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처럼 - 도청의 마지막 날, 그 새벽의 이야기
정도상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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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80년 5월 26일, 27일 양일간, 전남도청 진입을 앞둔 계엄군과 대치하던 어느 (가상의) 시민군의 회상을 담았습니다. 가상이라고는 하지만 작가는 다양한 기록을 참고하여 사건과 인물들을 재구성했으므로 어느 정도는 다큐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책 띠지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도청에 있는 이유는 단 한 사람, 희순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본문 p157에도 나오는데요. p157이면 소설 2/3가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독자들은 아마 (어지간히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건의 진상인지 정확히 파악 못 할 겁니다. 저 역시 그랬고 인용문에서도 "희순을 사랑한다"고만 했지 "희순이 거기(즉 전남도청)에 있어서였다"고 하지 않았는데 왜 지레짐작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튼 소설 말미에는 약간의 반전이 있다는 점 미리 말씀 드리고요.

26일, 27일 양일간의 회상입니다만 아직 젊은 청년이었던 주인공이 길지는 않은, 그러나 최근 몇 달 간 높은 밀도를 갖추게 된(?)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과거사를 회상하기 때문에 시간적 배경은 좀 범위가 넓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두 부류입니다. 하나는 가난하고 비참했던 광주의 토박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광주의 민중들 눈을 틔우기 위해 야학을 연 "강학(선생, 교사가 아니라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들입니다. 전자는 주인공처럼 밑바닥 인생들이 주류이고(공장 직원, 하급 기술자, 유명한 서방파 깡패 들이 두루 포함됩니다), 후자는 저들 입장에서 선망의 대상인 대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캐릭터로서는 아니지만 (차라리) 거대한 사건으로서 등장하는 계엄군이 있겠네요.

p57에는 "총을 맞으면 사람이 죽는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당연하죠. 그런데 저 말은 소설이 다름 아닌 5. 18의 그 급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삼았기에 더욱 묵직한 함의를 갖습니다. 전남도청에 모인 이들은 고교생을 비롯 미필자도 있기 때문에 총을 그리 잘 다루지 못합니다. 시민군이 카빈 소총으로 무장했다는 말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 책에는 "식스틴(M16을 가리킵니다)이 대학생이라면 카빈은 중학생"이란 말도 나옵니다. 그만큼 화력이 약한 게 카빈이고, 계엄군을 대체 중화기 무장 면에서나 머릿수 면에서나 당해낼 수 없습니다. 이 소설에는 기관총류로 p67 등에 "에레무지(LMG)"가 나오기도 합니다. (전 처음에 무슨 소린가 했습니다. 본문 중에 친절히 설명됩니다)

총화기의 차이를 하필 중학생, 대학생 등 학력으로 비유한 게 눈에 띄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상당수는 가난 때문에 못 배운 이가 많습니다. 무학에 한이 맺혀 유독 비유도 저렇게 든 듯합니다. p77 에 보면 주인공이 스스로를 가리켜 "대2 나이에 국졸임"을 자탄하고, 광천공단, 전남방직(p111) 등 당시 가난하고 비참했던 광주를 상징하는(그곳에 다니는 노동자들과 그들이 형성한 거리) 이름이 자주 보입니다. "가난, 무학, 자학의 수렁" 역시 주인공이 자주 되뇌는 말입니다.

소설에는 1980년대 비참하고 가난한 광주를 제유하는 현지명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p44의 학동고아원, 무등육아원이라든가 p213의 광주소년원이 그것입니다(후자는 교정 시설이라 성격이 다릅니다만 여튼). 얼마나 가난하고 핍박 받는 고장이었으면 도심에 저렇게나 시설이 많았겠습니까. 이런 곳에 대체 누가 누굴 고아랍시고 멸시하고 우월감을 느끼고 어쩌구할 여지가 있겠습니까만 한심하고 인성이 비틀린 인간이야 또 어느 곳에나 분포하기 마련이죠.

소설에는 개성 있고 향토색을 드러내는 표현이 여럿 나옵니다. p34 에는 "뉘집 자식 머기시" 란 구절이 있는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전 아무래도 이 단어가 "머시기"의 오타인 것 같습니다.  p129에 "귄이 있는"이라든가, p170의 "귄이 있고" 같은 표현이 있는데 "귄"은 사전을 찾아 보니 "귀염성"의 전남 방언이라고 하네요. 좋은 지식 하나를 배운 듯했습니다.

계엄군 진입을 대비하는 시민군의 마음가짐은 결연합니다. p32에는  "백척간두 진일보"란 말이 나오는데 말 자체야 우리에 익숙하지만 여기서는 좀 의미가 다릅니다. 즉, 벼랑 끝으로 한 발짝만 디디면 다죽는다는 뜻이며, 그래도 그 죽음이 의미가 있기에 "진일보"라는 거죠.

책 초반에 나오는 인요한은 물론 우리가 잘 아는 실제 그분이 맞습니다. 실명 그대로 나오더군요. 캐릭터로서 활약상이 나오는 건 아니고 성함이 언급되는 정도입니다. p48에는 "작가 황수영의 양림동 집"이란 구절이 있는데, 황수영이 곧 황석영이며 5. 18 당시 실제 행적과 일치합니다. p147에는 박관훈이란 인물이 등장하여 일신방직 여공 최순임과 노선상의, 그리고 개인상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장면이 있는데 혹시 실존 인물 "광주의 넋 박관현"을 이리 묘사했을까요? 저 뒤 p199에는 조순임이라는 인물도 나오는데 순임이라는 이름이 당시 광주에는 많았나 봅니다.

계엄군 진입 전야의 그 급박한 순간.... p52에는 이 종이에 적힌 글이 과연 얼마나 힘을 발휘할까? 라며 회의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p54에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또 나오고요. 이 페이지에는 "미국인 하나를 인질로 잡고 투쟁하자"는 강경한 노선을 주장하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이 소설은 상당 부분을 실제 기록을 참고하여 창작되었다고 작가가 말하므로 다 근거가 있는 묘사일 것입니다. p60에는 상우 형이 세 손가락을 펴 보이며 "앞으로 삼일만 버티면 계엄군이 알아서 물러간다고 외신 기자들이 보도했다"고 하며 시민군의 사기를 높이는 말을 하는데 물론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래야 할 때가 있죠.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기) 동네에서는 똥개도 50은 먹고 들어간다.(p113)" 이 말은 등장인물 중 하나인 수찬이, 서방파 깡패들을 상대하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동네 선배(남호)의 형수에게 담배연기를 뿜으며 도발하는 깡패들에게 수찬은 대담히, 술잔을 깨고 몸에 자해를 해 가며 맞섭니다. 결국 서방파 중간보스한테까지 끌려가서 온갖 구타를 당하는데, 그 용기와 배짱이 가상해서 그냥 풀려나네요. "니 꿈이 뭔데?" "츄레라(트레일러) 운전수요." 소설에는 남호 형과 수찬이 운전을 하며 수고비를 횡령(이른바 "삥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시 당시 생활상에 대한 생생한 묘사입니다. 당시 막 리비아 대수로 공사가 수주될 시절인데 일당이 어마어마하다며 설레어들 하는 모습이 나오네요.

