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 기분 따라 행동하다 손해 보는 당신을 위한 심리 수업
레몬심리 지음, 박영란 옮김 / 갤리온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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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올해 초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어느 젊은 직장 후배가, 이제는 퇴직한 선배더러 "기분이 태도가 되시면 안 되죠!"라며 따끔하게 쏘아붙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정말 기분이 나빠서 주체를 못할 때도 있겠으나, 그것이 자신의 인격을 (남들이) 평가하는 잣대인 "태도(애티튜드)"가 되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자신의 실언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p20)" 이는 맹자의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아마 직장에서 높은 직급에 있는 이들뿐이지 않을까 라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사람은 본래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경향"이 있어서라는군요. 아무리 맘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해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다면 말과 행동을 삼가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즉, 어떤 사람도, 직장에서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 역시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결국은) 진다는 겁니다.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은 이미 바닥 이하를 치고 있으며, 다만 그저 그 사람 앞에서나 적당히 비위를 머맞추고 지나갈 뿐이라는 거죠. 반대로(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 "기분이 태도가 안 될 만큼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조직 내 누구라도 그 사람에게 존경을 바친다는 겁니다. 독자인 제 생각에 저자가 강조하는 건, 그저 퇴출, 배척만 면하는 조직인이 되어서는 안 되며, 누구로부터건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냐는 취지인 듯합니다.

"부정적인 사람, 나의 에너지 도둑(p57)" 어느 조직에나 보면 자신만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남의 기분까지 망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1) 지나치게 자기애가 강한 사람 2) 불평이 끊이지 않는 사람 3) 안 좋은 소문을 흘리는 사람 등으로 특징이 보인다고 합니다. 이 중 몇 가지를 겸한 사람도 있겠고, 한 가지뿐이지만 정도가 아주 심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누구가 이렇다면서 뒤에서 맹렬히 성토하지만 정작 자기자신이 가장 심하게 저러는 사람도 있지 싶습니다. 참 웃기는 게, 남이 이렇다면서 비판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가장 심한 결점엔 완전히 눈을 감는다는 겁니다.

"실망을 잘 다루자. 그래야 인간관계가 힘들지 않다(p68)" 우리는 흔히 "너한테 실망했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나는 혹시 남을 실망시키는 사람이 아닌가요? 우리는 대개 너무도 이기적이거나 피해의식에 가득해서, 내가 남의 어떤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않고 나의 기대만 어루만지기 일쑤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어느 정도 남한테 잘해줬다고 여기면, 남도 그만큼을 해 줘야 한다고 여기는 어떤 기대감을 뜻하는 듯합니다. 이런 기대감은, 대부분의 경우충족이 되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이런 기대를 접어야, 실망에서 오는 그 깊은 피로감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애초에 남들이 내 맘같을 수가 없고, 기대나 애정이 정비례하여 돌아오게 일일이 균형을 맞춘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이 씁쓸한 진리를 일찍 깨닫는 게 결국은 핵심인 듯합니다.

요즘 펭수가 나오는 어떤 광고를 보면 "힘이 안 나는데 어떻게힘을 내요?"라며 되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웃기지만 맞는 말입니다. 저자는 p120에서 "우울증 환자한테 운동하라"는 조언이 무력할 뿐이라고 합니다. "의지로 극복하라" 같은 건 애초에 아무 의미가 없는 소리입니다. 우울증 환자의 세계는 "정상인"과는 처음부터 다르며, 자신의 증상이 2주 이상 계속되면 깨끗하게 자신이 "환자"임을 인정하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인생은 짧고도 길어서 끝까지 자신과 함께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p96)." 과연 맞는 말입니다. 자신이 어떤 욕구가 있다, 이러면 그걸 억누를 게 아니라, 자신과 타인 앞에 당당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이게 단기적인 스트레스(p111)를 억제할 뿐 아니라, 길게는 자기 존중감까지도 증대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인생도, 자기 존중감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으니 이 말은 정말 중요한 충고입니다.

