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성 - 사이코패스의 심리와 고백
리하르트 폰크라프트에빙 지음, 홍문우 옮김 / 파람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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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광기는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발생하고, 여러 가지 패턴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광기가 반드시 성(性)과 관계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상당수는 성과 밀접한, 그리고 이상한 방법으로 관계가 있겠습니다. 광기와 성이 이처럼 긴밀한 관계를 갖는 걸 보면, 언젠가는 성적 이상 발현(흔한 말로 "변태"라고 하는 것)으로 모든 광기를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물론 전혀 아닐 수도 있죠). 혹, 만약 그런 날이 오기라도 한다면, 아마 그 훗날의 연구자들은 이 고전에 큰 빚을 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드 후작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욕구, 행태로 당대에 큰 물의를 빚었고(현대인의 관점이라면 N번방 저리가랄 만큼의 극악무도한 범죄), 그 결과를 책으로 쓰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폰크라프트에빙은 점잖은 의사요 학자였습니다.

이 책은 처음에 라틴어로 쓰였다고 하는데, 라틴어가 국적 불문 유럽의 모든 학자에게 필수 교양이었고 학술서가 쓰이는 언어였던 건 이때로부터 몇 세기 전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러니 꼭 라틴어로 쓰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구태여 저자가 그런 태도를 취한 건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임상(?) 서술이, 일반 독자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겠으니, 당국에서 검열을 통해 엄격한 제한을 가할 수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다만 책 뒤 후기에 보면, 이 책은 "독일어 원전"을 다시 프랑스어로 옮긴 판본을 한국어로 번역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사드 후작의 책도 대략 8, 9년 전에 한국 문체부에서 판금 조치가 내려졌던 걸 해당 출판사가 소송을 해 바로잡은 적도 있습니다. 이 책 역시 한국어로 쉽게 쓰여진 걸 보면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많이 불편해지는 대목도 있습니다만 여튼 고전을 읽는 자세, 공부하는 태도로 읽어낼 수 있는 책입니다.

책날개에 보면 체자레 롬브로소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아마 학부때 법학, 그 중에서도 형법학을 공부했다면 귀에 익을 듯합니다. 공교롭게도 그때로부터 백 년 전쯤에 베카리아라는 학자도 큰 업적을 남겼는데 이분도 퍼스트 네임이 "체자레"입니다. 여튼 롬브로소는 p91 하단 등에서 다시 인용되는데 이 책이 학술 고전이라는 점 독자들은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에 대한 보고(report) 형식입니다. 그 중에는 저자가 직접 치료하고 상담했던 이들의 케이스가 많은데, p121에 보면 ".... 나는 (저자) 폰크라브트에빙 박사의 책을 읽고 도움을 받아 ..." 라는 대목도 나오죠. 책에서 이른바 자기 언급(self-reference)이 등장하는 건 언제 봐도 흥미롭습니다. 여튼 이 고백에서 사례자는 "... <톰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읽고(물론 우리가 잘 아는 그 스토우 부인의 소설입니다) 성적 흥분을 느꼈다..."는 충격적인 진술도 합니다.

특히 주인공 엉클 톰 등이 채찍질을 당하는 대목에서 그러했다는 건데(...), 우리는 한숨이 나오죠... 뭐 여튼 이 책에서 잠시 다른 대목을 보면 p171에서 채찍질에 쾌감을 느끼는 여러 다른 시대의 사례가 다뤄집니다. 중세에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참된 종교의 오의를 탐구한 이들을 가리켜 편타고행자라고 불렀는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도 잠시 언급이 나오며, 댄 브라운의 메가셀러 <다 빈치 코드>에도 flagellation, flagellist가 나오죠. 원서로 읽으면 이 단어들이 그대로 언급되니 예전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p97에는 카트린 드메데시스의 악행을 언급하며 혹시 이것(성 바르톨로뮤의 학살)이 그 여인의 뒤틀린 성향에 기인하지 않았는지 하는 암시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광기, 성적 좌절, 분수에 넘는 비뚤어진 권력욕, 터무니없는 과대망상,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 열등감,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의사 결정 등이 분명 어떤 식으로건 정신 분석의 대상이 된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 가장 깊은 기저에 "성"의 문제가 깔려 있을 수도 있고요.