주인공 노명수는 공장에 다니며 일이 힘들면 "본드를 부는 등" 절망에 가득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다 우연히 김희순을 알게 되고, 처음에는 자신과 같은 공장직원인 줄 알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게 소설 뒤에 가서 나오듯이, 사실은 김희순은 박희순이었고 대학생 신분인데 여공으로 위장 취업했던 거죠. 검정고시 통과가 고작 꿈(p67)이었던 노명수는 희순이 좋아하는 듯 보이는 상우를 질투하는데 p67에서는 아직 희순이 대학생인 줄 모릅니다. 그 뒤 p151에 가서야 우리 독자들에게 희순의 진짜 신분을 말하고, 여공이면 좋았을 텐데 대학생이고 누나라서 약간 실망했다는 말도 합니다.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여튼 그가 그리 생각한다는 거고요. p201에 다시 "형을 질투한다"는 그의 독백이 또 나옵니다. 이때는 희순이 누군지 알고 난 시점입니다.

그래도 주인공은 자부심이 대단해서 "천하의 노명수"로 자칭하거나, 별로 여성스럽게 꾸미고 다니지 않는 희순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p96에 "학삐리들은 겁쟁이"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 강학 선생님들의 훌륭한 모습을 보고도 저러네요. p100에 "설마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는 말이 나오며, 역시 계엄군 진입 직전의 조마조마한 심정을 잘 표현합니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싸워야지 그 어떤 간극도 없었다"는 문장도 있습니다(p193). "오지 마라. 하지만 피하지 않겠다." 같은 말은 얼마나 비장합니까(바로 뒤에 더 용감한 의지의 피력도 나오구요).

야학에서는 노동자가 평생 노동자로 가난하게 착취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님을 배우고, 동시에 형들과 어울리며 음악도 습득합니다. p92에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언급되는데 제가 몇 주 전 책프 리뷰에서 리처드 클레이더만 악보집을 리뷰한 적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저는 이 피아니스트가 1980년대에만 한국에서 인기를 끈 줄 알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대학생들 사이에 이미 1970년대말부터 유명했던 줄을 새로 알았어요. p85 이하에는 아주 길게 "하우스 오브 라이징 선"에 대한 토론(?)이 나오는데 저항가요로서 그리 해석될 여지가 있나 보죠. 더 넘어가면 조언 바예즈와 양희은, 김상국(!)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p82에 보면 담배를 달라는 말에 "이것들이 내가 전매청인 줄 아나?"며 우습게 받아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담배를 국가 관청인 전매청에서만 취급하던 시절의 단면을 드러내죠. "공수부대가 무서워, 아님 고양이가 무서워?(p173)" 같은 대화에서 임박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여유와 위트를 잊지 않는 인물들이 돋보입니다. 이들 중에는 커플도 많고(병규와 미서라든가) 18세 나명환처럼 고작 교련 시간에 모형 총 잡아 본 게 전부인 고등학생도 있습니다.

(이하 내용 누설 있습니다)
p183에 "나는 상우형이 갖고 있는 그런 추상을 가져 본 적 없다."는 주인공의 고백이 나오고, 이제 야학을 통해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희순은 사실 동경하던 또래 여공이 아니라 상우형처럼 자신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희순과 주인공이 사랑을 맺을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1979년 크리스마스(그러니까 5. 18 이전)에 그 둘은 연을 맺기로 약조합니다. 명수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며칠 후 열악한 주거공간에서 희순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합니다. 즉 5. 18(소설 속 현재) 당시 희순은 이미 고인이었던 겁니다. 책 한참 앞인 p36의 "내일 나는 망월의 희순과 데이트를 한다"는 말은, 알고보니 전혀 다른, 엄청난 암시가 숨어 있었네요.

희순이 도청 어디엔가에서 지금 투쟁하고 있어서 내가 그녀를 차마 떠날 수가 없다는 게 아니라, 이미 고인이 된 희순이 내게 스승으로서 생전에 가르쳐 준 그 무엇과, 연인으로서 지켜야 할 약속(5. 18이야 미처 예측할 수 없었겠지만) 때문에 도청을 못 떠난다는 뜻이었습니다. 처음에 전 러브 스토리를 기대했는데 생각 밖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만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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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워크 습관법 - 평생이 달라지는 작은 실천의 힘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김윤경 옮김 / 니들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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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과 삶(혹은 놀이)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바람직하다고들 합니다. 많은 기업들(특히 스타트업)도 직원 채용 공고문에 "우리 회사는 워라밸을 최우선으로..." 같은 문구를 즐겨 게시합니다. 직원의 개인 삶을 경시하는 회사는 이제 구직자는 물론 사회로부터도 우호적인 시선을 받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좀 다른 말을 합니다. 일과 삶이 분리되는 자체가 이미 한계가 있고, 인간은 태생적으로 일과 삶이 분리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수십 년 전 철학자 에리히 프롬 등이 말한 "인간 소외"도 크게 봐서 이로부터 비롯했는지 모릅니다. 일과 삶이 하나가 되어야 정상이며, 그 결과물이 결국 기업에서도 바랄 만한 양질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일단 나의 감정에 솔직해지라고 합니다. "아 이정도는 되어야지." "지금의 나로는 안돼." 구식 리더들은 그의 제자들에게 혹독한 연습을 시키며 "이 과정을 거쳐야만 종전의 너와 다른 인생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고 재촉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에도 일말의 타당성이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한자어로는 극기(克己), 영어로는 self-denial이라고 부르는 이런 방식은 이제 자칫하면 정신에 문제를 빚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감정에 충실하되, 나의 장점도 거리낌없이 드러내라고 합니다. 이런 작은 면에서의 변화가, 라이프워크 습관법, 즉 일과 삶이 하나되는 경지에 이르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라고 하네요. 남을 의식해서 "에이 뭘요." "운이 좋았죠." "다음에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알겠습니다!" 같은 판에 박힌 멘트를 일삼는 건, 과거에는 몰라도 현재에는 이미 낡고 뒤처진 태도입니다. 자기 긍정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는데(이 책 전체를 통해 강조하는 목표 지점 중 하나입니다), 저런 가식적이고 자기 부정적인 태도는 그저 장애물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습관을 들여야 하는가? 이 책은 챕터마다 우리 독자가 유념해야 할 구체적인 습관 프로젝트를 따로 정리하네요. 나의 평소 행동을 되돌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싫어하는 일, 하고 싶지 않은 일, (반대로) 하고 싶은 일 등의 목록을 시각적으로 정리해 두면, 나의 감정이나 나의 성격, 스타일이 더 확연하게 파악된다는 겁니다.

