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2가지 충격 실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이지윤 옮김 / 갤리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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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법원은 살인에 대해 "한 명 인간의 목숨은 전 우주보다 무겁고 소중한 것"이라 판시하며 이러한 목숨을 앗는 행위는 어떤 명분, 핑계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낸 적 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어느 나라의 법원, 법체계도 살인에 대해 대개는 극형을 선고하지만, 다만 사형 자체가 야만적이라는 이유에서 살인범의 목숨을 뺏는 처사만은 자제하는 분위기입니다. 살인자에게 사형으로 응답한다면 원시적인 동해보복(同害報復)에 다름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라는 무거운 죄를 지은 이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건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허나, 그런 판결을 내리기까지 판사도 얼마나 많은 연구와 고뇌를 거쳤을까요? 이 책은 얼핏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지극히 합리적이었던 "무죄 선고"에 대해 다룹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X" 독일은 어지간히 선진국이고 시민 의식이 깨어 있는 나라입니다만 아직도 전근대적인 "쓸모" 관념에 여성을 옭아매는 낡은 관행, 심지어 범죄적 인식이 이처럼 드러나기도 하나 봅니다. 영미권에서는 "배터드 우먼 신드롬"이라 해서 특히 남편에게 구타 당하는 여인이 순간적으로 과잉방어를 했다거나 할 경우에 폭 넓게 정상 참작을 해 주는 법리가 있습니다. 범죄자로 몰려 재판정에 선 여인, 그리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된 카타리나. "배심원" 카타리나는 어느새 자격을 의심 받는 처지가 되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가 피고인인 여성에게 완전한 동질감, 공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죄"밖에 없고, 이 때문에 그녀는 자격 박탈을 넘어 어느새 "죄인(과연 죄인인지도 의문이지만)"과 동일시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과연 이 배심원의 "자격"을 논할 자격이 있습니까?


"그리 심각한 건 아닙니다." 이 책에는 유독, 엄연한 범죄이고 위법이지만 "심각한 건 아니라"고 둘러대는 정황이 자주 나옵니다. "그 정도는 참고 살아야지" 따지고 보면 이런 정황은 대개 다수에 의한 폭력적 동화 노력에 가깝습니다. 독일 헌법은 유명한 학자 R 스멘트에 의하면 "동화적 통합"을 지향한다고 하는데, 설득과 동의가 없는 통합은 그저 나치 식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개인의 자유 의사를 침해하는 그 모든 압박은 따지고 보면 심각한 겁니다. 심각하지 않은 게 어디 있습니까? 슐레징거 변호사가 기발한 착안을 하여 의뢰인의 무죄를 증명한 사건에서, 알고 보면 "심각한 건데 심각하지 않게들 본" 그 무엇으로부터 결국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네요." 많은 이들이 이런 고민을 할 때에는 대개 현실적 이익 몇 가지 옵션을 놓고 고민하는 겁니다. 이롭긴 한데 썩 끌리지 않는 선택도 있죠. 이때 영화에서는 보통 그런 충고가 나옵니다. "(이로운 일 말고) 올바른 일을 하시오." 설령 나중에 결과가 (나한테 큰 이익을 못 주었기 때문에) 후회되더라도, 결국 난 올바른 일을 했다며 뿌듯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나는 정당방위라고 확신했는데, 알고 보니 착각인 경우를 오상방위라고 하며 요즘 모 법대 교수님의 과거 일화 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더 유명해진 개념입니다. 여기서 "착각한 정당방위" 개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판사의 선고 중에 나옵니다. "당신은 복수와 정의의 실현을 혼동했던 겁니다. 당신은 복수가 곧 정의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비열한 동기의 발현일 뿐입니다." 그러나 요런 법리를 악용하여, "나는 너에게 가해를 했지만 너는 복수를 해서는 안 돼." 같은, 아주 야비하고 유아스러운 합리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응보가 또 준비되어 있죠. 물론 법질서 안에서 행해져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나쁜 짓이라도 "같은 행위로 두 번 처벌 받아서는 안 된다."는 법리가 있습니다. 이걸 우리나 독일 법제상으로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라 하며, 영미에서는 좀 다른 범위를 잡아 "이중 위험의 금지"라고 일컫습니다. 예전에 애슐리 저드, 토미 리 존스 주연의 영화 <더블 크라임>에서 이 주제를 다뤘죠. 슈트렐리츠는 "그저 잡범"으로 석방됩니다만 과연 변호사 말 대로 운이 좋았을 뿐일까요? 독자인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일반의 상식으로 틀림 없이 유죄인 피의자, 피고인 들의 예가 12가지 나옵니다. "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면 안 되는 거죠. 무죄가 나온 이유는, 1) 살인자가 알고 보니 아니었거나, 2) 도대체 이런 경우도 "살인"으로 봐야 하는가 하는 진지한 의문 때문입니다. 살인자로 취급 받아서 안 될 사람이 살인자로 몰려 극형을 받을 뻔한 사건들에서 가장 큰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정황만 보고 대충 범인으로 몬 뒤 편한 희생자(easy victim)로 몰아간 경찰(실제로 독일 경찰은 선진국인데도 무책임하기로 악명 높습니다. 가 본 분들은 알죠), 그리고 대중 심리에 휩싸여 마녀 사냥에 동참한 우리들 일반인의 잘못입니다. 12가지 이야기를 읽어 보면, 정말로 그런 격언이 떠오릅니다. "장난 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는 억울하게 죽을 수 있다."


