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업가 김대중 1 - 섬마을 소년
스튜디오 질풍 지음 / 그린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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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위대한 사람의 발자취를 뜨겁게 더듬는 작업은 역시 그 어린 시절부터가 되어야 할 듯합니다. 운동 신경이 뛰어난 스포츠맨(여성 포함)들도 그렇고, 요즘 저는 왜 뛰어난 사람들이 이렇게 벽지, 섬 지역에서 많이들 출생할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 있습니다. 농담으로 하는 말 중에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 같은 게 있듯, 맑고 웅대한 자연과 접하며 성장해야 한 인물의 가슴 안에 어떤 웅지 같은 게 배양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년 김대중은 우리가 다들 잘 알듯 전남 신안 하의도 태생입니다. 이 1권에서는 아주 어린 시절은 생략하고, 1930년대 일제가 편 민족 말살 정책에 따라 "조선어"를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심지어 말하지도 못하게 하는 조치를 편 시점부터 그 시작을 잡습니다. 항구에 큰 배가 들어올 때 다른 아이들은 그저 그 사이즈에 감탄하지만, 소년은 "저처럼 큰 배에,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아닌, 모두가 잘 살게끔 물자와 인력을 싣고 교류하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생각을 합니다. 같은 물을 마셔도 독사가 마시면 독액이 되며,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는 이치와 비슷합니다.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 저희 아버지도 아주 가끔, 자주는 아니고 가끔 우산을 들고 학교까지 찾아와 주시곤 했는데, 이 만화에서도 그 가부장적인 풍조가 지배하던 시절 소년의 부친께서 찾아와 아들의 손을 잡고 귀가하려 합니다. 이때, 소년의 친구 중 하나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학교에서는 조선말 쓰면 안되는데요."

북한에서도 어려서부터 주제사상, 유일체제의 우월성을 열심히 가르치기에 어린이들이 멋도 모르고 독재자를 찬양하는 게 몸에 배어 있을 겁니다. 1930년대에는 이처럼 민족 말살 정책이 치를 떨 만큼 집요하게 이뤄졌기에, 저 철없는 어린이가 동급생의 부친에게 이치에 닿지 않는 저런 말을 하는 겁니다. 뭐 아저씨가 혹 훈도에게 제재나 받지 않을까 염려되어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여튼 어린이한테 이런 몹쓸 일을 시키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는 느낌입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혹 생각이 난다면 얼마나 수치심과 죄책감이 크게 떠오르겠습니까. 물론 그런 걸 모르는 한심한 성인, 자기 자신의 잘못을 전혀 성찰 못하는 인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우리 커서 큰사람이 되불자."
사실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런 야망, 야무진 뜻 같은 걸 품지 못합니다. 그저 들판을 뛰놀고 흘러내린 코를 들이마시며 친구들과 웃고 떠들 뿐이죠. 하지만 먼 훗날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큰 인물은 어려서부터 그 태도가 남다르죠. 이런 큰 인물은 철없는 친구들에게조차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래서 저 말을, 그 뜻도 모르면서 친구들이 같이 되뇌는 겁니다. "되"는 "돼"로 썼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 서남 방언의 "되불자"는 "되어 버리자" 정도의 뜻인데, 그렇다면 연결 어미 "~어"가 생략된 꼴이기 때문입니다. 서남방언에서 "왜"와 "외"는 대체로 구별이 되는 편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예전에는 고교생 정도면 골격이 다 자라 거의 성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학부생이라고 해도 아직 어린 인상이죠. 아무튼 상급 학교(당시 명문이었던 공립 목상)에 진학한 그는, 또래 일본인 학생들과 충돌을 빚습니다. 물론 원인 제공은 일인들이 먼저 한 것인데, 조선 여학생을 희롱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년은 일인들을 혼 내 주는데, 이 때문에 저쪽에서도 힘 좀 쓴다는 놈이 찾아와 대결을 요청합니다. 이름은 타케다라고 나오는데, 행실이 불량해서인지 상의를 거의 탈의한 상태입니다. 이런 양아치들이 특정 동네에 가면 요즘도 자주 보이죠. ㅋ

이때 저 타케다라는 덩치의 대사가 걸작인데,
"나라를 빼앗기고, 여자들마저 빼앗길 것 같은 위기의식에서 나온 질투가 원인인 건가?"
입니다. 물론 말도 안되는 헛소린데, 그래도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 양아치 입에서 나온 것치고는 제법 말의 구조를 갖춘 꼴이니 말입니다.

소년은 일단 "선빵"을 맞는데, 반격을 하다 그의 "소중이(이 책에 나오는 표현입니다)"를 걷어차고, 이를 보며 격분한 왜놈 학생들이 금기를 깼다며 떼로 그를 공격합니다. 콧수염을 키운 히라이시 준위라는 자가 폭력 사태를 저지하고, 소년은 학교에서 심한 체벌을 받습니다. 잘못은 왜인 학생들이 먼저 저질렀는데도 말입니다.

"나라 잃은 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소년은 절규합니다.

여러 곡절을 거쳐, 저 타케다와 주인공은 이제 제법 친한 사이가 되며, 지금도 그렇지만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각별한 존경심을 갖는 경향이 있는 일본인들은, 제법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주인공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이때부터도 "선생님"이란 호칭을 얻게 되네요.

일 잘하는 주인공은 그 젊은 나이에 조선은행 목포지점 지점장으로부터 직접 전화까지 받습니다. 여기 나오는 일인들은, 지점장부터 그 준위, 또 타케다까지 거진 모두 코 밑에 수염을 기르는 게 독특합니다. 여튼 지점장과의 회식 자리에서 주인공은 "일본이 밀리고 있다"는 전황(2차대전) 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다시 한 번 지점장과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지점장은 비록 일본인이었지만 사태를 정확히 직시했던 현인이었던 거죠. 하긴 그런 안목이 있으니 사람도 알아 본 것이고 말입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나. 맞는 말을 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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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대담한 제안 - 사상 최악의 불황을 극복하는 12가지 경제 이론
린다 유 지음, 안세민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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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난 경제학자들 중에는 시스템의 본질과 인간 본성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가진 이들이 많았습니다. 존 메어나드 케인즈는 알프레드 마셜의 수학자 입문 권유에 대해 "수학 같은 걸 하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말을 했는데, 수학처럼 천재의 영역인 학문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한 가지 외에 다른 분야의 재능까지 두루 타고난 이에게 경제학 같은 보다 복합적인 전공이 더 어울린다는 뜻이겠습니다. 경제의 필드는 다양한 인간들이 복합적인 욕망을 안고 참여하는 장이므로, 일차원 아닌 다차원 변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람이라야 정확히 이해가 가능할 것 같고, 그런 이유에서, 지난 시대의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처방 중 오늘날에도 적용될 만한 게 없겠는지 살피는 노력이 매우 유익, 유용할 듯합니다. 조순 전 서울시장은 "경제학은 아이디어는 돌고 도는 것"이라며 자신의 저서 <경제학 원론>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책 처음에는 애덤 스미스가 나옵니다. 故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교수라든가 유시민 같은 사람은 애덤 스미스 같은 독특한 지성을 배출한 스코틀랜드의 풍토에 대해 지적한 적 있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는 정부에 의해 어떤 재조정이 필요한가? 필요 없다는 이론을 정초한 사람이 바로 애덤 스미스("보이지 않는 손")이며, 수백 년 후 이에 수정을 가한 사람이 케인스입니다. 책에서는 두 입장을 교차시켜 가며 이 오래된 입장들의 대결을 설명합니다. 케인스 이야기는 뒤의 6장에서 다시 나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그저 지난 시대 경제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요약,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오늘의 이슈"와 관련하여 어떤 시사점을 던져 주느냐를 또 집중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문제를 독자들은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으며, 사실 애쓰지 않아도 저자가 노련하게 두 논점을 잘 교차시켜가며 결론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유시민은 그의 책 중에서 "아이디어는 탁월하나 읽기에 너무도 까다로운, 대책 없는 서투른 문장을 구사한" 리카도에 대해 자세한 소개를 했었습니다. 이 책 저자는 문장력에 대한 언급은 길게 하지 않고, 대신 그의 놀라운 투자 수완(당대에 그를 거부로 만든)에 대해 칭찬합니다(유시민 책에도 이 말은 있습니다). 천재답게 그는 당시 영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으며, 그 해답은 바로 과감한 자유무역이었고, 이는 동시대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습니다.

