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 포크스 : 플롯 가이 포크스 1
윌리엄 해리슨 아인스워드 지음, 유지훈 옮김 / 투나미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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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포크스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저항의 아이콘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마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브이 포 벤데타>이 큰 역할을 했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17세기 영국에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들었던(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열정적인 활동가였고,요인의 대거 살상을 통한 국면 전환을 꾀했다는 이유로 삼백 년 넘게 역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테러리스트였고, 다르게 보면 조선의 홍길동이나 멕시코의 조로처럼 초인적인 면모, 의로운 협격의 개성이 있습니다.


가이 포크스 사건이 터지고 이백 년 가까이가 흐른 후, 영국에서는 가톨릭 교도의 공직 취임을 금지하던 심사율이 폐지되고 가톨릭 교도 해방령이 내려졌습니다(1829). 이 소설은 1805년에 태어난 윌리엄 H 아인스워스가 1841년에 완성한 장편으로서, 여태 역적으로 오명을 쓰고 있던 가이 포크스를 영웅,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대담한 태도로 유명했습니다. 


소설을 읽어 보면 잘 나오지만 당시 영국이란 나라는 아직 국가 기반이 확고하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자베스(1세)가 훙서하고 나서 후계자는 엉뚱하게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지명되었습니다. 두 왕실, 또 저 두 왕이 나이 차가 나는 친척 관계이긴 하나(법적으로 계승권 주장 가능)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수백 년 간 앙숙이었는데 적국의 왕이 나라를 다스리러 왕으로 온다는 건 충격이었죠. 


그러나 제임스 1세(이제는 잉글랜드의)는 그런 난점을 잘 알고 새로 맡게 된 나라까지 잘 다스리는 통합 군주로서 존경을 얻고 싶어했습니다. 또 스코틀랜드=가톨릭, 잉글랜드=프로테스탄트 같은 공식은 일찌감치 깨어져서, 스코틀랜드 사회도 어느덧 주류를 장로회 신도들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여전히 가톨릭도 강함). 따라서 이 시기 브리튼 섬은 종교, 민족 등 여러 복합적 요소를 띤 고차원 본쟁을 암암리에 벌이고 있었습니다.


소설에는 제임스 1세 등 스튜어트 왕조의 군주들에 대해 부정적 묘사가 가득합니다. 예를 들면 할 일 없는 스코틀랜드의 건달들이 왕을 따라 잉글랜드로 와선 현지인들을 뜯어먹으며 민폐를 끼쳤다는 서술이 있죠. 그런데 신교도들이야 잉글랜드의 지배층(아직 위상이 확고하진 않았습니다)이니 (가뜩이나 굴러온 돌 주제인 왕이)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만만한 게 가톨릭 교도였습니다. 이때로부터 백 년 전 헨리 8세는 브리튼 식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가톨릭을 혹독히 탄압했습니다. 이런 국가 정책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도들은 여전히 믿음을 고수했는데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recusant라고 불렀습니다. "거부하다"라는 라틴어 recuso, recusare 에서 온(정확하게는 그의 현재분사꼴) 단어죠. 이 책에서는 "거부자"라고 옮기고 있네요. 

 

p14를 보면 험프리 채텀의 대담한 언동이 나옵니다. 험프리 채텀은 책에 "맨체스터에서 거부로 유명한 장사꾼의 아들"이라 소개되는데 물론 여기서 거부는 巨富이며, 영국 국교회 신앙을 거부한다는 拒否가 아닙니다^^ 


<브이 포...>에서 주인공 브이(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활약하는 혁명가)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이 젊은 여성 이비(나탈리 포트만이 연기)인데, 여기서는 비비아나 래드클리프라는 젊고 당찬 여성이 등장하여 온갖 역경을 헤쳐가는 스토리가 작품 전체의 중요한 흐름 하나를 이룹니다. 물론 이 세상은 남자 위주로 짜여진 비정하고 폭력적인 곳이기에 비비아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 못 하며, 말그대로 홍길동처럼, 또는 저 영화의 "브이"처럼 신출귀몰하며 대의명분(그들 입장에서)을 구현하려는 영웅이 바로 가이 포크스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이 포크스는 이백 년 넘는 시간 동안 내내 역적 취급이었으며 (영화에도 나오지만) 리멤버 리멤버 더 핍스 오브 노벰버 라는 노래는 가이 포크스의 위대한 저항 정신을 기리자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저런 천하의 역적을 결코 잊지 말고 애국심을 다지자"는 취지의 동요였습니다. 아무리 이백 년이 지났다고는 하나 이런 논란의 인물을 소설 주인공으로 받들고 그 행적을 환상적으로 묘사하니 반발이 대단했을 겁니다. 



