죠). 이전에는 그냥 막 팔던 걸 거래 건건이 영수증을 작성해서 상대방에게 교부하고 자신도 자료를 보관해서 세무 당국에 하나하나 신고해야 한다면 그 번거로움이 얼마나 크겠으며 그 과정에서 정확한 수입원이 다 드러나니(그래서 세무공무원과 이른바 "쇼부를 치고" 어쩌구 하며), 과연 한국 아니라 어디서도 쉽사리 도입할 엄두가 안 나는 제도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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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알아야 부가 보인다 - 2018 개정 세법 반영 최신판, 상속, 증여, 양도, 사업.근로소득세의 모든 것
이동기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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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영위하다 보면 이익이 나기는커녕 손해를 보기도 일쑤인데, 이 경우 세금 납부 과정에서도 또 불이익을 받는다면 기업 입장에서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번 돈은 꼬박꼬박 신고도 하고, 일일이 부과되는 금원을 납부해야 할 뿐 아니라, 신고 의무 해태에조차 징벌이 주어지는 게 현실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특히 중소기업 영위 업종의 경우, 당해 사업연도에 부과된 세액을 한도로 하여, 그전에 발생한 결손금도 소급해서 환급받을 수 있도록 특례를 마련합니다.

이 경우, 결정세액을 한도로 삼게 한 건, 만약 이런 한도를 정하지 않는다면 국세청에 세금을 내는 게 아니라 아예 돈을 타 가는 사업자, 기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환급이란 이미 낸 돈을 돌려받는 게 그 본질인데, 이 한도를 넘어 어떤 시혜를 받는 기업이 생긴다면 그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죠. 또, 과세표준화 확정 신고 기한을 넘겼다면 이에 대해서는 환급 조치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소득에는 배당소득, 이자소득, 사업소득, 기타소득, 연금소득, 근로소득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중 양도소득에서도 "결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을 사들여 적정 시점에 판매할 생각이었는데, 그새 시세가 하락했고 그 하락한 가격에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는 분명한 결손 발생입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2017년에 손해를 본 금액은, 다음해인 2018년에 소득을 신고할 때 이를 보전받을 수 있는가? 현행 법제는 이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즉, 전년도(혹은 그 이전)에 손해를 얼마를 보았든 간에, 다음 해에 이를 배려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올해 6월에 큰 손해를 보았고, 11월 경에 이익을 올렸다면, 이는 얼마든지 상계가 가능합니다.

아마도 양도소득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배려할 필요가 적다고 보아 입법상 이런 태도를 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이런 주장을 보십시오. http://www.taxtimes.co.kr/hous01.htm?r_id=112167 김면규 세무사가 쓴 이 논설을 읽어 보면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 이와 같이 매매와 양도는 본질을 같이함에도 불구하고 소득세법은 사업소득과 양도소득으로 구분하여 과세함에 따라 매매는 사업소득이므로 결손금의 이월공제가 허용되고 양도는 양도소득이므로 결손금의 이월공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세금 부담에 차이를 가져오는 모순을 낳고 있다.

또 하나의 모순은 두개의 양도 부동산 중 하나는 소득이 발생하고 하나는 손실이 생긴 경우에 이를 같은 과세기간에 모두 양도하면 소득과 손실을 상계하여 과세하고 과세기간을 달리하여 각 각 양도하면 손실분을 상계하지 않고 소득분은 전액 과세됨으로써 세금부담에 형평성을 잃게 된다.....

(출처: 세정신문 2008. 2. 25) 일부 띄어쓰기 수정은 본 서평자가 함

현행 소득세법상 결손금 이월은 오로지 사업소득에 한해서만 허용됩니다. 이분의 주장은, 매매는 사업소득이라 간주하여 결손금 이월을 인정하고, 양도는 매매와 본질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지적하는 겁니다.

세법도 이에 대한 반론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즉 이 논설 중에도 언급되었듯이, 매매는 사업성이 없는 것이고, 양도는 그것만을 전문으로 하여 이뤄지는 것이므로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거죠.

이 논설에서는 후반부에 "....이러한 태도는 법인세법이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일괄 취급하는 것과도 모순된다. 즉 귀속 주체가 법인이냐 개인이냐에 따라 효과를 달리하는 건... "이라며 역시 현행법규의 모순을 다른 각도에서 또 지적합니다. 타당하긴 하나, 이는 지난주차 서평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이 "순자산증가설/소득원천설"로 규율 태도를 달리하는 점에서도 파악되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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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2 - 이게 사랑일까
안나 토드 지음, 강효준 옮김 / 콤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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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 CF 중 모 어플을 소개하면서, "OO야, 엄마는 티라노싸우루스 안 좋아해"라고 하는 어느 주부의 대사가 나오는 게 있던데요. 재밌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 브금으로 깔리는 쇼팽의 녹턴 때문인지 왠지 슬프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여성이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도 한편으론 영원히 남자들에게 주목 받고 싶은 저런 욕구를 숙명처럼 안고 가는 존재구나 하는, 왠지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져서 말입니다. 


