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 약속해 주세요, 아버지
조 바이든 지음, 김영정 옮김 / 미래지식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며칠 전에 열린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 전(前) 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이변이 없는 이상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의문을 품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그를 보고 받는 첫인상은 "온화하다. 순하다" 등이던데, 전임자와는 달리 무난하고 포용적이며 신사적인 국정 방침과 개인적 매너가 기대됩니다.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서 유권자는 어떤 감성적 이벤트에 영향 받지 않고, 각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이나 정책 사항을 냉철히 살핀 후 어떤 결정을 내려도 내려야 하겠으나, 선거 이런 걸 떠나 조 바이든이란 인물이 실제 겪은 가정사를 살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는 인생사의 굴곡도 있었고 첫번째 부인을 교통사고로 잃는 등 비극도 겪었으나, 가족들에게 참 따스하고 정겹게 대하는 가장이었고, 현재도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그 와중에 일반에 너리 알려졌던 게, 가뜩이나 교통사고(그 모친과 함께 겪었던) 후유증이 있던 아들을 한참 후(2015년)에 다시 잃게 된 비극이었습니다.

"나의 아들, 내 아름다운 아들." 이름인 Beau(보)는 실제로 프랑스어 기원이며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둘째 아들 이름은 헌터인데 그 생모의 성씨를 따서 지은 이름이죠. 여튼 사랑하던 아들을 청천벽력처럼 잃은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듯 아팠겠습니까.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걸 "참척"이라고 하는데, 동양권에서는 이런 일(자신이 뜻한 일도 아닌데)을 가장 큰 불효로 꼽습니다. <소학>에도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니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는 구절이 나오죠. 하물며 목숨이겠습니까.

이 책에는 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의 독재자인 야누코비치 세력과 갈등을 빚은 이야기도 술회됩니다. 이게 왜 의미심장하냐면, 이번 선거에서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조 바이든과 그 아들 헌터가 우크라이나 커넥션이 있다면서 반대편에서 강하게 의혹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2017년에 나오긴 했으나, 바이든의 의혹 해명, 혹은 배경 상황 이해에 필요한 자료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나는 그러한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특사였다." 이 상황(우크라이나 위기)은 2014년에 벌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물론 오바마가 대통령이었고 바이든은 그 밑에서 부통령을 지내는 중이었죠. 이 대목에서 그는 재미있는 언급을 하는데, 2016년에 만약 "내가 대통령에 출마하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는 거죠. 책에는 "키이브"라고 나오는데, 뭐 여튼 우크라이나 현지 발음으로는 "키예프"이며 우리도 세계사에서 배워서 아는 지명입니다.

p111에는 2016년 트럼프에게 일격을 당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의 대화가 나옵니다. 물론 나이로 보나 정치 경륜으로 보나 조 바이든이 훨씬 선배이므로 힐러리는 그에게 깍듯이 예를 갖춥니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사는 이 노인, 이 부통령(당시)이 다음 대선에 나올지의 개인적 의향이었지요. 바이든은 회고합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힐러리를 보며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조 바이든이라면 그랬을 법합니다. 사실 이 무렵 둘은 포스트 오바마를 두고 다투던 라이벌이었고, 원래 오바마의 부통령으로는 바이든이 아니라 힐러리가 유력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보(즉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우리가 널리 알듯, 또 이 책에 자세히 나오듯, 바이든은 가정사 때문에 이 무렵 정사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힐러리는 이후 2016년에도 선거 운동 과정에 갑자기 기침을 심하게 하거나 쓰러지기 직전까지 가는 등 건강 문제를 드러냈죠. 이 책에서 바이든은 라이벌이면서도 같은 당 소속 협력자였던 그녀에 대해 복잡다단한 심회를 드러냅니다.

