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아마릴리스 폭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첩보원이 왠지 내 적성에 딱 맞을 듯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 자체가 드물겠으므로, 만약 본인이 그렇다면 용기를 내어 해당 기관에 지원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만약 그런 본인이 여성이라면(그래서 더욱 망설여지겠지만), 한국과 미국의 사정이 물론 크게 다르긴 하겠으나, 이 책을 읽고 첩보원이 과연 무슨 일을 하는지 미리 알아볼 수도 있겠습니다. 첩보원이라 하면 007 제임스 본드(책 p109에 "그런 첩보 영화 같은 건 믿지 않아요"라는 말이 나옵니다)나, 혹은 약간 자영업자 버전(?)으로 인디아나 존스(p151, p157. 또 p243에는 "핵 테러의 성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가 생각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저자 겸 주인공이 나중에 어떤 선택을 했느냐 하는 그 과정에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외할머니는 소아마비로 30대 중반에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으나 정신은 누구 못지 않게 영민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비서들이 (그녀가 버젓이 곁에 있는데도) 3인칭으로 가리키는 걸 못 견뎌했다는 기술이 있는데, 노약자 돌볼 때 이런 점 특히 유의해야 할 듯합니다. 정상인(어폐가 있습니다만 일단)들은 보통 이런 분들을 "객체화"하는 게 몸에 배어 있죠. p36에 재미있는 서술이 있는데 "담요라도 덮어 드려야 할까요? - 아니, 진토닉이라면 모를까"가 그것입니다. 저 부인은 진토닉으로 "덮어 드려도 될 만큼"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아직은 좋다는 농담입니다.

이분은 1980년생입니다. 그러니 1991년 소련이 갑작스럽게 붕괴했을 때 나이가... 그녀는 시사에 매우 관심이 많고 중요한 업무를 수행한 조부, 부친(이분은 아마, 책에서 명시적으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만 HAM을 다루었나 봅니다[좀 뒤에 PC 통신 이야기도 나옵니다만]. 요즘이야 인터넷,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시대입니다만 당시에는 이런 게 참 신기한 영역이었겠죠)의 영향을 받고 자라났습니다. 아직 어렸던 그녀의 세계에서 "겐나디 야나예프는 악당, 고르바초프는 (그 사건 당시) 집에 갇힌 지도자" 정도로 인식되었나 봅니다. 잠시만 인용해 보면...

"...고르바초프는 국민들에게 권리를 나눠 줄 생각이었으며 아버지는 그런 그를 돕고 있었고, 야나예프는 그런 권리를 전부 되찾아오려 했다."(p41)

어린이답게 참 단순화한 구도입니다. 아, 뭐, 지금 생각해도, 또 어른의 관점으로 봐도 과히 틀리지 않습니다만. 여튼 어린이였던 아마랄리스는 "모스크바 시민들은 상점의 소유권을 갖고 싶어했고, 고르바초프를 감금했던 이들은 그걸 원치 않았다."라는 한 문장 속에 당시 긴박했던 모스크바의 정세를 요약합니다. 전 참 이해가 안 되는 게, 한때 저렇게 용감했던 시민들이 왜 지금은 비겁하게 독재자의 철권에 눈을 내리까는 건지. 여튼 어렸을 때 받는 교육은 참 중요합니다.  학교(뷰캐넌 선생이라는 분이 책에서 언급되죠)에서건 집에서건 말입니다. p32에 "쿨 큐컴버스"라는 동아리 이름은 영어의 관용어구인 as cool as a cucumber를 생각해 보면 뜻을 알 수 있겠네요. 저자는 그 어린 나이에 아빠를 따라 소련을 방문도 했는데, 아마 방부처리된 레닌의 시신을 보고 "왜소하고 연약해 보였다(p43)"고 느낌을 털어 놓습니다. 물론 뒤에 "아름답다"는 느낌도 적혀 있는데, 아름다운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레닌이 왜소한 편이었던 건 사실입니다.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에도 비슷한 인상 묘사가 있죠. 뭐 사진도 많이 남아 있으니.

"지금의 러시아가 이렇게 변한 걸 보면, 레닌은 많이 놀랄까?"(p43) 근데 독자인 저는 이렇게도 묻고 싶습니다. "지금의 러시아가 (또) 이렇게 변한 걸 보면, 옐친은 많이 놀랄까?" 물론 알코올 중독자(의 혼령)에게 뭔 신통한 반응을 기대하진 않습니다만.

겐나디 야나예프라는 이름을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보는데, 저는 그동안 "아나예프"로 알고 있었으며 당시 한국 언론이 그렇게 보도를 해서입니다. 지금 찾아 보니 과연 철자가 Янаев이군요. Я에 강세가 안 올 때는 [이]처럼 발음되기도 합니다만 여튼.

버마(현재는 미얀마라 불리는)는 군부 정권이 오랜 동안 다스려 온 폐쇄 국가였습니다만 이 군부의 성격이 딱히 좌파라 보기 힘들면서도 반서방 노선을 유지했다는 게 독특합니다. 이는 아마 영국의 식민 지배를 오래 받았기에, 해방 후 한참 뒤에 등장한 군부 정권이 (이후 많이 리버럴화한) 영국 정계 주류의 눈에 거슬렸을 수 있습니다(구 남아공 백인 정권도 비슷합니다). 세상은 비록 냉전시기라 해도 이처럼 미-소, 자본주의- 공산주의의 양대진영으로 쉽사리 가를 수 없을 만큼 복잡했던 면이 있습니다.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

이분이 아직 여덟 살이었던 1988년 8월 8일에 버마 정권의 시위대 학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여덟 살일 때는 팬암 기[機]가 로커비에서 리비아의 테러로 폭파되는 사건도 벌어졌는데, 지인이 거기 타고 있었다고 하네요(p33). 그 주범이었던 카다피는 몇 년 전에 심판...을 받았지요. 저 뒤 p130에 이것 관련 언급이 또 나옵니다.

