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 -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보 로토의 ‘다르게 보기’의 과학
보 로토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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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보는 노력은 그 자체로 위함하고, 적어도 부담이 됩니다. 회사에서도 남들이 예스를 외칠 때 홀로 노를 말하는 이는 경계, 질시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죠. 하지만 요즘은 일상에서조차 혁신을 강조하는 세상입니다. 루틴에 젖으면 언제 도태될지 모르며, 그걸 떠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이 작은 행복이라도 찾으려면 다르게 보기를 습관으로 길들일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신경과학자 보 로토 교수의 이 책은, 대체 우리의 생각과 느낌이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어느 정도까지나 우리 자신의 것인지, 혹은 그저 길들여지는 과정일 뿐인지 우리 독자들에게 근본적인 반성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세상은 끊임 없이 변화하며, 뇌는 어떤 식으로건 이를 해석하고 정보를 정리해야만 합니다. 쉼 없이 어떤 판단을 행하는 우리이지만 그 기초가 되는 정보는 "눈으로 본다"고 여기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누가 우리 생각과 다른 판단을 말하면 "그거 내 눈으로 분명히 본 거거든?"이라며 길길이 뛰기도 합니다. 본인은 본인 눈으로 본 명백한 "팩트"를 부정당하는 게 참을 수 없습니다. 사실은 야얄팍한 자존에 상처를 입었을 뿐인데도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양 "정의(착각입니다)"의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리고, 이런 착각에 빠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어지러워집니다. 이성과 논리에 의해 세상사가 결정되어야 하는데 그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길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말입니다.

"러브 스토리"는 그저 에릭 시걸의 픽션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회색질의 대뇌 피질(명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내세우던 모토이기도 하죠), 그리고 시상은 우리가 사물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환상적인 "러브 스토리"라 성격 규정합니다(p113).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하여 세상 자체가 끊임 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성격임을 강조하며, 동시에 피질과 시상(세포) 역시 서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불태우며 그 의존, 상호 관계를 진화시켰음을 주장합니다.

과연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며, 이 세상이 날이면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가꿔지는 원동력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물론 과학으로 증명될 만한 명제는 아니지만, 과학자의 날카로운 통찰이 아니겠습니까.

편향과 가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주관적 뿌리(p240)는 어찌 보면 두려움에 기인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로로든 이미 뇌 속에 익숙하게 자리한 것을 근거도 없이 진리로 규정하고, 그 반대의 것을 그르다며 폭주를 일삼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객관은 그런 우리 마음 속의 불건전한 요동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모습을 유지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미약한 신경 더미들이 채 따라잡기도 전에 그 모습을 바꿉니다. 만약 우리가 이 과정에서 긴장을 풀고 종래의 확증 편향 속에 나태하게 빠져든다면 아마 판단의 착오는 임계를 넘어 위험 수위에 치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건 아마도 파멸의 결과뿐이겠습니다.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필요 없는 정보를 걸러 내며 생존을 위해 유익한 예측을 해야 하는(p337) 과제는 사실 진화의 기본 방향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제를 수행하려면 "의식적 사고"가 필요하며(p167) 그런 사고는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가능합니다. 

이 책은 참으로 멋진 표현들을 담습니다. 진화는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특히 사람처럼 뇌 부분을 별나게 진화시킨 종이 한사코 기피하려 든 건 바로 "불확실성"입니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야말로 모든 두려움의 근원이며, 우리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처럼이나 탁월한 지성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의식적 사고가 어떻게 가능한지. 답은 "그 불확실성 속으로 결코 두려움 없이 밀고 들어가는" 선택과 결단에 있습니다. 마치 우리 전통 속담처럼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 법"이니 말입니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자유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까요? 뉴턴 같은 과학자도 결정된 미래를 그저 수학적으로 계산해 낼 뿐이라며 암울한 결론을 암시한 바 있습니다. 반대로, 미래가 자유의지에 따라 설령 바꿀 수 있더라도 우리의 의지가 기여하는 바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저자는 그저 의지만으로 미래가 바뀌는 건 아니라며 정직한 확률을 말해 줍니다. 허나 그 과정에서 필사적으로 진실과 객관을 발견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있고, 그것은 아름답다고도 일러 줍니다. 이 책은 과학책이지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유력한 가설 하나도 일러 줍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이 거친 세상에서 하루를 버티며 생명의 불꽃을 틔우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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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도 -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네 번째 이야기 페러그린 시리즈 4
랜섬 릭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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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불교에서는 생로병사의 인과 연으로 오묘한 수수께끼를 설명하려 들지만 정답이 무엇인지는 우리들 중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순간순간 다가오는 힘든 현실의 숙제를 해결하는 데 골몰하고, 대체로 우리는 이런 이들을 성실하고 현실적이라며 칭찬합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정신이 딴세상에 가 있는 양 집중을 못하고 산만한데,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사람들은 혹시 어떤 특별한 사명을 띠고 다른 세상 다른 시간대에서 하는 일이 따로 있었던 건 아닐까요?