이 책에는 자위행위에 대한 언급이 아주 자주 나오는데 이 패턴이 당시에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취급되던 풍조를 반영하는 듯합니다. 가톨릭에서는 죄로 취급하여 고해성사 때 고백할 항목 중 하나며, 만약 알고도 언급이 없으면 모고해로서 그 자체로 독립된 죄가 되죠. p71에 보면 "수음의 치명적 결말.." 같은 표현에서 분위기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중세 수도사들에게는 이것이 큰 죄였죠.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는 "지나치지 않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들 봅니다.

또한 p289 등에서 "...후천적 동성애는 진단하기 어려운 편이다" 같은 서술이 있는데 역시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보던 당대 컨벤션의 흔적입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만약 어떤 정치인이 요즘 젠더 이슈 관련하여 이런 발언을 하면 아마 진보단체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p292에는 여성 동성애를 암시한,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유명한 작품이 도판으로 나옵니다. p286에 보면 "드물게나마 아동에게서도 동성애가 (성도착의 일환으로서) 발견된다"는 서술도 나옵니다. 이런 건, 후천적, 선천적 두 패턴 중 의사인 그가 무엇으로 분류했는지 궁금하네요.

폰크라브트에빙 박사의 시대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범죄로 취급받는 행태도 나오는데 이른바 소아성애입니다. 이 외에도 이 책엔 여러 충격적인 패턴들이 분석되고 서술됩니다만 차마 이 서평에 자세히 옮기기는 망설여집니다. p529에 보면 "'소도미아'라는 용어를 법률가들은 혼란스럽게 사용하는데... "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사실 법률가뿐 아니라 언어학자, 성경학자 등도 혼란스럽게, 모호하게 사용하는 건 같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경멸스러운 행태를, 자국이 아닌 먼 이방에서 유래했다며 문제를 회피, 왜곡하는 건 흔히 보는 모습인데, 일부 학자들은 이란 등 근동에서 구태여 사례를 찾았고 이 페이지에서 인용하는 폴락 등의 학자가 보인 태도도 그러합니다. 소도미는 동성애를 뜻하기도 하지만(구약 창세기에서 소돔인들의 요구. 참고로 이 무대 역시 중동이죠), 수간(bestiality)을 뜻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이유형의 여성들이 주로 개를 선호한다며 파리의 불독 사건을 예로 들기도 합니다. 우리 동아시아에도 포송령의 <요재지이>에 비슷한 사건이 나옵니다.

성 관련 외에도 저자가 의사이다 보니 성과 직접 무관한 다양한 증상(?)에 대해 언급합니다. p133에 보면 "사두증"이 나오는데 마치 머리의 한쪽 면이 뱀의 그것처럼 평평한 증세라고 하네요. 이 비슷한 걸로(아니 훨씬 심각한 병으로) 조셉 메릭이 앓은 "상피병" 같은 것도 있죠. 머리가 평평한 게 병이라면 동아시아의 현인 공자 역시 머리가 평평해서 이름이 구(丘. 언덕)이었는데 이분도 환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p137에는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에 나오는 여러 충격적인 대목, p140에는 그 유명한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작품에서 나오는 징글징글한 묘사를 놓고도 저자의 분석이 이어지는데 재미있습니다. 이런 태도가 이 이른 시기 이미 고전의 한 전범을 확립했다고도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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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경제 전쟁 - 세계 석학들이 내다본
리처드 볼드윈.베아트리스 베더 디 마우로 엮음, 매경출판 편역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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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전세계가 고통에 신음합니다. 엊그제 빌 게이츠가 "세계 3차대전"에 작금의 상황을 비교했습니다만 그보다 훨씬 앞서 이 책의 저자, 세계의 석학들이 이미 "전쟁 상태"를 선언하고 우리 시민들이 어떻게 사태를 대처해야 할지 자세히, 친절히 조언해 주고 있더군요. 분량은 220쪽 정도이지만 폰트가 작기 때문에 내용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또, 매 챕터가 마치 기업의 상급자에게 올리는 보고서처럼 분석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읽다 보면 마치 독자가 중요 포스트를 차지한 고위급 인사 같은 착각이 듭니다. 하긴, 요즘 상황이 엄중하니 일반 독자가 읽는 책도 각 잡고 쓴 텐션이 느껴져야 제격일지도 모릅니다.