작가는 이 점을 다분히 의식하여 "기존 작품 중 하나를 고의로 왜곡 해석하고, 필자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의도와 목적을 작품에 끼워 맞춰 온 독자(에게)라면 (이 작품) <가이 포크스>는 또한 정당한 대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p6)."라고 서문에서 밝힙니다. 그러나 소설 창작 시점으로부터 다시 두 세기 가량이 흐른 현대 한국의 독자들은 영문 모른 채 홍길동 같은 이 협객의 활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겠죠. 우리가 소설의 박력 넘치는 무용담을 무협지처럼 받아들이기만 해도 이 소설은 이미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겁니다.


"케이츠비는 나이도 그렇지만, 방종하고도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인생과는 걸맞지 않게 용모가 준수했다(p42)." 고전 소설을 보면 인물의 외양 묘사에 다분히 작가 자신의 인물관을 투영하는 대목이 많죠. 이때로부터 오십 년 뒤쯤에 쓰여진 코난 도일 경의 <빈 집의 모험>을 보면 세바스천 모런 대령을 두고 "호색한 특유의 턱"를 가졌다는 문장이 있는데 이런 걸 읽고 나면 사람을 볼 때 길쭉히 자란 턱을 보고 "이분 어지간히 밝히고 살았나 보다" 같은, 근거 없는 혼자만의 생각에 낄낄거리게도 됩니다. 저는 역사물인 이 소설에서도 작가 특유의 그런 인물관을 행간에서 읽으며 이 작가분(아인스워드)이 "사람을 어떻게 보는 분일까" 하는 점을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역자 서문? 같은 부분을 좀 둬서 작품 배경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아마 구태여 역사를 알지 않아도 그냥 로맨스 모험 소설로 읽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신 걸 수 있겠죠. p174 같은 데를 보면 라이트가 형인지 동생인지를 밝히기 위해 괄호 안에 "형"이라고 따로 적고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the elder Wright라고 적혀 있는데, 번역에서 이렇게 처리한 게 오히려 가독성이 좋은 것 같네요. 물론 존이 형이고 크리스토퍼가 동생입니다. 


p158 중간쯤에 보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말을 할 수 없어.."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는 구약 시편 22:15에 있는 구절을 의식한 언급입니다. 이 무렵 소설들은 성경 구절을 적절히 인용하여 문학성과 권위를 높이는 방법으로 썼습니다. p249 중간쯤에 보면 "끝장을 보던가"가 있는데 "보든가"로 바뀌어야 맞겠습니다. 


p62에 보면 "예수회 사제이자 반역죄..."라는 대목이 있는데 예수회 사제는 그 신분 자체가 형사 죄목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때로부터 시간이 좀 지나면 예수회는 프랑스 같은 구교국에서도 불온시되어 탄압당하는 일이 벌어지죠. 


역사를 전혀 모르는 독자가 보면 과연 "아씨" 비비아나와 그녀를 지키는 가이 포크스가 펼치는 모험 그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하게 소설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말이죠. 그런데 이 1부 중간쯤(p108)을 보면 수수께끼의 닥터 디(가이 포크스보다 40살 정도 나이가 더 많은 실존인물)가 수정구슬을 꺼내 공모자들(국회 의사당 폭파 음모를 꾸미는 이들)의 미래를 점치는 대목이 벌써 나옵니다. 


이미 불길한 징조가 여럿 나왔고 객관적으로도 가망이 없는 작전이지만 참다운 신앙(그들 입장에서)을 회복하고 자신들의 정당한 자존과 재산을 지키려 드는 주인공들의 눈물겨운 분투에 우리 독자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작가 서문에도 나오지만 비비아나는 이 소설에 매력을 더하기 위해 고안된 가공의 인물입니다. 조지 크뤽솅크의 원본 삽화들도 이 책에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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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작가와의 대화 - 노벨문학상 작가 23인과의 인터뷰
사비 아옌 지음, 킴 만레사 사진 / 바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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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은 아마 문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예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영광을 그저 세속적 영광으로만 받아들이고 마는 경향이 있습니다. 허나 그런 성취를 이루기까지 한 인간의 지성이 얼마나 많은 체험을 하고 고뇌에 젖으며 수많은 동료들과 치열한 소통을 겪었겠습니까. 결과는 부러워하면서 그 힘든 과정은 애써 외면한다면 이만큼 불성실하고 이중적인 태도가 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예쁜 장정에 풍성한 화보를 담고 있습니다. 책을 받기 전에는 이런 책인 줄 몰랐는데, 너무도 만든 분들의 정성이 가득 담겨 "이런 책은 목욕재계를 마치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그 담긴 내용을 음미한 후엔, 노벨상 수상이란 과연 하늘이 내린 시련과 축복을 자기 것으로 온전히 소화한 위대한 영혼들이 마지막에 챙기는 과실이란 생각을 더욱 굳히게도 되었네요.

