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 - 유럽에서 찾은 공정하고 행복한 나라의 조건
안철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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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저자는 과거 V3라는 백신을 만들어 한국의 많은 유저들을 컴퓨터 바이러스의 공포로부터 구해 준 고마운 분입니다. 그래서 한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거의 위인급인 인사시죠. 이후 서울대 융복합 대학원 원장도 역임하시고, 2011년경에는 정치 참여를 선언한 후 시골의사 박경철씨, 시민운동가 박원순씨 등과 감동적인 이벤트도 연출하신 적 있습니다. 그때로부터 어언 9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이상하게도 그 시절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듯합니다. 그 동안 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네...). 지금 이독후감을 쓰는 저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일들 중 상당수를 기억하지만 여기서는 책 내용에 대한 말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책은 상당히 예쁘게 짜여져 있습니다. 그리 두껍지도 않고 휴대하기 좋은 사이즈일 뿐 아니라 안에는 컬러 화보까지 여럿 들어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 몇 달 전 저자께서 베를린 마라톤 대회를 네 시간 대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완주하시고(저자께서도 이제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이시죠), 그에 대한 소회를 담은 책이 먼저 나왔었는데 아쉽게도 저는 그 책은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 아쉬움이 따로 들 만큼 이 책이 예쁘게 나왔다는 뜻입니다.

책에는 에스토니아 이야기가 초반부에 제법 길게 나옵니다. 저자는 에스토니아를 그저 개인적으로 방문한 게 아니라(물론 겸손한 분이지만요) 전직 정치인으로서 정당 대표로서의 무게가 함께 실려 있어을 텐데, 그 와중에도 여튼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현지를 돈 것 같습니다. 에스토니아는 이차 대전 와중 강대국 소련에 의해 강제 합병된 발트 3국 정도로만 우리가 알지만 사실 그간 치열한 역사를 겪었지요. 그 중 저자는 그들이 이뤄낸 경제 기적에 대해 주목합니다.

저자는 이 나라 "국가최고정보책임자"의 지위에 있는 시쿠트란 분을 만납니다. 우리로 치면 차관급이라는데 나이는 35세로 매우 젊은 편이고 저자 역시 정치에 한창 열중이실 때 "젊은 국가 젊은 지도자"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국가최고정보책임자"라면 오해를 살 수 있는데 무슨 과거의 안기부 같은 첩보, 수사기관이 아니라 기업에도 마련되곤 하는 CIO를 가리키며, "정보"는 말 그대로 IT라고 할 때의 그런 정보를 가리키네요. 이 나라가 현재 멋지게 수행 중인 정보 통신 혁명을 이끄는 지도자 중 한 분입니다. 책에는 이분이 저자와 함께 찍은 컬러 사진이 실려 있는데 마치 저자와 일정 부분을 공유라도 하듯 소탈한 이미지입니다.

저자 역시 성공한 IT 기업의 초창기 CEO답게 최근의 화두인 AI에 대해 유익한 제안을 제시합니다. 1) 공공영역의 활용 2) 민간 부문을 적극 도울 것 3) 인력 양성 4) 법제 마련 등의 네 가지인데(p29), 이들 중 어느 항목 하나라도 과연 현재 한국에서 잘 실현되는지는 지극히 의문이죠. 1990년대 대호황을 누렸고 현재까지도 한국을 먹여 살리는 반도체는 앞선 시대에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공학계로 몰렸고 이후 이 인재들이 삼성 등 대기업의 엔지니어로 맹활약했기에 가능했지만 과연 지금은 어떨까요? 획일화한 교육을 타파한다며 어설프게 건드린 교육 제도가 과연 최소한의 작동이라도 하는지 걱정이 될 뿐입니다.

에스토니아는 기후가 온화하지만 위도상으로는 러시아와 나란할 만큼 북쪽에 자리한 나라입니다. 여기서 꽤 멀리 떨어진 스페인도 저자는 방문했는데 이 정도면 정책 순방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바르셀로나 하면 그저 명문 축구 클럽만 떠올리기 십상이지만(당장 저부터도), 최근 이곳 카탈루냐가 경제적으로 번영하며 본국으로부터 분리 독립까지 운운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또 바르셀로나 하면 MWC가 열리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저자 같은 분이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이곳을 찾을 리 없죠. 여기서 저자가 주목한 건 중국 화웨이의 약진, 그리고 삼성 등의 상대적 위축입니다. 저자는 이른바 "경제 생태계의 조성"을 주장하며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하는 시스템을 비전으로 제시한 분이었죠. 그 점을 유의하여 이런 대목은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음으로는 포블레노우를 방문하는데 이곳은 "카탈루냐의 맨체스터"라고 일컬어질 만큼 한때 섬유산업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p75). 그러나 저자가 내린 진단은 "지금에서야 러스트 벨트의 일종일 뿐"인데, 사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이를 (유능하다고는 해도) 미래지향적 지도자라고야 할 수 없고, 또 (저자가 존경하는) 마크롱 대통령과 다툰 적까지 있는 사람이지만(이 책 저 뒤 p174 이후에 본격적으로 프랑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분 역시 미국의 러스트 벨트에 잘 어필하여 그곳 표를 효과적으로 결집하여 대통령까지 된 바 있습니다. 해법과 철학은 다를망정 지도자라면 "좌절한 (따라서 분노한) 노동자 계층"을 어떻게 위로하고 재기(...)에 성공하게 할지를 일단 고민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대안이 나온 건 아니지만 여튼 책에서 그런 고민과 사려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카탈루냐와는 척을 진(?),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 마드리드가 다음 바방문지인데 사실 알고 보면 마드리드 분들도 진보적인 이들이 많고 따라서 바르셀로나의 좌파적 지방분권주의에도 역시 일정 부분 지지와 공감을 보내기도 합니다. 여튼 여기서 저자가 주목한 건 시민 참여 형태의 민주주의 시스템인데 그 중 하나가 "디사이드 마드리드"입니다. 이 부분 설명이 자세한 편인데, 만약 우리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직접 민주주의에로의 건설적 진전이 이뤄질까요, 아님 편향적인 "정치충"들의 난동으로 소모적인 갈등만 증폭될까요? 모를 일입니다. 여튼 그가 가는 곳마다 주목한 부분은 "IT와 민주주의의 만남"입니다.