자유무역이라 해서 만능의 해답은 아니지만, 분명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해답이 됩니다. 일례로 2000년대 초반 노 대통령이 미국과 FTA를 추진하려 들 때, 노동계 등에서 격렬한 반대를 했으며, 많은 이들은 미국에 크게 종속되는 패자의 게임이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14년 정도가 지난 지금, 오히려 미 대통령 트럼프가 "끔찍한 협상"이라 비판하며 재개정 내지 폐기를 주장할 만큼 우리에게 유리한 거래가 되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미국에서 최근 리쇼어링 붐이 일어나는 것도, 자유무역의 폐해 그 일단을 드러내는 증거 중 하나입니다. 저자는 폴 새무얼슨의 말을 인용하여, 리카도의 자유무역 이론이 "틀림없이 타당하지만,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진 이들에게도 쉬이 납득이 되지는 않는 이론"이라고 합니다.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듯, 제조업 분야에서는 선진국이 손해를 대체로 보며, 이를 서비스업의 우위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메꾼다고 합니다. 아마도 FTA 협상 당시, 미국이 실수를 하여 우리 국민이 미국 서비스(3차 산업) 분야를 잘 소비하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당시 법률 서비스 수입 쪽에 역점을 두었는데, 현재까지도 "미국 변호사"를 매매, 등기, 교통사고, 채권 회수 등 사건에 우리가 고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기업이 국제 소송에서 저들을 많이 활용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3장은 칼 마르크스 이야기인데, 저자는 이것 관련하여 "중국이 과연 성장을 계속하여 강대국이 될 수 있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끌어내려 합니다. 삼십 년 전만 해도 국내의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은, 덩샤오핑의 노선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가할 만큼, 중국의 노선은 사실 마르크스의 입장과는 궤가 아주 다른데도 말입니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실제 중국은 저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트리에르까지 가서 마르크스 관련 사업을 후원하고 현재 자신들이 그의 입장을 계승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첫째 노동력의 이동("요소 재배치")이 중국에서는 대단히 제한적이며, 두번째 중국의 공업 시설은 다른 개도국의 그것과는 달리 "재공업화의 과정"을 거쳤으므로 순수하게 맨땅에 헤딩 식은 아니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니 앞 단계에서 마오 주도의 거대한 실패까지 다 감안하면 보다 비용이 큰, 비효율적인 성장이었다는 소립니다.

알프리드 마셜은 (부분적으로) 케인스의 스승이었고 따뜻한 마음을 강조한 학풍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 중 어느 요소가 가격을 결정하는지에 대한 난제를, "가위의 두 날"이라 정리하여 명쾌하고 지혜롭게 해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의 문제"가 다시 대두하였고 이 덕분에 버니 샌더스나 코빈 같은 이가 미국, 영국의 정계에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이 불평등 이슈를 칼 마르크스가 아니라 마셜에게서 단서를 잡은 저자의 태도가 독특하죠.

부자는 소비 성향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적으므로, 가난한 사람한테 가는 몫을 더 늘여야 그들이 돈을 더 많이 써서 경제 전체가 살아난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고, 이런 입장의 먼 단초가 마셜이었습니다. 마셜은 그 외에도 조세 제도, 복지 시스템의 정비를 주장했죠. 그러나 우리 시대의 원로 폴 크루그먼은 이에 반대했고, 오히려 부자가 돈을 더 많이 써 경제 회복에 기여한다고 말합니다. 젊은 토마 피케티도 이제는 중요 사상가로 대우되며 불평등의 근원적 독소에 대해 지적합니다(라고 이 책에서 인용됩니다). 부자의 소비 성향이 설령 생각보다는 크더라도, 그들이 새로 소비하는 분야가 비 전통적인 섹터이며, 이런 섹터에서의 생산자가 그리 많지 않으므로 경기 회복의 정도가 더딘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섹터로 빨리 진출, 적응하게 경제 활동 인구의 참여를 돕는(재교육 지원 등) 게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어빙 피셔가 (다른 책들에서보다는)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경기 회복을 위해 어느 정도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은 같으나 케인즈가 워낙 그 천재성을 매력으로 앞세워 인기를 끌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고 책은 말합니다(p183 마지막줄 역자 설명에 "평창→팽창" 오타 있습니다). 책은 그의 입장을 버냉키라든가, 하이먼 민스키의 최근 해석과 관련하여 설명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특히 미국인들)이 08년 위기를 아직 완전히 극복 못했거나 그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므로 디플레이션, 리세션에 대한 핸들링은 매우 중요합니다. "재평가가 필요한 최고의 경제학자" 이것이 책의 평가입니다.

08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 조짐이 보이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12년도에는 그리스가 국가 부도 위기까지 몰리며 또다시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공공투자와 저금리의 효과적인 활용"이 등장하며, 전자는 케인스의 재정정책, 후자는 피구 등의 금융통화정책을 대변합니다.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지겹도록 강조하는 것처럼, 케인스는 "저축과 투자는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서투른 기제를 정부가 적극 개입해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피구 등은 "그래봐야 소용없다!"(구축 효과 등 때문에)에 가깝습니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는 노동의 착취를 통해서만 창출이 가능하다"고 했으며, 이에 대해 슘페터는 사실상 완벽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아니다. 혁신을 통해 자본가 역시 잉여가치를 만든다." 만약 누가 애플의 아이폰을 사면서 "스티브 잡스의 혁신이라는 명분"을 찬양한다면, 그 사람은 어디 가서 마르크스를 원용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겁니다(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죠). 슘페터는 분명 자본주의가 자기 완결적이 아니며 대단한 취약한 시스템이나, 자본가(뭐 당연 노동자도 가능합니다)의 혁신이 언제나 그런 위기를 돌파하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합니다. 본질은 혁신이지 계급 대립이 아니라는 거죠. 여기서 저자는 중국 경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는데,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라고 반드시 자체 모순을 해결하고 타국 경제에 도움을 주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이유는 무엇인가? 저가의 가격 경쟁력에 만족하고 혁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핵심을 찌른 지적 아니겠습니까.