p123이하에는 가오 싱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름이 낯선 분들도 있겠는데 2000년에 상을 받은 분이며 그 광란의 문혁 때 죽을 고생을 하고 체제 비판(그리 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성향이 당국의 눈 밖에 나 결국 프랑스까지 옮겨 온 이력이 있었죠. 책 해당 챕터를 열면서부터 주름 가득한 동아시아인 외모를 한 노년의 사내가 비춰지는데 그 라인만 흘깃거려도 연륜과 공력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청춘을 잃어 버린 나로서는 부지런히 일할 수밖에 없다 보니 할 말이 무척 많네요." 일에 몰입해야 자신이 치른 부당한 고생과 시련의 더께를 잊을 수 있었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활용한 공간은 번잡하지 않았는데(그가 일종의 행위예술도 겸한 예술인이었다는 점 상기하시면..) 편집자는 이를 두고 일종의 미니멀리즘 구현이었다고도 평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책의 출판이 숲을 해친다는 환경적 배려도 그러했지만(바로 앞 주제 사라마구 편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요) 호메이니 등 세계의 온갖 이단아를 그 품에 다 받아들인 "똘레랑스"의 프랑스가 가오 싱젠의 책 번역에 대해 온갖 간섭을 다 하고들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의 책을 보고 분량을 줄이라거나, 무명 작가의 상업적 없는 책이라고 폄하한 출판사 중에 무려 갈리마르가 있었다는 사실은 진심 중격이었습니다. 혹시 암암리에 전해진 중국의 압력에 비겁하게 굴복이나 한 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나는 빨강> 등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오르한 파묵과의 대화도 있습니다. 그가 무슨 주제를 듣고서였는지 파안대소하는 사진이 흑백으로 크게 나오는데 왠지 그 웃음 중에서도 약간의 비애가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파묵은 우리에게도 "부유한 가정의 좌파 학생(p222)"이란 출신이 잘 알려져 있고, 그가 나고자란 터키가 민족주의/종교회귀 등을 놓고 노선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내내 우파 권위주의 체제였다는 점도 우리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미투 스캔들 때문에 크게 상처를 받았으나 한국에서는 고은 시인이 시월만 되면 뉴스에 오르내렸는데 대개 이런 굴곡진 현대사를 가진 나라에서 유명한 문인이 배출되고 결국 노벨상 수상이라는 계기를 통해 세계 독자들과 만난다는 반복되는 패턴에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레 케르테스는 헝가리 출신, 유대의 피가 흐르는 문인으로서 2002년에 이 상을 받았으며 지금은 고인입니다. 책에는 저렇게 인명 표기가 되어 있으나 헝가리는 우리 동아시아처럼 성이 앞에 오는 방식이므로 케르테스 임레라고 불러도 무방하죠. "그는 그 어느 소년과 전혀 연관이 없다(p285)."는 일종의 반어법입니다. 이제(인터뷰 당시이며, 현재는 이미 고인입니다) 노인이 된 그가 반 세기 전 수용소로 끌려가기 직전의 소년을 그리 타자화하여 관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체험을 기억화할 수 있는 게 있고, 도저히 맨정신으로 뇌리에 못 새길 종류가 따로 있지 않겠습니까.

나기브 마푸즈는 1988년, 아마 이 책에 실린 작가들 중 가장 오래 전에 수상한 작가군에 속할 것입니다. 출신도 독특해서 이집트인이며 아랍어를 모어로 쓰는 이들 중에는 최초 수상자라는 배경을 가졌습니다. 물론 아랍권 대부분의 주민은 뿌리 깊은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개인의 선택 여지 없이 흡수하게 되는 편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어떤 저항이나 반감 따위를 갖지 않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편입니다. 이 인터뷰에서 그가 주목하는 건 폭력과 테러리즘입니다. 폭력의 기원은 무엇이며 이의 극복은 어떤 방식이어야 하냐를 놓고 그는 서방과 이슬람의 변경에서 끝없는 오뇌를 연습합니다. 이 인터뷰가 이뤄질 때 아마 그는 95세였던 듯하며, 그렇다면 공교롭게도 그해 사망한 셈입니다.