"왜 살인자에게 무죄가 선고되죠?"

"그가 살인자라는 걸 당신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되나요? 함부로 타인을 단죄하는 당신이 바로 범죄자에 가깝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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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 - KOTRA 글로벌 비즈니스 전망
KOTRA 지음 / 알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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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어떤 트렌드가 한국과 세계를 지배할까.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므로 우리 국경 안의 유행과 바깥 세계의 그것이 크게 다르리라는 생각은 별반 들지 않습니다. 책에 나온 129개 도시의 트렌드 역시 기본 뼈대는 뉴스, 경제서 등에서 익히 보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수 년 전 유망하리라고 전망했으나 이제는 탈락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원래의 모습을 못 찾을 만큼 크게 발전한 것도 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특정 트렌드를 고도로 발전시킨 도시에서 그 생생한 모습이 어떤지는 우리 모두가 흥미롭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전동 킥보드는 현재 서울의 강남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운행자들은 센스 있게 이리저리 자신의 진로를 잡긴 하지만 보행자들과 충돌할 염려도 있고 그렇다고 차로를 달릴 수도 없습니다. 도로 한편에 세워 놓은 킥보드를 보면 저거 누가 훔쳐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에서는 미국 DC에서 전동 킥보드 플랫폼으로 큰 성공을 거둔 "버드"에 대해 다룹니다. 아무래도 이런 건 얼마나 충전을 효율적으로 잘 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는데, 버드는 플랫폼으로서 이 문제를 비롯 여러 이용자들의 애로사항을 잘 해결해서 오늘에 이른 듯합니다. 다만 교통 법규 문제, 헬멧 착용 이슈 등 안전 문제는 여전히 워싱턴에서도, 또 다른 도시나 주에서도 해결이 안 된 듯합니다. 하긴 이런 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죠. 우리는 이 파트에서 "플랫폼"이 해결하거나 갖춰야할 부분이 뭔지, 교통 수단 영역 외에까지 응용하고 배울 교훈이 많겠습니다. 필자는 특히 미세먼지라는 골칫거리와 이 킥보드의 발전을 연계하여 낙관적 전망을 하기도 합니다.

모네는 인상파 화가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도요타와 소프트방크가 합작한 자율주행 서비스 법인의 간판이기도 합니다(스펠은 같네요). 우리가 아는 자율주행은 핸들에서 손 놓고 잠을 자도 차가 알아서 간다는 수준이지만, 이 모네가 시도하는 비전은 차원이 다르네요. 의료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기도 하고, 저녁 장보기부터 문 앞 배달 택배까지 원스톱으로 하나의 플랫폼에서 다 해결한다는 겁니다. 예전부터 미국 아마존이 택배에 드론을 도입해서 물류 혁명을 일으킨다고 했지만 한국처럼 거리가 불규칙으로 발달했고 다층 주택이 많은 구조에서는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했는데, 우리와 상황이 닮은 일본에서의 이런 발전은 사정이 또 다르죠. 우리도 새벽 배송 등 근래 물류 시장이 크게 변했다고는 하나, 만약 모네의 저런 실험이 성공한다면 기존의 업체, 운용 구조 등은 모조리 사멸하지 않겠습니까? 한국 업체들도 빨리, 이런 시류를 연구하고 도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전자소송이 시작되는 추세이지만 아직 서민들의 생활에 체감하는 바는 적습니다(법 없이 사는 게 더 우선이겠고요). 그런데 중국 상해에서는 5G의 발전과 더불어 "스마트 법원"이 떠오르는 대세라고 합니다.. 국토가 넓다 보니 인민들이 먼 데서 일일이 출두한다거나 정보가 제때 교류되지 않아 받는 불이익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판례가 빨리 공유되면 누구는 똑같은 상황에서 남들과 전혀 다른 재판을 받는 부당함은 사라지겠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중요한 건 인민의 복리 증진입니다. 책에서는 빠른 결과 전달, 소통의 가속 등으로 "심리적 압박감"이 줄었다는 말을 하는데, 그를 넘어서서 정의로운 재판이 이뤄지는 게 더 본질에 가깝습니다.