하이에크는 우리 시대의 경영 구루였던 피터 드러커의 스승이며, 그렇게도 비판 받는 신자유주의의 원류로 꼽히지만 정작 진보 진영에서 이 사람을 그리 막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좌파를 자칭하면서도 하이에크 이야기가 나오면 "위대한 사상가"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 걸 보면 실소가 나오기도 합니다. 하이에크는 <노예에의 길>을 써서 큰 반향을 얻었고, 헤르만 파이너는 이에 대해 <반동(reaction)에의 길>을 저술하여 반박했죠.

조앤 로빈슨은 우리 나라에서 한때 추종자가 많았으며, 이 책에서는 독립된 항목으로 다뤄지고 케인즈의 "제자"로도 성격 규정됩니다. 반면 일각에서는 "경제학을 파괴하려는 사람"으로 비난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녀의 영원한 토픽은 바로 "오르지 않는 임금"이죠. 앞에서는 밀턴 프리드먼이 나오는데 저자는 "하이에크가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 의의를 높이 둡니다.

더글러스 노스는 경제 성장에 있어 중요한 건 "제도"임을 강조하고 이 때문에 왜 어떤 나라는 번영하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못한지, 즉 "실패한 국가"가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경로의존성에 의한 이런 설명은 "중국은 아프리카에 비해 성공한 국가이며 큰 위기도 없고 빈곤을 거의 근절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만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겠습니다.

"잃어버린 30년" 때문에라도 오늘날 일본을 성공 사례로 꼽는 입장은 이제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저성장은 과연 그럼 우리 모두의 미래인가? 한국에 대해서도 그런 길을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최근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로버트 솔로의 모델을 소개하며, 그 요체는 "역동적인 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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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명도의 특급 비밀 100문 100답 - 법원 집행관실 30년 실무 경력자 천자봉이 말해주는
정상열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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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학원에서 각종 실무 절차를 일반 수강생 상대로 강의를 할 만큼,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싼 값에 취득하려는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재테크 기술이 점점 귀한 노하우가 돼 가는 만큼, 경매 (낙찰)의 달인이 되어 재산을 불려 나간다면 참 보람된 일이겠습니다. 문제는 민법, 민사소송법, 민사집행법에 어지간히 어려운 규정들이 많아 일반인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30년 동안 집행관 업무를 맡아 본 베테랑이며 현재 부동산에듀&리치캠퍼스의 대표로 있습니다. 그러셔서인지 확실히 책이 핵심을 찌르는 사례와 설명으로 잘 짜여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실무 절차에 관한 내용은, 아무리 일반서나 용어집을 열심히 정독해도 그것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잘 짜여진 사례 모음으로 접근해야, 아 이 규정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이럴 때 적용되라고 마련된 거구나, 하며 구체적인 그림이 머리 속에 잡히기 시작하죠.

만약 이 책을 펼쳤을 때, 아 이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며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는 분은, 1) 처음부터 무작정 읽지 마시고 목차를 펼친 후 자신이 그나마 가장 가깝게 접해 본 사례, 혹은 아 이건 나도 평소에 궁금했었어 싶은 항목부터 읽으십시오. 그러면서 다른 사례를 읽어 나가면 의외로 재밌어질 겁니다. 2) 어떻게 해도 책이 안 읽히는 분은, 뭐랄까 아직 경매절차에 대해 스스로가 개념이 안 잡힌 탓이 큽니다. 개념이 안 잡힌 건, 경매에 대해 정말로 절실한 호기심이 여태 생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주변에 경매 절차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아는 분과 대화하면서 경매의 그림이 대강이나마 머리에 그려지게 일단 흥미부터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경매에 대해 기본 마인드셋이 되었다면, 그 다음부터는 이 책이 마치 게임 전술서적처럼 재미있게 읽힙니다(제가 장담하죠). 어렸을 때 보드게임 하나 정도는 하며 자란 분들이 많겠는데, 제대로 된 보드게임은 얇은 설명서 외에 전술집 예제가 반드시 별책으로 끼워져 있습니다. 게임을 아예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이용자에게는 단 한 글자도 눈에 안 들어오지만, 일단 룰을 알고 가족과 친구와 몇 게임 두어 본 이용자에게는 재미있어 미치는 거죠.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정말로 바둑이나 장기의 고수가 되듯, 경매의 달인이 되어 있을 겁니다.

첫 장에는 공유자우선매수청구권이 나옵니다. "여러 차례 할 수 있느냐?"라고 묻는데, 제 생각에는 이 장보다 바로 다음의 두번째 장, "저가에 낙찰받을 생각에 우선매수를 신청했다가 낭패봤어요"를 먼저 읽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p19에는 "우선매수신고만 해 놓고 막상 유찰되자 보증금을 납부하지 않아 신고를 무효화시키는 등 악의적인 경우가 발생하기도 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공유자우선매수, 아니 그 전에 소유권상의 공유관계가 뭔지 모르는 분들도 많겠고, "막상 유찰되자", "악의적인 경우" 등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면 어떤 그림이 먼저 그려져야 합니다. 그 구체적인 경우가 바로 다음 장에 나온다는 겁니다.

A라는 토지를 갑과 을 두 사람이 구분해서 소유하는 경우도 있고(이런 경우는 필지를 분할하는 게 보통입니다), 어디를 누가 갖는지를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으나 지분으로 갑 50%, 을 50%, 혹은 갑 60%, 을 40%, 하는 식으로만 나눠갖는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나중에, 을과는 전혀 무관하고 갑만, 오로지 갑만, 병이라는 제3자에게 빚을 졌을 때, 갑이 병에 대해 채무불이행이 되면 자기가 가진 물건을 팔아서라도 변제를 해야 합니다. 그때 A라는 토지에 집행이 가해질 시, 을의 지분은 어떻게 되느냐는 겁니다.