"신속하게, 그리고 무엇이든 최대한으로." 리처드 볼드윈과 베아트리스 베더 디 마우르 교수의 첫번째 아티클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단어는 "평탄화"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급격히 솟아오르는 확진자 그래프"의 높이를 보고 경악한 적 있습니다. p20에는 누적 확진자 수에 대한 그래프가 나오는데 이게 원 숫자가 아닌, 그에 로그를 취한 값입니다. 너무나도 가파르게,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니 한정된 공간에 제대로 그래프를 그릴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로그값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겠죠(이것도 어찌 보면 기술적 측면에서의 평탄화입니다). 어떻게 이 그래프를 진정시키겠습니까? 평탄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당장, 당장" 억제 정책을 집행하지 않으면 재앙을 막지 못합니다. 이 챕터에서, 신속하게 액션을 취한 나라는 평탄화의 추세를 보여 주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그래프가 천장을 찌릅니다.

누구든 최대한의 신속한 조치로 상황을 진정시키고 그래프를 달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는데 그건 바로 "돈"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한국 역시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조달할 것인가, 아니면 (김종인 씨 등이 주장한 것처럼) 기존 예산 항목 변경을 시도할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이 책 해당 챕터의 저자들 역시 1) 유럽연합 예산 안에서 재분배하는 방법, 2) 예산 외에, EU 회원국이 분담하는 방법 3) 팬데믹 채권을 새로 발행하는 방법 등이 논의되는데 사람 사는 곳은 달라도 생각이 미치는 범위는 비슷하다는 점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동시에, 머리를 아무리 짜내고 짜내어도, 기발하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안이란 참으로 나오기 힘들다는 점도 다시 새기는 중이네요.

제이슨 퍼먼 박사는 "사람이 먼저이며, 경제는 그다음"이라고도 합니다. 마치 한국의 어떤 정치인이 예전 선거에서 내세운 구호도 떠올리게 합니다만 역시 실행 방법이 무엇이냐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짚는 "정책의 근본적 제약"은 세 가지입니다. 불확실성, 시간, 역량. 이 중에서도 저는 "역량"의 문제야말로 정치인의 자질과 실력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라고 생각이 드네요.

사자성어에 "과유불급"이란 게 있지만 책에서는 정반대로 말합니다(왜? 경제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했으니까요). 즉, 미미하고 느린 조치보다는 차라리 과도한 조치가 낫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가능하면 기존에 마련된 매뉴얼이나 방법에 의존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로 FDR의 실험이 결국 10년 간의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실례를 듭니다(사람은 실험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대응 과정은 다각화하고 어느 한 방법에만 기대지 말라고 합니다. 정부 주도보다는 민간의 참여가 낫고(한국의 현 정부가 "민간 기부"를 기대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활발하고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잊지 않습니다. 그 외, 시민들에게 인당 최소 천 달러 정도를 현금 지원하라는 말도 있는데 이 사항은 트럼프가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현재 집행 중입니다. 책이 훨씬 이전에 쓰여졌다는 점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래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거죠).

과감하고 신속한 정책을 집행해도 언제나 비평가들이 우려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느 사회건 "제도를 악용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책에서는 이를 가리켜 도덕적 해이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글까요? 찰스 위폴로즈 박사는 "도덕적 해이를 무서워하지 말고, 병목 현상은 초기에 찾아내어 제거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우리는 지금 경제위기를 걱정해야 하며, 금융위기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입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도덕적 해이에 대해 더 주의를 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며, 위기의 종류와 본질이 다르니 역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속시원한 충고였습니다.