 저자가 11살 때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고등학생 때에도 여전히 연금되어 있던(p58) 다우 수(아웅산 수지)는, 뷰캐넌 선생이 강조했던 "독재자와 싸울 수 있는, 컴퓨터 잘 다루는 여전사(p48)"의 이미지와 일치했습니다. 그녀는 태국으로 날아갔고(왜냐면 당시만 해도 버마행 노선이 없었을 테니), 이후 버마의 민주화 투사이자 작가인 민 진과 알게 됩니다. 민진이 관여한 신문 <이라와디>는 우리가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도 배운, 버마의 큰 강 이름이죠.

여성 행동가의 로망이라 하면, 현지에서 만나는 뜻있는 (또래) 남성들과의 로맨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서 자세히는 안 다뤄집니다만... 저자가 아직 어렸을 때 "대여금고를 비우러 미국에 다녀온 아버지" 때문에 집안에 큰 분란이 일어났던 듯 암시하는 대목(p49)이 있는데 명시적인 설명은 없으나 제 짐작으로 아마 그 부친의 불륜사가 있었던 듯합니다. p53에 통역사 언급이 있습니다. 또, p353 이하에 "우리와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 아빠를 다시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언급 있습니다.

p57 역주에 보면 "저자는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뜻에서 랭군, 버마 같은 옛 명칭을 사용함"이란 설명이 있는데, 시사주간 타임을 비롯해서 서구 언론 대부분은 성향에 크게 관계 없이 아직도 구 명칭만을 씁니다.

p70에 어느 버마 사람, 상반신과 하반신에 각각 다른 동서양의 복식을 걸친 사람더러 "반인반수" 같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p56에 나오는 "이름이 어렵거나 낯선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런 건 사진의 필터 같은 것일 뿐..."이란 말과 정면으로 모순됩니다. 이런 태도는 PC에 정면으로 위배되죠? 아닌가요? ㅎㅎ 물론 뭐 아직은 어린 영혼이 그때그때 느낀 솔직한 느낌을 책에 적은 것이라 봅니다만. p75에 나오는 <컨트리 로드...>는 잔 덴버가 부른 유명한 넘버죠. 가수는 그 가수가 아닙니다만. p52에는 <스테어웨이 투 헤븐>을 연주하는 친구가 나오는데 여기 대해서는 역주가 없습니다. 너무 잘 알려진 곡이라서?

"만달레이는 러디야드 키플링의 작품에서 금방 튀어나온 곳 같았다.(p81)" pp.90~91에는 네윈 장군의 악정에 대한 서술이 있는데, 이 네 윈을 만나기 위해 전두환도 1983년에 버마를 방문했다가 그 일을 당했죠. p99에 "저들에게 강간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란 부분이 있는데 사실 이런 회고록, 혹은 다른 픽션을 읽을 때 항상 조마조마한 게 이런 문제입니다. 저는 예전에 TV에서 라이언 오닐, 앤 아처(아주 멋진 여배우죠) 주연의 <그린 아이스>란 영화를 보고 좀 충격을 받았던 적 있습니다. 저자는 아마 성곻회 신자인 것 같으므로 "하느님"이 여기선 맞지 않겠나 싶습니다.

"알 카에다"나 "빈 라덴"이나 한국에서는 911 이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만 이미 그로부터 3년 전 주(駐) 케냐 미 대사관 테러가 있었기에 세계적으로는 큰 유명세를 탄 바 있습니다. p108에는 다미얀 석불 폭파와 탈레반이 언급되네요. 유난히 자주 테러리즘, 또 유명한 테러 사건에 희생된 지인을 자주 두게 된(책 후반 p263의 서술을 꼭 읽어 보십시오) 저자는, WSJ 카라치(파키스탄) 지국장이었던 대니 펄이란 분이 끔찍한 죽음을 당하게 되는 사건을 또 겪습니다(카라치는 이 책 후반부의 흥미진진한 첩보극 주요 무대이기도 합니다). 이때 그녀는 다시 어떤 근원적 두려움을 느끼고, 어렸을 때 아버지가 보여 준 "박쥐 인형 분해" 체험을 떠올리며 이를 이겨냅니다(p117).

"조국을 위해 잃을 목숨이 하나밖에 없다는 게 애석할 뿐이다.(네이선 헤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성경)"

이 두 구절을 왜 저자는 특별히 인용했을까요? 물론 신입으로서 조직에 처음 발을 들이는 그 순간의 기억이 각별했겠습니다만, 독자인 저는 왠지 이 두 명언이 서로 충돌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저자가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것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전자는 애국주의, 후자는 리버럴리즘. 그렇다면, 애초에 저자는 (특히 자신의 출신 배경 등을 생각해 볼 때) 커리어의 첫걸음을 잘못 디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맨 뒤, p369에 이 의미에 대해 저자가 다시 언급합니다.

p129의 "랭글리"는 물론 각주에 나온 그대로지만, 영화 많이 본 분들에겐 꽤 익숙한 지명이겠으며, 그런 영화들을 더 세심히 주의 깊게 본 분들은 실제 발음이 "랭리"라는 점도 아마 알 것입니다.