한국 진보 진영에서 틈날때마다 대안으로 제시하는 좋은 예가 "몬드라곤 협동조합"인데 이 책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실 이 예는 너무도 장점이 많아서 진영의 좌우를 불문하고 일단 도입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나 들 정도죠. 하지만 현실은, 나라마다 풍조와 사정과 사회 구조가 달라 일률적으로 좋은 성과가 나기는 힘듭니다.

책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느껴진 건 좋은 정책 자체보다 그 정책을 만들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좋아서가 아닐까 싶다(p111)." 이 말을 뒤집어 살피면, 사람들이 겉으로는 아무리 좋은 명분과 정의를 내세워도 속에는 비틀리고 음흉하며 남을 모함하고 헐뜯는 악한 마음만 가득하다면, 세상에 둘도 없을 좋은 제도를 도입해 본들 말짱 헛수고란 결론도 나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게,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 특졍 진영에서 내세운 메시지만 좀비처럼 외우고 다니며 악(惡)을 전파하는 주구자들입니다.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고생입니다만 이 와중에도 한국의 건강보험은 잘 정비되어 돌아간다는 게 중평입니다. 저자 역시 의사이시고 서울대 의대를 나온, 보건의료 분야 한국 최고 엘리트이신 분입니다. 스페인의 제도를 보고 한국 건강 보험 시스템의 여러 문제를 안 떠올릴 수 없으셨을 텐데, 사실 이 제도는 특히 의사들의 불만이 매우 큰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일단 "당장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증가하는 게 문제는 문제"라며 다수 대중이 직면한 고충에 먼저 눈을 돌리는군요. 여기서도 그는 IT 플랫폼의 도입 필요성을 지적하는데 우리 독자들은 저 앞 p95로 다시 돌아가서 저자가 "디사이드 마드리드"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독후감 앞부분에서 저는 마치 1980, 90년대식 교육제도가 큰 장점이나 가진 듯, 현재의 이도저도 아닌 제도가 최악인 양 슬쩍 암시하는 듯 말을 했습니다만 이는 독자인 저 개인 생각일 뿐이고 저자는 뭐 거의 180도 다른 입장입니다. 그 좋은 예가 p164에 나옵니다. 저자는 핀란드를 방문하고 각자가 각자의 취향과 비전에 맞는 "행복한" 교육을 받는 현장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산업 역군"을 길러 내는 구시대적 획일화 제도에 머물러 있다는 거죠. 본인도 그 제도의, 어찌보면 가장 큰 수혜자이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 확실히 존경스러운 면입니다.

한때 저자는 "극중주의"를 내세운 적 있는데 극우도 극좌도 아닌 철저한 중도 실용 노선이 살 길이라는 뜻에서였죠. 말은 좋지만 과연 실행이 잘 될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 의문이었는데 이 책 p174부터 그 프랑스 탐방기가 펼쳐집니다. 사실 프랑스 같이 예쁜 나라는 직찍 사진만 봐도 즐겁지만저자는 관광하러 프랑스에 가신 게 아니기에 책 문장 하나하나에는 실천적 고민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방불 일정에는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 대사의 큰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는데 이 대목에서 독자인 제가 괜히 다 고마워지기도 하네요 ㅎㅎ

프랑스는 본디 (구) 서독과 더불어 출산율 최하로 유럽, 아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라인데 프랑스가 저럴 무렵 우리는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중후진국 중 하나였죠.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가 되어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니,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이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1년 전쯤 문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가 뜬금없이 이 질문을 던져 모두를 당황하게 했는데 사실 그 양반이야 그 나름 절실한 마음으로 던진 질문인 터라 마냥 황당해할 일도 아닙니다(그 기자가 안철수 노선이란 뜻은 절대 아닙니다. 분위기상 그분 개인의 소신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튀는 질문을 던질 정도면 오히려 문 대통령에 대한 열혈 지지자일 가능성이 크며, 내가 존경하는 분이니 나의 이런 절절한 심정을 알아 달라는 취지였을 수 있겠죠). 여튼 여기서 저자는 현 정부의 피상적인 태도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합니다.

이어 독일 방문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는(사실은 "방문"이 아니라 장기 체류에 가까웠습니다) 독일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첫째 공동체 정신이 강하다. 둘째 합리적 과학적 실용적이다. 셋째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p232). 그가 주목하는 건 특히 "분열, 분단에서 성공적인 통합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그들의 저력"이었습니다. 남쪽 체제조차 조화롭게 영위 못 하고 내분상을 보이는 우리가 특히 참고할 대목이 많겠죠. 저 둘째 특성에서 그는 "유독 가짜 뉴스가 적은 독일의 상황"까지 연역해 내는군요.

책 곳곳에서 그는 "미국식 모델보다는 유럽식"을 주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독일식을 선호하는 듯합니다(물론 분야마다 다르지만). 얼마 전 하버드의 크리스텐슨 교수가 타계했지만 이 책에서 안철수 저자는 "파괴적 혁신보다는 점진적 혁신"을 더 높이 평가하네요(영어가 아닌 독일어로 개념어 제시를 해 주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가 만난 베르크호프의 한스 기스만 박사는 "독일의 통일을 복제해서 한국의 통일 모델로 삼으려는 태도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p256).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어떤 국가의 시스템이 좋다고 해서 무턱대고 모방하려는 자세는 사대주의일 뿐 아니라 위험천만하기까지 하며 이 점 저자가 유념 중이라는 걸 알 수 있네요. 저자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도 방문하여 예쁜 사진을 독자에게 선사합니다.