보통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은, "아 내가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라며 쓸데없는 후회를 일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실제로는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도 올바른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실제로는 지금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었다며 남을 설득하거나 속이기 위해 이런 소리를 하는 거죠. 저자는 이를 두고 "반사실적 사고(p171)"라며 현실과 괴리된 나쁜 습관이나 정신의 발현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자신뿐 아니라 남까지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안 되려면, 무엇보다 현실과 자신의 기대치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알고 보면, 그냥 자신의 미숙한 감정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 앞에 노출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현실감의 부족이겠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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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이렇게 불편한 게 많지?
다카하시 아쓰시 지음, 임경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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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사람은 남달리 민감합니다. 이렇게 민감한 게 사회성이 떨어져서인지, 수양이 부족해서(p14)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나마 "내가 남보다 불편한 게 많구나"라며 자각이라도 가능한 사람은 나은 편입니다. 진짜 심각한 사람은, 자신이 뭘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아서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아주 확신을 갖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비정상인 줄 모르고, 대로에 누워서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남들의 관심을 구합니다.

한편으로, 이것저것이 유난히 불편한 사람은 "아 난 원래 좀 그렇구나"라며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바탕한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억지로 자신을 억누르면 그건 그것대로 부작용이 커지는 게 당연하죠. 저자는 재미있게도 자신 역시 그런 사람임을 쿨하게 인정하고, 그에 알맞은 여러 방법을 찾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유행하는 말로 "프로 불편러"라 부를 수 있는 HSP라는 특수한 유형은 이미 일레인 아론이라는 어느 박사님이 찾아냈다고 하며, 저자는 그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 책에서 풀어냅니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팔랑귀"라고 하는데 이런 분들 대부분은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어 하며 남들에게 고백합니다. 사실 남들에게 영향을 잘 받는 건 사회성과 공감 능력이 있으며 어떤 고집 같은 게 없다는 소리이므로 오히려 자랑할 만합니다. 이것도 1996년 자코모 리촐라티가 발견한 거울 뉴런에 의해 설명 가능하며 자계서 좀 읽어 본 이들에게는 익숙한 개념이죠. 이런이들은 공감을 잘하고 좋은 걸 복제하는 데 능하므로 결국 조직과 사회 안에서 유익한 역할을 잘한다는 뜻이니 오히려 안도를 해야 마땅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알고 싶지도 않은 비밀을 구태여 알게 되는" 경향도 강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구태여 나한테 찾아와서 그 사실을 잘 말하곤 한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이런 일이 난감할 수 있어도, 결국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며 나 자신의 내면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이니 다행이지만, 이럴수록 말 자체보다는 그것이 전달되는 느낌에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라인이라는 메신저도 잠시 언급하는데 우리 나라 메신저(p106)가 이처럼 일본인 저자한테까지 일상적으로 접하는 존재가 되었구나 싶어서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부터 마스크를 잘 쓰고 다녔는데 이게 일본인들 특유의, 남 눈에 띄는 걸 불편해하는 습관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p117).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남이 날 한번 봐 줬으면 하고 좀 튀게 하고 다니는 편이죠. 이런 게 민족성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여튼 우리나라에서도 남 눈에 가급적이면 안 띄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단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른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에너지 뱀파이어(p121)"의 표적이 안 되게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저자를 비롯하여 HSP라는 이 특수한 유형은, 유독 정이 많아서, 들어줄 필요가 없고 심지어 들어 줘서는 안 되는 남의 고민 같은 걸, 매정하게 끊지 못하고 계속 들어준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아주 이기적인 "에너지 뱀파이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행위라고 합니다.

저자는 길지 않으나 직장 생활을 했는데, 혹시 오해할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꽤 유능하신 편이었고 주위의 기대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신입은 그야말로 사회성이 떨어져서 매번 지적만 당하고 조직 분위기도 잘 적응 못 했다고 하네요. 그럼 저자가 왜 HSP인가? 이런 동료를 보면 너무 불쌍해져서, 내가 일을 잘하면 혹시 (안그래도 힘든) 저 동료에게 더 몹쓸 짓을 하는 건 아닌가, 뭐 이런 걱정이 들어서라고 합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HSP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바로 내가 그래 라며 공감하시는 분들이 있을까요?