저자는 지난시절 사회가 개인더러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것"에 방점을 두어 교육,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인드셋이나 분위기에서는 자신의 강점에 대한 인식도 약화할 수밖에 없죠. 저자는 "라이프워크란, 가족관계나 일을 염두에 두고 취미, 동료, 시간 사용, 건강을 '나다운 행복한 삶'으로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p45)합니다. 그렇다면, 나다운 게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게 라이프워크 스타일의 첫걸음이 됩니다. "남들의 성공 사례는 그저 참고만 하는 게 어떨까? 네가 좋아하고 네가 하기 쉬워하는 일을 먼저 발견하는 게 어떨까?" 남들이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성공했기에 그게 좋아 보여 몇 십 번을 반복해서 시도했지만 결국 안 될 경우, 이럴 때엔 과감하게 포기하고 "나는 이걸 못하는 사람"이라며 인정하는 게 차라리 용기라고 하는군요.

남들따라 사는 삶은 결국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용기가 없어서라고 합니다. 내 감정을 내가 그대로 들여다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난 왜 이렇지?"라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걸 억지로 묻어두거나 왜곡하면 자기 긍정감이 생기기가 더 힘듭니다. 나의 진짜 행복은 내 행복과 내 긍정을 내가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기기에, 저자는 감정에 솔직해지고 강점을 빨리 발견하자고 제안합니다.

자기긍정감을 갖고 라이프워크를 일상에서 실현시키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상대에게, 말로 분명히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라고 합니다. 다소 뜻밖인데, 저자는 라이프워크("일과 삶이 하나되기")를 "고립된 나 개인"에서 찾지 않고, 가족이면 가족, 직장이면 직장, 이렇게 어떤 집단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라이프워크는 일종의 팀웍 발휘가 되어야 가능하다는군요. 감사를 표현 받은 상대방이 기분 좋아지는 건 당연하고, 무엇보다도 타인에게 감사를 표현하면 내 자신의 기분이 힐링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라이프워크는 상대방과 내가 즐겁게 공존하는 환상적인 팀 안에서 완성됩니다. "감사하라"는 주문은 저 뒤 p108에서도 다시 되풀이됩니다.

특히 일본에서, 혼자 힘으로 해 내지 못하고 남한테 의지하는 걸 굴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런 건 결국 상대방이나 "팀"에 민폐만 끼칠 뿐입니다. 내가 못하는 건 (앞에서도 말했지만) 못하는 것이므로 그걸 부인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걸 잘하는 팀 안의 다른 분에게 과감히 해달라고 조르고 의지하라는 겁니다. 한편 어떤 사람은 내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며 남을 못 믿는 유형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남을 잘 못 믿는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을 못 믿어서 그러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참된 자존감, 자기 긍정감이 생긴 사람은 일 배분도 잘하고 주위와 융화도 능숙하겠다는 점을 알 수 있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언제나 효율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저자는 "설렘의 원천(p85)"을 찾아내라고 합니다. 과거에 누구나, 아무리 고전하던 시기라도 "이거만 떠올리면 힘이 절로 나고 행복한" 경험을 누구나 갖습니다. 진짜 설렘은 어렸을 때, 아마도 사춘기나 그 이전일 텐데 저자는 그때로 기억을 거슬러가 구체적으로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합니다. 해 내야 할 건, 대체 왜 그게 설렜는지 구체적으로 이유까지 밝혀내는 겁니다. 사람마다 이유는 다 다르겠으나 내 자신이 솔직히 설렌 이유가 떠올리기에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이유를 밝혀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앞으로 라이프워크 스타일을 만들고 실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저 뒤 p148에는 "동기 부여는 행동력의 트리거다."라는 말도 나옵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재능을 이끌어낸다.(p99)" 못하는 일 하기 싫은 일은 포기하라고 했지만, 모든 일을 포기하고 말고가 내 마음에 달린 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든 마무리지어야 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저자는 이런 문제는 적극적으로 대처하되, 그 치열하게 문제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진짜 나"를 찾으라고 합니다. 물론 힘든 문제를 해결하면서 초라하게 고전하는 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방법을 찾으려고 진심으로 애 쓰면서 예전에는 미처 못 봤던 나의 온갖 모습을 다 보는 건 또 다른 체험입니다. 그 중에는 기특하고 신통한 면도 포함됩니다. 어려운 과제를 푸는 중이라야 이 모든 (숨겨졌던) 나의 모습들이 다 발견되는 겁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나의 장점과 매력이 분명히 찾아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돈에 쪼들릴 때, 돈을 싫어하고 부자를 혐오하는 습관이 자연스레 들 수 있습니다. 이때 그 습관에 굴복하면 영원히 인생의 패자가 된다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합니다. 인생의 매 순간에 부딪히며 승자가 되는 건 "그 불쾌하고 힘든 대상을 일일이 용서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우리는 왜 누구하고 힘든 시간을 가졌을때, 해결도 안 될 거면서(그 사람에게 원수를 갚는다는가 공개 망신을 준다든가) 그런 괴로움을 누구한테 털어놓으려고 할까요? 그렇게 하소연이나 수다를 떨기라도 해야 "내 감정이 해방되어서"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아마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내 감정이 일단 해방이 안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를 위해 "용서"가 필요하고, 그 다음은 "나에게 도움 준 사람에게 감사"하는 겁니다. 참 두고두고 생각해 봐도 맞는 말씀입니다.