"예의 바른 사람들은 남의 대화를 엿듣는 게 아니다.(p21)" 그렇다고는 해도 때로는 예의 바른 이들조차 달갑지 않은 엿듣기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이콥은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 적응해 나가지만, 만약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어느 정신병원에나 끌려갔을지도 모르는 위태위태한 신세입니다. 이 시리즈에 나오는 "이상한" 아이들, 이상한 사람들이 으례 그렇듯, 이들은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는 주위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세상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분명 남 보기에 이상한 사람들,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는 분명한 목적 의식이 있다는 게 중요하죠. 또, 알고 보면 이 세상이 이런 이상한 사람들의 노력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는 놀랍습니다. 물론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은 설레며 할 수 있다는 게 페러그린 시리즈를 읽으며 언제나 느끼는 바이기도 합니다.

이상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즉 우리)에 의해 방해 받기도 합니다. "그들을 죽일 수도 있나요?" "그레서는 안 된단다." (p65) 규칙이 그러하며, 우리 생각에도 그 선을 넘으면 이미 세상을 지킨다는 그들의 명분이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합니다. 생명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며 이런 절실한 마음가짐 하나하나가 세상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기도 합니다. 남의 목숨과 재산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나쁜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 수가 일정 선을 넘는 순간 세상은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을 이처럼 응원하게 된다는 자체가 우리 독자들에게는 드물고 때로는 벅찬 경험입니다.

돌이켜 보면 세상은 언제나 위태로웠습니다. 특별한 악의를 갖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인간들로 위기에 처했으며, 이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딱히 있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나쁜 자들이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며 그들이 응징을 받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세상은 용케 버티며 여기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피부색이 검다고 이유 없는 차별을 받기도 했으며 도저히 용서 못 받을 살상이 끔찍하게 벌어졌고, 그럼에도 반성이란 전혀 없이 보복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도 그들 나름대로는 명분과 합리화가 있습니다. 들어 보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우리도 어떤 식으로건 풀어야 한다"며 필사적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그들의 못된 의지를 막으려는 선한 움직임에 저항하며 "이상하다, 잘못되었다"를 자격도 없이 외칩니다. 참 뭐가 정상이고 이상한 건지 끝없이 헷갈리는 판입니다.

세상을 지키려는 누군가(들)의 몸부림이 없었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진즉에 망했을 터입니다. 페러그린 여사와 이상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소명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압니다. 그 하는 일이 얼마나 막중한데도 밖에서 이들의 분투를 엿보는 우리들은 유쾌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들은 과연 자신들이 세상을 망치는 데 가담하는지, 아니면 작은 무엇이라도 기여하는지, 그저 낄낄거리며 방관하는지 의식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들 누구나 특별해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 첫걸음은 착한 마음의 회복과 냉철하고 정직한 반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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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 건설 가이드 -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와 기계의 원리
라이언 노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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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0으로 돌아간 상태, 즉 그라운드 제로에서 새출발을 하라면 참 상상만으로도 막막합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선조들이 일궈 놓은 문명의 혜택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먼 과거까지 거슬러올라갈 것도 없이, 우리 동시대의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편익은 또 어떻습니까. 내가 할 줄 모르는 걸 어떤 타인이 모르는 저 먼 구석에서 그의 재능을 발휘하는 중이기에 나의 편리, 나아가 나의 생존이 가능한 법 아니겠습니까.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잘도 정글에서 살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 힘으로는 일상의 영위조차 어렵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시간 여행이 혹 가능하다 가정하고 전혀 연고가 없는 시간대에 뚝 떨어졌을 때, 특정한 기술이나 장치, 노하우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를 재현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흥미롭게 독자를 가이드하는 내용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참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게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 맨땅에서 하나하나 지어올라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환경과 타인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겠죠.