코로나 위기가 세계를 뒤덮었고 그에 따라 증시도 휘청였습니다. 한국만 해도 순식간에 시총 상당액이 증발하는 등 이러다 나라가 망하지 않나 싶었지만 참여자들(특히 개미들)이 성숙하게 대응하고, 일부는 오히려 역으로 공격적 매수에 나서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시장이 안정되었습니다(놀라운 일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게 금모으기 운동과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국민과 소액 투자자들이 국가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게 다름 아닌 애국이죠. 책에는 물론 한국의 사례가 나오지 않습니다만 각국의 증시 현황(책의 출간 시점이란 한계가 있으므로 대략 2월 28일까지의 상황이 언급되네요)이 차분히 분석됩니다. p81에 나오는 휩소 패턴이라는 걸 우리 독자들은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p85에는 "위기 극복을 위한 열 가지 열쇠"라는 아티클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파트가 가장 인상적이고 유익했습니다. 저자 명의는 "샹진 웨이"인데,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없고 우리 동아시아식으로 성씨를 먼저 읽으면 "웨이샹진, 위상진"입니다. 유명한 분이죠. 짧으면서도 강력한 글인데 제가 통째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pp.86~91)

1) 급속도로 퍼지기 전 준비하라
2) 국내 공급이 부족하면 여유 있는 국가로부터 수입하라
3) 중환자실 병상을 충분히 확보하라 (우리도 초기에 대구에서 병상 부족으로 고생한 적 있죠)
4) 바이러스 확산 방지 방침을 분명하고 빠르고 단호하게 대중에 전달하라

대략 여기까지만 봐도, 두어 달이 지난 시점에서 왜 한국이 모범 대처국에 속하며 현재 피해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은 편인지 감이 옵니다. 마치 미리 이 책을 읽은 듯, 당국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했다는 점을 우리도 넉넉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단, 저자는 아홉째 조언에서 "각국이 독자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여러 나라들이 동조적으로 조치하는 편이 낫다"고 하는데 이는 현 시점에서조차 여전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들이 미온적이고 미숙하게 행동한 탓이 큽니다.

p116 이하에서 볼드윈, 디 마우르 교수 들(맨앞의 글을 쓴 그 저자들입니다)은 앞으로의 경제 상황을 예측합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기존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이 붕괴되고, 특히 그 중에서도 타격을 받는 건 중국인데 세계의 공장으로 그간 누렸던 지위와 신뢰가 붕괴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1990년대 중후반 WTO 체제의 확립으로 세계화 추세가 가속되었으나 이제 이런 트렌드가 퇴조하고 리쇼어링 붐이 일지 모른다는 암시로도 들립니다.

볼드윈 교수와 토미우라 박사가 함께 쓴 다음 아티클에서는 "공급망을 통한 전염"을 논하는데 물론 여기서 전염이란 바이러스 전염을 말하는 게 아니라(이것도 가능은 하겠죠), "한 나라가 입은 경제적 타격과 불황의 여파가 번져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어지는 글에서 세체티와 스코엔홀츠는 "전염 효과"로서 뱅크런의 확산을 거론하는데 사실 여기까지 간다면 정말 갈데까지 간 것입니다. 여기서 이들이 강조하는 대안은, "공시를 대중이 철저히 믿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네요. 문자 그대로의 뱅크런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가 발표하는 "전염병 확산 실태"를 못 믿어서 패닉에 빠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종의 비유이죠. 정부는 언제나, 전염병 확산 실태에 대해 100퍼센트의 진실만을 말해야 사회가 붕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유로존은 언제나 주위 관측자는 물론 당사자들의 걱정을 부릅니다. "이번 위기에 드디어 유로존이 무너지지나 않을까?" 실제로 며칠 전 나온 어느 기사에서는 이탈리아인들이 "EU(중에서도 독일)이 밉고 중국이 믿음직하다"고 하는 내용이 보도되었는데 물론 어디까지 믿을지는 의문입니다. 여튼 본래 하나의 나라가 아니던 게 다분히 무리를 해 가며 합친 통화권이고 그예 영국이 떨어져 나갔는데 이번 코로나 여파로 또 내상이나 입지 않을지 고민이죠. 이 파트를 올리비에 블랑샤르가 썼는데 역시 읽을 만합니다.