"'공작팀에서 자넬 데려가겠대. 학교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던 거야. 나쁜 놈들.' 여태까지 받아본 중 가장 무서운, 그러나 가장 기다려 온 초대장이었다." (p135)

저자는 오로지 어려서부터 그녀를 괴롭혀 온 두려움, 즉 왜 이 이 세상에는 테러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세력이 있으며, 어떻게 해야 그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이 지점까지 온 것입니다. 아직도 그녀의 나이 이십대 중반 정도(p175, p258:3)밖에 안 되었지만 말입니다. 여튼 그녀는 세계 최고의 첩보 조직에서, 그 하부 섹터 간에 서로 모셔가려는 경쟁이 벌어질 만큼 귀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무고한 사람 한 명을 고통받게 하느니 죄인 백 명을 놓아 주는 게 낫다. 벤자민 프렝클린의 말을 인용하신 거잖아요? - 그건 미국 시민에 한해서지.(p148)"

벌써 여기서부터 그녀의 생래적 성향과, 조직의 이념이 갈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앤서니라는 남자친구와 오래 사귀었으나, 여친이 CIA 소속이라는 걸 알고 그가 얼마나 놀랐을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또 이 p156에, 아마 저자 이름 "아마랄리스 폭스"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듯합니다. 둘은 드디어 결혼하고, 이때 즐겨 토론 주제로 삼은 책들 중 하나에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있던데, 우리 나라에서는 청소년 필독서로 꼽히지만 저쪽에서는 그리 잘 알려진 책이 아닌 줄 알기 때문에 저로서는 좀 의외였습니다.

p167에는 "고르바초프를 똑 닮은, 카자흐스탄의 공무원"이 등장하는데 어떻게 생겼기에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스파이처럼 보이는 스파이보다 이런 내가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스파이를 뽑을 때의 첫째 원칙이 이겁니다. 제임스 본드 같은 유형은 그저 영화에서나 나올 뿐이죠. 생긴 건 평범할지 모르지만 훈련생으로 받던 훈련(시뮬레이션)의 강도는 장난 아니어서 p188 에는 "민간인 인형을 혹 맞히기라도 하면 바로 퇴학"이란 말도 나옵니다. 남자들이 여자 앞에서 입을 싹 다물게 되는 순간이, 말하자면 이런, 총 좀 만져 본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부터이죠.

이것과는 무관하게, 저자는 자신이 여태 익숙하던 현실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앤서니와의 혼인 서류는 무효화되는 등 알게모르게 갈등을 겪는 중입니다. 또 이때부터 딘과의 관계가 점점 깊어집니다(결혼은 잔지바르에서 하고 p264에 좀 자세히 나오죠). 남녀 사이의 애정이란 참 무상할 뿐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이 대목에선 씁쓸해지더군요. CIA 동기생들 가운데 추잡한 관계를 시도하는 익명의 어떤 요원 이야기도 있어서 기분이 더욱 그랬습니다. 한편, "그래, 이게 바로 버마에서 저항운동을 하던 우리 언니지.(p200)" 간만에 여동생이 등장하는데 책 맨앞에서 다소의 지적 장애로 고생하던 오빠 이야기는 독자들도 이미 알고 있죠. 이후 그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오빠 벤에 대한 사연은 p352 이하에 나옵니다.

"우리는 각자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악령과 싸울 수 있게 서로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p203)"

p210에는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 그 유명한 압둘 카디르 칸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단순한 학자 정도가 아니어서, 책에서는 비밀 핵무기 거래 네트워크를 만천하에 폭로하려는 조직(과 그녀)의 분투가 언급되죠. p234에는 본격적으로 그녀의 활약이 묘사되고, 끔찍한 무기 밀매가 일종의 "틈새 시장"으로 언급되는 등 독자에게 충격을 안깁니다. p237에 1995년 옴진리교 테러 사건이 언급되고, 이 단체의 예금이 10억 달러나 되는 데다, 호주에서 우라늄 밀수까지 시도했다는 사실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한층 부각됩니다. 저 위 헤세의 작품 <싯다르타>에도 사실 "옴"이란 주문이 나오긴 합니다 ㅋ

"게다가, 그들이 보기엔 당신들이 테러범이죠.(p212)" 스웨덴은 본디 중립국 비슷한 위상이긴 합니다만 이 말은 저자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다소 충격으로 다가올 겁니다.

"네, 어르신. 세상을 구하는 일이 끝나면 바로 그렇게 합죠.(p218)" 이것은 닐의 말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일"! 한편으로 냉소적이고, 참 거창하면서도 아직은 젊은 나이인 그들이 짊어지기엔 무겁기 짝이 없는....