감자는 유럽인들에게 "악마의 작물"이라 불렸는데 그 이유는 성경에 이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저도 어려서부터 읽은 바가 있는데, 이 책에서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특히 그리 받아들여졌다는 점 또 처음 알았습니다(또 그 이유에 대해서도 더 재미있는 이유를 저자는 제시합니다). 감자의 발견(감자 입장에서 전혀 "발견" 같은 게 아니겠으며 인류 그룹을 놓고도 유럽 대륙 거주자였던 이들에 한정하여 타당하겠지만)이 특히 농민들에게 축복이었던 이유는, 익히지 않고 먹을 시 독성이 남아 있어 여타의 동물에게 먹거리로 부적합했다는 서술이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각주에서 보노보 원숭이라는 예외가 있기에 "거의 다"라고 말했다는 문장에서 저자의 위트가 느껴집니다(사실 이 대목뿐이 아닙니다만).

인간은 많은 동물을 길들여 아예 다른 종으로 바꿔 놓았다는 이유에서 참 놀라운 동물이기도 합니다. 종의 탄생과 진화는 그저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 같은데 말이죠. 개나 고양이는 다른 가축과 달리 자발적으로 인간에게 다가온 점이 특이한데, 그 중에서도 고양이는 "1) 인간에게 뭘 바라지 않고도 유익한 봉사를 하며 2) 야생종과 애완용이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다릅니다. 사람이 일군 문명도 놀랍지만, 그 문명에 자기들 나름대로 적응하는(혹은, 적응당한) 동물들의 행태도 역시 경이롭습니다.

"죽기 싫으면 반드시 챙겨야 할 영양소" 필수 영양소는 다들 알듯이 탄수화물, 지질(요즘은 용어가 바뀌었더군요), 단백질 등입니다만 비타민 종류는 비교적 최근에 인식되어 여러 종류로 분류되었고 그 효능과 실체에 대해선 아직도 논쟁이 진행 중이긴 합니다. 학자들과 이 책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이유는 이들 비타민이 체내에서 직접 합성이 안 되므로 반드시 외부로부터의 섭취를 요하기 때문입니다. 비타민에 비타민이란 이름이 붙여진 건 비교적 최근이지만 사실 이 영양소에 대해선 고대 이집트인들도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비타민은 적어도 일곱 번 망각과 재발견을 겪었다는 게 저자의 평가입니다. 발견이라는 게 얼마나 상대적이고 인위적 개념인지 다시 확인 가능하며,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숨겨진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케플러는 스승 티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을 바탕으로 마침내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걸 알아냈다고 하죠. 궤도가 원이 아니라는 게 성경의 해석(완전무결해야 하는 신의 창조 섭리)에 반한다고도 하지만 사실 타원이기나 하다는 점도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타원 역시 수학 방정식으로 우아한 표시가 가능한 도형이니 말입니다. 측정의 문제는 물리학에서도 가장 처음에 놓이는 단계인데, 이 측정의 문제에 초석을 쌓은 학자들, 선구자들의 업적이야말로 대단합니다. 저자가 말하듯이, 막연히 미지근하다 시원하다 정도의 평가, 느낌으로 일을 진행한다면 얼마나 잦은 시행착오로 고생해야 할지, 상상이 안 가는 문제이죠.