사진 구경만으로도 뿌듯해지지만 정책에 대한 고민이 엿보여 좋았던 책이고 특히 후반부 독일에 대한 여러 시론과 단상이 유익했습니다. 책 제목에는 "미래"가 들어가 있고 이 단어는 안 저자가 여태 정당 활동을 하며 여러 번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바 있습니다. 현재 저자는 다시 창당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나 역설적이게도 당명에 미래가 빠져 있고, 엉뚱하게도 이 단어는 여태 그와 별 접점이 없던 보수정당이 가져간 채 간판의 일부로 쓰게 되었습니다(이 책이 막 나올 시점만 해도 아직 없던 사정이었죠). 본인은 지역구 불출마를 공언했고 현재 신당의 지지세로는 비례대표 1번 당선도 힘들다는 분석이 있으나, 여튼 그의 참신한 문제제기와 순수한 열정, 정책 제안은 여전히 귀 기울일 부분이 있습니다. 그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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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과 갈등없이 잘 지내는 대화법
강지연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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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어린 사람들과 잘 소통하면서 지내야 "꼰대"라는 소리를 안 듣습니다. 꼭 "꼰대" 소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거나 시니어로서 속한 조직, 집단이 잘 운영되려면 원활한 소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1990년생들에 대해 일단 저자가 서문에서부터 지칭하는 단어는 "요즘 애들"입니다. 사실 199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31,, 32 정도이기 때문에 어느 관점에서도 "애들"은 아닙니다만 저자분부터가 1970년대 후반생이라고 밝히시고 그 정도 연세라면 1990년생이 "애"로 보이는 건 당연하죠. 또, 조직, 단체라면 1990년생들이 이제 갓 대리 꼬리표를 떼어갈 무렵이므로 젊은 세대에 속합니다. 여튼 97학번(저자분)이 본 90년생의 특징은 "당차고 직설적이다"인데, 사실 저자분이 속한 X세대도 당시에는 어른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고대 문명 어느 흔적에도 "요즘 애들은 말을 안 듣는다"란 말이 적혔다고 하니 세대 간의 갭과 갈등은 인간 사회의 영원한 숙제 중 하나겠습니다.

"연애를 책으로 배웠냐?"는 말은 핀잔이지만 사실 자신이 이해 못 할 대상을 책으로라도 배우는 건 최소한 차선책 정도는 됩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보면 백승수 단장 입으로 "모르면 책으로라도 배워야지 모른 채 계속 버틸 겁니까?"라고 하는 말이 있죠. p37에서는 90년생을 책으로라도 이해하는 게 한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럼 어떻게 책으로 이해할까? 저자는 2030이 고른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았는데, 대부분이 수험서였고 소설가 김영하의 책이 한 권 끼어 있는 정도였다고 하네요.

90년대 학번이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뭐다 해서 겉멋만 잔뜩 부리고 공부는 등한히한 세대일까요? 저자는 여튼 스펙쌓기에 찌든 게 불쌍하지만 여튼 공부는 열심히하는 애들 정도로 규정합니다. 미래 세대가 그 앞세대보다 공부를 파고들며 직장 업무건 무엇이건 대비를 하는 습관이 들었다면 그 사회는 확실히 희망이 있는 사회입니다. 저 역시 확실히 요즘 20대가 더 분석적이고 더 냉철하며 정치 이야기를 할 때에도 진영 논리에 덜 매몰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저자분이 전공이나 직분이 직분이라서 그런지 책 중에는 권위 있는 심리학자의 이론이 분석틀로서 자주 등장합니다. p50 이하에는 에이미 에드먼드슨이라든가 바에, 프레제 등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혁신적 생각을 낼 수 있게 장려되어야 한다"거나 "리더들이 유연하고 지원적이라야 하며, 구성원들은 자기 일에 통제적이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는 특히 70년대생(대부분 관리직일)에게, 절대 권위적, 강압적으로 굴지 말고 부하 직원들을 도닥이며 그들이 자발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요즘 직장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쳇바퀴를 돌리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직원이 신이 나야 양질의 성과가 나며, 사장이 어쭙잖게 자신의 복제품, 수족, 충견을 굴리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그저 자율성 강조에 그치지 않고, "심리적 안정"까지를 강조하는데 마치 누나나 엄마가 애들을 돌보는 듯한 마음씀이 느껴지더군요.

최신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물론이고 책에는 공자의 가르침도 논거로 인용됩니다. <논어>의 위정편에도 나오듯, 이순이 예순을 가리키는 나이라는 건 남의 말을 듣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p64). 저자는 다시 학자 최현섭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순으로 소통 수단의 비중이 형성되는데, 듣기는 가장 취하기 어려운 태도이면서도 비중만큼은 가장 높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남의 말을 듣는 건 참 어렵지만, 젊은 세대 역시 나이 든 사람이 자기 말을 경청하면 고마워할 줄도 압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말을 듣기만 하면 체면이 상한다든가, 권위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p74에는 "마틴 등의 학자"를 인용하며 그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유머의 분류를 시도합니다. 이에 따르면 관계지향(상대와 내가 모두 좋은), 자기고양(일단 자기 만족), 공격(타인 비하), 자멸 등 네 가지 패턴이 있다고 합니다. 후배들이 상사의 마음을 사기 위해 구사하는 "자기 비하 유머"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피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라고 하는군요. 아무튼 저자의 결론은 "자기 스타일과 위치에 맞는 유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가 인용한 "마틴"은 아마 캐나다 심리학자인 Rod A. Martin 교수인 듯합니다. 뒤의 참고 문헌 목록에 안 나와서 제가 찾아봤습니다. p297에 나오는 장원순, 이만제 박사 등의 연구도 한번 참고할 만하겠습니다.