책에는 이 외에도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 도리스 레싱, 헤르타 뮐러 등 비교적 최근 수상자도 있고, 가브리엘 마르케스처럼 오래 전에 세계 뉴스 전파를 탄 분도 있습니다. 토니 모리슨처럼 미국 흑인의 아픔을 붓 끝으로 빚어내고 빌 클린턴과 직접 대담한 분도 있고, 전쟁과 그 후과인 원폭 피폭을 뼈저린 회한으로 담은 오에 겐자부로도 나옵니다. 한결같이 흑백 톤에 그 인생 역정 실루엣을 빚어낸 모습인데, 우리는 이로써 많은 작가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 가지 필터로 걸러 그 진한 궤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거대한 폭력과 압제 앞에 힘 없는 개인이 어떻게 자유와 의식과 각성을 내세우며 표연히 저항하는지, 혹은 존재의 절규를 아름다운 톤으로 다듬는지에 대한 장엄하면서도 담백한 회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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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리듬의 과학 - 밤낮이 바뀐 현대인을 위한
사친 판다 지음, 김수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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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리듬"이라고 해서 한국에서도 1990년대 초반부터 큰 주목을 받은 게 있었습니다. 일간신문에서도 자신의 생일생시 기준으로 오늘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려 주는 코너가 있었을 정도였는데요. 이후 이에 대한 "과학적 비판"이 일어나며 신뢰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과학적 근거 유무에 무관하게, 나의 두뇌와 신체가 최상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어떤 주기가 있긴 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던 듯합니다.

이 책의 저자 사친 판다는 일종의 "게임 체인저"와도 같은 젊은 학자분입니다. 생체리듬이란 분명히 존재하며, 이것의 작동 원리가 막연한 기분, 컨디션 따위가 아니라 유전자 단위에서 기인한다는 겁니다. 이 "유전자 시계"는 일제히 켜졌다가 꺼지며, 켜지는 계기는 빛의 지각이나 영양분의 섭취 등인데, 무엇을 섭취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이에 대해 분명한 증명, 근거를 갖춘 연구는 이분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세계 최초였다고 하네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생체리듬은 그저 컨디션 조절 수준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몸에 생기는 자잘한 병은 바로 이 생체 시계를 조절 못해서 일어난다는 겁니다. 몸은 본디 병 안 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리듬이 정해져 있는데, 사람이 나쁜 습관으로 이를 흩뜨리기 때문에 병이 생긴다고 하네요. 그저 습관을 고치는 것만으로 유전자 시계를 제때 켜고 끌 수 있다는 결론이 놀랍습니다. 또, 이런 기제를 조절하는 신체 부위는 뇌에 한정한 게 아니라 우리 몸 전체라는 결론입니다. 그저 마음만 굳세게 먹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바른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거죠.

"1900년에 태어난 아기는 기대 수명이 47세에 불과했다(p88)." 이 생에 육신을 갖고 태어난 것만으로도 축복인데 고작 47년밖에 못 산다면 슬퍼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도 인간이 자신의 수명에 대해 그 정도 기대밖에 못 가졌다는 사실이 또한 충격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파스퇴르 같은 학자의 위대한 일생에 대해 배우기도 하지만, 사람을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사실은 그만큼 경이롭고 감사한 일입니다. 인간은 본디 맹수의 폭력으로부터도 취약한 신체구조이며, 아무리 도구를 써서 문명을 발달시키고 자기 보호에 능해졌다 한들 미생물 차원에서 신체를 좀먹고 드는 데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서양 문명이 이런 문제를 먼저 극복한 건 정말 큰 공헌이며, 동양인들이 서세 동점 추세(그보다 한 세기는 먼저 시작된)에 수동적으로 굴복한 것도 어쩌면 이런 성과에 기인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이야 동양 출신의 훌륭한 학자들도 많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인도 분입니다. 인도를 비롯해서 우리 동양인들이 서양 의학의 한계를 지적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치료는 그저 증상에만 작용할 뿐이다(p81)." 병을 근본에서부터 잡으려면 증상이 아닌, 그 원인을 알아내고 이에 효과적으로 접근해야 하죠. 생체 리듬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를 다스림으로써(조율함으로써) 만병을 치유한다는 생각은 확실히 우리 동양인들이 대뜸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아이디어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무엇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언제'이다"라는 결론입니다. 하긴 생체 시계 이야기니까 타이밍을 지적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어떤 강박 관념, 혹은 과도한 문제의식 때문에 "무엇"을 먼저 따지지 "언제"의 문제는 부차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분명 있습니다. 또, "결론은 알았으니 일단 됐다"는 식으로 문제 해결을 미루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태도가 잘못이라고 저자는 지적하며, 답을 알았으면 머리 말고 몸이 즉시 실천에 옮길 일이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p112에는 체크리스트가 나오는데 기상 시각, 첫 음료 섭취 시각 같은 걸 꼼꼼하게 묻습니다. 이런 제안을 하는 전문가(?), 책 저자는 여러 명 있었겠으나 사친 판다 박사님은 과학적 근거를 세계 최초로 밝힌 분들 중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가 다릅니다. 게다가, 학자들이 이처럼 일반인의 일상에 바로 적용할 수 있게 구체적인 자료, 방법론을 제공하는 건 드물기도 하기에 더욱 귀한 내용이겠습니다.