이 경우 만약 정이라는 또 전혀 다른 사람에게 낙찰이 된다면, 정은 토지 A의 대가로 납부한 돈 중에서 병이 받아야 할 부분을 받게 하고, 병은 자신의 빚을 다 받아내었으므로 이제 법률관계에서 퇴장하며 채무자였던 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원래는 전혀 모르던 사람들인 을과 정이, 토지 A에다 대고, 어디를 누구 것으로 할지 전혀 합의도 안 된 상태에서 공유자로서 공존하게 됩니다.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경우 정 같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낙찰되기 전에, 을에게 먼저 토지 A를 모조리 살 기회를 줘서 을이 불편한 타인과 동거(?)하는 걸 막아 주는 데에 이 규정의 취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A라는 토지가 별 쓸모가 없어서 입찰자가 안 나선다, 이럴 때 을은 구태여 땅을 살 게 아니고 계속 미루면서, 돈 한 푼 추가로 안 들이고 A라는 토지를 아직은 소유권자인 갑의 양해 하에 종전처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50%의 새 임자가 아직 안 나타나는데 어쩌겠습니까? 우선매수청구권은,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내가 사겠소 하고 나서서 꼼짝없이 그 사람 몫으로 지분이 넘어갈 때, "잠깐!" 하며 쓰는 찬스와도 같습니다. 그 전에는 구태여 행사할 필요가 없는 거죠. 물론, A라는 토지가 핫플레이스일 경우에는 앞뒤 재지 않고 을은 바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2장에 나오는 사례에서 그 입찰자(즉 채권자)는 왜 하필 1억 6천만원에 betting(이 책의 표현입니다)을 했을까요? 1억 6천에 행여 사게 될 경우에는, 일단 그 대금을 지불하고, 자신이 다시 채권자로서 받아내면 되기 때문입니다. 입찰자는 추가로 들이는 비용이 없습니다. 반대로, 궁지에 몰린 다른 공유자가 마지못해 해당 토지를 우선 매수하게 되면, 이 공유자는 저 입찰자가 써 낸 1억 6천을 내어야만 우선매수가 완료되는 겁니다. 채권자가 머리를 잘 썼다는 걸 알 수 있죠. 만약에 공유자가 우선매수청구를 하지 않았다면, 채권자는 공유자가 저대로 계속 버틸지 아닐지를 짐작할 수 없었겠죠. 공유자가 지레 청구권 행사하는 걸 보고, 아 내가 바로 입찰해서 1억 6천을 써도 내가 이 돈을 마련할 일이 아마 없겠다, 저 사람이 돈 내겠구나 하고 확신 하에 행동할 수 있었던 거죠.

p19로 다시 돌아오면, 공유자가 먼저 우선매수 청구를 해 놓고도, 막상 아무도 입찰을 안 하자(유찰), 보증금을 미납하는 편법으로 애초의 청구를 없던 일로 만든 후, 다음 입찰에 누가 나타나면 그제서야 다시 청구를 재차 하여 그 입찰자의 시도를 무위로 만든다든가 하겠죠. 이런 걸 허용하면 권리관계가 뒤늦게 확정되며, 채권자(들)의 권리 실현, 만족은 더 늦어집니다. 이걸 막기 위해 아예 입법으로 1회에 한해 행사하도록 앞으로 법정할 전망이라는 뜻입니다. 현재도 법관 재량으로 1회에 한정하는 게 실무의 보통이라는 말은 저자분이 해 주고 있습니다.

4장에 나오는, 본격 절차가 개시되기 전 "공유우선매수하실 분 있으세요?"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아도 되며, 본 절차가 개시되고 입찰자가 나오면 그제서야 행사하면 된다는 조언이 아주 유익합니다. 사실 표현을 저리 해서 그렇지, 독자인 제가 읽기로는 "절차 개시 전 묻는 질문에는 절대 대답하지 말 것!"으로 들렸습니다.


책에는 "채무자를 측은히 여긴 채권자가 이사 비용을 대줬다"에서처럼, 집행을 당하는 이가 "이사" 가는 문제가 자주 등장합니다(p61, p76, p74 등). 당연한 것이, 이 책의 제목만 봐도 "명도"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무자가 종전의 점유를 포기하고 적어도 자신의 몸은 주거에서 떠나야 명도 의무의 최소한이 실행되는 셈입니다.

예전에 한국민법학의 태두 곽윤직 교수님은, "명도 같은 건 일본식 한자어이니 쓰면 안 된다"고 하셨으나(즉 명도건 인도건 모두 인도로 통일), 그분의 제자 중 한 분인 김재형 교수(현 대법관)는 강단에서 "이미 실무에서 명도는 건물을 '비워' 넘기는 것, 인도는 그 외의 경우에 쓰는 것으로 굳었다"고 하신 적 있죠. 한편, 현재는 민사집행법 등이 크게 개정되고, 판례에서도 "인도"라고 표현했어도 내용상 "명도"라고 새길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니, 결국 곽 교수님의 학설이 승리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여튼 채무자는 경우에 따라 집행 대상이 될 만한 집기나 귀중품 등을 남기고 이사를 가야 할 수 있으며 책에도 저자께서 집행관으로 겪은 그런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p60에 보면 설령 재판에서 이기고 집행문을 발급 받아도, 낙찰자는 잔금 납부 후 최소 4개월이 지나야 강제집행이 가능하다고 하니 명도 소송의 최종 마무리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법(민사법)이란 것도, 말이 통하고 품위를 최소한 지킬 줄 아는 시민들 사이에서나 사실상 힘을 발휘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경우 "인도명령을 미리 신청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며 아주 유용한 팁을 알려 줍니다.

"공시송달(p65 등)"은 채무자의 주소를 도저히 알 수 없을 경우, 서류 송달을 공시 절차로 대신하는 걸 말합니다. 엄밀히 말해 송달이 아니겠으나, 민사재판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없으므로 송달로 간주하는 절차입니다. 송달이란 의사 표시의 일반 원칙에 의해 도달이 이뤄져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발송 송달"이 가능하여 발송 자체만으로 송달의 효력을 인정하죠. 이때 저자는 "공가(空家. 빈 집)"임을 현장사진이라든가 주변인의 진술 등을 적극 동원하여 "법원을 이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발송 송달, 공시 송달 절차로 척척 넘어가게 하라는 겁니다. 이런 건 구태여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에는 또 번거롭고, 정말 이런 책의 팁을 통해 활용이 가능한 지혜이겠습니다.

송달의 문제가 의외로 중요한데, 채무자가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줄 모르고 배우자 수령으로 대신했는데 이게 부적법 송달이죠. 그래서 낙찰자까지 나온 경매가 모조리 취소되었는데 그 수형자가 출소하여 소송을 제기한 결과입니다. 이 (前) 수형자가 결국 이겨 소유권은 결국 그에게 도로 귀속되었습니다. 어떤 경우 경매로 인한 취득을 "원시취득"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사례를 보면 설득력이 매우 약해지죠.

책 p42에는 "이중(중복) 경매 신청"에 대한 재미있는 사례가 나옵니다. 즉, 경매를 통해 낙찰을 받은 사람이 나왔는데, 갑자기 채무자가 채권을 변제한다든가(낙찰자에게 불리), 혹은 낙찰자 자신이 쓴 금액이 과하다 싶어 채권자와 협의하여(?) 여태 진행된 경매 철차를 취소하려 드는 경우(이런 건 반대로 낙찰자에게 유리)가 있다고 하네요. 보통은 경매가 선순위 채권자의 신청으로 열리지만, 동일한 목적물을 대상으로 한 경메를 후순위 채권자가 "중복으로" 자신의 권리에 바탕해 신청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때에는 기왕 진행된 경매 절차를 취소하지 않고 그대로 속행시킵니다. 저자는 이런 "중복 경매 신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판이 다 굳어 가는 게임을 뒤집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참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일반 사인들끼리 물건을 매매할 때, 국가기관에 개입하여 매매를 허가, 혹은 불허가하는 건 사적 자치의 원칙에 반합니다(예외가 있다면 투기 방지를 위한 토지거래허가제 등). 그러나 경매는 공적 절차이므로 낙찰을 받아도 최종 매각 불허 결정을 법원이 또 내릴 수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이런 매각 불허 결정이 가능한 경우가 p45에 나와 있습니다.