두바이가 얼마나 교통이 복잡한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현지 교통 당국자들은 새로운 수단, 세계 어디에도 없던 무엇을 만들어내어야 할 만큼 급했나 봅니다. "볼로콥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하늘을 가로질러 승객과 물자를 이동시키는 헬리콥터형 이동 수단인데, 짐작할 수 있듯 운송비 이슈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죠. 이들은 여기에 우버식 "공유 시스템"을 도입해서 난관을 해결해 나간다고 합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창의적 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두바이는 이 외에도 "스마트 시티"의 총체적 구현을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눈길을 끌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건 책 맨 처음에 나오는, 두바이와는 한참 떨어진 베트남 하노이 시의 교통 수단입니다. 이 역시 헬리콥터를 주로 이용하는데 우버식 공유 플랫폼과 결합한 것도 비슷합니다. 다만 관광객, 신혼 부부 등의 니즈에 주로 초점을 맞춘 게 다르다면 다릅니다. 이 파트의 필자는 한국에서도 이미 2020년 에어택시 도입을 서울시가 계획했으나 관련 법규, 규제 등의 정비가 길을 막았다고 하는데, 역시 규제와 혁신은 운명의 긴장 관계에 있는 게 맞습니다.

세르비아라고 하면 무슨 인종청소, 독재, 전쟁 따위로 바람 잘 날 없는 말썽꾸러기 나라 같지만 그런 면만 있는 건 아닙니다. 개발도상국인데도 경제 침체, 사회 불안 때문에 특별히 출산율이 낮은 이 나라는 그래서 "맘 친화, 맘 우대" 정책을 편다고 합니다. 특히 주목되는 건 기업이 앞장서서 임산부 할인을 해 준다거나, 택시를 무료로 태워 준다거나, 육아 휴직 급여를 후하게 책정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공적 섹터가 이런 정책을 펴는 건 우리도 서울시, 경기도에서 앞장서긴 합니다만 민간 기업이 이러기란 쉽지 않죠.


"쌀의 무한 변신". 태국에서는 쌀을 소재로 미라클이 이뤄진다는데 여기서 앞글자 "미"는 쌀 미(米)자라고 합니다(단, 태국은 한자를 그리 널리 쓰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태국도 사회가 급히 서구화되다 보니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그래서 농민들이 갈수록 어려움을 겪습니다. 여기서 착안한 게 "쌀을 먹는 거 말고 다른 용도로 쓸 수 없을까?"인데, 책에 나온 건 "위생 거즈"와 "화장품" 원료로 돌린 혁신입니다. 과거 우리는 쌀의 과다 소비를 막기 위해 막걸리 제조를 제한하는 등 별별 규제가 다 있었는데 아직도 쌀=식량이라는 존중해야 할 금도 같은 게 있어서 전용이 더디지 않나 싶습니다.

간병인 때문에 요즘 각종 보험도 나오고 많은 자녀들이 고민하는 영역입니다. 사람만큼은 못하겠으나 미국 시카고에서는 "현재 바이탈 수치가 위험합니다." "약 먹어야 할 시간입니다"를 구체적인 수치에 의해 판단하고 맞춤형으로 알려 주는 "모바일 간병인"이 인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업체 간, 또 시설 간의 협업이 필수이며 미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원격 의료"에 대한 거부감, 우려가 높은 수준이라고 하네요. 한국에만 있다시피한 교통환승체제도 업체들이 통 큰 결단을 내렸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이해 관계자들이 두루 만족할 수 있는 어떤 정책적인 솔류션이 나와야 할 듯합니다, 그러나 타다 등 현재 한국에서 일고 있는 택시 분쟁만 봐도 이런 문제의 해결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직장인들이 일 할 맛을 나게 해야 업무의 질이 높아집니다. 퍼크박스라는 영국의 회사는 다른 회사들에게 용역을 맡아서 "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우리 회사에만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 100% 활용하게 돕는 기능"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우리 회사도 괜찮았네"라며 사기가 오르는 통에 "불필요한 이직"은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기업을 대신해서 더 줄어든 비용으로 복지 운영을 해 주는 이런 퍼크박스는 특히 밀레니얼 세대가 주력으로 자리한 작금의 세태에서 기업의 니즈 핵심을 짚은 히트작이라고 하는군요.