에너지 뱀파이어의 피해를 막자는 조언은 p170에 다시 반복해서 나옵니다. 아마 저자분이 이런 유형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신 것 같습니다. 여튼 HSP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장점을 분명히 알자(p185), 지나치게 남에게 공감해 주지 말자, 주위에 나 비슷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 보자, 내가 본래 그런 사람이란 걸 쿨하게 인정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감한 사람이 세상을 구하는 법이므로 자부심(?)을 갖자는 게 저자의 조언입니다. 코믹하게 들려도 아니 세상에 얼마나 에너지가 넘치면 남들의 그 쓰잘데기 없는 일에까지 일일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겠습니까. 대신 남들에게는 없는 감수성과 에너지가 엄청나니, 그걸 잘 활용해서 성공하는 쪽으로 잘 돌리자는 게 저자의 제안이자 충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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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 가장 위대한 영국인, 청년 처칠의 자서전
윈스턴 처칠 지음, 임종원 옮김 / 행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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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20세기 중반, 세계가 악마의 손에 넘어갈 뻔한 파멸적 순간에서 반인도주의 진영을 격파한 진정한 영웅입니다. 하지만 나면서부터 좌절과 실패 없는 평탄한 인생을 살아 왔는가 하면 그런 축복 받은 경로와는 매우 거리가 멉니다. 그는 신분 질서가 유독 까다롭게 지켜지는 영국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명문가문 태생이었지만 작위와 재산은 다른 형제에게 상당부분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쳐도 그는 귀족 가문 출신에게 보장되다시피한 다른 엘리트 인생을 선택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고 자신의 격정과 본능, 지혜가 이끄는 가장 험악한 선택만을 골라서 걸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진정 놀라운 점이며, 그랬기에 히틀러가 프랑스 영토 거의 3/5를 함락할 시점 영국 정부가 무조건 항복 안까지 검토할 절망적 시점에서 "단호한 항전"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본디 귀하게 자란 인생은 잔혹한 시련이 닥칠 시 일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나약한 선택을 하기 일쑤이며, 20세기 중반 영국은 그 정도로 낡고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이런 인물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유럽은 물론 세계 전체가 히틀러를 위인, 신인으로 숭배하는 체제 하에 살고 있었을 터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인물은 어찌해서 그런 그릇과 배포가 길러졌는지 그 젊은 시절을 중점으로 살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런 훌륭한 인물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을 누렸고, 그가 죽을 때까지 약 20년 동안 변하지 않고 따뜻한 우정을 나누었다(p94)." 이 말은 그가 젊은 시절 군에서 모셨던 브라바존 대령을 두고 한 것입니다. 그 성씨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아일랜드계이며 책에는 "가난한 아일랜드 지주 출신"이란 말이 나옵니다. 지주가 "가난하다"는 건 형용모순일 수 있으나 저 무렵 아일랜드 지주들은 위에서는 잉글랜드의 압박을 받고, 아래로부터는 동족인 아일랜드 소작농들의 거센 반란에 직면하는 등 고충 끝에 신분이 몰락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는 시스템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직분에 충실한 장교였으며,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로서 젊은 윈스턴의 인성을 형성하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 , 그리고 얼스터 문제조차도 우리의 우정을 갈라 놓지 못했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적어도 북아일랜드 이슈만큼에서는 윈스턴과 대령의 의견이 매우 크게 갈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민족 간의 원한에 엮인 거라 그리 작은 대립도 아닐 텐데, 성숙한 인격체들은 언제나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빌미를 사전에 피합니다.

제국주의 영국은 히틀러의 도발을 트리거 삼아 전후 거의 한순간에 해체되다시피했습니다. 이에는 소련의 공산주의 이념이 식민 각국에 민족주의 이념을 전파한 공도 있을 테며, 애초부터 대영 제국 내부의 모순, 즉 넓은 해외에 분산된 광대한 영토를 해군력 하나만으로 관리하기가 어려웠다는 근원적 이유를 도외시하기 어렵습니다. 영국의 하층민, 서민 출신들은 처음부터 군에 입대하여 병으로서 식민지에서 복무함으로써 출세를 도모했고, 윈스턴처럼 터프하게 경력을 가꿔 나가려는 인물들은 장교나, 혹 그게 안 되면 종군기자로서 현장 경험을 쌓으려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선택은 좀 유별난 편이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크리켓이나 폴로 경기가 큰 인기를 끄는데, p194에는 더럼 경보병 연대 팀의 무적 기록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그럼 식민지 출신 팀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비실비실한 상대이기만 했냐면 그렇지 않아서, 같은 페이지에는 "마하라자의 자존심도 가볍게 쓸려나갔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실 북서부 인도, 현재의 파키스탄 접경 지역 주민들은 오랜 동안 인도 전역을 통치해 온 무사 출신의 후예들이거나 그들과 불굴의 라이벌 관계를 이뤄 온 종족들입니다. 체격도 정신적 무장도 세계 어느 종족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건한 이들이죠. 아무리 통치국이라고는 하나 식민지를 지배한다는 게 얼마나 터프한 일인지 짐작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폴로 이야기는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데 p150, p254 같은 대목도 재미있게 읽어 볼 만합니다.