"질문의 기법이 중요하며, 잘 제기된 질문은 성과도 높이고 관계를 향상시킨다"는 결론은 여러 책에서 일찍이 강조된 바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p133 이하에서 "질문 잘하는 방법"을 여럿 제시합니다. 저자가 주로 인용하는 책은 테리 파뎀의 <애스킹>인데 이미 읽어 보신 분들은 서로 비교하면서 이 책 저자분이 특히 90년생과의 소통에 어떻게 변형, 응용하는지 살펴 봐도 좋을 것 같네요. 폐쇄형 질문은 여러 사람에게 던져서 한 가지 대답(혹은 정해진 대답 중 하나)이 나오는 것입니다. 개방형 질문은 답이 간단하지도 않고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책에서 강조하는 건 "단답형으로 나올 뿐 아니라 관계에 아무 진전이 없는 기계적 질문은 지양해야 한다"에 가깝습니다.

요즘은 드라마 같은 걸 봐도 "리액션 전문 캐릭터"가 조직(극중 가상의)에 따로 배치가 될 정도입니다. 사회에서 적절한 리액션이 매너임은 물론 자신의 의사를 다음 번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필수라는 점을 다들 자각한 결과라고 봐도 되죠. 그 리액션에 이를테면 "영혼이 담겨야 한다(p138)"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때 적극적으로 선호를 표시하되, "이랬어야 한다"는 식의 평가, 판단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도 하네요. 앞에서도 "성원들의 자신감, 심리적 안정감을 북돋우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 대목에서도 저자는 "그래? 잘했어!"라며 여튼 후배들 기를 살려 주는 쪽으로 가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애들 키우는 식입니다. 헌데 그게 상급자, 선배, 시니어의 의무 중 하나죠.

무조건 칭찬이면 장땡이냐? 책의 취지는 일단 칭찬해서 나쁠 게 없고, 칭찬 안에 여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쪽입니다. 칭찬을 듣는 상대방은 기분이 우쭐해지거나 방심, 나태해지는 게 아니라, 이후의 성과에 대해 압박감(p141)도 느낀다는 거죠. 이런 결론은 아마 나이 든 세대가 크게 동의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떨까요, 그들이 사람 상대하던 세상, 세태가 지금은 많이 바뀐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애들은 이렇게 대해 줘야 오히려 내가 기대하던 쪽으로 간다는 거죠. 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어서 말이 안 통하는 젊은 X도 있긴 하더라구요.

"인간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싶어하며, 기본적으로 자기 주도적이다(p193)." 책에는 90년생을 상대할 때 유념해야 할 어떤 일관된 원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율성과 주도권을 주고 시작하라는 조언이라고 독자인 저는 이해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하는 건 가족을 부양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주변 동료들에게 기 안 죽고 떳떳한 사회 성원으로서 제 몫을 한다는 걸 확인시키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사회 생활이 그저 마지못해 고삐에 이끌여 밭을 가는 가축의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화로 상담을 할 때에도 "중소기업..." 이야기만 나오면 바로 감정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는데 이건 그만큼 자기 존중감이 낮다는 뜻입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지난 상담 이력을 살펴 보며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는데 이건 그만큼 우리 회사(중소기업이든 뭐든)가 구멍가게와 달리 쳬계 잡힌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걸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겁니다. 당연히 상대방도 "이 회사 제대로 된 회사군."같은 인식을 하며 더 많은 존중을 보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부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하고 더 많은 책임감을 갖고 창의성을 보다 발휘하는 건 다 위에서 어떻게 도닥거리냐에 달려 있죠. 전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전폭 공감했습니다.

90년생들과 잘 소통하는 건 그들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내 일을 잘하고 내 의도가 보다 잘 먹혀 들고 성과를 더 내기 위한 수단도 됩니다. 사람과 소통을 수단으로 보라는 게 아니라, 이게 나와 아무 관계 없는 무슨 남의 집 아들딸 좋은 일 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결국 나 좋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90년생들은 분명 그 이전 세대와 다르며, 다른 만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이게 꼭 90년대생에 한정된 게 아니라 사람 일반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게 애초부터 정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간 우리 사회가 고도 성장만을 추구하며 뭔가 왜곡된 부분이 있었는데, 합리적인 세대가 등장하며 그런 병폐가 하나 둘 고쳐지지 시작하는 거죠. 여튼 소통은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안 되고, 상대를 이해하는 게 나를 결국 위한 거고 조직이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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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방성대학 - 고광률 장편소설
고광률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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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세상에 설령 사기업이라 해도 순리와 합리성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그 성원들이 온전한 협력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는 건 수십 년 전에나 통하던 사고 방식입니다. 하물며 기업체도 아니고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시장바닥의 난맥상을 능가하는 게 바로 대학에서 펼쳐지는 복마전의 지옥도입니다.