어떤 로맨스를 읽어도(혹은 봐도), 당사자의 사랑이 성사되건 아니건 무관하게, 모든 사랑은 그 나름의 슬픔을 안고 있게 마련입니다. 1권에서도 흥미롭게 읽어 나갔지만, 여주 테사 역시 이 못된 녀셕 하딘과 잘 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그녀의 정체성(정신적인 것이건, 그 외 다른 무엇이든) 중 어떤 부분을 포기해야 합니다. "You complete me." 운명의 "The One"이 나타나면 그(녀)는 나의 부족한 모든 부분을 커버해 주고, 근원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평범하고 지루했던 모든 시간을 환희로 물들여 주긴 합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이제까지 나였던 어떤 부분"은 영원히 나와 작별하게도 됩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 테사는 여태 숨막힐 듯한 훈육 분위기와 결별하고, 그나이 또래 여성이 가장 큰 환희로 맞을 만한 여러 순간을 누리게 되겠지만(또 뭐 실제로 우리 독자들이 봐서 알 듯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여태 안온히 누려 왔던 보호의 요람, 적잖이 수월성을 느껴 온 학업의 성취감, 모범생으로서 장래가 보장된 트랙으로부터의 일탈 등을 두루 겪어야 합니다. 또 이 점이, 하딘과 결정적인 선을 끝내 못 넘게 하는 주저함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이 말은 꼭 난잡한 연애 경험을 거쳐 온 이 입에서만 나올 법한 게 아니라, 여태 품어온 그 설렘, 기대 등이 이제는 (아무리 만족스러운 결혼이라 해도) 어떤 환상의 거품이 걷히고 현실이 제공하는 행복으로만 그 범위가 한정되는 관문이라서 타당성을 갖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 환상이 환상에 아직 머물러 있을 때는 효용이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현실은 그와는 달라, 아무리 큰 행복을 누리는 이들이라 해도 엄연한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이래서 로맨스는, 손에 안 닿는 먼 거리에 머물러 있을 때는 현실로부터 멀기에 슬프고, 현실이 되면 그건 그것대로 슬픈 것입니다. 


"이게 사랑일까." 분명히 이게 사랑 맞는데도, 자신의 삶에 여태 큰 기대를 걸어 왔기에, 또 그럴 만한 자격도 충분한 테사이기에 이런 묘한 회의와 두려움, 주저함은 여전히 그녀를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에게 맞지 않을 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테사라면 얼마든지 이런 신중한 스탠스를 취할 만하며, 하딘 같은, 자신과는 극과 극으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애 앞에서야, 아무리 그 매력이 치명적이라 해도 더더욱 그럴 만합니다. 어쩌면 우리 독자들도 이런 진행을 (1권 첫 페이지를 넘길 때부터) 다 예측하고 있었겠으나, 그래도 끝까지 일이 어떻게 번지나 싶어 계속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 이것이 이 작품의 진짜 저력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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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 주성하 기자가 전하는 진짜 북한 이야기
주성하 지음 / 북돋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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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두 지도자가 죽은 후 새로운 젊은 "수령"을 맞이하여 최근 많은 환골탈태를 보이는 양상입니다. 전향적으로 동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한 결정도 그렇고, 이 결정이 연쇄 파장을 일으켜 사상 초유로 거행된 미- 북 정상 회담까지 이어진 경위를 봐도 그렇습니다. 아직 저들의 정확한 저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확실한 건 우리 쪽의 자세,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통일을 대비하는 자세가 종전과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점 정도이겠습니다.

상대를 적대하든 이해하든, 절멸의 타깃으로 삼든 뜨거운 포옹을 시도하든 간에, 가장 최우선에 놓여야 할 과제는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동아일보 등에 여러 칼럼, 기사를 기고하며 이제는 한국에서도 꽤 지명도가 높은 주성하 기자의 책이며, 북한 사회의 심도 있는 분석이나 고위층에 대한 해박한 지식 면에서 그를 능가할 만한 전문가가 극히 드문 만큼, 여태 단편적인 인식에 그친 우리 독자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으로 기대했으며, 실제로 책을 다 읽고 많은 점을 배우게도 되었네요.