현재 미중간의 갈등이 점점 격화되는 시국이기도 하지만, 책 p283 이하에서부터 중국에서의 첩보 활동이 본격적으로 다뤄집니다. "첩보 작전을 매우 정교히 구사하는" 사실상 적국인 중국의 이미지는 이 책이 쓰일 무렵에는 일반 대중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을 텝니다. 북한도 두어차례 언급되는데 남아시아 핵무기 네트워크를 설명하는 부분, 또 저자가 신입으로서 훈련받는 대목 등에서죠. <프로젝트 런웨이>나 <앙투라지> 같은 프로그램을 본다는 대목(p304)에서 우리는 저자가 우리와 동시대 사람임을 새삼 깨닫게도 됩니다.

p310에 그녀의 첫 출산 이야기(딸 "조이"), 또 방사능 차로 암살당한 정치인 리트비넨코 이야기가 나옵니다. 딘과는 직업관, 나중에는 (슬프게도) 세계관의 차이까지 분명히 확인되어 이혼하며, 이 무렵 그녀는 애정을 깊이 담아 활약했던 자신의 조직과도 "이혼"하게 됩니다. 아직도 젊은 나이지만, 남들 사는 몇 배의 길이와 밀도로 살아온 어떤 여성의 이야기, 여느 첩보 영화보다도 더 흥미롭고 묵직한 감명을 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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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파서블 보이
벤 브룩스 지음, 허진 옮김 / 위니더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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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렸을 때는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듭니다. 때로는 꿈 속에서 그 상상의 세계를 즐기는데, 눈 뜨고 일어나면 아 좀 더 머물러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 때문에 간혹 눈물까지 짓곤 합니다. 작가께서는 컨설팅이 본업이신데, 이런 재미있는 어린이 컨텐츠를 창작하신 그 동기가, 읽는 내내 궁금해졌습니다.

때로 그 상상의 세계에서 원치 않던 험한 모험까지 즐깁니다. 이런 모티브를 다룬 영화로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라스트 액션 히어로>가 있죠. 저 영화에서는 캐릭터들도 픽션에서 우리의 현실로 건너오곤 하는데, 그들 역시 "우리 현실의 부조리함"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의 상상은 매번 현실이 되지 못하고 의식의 건너편에 머물고 마는지를 생각해 보면 슬프기까지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작가분의 동기 속에 그런 슬픔이 혹시 없는지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이야기는 매우 유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이니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올렉은 문득 현실보다 꿈이 더 재미있어서 잠만 자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p19)." 여기서 아빠는 실직 상태인데 주방 용품 외판원이었나 봅니다. 책 중에서 등장하는 작가는 그 아빠의 엄마,즉 올렉의 할머니죠. 이런 할머니가 혹 곁에 계신다면 어린이들이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로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지 않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선생님이 일억원을 준다고 해도 저는 거짓말 안 해요.(p63)"

가상의 세계에 대해 아무리 말해도 현실의 이웃들이 들어 줄 리 없습니다. 1997년 영화 <쥬만지>에서 친구를 보드게임 속 세계로 보내고 혼자 현실에 남은 여자아이는 어른들의 권고 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으나 마음의 상처가 나았을 리 없습니다. 중년 여인이 되어서도 그녀는 정상적인 소통과 일상이 불가능했죠. 이런 동화에서는 어린이들이 바로 이 불신, 이 현실에서 새로 생긴 장벽과 "자신만의 진실"을 어떻게 타협시켜 나가는지를 구경하는 게 또 포인트입니다.

"올렉의 아빠는 잠에서 깨는 순간 더 이상 자지 못하는 것에 대해 투덜거렸다.(p88)"

이런 책에서 특히 이런 유형의 아빠는 그리 분량이 크지 않은 게 보통인데 이분은 좀 달라서 간혹 웃겨 줍니다. 사실 저런 처지에 놓은 분들은 마음이 불편해서 불면증에 걸리거나 그리 깊이 못 자는 게 보통인데 ㅎㅎ 아무튼 올리버는 이 세바스찬이라는 아이, 다른 세계에서 왔기에 아직 파스타가 뭔지고 모르는 아이가 몹시 궁금해집니다.

"엠마가 집 정원에서 찾은 건 누군가 울타리 너머로 던져버린 먹다 남은 케밥이 다였다.(p128)"

이 이야기 속에는 이처럼 음식 관련 모티브가 종종 등장하여 재미있는 상상의 원천이 됩니다. 다채로운 음식은 다문화의 상념으로도 이어지고, 아마도 이 책에서 세팅하는 상상의 세계는 "다른 문화권"의 은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발랄한 애드립이나 행운, 혹은 무모한 용기 등으로만 상황에 대처하는 게 아니라 작전을 중요시합니다. 엘리사는 그리고 p166에서 아이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데, 그 도구는 "음식"입니다.

"세바스천은 소행성이 아니라 우리 친구에요(p204)."

2009년작 영화 <스타더스트>를 보면 지구에 떨어진 별똥별은 그저 운석 덩어리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성입니다(배우는 기네스 펠트로). 아이들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 놓은 별들에다가도 의미를 부여하고 "길들일" 줄 아는 존재지요. 이 세바스찬, 파스타가 뭔지도 몰랐던 아이를, 선생님과 이웃들, 또 친구들에게 이해시키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없다면 미래는 우리 손을 벗어나, 대비할 수 없게 된다고(p233)" 어떻습니까? 이 책은 작전, 계획, 이런 것처럼 지금의 욕구와 무관한 어떤 조심성, 대비 같은 미덕을 은연중에 강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자 갚는 속도가 이자 불어나는 속도를 전혀 못 따라가 가난해진, 이제는 코 고는 괴물 같은 올렉의 아빠처럼 곤경에 빠질 수 있다는 거죠. 동화책에 이처럼 현실에 대한 은근한 경고가 들어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작가가 컨설팅 하시는 분이라서 그럴까요? ㅎㅎ

"상상력도 근육처럼, 쓰지 않으면 무뎌진단다."
할머니는 역시 작가답게 올렉에게 이런 충고를 들려 줍니다. 사실, 현실도 정글과 같아서, 상상력이 없으면 그때그때의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지는 수가 많죠. 이 책은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의 효용을, 공부 못지 않게 중요하다며 강조해 주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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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회사에 거침없이 어퍼컷
조기준 지음 / 포춘쿠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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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회사"라고 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사실은 사회 생활 경험이 일천한 젊은이들을 현혹하기에나 딱 알맞을 뿐입니다. 위에서 원칙도 없이 일을 시키거나, 무리한 지시도 그저 분위기의 화합을 위해 뭉개고 넘어가기 일쑤지요. 젊은이들은 잠시 듣기 좋은 말에 일시 현혹될 뿐입니다.