"좋은 습관은 (다른) 좋은 습관들을 더 많이 가져 온다." 이런 속담이 인도에는 있나 봅니다. 여튼 우리 주변에 운동 잘 하는 분들, 채식 위주의 습관을 지닌 분들(너무 극단적인 분 말고요)을 보면, 첫 습관을 잘 들이지 않고는 몸에 붙이기 힘든 다른 행동도 실천에 잘 옮긴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상위 결단, 근본적인 결단"이 중요하며 아주 유익한 출발점으로 작용한다는 뜻이죠.

"호르몬 균형이 회복되면 면역 체계, 수면, 행복감, 성욕이 함께 향상될 수 있다(p115)." 그리고 이 호르몬 균형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바로 생체 리듬의 회복이요, 올바른 타이밍을 찾아 모든 습관을 조율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야식은 위산 역류의 원인이다(p141)." 특히 시리얼 같은 건 혈당 상승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고 같은 페이지에서 저자는 지적합니다.

식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한할 수 있을까요? p181에서 저자는 "8시간 제한법을 영구적으로 할 마음은 안 생기겠지만, 10~12시간 제한은 누구나 손쉽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끔 원칙을 어길 때도 있겠지만 과하게 자책하며 공황상태에 빠질 게 아니라 가급적 빠르게 원래 궤도로 복귀할 것을 권합니다.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특히 오후에 각성 상태를 원할 수 있는데, 이때 물 한 잔이나 카페인 없는 차 한 잔, 과자 등(p205)을 권하는데 그 중에서도 물 한 잔이 가장 좋다고 하십니다.

책에서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건 하루의 언제 우리가 첫번째 "빛"을 맞이할지의 문제입니다. 박사님의 원래 전공 문제이기도 하며 생쥐에다 빛을 쪼여 그의 생체 시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다가 이 모든 놀라운 결론을 발견했다는 말이 책 전반부에 내내 나옵니다. 특히 청색광 센서(이 책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인 멜라놉신의 활성화가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고 하는군요.

저자는 실내 생활을 많이 하는 현대인에게 빛을 언제 얼마나 쪼이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건물 설계 역시 이런 팩터를 충분히 고려한 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p208에 밤과 낮에 따라 얼마나 빛을 쬐게 되는지 잘 정리된 표가 나옵니다. p247를 보면 전자기기에서 내뿜는 빛을 거론하며, 특히 청색광 스펙트럼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쥐들에게 특정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실험 결과를 설명합니다. 유전자가 아예 태어나면서부터 손상되었을 수도 있고, 앞서 말한 대로 켜져야 할 것이 꺼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건 생체가 어떻게 고유의 리듬을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뇌는 정보 처리 장치로서 가장 중요하지만, 사실 인체의 모든 세포가 서로 소통하며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다시피했습니다. p69을 보면 시교차 상핵의 개념이 나옵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략적으로" 뇌의 아랫면 중앙, 즉 시상하부에 위치합니다(같은 페이지). 저자는 바로 이 SCN이 일상리듬의 중심을 이룬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또, "SCN은 빛과 시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고도 합니다(같은 페이지). 책 중후반부는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팁이 잔뜩 나오지만, 그 전에 이 p69 근방을 꼼꼼히 읽어 두시면 이 모든 주장의 학문적 근거를 우리 독자가 매우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동양인들은 머리만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몸을 다스리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팔다리와 몸통, 머리가 모두 하나라는 관념을 갖고 신체 전체의 수련을 강조하는 삶을 오래 전부터 살아왔습니다. 책 머리말에 보면 인도인인 저자가 서양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체험을 어떻게 민감하게 인식했는지 간단한 개인적 술회가 나옵니다. 그런 독특한 개인적 배경이 결국 이 놀라운 연구 성과를 낳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는 건데, 자신이 가진 자원, 때로는 자원인지 아닌지도 모를 고유한 조건마저도 모두 자원으로 승화, 전환시키는 능력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참고해야 할 바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에너지원을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조화롭게 쓰는 방식이 바로 생체시계의 회복이라는 책의 주제와도 서로 통하겠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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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대화 - 너는 왜 그렇게 말하고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이진희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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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통하는 관계가 가장 답답합니다. 사람은 유일하게 정교한 음성 수단, 문자 매체로 통해 정보, 의사, 감정을 교류하는 동물입니다. 그런 인간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짐승 수준으로 관계가 타락하는 건 순식간입니다. "너는 왜 그렇게 말하고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한의사이신 이진희 저자가 처방하는 "고장 난 대화"의 치료법을 읽고, 우선 앞서 든 생각은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말하고..."를 뒤집어 생각하면, "나는 왜 '그/그녀'에게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을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무심히 던진 말이 결국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거고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사과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p70)" 예전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에도 보면 남편이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내가 잘못했으니 제발 용서해 줘."라고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이에 아내는 "봐, 당신은 당신 잘못이 뭔지 모르잖아? 그러니 우리는 서로 안 맞는 거야. 이혼해."라고 대꾸합니다. 저자께서는 애매한 경우라도 일단 자신이 먼저 사과하는 버릇을 들였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무조건, 기계적 사과가 만능책이 아님을 곧 깨닫습니다. "영혼 없는 사과에 본인이 먼저 지치고(p71)", 그 이전에 대화의 정석은 "자신의 느낀 감정을 솔직히 털어 놓는 게(같은 페이지)" 우선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대충 "에이 그냥 이거 먹고 떨어지라고 하지" 같은 소통은 오히려 상대에 대한 모욕입니다(그가 설령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저질이라고 해도). 미안하다는 기계적 반응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기에 이런 행동을 한 것인데,. 라며 경위를 말하고 상대의 진심 어린 이해를 구하는 게 더 인간적이고 정중한 선택입니다. 한의사 역시 사람 상대를 많이 하는 직종이긴 하나 한의사쯤이나 되어도 이렇게 상대방을 섬세한 방식으로 배려해야 하니 한국이 참 관계 피로도가 과한 나라인 건 틀림 없습니다.