저자는 전문 상담사입니다. 그래서 상담사답게 많은 내담자들을 겪어 봤으며 무엇이든 스토리화하여 문제 해결하는 방법을 즐겨 쓴다고 합니다. 저자는 사람을 1) 목표 달성형과 2) 천명 추구형으로 나누는데 1)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2)는 어떤 큰 그림이나 이정표를 세우기보다, 눈 앞에 닥친 과제를 바로바로 해결하며 인생을 채워나가는 유형이라고 하네요. 어떤 유형의 인간이든 저자는 라이프워크 스타일을 온전히 체득하는 게 수단이자 목표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질투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질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감정 처리가 미숙하고 자기 긍정감이 미확립된 인간에게는 저 둘 다 나의 적입니다. 그러나 라이프워크가 일상화된 사람에게는 둘 다 나의 동지이며, 인생의 추동력으로 어느새 바뀌어 있습니다.내가 나의 강점을 사랑하면 일과 삶이 일체가 되고, 나 주변의 모든 이들까지 행복으로 이끈다는 책의 결론이 참으로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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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냐도르의 전설 에냐도르 시리즈 1
미라 발렌틴 지음, 한윤진 옮김 / 글루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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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판타지는 처음 읽어 보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엘프 족, 드래곤 족, 데몬 족, 그리고 인간 종족이 에냐도르라는 땅에 삽니다. 엘프 족은 드래곤 족에 약하고, 드래곤은 데몬 족에 약하며, 데몬 족은 엘프 족에게 시달리는 형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세 종족 모두로부터 핍박을 받습니다. 이렇게 된 건 에냐도르의 네 종족이 마법사와 어떤 거래를 했기 때문입니다. 엘프와 드래곤과 데몬은 대마법사에게 영혼을 팔고 각각의 장점을 부여 받습니다. 대마법사는 한 종족에 최강의 무기를 판 것 같았지만 사실은 세 종족과 각각 이중거래를 한 셈이라서 가위바위보처럼 어느 종족도 다른 종족 둘을 완전 제압하고 모든 나라를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남부에 살던 인간만이 대마법사와 거래를 하지 않았기에 약점도 극복 못 하지만 대신 영혼을 고스란히 유지합니다.

유럽 역사는 토착 민족이 저 북부로부터 내려온 노르만, 게르만에게, 혹은 북진해 온 로마인들에게 정복당하는 패턴이 초기에 점철되었습니다. 아마 피정복민 입장에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듯한 잔인한 정복자들이 공존과 평화를 거부하고 자신들을 압박한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래서 소설 중 인간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 다만 판타지이다 보니 과도한 묘사는 없고 뭐 언젠가는 극복이 되겠지 하며 편한 마음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성적인 묘사는 아주 없지는 않으나 마일드하기 때문에 중학생이 읽어도 무방할 듯합니다.

아무래도 이 소설은 가장 약한 종족인 인간 부족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데, 주인공들도 거의 다 인간들(나이 어린)이며 타 부족 출신 주인공들도 결국 인간들에게 공감하고 선한 본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주인공인 인간들도 인간인 채로 계속 남아 있으면 아무 힘도 발휘 못하고 노예로 처참하게 죽기 마련이라서, 어느날 자신의 잠재력이 각성한다거나 마법사에게 능력을 받는 식으로 신분이 달라집니다. 차이가 있다면 능력은 능력대로 가지고 인간의 영혼도 그대로 간직한다는 건데 이 모두가 고귀한 운명이 어느날 제 길을 찾아서입니다.

우리 민족은 숲, 산에서 안식과 평안을 찾는 습성이 있었으며 현재도 그렇죠. 그런데 유럽 동화나 민담에서 숲은 언제나 불길하고 악마와 사악한 정령들이 거하는 공간이며 거의 항상 나쁜 일이 일어납니다. 그늘의 숲이라는 샤텐발트에서 카이는 염소와 함께 죽을 고생을 하지만, 진짜 고생은 인간이 거주하는 마을로 내려와서부터 시작되네요. 앞이 안 보이는 시련과 고난의 연속입니다. ㅠ

트리스탄도 마치 로마 시대의 검투사처럼 잡혀 와서 모진 훈련을 받는데 드래곤이나 데몬과의 전투에 (말하자면) 총알받이로 내세워질 운명입니다. 그는 야레드에게 앰플을 받는데 고통이 너무 심할 경우 자살할 용도로 쓰일 수 있고 이 독약은 비룡 와이번에게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와이번은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어느 구단의 마스코트로 쓰이는 바로 그것입니다.

아그네스는 마법사로 오인(?) 받아 엘프의 왕자에게 잡혀 와서 감옥에 갇히는데 이 감옥에선 십 몇 년 동안 끔찍한 고문을 받는 늙은 마법사가 있습니다. 매번 죽고 다음날 다시 살아나 또 죽는데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것과 비슷하네요.

잔인한 왕자이지만 그에게는 비슷한(엘프라서 너무도 아름다운) 용모를 한 쌍둥이 여동생이 있습니다. 어느날 이 여동생은 마치 계시라도 받은 양 장래의 배필을 만나는 꿈에 설레는데, 오빠는 "사랑이란, 불완전한 인간의 감정일 뿐(p236)"이라며 면박을 줍니다. 책에서 기사와 레이디, 드래곤.의 이야기를 읽었죠. 이 모든 시련은 그녀를 만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같은 스토리가 마치 그녀에게 어떤 운명을 점지해 준 것 같은데 저런 이야기는 우리 독자들의 세계에서 특히 서유럽의 어린이들이 어렸을 때 예외 없이 읽고 자란 이야기입니다. 다른 세계에서 지켜 보니 묘한 감정이 드는군요.

그런데 쌍둥이라 운명도 같이 가는 건지, 독자인 저는 이 왕자가 자기 여동생처럼 저 시골소녀 아그네스에게 어떤 감정을 느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알기라도 했는지 감옥에 갇힌 마법사 엘리야는 왕자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왕자에게 저주 받은 운명을 내리려는 속임수였습니다... 아그네스는 마구 그를 책망하지만.... 한참 뒤 p263에 보면 "야릇한 감정을 시골소녀에게..."라는 구절도 나오고! 더 뒤(p361)로 넘어가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엘프의 피를 뿌려야 결계의 마법이 풀린다는 설명이 따로 나옵니다. 결국 사랑이야말로 만능의 묘약인 셈이네요. 그런데 마법을 풀려면 (p255) "한 컵이면 충분하다"고 하는데 무슨 소줏잔 같은 컵인지는 모르겠으나 피의 양이 한 컵이면 그게 적은 건지....