강제집행 예고서는 집 안에 붙여야 하느냐, 바깥에 붙여야 하느냐(p75)가 또 문제가 된다고 합니다. 이거는 채무자 측의 인식을 돕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주로 집행관과 채권자의 편의를 위한 이유입니다. 개문을 하고 들어가 봐야 명도 집행에 필요한 비용을 대략이나마 견적 낼 수 있기 때문(p76, p81)이라는군요. "개문 시 증인 2명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는 주거침입 시비 등을 막기 위해서라는 점 몇 페이지 뒤(p83)를 보면 확인 가능합니다.

p95에는 정말 놀라운 사례가 나오는데, 일단 A가 낙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채무자 B가 다시 A에게 접근하여, 5천만원을 더하여 낙찰 받은 부동산을 자신이 매수하겠다고 제의한 거죠. 채무자 B는 A와 매매계약을 맺을 듯하다가, 계약금 수수 문제로 갑자기 다음날 새로 계약을 맺자고 제의한 후 연락두절이 됩니다. 이는 A가 낙찰 받고 강제집행하려는 시도를 (새로 맺은 매매계약을 통해) 무위로 돌리고, 정 A가 낙찰 받고 싶으면 처음부터 다시 절차를 진행하게 하려는 아주 고도의 술수였던 거죠. 이 경우는 A가 자신의 계약서만 찢고 말 게 아니라, 상대의 계약서까지 함께 손에 넣어 파기하든지 했어야 할 일입니다. 이 비슷한 사례로, 승소와 낙찰로 채무자(원 소유자)를 일단 퇴거시킬 수 있었으나 채무자가 임대차 계약을 요구하여 일단 계약이 일정 단계까지 간 후 유야무야되었는데, 이걸 근거로 퇴거를 거부하는 이야기가 바로 다음 장에 나옵니다.

p122에는 "퇴거 및 인도"가 아니라, 소장에 "퇴거"만 명시한 경우, 세입자 등에게 짐도 빼고 몸도 나갈 것을 요구할 수 있으나, 정작 원고가 그 집에 들어갈 수는 (아직) 없게 된 황당한 사례가 나옵니다. 물론 꼼꼼하게  "퇴거 및 인도"를 다 적어야 하지만, 만약 "퇴거"만 적었다면 재판부는 퇴거 요건만 심사하게 됩니다. "인도"까지는 원고가 적지 않았으므로 원고의 점유가 자연 회복되는지는 재판에서 판단을 안 했겠죠. 재판에서 심리도 안 했는데 원고를 집 안에 들일 수는 당연히 없습니다. 이건 문구 하나를 빼고 넣고의 문제가 아니라, 재판에서 실체법적 본안 판단이 이뤄졌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세입자가 여러 (법률적) 이유로 자신의 집기와 함께 당장 나가야(=방을 빼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원고가 소유자라든가 혹은 전대자인지 여부는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바 없고, 그래서 자동으로는 집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들어가려면 다시 이 부분을 실체적으로 심리할 수 있는 재판을 청구해야겠죠.

상가 건물 등에 채무자(세입자)가 설치한 인테리어(p115)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책에서는 민법 256조에 의해 부합의 법리를 말하며, 판례의 태도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보다 세밀한 입법적 규율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세입자와 건물주 사이에, 인테리어 부분에 대한 특약이 명쾌하게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또, 필요비, 사치비, 유익비의 법리도 이 경우에 좀 적용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물권법보다 오히려 이 대목이 채권 관계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게 아닐지.

간혹 보면 정체불명의 규정이 "법규"라든가 심지어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적용된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가장 확실한 건, 그 규정이 대체 법문 몇 조에 있으며 혹은 집행문 어디에 판사가 특별히 명기했는지 근거를 대라고 하면 충분하죠. 법률행위를 판단할 때는 "해석의 과정"이 중요하므로 이 과정에서 혹 필요할 때도 있겠으나, p195에 나오는 것처럼 "개찰 시 입찰자가 자리를 비우면 무효"라는 건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주장이죠. 저자는 꼼꼼하게도, 현장에서 왕왕 통하는 "불문율(?)"이 실제 무슨 근거를 갖기나 하는지 여부를 하나하나 가리고 있습니다. 일반 독자 입장에서도 그저 "아는 것이 힘"이며, 법이 실생활에서 어떤 국면으로 파고드는지 정확히 이해하여 공연한 손해를 방지하고 나의 권익을 분명히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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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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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산지 지형이 많은 편이며, 오히려 프랑스는 (특히 인근 스위스에 비해) 강을 낀 평지가 비교적 너르게 발달하여 농사에 유리한 국가로 잘 알려졌죠. 그래서인지 프랑스 인문학자, 사회 운동가가 쓴 "산(山) 예찬론"은 특별한 느낌으로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 다가옵니다. 더군다나 한국 역시 비교적 최근에 민주화의 여정을 치렀고, 이 저자께서 활동할 당시 프랑스도 "파리 코뮨" 등 굵직굵직한 격변을 거치던 중이라서 교감의 지점이 더욱 넓어지는 듯합니다. 책날개에도 나와 있듯, 저자는 이 책을 가뜩이나 산이 가득한 스위스에서 일종의 망명 시절에 썼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중간 지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외롭다기보다는 자유로웠다." (p16)

"중간 지대"라 함은 물론 이 책의 제재, 주제인 산을 뜻하겠죠. 저자가 생각한 하늘과 땅은 그럼 각각 무엇을 상징하기에 하필, 새삼, 왜, 거기서만 자유로움을 느꼈을까요? 저자의 성향상 아마도 하늘은 (프랑스에서 지배적 종교였던) 기독교(가톨릭)의 숨막힐 듯한 도덕주의, 땅은 압제와 욕심, 비루함, 거짓 등을 각각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는 우리 동아시아인,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와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고려가요 <청산별곡> 같은 걸 보면 더 그렇죠.

이 저자보다 이백 년 정도 전 사람이고, 이성과 종교적 신심 사이에서 어지간히 갈등도 했던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기하학적 정신과 섬세한 정신"을 나눈 적 있습니다. 이 책 저자는 "어린 시절 나는 산이 완전히 규칙적이고 똑같은 모습으로 뚝 떨어진 거대한 덩어리라고 생각했다(p18)."라든가, "자연은 잠시도 쉬지 않고, 높이 솟은 산의 모양을 계속 바꿔 놓았다(다음 페이지)."처럼, 산이란 지형의 불규칙성, 자의성, 임의성, 예측 불가성에 놀랍니다. 그리고 인위적 조형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찾아냅니다. 저 술회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산지와 비교적 거리가 먼 곳에서 성장했으며 "산을 책으로만 배운" 사람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특히 산을 좋아하고 즐겨 찾는 세대, 유형이 어려서부터 산과 친밀했던 이들인 것과 크게 대조되죠.