어느 재벌 총수 가문 때문에 "분노 조절 장애"라는 병명이 유명세를 탔습니다. p50 이하에는 이 증상에 대한 설명이 자세한데, 사실 저는 우리 한국인들 대부분이 작게든 크게든 이런 "병"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당장 저부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자신이 타인의 반응에 대해 불건전하고 비이성적 분노를 (대놓고든 아니든 간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멀쩡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정말 답이 없죠. 저자는 첫째 "이 일은 당신과 당신의 가정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강조합니다. 한의사이시니 만큼 다양한 환자들을 겪으실 터이며,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자신의 증상이 특이하다고 여기겠으나 그들을 그룹으로 다루다시피 하는 입장에선 전형성이 캐치되는 거죠. 이런 이들에게 "당신만 이런 일로 힘들어하는 게 아닙니다"라는 말 한 마디(사실은 팩트인데)를 건네 주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존심, 권위, 체면이 몹시 중요하다(p73). 그것들이 무너지면 세상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여긴다." 안타깝지만 이런 장애를 가진 이들 역시 우리 주위에 매우 많습니다. 일단 이런 분들은 실제보다 자신의 능력을 매우 부풀려 평가합니다. 똑똑하지도 못하고 직감도 예리하지 못하며 가문의 배경도 시원찮은데, 그 반대로, 자기 기대대로 남들이 받아들이며 존중하기를 기대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가족과 친구를 힘들게 하며, 어디서 새로운 사람을 알아 그 사람이 자신의 말에 잘 맞춰 주면 즉시 기존의 지인에게 "이 사람이 날 대하듯 너도 나를 대해!"라며 새로운 미션을 부과합니다. 내가 잘 되는 게 곧 네가 잘 되는 거라며 남에게 말도 안 되는 희생을 부과합니다. 우습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코믹한 망상에 시달리며 그 포로가 된 인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세련된 표현이 전부가 아니죠. 저자께서는 "나이도 어린데 어찌나 세련되고 부드럽게 표현하는지 부럽기도 하다.(p83)"고 하시는데, 사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좀 의외였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제가 부러운 사람은 세련된 말보다는 일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말 잘하는 사람, 세련된 말재주를 가진 사람이 부럽다면, 혹 내가 하는 일이 일의 결과, 질에 비해 남들에게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던 적이 잦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여튼 저자는 "처음부터 잘 할 수 없고, 혹 소통이 서툴렀다고 해도 나 자신에게 토닥토닥해 줄 수 있으면 좋다"고 하십니다. 어쩐지 이 대목은, 나름 소통에서 상처를 입으신 적도 있던 저자가 아마도 자신에게,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지닌 독자들을 향해 특히 던지는 충고 같습니다. "자존감은 비판과 비난이 아닌, 사랑과 믿음을 통해 성장한다(p85)."는 말씀은 우리가 꼭 기억해 두어야겠습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같은 시 구절도 있지만,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바 상처 입은 바 싫어하는 바만 정확히 알아 자기 마음만 정확히 짚어도 평화와 안식이 절로 올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여기서 "꼰대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잠시 말씀합니다(p145). 요즘 유행하는 대로 꼰대들은 "나 때(소위 "라떼")는 말이야.."를 버릇처럼 되닙니다. 그런데 이처럼, 상대가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 "나 때" 타령을 하면, 상대의 감정을 별개로 하고 말하는 꼰대 자신은 과연 만족을 느낄까요? 만족은 결국 그 말을 듣는 상대가 자신의 의사, 감정을 알아 듣고 그대로 반응해 줘야 진짜 만족이 오기 마련인데, 꼰대는 일시적으로 자기 만족에 빠질 뿐 결국 상대가 그를 무시하므로 궁극의 만족은 못 얻습니다. 그래서 꼰대짓이란, 가면 갈수록 자신을 고립에 빠뜨려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불행하게 만듭니다. 꼰대들이 흔히 하는 말이 "너, 역지사지를 좀 해봐!'인데, 이건 "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고 그에 맞춰!"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전혀 남과 소통하려 들지 않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죠.