그러나 일을 하는 젊은이 입장에서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자신은 직분을 다하지 않은 채, 마치 부모님이 날 돌봐 주듯 배려를 부탁한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행동이겠습니까. 이 책은 그래서 갓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직장에서 유념해야 할 바를 재미있고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초두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 준 인상이 거의 내내 가다시피한다는 건데, 책에서는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말을 인용합니다. 초기의 부정적인 정보를 뒤집고 긍정적인 인상을 다시 주기 위해서는 200배의 물량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초기의 긍정적 인상이 부정적으로 이후 바뀌기는 쉬우나, 그 반대로 부정적인 인상이 (설령 이게 진실이라 해도) 긍정으로 바뀌기는 훨씬 어렵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정중한 매너와 공손한 인사는 물론 필요합니다. "활짝 웃지는 않더라도 정말 반가운 마음가짐을 담는다면....(p44)"이란 지적처럼, 진심과 성실함, 최선을 다하려는 성실한 태도가 정말 그 사람의 마음에 담겼다면 작은 제스처만으로도 효과가 다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른바 "팬암의 미소"처럼, 가식은 그저 가식으로서 역효과가 날 뿐입니다. 윗사람들이나 동료 눈에는, 저 사람이 성실하다 진심이다 정도는 분명히 다 보입니다.

회사에서 형이나 오빠라는 호칭을 함부로 쓰는 건, 공과 사를 구분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 걸 넘어, 저 사람 좀 어디가 부족한 것 아닌가 의심을 받기에 충분할 겁니다. 우리는 분별을 못하고 "마구 앵기는" 걸 사회성 좋은 걸로 착각하는 수가 있습니다. 절도가 바로 선 조직일수록 이런 무분별한 태도를 더 엄격히 대할 것입니다.

별 필요도 없이 점심 식사를 알뜰히 챙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일 하기가 싫어 그저 도피처를 찾는 데 그치는 겁니다. 일에 애착이 있다면 점심은 책상 위에서 간단히 빵 정도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대신, 요즘 괜찮은 직장이 대부분 그러하듯, 저녁은 나만의 시간으로 확실히 누릴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이 책에도 나오듯 만약 그 직장에서 점심 시간이라는 게, 구성원들과의 특별한 소통 시간이 되거나(종전의 "회식"처럼), 혹 타 조직의 직원들을 배려할 시간으로 쓰인다면, 그에 걸맞게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정보를 준비하는 게, 앞서와는 반대로 성실한 사원의 표징이 될 것입니다.

상사에게 보고를 하거나 일상의 소통 경로라고 해도, 말은 정확하고 분명한 언사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사물 높임과 사람높임"의 준별은 그저 메시지가 통하는 선에서 이해를 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니 자네는 나를 높여야지 왜 넥타이를 높이나?" 이런 건 그 직원을 바르게 훈육한다기보다, 그저 시비를 걸려고 괴롭히는 것 이상이 아닙니다.

예전에 저는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온 텔레마케터에게 객체 높임의 오류를 지적했다며 떠들고 자랑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 게, 만약 그 사람이 내 시간을 빼앗는다 싶으면 양해를 구하고 끊어 버리면 됩니다. 도대체 자신이 국어 실력이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나서 필요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모멸감을 준답니까? 이런 사람은 진짜 고수를 만나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나 봐야 제 주제가 바로 파악될 겁니다. 전형적인,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람이랄지. 밖에서 텔레마케팅 일을 하며 돈이라도 버는 분이, 집에서 노는 백수한테 훈계를 들을 이유가 대체 뭐겠습니까. 이렇게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자기 본위로 생각하니까 직장도 없이 집에서 노는 거죠. 아, 물론, 삼전 쯤이나 되는 일류 직장에서야 저런 객체 높임 용법 등 문법의 구사가 중요할 것입니다. 남들 하는 만큼은 하고, 남들한테 최소 수준은 맞춰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나라에서도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블링크>가 베스트셀러가 된 적 있고 이 책에서도 중요 내용이 인용됩니다. 첫인상의 중요함이 다시 부각되며, 특히 책에서는 "당신은 지금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직장에서 통할 기본 예의를 배우는 것"이라며 상황을 정리해 줍니다. 결론은, 타 부서 직원이라 해도 절대 인사하는 것에 소홀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사 잘하는 능력 하나로 예전 김운용 IOC 위원은 사마란치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고속 출세가 가능했습니다. "예절은 그 자체로 습관이 되어야 한다(p77)"는 말도 나옵니다.