이후에는 좀더 장기전망으로 혹시 경제민족주의가 발흥하여 무너져가던 장벽이 다시 서지 않을지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이에 대한 처방은 교역 상대국을 선진국들이 착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네요. 폴 크루그먼은 경제 부양책을 쓰는데 전혀 주저하지 말고, 최근 일본의 과감한 화폐 증발책으로 경기가 살아나는 게 좋은 예라며 거의 롤모델로 삼아야한다고까지 말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오덴달, 스프링포드의 제언도 거의 같은 취지이며, 한국 정부가 현재 취하는 스탠스와도 사실상 일치합니다.

위기를 맞아 머뭇하다간 실기(때를 놓침)하고 더 큰 재앙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이거냐 저거냐 고민할 시간에 행동을 더 많이 취하는 게 낫다는 이치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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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시슨 -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외 3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6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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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멋진 단편집입니다. 공포는 길고 긴 이야기에서도 절실히 느껴질 수 있지만, 대개는 짧고 강렬한 사연 속에서 우리 독자들을 사로잡게 마련입니다. 리처드 매시슨은 20세기 후반을 완전히 지배한 B급 장르를 예전부터 태동한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기에 아득한 시기의 고전 작가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 타계한 지 얼마 안 된 분입니다. 그래도 그의 작품은 마치 오 헨리의 그것처럼 정교하고 고아한 정격성을 풍깁니다.

"리처드 매시슨이 누구야?" 이렇게 묻는 분들도 있겠지만,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 원작자라고 하면 누구나 무릎을 칠 것입니다. 그 작품 원작(장편)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는데 독자에 따라 지루하다고 하는 분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호러 문학은 누구에게나 진입 장벽이 낮고 보편적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특히나 공포에 고유한 색깔을 꼭 입히는 취미를 가진 매시슨 같은 작가의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여튼, 장편 <나는 전설이다>에서 약간의 지루함을 느낀 독자라면, 리처드 매시슨의 입문용으로 반드시 이 단편집을 먼저 맛볼 것을 권합니다.

매시슨은 어렸을 때 영화 <드라큘라>에 지대한 영향을 입고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트란실바니아의 고성에 홀로 거주하는 드라큘라 백작의 이야기는 "일상", 특히 현대 독자의 일상하고는 거리가 매우 멀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브램 스토커의 그 고전 역시 본격적인 공포를 풍기는 건 백작이 아주 일상적인 모습으로 런던 거리를 활보하고부터입니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정상적인 가운데, 유독 몇 가지 요소가 질서와 노곤함에서 벗어나 사람을 놀라게 하면, 바로 그 지점에서 공포가 시작됩니다.

반대로 거의 모든 게 상궤에서 벗어난 작위적인 환경에서라면 (결국 사람이 미칠 수야 있어도) 진짜 공포는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테마파크 안에서, 혹은 한여름 애인과 함께 영화관에서 꺅 소리를 지르며 지레 공포에 질린 양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입니다. 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게 사람을 놀라게 하네? 이런 반응은 크기에만 차이가 있다뿐 대부분의 우리들이 매일같이 겪던 것입니다. 이런 걸 문학의 경지에까지 이끌어낸 게 매시슨의 천재젹 역량이겠고 말입니다.

예전 KBS에서 방영하던 미국 드라마 <환상 특급>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개별 에피소드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비슷한 테마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역시 놀라웠던 체험이었지요. 이 단편집은 역시 그것과 매우 비슷한 구성입니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아직 어리거나 나이에 비해 미숙합니다. 그런 영혼에게 환경은 정말 어느날 갑자기 섬뜩한 배신을 가하며, 뭔가 살짝살짝 미심쩍다고 여긴 나날의 교란과 동요는 그예 주인공에게 "진실의 순간"을 쓰나미처럼 안깁니다.