"자기계발 서적을 읽는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구하려는 루저(p191)". 이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이 책을 쓴 저자가 대학생때 가진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대개 세계관이 염세적이라고도 하시네요. 도움은 남한테 구할 수도 있으며 그게 민폐가 아닌 이상 얼마든지 소통의 일환으로 추구할 수 있는 거죠. 자신이 자기 완결적이라고 착각하는 건 자신만 망가뜨리고 고립시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주변, 그리고 자신이 몸 담은 조직까지 다 망치는 길입니다. "영어 잘하려면 반복, 반복 잘 하면서, 관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말은 왜 반복하지 못하는가?"(p193) 두고두고 반복하며 새길 만합니다.

남에게 진짜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은, 이런저런 상처도 받고 경험도 많이 겪으면서 그를 통해 진짜 교훈을 추출하고, 이를 잘 정리해서 남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한의사로서 권위 있는 처방과 진단도 많았지만, "인간 이진희"가 자신의 인생에서 치러 낸 여러 시행 착오를 진솔하게 토로하는 대목도 많았습니다. 책의 주제가 진솔한 소통이며, 그런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 역시도 역시 진솔한 소통이니 겉과 속이 일치하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겪는 많은 불편과 고통은 알고 보면 말과 행동이 달라서이며, 고장 난 그 숱한 대화 역시 서로에게 진실해지기만 해도 "낫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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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20-02-03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화를 통해 풀어라고 조언은 많이 하지만, 정작 서로 원활하게 대화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대화를 위해서 어떤 노력과 기술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다루기는 참 힘든 작업이라고 봅니다. 책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다 - 꼰대의 일격!
조관일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 "신세대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과 잘 소통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은 책은 자주 접합니다. 구세대는 그저 시대의 뒤안으로 퇴장해야 할 이들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저 "혁신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이와 반대로, "니네들 꼰대 맛을 알아?"라며, 꼰대의 미덕과 당당함을 설파하는 책은 극히 드뭅니다. 따지고 보면 구세대가 앞장 서서 이만큼이나 길을 닦아 놓았기에 신세대가 그 바탕에서 더 진화하고 더 세련된 감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거죠. 뉴턴 역시 갈릴레오 같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털어 놓기도 했습니다. 어른 없이 태어난 아이들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 나라의 구세대들은 다른 나라에 좀처럼 없는 특별한 분들입니다. 고도 성장의 숨가쁜 시대를 그들처럼 치열히 산 세대는 아마 세계 역사를 놓고 봐도 드물 것입니다. 이런 분들을 놓고 "꼰대"라 비칭하는 것도 이미 대단히 부당한 처사입니다. 스스로를 꼰대라고 부르며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다면 그는 이미 꼰대가 아닙니다. 이 책은 그런 "꼰대 아닌 꼰대"가 니네들 젊은 세대는 이런이런 게 아쉽다며 거침 없이 충고를 던지는 책입니다. 그러니 나이 든 세대는 그간 구닥다리라며 주위에서 받은 시선의 서러움을 이 책을 읽고 떨칠 수 있으며, 젊은 세대는 속으로 품어 온 "어떻게 하면 선배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숙제를 이 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IT에는 능하지만 멘탈이 약한 요즘 애들!" 저자는 과감하게 이런 편견은 편견이 아니라, 일말의 강력한 진실을 담고 있는 강력한 진단이라고 합니다. 신입 사원에게 한 소리를 했더니 그 부모한테서 전화가 왔다거나(p86), 더 심한 건 군대에서 "우리 아이가 신발 끈을 잘 못 묶는데..." 같은 호소, 민원을 받는 장교가 다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을 겪는 고참 간부, 군대의 장교는 마치 "유치원 교사가 된 듯"한 느낌이라는데, 이 책의 제목("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다!")가 전달하는 바도 같은 취지 아니겠습니까. 그 뒤에 더 쎈 말도 나옵니다. "철 없는 젊은 날은 죽어야 한다!(p88)"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고, 나중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고 한 조직의 리더가 될 젊은이라면 일단 강해져야 합니다. 강하지 못한 자는 결국 남에게 짐이 되고 민폐만 끼칩니다.