"엘프 레이디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완고한" 여동생을 걱정하며, 장래 매제가 될 로리안이 제 운명을 과연 알까 하고 걱정하는 왕자이지만 독자인 우리가 볼 때에는 이런 잔인한 엘프 중 과연 완고하지 않은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지 의아합니다. 아름다운 외모가 과연 전투시에 무슨 무기가 될까 싶지만 이들의 무기는 잔인한 성품, 공감능력 결여, 타인의 철저한 타자화, 덤으로 제련 기술 등입니다. p161에 "이 종족은 모든 것이 빛났다. 내면만 제외하고는..."이라든가, p194 "호리엘의 아름다운 얼굴이 흉측하게 ..." 같은 구절, p220의 "비현실적인, 햇빛처럼 빛나는 미모" 같은 데서 이 판타지의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설정이 돋보입니다.

p259에 보면 "자유라는 향기가 그의 신체 능력 최고치를..." 같은 말이 있는데 노예처럼 억지로 끌려 가며 하는 일과 자신이 좋아서 펄펄 기가 살아 하는 일이 결과가 같을 수가 없죠. p268에 "아그네스는 처음으로 그가 제 마음에 들어오는 걸 허락했다.."고 하는데 저 앞 p127에 "적이자 주인"이란 말과 대조해서 보면 묘한 느낌이죠. "너희 인간들은 미신에 약한(p121), 겁에 쉽게 질리는(p124) 종족이며, 그러니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고 왕자는 말하는데, 이 역시 마치 정복자 민족(게르만, 노르만 등)이 약한 켈트 족, 브리튼 인을 깔보며 내뱉던 오만한 언사가 연상됩니다. 실제 역사에서 말이죠.

앞에서 데몬, 드래곤, 엘프 족이 각각 삼각 관계를 이룬다고 했지만 데몬이 엘프에게 대항하기 위해 드래곤을 의지 무력화 상태로 사육한다는 말이 p264에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전쟁이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세계관과 규칙을 이해하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겠네요. p328에 다시 각 종족의 약점이 설명되고, p367에는 종족간 임신이 가능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p382에 드레곤이 본디 수치심이 없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서 어린 독자에게는 지도가 필요하겠네요. p398에 치유 포션 이야기가 나오고 본래 potion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민담, 혹은 판타지 장르에서나 구경 가능합니다.

아그네스의 처지, 그레타(하녀)의 입장이 제일 딱합니다. p138을 보면 "만일 내 말이 사실과 다르다면 내 모든 걸 걸겠어요"고 하는데, 걸 게 뭐가 남은 그녀라고 저런 말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자존심과 영혼은 끝까지 지켰다는 건데... p374에 보면 마부 티발트(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티볼트가 생각나네요)는 고자가 된 후 자신의 행실을 변명하며 집 주인, 마을 원로 모두가 다 하길래 (나도 그녀를 범했다)고 하는데 이런 걸 변명이라고 태연히 말하는 자체가 놈의 영혼이 구제불능이라는 걸 말해 줍니다. 이 대목은 정말 끔찍하지만 장르가 판타지라서인지 그리 심각하게는 안 읽혔습니다. p282 마지막 줄, p286 첫째 줄의 아그네스는 문맥상 그레타가 맞겠죠?

p408에 나오듯 간혹 예외가 있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엘프가 있다고 하는데, 이 사랑이야말로 영혼을 잃고 사는 괴물 종족, 혹은 현대인에게 다시 초심을 찾아 줄 명약이겠습니다. 속편이 기다려지는 재미있는 판타지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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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 맡긴다는 것 - 리더가 일 잘하는 것은 쓸모없고, 일 잘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CEO의 서재 23
아사노 스스무 지음, 김정환 옮김 / 센시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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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일 잘하는 건 쓸모없고, 일 잘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 말 자체는 조금 과장되었습니다. 리더도 일을 잘해야 하고, 리더부터가 일을 못 하면 아랫사람들이 뭘 해도 소용없죠. 그러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 아무리 작은 회사라 해도 사장이 모든 일을 일일이 관장할 수 없습니다. 제갈량 역시 작은 서무까지 본인이 직접 챙기다 단명했다는 말도 있죠. 만기친람형 리더는 의외로 현대 사회에서 비효율적이며, 차라리 본인은 펑펑 놀망정 일 잘하는 사람을 각 분야에 확실하고 꽂고 전권을 위임한다면 결과가 더 낫습니다. 역설적이긴 해도 솜솜 뜯어 보면 이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죠.

일이 잘 안 될 경우를 대비해서 필요 이상의 일을 만들어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상사들을 봅니다. p30에는, 필요한 일이 10이라면 14를 만들어 직속 부하에게 시키고, 그 부하는 다시 자신의 아랫사람에게 40%를 늘려서 부과하는 리더의 예가 나오네요. 고교 과정에서 등비수열을 조금만 공부해 본 사람이면 이게 몇 단계를 거쳐서 얼마나 크게 늘어나는지 계산이 가능합니다. 조직 전체에 필요 없는 과부하를 빚으며, 사내 역량이 얼마나 낭비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게 바로 "일을 잘못 맡기는 상사의 대표적인 예"이며, 이런 사람들이 소심하기는 해서 끊임없는(필요도 없는) 보고를 요구하는 경향까지 있습니다. 한정된 인적 자원이 공회전에 낭비되는 안타까운 과정입니다.

"일을 잘 맡기라고 했지, 방임하거나 떠넘기기를 하라는 게 아니다."(p33) 책에서 권하는 건 적절한 "위임"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방임이라는 건 상대의 상황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p34) 업무를 맡기는 것이며, 떠넘기기는 일의 양, 수준, 처리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네요. 저로서는 잘 구분이 안 되는데, 아마 주관적 측면(일을 맡은 부하)을 고려하는 게 전자, 객관적 측면(일 자체)을 고려하는 게 후자라는 뜻 같습니다. 이런 실패한 리더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일까요?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성공하는 리더, 즉 이 책에서 말하는 일 잘 하는 리더는, 평소부터 부하, 타인들에게 관심을 잘 쏟는 부지런한 리더입니다. 일을 관심 있게 보는 것보다, 자기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인적 자원)의 장점을 세심히 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도 됩니다.