집에 간다고 다가 아니라 직장에서는 퇴근 예절 또한 중요합니다. 책에서는 "칼퇴가 권리 아닌 의무(p91)"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우리 속담에 "시집살이 모질게 한 X이 며느리 더 못되게 대한다"고 한 것처럼, 본인이 신입 시절 상사 눈치 보느라 칼퇴를 못 한 걸 이제 상사가 되어서 분풀이를 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책에서는 팀장이, 후배 직원들이 퇴근할 때 퇴근 예절을 지킬 수 있게(!), 자신이 혹 자리를 비우거나 하면 미리 부하들에게 나 어디 있을 거라고 알려 준다거나(왜냐면 문자로 띡 통고하는 식이 되어선 후배가 예의가 아니니 말입니다), 알아서 몇시에 퇴근하라고 아예 말을 하라고 하네요. 이게 맞는 거죠 사실.

책에는 좋은 말이 너무 자주 나옵니다. 한 예로, 부하직원이 상사 지시를 메모하는 건 그만큼 당신의 지시를 중히 여긴다는 충성 제스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중에 책임 소재를 분명히하기 위해서라도 이 메모를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세상이 이렇게나 바뀌고 있는 겁니다. 책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상사 역시 자기 지시를 메모하는 게 부하들에 대한 공감 능력 표시이자 매너라고 하네요. 이런 말을 들으면 정신이 혼미해질 상사들도 있을 건데, 사실 미국 등의 정상적인 기업에서는 기본입니다. 이제 한국 직장도 비로소 조직 같은 조직이 되어 가는 거죠. 꼰대가 설 자리가 없는.

브레인스토밍이라는 개념이 한국직장에 들어온 지도 십 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저 혼자서 떠드는 상사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브레인스토밍은, 된 이야기건 되다 만 헛소리건 다 떠들어 보는 겁니다. 상사가 유능하면 이런 데에서도 영감을 얻는데, 그 이유가 뭐냐면 절실한 팀장은 평소에 항상 그 프로젝트 생각만 하고 있기에 엉뚱한 데서도 "맞아!"라며 출구를 찾는 거죠. 직장은 사실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 많이 하는 사람, 절실한 사람이 잘나가는 곳입니다. 재능만 갖고도 안 되는 게 일입니다. 이 책을 잘 읽고 진심, 절실한 마음, 조직원 모두를 위하는 공감 능력이 어느 정도 계발된다면 정말 평균 이상은 하는 훌륭한 직원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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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완성하는 유화의 기법
오오타니 나오야 지음, 카도마루 츠부라 엮음, 김재훈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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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교육과정 이하 학교에서 수채화 과정은 많이들 연습하지만 캔버스에 그리는 유화는 16세나 넘어야 시도해 본 듯합니다(요즘은 모르겠습니다만). 시간도 오래걸리고 주변도 번잡해지는 그림 그리기를 달갑잖아 하는 이들도 있었겠으나, 생각 혹은 주변의 풍광을 아름답게(최대한) 표현하는 시간은 확실히 아름다운 추억일 뿐 아니라 정서 함양에도 도움이 됩니다. 아름다움을 내 손 끝에서 재현하는 연습을 여러 번 한 영혼이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르기란 쉽지 않기도 하겠고 말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악기 하나쯤은 자유로 다뤘으면 하는 마음이 있듯, 그림 그리기 역시, 그 중에서도 특히 유화 그리기는 모두가 마음 한 구석에 갖는 소망이지 싶습니다.


수채화에서는 제 생각에 음영색 3색(검, 회, 흰)이 그리 크게는 중요치 않았는데, 유화에서는 그리자유 기법이라고 해서 따로 독립된 영역인 듯합니다. 책에서는 "데셍처럼 빛과 음영의 명암으로 그리지만, 색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p43). 다음에는 이런 설명이 있는데, "사물의 색을 회색계조로 변화해야 하므로(회색계조란 앞에서 말한 검, 회, 흰입니다), 모티브 각 부분의 색은 어느 정도 밝으며 어떤 색이 있는지 확실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따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계조 같은 생소한 말에도 페이지 아래에 일일이 각주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자유로 그릴 때는 모든 색이 회색계조로 변하므로, 책에도 나오듯이 빨간색은 제법 검게 변합니다. 이처럼 명도가 각기 다른 색을만들 때 "페인팅 나이프"를 쓰는데 아래 사진과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팔레트가 사용 전, 사용 후에 어떻게 바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그저 사진으로 찍어 놓은 파프리카(노랑, 빨강)들이, 유화로 멋지게 재창조 과정을 거쳤을 때 어떻게 바뀌는지 보십시오. 분명 같은 흑백인데도 어떤 채도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제가 눈여겨 본 게 그리자유 파트였습니다. 막연하게, 아 빨간색은 좀 진하게 나오겠구나, 노랑이니까 연하겠지, 이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책에서는 특히, 공통되는 색부터 그리면 농담의 차이를 파악하기 쉽다(p46)고 합니다. 또, "회색조로 그릴 때는 배경의 공간과 사물의 농도가 같아져버리는 일이 흔하다(p50)"고도 합니다. 


천연의 색도 그리자유로만 표현하기 어려운데, 대상이 금속이면 어떨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책에서 그리자유+고유색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 메탈은 그리자유가 그리 쉽지 않나 보다 하고 짐작합니다만 회색계조로만 계속 나가고 싶은 학습자가 그리 많지는 않겠고, 저 역시 다른 기법으로 발전도 하고 싶었으므로 그냥 책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가봤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다시피...  특별한 취향이나 관점을 가진 분이 아닌 이상, 와 한 가지 계조로만 하다가 고유색이 들어가니 뭔가 확 다르다 싶어서 신이 난다 하는 게 보통의 반응일 겁니다. 