빈돈 블러드 경(p163) 같은 매우 특이한 캐릭터도 젋은 처칠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무려 찰스 2세 시절(그러니 이 시절 윈스턴보다 230년 전 사람) 왕실의 보물을 훔치려 한 블러드 대령의 후손이라는 점을 크게 자랑스러워 했다니... 그런데 이 부분 행간을 잘 읽어 보면, 당시 각종 부채 때문에 재산이 저당잡혀 있던 찰스 2세가 고의로 절도를 사주했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기 물건에 대한 절도의 교사범이 찰스 2세였던 셈이죠. 여튼 이런 캐릭터의 범상치 않은 과거사가, 심지어 파슈툰 족의 공감도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윈스턴의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나는 영국에서 일어난 혁명이, 프랑스 혁명보다 더 심각하고 더 처절했음을 목격했습니다. 지배층은 정치적 기득권을 모두 빼앗겼으며, 재산과 토지도 잃었습니다... (p116)" 우리는 흔히 영국식 계급구조가 불변의 공고함을 지니는, 세계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오해합니다만 보는 시각에 따라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걸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처칠은 이 의견에 동조했다는 것이며, 이 말을 한 사람은 폴 캉봉 프랑스 대사였습니다. 어쩌면 이 말이, 존 F 케네디가 자신의 졸업 논문으로 제출한 <Why England slept>의 대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영국은 묻는다
위기가 임박하면
인도의 아들은 죽기살기로 싸울 것인가?

바다 건너 위대한 백인의 어머니여
영원히 제국을 통치하고
오랫동안 다스리고
영광과 자유가 위대한 백인의 조국에 있다"(p158)

지금 시각으로 약간 역겨울 수 있지만 식민지에 주둔하던 어떤 연대의 군가 가사라고 합니다. 연대에는 물론 인도 현지에서 징병된 병사, 부사관들도 많고, 이들 중 상당수는 제국주의의 질서에 순치된 이들이라 이런 가사가 매우 자연스럽게 입에서 불려지는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이후 1차 대전 당시,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조차 영국군에 협력하고, 그 대가로 종전 후 독립을 보장받자는 움직임이 컸으며, 놀랍게도 간디 역시 여기에 가담, 주도하는 처지였습니다. 무작정 선과 악, 흑과 백으로 나눠서 볼 게 아니라 이런 시대상도 정확히 알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 영국은 이후 그 약속을 아주 뻔뻔스럽게 위반했죠.

처칠은 원래 자유당 소속이었다가 뒤에 당적을 옮겨 보수당원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도 당시에는 말이 많았는데 처칠은 위트 있게 이런 공격을 받아넘긴 일화도 유명하죠. p269에는 제임스 모들리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살아온 경력을 보면 처칠 같은 이와는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는 게 분명한데도 노동당은커녕 자유당도 아닌 보수당 출신입니다. 한편으로, 19세기 초 극심했던 노동 착취상과 달리, 이 무렵이면 노동자 계급 출신 중에서도 자주성가한 사람이 많이 나온다는 뜻도 되며, 그런 현상을 보고 처칠 같은 귀족 출신이 (혹시 저들이 우리를 앞지를지 모른다는 속 좁은 조바심이 아니라) 국가가 제대로 되어 간다는 안도의 생각을 품는다는 게 이 책에도 잘 나옵니다. 그게 맞죠. 백성이 가난하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니 귀족인들 무사하겠습니까? 같은 시대 러시아를 보면 무슨 꼴이 나는지 알 수 있죠. 한편으로 재미있는 말도 많이 나오는데, 밸푸어 하원의장(우리가 아는 그 사람입니다)이 젊은 윈스턴을 두고 "약속된 청년(promised, 즉 전도양양한)인 줄 알았더니 약속만 하는 청년이었군(즉 자기 말을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거나, 4대째 들어 다시 나막신(가난한 계층이 잠시 출세하는 듯하다가 도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풍자를 담은 속담)" 같은 게 있습니다. 이 시절의 회고에서 나중에, 처칠 앞 임기에 나치 상대로 유화정책을 편 체임벌린 같은 이도 나옵니다.