속수무책형 리더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가설 사고, 즉 이럴 경우에는 이렇게 하자는 사고가 몸에 밴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죠. 이런 사고를 가지려면 첫째 성과가 달성되었을 때 구체적인 이미지까지 모두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처음에 가설이라고 해서 "플랜 B. 혹은 컨틴전시 플랜"을 항상 준비하는 태도인 줄 알았는데, 그걸 넘어서서 목표 자체의 구체성 역시 요구하는 사고를 말하는 거더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모르면서 이러이러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 남 보여주기 위한 강박 루틴에 지나지 않습니다. 절실히 무엇인가를 원한다면, 그림이 막연히 그려질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 일이 안 될 때는, 그 일에 대한 분명하고 구체적인 그림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가 많았습니다.

"90년대생이 실무를 맡게 된다." 역시 일본도 한국과 다를 바 없어 실무 라인에는 이들이 대거 포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선 세대와는 성향이 매우 다른 이들의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무작정 이거 하라 저거 하라는 식으로 과업을 떠넘겨서야(혹은, 방임해서야) 일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이들(p45)이 그들입니다. 어떻게든 이 일을 하고야 만다는 식의 사고로는 그들을 이해 못 합니다. 일개인이 시대 정신에 저항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2장에서는 다양한 부하 직원 유형을 분석합니다. 독자로서 참 마음에 드는 건, 실용서에는 이처럼 최소한 상황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좀 제시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건 당신이 직접 겪어 보고 판단, 결정, 실행하라"는 식이면 책을 읽는 보람이 없습니다.

1) 업무를 완수하는 게 원칙이다. 두 가지를 유념하라고 하는데 하나는 여튼 그 직원의 특징과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여튼 일의 완수가 목적이지 "그 직원의 기분을 맞추는 게 목적은 아니다"는 겁니다(p51). 아니 부하 직원의 기분 맞추는 게 위주가 되는 상사가 어디 있겠냐고 물을 수 있으나, 조직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가능합니다. 어떤 경우는 조직을 분위기를 띄운다고 상사가 부하직원들에 끌려 다니기도 하죠. 부하에게 "너의 능력 범위 안"임을 분명히 인식시키되, 그래도 일은 일대로 마쳐야 함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충고는 마치 현장에서 선배가 들려 주듯 현실감이 있어서 좋습니다.

2) 지나치게 큰 기대를 갖지 말라. 이에는 여러 주문 사항이 포함되는데, 첫째 학력이 높다고 해도 일 못하는 사람은 못하기 마련이고 학력이 능력과 정비례하는 게 절대 아닌 점 유념하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학력 떨어지는 사람이 능력으로라도 보충을 하느냐면 그건 또 전혀 아니죠.^^ 직장에는 반드시 전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겉도는 인간, 그야말로 월급 루팡이 꼭 있기 마련이라며, 이런 사람한테까지 좋은 상사 대접, 인정 받는 건 불가능하니 적정선에서 기대를 포기하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3) 업무 성과는 인사 고과에 확실히 반영하라, 이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니, 어떤 조직이건, 일을 열심히 했는데 그게 남의 성과로 넘어가거나 멀뚱멀뚱 뭔지도 못 알아본다면 그런 조직에서 누가 열심히 하며 창의력을 발휘하겠습니까. 물론 열심히 일을 한다는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일의 결과라는 객관적 평가가 중요하죠. 또 저자는, 달성도뿐 아니라 "책임의 범위"까지도 분명히 정해서 행여 직원이 "일 다 했는데 왜 결과가 이럼?" 같은 불만을 갖지 않게 하라고 조언하네요.

이런 사원이 우리 나라에 있을까 싶지만 만약 부서 안에 배째라형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사실 이런 사람은 이전 단계에서 누가 걸러 주고 시작했으면 좋겠지만 조직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한테 폭탄이 넘겨지기도 합니다. "일상적인 업무 중심으로 맡기되 혹 사고가 나지 않는지 양을 세밀히 조절해서 맡길 것"을 주문합니다(일일이 그의 행동에 반응하지 말고). 그 불안정한 감정까지 살피라고 하니 과연 어떤 조직을 이끄는 건(팀장급 책임이라 해도) 쉽지 않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일을 그만둘 수도 있고,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업무를 (다른 인력에) 예비적으로 맡길 준비를 하되 그가 내는 사표는 마음 변하기 전에 수리하라고 하네요.

성실하기는 한데 아주 그 범위가 좁은 사원 역시 괜히 눈치를 주거나 하지 말고, 또 어차피 말을 못 알아먹으니 번거로운 말(지시)을 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것 저것 범위를 지정해서 시키라고 합니다. 일을 못하는 사원을 돕는 건 좋은데, 이런 도움을 받는 게 남한테 얼마나 폐를 끼치는 건지 확실히 인식시키라고 합니다. 과연 맞는 말입니다.

일 잘하는 사원에게도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도전적인 일을 맡긴다는 명목으로 그 부하(部下)에게 업무의 부하(負荷)를 무작정 늘려도 안 된다(p79)."고 하네요. 이 사람이 기대에 부응하려다 번아웃 증후군에 빠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디테일한 충고까지 말하는 걸 보면 저자가 확실히 경험이 많은 분입니다. 회사에 그 정도로 일 잘하는 직원을 일생에 몇 번이나 만난다고 말이죠.

여튼 유능한 상사는 사람 키우는 것도 유능하기 마련입니다. 앞에서 문제 사원의 경우 "적합한 만큼의 일을 맡기거나, 그 이하를 맡기라"고 했는데, 유능한 직원이라면 "그 이상"을 맡겨도 된다고 합니다. 단, 앞에서는 "능력치 이상의 일을 계속 맡겨서 부하를 높이는 것"을 두고 금물이라고 했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키우려면 능력치 이상의 일을 시켜 봐야 맞겠죠. 이때 저자는 "일을 함께 추진하는 것과 지도하는 건 서로 전혀 다르다"고 하며, 어떤 사람을 크게 키우려면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을 지도시켜 봐야 한다"고도 합니다.

p138에는 "상황적 리더십" 이론이 잠시 소개됩니다. 한국에도 그의 여러 자계서와 실용서가 번역되었는데 폴 허시와 켄 블랜차드의 작품이죠. 역량과 의욕에 따라 부하직원의 성숙도를 4등급으로 나누는데, 우리가 주목할 건 역량이 높고 의욕이 낮은 이가 3등급, 반대로 역량이 낮고 의욕이 높은 이가 더 아래 등급인 2등급이라는 점입니다. 2등급에는 지도형, 3등급에는 지원형으로 일을 맡기라고 하는군요. 의욕도 능력도 모두 상급인 4등급이라야 "위임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실상 이 책의 핵심 파트입니다.