기법을 연습할 때에는, 이 책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일단 그리자유, 그 다음에 고유색 중에서도 제한된 몇 가지만으로, 이런 식으로 색을 점점 늘려 가며 연습해 나가야 섬세한 표현이 가능해지는 듯합니다. 사실 이런 이치는 수채화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또 책에서는 0호, SM처럼 작은 화면을 먼저 3, 4 시간 동안 그리는 연습을 거치라고 합니다(p65). 그 다음 말씀이 명작인데, "세밀하게 묘사된 작품도 처음 단계에서는 '단순한 면'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선을 그려서 무무늬를 표현하는 게 아니다. 다른 색의 가늘고 긴 면으로 칠해야 한다". 이래서, 왜 어떤 그림은 졸작이고, 어떤 그림은 일반인이 봐도 감탄이 나오는지 그 차이가 설명되는 것 같네요. 


그림을 다 잘 그려 놓고도 정작 캔버스 표면이 신경 쓰이는(p68) 경우가 많겠으며, 저 역시 고교 때 숙제 같은 게 나오면 "이렇게 그냥 내도 될까?"하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아직 젊으신 분이어서 어떤 세심한 코칭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책에서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데 "흰색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고 음영색 셋으로 만든 혼색한 검정으로 밑칠을 하는 것도 좋다"는 겁니다. 


천의 주름(p80) 같은 건 진짜 어렵죠. 책에서는 "그리자유처럼 해도 좋겠으나, 하얀 천에도 색감이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그림은 어디까지나 그리는 사람의 해석이지, 어떤 모티브의 재생, 복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건 동양화를 보면 알 수 있죠(물론 진경산수화처럼 철학이 다른 것도 있지만). 


책을 끝까지 다 읽어 보면 회색 계조의 활용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이 책과 달리 그리자유 기법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 유화도 있겠으나, 저 같은 초보자에게는 이 방법이 훨씬 따라하기가 쉬웠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그림은 뭘 따라하는 게 아니고, 초보 단계에서는 이런저런 기법을 흉내내듯 하다 나중에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식으로 발전해야 할 듯합니다. 이번 조영남 판결에서 알 수 있듯 중요한 건 아이디어와 창의이지 기법 자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기법 훈련 없이 아이디어만 내세운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 상대로는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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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게 말해도 마음을 얻는 대화법 - '할 말' 다 하면서 호감을 얻는 대화의 기술!
후지요시 다쓰조 지음, 박재영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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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쉬운 게 아닌 정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얻는다면 그 사람은 인생과 사회생활 최고의 스킬을 가진 거죠.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제한된 세계에 갇혀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아무 말이나 떠들지만, 단 몇 사람만이라도 그들의 마음을 산다면 그 사람은 이미 지존의 경지에 오른 겁니다. 그게 기술 수준에 그치든, 아니면 진정 인격 수양이 된 부산물이든 말입니다.

목소리나 발음이 좋아도 모두 호감형은 아니다(p39). 그렇다고는 해도 일단 목소리, 발음이 좋으면 정말 "일단은" 상대가 호감을 갖는 게 사실입니다. 예전에 어떤 정치인(아주 유명했던 사람)은 "정치인이라면 일단 목소리가 좋아야 한다"고 했는데, 본인을 포함해서 본인이 기용했던 후배 정치인들도 다 목소리가 좋았죠.

저자는 "교언영색하는 자 중에 신용할 수 있는 자가 없다"며 논어의 한 구절을 재인용하고(같은 페이지), 말 잘하는 사람은 다 사기꾼이라는 속언도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일본(저자는 일본인입니다)에도 있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지난시절 일본의 속언을 받아들인 건지도 모르죠. 여튼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커뮤니케이션의 원활함을 위해 발성과 발음에 노력하는 건 좋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p40)"라는 겁니다.

다시, 그럼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자는 단언컨대 "기분 조절(p41)"이라고 합니다. 제가 요즘 아주 감탄하면서 본 어떤 여성분이 있는데, 얼굴도 뭐 좀 그렇고 발성도... 분명하기는 하나 그리 드물다 할 만큼 훌륭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알 수 없는 힘, 매력으로 청중을 장악하는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을 읽어 보니 딱 "기분 조절"이란 대목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여기서 기분 조절이라 함은, 요즘 이른바 "텐션"이라고 하는, 혼자 들떠서 막 떠들어대는 기세를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활기를 유지하되, 청중과 정확히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의 침착함과 긴장도 그대로 끌고 가는 기술이며, 전 이런 게 단지 기술만 연마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마음의 바탕에, 긍정적이고 밝고 타인과 잘 공감하고, 비틀리거나 어두운 구석이 없는 마인드셋이 있어야 이런 태도,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 역시, 평소에 그 나름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던 바를 책에서 다시 만날 때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을 보내게 됩니다. p46이하에서는 그야말로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내용들이 그대로 나와서 참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p48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 의욕이 있다(매사에 임하는 힘이 넘쳐흐른다)

이게 실제로 조직에서 이런 사람을 겪어 봐야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압니다. 이런 이들은 발걸음도 참 사뿐사뿐하고, 눈빛부터가 강한 에너지를 뿜으며, 사람을 척 마주했을 때 벌써 사람을 (기분 좋게) 압도하고 들어갑니다. 머리가 좋다, 외모가 출중하다, 체형이 날씬하다, 이런 게 문제가 아닙니다. 못생기면 못생긴대로 이런 사람들은 신기하게 호감을 얻습니다. 좀 무식해도 상관 없습니다. 여튼 말 몇 마디를 들어봐도 어떤 일에서는 이런 사람 말을 꼭 들어야 일이 전반적으로 잘 풀릴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알지 못할 권위 같은 게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뇌 과학이 없었던 오래전부터 이런 힘을 '기'라고 불렀다(p49)."