이 책에는 그의 손자 피네건에 대한 언급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는 얼마 전 각별히 한국에 대한 친근감(오바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을 드러내며 한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닮은 점을 강조하기도 했죠. 피네건은 물론 아일랜드의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의 한 작품 중에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책 말미에는 무고한 시민들이 피살당하는 등 인종 간 갈등이 빚은 우리 시대 미국의 한심한 풍경이 지적됩니다. 바이든은 몇 시간 전 발표한 성명에서 "모든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일단 미국이라는 나라가 진정되고 평화와 화합을 찾아야, 전 세계도 안도할 것 같아요. 부디 자신이 말한 그런 지도자가 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0일 완성 생존 중국어 - 현지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최고의 실전 중국어!
이원준 지음 / 라온북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어를 공부할 때 우리가 느끼는 큰 장벽 중 하나가 한자를 모른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한자 스트레스 안 받고 중국어를 좀 배웠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가 갖고 있죠. 이 책은 발음이 비슷한 한국어 단어를 중국어에 연관시켜, 적어도 한자로 쓰여진 중국어 단어가 무슨 뜻인지라도 알게 돕습니다. 혹은, 일단 회화를 할 때 발음만 듣고 아 이 개별 단어가 무슨 뜻이었더라? 라고 대략이라도 바로 생각이 날 수 있는 요령을 가르칩니다. 이런 게 중국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중고교 때 영단어 외울 때에도 이런 방법으로 구성된 게 있습니다. 약간 황당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기보다 이렇게라도 머리 속에 새겨 두는 게 당연히 훨씬 좋습니다.

저자분이 책을 쓴 동기는, 실제로 한자고 중국어고 별반 기초가 없던 상태에서, 또 그렇다고 "공부에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뭐 이런 것도 아닌, 그런데 일 때문에 중국어는 또 몸에 배게 할 필요가 있던 상황에서,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마구 중국어를 배워야 할 단계에서 얻은 비법을 독자와 공유하기 위함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해서 실제로 중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게 된 분이라면 좀 그런 분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또 뭐 애초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중국어에서도 성공했다 식의 성공담은 평범한 우리들한테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우리처럼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 기초 없이 성공했다는 게 뭔가 동기부여가 되어도 되는 거죠.

실제로 읽어 보니 중국어 공부 목적을 딱히 염두에 두지 않아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어떤 건 웃음도 나고... 사실 우리는 천 년 넘게 한자문화권이어서 따지고 보면 공통되는 게 꽤 많은데, 중고교 한자 교육이 부실하다 보니 중국어라면 거의 문맹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 책도 간체자이긴 하지만 그 간체자를 알면 상당수가 우리가 익히 아는 단어들인데, 이걸 외국어로 배워야 하는 게 아쉽죠. 그러나 지난 일 후회해 봐야 소용 없고, 생존을 위해 단기 속성으로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배워야 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p162에 보면 우리식 발음으로 호취(입 구 변에 빌 걸[乞] 자를 쓴 것), 중국어로 하오 츠 라고 읽는 단어가 나옵니다. 사실 이 때 취라는 글자는 "니취팔러마?(밥먹었어?你吃饭了吗. 니츠판러마)"라고 우리가 낄낄거리며 외우기도 하는 표현에 나오는 그 글자이기도 합니다. 중고생들이 욕 같다며 막 웃는 그 표현이죠. "판"이 반찬, 혹은 조반이라고 할 때의 그 반(飯)입니다. 아무튼 저자는, 하 입김을 불며 오호츠크해에서 먹는 물고기가 맛있다 라면서, 하오츠 라는 단어가 맛있다는 뜻임을 우리 독자들에게 가르칩니다. 물론 이걸 이해하려고 "오호츠크해가 뭐지?"라며 뭘 막 찾아볼 필요는 없죠. 사실 오호츠크해는 구시대 암기식 교육에 익숙한 세대에게 익숙한 지명이기도 합니다.

玩은 p124에 나오는데, 완구를 가지고 노는 아이 라면서 이 "완"이라는 단어가 "놀다"라는 뜻임을 가르칩니다. 근데 사실 이 한자는 우리말로도 완으로 읽고 실제로 완구 할 때의 그 완 자가 맞습니다. 모든 중국어 단어를 이런 식으로 배울 수만 있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p98에는 快乐이 나오는데, 뒤의 글자를 우리식 한자로 쓰면 樂(락)입니다. 즉 우리말로도 그냥 "쾌락"이죠. 저자는 이에 대해 "크아, 너 쟤 좋아하는 거 다 일러!"라면서, 쿠아이 일러라는 발음을 알려 줍니다. 책에는 물론 성조도 다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저 쿠아이 일러 가 어떻게 발음되는지는 포털의 중국어 사전 페이지를 찾아 보면 나옵니다. 실제로 독자 본인이 발음을 해 봐야, 저자의 우스운 설명이 더 오래 머리에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리 저자가 재미있게 지도를 해도, 멍청하고 게으른 학습자한테 떠먹여 주고 소화까지 대신해 주는 방법이란 없고, 본인이 열심히 해야 성과가 나는 건 당연하죠.