이 책을 보면 세상을 바꿔 놓을 획기적 혁신도 많이 보이지만, 의외로 사람의 마음을 따스이 어루만지는 감성 접근을 통해, 아무것도 아닌 듯해도 결국 시장의 판도를 바꾼 좋은 사례가 많이 보입니다. 20세기에 다들 2000년이 오면 우주 여행이 가능하리라고 했지만 21세기의 벌써 20%가 지난 지금 아직 그 근처에도 못 간 게 현실입니다. 거창한 구호보다는 사람의 만족, 행복이 중요하다는 점 다시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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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 인도네시아 주식투자 실전 가이드북 - 선진국보다 신흥국에 ‘마지막 기회’가 있다!
김재욱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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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때 사서 비쌀 때 판다." 주식뿐 아니라 모든 투자에 있어서 일종의 철칙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개미들이 판판이 증시에서 손해를 보는 건, 대체 언제 치고들어가서 언제 나와야 하는지 그 타이밍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서입니다. 며칠 전에도 중국 시 주석의 몇 마디 말에 비트코인이 40%나 올랐다고 하나, 이 소식을 듣고 매수에 나서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증시에는 애초에 정보의 비대칭성 이슈가 크게 작용하니 어차피 소액 투자자가 돈 벌기는 글렀다고 탄식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많이 따지는 못해도 잘 잃지 않는" 투자를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소정의 성과를 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남들이 거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말에 혹해 주식시장을 기웃거린다면, 그 사람은 이미 노름꾼의 마인드로 세상을 대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쌀 때 사서 비싸게 팔 수만 있다면 누구나 건전하고도 성공적인 재테크가 가능한데, 선진국 혹은 이미 초창기 개발 단계가 훨씬 지난 나라의 주식 시장에서는 그 판단이 매우 어렵습니다. 반대로, 현재는 그닥 부유하다고 할 수 없으나 장래가 유망한 신흥국의, 아직 파릇파릇 자라나는 증시를 들여다 보면 의외로 훌륭한 종목, 아이템이 많을 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그런 유망한 신흥국으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꼽습니다. 저자가 대뜸 주목하는 건 "많은 인구수와 젊은 인구"입니다. 어떤 나라가 아무리 잠재력이 크고 우수한 여건을 갖추었어도 국토와 인구가 지나치게 협소하면 어떤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과거 홍콩이나 싱가포르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주목 받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널리, 두루, 큰 폭의 이익을 안겨다 주었다고는 보기 힘듭니다. 반면 넉넉한 인구를 갖춰 향후 대단한 도약이 이뤄지지 싶은 나라에서는 머지 않은 장래에 대박을 칠 우량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고, 이런 기업은 (홍콩, 싱가포르 등과 달리) 대중에 공개되어(증시에 상장되어) 많은 주주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나라들의 증시에서는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비교적 용이합니다. 반대로 작은 나라라면 우량 기업이 국외자에 잘 공개되질 않습니다. 저자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첫손에 꼽는 이유는 그런 유리한 접근성도 한몫하는 셈입니다.

저자는 특히 신흥국의 발전 단계를 분석하여 잘 정리한 도표를 책 p36에 제시합니다. 이런 phase는 논자에 따라 여러 입장이 있겠지만 저자는 본인이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체감한 지식을 반영하여 이런 프레임을 만드신 듯하며, 본인의 실전 투자 기법을 설명하는 데 이런 설명틀이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자는 5단계 중 제1단계인 성장기를 보내는 신흥국이, 우리 일반 투자자들이 좋은 주식을 찾기에 가장 편한 증시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좋은 주식은 늙은 과거의 대국인 영국에도, 패권의 전성기를 살짝 지나는 듯한 미국의 증시에도, 또한 낮은 생산성과 성장률로 내내 고전하는 한국에서도 찾을 수 있고 또 그렇기에 개미 투자가들이 시황판 앞을 못 벗어난 채 미련 어린 시선을 던지는 겁니다. 신흥국의 증시에서는 다만 유망한, 장차 폭발적 성장을 벌일 젊은 기업들을 찾아내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겠습니다.