유형적인 기술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책 p375 이후에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논리"가 중요한데, 이 논리학은 우리 나라에서 그 기초를 중등 교육 과정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안 가르치기도 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의견을 조정해 가며 살아야 하는데, 그저 목소리만 높이면 다인 줄 아는 사람들, 혹은 자신이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유명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조건 진리인 줄 아는 사람들 때문에 합리적 공동선이 추구되지 않는 현실이 그저 답답할 뿐이죠. 고도의 기술이 발전하면 뭐하겠습니까. 멍청하고 열등감 가득한 인간들이 사회에 뭐 하나 기여는 못할망정 훼방 놓는 거 하나는 확실하게 해 내며 진보를 가로막는다면 다 죽는 길 외에 다른 결과가 어디 있겠습니까. 논리를 "발명" 중 하나로 꼽은 저자의 혜안이 대단하며, 보통 과학사학자들의 저작에서 간과되기 쉬운 이슈를 잘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만능주의는 정답이 아니며, 어떤 영역에서도 메타적으로 기능하는 장치가 하나 더 마련되어야 합니다.

정말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기라도 해서 엉뚱한 데서 길을 잃기라도 한다면, 부족하나마 이 책 한 권은 꼭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이 책에 실린 "각도기" 도면 하나도, 우리가 초등학생 때부터 요리조리 갖고 놀던 흔한 물품이지만 간단한 건조물 하나를 만들거나 정확한 마름질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도구이며, 이것 하나를 쓰고 안 쓰고에 따라 엄청난 오차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명언들이 인용되었는데, 그 출처를 놓고 (물론 원 발화자와 함께) "당신"을 병기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시간대에 떨어졌을 경우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여태 그 말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그 고안자, 저작권자인 양(저작권이란 말도 없겠지만) 잘난 척하며 내세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우리는 이미 이런 선구자들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기에 우리의 사고, 사소한 직업상의 업무 수행 하나하나가 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행해지는 거죠. 우리는 앞선 기여자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고, 한편으로 이런 기여를 미세하나마 루틴 속에서 재현, 재생하는 중이라는 점도 새길 만합니다. 내가 하는 게 내가 하는 것일뿐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빌려 다시 활동 중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연속성을 지닌 문명의 속성입니다. 그 연속성 밑에 도도한 시간이 깔려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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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토익 스피킹 입문 - 21일 만에 끝내는 결정적 토익 스피킹
김소라 지음 / PUB.365(삼육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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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는 토익이 아주 요령 위주의 시험이라서 설령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 못 하더라도 그저 점수만 높이는 요령이 널리 통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점수따기 경쟁이 벌어지는 한국인들이 그저 요령만으로 시험 제도 하나를 유린하기란 그저 식은죽먹기였을 뿐입니다. 꼭 그래서는 아니겠으나 토익 본부(주관 단체인 미국 ETS 등)에서도 이 점을 의식했는지 제도를 크게 개편하였습니다. 스피킹 같은 것은 예전 분들에게는 꽤나 낯선 파트이겠습니다.

외국어는 그저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가서 무수히 많은 접촉, 자극, 소통을 해야 발음도 나아지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발화가 바로바로 나오겠으나 그럴 여건이 못 되는 이들도 많고, 어쩌면 구태여 외국에 안 나가고 독학만으로 터득하는 게 진정한 능력이고 성취인지도 모릅니다(무엇보다 돈을 덜 들이는 게 메리트죠). 이런 토종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장벽이, 발음기호, 철자 따위와 전혀 매치가 안 되는 듯한 발음 익히기입니다. 사실 국제음성기호는 "아, 에, 이, 오, 우"가 명확히 읽히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에 영어에는 잘 통하지 않는 면이 많고, 미국, 영국 등에서는 아예 잘 쓰지도 않습니다. 프린스턴 리뷰 같은 데서 내놓는 영어 교재는 발음기호를 잘 쓰지도 않고, 한국어판에서 부랴부랴 국내 학습자를 위해 병기하는 해프닝이 벌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 김소라 강사님의 <결정적 토익 스피킹>에서는 단어나 문장마다 일일이 한국어로 발음을 적어 놓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영어 교재에 이렇게 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발음은 어디까지나 원어민의 발음을, 음원을 통해 익혀야 올바른 학습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 초심자, 입문자에게는 아무리 그렇게 하라고 시켜 봐야 그 첫번째 장벽을 넘지 못하고 매번 그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레서 이 책 저자님처럼 최대한 한글로 원 발음에 가깝게 써 놓은 건 매우 실용적인 접근이라고 생각되네요.