p66에는 "총명"이란 단어가 나오는데,우리식 한자로는 聰明이라 쓰고 저쪽 간체자로는 聪이라고 씁니다. 앞 글자가 더 획수가 적어졌죠. 중국어로는 "총밍"이라 읽는데 저자는 "안중근 의사에게 총을 슬쩍 밈(밀어 줌)"이라고 기억시킵니다. 확실히 이렇게 공부를 해 나가니 (약간 황당하면서도) 재미가 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는 게 사실입니다. 한자를 잘 아는 분들이라 해도 중국어 발음과 성조를 따로 기억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애초에 한자 베이스 제로인 채 그냥 이 식대로 몸을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맞겠네요. 저자가 실제로 중국어 회화 능통단계까지 간 분이니 말입니다.

p64에는 吃惊이 나오는데 사실 이처럼 한국어 한자와 잘 매칭도 안 되고 발음도 딴판인 경우에는 한자 베이스가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惊은 우리 한자의 驚(경)과 같으며, 대경실색이다 경악이다 할 때의 그 경 자가 맞습니다. 현대 들어 생긴 간제차이긴 하나 그야말로 한자의 육서 중 "형성"의 원리에 의해 만든 글자이죠. 저자는 "탈세로 인해 추징된 금액을 보고 깜짝 놀라다"로 의미를 연결시킵니다. 진짜 웬만해서는 안 잊힐 것 같습니다. 발음은 "츠징"인데 앞에서 "밥먹었니(니취팔러마)"에 나온 그 단어가 맞습니다.

p160에는 跟이 나오는데 "뒤따르다"의 뜻이며 이 단어는 한국식 한자와 뜻이 달라진 예입니다. "건달들은 보스 뒤를 따라 움직이다"라는 저자의 설명입니다. 이 한자를 중국식으로는 "껀"으로 읽기에 그로부터 연상을 하라는 주문입니다.

같은 페이지에 告诉가 있는데 우리식으로는 訴라고 쓰죠. 우리가 말하는 그 고소와 뜻이 같으며, 저자는 "얼른 까요, 수를! 알려줘요."라고 합니다. 우리말 "고소"에는 물론 "알려주다"라는 뜻이 없고, 중국어에서만 추가된 거죠. 중국어로도 고소를 "까오수"라고 합니다.

영어도 그렇고 보캐뷸러리 공부할 때는 가장 곤란한 점이, 생각날 듯말듯한 단어가 있을 때 그걸 사전이 아니라 내가 공부한 바로 이 책에서 다시 보고 기억을 되새기고 싶은데 그게 안 될 때입니다. 그런 독자를 위해 이 책에서는 색인을 만들었고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능동적으로 공부를 해야 지식이 자기화가 되니 말입니다.

p204에는 不仅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발음은 부진인데 책에는 "성장부진"으로 뜻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일 뿐만 아니라"이며, 확실히 이처럼 한자를 알아도 중국어 뜻과 연결이 안 되는 표현에는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한자로는 僅이라 쓰는데, "근근히"라고 할 때의 그 한자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라운드 업 -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의 원칙과 도전
하워드 슐츠.조앤 고든 지음, 안기순 옮김 / 행복한북클럽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이 꿈을 일궈나가는 과정은 감동적입니다. 그 사람이 어려운 환경을 딛고 그렇게 해 내간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꿈을 일궈나가는 건 따지고 보면 그 사람 혼자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한 사회가 빚어내는 영웅의 유형을 보면 그 사회의 건강성을 체크할 수도 있습니다. 남에게 사기치고, 모략질하고, 세 치 혀의 힘으로 간악한 음모를 꾸며 내고, 거짓말이 체질화되어 있고, 뭐 이런 사람이 모두의 표상으로 떠오르는 사회는 결코 그게 올바른 길을 걷는 게 아닙니다. 반면에, 이 책 저자이자 스벅 CEO인 하워드 슐츠처럼 어려운 길에 애써 도전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 내고, 근면성실한 경영을 하는 유형이라면 그런 인물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바로 그런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 처음은 하워드 슐츠의 어두웠던 어린시절로 시작합니다. 그 할머니는 일종의 풍속업에 종사했던 분인데, 돈은 많이 벌었는지 모르나 애들을 결코 그런 환경에서 키울 수 없겠다 싶은, 뭐 그런 부류의 사업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하워드 슐츠의 부친은 좌절 속에 인생을 허비했었고, 결국 불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워드 슐츠 역시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시피 했는데, 자세하게는 안 나오지만 아무래도 환경이 환경이다보니 폭력 따위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걸 이겨내고 자신감 있는 어른으로 올바르게 성장한 건, 책 중에 언뜻 암시되듯 스포츠 활동을 통해서였습니다. 역시 청소년기에는 운동, 체육 같은 게 올바른 인성을 함양하고 에너지를 분출하는 데 제격인 듯합니다.