"사람은 많고 할 일은 없다(p107)." 이 비슷한 제목, 아니 어찌 보면 정반대되는 구절로 책 제목을 단 김우중씨의 예도 있었지요. 조선 시대에도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어떤 고관이 그런 말을 한 적 있다고 합니다. "조정에 사람은 이미 많고, 자리는 부족한데 유생들은 이 점을 모른다. 글 잘 하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세상은 그때와 별로 달라진 바 없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에는 내가 세상 최고의 인재인데, 세상은 관심도 없습니다. 세상이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그게 아니라 젊은이들이 제 주제 파악이 덜 되어서입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 어느 교수님, 고시 채점, 출제위원을 지내신 분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여러분, 아니 세상이, 어른들이, 무슨 자네들의 부형(父兄)이 아니라고!" 이런데도 누울 자리를 못 보고 발을 뻗는, 아무데서나 미친 어리광을 부리는 이들이 꼭 있습니다. 대접은 받고 싶고, 정작 지는 남들 대접 해 주기 싫고, 참 답이 없죠.

p140 이하에는 "꼰대"에 대조되는 "빤대"가 있습니다. 주인정신이 없고 하인 노릇만 간신히 하다 조직을 떠나는 군식구를 일컫는 말입니다.  저 역시 읽으면서 "이게 꼭 젊은이들에게만 해당될까?"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저자께서도 혹 오해 하지 말라는 듯 "빤대는 나이와는 원칙적으로 무관하다"고 책 중에서 말씀 하시네요. 그래도 1) 빤질거린다(p142 이하에서 저자가 직접 쓰는 표현들입니다) 2) 괜히 삐딱하고 반항적이다 3) 기존 질서를 무시한다 같은 특징들이, 아마도 나이 든 세대에서는 좀 찾기 힘든 특징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뒤에 나오는 4번, 5번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요. 여튼 저자가 하는 말은, 너희들은 신세대가 되어야지 "빤대"가 되면 안된다는 겁니다. 어른들도 어른이 아닌 "꼰대"가 되어서 안 되는 이유가 같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많이 합니다. 그런데 같은 말을 놓고도 요즘은 쓰는 사람마다 그 숨은 의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저자는 p149 이하에서 이를 두고 재미있는 분석을 시도합니다. 젊은이들은 "그래서 어쩌라구? 나이만 먹으면 다냐?"라며 대드는 뜻으로 해석하며, 시니어들은 반대로 "난 아직 죽지 않았어. 연부역강,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기력도 강성해지고 의지도 굳어지며 일처리 솜씬 전혀 녹슬지 않았거든?" 라는 뜻으로 이 말에 기댑니다. 후자의 태도는 사실 젊은이가 보기에도 좋습니다. 이런 시니어들을 보면서 "야 나도 정말 정신 차려야겠다. 난 나이 먹고 저 정도가 과연 나올 자신 있나?" 싶을 때 진정한 자기 계발도 가능하니 말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나이 젊은 건 자랑이 아니다."라며 젊은이가 경각심을 갖는 "세번째 의미"라고 말합니다(p149).

이 책에는 방탄소년단, 특히 그 중에서 김남준에 대한 일종의 저격도 있습니다. 특히 이 대목이 재미있어서 주의 깊게 읽었는데요. 전 전혀 몰랐는데 "난 세상에서 자기계발서가 제일 싫어,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개소리들" 같은 가사를 그가 읊조린다고 합니다. 비교적 젊은 편인 저도 전혀 모르는 사항을, 요즘 가수들 랩이든 가사든 참 알아듣기 힘든데 그걸 찾아가며 들어는 보신 그 열정에 일단 박수를 보낼 일입니다(관심 없으면 이런 시도도 못합니다). 더 읽어 보면 저자는 사실 김남준을 저격한 게 아니라, "같은 말을 해도 BTS가 하면 감동이고, 우리가 하면 꼰대질이냐?(p194)"며 메신저가 아닌 메시지에 더 집중하라고 합니다. 사실 이 말씀은 김남준의 메시지에 대한 부분 긍정이기도 하기에 그의 팬이라도 별로 불편해할 건 아닌 듯합니다만 여튼 재미있었습니다.

이 책은 대책 없는 꼰대 예찬론이 아닙니다. 책 말미에는 "꼰대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며 일종의 자성론까지 전개됩니다. "리더가 되면 왜 꼰대가 꼭 되어야 하나?(p251)" 근거 없는 자기 확신, 자기 도취가 이런 현상을 낳는데 이는 나이와는 사실 무관합니다. 젊은이는 가진 게 없고 아직 성취한 바가 부족하므로 이런 폭주는 잘 않지만, 사람 나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신에 헛바람만 든 미친 광대, 리더 코스프레를 하는 미친 녀석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알라(p240)"는 충고를 베풀 필요가 있죠.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저런 충고도 훈계처럼 해 주지 말고 "제안하듯(p286)" 하라고 합니다. 심판하지 말(p267)고, 말허리를 자르지 말(p280)고, 자신의 청년 시절을 돌아보라(p265)"고 합니다. 책 뒤에는 YQ테스트가 있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젊음지수를 잴 수 있다는군요. 결국 이 책은 "꼰대가 되라"는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젊은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되 그들이 배울 게 있는 멋진 선배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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