어떤 에피소드는 초현실적 요소가 거의 없는데도 독자들은 등골에 소름이 돋습니다. 이처럼 공포란, 진짜 공포란 우리의 일상에 스며 있는 것들입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어?" 괴물이라든가 딴세상의 체험 같은 건 애초에 우리에게 닥칠 일이 없기에 일상은 그만큼이나 무서운 겁니다. 때로는 일탈 없는 일상이 더 무섭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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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김태훈 옮김, 장경덕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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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서 일어선 국가의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흔히 미국을 일러 "축복 받은 땅"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한국의 어떤 시인은 "그X들 하는 짓을 보면 당장 망할 것 같은데 그 땅을 보면 천년 만년 이어질 것 같다!"고 탄식한 적 있습니다. 사실 "축복 받은 땅"은 맨입에 그들 백인에 주어진 게 아닙니다. 원주민들이 있었으나 대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했고, 사람이 살 만한 "인프라"가 깔리기까지는 엄청난 세월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미국인들은 그들의 성과와 터전에 자부심을 느낄 만하며, 그 과정에는 "비결"이 있을 만도 합니다. 물론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없을 수 없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따져야 하겠죠.

미국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각종의 혁신을 일구었기에(전기 최초의 상용화 등) 영국을 위협하며 제조업 대국으로 세계에 우뚝 선 바 있습니다. 그러나 건국 초기, 적어도 독립 초기에는 이 책 1장에 나온 대로 "상업 공화국"이었으며, 이 때문에 대서양 해안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협소한 무역 지대가 그 중추였습니다. 물론 더 남쪽의 버지니아, 더 남서쪽으로 들어가면 조지아, 앨라바마 등의 면화 농업 지대가 자리했습니다만 이곳 농업 주(state)들은 예의 동부 상업 지대와 구조적으로 유리되었다는 게 문제였죠. 이들 주는 오히려 바다 건너 영국과 경제적으로 더 밀착되었습니다.

또한 영국이나 프랑스(특히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짐은 곧 국가다"란 말이 잘 드러내듯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였죠)와 달리, 미국은 처음부터 13개 주의 연방제였습니다. 그러니 국가 중요사 결정에 있어 통일되고 신속된 모습을 보이기 힘들었습니다. 2장에서 "제퍼슨 대 해밀턴"이라 함은 이를 나타냅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조지 워싱턴을 도와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정치적 분쟁, 혹은 개인적인 다툼 때문에 어리석은 폭력에 휘말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와중에도 국가를 하나로 묶는 건 "자본주의"였습니다. 사실 자본주의의 속성은 이익과 경쟁에 따라 국민을 사분오열시키기에나 딱 알맞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만은 예외였습니다.

만약 남부가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아마 미국은 하나의 국가로서 그토록 신속한 발전을 이어나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연방제는 느슨한 주들의 연합에서 강력한 중앙 정부의 등장으로 그 성격이 변화했습니다. 동시에, 전 국가를 하나의 법률 하나의 체제로 묶게 됨으로써 서부 "개척자"들이 안심하고 현지에서 이익 추구 활동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혹여, 성격이 완전히 다른 남부 체제가 국토의 중앙에 계속 자리했더라면 이런 동력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주식회사는 본디 독일에서 맹아가 싹텄고, 심지어 지금도 가장 완비된 형태의 주식회사 규율법은 독일에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건 역시 미국이죠. 지금 한국에서 이른바 "동학 개미 운동"이라고 해서 소액 투자자들 중심으로 우량주를 사 모으는 흐름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이에서도 알 수 있듯, 본래 소액 주주란 기업의 투자, 경영에 참여하기가 힘들고, 만약 주식회사 제도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불가능했을 겁니다. 주식회사 제도가 여전히 민주화할 여지가 많다고들 하지만, 그나마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스며든 곳이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입니다. 주식회사와 가장 가깝다는 유한회사를 보십시오. 지분을 갖기도 힘들고 투명한 경영을 감시하기도 어렵습니다. 자본주의란 그저 돈 가진 이가 "위너 테익스 잇 올"하는 제도일 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 혹은 진화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이, 바로 독과점 제도의 규제입니다. 엊그제 배달의 민족 수수료 인상 과정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개입"을 시사했죠. 이런저런 말이 많았으나 이 일이 터지기 훨씬 전 저는 개인적으로 "배달 앱의 순기능은 주민센터 등 공공기관이 흡수해야 하지 않나"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튼,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는 독과점이 생기건 말건 정부가 끼어들면 안 됩니다. 강자가 독식을 하든 말든 그건 "자연 선택의 법칙"에 따를 뿐이니 말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가 멸망으로 치닫는다고 했죠! 그런데 마르크스의 예언과 아마 무관하게, 시스템을 관리하는 이들이 "이대로 가다간 망한다"고 판단하여 이런 독과점을 비교적 이른 단계에서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두고 공산주의식이라는 비판은 거의 없었던 게, 독과점의 가장 큰 피해는
소규모 기업들과 일반 소비자(노동계층과 직접 관계 없는)이 겪게 바련이니까요. "독과점'이란 비판보다는, "경쟁의 저해"가 규제의 명분이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 중 하나가 바로 "경쟁"이니 말입니다.