우리가 흔히 인생의 가장 낮은 단계로 타락할 때 "막장"이란 단어를 쓰는데, 이게 탄광업 용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물론 한국도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어려운 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된 직업인데 왜 근래들어서 이 말이 유행하는지는 알 수 없죠. 여튼 젊은 윈스턴은 남아프리카 식민지까지 그 부지런하고 모험심 가득한 발을 뻗어 포로 수용소를 탈출하고 막장 체험을 하는 등 태생이 고귀한 부잣집 도련님으로서 상상도 못할 고생을 합니다. 이래서 옛 사람들 말이, "귀한 자식일수록 험하게 키우라"고 했나 봅니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전도서 4:31, 이 책 p363에서 재인용)

자, 이렇게 험한 고생을 겪었으며 그 와중에서 세상을 보는 지혜를 많이도 쌓은 젊은 윈스턴은, 일인지하 만인지상, 영국 여왕 한 사람만을 그 머리 위에 둔 수상 직위를 노년에 두 차례나 지냅니다. 왕은 아니어도 왕 다음 가는 높은 사람이었던 그도, 말년에 젊은이들이 이런저런 도전을 해 오면 무척 성을 낸다거나 괴팍한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그가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으면, 이처럼이나 반항기 넘치고 모험심 가득하며 기성 체제에 대한 회의와 도전을 삼가지 않았던 자신의 젊은 날을 봐서라도 더 위트 있게 대했을 만도 한데요.

거의 정확히 이 책이 다룬 시기를 영상으로 옮긴 작품으로는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간디>를 연출한 그 사람입니다)이 1972년에 찍은 <영 윈스턴>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단 이 책과는 별개의, 윈스턴처칠이 쓴 다른 회고록에 바탕을 두었죠. 또 윈스턴 처칠의 2차 대전 후 은퇴 시기를 다룬 책으로는 좀 램스덴이 쓴 <Man of the century>가 있으며, 을유문화사에서 이종인 씨가 옮긴 번역본으로 나와 있으니 이 멋진 책의 후편 읽는다 셈 치고 참조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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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습관 버티는 기술 - 3년만 버티면 부자가 된다!
김광주 지음 / 솔로몬박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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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저처럼 "부자들의 습관 버티는 기술"로 되어 있지만 내용을 읽어 보니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든가 저자님만의 통찰이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꼭 부자가 되기 위한 어떤 습관이나 팁만 알려 들게 아니라, 저자의 세계관과 비전에 대해 공감도 하고 배울 게 있으면 따로 배우려는 자세로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p113에는 "천멸중공"이란 말이 대뜸 나와서 좀 놀랐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도 활동 중인 파룬궁, 법륜공이라는 단체가 있죠. 중국 공산당 당국으로부터 부당하게 박해를 받는 집단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들이 보통 쓰는 말입니다. 이 책에는 그런말은 없고, 본래 오프쇼어링이라는 게 1990년도 민주당 빌 클린턴이 집권했을 때 집중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입니다. 이게 트럼프 정권 들어 "리쇼어링"으로 바뀐다는 지적인데, 저자는 이미 오바마 때부터 이런 기조가 만연했다고 하며 딱히 트럼프의 변덕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이미 미국과 중국 간의 전쟁은 시작되었다는 거죠. 이게 바로, 수십 년 간 부자들을 상대해 오며 세계 경제 추세를 지켜 본 저자가 가진 냉엄한 판단입니다.

"초보자의 운"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식 같은 거 할 때 우연히 남 추천 받아서 오른 종목이 있으면 아 나는 정말 주식 천재인가 보다, 그냥 막 시작한 게 이처럼 수익률이 좋으니.. 라며 자기 만족에 빠지는데, 이게 큰 착각이란 거죠. 저자는 "단기 투자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하는데, 이른바 대박주, 급등주라 불리는 종목 샀다가 크게 물리고 손절하면서 비싼 수업료를 내는 게 다 과정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단언합니다. "개인은 절대 기관이나 큰손을 이길 수 없다."