예를 들어 maintenance 같은 것은 [메인-는쓰]같이 쓰고, 강세가 놓이는 첫 음절은 볼드체로 굵게 써 놓았습니다. 책에도 여러 차례 강조되지만 t 발음은 특히 미국 구어에서 거의 발음되지 않습니다(정확하게는, 발음이 되기는 하나 성대가 긴장된 채 울리는 단계에서 그치죠. 아랍어에도 이런 발음이 있습니다).

operation, approach 처럼 첫 음절에 강세가 안 오는 단어들은 [어]처럼 발음을 써 놨지만, occasion 같은 것은(같은 o로 시작하는데도) [으]로 써 놓았습니다. 이건 사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실제 원어민의 발음을 들어 보면 그렇게 정말 들립니다. 저자의 섬세한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죠.

토익 스피킹 점수 안 나오는 분들은 대략 두 가지 유형 같습니다. 1) 하나는 말하는 스크립트 내용 자체를 머리 속에서 바로바로 구성 못하는 경우이며, 2) 다른 하나는 문장은 잘 만드는데 발음이 나빠서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점수를 다 까먹는 케이스. 물론 상당수는 이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합니다. 제가 2주 가까이 이 책을 "초보자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본 결과, 책은 한국 학습자들의 약점을 정확히 캐치하고 이 두 가지 학습자층을 집중 공략한 듯합니다.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점수가 안 오르는 사람한테 "점수 오르는 방법"만 딱딱 찍어서 컴팩트하게 정리한 책이, 수험서로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답변에도 전략이 필요한데,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바로바로 말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가만있자, 이 말이 문법적으로는 오류가 없나?"라며 자체 점검을 하고 머뭇거리고 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때 저자는 앞에 나온 표현을 최대한 활용하라(p76), 어떻게 하든 내용 전체의 요지를 잘 파악하면 설령 몇가지 정보를 빼먹었다 해도 순발력 있게 재구성할 수 있다(p120), 그 와중에도 "묘사할 인물 등을 미리 정해 두라(p50) 같은 걸 전략으로 제시합니다. 이런 건 사실 영어뿐이 아니라 한국어로 진행하는 PT, 인터뷰도 마찬가지입니다. 앞 문단에서 1)이 안되는 이들은 사실 영어만 안되는 게 아니라 한국말도 잘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초보 스킬을 넘어 "문장들이 응집력 있게 연결되어야 한다"거나, "표의 정보가 일치하는 어휘가 들리면 위치를 바로 파악하라"거나 "한 가지 해결책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라" (p161)같은, 어떤 근본의 원칙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토익 단기 고득점도 고득점이지만, 언어 소통에 있어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어떤 소통의 정석(언어 종류와 무관하게)을 다시 새기는 계기가 되어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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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민화로 떠나는 신화여행 인문여행 시리즈 2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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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반(半)신들, 영웅들의 계보를 머리 속에 잘 정리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도인들이 섬기는 힌두의 신들은 무려 "수백 억 명(이 책 p8)"이나 되기 때문에, 이 정도면 해당 충실히 믿는 이들에게라고 해도 결코 만만히 볼 게 아니지 싶은데요. 소설 한 편 읽을 때에도 등장인물이 너무 많으면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라 해도 따라가기 힘든 것과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평균적인 한국인들이 힌두 신화를 매우 낯설어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멀리하기에는 힌두 신화가 너무도 재미납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인도, 중국 등에서 전래된 불교를 믿어 왔는데 그 역사가 거의 천 오백년이나 되며 이와 관계된 문화 유산도 많습니다. 불교 설화도 파고 들면 재미난 게 많은데, 불교를 멀리서 잉태했던 인도의 전 신화 체계를 (그 대략이나마) 섭렵하면 얼마나 흥미롭겠습니까. 근래 한국에서는 라틴어 공부 바람이 부는 중인데, 라틴어 어원, 문법을 깊이 공부하면 그 먼 친척뻘인 산스크리트와 만나는 대목이 많습니다. 그런데 산스크리트 문헌 공부는 또 이 힌두 신화와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당장 불의 신 "아그니" 같은 것만 해도 그 이름의 복잡한 변화(denomination)를 외워야 하는데, 아그니가 누구인지를 알면 그 암기의 고역이 조금은, 아니 상당 부분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330여쪽의 예쁜 동화책, 민담집처럼 보입니다. 어린이들이 읽어도 쉽게, 재미나게 술술 읽힙니다(어떤 아이에게 시켜 봤는데 아주 좋아하더군요 ㅎㅎ). 그런데 어른들, 특히 산스크리트어, 인도 문화 전반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공부하고 싶은 완전 초짜들이 읽어도 참 좋겠다 싶었습니다. 어려운 내용은 처음 들어갈 때는 쉬운 포맷으로 시작해야 장벽이 낮아집니다. 힌두 신화의 주인공 격 몇몇 캐릭터만 확실히 잘 알아도 그게 뼈대가 되어 다른 연관 신들이 머리 속에 잘 정리됩니다.