요즘은 부하 직원에게 무작정 뭘 시키는 게 아니라, 그 업무를 왜 본인이 해야 하는지 납득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사 본인부터가 "왜 이 일을 다른 사람 아닌 이 사람에게 시키는지"를 납득하고 확신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건, 첫째 앞에서 말한 대로 요즘 실무진에 배치된 90년대생이 본래 그런 성향이라서이며, 둘째 (이게 더 본질적인 이유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소기의 노동생산성(p152)이 달성되는, 다시 말해 성과가 저질을 면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앞에서 소심한 리더는 방임하거나 떠맡기는 식의 일처리를 하며, 위임이 이처럼 시원찮게 되었기 때문에 혼자 초조해서 계속 보고를 받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보고는 어느 정도로 받아야 하는가, 일단 주관적 평가보다는 팩트 위주로 챙기는 게 바람직하며(p166), 정기적으로 앞에 정해 둔 몇 번의 횟수이면 충분하고, 업무 진행 상황은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두라고 합니다.

피드백의 3원칙도 유념해야겠습니다. 일선에서는 이 피드백이 너무 과하거나 반대로 부실해서 문제가 꼭 발생합니다. 1) 일을 맡긴 바로 그 상대에 대해서만 받고, 2) 감정이 아니라 의견을 소통해야 하며, 3) 문서가 아닌 말로 직접 전달하라(p174)고 합니다.

"신뢰를 만드는 건 균형감각이다."(p209) 어떤 일을 추진할 때, 자신있다거나 반대로 취약점이라고 해서 꼭 거기에만 역량, 감정을 쏟아붓는 약점은 누구도 피해가기 어렵죠. 직원 평가의 경우, 어떤 부하에게는 과도하게 신경을 써서(반드시 편애가 아닌데) 일을 마무리짓는데 거기까지는 뭐라 할 게 아니지만 이런 소문이 그 직원 입에서 다른 이들에게까지 퍼져 나갑니다. 그러면 반드시 뒷말이 생기고 조직의 분위기가 나빠지는 건 물론 상사 본인의 승진에까지 지장이 생기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업무 추진에 있어 일종의 계기판 구실을 하는 KPI, 일관성을 측정하는 PDCA 사이클 등 여러 이론적 틀도 제시됩니다. 특히 저는 마지막의 "균형감각"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에 실린 여러 유익한 충고들도, 독자가 마음에 드는 부분만 편식하려 실행할 게 아니라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도 고루고루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이 들수록 "아 이 정도도 내 마음대로 못 하나"며 오기가 발동하기 쉬운데, 그럴수록 경계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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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동산 10년 후 미래가치에 주목하라 - 서울, 수도권, 지방까지 한눈에 읽는 부동산 투자 지도
박합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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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의 미래 가치를 통찰할 수만 있다면 투자는 성공이겠습니다. 종래 한국에서 부동산 투자라고 하면, 유력한 소식통에게서 습득한 확실한 정보 따위가 거의 유일한 원천이고 동력이었습니다. 찜질방이든 미장원이든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아무개에게 얻은 소식"에 의해 동네가 들썩이는 모습을 보면 우습기도 하고 우려스럽기도 했죠. 한편으로 그래서 인맥이 중요하고 누구하고 어울리느냐가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였는데,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투자의 동인이 타당하건 아니건 간에, 대세가 그를 원인으로 삼아 움직인다면 그에 따르는 게 순리입니다. 그러나 많은 (게임)참여자들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분석 끝에 움직인다면 이제는 그를 따라야 손해 보는 투자를 면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KB국민은행에 31년 동안 근무한 PB라고 합니다. 금융 상품이야말로 감이나 대세 따위에 의해 의사 결정을 하는 게 불가능한 만큼, 금융 상품을 다루는 마음가짐과 기술로 부동산을 다룬다고 하면 뭔가 일단 믿음이 생깁니다. 책 서문에 보면 "... 2020년 4월을 기준으로, 도쿄 맨션과 서울 아파트의 가격은 일부 역전 현상을 보이고도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지표 하나만을 보고 일본의 경제력을 한국의 그것이 앞질렀다는 식의 단정은 대단히 섣부르겠으나, 적어도 고급 부동산 자산의 경우 선진국 시장의 논리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겠다는 짐작은 충분히 허용되겠지요. 물론 저자는 "... 최근 2, 3년 동안 급등세의 결과이며 진정(적정가 조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미래가치 분석"을 통한 접근법이 더욱 유효해지는 시점입니다.

저자는 부동산 시장의 현황과 장래를 분석함에 있어 일본의 추이를 참고삼습니다. 고령화 추세, 인구의 도시집중현상, 부동산 버블이 끼는 과정 등이 일본과 비슷한 점도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자는 세번째 요소인 버블화 과정이, 우리는 경기 침체 극복 과정, 저쪽은 초호황 경기에서의 부작용에 기인한다며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도 지적합니다. 또 일본의 현재 골칫거리인 "빈집 현상" 역시 한국에서는 여러 이유를 들어 나타나기 힘들지 않겠냐는 전망입니다. 이제 한국은 성숙기에 달한 준선진국인 만큼 독자적인 경로로 늙어갈 수도 있겠죠.

"1주택자가 최고의 투자다." 국가에서 1주택자를 보는 시선은 "실수요자"라는 거죠. 따라서 취득 과정에서도 우대해 주며 절세도 여러 방법으로 가능하고 고가주택의 처분에서도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저자가 권하는 건,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1주택자로 살면서 여러 이점을 누리라"는 겁니다. 이제는 물건(주택) 소유 외에 "권리"에도 여러 제약을 가하는데 이를테면 분양권 역시 1주택 소유에 준하는 취급을 하는 데에도 유의하라고 하는군요. 1주택자에 대한 통념은 "설령 가진 1채 가격이 올라 봤자, 남들 오른 만큼만 올랐으니 결국 제자리"라는 건데, 저자의 말은 "인플레이션 하에서 자기 자산은 제 가격에 방어했으니 적어도 무주택자보다는 훨씬 낫다"입니다. 저자는 "주택 시장 가격 안정에 기여하며 1주택자로 살기" 같은 표현을 쓰는 걸로 보아 공공 복리 측면을 중시하는 분 같습니다.