복마전이라는 말은 <수호전>에 실려 유명해졌는데 말 그대로 악마들이 진을 친 건물이라는 뜻입니다. 대학을 일컫는 명칭은 "상아탑"이란 게 있는데 그 우아하고 숭고한 학문 탐구의 장을 아름답게 일컫는 취지죠. 그런데 21세기 한국의 대학은 아직도 비리와 세력 다툼과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하는 수가 적지 않습니다. 이 소설 속의 "일대"가 그런 곳을 대표라도 하듯 픽션을 통해 자신의 치부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일광대는 지방 사립대인데 과거에는 향토사학인 인근 중명대(p58)에 빛이 가리는 초라한 위상이었으나 중명대가 비리로 크게 명예가 실추된 후로는 상대적으로 더 주목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디테일은 아마도 실제 모델이 있었기에 작가님이 이처럼 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려낼 수 있었겠거니 짐작도 합니다만 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반면, 일광대는 이름부터가 화투짝의 어느 패를 연상케 한다며 작명 과정에서 반대가 있었다느니 하는 후일담은 순전히 픽션이겠지만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핵심이 되는 사건은 의대 편입 기준 완화를 놓고 학생들과 학교 측 간에 벌어진 투쟁입니다. 투쟁이 투쟁의 정해진 노선만 가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학 내부의 온갖 해묵은 병폐가 드러나고 말썽이 몇 배로 커져 수습 불능이 되어 가는 과정에 소설의 재미, 혹은 풍자의 포커스가 놓입니다. 본래 의대가 어디 하나 신설되고 안 되고 하는 문제가 지방대의 사활, 아니 지방 자체의 큰 이해 관계를 좌우하기 때문에 이런 소동이 실감도 나거니와, 사실 지방에 살지 않는 이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중대한 이슈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 속에서 가상의 의대생들은 어렵게 공부해서 학교에 들어왔고, 그런 자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이런 문제에 민감해지는 게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그런 의대생들은 같은 캠퍼스를 쓰는 나머지 "지잡대생"들을 우습게 볼 뿐 아니라, 심지어는 다른 단과대 교수들에게까지도 정당한 존경을 표하지 않습니다. 까까머리(삭발 투쟁 때문에)를 가리기 위해 쓴 모자를 끝까지 벗지도 않고, 심지어 투쟁과는 무관하게 씹던 껌도 그대로 질겅질겅 씹어 제칩니다. 학생 대표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걸로 나오는데 아직 순수해야 할 젊은이가 벌써부터 기득권 논리에 물 들어 추태를 떤다는 암시가 곁들어진 대목이겠습니다.

부패 사학 재단과 학생들 사이의 대결 구도뿐 아니라, 교수진 안에서도 암투가 횡행합니다. 총장은 설립자의 아들인데 설립자는 건설업으로 큰 재산을 일군, 지성과 교양과는 꽤 무관한 위인입니다. 그 아들은 최고 수준의 의과대학을 나왔다는 말로만 묘사되다, 소설 중반쯤(p190)에 가서 대화 중에 "하바드"를 나왔다고 나옵니다. 재미있는 건 대화가 아닌 본문 중에서는 하"버"드라고 표기되는 곳(예컨대 p196)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이야기인데, p195에서 "갓대잇"은 아마 "갓댐잇"의 오타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님의 말투가 구수해서, 한숨이 푹푹 나오는 개탄스러운 사학 비리 이야기가 주는 재미 외에도 다른 흥밋거리가 많았습니다. 대머리를 묘사하던 중 "아이스링크처럼 번들거리고 횅한" 같은 우스운 푷현도 있고, p33에 보면 "교주(校主)"와 "敎主"를 이용한 말장난(동음이의어)도 나옵니다. 요즘 특정 교단의 행태가 이슈가 되기도 하는 터라 이런 대목이 더욱 심상찮은 느낌도 던져 주고요.

이런 사학에서 대개 총장직 등이 가문 내 세습이 이뤄지는 게 보통인데 이사진뿐 아니라 총장 등의 측근으로 수십 년 동안 암약한 측근들이 나중엔 실세로 군림하며 "교주"들도 어쩌지 못할 세력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주시열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주시열을 비롯한 네 명의 보좌진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비리의 중핵으로 나오는데 이들을 일러 극중에서는 (성씨를 따) "주고박고"라는 별명(p109)을 붙입니다. p56에 보면 이런 사람들을 일러 "무능하거나 양아치"라고 규정하는 대목이 있는데 사실 양아치들이 그 나름 유능하게 착시를 유발할 때가 있지만 알고 보면 무능한 자들입니다. 무능하니까 남들 합법적으로 할 일을 구태여 불법으로 하는 거죠.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어서 어느 선에서 멈출 줄을 모름을 비꼬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말 탄 주인 못지 않게 (저 "주고박고" 같은) 경마잡이들의 탐욕과 추태가 독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경마잡이"라는 말이 p26에 그대로 나옵니다. 어원은 한자어 "견마"지만 현재 표준어로는 "경마"가 사용되며, 물론 경마(競馬)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말입니다. p100에는 "모노륨"이란 말이 나오던데 참 오랜만에 들어 보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작품은 건조하게 메시지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보듯 생생한 디테일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생들이 시위를 할 때 외치는 구호 중 "학생이"에서는 길게 빼고, "주인이닷!"에서는 짧게 끊는다는 등 시위 현장에서 직접 관찰을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설령 관찰을 해도 잘 모르고 넘어갈) 세부 묘사가 많아서 재미있었네요. p156에서 사무처장이 어떤 때는 말투가 고어투가 된다거나, 끝에 괜히 "요"를 붙인다든가 하는 대목이 그랬습니다.

비리 사학은 평소에 담당 공무원들과 잘 지내야 한다든가, 접대를 소홀히해서는 안된다든가 하는 운명적 애환(?)이 있지만 그 외에도 지역 언론사와의 관계가 돈독해야 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비리 사학 못지 않게 이른바 사이비 언론인들의 작태가 자세히 나옵니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피상조"인데, 그는 고작 보험영업사원이었으나 탁월한 수완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언론인 대접을 받는 위상에까지 오릅니다. 하긴 과거에 호텔 지배인(아, 물론 대단한 직입니다만)에서 국가 정보 기관 2인자(사실상 1인자)까지 한 분도 있었지요. 여튼 이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촌철살인의 풍자가 들어 있는데,

"작은 글로 큰 돈을 어떻게 버시는지...(후략)"
"칭찬으로 들었는데 비아냥으로 들리는군요?"
"갑에게 비아냥대는 멍청한 을도 있던가요?"

같은 대화가 그것입니다(p177). p187에 보면 특히 이런 지방 비리 사학에서 이른바 "자활단"을 꾸려 저항하는 교수들은 비주류 언론사(책에는 "통신사"라고 나오는데 통신사는 더 특정한 곳만을 가리키므로 좀 어색합니다)에 공을 들인다고 합니다. 이유는 "주류" 언론사는 이미 비리 사학의 편이라서 그렇다는 거죠. 이런 대목을 보면 지방 소규모 언론사의 역할도 분명히 따로 존재한다는 점 확인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가 소중한 거겠고요.