몇 달 전 어느 일본 저널리스트가 쓴 책을 읽었는데 그 중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거듭되는 국제 봉쇄와 제재 속에서도 경제의 자생력은 생각보다 강했으며...." 예전 김정일이 살아있었을 당시, 느닷 내려진 "화폐개혁" 조치에 대해 특히 평양 주민들이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저런 XX 같은 X" 같은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는 일부 보도를 접하고 의외의 느낌을 받은 적 있습니다. 유일체제이며 소위 "최고 존엄"에 대한 불경스러운 태도가 전혀 용납되지 않는 그들 사회에서 참으로 기대될 법하지 않은 반응이었기 때문이죠. 물론 이는 비교적 세련된 평양이나 그들 수도권 일대의 정서이며, 변경이나 농촌에서는 여전히 극히 낙후한, 미개한 복종 일변도의 정서이겠음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여튼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당국이 조장하건 억압하건 간에, 일부에서는 분명 자생적 자본주의 활동이 무시 못할 강도, 범위로 번져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PC방도 성행하며 남한 컨텐츠를 몰래 접하고 자극 받은 그 나름의 트렌드가 분명 북한 주민들에게도 "경제하고자 하는 의지"를 일깨운 건 사실인 듯합니다. 1%의 부자, 0.01%의 금수저... 사회주의적 평등을 표방하는 체제에서 일어나고 자리잡은 현상치고는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모습들입니다만, 여튼 이런 움직임이 "당장 북한이 붕괴하는 결과만은 막는" 버팀목이자 기반임은 또 분명합니다. 동구권이 무너질 때는 소련의 탱크고도 그 추세를 막을 수 없었는데, 지금 북한은 중국의 원조조차도 넉넉히 못 받는 형편이면서도 요리조리 제재의 구멍을 파고들며 용케도 잘 버티는 형국 아니겠습니까.

한국에서는 특히 교사 등이 일등 신붓감으로 꼽히는데 북에서는 이런 교육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가장 열악한 처우를 받는 편이라고 하니 다시금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네요(하긴 정상인 게 뭐가 있겠나 싶지만서도). 그 와중에서도 유치원 교사, 혹은 김일성대 같은 명문 시설의 "교원"들은 선망의 대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찌감치 "정규 수입"의 범주가 의미없어지고, 가외로 올리는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풍조가 자리잡은 덕입니다. 특히 김일성대 교수의 경우는 당국에서도 특별 배려를 한다는군요.

여기 남쪽에서도 공무원들의 수뢰 때문에 사회가 골병이 드는데 공직자들의 부패상은 저쪽이라고 다를 바가 없나 봅니다. 생산성도 떨어지고 그나마 사회의 안정, 평등 말고는 기댈 데가 없는 체제에서 공직자가 부정까지 저지르면 무슨 답이 있겠나 싶은데, 여튼 민간에서 뭘 노리고 공무원에게 뒷돈을 찔러 주는 판이라면 역으로 시빌 섹터에 활력이(그게 무엇이든) 돌고는 있다는 방증도 됩니다. 애써서 좋게 해석해 주자면 말입니다. 아니 다 굶어 죽어가고 거지들만 들끓는다면 공무원한테 뭘 기대하거나 호의를 바랄 여지라도 어디 있을까, 뇌물을 줄 돈은 어디서 나오기나 할까 싶은 게 자연스러운 추론이죠.

예전에 소설가 황석영이 비밀리에 북을 방문하고 귀환하여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기행문, 수기를 계간 창비에 연재한 적 있습니다. 이 덕분에 백낙청, 리영희 양 교수가 당국에 연행되어 큰 고초를 치른 적도 있었죠. 그 글을 읽고서는 왠지 남한 사람시각으로 재해석된 내용이 아니라, 북측의 설명, 입장에 너무 경도된 것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확고한 자신만의 관점을 지닌 유명 작가라서 더 기대가 컸는지도 모르지만). 그게 소위 내재적 접근법에 영향을 받은 소치일 수도 있겠으나, 여태 함께 호흡해 온 남쪽 독자를 더 배려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접을 수 없었죠.

그에 반해, 이 책은 북한의 엘리트가 쓴 책인데도, 적잖이 남한화한 지성인의 시야로 북을 재해석한 점이 돋보입니다. 책은 독자와의 소통인데 어떤 기존의 프로파간다, 교조만을 "충실히" 전달하는 건 문제가 있을 뿐더러, 우리가 호흡하고 그 혜택을 받는 자유체제의 취지와도 잘 맞지 않습니다. 북을 이해하는 데 생생한 팩트의 제시로 큰 도움을 준 이 책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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