투자 대상으로서 저자가 보는 오피스텔의 중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파트보듯 평당가만을 보지 말고 반드시 전용률을 함께 계산하라(대개는 50% 아래임을 주의), 둘째 주거전용 목적 매입일 경우 소음 등 여러 요인을 반드시 고려할 것, 셋째 떨어지는 환금성,  넷째 상업지구에 건설되는 게 보통인 만큼 세제상 불리함, 다섯째 관리비와 주차 문제, 특히 주차장이 넉넉히 확보 안 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 것 같습니다. 저자가 보는 오피스텔의 현재 가치는 비관적인 편이고("삼중고에 시달린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미래가치 역시 그닥 낙관적이지 않으나 향후 주자창 등 부대시설 개선으로 트렌드가 바뀌겠으며 무엇보다 1~2인 주거 공간으로 환골탈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유는 여전히 비싼 소형 아파트의 가격 때문에 그 대안으로 남는다는 거죠.

요즘 마용성이란 말이 자주 들리는데 결국은 한강 유역이라는 입지 조건과 관계 있습니다. 용산은 10년 전부터 개발 붐이 일었고 이 추세가 마포와 성동구까지 옮겨가는 것입니다. 다만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가 개발의 가장 큰 장애 요소이며, 이들의 지하화가 중요 변수인데 "지하는 지하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한강의 관광 요소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면 이 일대 부동산의 전망은 장밋빛이리라는 거네요. "한강 자체를 개발하는 상징적 브랜드로서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의 중요성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럼 자연환경의 보존은 어쩌느냐, 저자는 한강 같은 천혜의 호조건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이 방치라는 낱말에 큰 함의가 들었다고 봅니다.

서울 강남권의 승승장구는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권역별로 변화는 어느 정도는 불가피할 듯한데 저자는 이미 개발이 완성되다시피한 둔촌과 더불어 고덕지구를 강동구의 양대 산맥으로 봅니다. 잠실 역시 조망권 아파트로서 가치가 크며 다만 "한강변에서 봤을 때 병풍처럼 늘어선 30층대의 획일성"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하네요. 개포 일대도 여전히 좋으나 전철역에의 접근성 면에서 우성, 선경, 미도, 은마를 도저히 넘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럴 것도 같습니다. 전철역에서 딱 내렸을 때 바로 나오는 그 입지란 하다못해 작은 편의점. 허름한 2층 상가 건물까지도 돋보이죠. 재개발만 되면 그냥...

GTX 노선 개통이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책에서도 이를 비중 있게 다루는데 서울역, 청량리역, 삼성역 등의 환승역 중심으로 분석되네요. 서울역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용산역은 배후의 국제업무지구 덕분에 더 주목받게 되는 입지입니다. 청량리역과 더불어 광운대역, 창동역이 "GTX C노선의 삼총사"로 주목 받습니다. 특히 청량리역은 "기존의 경강선, 경의중앙선, 분당선, 1호선"으로까지 연장되었으며, 지금까지는 호남선의 서울 방면 종점 기능을 용산역이 수행했으나 앞으로는 동북 방면 종점이 청량리역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노선 부족을 이유로 국토교통부에서 반대하는 게 장애 요인이지만 실현된다면 대중 교통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셈입니다.

장을 바꿔서 챕터 3에서도 GTX는 여전히 중심 화두입니다. 최근 정책의 실패로 일산 일대의 부동산가가 폭락했습니다만 이번 선거에서도 정부여당 후보들이 이 일대에서 모두 당선되는 등 기존의 판도가 유지되었습니다. 원인은 여럿으로 분석 가능하지만 주민들이 결국 GTX A노선, 그리고 킨텍스역에 대한 기대를 유지한다는 뜻도 됩니다(또 뭐 주택보유자와 임차인[전세입주자]의 이해 관계 상충이라든가...). 용인, 화성, 동탄 역시 대규모 신도시 개발로 기대를 모으는 지역이죠. C노선의 중핵은 수원인데 저자는 분당선과 강남권과의 접근 용이도를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아파트 가격은 왜 이렇게 오르는 걸까요? 1) 공급 부족 2) 저금리 기조 지속에 따른 유동성 증가 3) 일반 매물 부족 등을 꼽습니다. 다주택자 중과, 임대 사업자 등록 유도 등 정부가 여러 정책을 펴는데도 왜 이럴까요? 답은 양도소득세 중과(重課)입니다. 팔았다 하면 세금 폭탄을 맞을테니 일단 보유하고 보는 겁니다. 저자의 제안은 일단 양도세 중과 정책을 풀어서 매물이 많이 나오게 해야 한다는 거네요. 그럼 신규 보유자의 진입은 어떻게 막을 거냐. 취득세 인상과 (전국) 분양권 전매 제한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부동산 시장에의 자금 유입을 막으려면 궁극적으로는 금리를 올려야 하겠으나 이건 여러 다른 제약 때문에 정책 당국의 옵션이 될 수 없습니다.

대략 1년 전에 3시 신도시 발표가 났고 공급과잉이다, 특히 2기 신도시 지원 공약도 아직 이행되지 않은 판에 부실 정책이다 등등 비판이 많았습니다. 당시 일산에서의 민심 이반 추세도 두드러졌었죠. 그런데 저자는 이 책 전체에서 "여전한 수도권에서의 공급 물량 부족"을 대전제로 삼고 분석하는 중이며, 이런 관점에서라면 "3기 신도시로 인한 공급 과잉"이란 비판은 터무니없어 보일 겁니다(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안타깝다"는 거죠). 파주 운정, 양주는 GTX 개통 이후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나아진다고 하며, 사실 검단 신도시의 경우 실패작의 대명사처럼 그간 여겨졌으나 저자는 정반대로 "2020년 3월 기준 미분양은 거의 없어짐"이라고까지 합니다(p255). 평택에서는 고덕 중심으로 봐야 한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저자의 일관된 관점은 "실수요자 중심"입니다. 사실 신도시 전망은 대체로 부정적이었으나 최근 되어가는 모양새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서 시장의 전망(이라고 우리가 생각한 것)이 틀린 건가 하고 갸우뚱해지는 면이 있었네요. 이 책을 읽고나서 적어도 그런 의문 몇은 해소되었습니다. 부동산 투자 결정에 있어서 한 가지 말만 듣거나 특정 커뮤니티에서 이른바 대세로 통하는 의견에만 치우치지 말고, 특히 이런 전문가의 체계적인 제안을 들어 봐야 한다는 걸 절감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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