작가님의 이야기가 구수하다 보니 온갖 분야의 어휘가 신명나게 동원되기도 하는데 군사용어인 중심, 종심을 거론한 대목(p162)도 그렇고, 아랫사람들을 교묘히 이간질시키라는 뜻(부친의 노하우)에서 "분할 통치"를 언급한 대목도 그렇습니다. p155에는 "시건 장치"라는 말이 나오는데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만 쉽게 말해 잠금장치라는 뜻입니다.

교육이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아주 안 될 건 없겠습니다만 적어도 교육의 본 취지가 무색해지고 천박한 돈벌이, 돈놀이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 작품 p190에 보면 대화 중에 "니네 총장, 아니 사장"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 사장, 그 중에서도 악덕 사장인지 총장인지 모를 위인들이 교육계를 더럽힌다는 게 가장 큰 문제죠. p105에 "사업체"라는 말로 직접 풍자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p127에 이른바 "정성평가, 정량평가"를 각각 "엿장수 맘대로, 구색으로 숫자만 맞추기"로 신랄하게 후려치는 대목은 독자 속이 다 시원해집니다.

소설은 처음에 공민구의 부친상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에피소드가 생각 외로 의미심장한 것이어서 중반 p170 이후에도 "고등학교도 채 못 나온 분이 자격증 다섯 개나 땄다는 건...." 같은, 죽은 부친을 애틋이 기리는 장면이 계속 나옵니다. 그 조부는 부친과 달리 교육에 무관심한 위인이었는지 이를 특별히 언급하기도 하는데, 여튼 이런 디테일이 그저 풍자, 고발 일변도로 가기 쉬운 전개에 일종의 휴머니티를 더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어떤 대목에서 "차라리 1980년대, 선과 악이 분명히 갈려 투쟁하던 때가 좋았다"는 곳도 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머리 빡빡 깎고 시위하는 젊은 의대생 대표, 그리고 이들을 필사적으로 막는 비리 사학 간의 대결 구도에서도 과연 누가 완전히 나쁘기만 한 건지 쉽사리 판단이 안 된 채 그저 난장판으로만 돌아가는 모습이 씁쓸하죠. 현실이 이 픽션과 매우 닮았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더 답답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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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 - 마음과 행동을 결정하는 사회적 상황의 힘
로버트 치알디니.더글러스 켄릭.스티븐 뉴버그 지음, 김아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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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의 중요성은 그 무엇보다도 앞에 놓입니다. 관계가 틀어지면 조직 안에서 개인의 성공과 승진도 불가능합니다. 2차 집단이 아닌, 가족과 같은 정과 의리가 앞서는 곳에서도 관계에 멍이 들면 감정에 상처를 입고, 나아가 아무 일도 못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얼핏 보아 비이성적이고 이해 못 할 일도 그 원인을 "관계"에서 바로 찾기도 합니다. 우리가 당연히 알아야 할 이런 관계에 대해 그러나 속 시원히 해명해 주는 가르침은 매우 드물게나 접할 뿐입니다.

관계의 본질을 안다 해도 이를 일상에 바로 적응할 수 없다면 모처럼 알게 된 지식이 큰 쓸모가 없을 수 있습니다. 이 분야 세계적인 석학인 로버트 치알디니와 동료 학자 두 분이 함께 쓰신 이 책은 학자가 아닌 우리 같은 일반인도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필치로 쓰여졌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정확성과 권위, 가독성 등이 모두 중요한데 이 모든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책은 한 해에 손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쉬운 방법으로 어려운 지식, 지혜를 터득하는 건 분명 큰 행운이겠습니다.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대중을 위한 교양서와 교과서는 하다못해 생긴 모습(속을 들춰 보면)부터가 다른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는 누가 봐도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분야를 어려워할 걸 고려해서 예를 많이 들어 주고 최대한 쉽게 쉽게 써 주는 걸 보면 또 대중서 같습니다. 교과서를 읽어 가며 한편으로 입가에 미소를 짓고, 한편으로 무릎을 치게 되는 건 정말 오랜만의 체험 같았습니다.

몇 년 전에, 한참 게임에 몰입해 있는 PC방의 몇몇 어린 유저들을 대상으로 갑자기 전원을 내린 후 그 감정적 반응을 다룬 TV 뉴스가 큰 화제가 된 적 있습니다. 관계에 "공격성"이 얼마나 깊이 끼어드는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재미있게 따져 볼 만한 문제이겠는데요. 책 p106에서는 "사람과 상황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해 사례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었지만, 같은 일을 맡겨도 어떤 사람은 잘 해 내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분명 서투르게 대응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에게 다른 일을 맡겨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이러니 어떤 사람을 어느 상황에 어떻게 쓰느냐가 모든 성패의 갈림길이라는 진단이 타당성을 갖습니다. 앞서 PC방 실험(?)의 예를 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어떤 학생은 대뜸 욕부터 내뱉지 않고 분명 침착하게 대응했을 겁니다. 왜 같은 상황인데도 (같은 사람들이) 다르게 반응하느냐에 대한 의문은, 이 책 곳곳에서 다양하게 해명됩니다.

이 책의 특징은 "A의 답은 B!"라며 하나로 단정하지 않는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그러면 더 헷갈리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대단히 미안하게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은 "관계에 서툰 사람들(따라서 이 책을 꼭 읽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이 딱 하나만 고정될 것 같으면 사람 사는 세상에 관계가 그처럼 꼬일 이유가 애초에 없습니다. 이 책은 과연 그 점을 통찰했는지, 비슷한 상황(어떤 경우에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양한 해법을 (일찍이 연구와 실험을 통해 증명된 대로) 제시합니다.