많은 인구수가 중요한 이유는 내수 시장이 기본적으로 일정 규모를 유지해야 그를 바탕으로 기업이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많아도 일본처럼 노령자가 많은 국가는 활력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이 두 조건을 고루 만족하며, 저자가 두 나라에 주로 초점을 두어 독자에게 조언을 베푸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착각하는 게, 베트남이 인도네시아보다 경제 발전이 앞서 있으며 투자자가 여러 모색을 벌이기에도 편리하지 않냐는 겁니다. 저자는 단언하건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인도네시아가 십여 년 정도 베트남의 현황을 앞서 있다고 합니다. 사실 같은 유교 문화권이고 외모 면에서 덜 이질감이 느껴지며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많은 이들이 진출했다뿐, 베트남은 의외로 답답한 성장세를 보이는 나라이며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낯선 규제가 많습니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군부 독재에 오랜 동안 짓눌렸던 장애가 있을 뿐 내내 자본주의 체제였으므로 투자자들에게 친숙한 시스템 면에서는 오히려 주변국을 능가하는 게 많죠.

저자는 인도네시아 투자 전망을 다룬 전작 <... 인생에 한 번은 돈 걱정 없이 살아라>에서 자신의 경험과 실적을 통해 충분한 분석과 설명을 전개한 적 있습니다. 저도 그 책을 따로 구해 완독한 후에 그 내용까지를 반영한 서평을 쓸 작정이었으나 일 때문에 그 전작을 절반밖에 읽지 못한 채 아쉽게 이 글을 작성하는 중입니다. 여튼, 저자의 이런 경력이 특히 좋은 시사점을 주는 이유는, 베트남이 지금 가는 길이 과연 우리 외국 투자자들이 믿고 바라볼 가치가 있는지 어디서 확신의 근거를 찾아야 할지 모두가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견해는, "10년 전 인도네시아가 밟은 경로를, 이제 베트남이 밟아갈 것이다."는 전제 하에 펼쳐집니다. 물론 두 나라가 처한 여건이 꽤 다르긴 하나, 같은 아시아의 신흥국으로서 발전 패턴이 서로 상당히 닮은 바 있으리라는 추론도 충분히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증권회사 직원들의 역량, 수준을 무작정 폄하하는 것도 부당한 태도이긴 하나, 사실 아직은 미진한 바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책 저자분처럼 전직 증권맨이면서도 현재 자기 사업 하시는 분, 더군다나 현지에서 잔뼈가 굵은 분의 특별한 노하우와 통찰에 더욱 귀가 기울여지는 면이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제는 한국 증권회사도 수준이 많이 높아져.."라고 하시지만 결국 투자해서 수익을 보려는 이들은 자신이 발품을 팔아 정보를 얻어내고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는 게 우선입니다.

저자는 우리 같은 초보 투자자들이 우량 기업을 잘 골라내는 기준으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이회싸?"이며, 다른 하나는 "이회정싸?"입니다. 첫째 기준은 "이 회사 싸?"의 준말인데, PBR이나 PER을 주목하라는 뜻입니다. 투자의 철칙, 즉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라는 주문에 충실하려면, 실제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을 골라내는 기준이 필요하며, 그 기준이 바로 저 두 지표입니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두 나라의 현황 분석도 꽤 자세하지만, 바로 이런 투자의 정석, ABC를 쉽게 가르쳐 주는 장점도 지녔습니다.

다만 책에는 PBR을 "주당 장부 가치"라고 하셨는데, PBR이 1 이하인 주식을 사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자 보편 타당한 상식)이라면, "주당 장부 가치"가 1 이하인(=낮은) 주식을 사라는 건 어색하게 들립니다. 내용이야 백번 타당하면서도 어색하게 들리는 건 번역 용어 문제 때문입니다. "주가-순자산비율"이라고도 부르나 제 생각에는 학계에서 쓰는 말도 여전히 부자연스럽고, 차라리 저자처럼 실무에 능한 전문가가 아예 듣기에도 직관적으로 와 닿고 입에 착착 감기는 말을 하나 만들어 쓰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여튼 결론은 PBR이 1 이하인 주식들, 저평가된 주식을 주목하라는 겁니다.