저자 하 박사님은 "인도에서는 특히 부녀자들이 익히는 필수 교양 중 하나가 인도 신화이며, 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베틀로 천에 수를 놓거나 하는 방식으로 이를 표현"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도 조선 후기부터 서민층의 각성을 통해 고급 예술의 컨벤션에 얽매이거나 기 죽지 않고 자유로운 붓끝을 놀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수록된 여러 작품들은 보기에 유쾌하고, 공감을 끌어내고, "뭘까?' 하는 호기심으로 시선을 잡아챕니다. 사실 이 책의 텍스트를 구태여 쪼아붙이지 않더라도, 책에 실린 그림 구경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림에 설명이 없어도 재미있는 각각의 그림들인데, 전공자의 정확하고 흥미로운 설명까지 달려서 더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신들은 하나이지만 다른 이름들로 불린다." 그 심오한 뜻이야 우리가 미처 깨달을 수 없겠지만, 창조, 보호, 파괴를 각각 담당하는 세 신이 힌두 신화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명심헤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신화에서건 "빛"이 창조의 수단이요 시작점이라는 건 공통이라서 재미있습니다. 제임스 캐머론의 영화 덕분에 더 유명해진 "아바타"라는 단어(그 이전에 게임의 역할도 컸지만)도 이 신화, 이 오리지널리티 속에서 그 생생한 의미를 새로 우리에게 밝힙니다.

그리스 신화 등과는 닮은 점도 간혹 보이지만 다른 점이 당연히 압도적으로 많고, 그 전에 비교 대상도 아니다 싶을 만큼 내용이 많고 풍부합니다. 신의 숫자만 수백 억이라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태양신은 많은 신화 체계에서 주신(主神) 포지션이지만 그리스 신화에서는 헬리오스, 아폴른 등이 따로 맡고, 여기 힌두 신화에서도 "수리야"가 별개로 있습니다. "삶의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신"이라는데, 가장 당연한 듯 그 혜택을 접하면서도 우리가 그 고마움을 곧잘 잊곤 하는 존재입니다. 천체의 비중 면에서는 상대가 안 되지만, 해의 신이 있으면 항상 달의 신도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찬드라입니다. 이들에 관한 그림만 해도 여섯 폭이 책에 실렸는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그림 같기도 하고 피카소의 작품마냥 달관의 생략이 느껴지기도 하며 마치 신문 만평처럼 풍자와 해학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문화권에 무관하게 사람의 도리, 예절, 의리, 윤리는 어느 신화 체계에서나 강조되는 덕목입니다. 사람이 받은 게 있으면 베풀 줄도 알아야 합니다. 원수를 갚을 때에는 엉뚱한(무고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해서 안 되지만, 은혜를 갚을 상황에서는 (은인 혹은 그 관계인에게 갚는 게 불가능하다면) 누구에게나 베풀어도 무방합니다. 어차피 처음에 베푼 이가, 이자까지 쳐서 되받을 생각으로 그리한 게 아니기 때문이죠. 어미새는 새끼를 구해 준 은혜를 갚고 청년이 꿈에도 그리던 처녀와 결혼하게 도와 줍니다. 동물도 그 사는 이치가 이러하거늘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인종적으로 지리적으로 다소 먼 거리지만, 이런 훈훈한 정서(그리고 이를 표현한 그림의 개성)만큼은 우리 문화와 확실히 닮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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