문제가 하나라도 답은 여럿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열 길 물 속보다 복잡한 사람 마음이기에, 어떤 경우에는 해법 a, 다른 경우(라고는 하나 사실은 거의 같은 경우)에는 해법 b를 우리가 융통성 있게 골라 쓸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상황과의 관계로 치환하여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게 이 책을 읽고 얻은 소중한 가르침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빚는 상황은 결국 상대의 심리에 대한 통찰로 이어집니다. 우리 동양에서 공자, 맹자 등은 군자의 처신 덕목중 하나로 겸손을 꼽았는데, 미국 사회심리학자들이 쓴 이 멋진 책에서도 결론은 여튼 같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자랑쟁이"를 싫어하고, 기본 룰에 어긋나는 걸 알면서도 자랑쟁이를 때로는 비겁한 방법으로 협공하는 게 용인됩니다. 룰은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자신의 감정적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공동선 추구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자랑쟁이"는 응징되는 게 보통이라는 점은 확실히 흥미롭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문제를 이론적, 실증적, 과학적으로 짚어 보며 "과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독자가 가장 속이 시원한 건 자신이 여태 알던 상식과 "학문적 결론"이 일치할 때입니다.

열심히 사회 속에서 룰에 따라 목표를 추구하는 건 사회적 동물의 숙명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도 "성공(명예)의 사다리"를 타는 건 야심 있는 젊은이들의 열띤 경쟁의 장이 되었습니다. p348이하에서 책은 성공을 위한 경쟁과 집단 내 관계의 우호성 사이에 놓인 묘한 상관관계를 파고 듭니다. 동성 내 관계에서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더 서열 우위를 뚜렷이 정하려 들고(따라서 긴장이 더 커집니다), 반면 여성은 (여성들끼리만 있을 때) 더 평등 지향적이며 우호적입니다(그래서 여자 동성 친구들끼리 떠는 수다가 더 즐겁다는 거죠). 그러나 이성을 두고 각축이 벌어질 때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적대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결론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우리 속담이 있죠. p406에서는 :사랑 싸움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는 제목 아래 커플 관계에 주의해야 할 점 여러 개가 제시됩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데 "피곤해!"라고 답하기보다는 "내일이 어때?"라는 식으로 최대한 상대의 요구와 자신의 것에서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한국의 부부, 오래된 연인들은 마치 오래된 관계인 만큼 나의 이 정도 직설적 반응은 상대가 이해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듯, 본심보다 더 과장되고 퉁명스러운 표현으로 거절합니다. 그러니 상대는 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고, 이런 실망은 최초 발화자에게 몇 배는 배가된 채로 전가되는 것입니다. 죽어라 하고 싸우는 파탄의 갈등이 이런 사소한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건 한편으로 어이가 없고 한편으로 너무도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누가 누굴 돕습니까? 자기 위치에서 자기 할 일이나 제대로 해야죠." 이 대사는 최근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극중 백승수 단장이 인상적으로 빚은 구절입니다. 책 p442에는 "도움(자선)은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 (오히려) 상처를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나를 외면하지 않고 도움을 베풀어 준 사람에게 짜증을 내거나 열등감, 원한 따위를 품는 경우가 꼭 있고, 그래서 "인간 못된 건 잘해 준 이에게 역으로 앙갚음을 한다"는 말도 있나 봅니다. 책에서는 내들러 등의 연구를 통해, 성별, 상황, 자존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자선에 대한 거절, 상처"의 양상을 재미있게 분석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더러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어이없는 패악질에도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윌리엄 골드만의 어느 소설을 보면 주인공 중 한 명이 감금되어 극한의 고문을 당하면서도 "생각의 조절만으로 이런 고통을 극복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설령 인간에게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사람은 전체의 0.00000...1%도 안 될 것입니다. 책 p502에도 그저 생각만으로 어떤 괴로운 상황을 극복하거나 고통의 조절이 가능할지를 놓고 정말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논의를 더 흥미있게 이해하려면 그보다 좀 앞 p460 이하에 나오는 "공격성 있는 성원"에 대한 파트를 심도 있게 읽을 필요가 있더군요.

우리가 직장에서 "꼰대" 때문에 피곤해들 하죠. 이른바 꼰대 스타일은 대개 권위주의적 성격에 의해 발현되는데, p540 이하에는 어떤 조직에서도 나타나곤 하는 "권위주의"에 대해 자세한 언급이 있습니다. 권위는 필요하지만, 권위주의는 필요하지 않다는 말도 있는데 혹 권위주의가 절대악이라고 쳐도 조직에서 일거에 없애기란 매우 힘들 겁니다. <스토브리그>에서도 재송그룹 권일도 회장의 권위주의를 추방하는 건 아마 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고, 그 유능한 백승수 단장도 결국 현실과 타협했던 게 이런 이유입니다.

이 책은 관계의 미묘한 점과 그 배후에 깔린 사회 성원들의 "심리"에 대한 책이지 무엇의 선악과 당부를 재단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단죄하기보다(그럴 권리는 없습니다) 까다로운 상황과 관계를 잘 핸들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상대의 "마음"을 읽고 바른 소통을 해야 합니다. 책의 과제는 주로 여기에 놓여 있고, 괜히 명작이다 고전이다 칭찬하는 게 아니라서 어떤 단정을 자제하면서도 결국은 독자가 답에 대햔 "감"을 잡게 쓰여졌더군요. 두고두고 곁에 두고 읽을 책이며, "아 그래서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구나"를 연구하게 돕는 책이지만, 결국은 "타인이 아닌 내 자신이 이래서 이런 거구나" 같은, 자신을 먼저 성찰하게 돕는 책이라서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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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테라피 - 서민금융연구원장 조성목이 전하는 금융 치유서
조성목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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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란 병이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방법론을 말합니다. "머니 테라피"란 그럼 무슨 뜻일까요? 아마 돈이 없어 곤궁을 겪는다면 그 사람에게 돈을 마구 퍼다 주는 식으로 그 병이나 상처를 깨끗이 낫게 할 수 있겠으니 이보다 더 쉬운 치유법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안이한 처방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만큼 엄혹하고 팍팍합니다. 관계가 파탄 나고 싸움을 벌이고 사람을 죽이고 몸에 병이 나는 모든 비극이 알고 보면 다 돈 문제에서 기인합니다. 암에 걸린 사람도 아마 어디서 큰 돈이 생겨 그간 생긴 근심걱정이 해소된다면 물리적 증상까지 차도가 생길지 모릅니다. 그러니 어쩌면 머니 테라피야말로 죽어가던 사람도 일으켜 주는 궁극의 처방인지도 모릅니다.