이 책에서 저 개인적으로 가장 속시원했던 문장은 p100에 나옵니다. "어떻게 (워런 버핏의 말대로) 1달러짜리 주식을 40센트에 사는 게 가능할까? 그 이유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자본 시장이 꽤나 비효율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 혹은 재무관리 기본서에서는 이를 Arbitrage Pricing Theory로 설명하죠. 많은 이들은 결과가 다 나오는 걸 보고 레밍처럼 추격하나 그땐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반대로 지금이 기회라며 들어가자고 하면, "똑똑한 사람들이 설마 아직도 놔 뒀겠냐?"며 오히려 똑똑한 척 굴며 의심합니다. 이는, "돈 벌기 위해 주식한다"는 자기 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입니다. 바보짓을 똑똑하게 여기고, 똑똑한 선택을 비웃는 어리석은 자가 돈을 벌 리가 없습니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어떤 정적인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쓸모가 없으며..." 같은 충고를 하는데, 성공하는 투자는 가치 투자이며 가치 투자는 꾸준한 공부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신흥국의 현황을 조목조목 분석하면서도 투자의 기본을 일깨우는 책이 필요한 요즘, 일반 소액 투자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제공하는 독서였다는 생각에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헥사곤 홈페이지나 저자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도 자주 들러서 최신 정보도 찾아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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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유강은 옮김 / 부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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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9년 소위 "역사의 종언"을 논한 적 있습니다. 이보다 반 세기 전, 파시즘과 그 반대진영이 정면으로 맞붙은 2차 대전이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을 때, 세상은 민주주의와 자유가 충만하게 될 것임을 의심하는 이는 별로 없었습니다. 적어도 대중 선동과 증오의 부추김에 기반한 저열한 독재가 세상에 만연할 것이라고는 바라지도, 내다보지도 않았죠. 획일화한 세계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도 썩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대신 부패와 독선, 개인 숭배 따위는 싹 없어질 줄만 알았습니다.

21세기도 이미 1/5 가까이가 지난 지금, 오히려 지구 곳곳에는 시대착오적인, 퇴행적이고 기이한 행태를 보이는 독재자들이 독버섯처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차 대전이 막 끝났을 무렵에도 독재자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닙니다. 스페인의 프랑코는 히틀러와 처칠 사이에 어정쩡한 양다리를 걸치다가 비루하게 살아남았지만 집권 기간 내내 서유럽으로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스페인이 서유럽 세계에 다시 초대받은 건 민주주의의 이행 이후이며, 남의 나라 이야기할 것 없이 한국도 본격 민주화의 길을 걸은 후에야 세계 체제에 제 대접 받으면서 편입된 것입니다. 우리 국민 중 혹여 "독재, 과거로의 회귀"가 미래의 지표라고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 홍콩 등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고(오늘자 뉴스에서 광주 시민 단체는 홍콩 당국에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고 합니다. 자랑스러운 일이죠), 필리핀 등에서의 독재자 발호를 비웃는 경향은 일부가 아닌 대세에 가깝습니다.

"세상은 바야흐로 스트롱맨의 시대." 예전 미국의 시사주간 TIME이 박근혜 후보자(당시)를 가리켜 "스트롱맨의 딸"이라고 규정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 뜻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지만 대체로 영미 문화권에서 스트롱맨이 좋은 뉘앙스는 결코 아닙니다. 스트롱맨의 딸은 권력을 잃었지만, 대신 오히려 미국에서 비주류 아웃사이더가 이상한 방법으로 선동을 펼쳐 아무도 예상 못 하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필리핀에서도 "범죄자는 즉결 처형"이라는 다분히 논쟁적인 구호를 외치며 어두운 인상의 전직 시장이 최고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범죄자에게 너그러우라는 게 아니라, 누군 그걸 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를 유지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 작자는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비이성적인 애국주의에도 호소하는데, 힘의 논리를 숭배하는 선동가답게 정작 강대국인 중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련의 동향에 대해서는 끽소리도 못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터키에서는 국부(國父) 케말 파샤가 일찍부터 세속주의, 보편주의, 탈종교,유럽 지향을 국민 정신으로 정했건만 그와 하나하나 반대되는 노선을 새로 부르짖는 독재자가 나와 자작극 친위 쿠데타까지 벌이며 독재 노선을 굳혀 갑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북방의 러시아를 다스리는 독재자 푸틴은 유독 그에게 큰 친밀감을 표시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른바 "가짜 민주주의의 원흉"으로 러시아의 푸틴을 중점 분석합니다. 특히 "가짜 민주주의"가 문제되는 건, 본디 푸틴은 공산 독재가 무너진 후 적어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운 보리스 옐친을 계승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푸틴은 집권 초창기에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도 했고, 특유의 청아한(...) 목소리로 기자 회견도 가져 한국인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푸틴은 그의 전임자가 세계에 대고 약속한 민주주의에의 지향을 교묘히, 교활하게 저버렸습니다. 특히 "민주적 부정선거"의 술책에 능했던 그는, 마치 1950~60년대 한국의 자유당 정권이 보여 줬던 온갖 추태와 범죄를 병행해 가며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우리나라 자유당 정권도 선거구 부정 획책, 인구 수보다 많은 투표 수, 사사오입 같은 구차한 법률, 헌법 해석으로 국민의 빈축을 샀는데, 푸틴 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푸틴은 대통령 3선을 금지한 헌법상의 제약을 피해 가기 위해, 그의 꼭두각시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신 권좌에 앉히고 자신은 총리직에 올라 실권을 갖는 편법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근대 헌법학에서 말하는, 헌법의 침식(verfassungsdurchbrechen)에 해당합니다.