부자는 어느 정도라야 부자라고 불릴 수 있을까요? 저자는 증권맨으로서 이십년 이상 부자들을 상대해 오며 어떤 관점 같은 게 정립되었다고 합니다. 적어도 30억원 이상은 있어야 부자라 불릴 만하며, 그 30억도 금융자산, 즉 현금이라야 한다는군요. 비싼 아파트에 살고는 있으나 매번 쓸 돈이 쪼들리면 그걸 두고 부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30억 정도는 있어야 경제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버틸 수 있는 저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이처럼 "버티는 습관"을 통해 부를 쌓아 온 것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이엔드 고객을 노려야 돈을 번다고도 하죠. 20%의 상위 고객으로부터 80%의 수익이 나옴은 이미 파레토라는 경제학자가 밝혀 낸 바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야, 최소의 노력만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최대의 수익을 낼 수 있을까요? 저자가 말하는 바는 오히려 한 쪽에만 너무 치중하지 말라는 겁니다. 평소에 안 팔리던 그저 그런 책들 80%의 매출 합계가, 거꾸로 베스트셀러 상위 20%의 매출을 능가하는 현상을 보고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은 롱테일 마케팅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를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고" 투자 안정성을 높이는 분산 패턴을 실현하라는 겁니다.

어떤 종목에 투자를 해야 할까요? p226에 보면 배당 성향이 높은 기업들 중 한국의 것들이 표를 통해 나열됩니다. 단기적으로 뭐가 오른다 뭐가 급등한다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결국은 주주인 나한테 배당 많이 해 주는 종목이 좋은 종목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외적인 배당률에만 치중해서는 안 되며, 주가의 흐름과 해당 기업의 재무 상황까지도 폭 넓게 살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재산을 불리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우량주에다 투자하여 몇 년이고 계속 묻어두는 겁니다. 돈 버는 게 그렇게 간단할까요? 그게 바로 부자가 되는 핵심, 즉 "버티는 방법"인데 많은 이들이 이걸 실천 못 합니다. 지금 장이 이렇게 좋은데, 하나에만 돈이 묶여 있으면 그 치르는 기회비용이 대체 얼마인가? 이게 아주 쉽게도 듣는 핑계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급변하는 장세에서 개인이 기관이나 큰손을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듣는 정보라든가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의 볼륨 등 모든 면에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죠. 바로 이래서 팔랑귀가 되지 않고, 진득하게 버틸 수 있어야 부자가 된다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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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속에 핀 꽃
장은아 지음 / 문이당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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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사는 외세의 침략과 동족 상잔으로 얼룩진, 세계 역사에 보기 드문 비극으로 점철된 예입니다. 한민족은 더군다나 다정다감한 성정에 깊은 정한을 간직하고 사는 성향이라 이 굴곡진 역사 속에서 그 맻힌 사연과 한의 깊이와 폭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을 거쳐 개발시기 현대까지를 관통하는 중 어느 집안의 기나긴 곡적을 담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주인공이 어려서 어느 지주의 집안에 민며느리로 들어온 봉임 한 사람이며, 모진 시집살이와 남편과의 불화 끝에 여인으로서의 삶이 시들어가는 비극을 다룬다거나, 아니면 부당한 학대, 억압에 맞서싸우는 여인의 당찬 투쟁을 그렸다거나 한 줄 알았습니다만 그 이상이었습니다. 


물론 봉임은 찢어지게 가난한 친정을 뒤로 하고 거의 팔려오다시피한 시집에서 (당시 거의 누구나 그랬을 만하게)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본성이 악하지는 않을(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인간 본성이 악해서 모진 시집살이를 시키지는 않죠) 어르신들을 향해 순종, 근면, 인내의 미덕을 발휘하여 결국 며느리로서 자리를 잡고 집안을 일으켜 나간다는 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뭔가 개척적이고 긍정적인 이야기 전개가 더 마음에 들더군요.