"인간은 특이하게 비열하다. 산짐승 가운데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는 짐승들에 감탄하며 찬양한다."(p146) 확실히 그런 면이 있습니다. 서양 문학, 기록을 보면 유럽에서 멸종된 지 꽤 오래인 사자를, 구태여 다른 대륙에서까지 찾아 가며 그 생리와 난폭한 본능을 예찬합니다. 거의 어느 왕실의 문장에건, 잔뜩 성이 난 숫사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이 생각을 잠시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저자 역시 바로 다음 문장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네요). 이는 힘, 무력, 지배하는 본능에 대한 예찬(혹은 굴종)이며, 영장류 중 어느 다른 종보다도 호전적인 인간(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 보일 법한 행태이긴 합니다.

"하지만 목동은 독수리(군주들이 좋아하는)를 미워한다.... 곰은 뼈를 씹어 먹을 만큼 힘이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왕들은 곰을 좋아하지 않는다. ... 반대로 민중은 곰의 성격을 소중히 여긴다... 곰은 용감하고 솔직하고 착하다! 곰은 새끼에게 다정하다.... 곰은 길들여져 사람 일을 도울 때 온순하게 모욕도 참아낸다.(하략)" (pp.146~148)

마지막 문장은 어떤 스위스 박물학자한테서 저자가 들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서술엔 작가의 느낌, 세계관 등이 강하게 이입되어 있습니다만 우리 독자들도 뭐 대체로는 동의할 만한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런 말까지 나오는데... "차라리 곰을 길들여 우리와 함께 일하면서 살아남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동물관, 동물 보호 사상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무렵의 흔적이므로 독자들은 그 점 감안하며 읽어야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다음 문단입니다.

"그런데 늑대는 어떨까? 비열하고 못된, 피비린내 나는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데!... 모든 동물이 늑대를 미워하고, 늑대도 다른 동물들을 미워한다... 늑대는 약하고 상처입은 짐승만 공격한다.. 심지어 늑대가 사냥꾼 총에 쓰러져 숨을 헐떡일 때, 다른 늑대들은 그놈을 덮쳐 고기를 뜯는다.(하략)" (pp.148~149)

이게 정확한 박물학적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구절을, 이른바 "늑대정신"을 회사의 모토로 내세우는, 중국의 화웨이 사 직원들에게 들려 주면 어떨까요? 그들은 삼성전자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며 오늘도 열일한다고 하니.... 여튼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다음에 나옵니다.

"피에 젖은 로마는 상상할 만한 모든 중죄의 기억을 늑대에게 떠넘겼다... 로마는 비열한 폭력과 무수한 파렴치 만행으로 고대의 왕이 되었다... 모든 죄악을 날조하면서 암늑대를 어머니 수호신으로 삼아 군림했다.(하략)" (p149)

마지막 문장은 로물루스와 레무스 신화를 염두에 둔 것이겠습니다. 이 책이 쓰여질 무렵 국가로서 통일 작업을 거의 완수한 이탈리아에 대한 적개심 같은 건 아니고, 당시 프랑스를 비롯하여 전 유럽에는 계급 간의 투쟁이 절정에 달했음을 상기해야겠습니다. 좌파 사상은 크게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로 갈라지는 중이었는데(물론 개량주의 스탠스인 이른바 사민주의 역시 이 무렵 확산을 거듭했죠), 저자는 이 중 아나키즘 계열이었죠. 그에게 있어 모든 압제, 폭력, 타락과 죄악의 근원은 로마 제국이었고, 이런 권력 혐오 사상이 저 문단에 잘 표현되었습니다.

우리 동아시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물론 산지 지형이 특히나 발달했습니다만, 그것 아니라도 이른바 자연친화, 청류 사상, 도가 같은 것이 하나 같이 인위와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역시 저자보다 조금 앞선 시기의 루소 역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바 있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저 앞 페이지에서 저자는 특히 "곰"의 습성과 성향을 찬양하는데, 만약 한국의 단군 신화를 그에게 들려 주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p39에 보면, 본문은 아니고 각주에서 한국어 역자가 단군신화를 언급합니다.

어떤 사람은 "대체 늑대와 산이 무슨 상관이냐?"고 불만을 토로할 수 있겠으나, 책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나옵니다. "산을 아끼는 사람에게는 늑대가 대평원의 짐승이어서 다행이었다.....(그러나) 늑대는 탄력에 넘치는 근육으로 바위를 뛰어넘어 다니기 좋게 적응했다. 프랑스 산악의 산양이나 영양처럼 진짜 산악동물이 되었다.(하략)"(p149)

저자는 늑대를 혐오한다기보다, 늑대에게서 엿볼 수 있는 인간의 비열한 속성과 사회성에 대한 경멸을 드러낸 거죠. 마치 주자가 표방한 "격물치지"의 응용을 엿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한 페이지 뒤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있습니다.

"실제로 늑대는 순하고 사회적이다."(!)

아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건지? ㅎㅎ 그러나 솔직히 우리 독자들은 이 구절에서 안심이 됩니다. 동물은 그저 동물일 뿐, 어떤 선하다 악하다 배울 만하다 같은 느낌은 우리 인간이 그에 부여하는 주관적 가치일 뿐입니다. 저자는 결국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을, 동물을 빌려 풍유했을 뿐 결국 동물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었던 겁니다. 저 앞, "곰 이야기"를 하면서 "차라리"라고 한 건, 늑대를 길들여 개를 만드는 대신 곰을 길들여 다른 동무를 옆에 두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겠죠. 이에는 인간이 걸어 온 지난 발자취에 대한 깊은 회한이 담겨 있는 겁니다. 마치, "고대 로마 아닌, 보다 인간적인 다른 공동체 단위가 그 자리를 채웠더라면?" 처럼 말이죠. 저 같으면 저자에게 인도의 굽타 제국 같은 걸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저자는 유려한 문장과 풍부한 상상력을 구사하지만, 본업이 인문학이기도 하며 이 때문에 책에는 온갖 지질학적 지식이 잘 녹아듭니다. 역시 산의 불규칙성에 감탄하는 문장인데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산에서는 비탈과 바위마다 (그) 나름의 독특한 면이 있다. 구성재와 퇴화 물질의 버티는 힘 때문이다. 퇴화하는 물질이 얼마나 오래가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이룬다.... 아무튼 산의 구성요소는 몇 가지 안 된다! 그것을 단순히 몇 가지 조합했는데도 놀랍도록 다양한 모습이다!" (p32)