"민족의 대속자". 러시아인은 본디 추운 변방에 자리한 작은 부족에 불과했으나 몽골 족의 대대적인 침략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정체성도 생기고 강한 생존력도 키웠습니다. 부작용이라면 강한 실력자의 지휘 아래 맹종한다거나, 절차적 정의와 자치 정신, 공정한 민주주의 등에 대한 믿음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건데, 구 소련의 급격한 몰락과 이에 이어진 국격의 실추, 자존감 손상이 결국 기이한 독재자의 등장을 불렀다는 게 저자의 분석입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알렉산드르 두긴은 마치 히틀러에 봉사했던 나치의 괴벨스 같은 인물인데, 독특한, 그러나 위험한 유럽의 미래상을 제시하며 반미주의의 선봉에 섭니다. 미국 중심의 일방통행도 문제지만, 이런 사람이 표방하는 괴상한 독재 체제가 다스리는 러시아 중심의 세상이란 그보다 나빴으면 나빴지 나을 건 하나도 없지 싶습니다. 뭘 본받을 게 있어야 따르든지 말든지 하지 않겠습니까.

2014년에 마이단 혁명(유로마이단)이 세계에 충격을 주었을 때 우리는 큰 관심을 주었던가요? 비슷한 시기에 홍콩에서도 1차 우산 혁명이 있었습니다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듯합니다. 지금은 한국 시민들의 정서도 그와 같지 않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사연이 남 일이 아님을 알고 크게 동조하는 편입니다. 러시아의 리버럴 진영 중 세르게이 글라지예프 같은 이들도 푸틴을 반대하기는 하나, 책에 나오듯 스키조나치즘의 큰 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자가 괴물이 되어간다는 니체의 오랜 금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러시아의 독재는 그저 러시아에만 영향을 끼치고 머무는 게 아닙니다. 러시아 제국은 이백 년 전부터 폴란드, 우크라이나, 카프카즈 여러 나라, 발트 3국 등에 부당한 간섭을 하려 들었습니다.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주의, 평등, 주권 존중 등이 자리한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들 나라들은 과연 안전한가요? 전혀 아니라는 걸 2014년 이후의 우크라이나가 보여줬고, 조지아와 체첸은 지금도 고난의 길을 걸으며, 심지어 폴란드는 나토에 가입하여 러시아의 위협을 덜려 듭니다. 이 책은 그간 동유럽 여러 국가가 겪은 비극, 분명 배후에 러시아가 있지 싶으나 아직 증거가 없어 미처 건드리지 못하는 수수께끼의 사건을 여럿 다룹니다.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이런 러시아가 타겟으로 삼고 무너뜨리려 드는 미국 역시,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에 트럼프 같은 우스꽝스러운 독재자 흉내를 내는 지도자가 당선되어 여러 내홍을 겪습니다. 미국을 위협하는 여러 시도에 대해 미국은 애써 모른척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독재자의 체제를 흉내내어 그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위험한 수를 두려 합니다. 이 책은 그런 미국의 행태를 "러시아라는 거울 앞에 선 미국"이란 멋진 말로 요약합니다. 일찍이 정치학자 미헬스는 "모든 정치 체제는 과두정으로 수렴한다"고 한 바 있는데, 과연 앞으로의 우리 세상은 무엇을 바라보게 될까요? 러시아의 그 악명 높은 올리가르키가 혹여 하나의 롤 모델이 된다면 참 암울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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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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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동안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 지배해 온 땅에 느닷 침투해 온 이른바 "서학"이라는 것이 당대 지배층에게는 몹시도 불온해 보였을 터입니다. 공맹의 가르침은 대체로 "객관적 관념론"의 범주에 속하는 터라 완강한 종교적 독단으로 발전하는 편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민 평등이라든가 사후의 구원을 논하는 낯선 "종교"의 전파를 집권 세력은 몹시도 위협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급기야 윤지충 등의 양반이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는 데에까지 이르자 조정은 대대적인 박해를 벌이는데.... 소설은 이 충격적인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상하가 두루 화합한다든가, 치졸하고 명분 없는 권력 다툼이 만연하지 않은 치세라면 구태여 외래 종교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기층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이 겪는 모진 고통과 원한을 가득 담습니다. 우선, 어려서 오라비와 어미를 모두 잃은 소녀 도향은 타고난 재능을 살려 "소리의 그윽한 경지"를 다루게 됩니다. 남사당패에 섞여 여기저기를 떠돌던 악기를 가져다 주어 본분을 살리는 이는 다름 아닌 다산 정약용입니다. 나이는 한참 어린 그녀이지만 다산은 피안과 차안을 넘나드는 진리의 한 자락을 오히려 배웁니다. 도향은 치도곤을 맞고 죽은 어미,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나 느닷 먼 길을 떠난 오라비(중반부 넘어 그 이름이 "도몽"이라고 나옵니다)를 평생 마음에 간직하는데, 깊고 깊은 한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의원에서 일하다 불의에 누이동생을 잃은 김손 역시 끝모를 원한을 품게 된 건 마찬가지입니다. 누이동생은 천주학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모진 고문을 받고 한쪽 눈이 망가져 고름이 차는 고통을 겪은 끝에 죽음에 이르는데, 놀랍게도 시신까지 끔찍히 해부되어 이중의 징벌을 받습니다. 명색은 의학에의 공헌이라고 하나 장기의 일부가 요리 재료로 쓰이는 등 일벌백계의 공포 시책임이 분명하고, 사람을 살게 하는 세상이라야지 도의고 인륜이고를 모두 망가뜨리는 폭력이 만연한 아수라장이라서야 말이 되느냐는 분노와 한을 품고 그 역시 세상을 등지고 뜻있는 이들과 합세합니다. 이 무리는 소설의 배경으로부터 180년 전,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호남 대동계의 수장 정여립의 유지를 받든다는 게 소설의 설명입니다.