이 책 저자 하워드 슐츠는 스벅의 창업자는 아닙니다.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죠. 스벅은 세계적인 브랜드이긴 한데, 손바뀜이 좀 잦은 편이고 이 책 중에서도 슐츠 개인의 회고 중에 언제언제 소유자가 바뀌었다, 인수가 일어났다 같은 언급이 꽤 잦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워드 슐츠는 좀 독특한 성격의 경영자이기도 합니다. 보통 어려운 환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은, 그저 자신의 영역에만 충실하다든가,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려고 듭니다. 사실 처세에는 이게 더 현명한 방법입니다. 과격한 발언을 즐기는 이들은 모 아니면 도 라는 식으로, 어차피 인생 잘 안 풀리는 것 한번 던져나 보자는 도박꾼의 심리가 작동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슐츠의 경우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고, 이제 안정을 찾은 인생이기도 하니 편안한 현상을 즐기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구태여 현실 참여의 리스크를 감수한 것입니다. 왜냐, 자신도 어려운 환경에서 일어선 경우이기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청소년들이 의기를 잃어서는 안 되겠다는 일종의 사회적, 연대의식이 발동햇던 거겠죠. 있지도 않은 어려움을 조작하여 관심을 끌려는 위선과 거짓과는 큰 거리를 두는 태도이겠습니다.

스벅이 미국에서 이미지가 좋아진 건, 하워드 슐츠 같은 경영자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적극 후원하고,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충실히 이행한 사실에 크게 기댑니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도 코로나 때문에 월터 리드 병원에 잠시 신세를 졌는데, 슐츠는 그보다 훨씬 전에 아프간 전선에서 발을 잃은 세드릭 킹 상사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활동하다 불구가 된 영웅에게, 사실 요즘은 미국도 그리 큰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는 아니며, 바로 이런 썩은 정신이 미국을 망하게 하는 거죠. 슐츠는 킹 상사의 유년 시절에도 주목하여 적극 그를 후원합니다. 목숨을 바쳐 가며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있어야 후방에서 일반 시민들이 마음 편히 생업에 종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당연한 이치도 부인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게 비극입니다.

얼마 전 어느 흑인이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죠. 그 전에도 미국은 이런저런 인종 간 갈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했었습니다. 하워드 슐츠는 공개 토론회를 열어 자유롭게 참여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했고, 이런 분위기 형성이 사내 자율성을 높이고 창의적인 기조 형성을 돕는다는 점도 우리 독자가 얼마든지 눈치챌 수 있습니다. CEO는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원들이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자각하게 돕는 사람입니다. 젊은 창업자들이 언제나 마음에 새겨야 할 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권으로 읽는 인도신화 - 신화부터 설화, 영웅 서사시까지 이야기로 읽는 인도
황천춘 지음, 정주은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어느 나라나 많은 신들, 정령들을 신화 체계에 담고 숭배합니다만 인도 신화처럼 많은 수를 빚어낸 체계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한국이나 중국도 고대에는 신화를 갖고 있었지만 공자, 맹자의 가르침을 존숭한 이래, 이른바 객관적 관념론으로 정신 세계를 무장함에 따라 거의 잊어버리다시피 했습니다. 여튼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뚜렷한 다신교 체제를 가진데다, "무엇을 믿든 간에 결국 나를 믿는 것이다" 같은 포용성을 과시하는 신념도 매우 개성적인 게 인도 신화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무수한 전쟁과 다툼으로 가득하듯, 인도 신화에도 온갖 신들과 영웅들, 정령들이 싸움을 벌입니다. 그 싸움은 때로 창조 작업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p61 같은 곳을 보면 브라흐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하데바시여, 당신의 도움 없이는 창조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바는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나는 고행자로서 오로지 수행을 통해서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마하는 "큰", 데바는 "신"이란 뜻입니다. 신부를 맞으라는 권유에 "향락은 필요없다"고 말하는 걸로 보아 전쟁의 신은 결혼을 그저 쾌락의 통로로 여기나 봅니다.