또 주인공은 (예상 밖으로) 봉임 한 사람뿐이 아닙니다. 시아버지 오영천, 그의 아들이자 깨인 의식을 지닌 도쿄 유학생 석근(즉 봉임의 남편), 오씨 집안에서 땅을 부쳐먹고 사는 소작인들 가족, 석근의 첫사랑 하루코 등 대하소설의 줄기를 이룬다고 해도 될 만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분량만 상대적으로 짧다뿐 <토지>나 펄벅의 <대지>와 비교해도 될 정도입니다. 


저는 이 소설이 특히 펄벅의 <대지>와 닮은 점이 많다고 여겨졌습니다. <대지>에서는 우연한 사건 와중에 큰 부를 걸머쥔 왕룽의 세 아들이 시대상의 변천에 따라 각각 다양한 삶의 가지를 쳐 나가는데, 여기서도 오영천에게는 세 아들이 있습니다만 뚜렷한 자기 궤도를 잡아가는 인물은 도쿄에서 공부한 석근뿐이고 나머지는 정직하지도 못하고 삶의 주견도 없이 욕심만 가득하거나 아예 무지한 인간들입니다. 


대신, 시대의 모순을 자기 나름으로 대변(?)한다며 영천, 석근 부자에 일종의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하는 자들이 있는데 둘 다 소작농의 아들이며 하나는 일본에 붙어먹어 앞잡이 노릇을 하는 순사 노기찬, 다른 하나는 나중에 공산주의에 공명하게 되는 전직 은행원 출신 박근우입니다. 두 청년 다 머리는 영특했으나, 소작인으로서 고생하는 제 부모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출세에 한계가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여 일종의 삐딱선을 타는 셈입니다. 전자는 인성 자체가 타고난 악질이며, 후자는 결국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지식인의 함정에 빠지는 운명입니다.


여튼 사연의 초반부는 봉임이 주도(?)합니다. "주도"라는 말을 쓰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는 게, 봉임은 너무도 순종적인 성격이라서 대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모순과 부조리에 무슨 대항을 할 줄 모릅니다. 요즘 같으면 이런 "착함"만으로도 비판의 대상이 되기 충분하지만, 여튼 저는 읽으면서 어떤... 인생의 선함, 바른 양심, 주변 사람들에게 충실되이 자기 의무를 다하고 최선을 마쳐 내는 마음가짐을 억누를 어떤 최강의 악덕 같은 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새삼 들었습니다. 결국은 착한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아닐까요? 뭐 적어도, 이 소설이 그런 교훈을 강조하는 게 저 개인적으로는 너무도 좋았습니다. 


석근은 일본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타고난 인간적 자질 자체가 출중한 엘리트입니다. 이런 그에게 일본 여성인들 반하지 않을 수 없죠. 사람이 잘나면 주변 모두가 그에게 승복하기 마련입니다(반대로, 어디서 웬 못된 인간 쓰레기들에게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만). 하루코의 부친은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명문가의 가장이라 대체 "조센진" 사위를 들이는 게 마뜩할 리 없습니다만 딸이 식음을 전폐하고 스트라이크를 벌이는 데 도통 방법이 없습니다. 사윗감의 인물됨 자체야 워낙 탁월하니 그는 일단 딸 목숨은 살려 놓고 이 청년을 일본인으로 개조시켜 집안의 동량으로 삼을 생각을 합니다. 일본에서는 성(姓)과 씨(氏)가 분리되기에 사위가 특정 가문의 성을 받아들여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게 드물지 않죠. 


석근은 비록 상민 출신이긴 하나 민족혼이 투철하고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인 자신의 아버지 영천이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근심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민며느리로 일찍 들여온 봉임이 매우 착한 여인인데다 자신을 향한 순정이 대단하다는 점, 또 결국 부모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냥 하루코를 포기하고 맙니다. 하루코를 포기한다는 건 앞으로 사내로서 입신 출세할 길을 모두 포기한다는 뜻도 됩니다. 대체로 당시 유학생 출신들이 교육의 물을 좀 먹었다는 이유로 이미 혼례까지 마친 여인을 서슴없이 버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직 민며느리 신분이었을 뿐인 봉임을 별 주저없이 받아들인 석근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고 못 배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먼저 다해야 그게 인간인 겁니다. 