"본업"이란 영단어는 아마 business일 겁니다. 남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 라는 표현이 mind your own business이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사업은, 이 역시 business입니다. 따라서 "아메리칸 비즈니스 이즈 비즈니스"라고 하면, 뭔가 동어 반복 같아도 알고 보면 심오한 의미가 깃든 셈이고 약간 웃기기도 합니다. 과연 아메리카는 딴 거 신경 안 쓰고 비즈니스에만 몰두했기에 오늘날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미국이, 저자 그린스펀 등이 역설하듯 왜 성장의 동력을 잃었을까요?

그 답은 갈릴 수 있습니다. 부유층의 탐욕이 극에 달해 사회가 정의를 잃어서일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누군가가 중뿔나게 나서서 "부유층이 탐욕스럽다"니 뭐니 간섭하며 자본주의 특유의 장점을 퇴색시켜서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격도 없이) 호루라기만 빽빽 불어대면 어디 경기가 재미있겠습니까? 그렇다고 강자의 반칙과 폭주를 마냥 방치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입니다. 20세기 록펠러(라키펠러)의 독과점을 그대로 놔뒀다면 아마 미국은 그때 망했을 겁니다. 허나 인간의 지혜는 언제나 위기에서 해법을 찾았기에, 아마 그들의 미래는 마냥 침체에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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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환 시대의 한국 외교 - 포스트 팍스 아메리카나와 우리의 미래
이백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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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양대 강국이 패권을 다투는 G2 시대의 개막에 대해서는 여러 저자들이 일찍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망에 대해서는 각론이 엇갈립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포(이른바 조선족)들은 "얼마 안 있어 중국이 패권국이 될 것이며 한국은 속국이 될 것"이라고 대담하게 의견들을 내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전망이 현실이 되기에는 아직 많은 걸림돌이 남은 것도 같습니다. 이번에 전염병의 창궐 과정에서도 중국은 미숙한 모습을 많이 드러냈는데, 무슨 초강대국이 저렇나 싶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도 사람이 많이 죽었으나 그건 경우가 다르고, 원인 제공은 누가 뭐래도 중국입니다. 여튼 패권이다 강대국이다는 우리 입맛에 맞춰 등장하는 게 아니므로, 만약 중국이 정말로(ㅋ) 패권국이 된다면 우리는 그에 걸맞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겁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중국어 열심히 공부하는 중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정당성을 위한 힘, 힘을 위한 정당성" 사실 정의다, 국제법이다, 이거만큼 허망한 구호가 또 없습니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정의가 지구 구석구석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에서 살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싶지만, 적어도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힘이 곧 정의요 정의는 그저 힘의 다른 포장일 뿐입니다. 만약 아니라면 어떤 절대 불변의 정의라는 게 있어 수천 년 동안 인류를 지배했을 겁니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한때의 강대국은 반드시 그 힘을 잃고 다른 나라에 그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대국굴기> 같은 컨텐츠에서는 머지 않은 장래에 중국이 패권을 잡는다고 당당히 예언했던 겁니다. 문제는, 누군가가 앞으로 미국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중국이 되라는 법이 있냐는 것, 또 미국이 언젠가는 패권을 잃겠지만 그게 대체 언제냐는 것입니다. 만약, 아직 여전히 강성한 미국더러 "너 인제 아무것도 아냐!"라며 횡포를 부렸다간,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은 고사하고 오히려 경칩 날짜를 착각한 개구리처럼 엄동설한에 얼어 죽기나 좋습니다.