이하에는 산을 구성하는 바위, 암석이 상당 부분 석영으로 구성되었다는 말, 석영이 규토라는 말, 따라서 산화규소라는 성분이 산 지형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말 등이 이어집니다. 이때 산화는 酸化이며, 산소(O2)라고 할 때의 바로 그 원소 관련이기도 하죠. 우리도 이미  중3 교육과정에서 "우리들이 사는 지구에서 가장 흔히 보는 건 규산염 광물"이란 걸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조면암, 현무암, 흑요석, 경석은 모두 규소, 알루미늄, 칼륨, 소듐, 칼슘이다."(p33)

"옛날에 서로 다른 온도의 층층이 겹친 대기층들은 지질학적 수평층과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고산과 첨봉과 절벽은 구름에 휩싸이곤 하는데 지상으로 내려앉으려는 시꺼멓게 찌푸린 하늘 같다.... 산은 증기의 증감에 따라 멀거나 가까워 보인다."(p80)

그러니 이 무렵은 자연과학, 인문지리학, 지질학 등이 아직 서로 모순된 국면을 노출하며 복잡한 공존을 이룰 시절이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본국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비관하여 스위스로 떠나와 반(半) 망명의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예리한 지성을 번득이며 하늘과 땅과 (그 중간 지대인) 산을 관찰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인간사 복잡다단함을 관조하고 있었던 거죠.

스위스 하면 아무래도 한국과는 달리 눈 덮인 산악의 풍광이 인상적인데(물론 한국도 겨울철 중부 지방에는 눈이 자주 옵니다만), 저자 역시 이 점이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시인들이 흰 코트라고 부르듯 눈더미는 찢긴 옷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p94)."

사실 한국에서도 도시 인근의 야트막한 언덕 지형(한국인들은 이런 곳도 산이라고 부르죠)엔, 눈더미가 보기 싫게 여기저기 습하고 그늘 진 곳에 남은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름철 녹지 않은 눈이 남은 것을 거의 볼 수 없는데(예외라면 전북의 무진장 지역 정도? 그러나 이곳 리조트에서도 인위적 관리를 해야 합니다) 스위스에서는 그렇지 않아 다음과 같은 기술이 책에 있습니다.

"여름날 고산지대에서 잠시 내리는 눈으로도 산은 베일에 덮인다. 그래서 멀리에서 볼 때는 완전히 백설에 뒤덮인 모습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자연이 요술을 부린 듯 작은 산의 부분들이 살짝살짝 보인다."(p95)

"변화무쌍한 풍경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다."(같은 페이지)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획일성, 일률성, 단조로움, 기계성 등을 혐오하고, 그 대신 자유롭고 변화무쌍하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융통성 등을 좋아합니다. 또 저자는 이것이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이라 보며, 압제와 단속, 권력, 상식과 계약에 기초하지 않은 사회성과 질서 등을 궁극적으로 타파해야 할 악, 족쇄로 보는 듯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이분보다 약 십 몇 년 앞서 출생했고 저술가로서의 시기도 많이 겹치는데, 두 분의 저작을 비교해 보고 어디가 닮았으며 어디서 분기(分岐)하는지 살피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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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재테크 제로금리 사용설명서
매일경제 금융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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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하락 압력은 두 가지 방향에서 가해질 수 있다. 수요의 측면, 그리고 공급의 측면이다."(p28)


셰일 혁명 이후, 그리고 산유국들의 이해 관계가 거의 상시적으로 틀어지게 되면서, 유가가 이제 특정 선을 넘지 못하는 현상이 구조적으로 굳어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함부로 돈을 풀어 소비를 진작시킬 수는 없지만, 이제 이런 상수가 생겼기에 어느 정도는 여유 있게 정책을 구사할 여지가 생긴 셈입니다. 현재 각국 정부가 두려워하는 건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며, 코로나 19의 만연은 이런 우려를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금리는 이른바 "서브 제로"의 영역을 향해 치닫습니다. 


어떤 전문가는 "코로나는 그저 빌미에 불과하다"고 하던데, 정말 코로나 유행 전에도 이런 디플레에 대한 우려, "D의 공포"가 상존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세계 경제가 가뜩이나 안고 있던 문제를 더 진지하게, 더 심각하게 바라볼 계기가 생긴 셈도 됩니다. 


책에서는 2020년 4월 20일에 일어났던 마이너스 유가의 공포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책에서 포커스를 맞추는 건 "디플레이션 압력"이며 이를 거론한 다양한 매체와 전문가의 견해를 책에서 원용합니다. 물론 올해 4월의 일이었으므로 코로나 19 팬데믹의 여파를 입었음도 분명합니다. 


(출처: 네이버 금융 https://finance.naver.com/marketindex/materialDetail.nhn?marketindexCd=OIL_CL# )


"시장 불안 시기에는 전체 금융 자산의 20%를 달러로 보유하는 것을 추천한다."(정성희 신한PWM프리빌리지 강남센터 팀장. 책 p40에서 재인용)


"과거 금융위기 때 원화 자산 폭락을 경험했던 만큼 달러 자산으로 자산 가치 하락을 방어해야 한다." (임은순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압구정PB센터 PB. 책 p44에서 재인용)


현재는 시장이 진정되었고, 8월 18일 정세균 총리의 대국민담화 때문에 한국의 증시만 잠시 폭락을 겪었으나 다른 나라는 큰 이상이 없고, 일부에서 "전문가들은 이제 돈을 빼기 시작한다"며 바람을 불어 넣었으나 나스닥은 여전히 잘 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증시도 8월 19일 현재 바로 회복한 모습입니다. 그래서인지 달러는 여전히 약세인데, 책에서는 지난 3월을 잠시 회고합니다. 


"국내 고액자산가 자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을 포함해 대부분 자산이 원화라 자산분산 차원에서 달러에 접근해야 한다. 금융자산의 20~30%는 달러로 보유할 것을 추천한다." (김은정 신한PWM프리빌리지 분당센터 팀장. 책 p147에서 재인용)


책에는 "다만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면서 달러가 약세에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예측은 현재 그 결론만 그대로 실현되는 중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지 않았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책에 역시 답이 있는데, "연준의 달러 유동성 확대가 그 반대 압력을 약화해서"라고 합니다(p146).


책 중후반부에서 이른바 "안전자산"에 대해 분석하면서 다시 달러를 거론합니다. 앞(pp.40~48)에서는 달러 자체보다 환율 이슈에 대해 분석하는 와중에 거론된 거고요. 안전자산이라 함은 물론 세계최강국인 미국의 통화 달러를 꼽지만, 금, 은 등 귀금속도 이에 포함됩니다. 골드바는 속성상 그에 이자가 붙지 않고(당연하죠), 대체로는 상승세도 아주 느리거나 값이 내려가는 게 보통입니다. 책이 여러 토픽을 다루면서도 별 시의성이 떨어지지 않게 항목들을 서술, 혹은 예견하는 게 신기했습니다. 현 시점(2020. 8. 19)까지도 금은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니 말입니다(단, 8월 11일에 일시 급락). 