대화로 사고가 변하면, 그 다음은 행동의 단계(p56)라고 합니다. 저자는 사업차 미얀마에 자주 방문하는데, 일본 음식 츠케멘을 먹으며 친하게 지낸 현지인 한 분을 통해 수십 명의 지인을 더 교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뻔뻔하고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마음을 얻는 방법"을 논하지만, 그 못지 않게 "대화 다음 단계로서의 행동"도 강조합니다.

대화의 목적이 뭘까요? 물론 조직 안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지시를 내리고, 피드백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특히 조직 안에서 대화의 다른 목적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조직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업(up)시키고, 조직의 목표를 향해 전 조직원이 하나가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화의 내용 같은 건 별 알맹이가 때로는 없어도 무방합니다. 어떤 대화는 그저 과정을 마치기만 해도 나중에  분위기가 정말 좋아집니다. "모든 요소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 요소들이 합쳐져 나와 타인에게 기분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저자의 말입니다. 기분 변화가 그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런 것은 집에서 아이를 지도하는 부모님들도 좀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아이가 숙제를 안했다, 이러면 엄마 입장에서는 일단 짜증이 나죠. 그럼 아주 퉁명스럽고 짜증스럽게 "왜 안 했니?"라며 일단은 타박을 줍니다. 그래서 아이가 지금, 혹은 앞으로는 숙제를 척척 잘하게 되느냐, 애 입장에서는 짜증 한 마디를 들은 외에 다른 효과가 없습니다. 정말로 애가 숙제를 잘 하는 게 목적이고, 내 분풀이를 하는 게 아니라면, 이런 경우에도 "원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아이는 어느새 학습효과가 생겨, "숙제와 엄마의 주문에 대해 자동으로 부정적인 기분부터 드는" 부작용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엄마 때문에 공부가 싫어지면 누가 책임을 져야겠습니까?

서양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그 자체에 일단 거부감을 느낀다고 하죠. 얼굴이야말로 그 사람의 감정 모든 게 다 드러나는 곳인데 이걸 가린다는 건 뭔가 그 사람이 다른 의도를 감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건 문화의 차이이며, 동양인이 구태여 가족에게 "사랑해, 사랑해"를 되풀이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그 마음 다 아는 것과 (그 반대의) 서양 문화가 서로 큰 차이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여튼 저자는, 표정을 통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전달하라고 합니다. 아까 제가 언급했던 그 여자분도, 뭐 딱히 미인이라서가 아니라 얼굴을 충분히 활용해 모든 감정을 전달하는 그 기술이 뛰어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저런 자계서들을 보면 "자신감을 갖고 임하라. 이쪽이 꿀린다는 인상을 주자 말라"는 주문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나쁠 거야 없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런 주문을 잘못 소화해서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태,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도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들이댑니다. 이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듣는 사람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이나 하고 이런 유치한 행동을 하는 건가?" 이런 건 자신감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감 부재의 증명입니다. 책에서는 "고객의 자유의사를 어디까지나 존중합니다(p117)"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야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제가 어떤 아파트 분양을 하던 과장님을 만난 적 있는데, 그분이 꼭 이랬습니다.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차근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며 간간히 기술이 들어오는데 그런 것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원래 고수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일본 저자들의 책을 보면 가끔은 "이게 주제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은 서술도 간혹 눈에 띕니다. 책에서는 특히 챕터 8이하에서 바른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취지는 뭐 분명합니다. 자세가 바른 사람은 타인에게 호감을 주고, (진짜 중요한 건 이건데) 자세가 바르면 그 사람 자신이 기분이 좋아지고 최상의 컨디션에서 일하게 된다는 겁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그 사람 자신이 컨디션 최고인데, 누가 의심을 품거나 비호감 반응을 그리 쉽게 보이겠습니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므로, 뭐 손해 볼 것 없는 이상 우리도 한번 따라해 보는 겁니다.

저자는 아들러의 말도 인용합니다. "상대의 자존감을 높여 줘라. 그럼 그 상대도 당신에게 호응할 것이다." 그런데 뭐 실제로는 그런 말이 안 통하는 상대도 있을 겁니다. 남을 깎아 내려야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사실 이런 사람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 "사회에서 만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책에서 가르치는 어떤 정상적인 교훈을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을 무시하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누군가와 만나 개인적인, 혹은 속한 회사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부터가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에 휩싸인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상대방까지 기분 좋게 할 수 있고, 그 다음에 모두가 만족하는 어떤 거래 목적이 달성되는 거죠. 이런 사람은, "뻔뻔하게 말해도" 다른 사람이 기분 좋게 그걸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스스로의 확신이 없는 채 이기적으로 뻔뻔하게 말하는 사람은 그저 불한당일 뿐 어떤 목적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무슨 기분 풀이를 위해 타인을 대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애초에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사는 사람은 무슨 분풀이를 할 거리가 생기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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