왜 국제 질서는 흔들리는가? 앞에서 저자가 말한 대로, 결국은 역학 관계의 반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러시아 같은 나라는 "원유 거래 달러 결제"의 원칙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거래를 행합니다. 이란도 미국과 불구대천 원수이니만큼 마음이야 달러 무시가 아니라 달러 소각도 주저치 않겠지만, 아직은 미국의 힘이 여전히 강하기에 그리 하지를 못합니다. 사우디는 뭐 마냥 미국의 졸개 노릇이 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힘에 굴복해서 미국의 뜻에 따르는 겁니다. 어제 뉴스에 러시아, 사우디가 서로 싸우며 미국의 비위를 맞췄다고 하는데 이게 현실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들 두 나라가 서로 손을 잡고 미국 중심의 질서를 한번 흔들어 보려 했었습니다. 지금은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마냥 장래가 밝은 건 아닙니다. 미국은 철저하게 개인 중심으로 자기 생존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인프라가 부실한 면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의료 제도지요. 반면 한국은 웬만큼 걷다 보면 무료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이 있을 만큼 적어도 이런 분야에서는 국민이 살기 꽤 편합니다.

세상은 참 묘한 곳입니다. 1990년대 한국의 어느 대통령은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했으면서 "세계화"를 부르짖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대통령의 모 측근이 장관 세 개를 하는 게 "세개화"라며 그 대통령 특유의 발음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여튼 그 시절에는 세계 경제가 미국 중심으로 분업 체계를 완성하면서, 각국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만 생산하면 그만인 이상향을 꿈꿨습니다. 이는 사실 자본주의 태동 초기의 리카도 같은 자유무역주의자가 이미 꿈꾼 세상이며, 학자들은 아마도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지만)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에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경계하기도 했지만 완전한 자유 무역이 이뤄지면 결국 증대되는 게 소비자의 후생입니다. 그런데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확고히 세워졌다고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도 그 믿음이 급격히 붕괴했습니다.

짝퉁을 팔건 뭘 하건 시장 질서에 끼워 주기나 해야 그걸로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WTO에 사정사정하여 가입했으며, 이걸로 서유럽과 미국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여 한때 잘 살았습니다. 그 전에는 시도때도 없이 닥치는 불황과 공황 때문에 국민의 원성이 꽤 높았는데 WTO 체제 이후로는 십 년 넘게 그런 일이 없었죠. 그러다가 08년에 큰 일이 터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기술 탈취, 저작권 위반 등 반칙을 일삼고 군비 확충도 도모했습니다. 작은 이익을 얻으려다 미국 등 기존 질서의 지배자들은 더 큰 것을 잃기 직전까지 몰린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일어 "혼돈 엔트로피 증가"로 규정합니다. 엔트로피 자체가 혼돈의 밀도를 본질로 삼으니 동어 반복 같기는 합니다만 여튼 무슨 뜻인지는 우리 독자들이 바로 알아듣습니다. 오히려 지난 냉전 미국 소련 대립 시기가 긴장은 높았지만 혼란의 정도는 더 낮았습니다. 미국과 소련 두 맹주가 세계의 절반을 거의 완벽하게 통제는 했고, 소련 미국 양국은 서로에 거의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이나 미국이나 경제적으로 너무 의존하다 보니, 싸우고 싶어도 경제가 무너질까 싶어 싸울 수가 없습니다. 이게 바로 혼돈 엔트로피의 증가입니다.

"어려울 때는 원칙으로 가라" 사실 이게 정답이죠. 이럴수록 국가의 책임 있고 양식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절제하고 양보하고 지혜를 짜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마다 이른바 스트롱맨이라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었기에, 그런 기대도 그 어느 때보다 갖기 힘들다는 게 또하나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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