봉임은 비록 순종적이고 다소 미련한 모습까지 보이지만 결코 여인으로서 센스까지 둔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로, 하루코가 마을을 찾아왔을 때 (뭐 일본인 상류층 답게 잘 찾아입고 왔겠지만) 한눈에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신방(물론, 불과 며칠 전에 차린 자신과 석근의 신장)에 그녀를 공손하고 친절히 안내한 후(여기서 이게 가식이나 전략이 아닌 진심임이 잘 드러나게 소설이 서술됩니다) 점심상은 물론 이부자리까지(!) 차려 주고 나갑니다. 순종적 아내상은 일본인이 전형이라고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하루코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남편 석근으로서, 아내의 이런 순도 100%의(ㅎㅎ) 진심을 보고 크게 각성하여, 앞으로는 마음 한 구석에서조차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로 마음 먹습니다. 이 대목에서도 저는 석근이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릇 사내자식이라면 이런 맛이 있어야죠. 


석근도 그 부친 영천도 참 로맨티스트인데, 영천 역시 젊은 시절 몰락 양반의 어느 딸내미와 정분이 날 뻔했다가 "반상이 유별하거늘!"이란 부친의 호통을 듣고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재산도 많고 배운 것도 아주 없지 않지만(그래서 그 양반댁 규수가 좋아했던 거죠) 엄연히 상민은 상민이라 공연한 말썽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과 맞는 여성과 결혼하고 그게 바로 봉임의 못된 시어머니 강씨입니다. 강씨도 태생이 나쁜 인성은 아니고 제 시어머니 송씨에게 모진 시집살이를 해서 그렇게 된 건데 봉임과는 달리 처녀적부터 그리 진득한 인성은 아니었지 싶습니다. 다만 드센 성미를 누르고 남편한테 희생을 한 건 같죠.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둬 키우는 게 아니라고 오영천 집안은 그 소작인들에게 넉넉하게 대해 준 편이었지만 시대가 한번 변천을 겪을차치면 못되고 비틀린 심성을 드러내는 악종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노기찬이 그 한 예이며, 오영천은 비밀리에 만주 독립 운동을 후원까지 하는데 그 기미를 일정 당국에서 눈치 못 챌 리 없지만 적절히 뇌물을 먹여 가며 위기를 넘깁니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대목이 몇 번 나오는데, 우리 국사에서는 제대로 안 가르치는 만보산 사건 등 화교- 조선인 간의 대립이 그것입니다. 물론 일본인들이 교묘히 뒤에서 조장한 게 분명하지만 여튼 교과서에서는 자세히 안 배웁니다. 


시대의 굵직굵직한 대사건들이 개인의 사연 안에 잘 녹아들며 서술된 것도 좋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매력적이고 공감가는 것도 좋았으며, 구수한 구어체 표현이 등장하여 이야기 읽는 맛이 더한 것도 좋았습니다. 너무 자세한 독후감은 스포일러이겠기에 여기서 서평을 줄이며, 저는 이 장편 소설을 잘 간직하여 두고두고 읽어 볼 마음을 먹었습니다 ㅎㅎ 생각 같아서는 더 길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글자 수가 10,000자도 넘길 듯하여 이쯤에서 자제하겠습니다. 김동리도 <무녀도>를 개작하여 <을화>를 썼는데, 이 작가님도 아예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좀 써 보시면 어떨지요. 


ps

제목을 보면 "눈물 속에 핀 꽃"이란 글자 위에 "리멘시타(라 이멘시타의 축약)"라고 쓰여 있는데 이건 1960년대 한국에서도 대학생들 사이에 크게 유행한 칸초네입니다. 가사 중에는 "눈물"이라는 단어가 안 나옵니다만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이 노래를 불렀겠음은 누구라도 짐작 가능합니다. 자니 도렐리의 버전도 유명하겠지만 한국에서 압도적으로 인기 있었던 건 이탈리아 여성 가수 밀바의 버전입니다. "넬리멘시타"라고 속삭이는 듯 노래를 마무리짓는 그 특유의 저음을 잊을 수 없죠. "이 '광대한' 세상 속에 나 같은 작은 존재의 슬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님"을 다짐하는 여성 화자의 마음이 갸륵한데 아마 봉임의 세계관, 마음가짐을 대변한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밀바의 보컬은 세상에 다소 독기를 품고 외치는 듯한 음색이라서 소설 속 봉임이하고는 완전히 매치되는 게 아니죠(그 반대면 모를까). "이멘시타"는 영어의 형용사 immense하고 어원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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