"은은 가격 변동성이 높고(박형중 우리은행 자산관리전략부 부장), ", "산업 수요가 회복되면 은 가격의 상승폭이 금보다 높을 것으로 기대(김은정 팀장, 이상 p149)"되기에, 투자자로서는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책에는 "높은 수익을 얻기보다, 그저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차원에서 접근헤야 한다"는 말도 나옵니다(p150). 


과거에는 외국인 매도, 매수 추세를 무작정 추종하다 보니, 외국인들에게 코스피와 코스닥이 ATM 노릇한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추세가 상당히 완화된 게 2020년 초인데, 이른바 "동학개미운동(p65)"이 벌어져 외국인들이 팔아치워 가격이 폭락하는 주식을 상당 부분 방어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죠. 


그러나 개미, 즉 개인투자자들의 노력만으로 어떤 파국을 막아내기엔 한계가 있습니다(파국이 꼭 온다는 건 아닙니다만).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긍융 위기와 내수 문제가 한꺼번에 온 적이 없다. 그러나 현 위기는 자유무역 기반 수출과 내수를 한꺼번에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p59) 한번 과거를 돌아보면, 이른바 금모으기 운동을 벌였던 1997년 위기의 경우 내수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보, 기아차 부도가 일어나긴 했으나 경기는 최고였죠. 또 2008년 위기도 내부 문제보다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심각했을 뿐이어서 그리 길게 끌고 가지 않고 극복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자영업 상당수가 붕괴 위기이며, 항공, 여행업 등은 직원들을 유, 무급 휴가를 준 채 정부의 보조에 기대는 형편입니다. 정부는 기업과 가계가 내는 세금으로 운영될 뿐인데, 세수가 끊기면 앞으로 어떻게 지원하겠습니까.


책은 "코로나를 역으로 이용하라"고 제안합니다. 2010년대 전반은 여러 부문에서 위기가 감지되던 구간인데, 책에서는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부실 사태를 거론합니다. 또 지금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지만 부동산 불황(!)도 심각했다고 합니다(기억을 더듬어 보면 과연 그랬습니다). 전 정부가 빚을 내어서 집을 사라고 했을 때 다들 혀를 차곤 했습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를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이죠. 빚은 내어 집을 샀으나 아파트 값이 계속 떨어지고, 금리는 계속 오른다면 빚 내어 집 산 가정은 파산 말고 답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가지 않았습니다. 


유동성이 풍부하다 보니 주식이고 부동산이고 과열을 우려할 만큼 분위기가 좋습니다. 주식시장은 1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불(bull) 장세라며 관계자들 입이 귀에 걸립니다. 코로나 때문에 주가가 폭락하기는커녕 코로나 백신, 치료제 개발에 기대를 걸고 바이오주가 돌아가면서 상한가를 칩니다. 바이오주를 미처 못 산 이들은 인접 섹터에 눈을 돌려 이것저것 찔러 보기도 하며, 심지어 이름이 비슷하단 이유로 전혀 무관한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영리한 투자로 수익을 올려 기업의 성과를 공유한다면, 그 사람은 "코로나를 역이용"해서 살아남는 지혜를 발휘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책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와 지금, 외국인의 매도세가 어떤지를 비교합니다. 책에서 분석한 시점까지는 외국인 매도가 두 배 더 크다고 합니다만, 8월 초에 외국인들이 귀환하여 삼성전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블루칩을 대거 사들여 뉴스를 탄 바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혹은 제안)한 대로, 한국인들이 증권 시장에서 현명히 대처한 결과로 결국은 외국인들도 돌아와 경기 회복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코로나 시대에 그럼 어떤 주식에 투자해야 수익을 얻을까요? 아무래도 책의 출간 시점과 독자가 이를 읽는 시점 사이에 간극이 있다 보니, 이런 책을 읽을 때에는 집필 시점에서의 "예언"이 얼마나 실현이 되었는지 체크하는 재미가 또 있습니다. 책에서는 대면 산업 섹터와 비대면으로 일단 분류하고, 이들 컨택트와 언택트의 대결(미디어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죠) 속에 균형추가 왔다갔다 하는 양상을 예상하는데 상당 부분이 맞았습니다. 또 다음카카오는 이미 시총 10위권에 확실히 자리를 굳혔는데 언택트의 대표 주자로서도 의미를 부여합니다. 현대모비스는 소위 컨택트 섹터에 속합니다만 이미 지난 달 몇 번 상한가를 치거나 큰 폭 상승을 기록한 적 있습니다. 교육주 중 메가XXX 같은 곳도 거론되는데, 실제로 YOOO 같은 곳이 며칠 전 상한가를 기록했는데 교육부와 원격 수업 협약을 맺은 게 큰 몫을 했다고도 분석됩니다. 


아무래도 출근을 못 하고 재택 근무 시간이 늘어나면 당연히 PC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반도체 산업은 이런 이유에서도 다시 중요성이 가중되죠. 또 집에 머무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OTT산업도 성장하겠는데, 책에는 "넷플릭스가 완전히 떴다(p113)"고 합니다(본문에 오타 한 군데 있습니다). 책에서는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를 준별해서 설명하는데, 실제 외국인들의 귀환 당시 하이닉스는 뜨지 못하고 삼전만 주가가 올랐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플래시 메모리 생산 능력을 그 이유로 꼽았습니다. 


"바이오 롤러코스터 안전띠 확인하라." 6월부터 특히 바이오 섹터가 초강세장이었는데, p124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예전에 한 몸처럼 움직이던 바이오 공식도 깨졌다. 이제 개별 주가의 호재를 따져봐야 한다. .. 코로나와 관계 없는 바이오주는 약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참 이 대목은 읽을수록 신기한 게, 제가 계속 지켜 봐 왔습니다만 7월 초까지만 해도 바이오 섹터가 순환매 양상을 보이며 돌아가면서 오르다가, 7월 말부터 차별화 장세가 실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책의 집필, 출간 시점을 고려하면 마치 예언 같이 보이네요. 


3부에서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이 나오는데 이후 부동산 대책으로 아주 강한 것들이 연달아 나옴에 따라 독자들은 좀 주의해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만 책에서는 재건축 시장에 주목하라고 권하는데, 실제로 방금 전 뉴스에서 "이번 규제책의 빈틈을 재건축 투자자들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이니 읽어 볼 만합니다.


4부는 다시 "제로금리"에 주목하는데, 특히 우리보다 저금리 시대를 일찍 맞아 상당히 고생한 일본의 사례를 듭니다. 일본은 비단 플라자 합의를 잘못해서 경기 후퇴를 맞은 게 아니라. 특유의 보수적인 풍조, 정책의 퇴행화, 앞선 성공 궤도에의 과도한 안주, 순종적인 국민성과 혁신 회피 분위기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오늘의 침체를 가져 온 것입니다. 그런 그들도 최근 반성 끝에 다른 모색을 하고 있으며 "전거복철 후거지계(前車覆轍 後車之戒)"라고 우리도 반면교사로 삼아 디플레이션의 깊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애 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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