여튼 돈을 퍼붓는 식으로 돈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옛 속담이 있는데 요즘 나라는 이런 걸 해결해 줘야 진짜 나라 대접을 받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돈을 마구 찍어내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되고(그랬다가는 문제를 몇 배는 악화시킵니다) 어디에선가는 아무 이유 없이 놀고 있는 돈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급히 융통해 준 후 나중에 그 대가를 받는 식으로 수혈이 유효하게 이뤄지는 편이 낫습니다.

이 책은 이른바 "서민 금융 전문가"이신 조성목 선생이, 한국의 제도와 시스템을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 감으로서 "돈 때문에 죽어가는 서민과 중소기업"을 구해 내는 처방전으로 쓴 책입니다. 과연 그런 문제에 처방전이 있기나 할까 싶었으나 읽어 보니 우리의 현실이 이런 심사숙고의 산물로 크게 개선이 되겠다 싶어서 놀라웠습니다. 우리들 서민들보다는 국가의 정책 당국자들이 먼저 유념해야 할 바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1993년작 영화 <데이브>(우리 나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이걸 표절했다는 논란이 한때 크게 일었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에 보면 온 국민의 영웅이 되는 "가짜 대통령"이 그런 인기를 얻은 비결이 고작 "전국 직업 소개 시스템 구축"입니다. 상상의 빈곤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지만, 결국 국가가 하는 일은 자원의 수급을 잘 맞추는 과제로 요약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는 남아돌고 어디서는 크게 모자라는 걸 서로 연결시켜 주는 일이 그리 말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며, 이런 것만 잘 해결되어도 사회가 훨씬 나은 곳이 된다는 게 놀랍습니다. 하물며 "돈"의 문제야 길게 말해 뭐하겠습니까.

돈이 없으니까 서민들은 사채를 끌어 씁니다. 사채는 급할 때 돈을 꾸어 주니 일단은 그것도 고마운(?) 일을 합니다만 그 대가가 너무도 큽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나중에는 일가가 번개탄을 피우고 목숨까지 끊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일만큼은 정말 근절되어야 하는데 불법사채업자만 단속한다고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재미있는 건 이 책 저자께서 한때 "저승사자"로 불렸다는 사실입니다(p135). 누구에게? 사채업자, 금융 사기범 등에게 그랬다고 합니다. 금융감독원에 계시면서 특히 이런 악질 경제사범에게 철퇴를 내리는 조치에 앞장 서셨는데, 여튼 결론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태생부터가 교화 불능인 인간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 역시 상황의 산물이었습니다. 서민 금융 시스템이 부실하거나 아예 부재하니까 희생자도 생기고 서민을 등쳐 먹는 못된 놈들도 생기는데 알고보면 이들 역시 광의의 피해자입니다. 저자님 같은 "저승사자"에게 걸려 전과자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근본 문제는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딱 필요한 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돈을 쓸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얼마 전 박영선 장관의 주도로 P2P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무슨 파일 불법공유 프로그램도 아니고 금융에 웬 P2P냐 할 분들도 있겠습니다. p77 이하에 개인 간 금융 활성화에 대한 아주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활성화된 제도라고 합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소셜 미디어라고 하듯이 이런 시스템도 소셜 금융이라고 부른다면 훨씬 그 뜻이 쉽게 이해되겠습니다. 사실 금융의 실패는 기존 금융기관들이 노력 부족이건 무능이건 시스템의 근본 한계이건 간에 개인의 신용을 정확히 파악 못 하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을 못 해 준다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그런가 하면 돈을 빌려 줘선 안 되는 불량 기업에게는 속아서 돈을 빌려 줬다가 떼이기도 합니다. P2P는 이런 상황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간의 밀착관계가 보다 많은 정보를 정확히 공유하게 돕기 때문이죠.

저축은행은 과연 쓰레기인가? 실제로 저자께서는 부실 저축은행 잡는 저승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저축은행에 의심의 눈길을 보낼 건 아닙니다. 이 제도 역시 제1금융권이 해결 못하던 문제를 어느 정도 풀어 주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죠.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강조하는 건, "우리 나라는 중금리 금융 시장이 부실해서 이 모든 문제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의 저축은행은 물론, 몇 년 전 화제가 된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의 활성화, 나아가 핀테크의 여러 혁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DSR 규제는 양날의 칼입니다. 이를 방만하게 운용하면 가계의 부실만 커지고, 너무 강하게 조이고 들면 결국 불법 사채업자만 배를 불리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데 들어둔 보험이 있으면 여태 납입금이 꽤 될 경우 이를 바탕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이 역시 보험사가 우선적으로 해 줍니다. 문제는 이런 DSR 규제에 보험까지 포함시킨다면, 즉 (논란이 되고 있는) 보험약관대출현황 공유가 이뤄진다면 가계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p221)합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가 발생하면 "때려잡아야 해! 전면 금지 시켜야 해!" 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극단적인 조치를 요구하곤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마땅한 문제도 있겠으나, 특히 시장 제도와 관련한 것은 보다 융통성 있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금융은 누군가에게 돈을 무상으로 퍼 주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필요할 때 잠시 융통해 주는 것이며 이에는 적정한 대가의 지불이 반드시 따릅니다. 효율성을 해하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 공정성까지 담보하게 되는 이런 멋진 정책적 대안에 대해 정부 당국의 전향적 태도가 꼭 필요해지는 시점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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