생체 해부의 모티브는 뜻밖의 지점에서 다른 맥락과 만나는데... 소설 제목이 <최후의 만찬>이며 이는 윤지충 등에게서 사헌부 감찰어사 최무영이 압수한 후 임금에게 바치는 걸로 나옵니다. 이 그림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며 임금은 전부터 신임하던 김홍도를 시켜 내력을 알아보게 합니다. 김홍도는 멀리 필리핀을 거쳐 이탈리아의 밀라노까지 향하는데, 압수된 그림 중에는 다 빈치가 그린 인체 비례도 등도 포함되었고 저 김손의 누이가 당한 끔찍한 참변이 여기서 교차점을 찾는 셈입니다. 김홍도는 놀랍게도 밀라노에서 귀환하여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고는 임금에게 고하는데 이 대목이 우리 독자들에게 다소 충격입니다.

이 소설은 초장에 대뜸 "조선은 자유의 나리"라는 선언에서 시작합니다. 조선 4대 임금 세종이 아낀 장영실은 본디 천출이었는데, 이를 시기한 양반들의 획책 때문에 결국 지근거리에서 못 버티고 느닷 자취를 감춘 걸로 사료에는 나옵니다. 만인을 자유롭게 할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본향을 등지게 된 그가 결국 향한 곳은 전혀 뜻밖의 지구 반대편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마치 미래를 예언하는 술사처럼 참언을 그림 속에 숨겨 미래에 전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최후의 만찬>은 배경의 소실점 또한 독특한 개성을 가졌는데, 이 소설은 그 소실점에 바로 조선의 OOO이 위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XXX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인가. 동시성입니다. 과거는 미래가 내다보는 한 지점이며, 그 미래 또한 과거는 얼마든지 응시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한 지점으로 통하는 지경이 바로 "대동의 세상"이며 "평등한 사회"라는 게 소설의 결론입니다. 이 대동 세상으로 이끄는 수단이 바로 "향기"이고 "소리"이며, 저 김손을 비롯한 다섯 외인은 바로 "변음"을 통해 불평등 세상의 원흉인 누구를 죽이려 듭니다.

무사 백동수, 간서치 이덕무, 박지원, 홍대용 등 충신을 두루 거느린 임금은 바로 정조 이산인데, 공교롭지만 이분 역시 그 아비가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죽은 꼴을 본 "한"을 품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갈등합니다. "모두가 동등한 소리를 내는 세상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베풀어 주는 것은 또 어떠냐?" 개인적으로 예전에 <금강>이란 소설을 읽은 적 있는데, 거기서는 미륵 신앙과 무속이 결합하여 부조리한 세상의 전복을 꿈꾸는 이들이 나옵니다. 합리적인 사고와 논리, 보편의 과학이 세상의 변혁을 이끄는 날이 어서 와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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