싸움을 일삼는 자는 대개 철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도 가정을 일구고 자녀를 보다 보면 철이 들 수도 있죠.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은 역지사지, 즉 부모의 입장에서 철없는 아이를 길러 봐야 어른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리스 신화 체계 속에서처럼, 이 인도 신화의 신과 불멸의 존재들도 마치 철없는 아이들처럼 갈등과 계산과 화해와 대립을 거듭합니다.

인도는 마치 중국처럼 거대한 단위 안에 풍부한 자원과 물산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자연 조건이 사람 살기에 적합한 곳에서 일찍 문명이 피어나는 게 당연했으며, 기후 조건도 참으로 다양했기에 그런 풍토를 반영한 다양한 신들을 상상으로 빚어낼 수 있었던 듯합니다.

불교는 힌두교에서 썩 반기지는 않는, 기껏해야 하나의 지류 취급이지만 여튼 이 책에서는 비중 있게 다룹니다. 중국이나 우리나 머나먼 인도를 잘 모르다가, 붓다가 불교 신앙을 완성하고 그의 후계자들이 널리 전도함에 따라 비로소 인도 문명권의 정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도 불교 설화를 여럿 접했지만, 일단 붓다부터도 제바달다 같은 악인과 대결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완성하고 널리 중생에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부처의 분투기를 읽으면 일단 재미도 있을 뿐더러 무엇이 세상에 참 평화를 가져다 줄지 깊이 있는 사색도 가능하게 돕습니다.

신들의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라, 친구가 된 네 명의 브라만처럼 재미있는 설화도 등장합니다. 사람은 타인의 도움으로만 행운을 얻는 게 아니라, 때로는 불운으로부터 뜻밖의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나 이를 자신의 이익으로 전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지혜를 요구하는 단계입니다.

자신의 장점이 영원할 줄 알고 교만하던 자 역시 한순간에 "늙은이"가 되어 과오를 반성하는 등,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인간이 어리석은 잘못을 가능한 한 회피하며 올바른 길을 걷도록 돕습니다. 동양의 신화와 설화는 이처럼 서양의 그것에 비해 다분히 계도적 성격을 갖는 게 독특합니다. 어떤 가르침을 꼭 얻어야겠다는 강박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재미를 느껴가며 낯선(꼭 낯설지만도 않은) 인도 문화와의 만남을 갖는다고 여기면 좋을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 300년, 몰락과 재기의 역사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흔히 보수다, 진보다 하는 건 본래 그런 개념이 명시적으로 있었던 건 아닙니다. 물론 고대 로마 공화정까지 거슬러올라가 봐도, 예컨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처럼 현상을 타파하고 많은 참여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었는가 하면, 그에 대한 반동도 이미 그 시절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송대의 왕안석이 이끈 신법파와, 사마광을 필두로 한 구법파의 갈등 같은 예도 동아시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정치학에서 정의하는 보혁의 병치, 혹은 대립상 같은 건, 의원내각제가 확립된 후의 영국에서 등장한 토리당과 휘그당의 양당제가 그 원조이다시피합니다. 진보도 여기서 그 원류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고, 보수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19세기 중반부터 등장한 독일의 사민당, 사민주의 계열도 참고해야 합니다만, 진보 보수를 양 축으로 삼고 정치를 건전히 발전시키는 건 영국 정치를 그 시조라 간주해도 무방합니다.

영국 보수당도 위기가 많았습니다. 이 위기는 무려 1945년부터 찾아왔는데, 처칠은 처음에 가망 없어 보이던 독일과의 전쟁(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놀랍게도 그해 총선에서 노동당에 정권을 내어 주고 말았습니다. 조국을 국망의 위기에서 구해냈는데 어째서 선거에는 패배했는가? 이는 당시 노동자 계급의 참여 욕구가 임계선을 넘어 분출했고, 전쟁 때문에 국민에 강요된 희생도 막대했기 때문입니다. 보혁 간의 진정한 승부는 영국에서 비로소 이때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그 이전 자유당과 보수당의 혈전도 볼만했지만 말입니다.

보수당은 1970년대 내내 노동당에 끌려다녔습니다. 광부들의 파업 등 노동계급의 분노도 대단했습니다. 이 시기 영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만큼 형편이 어려워졌죠. 이런 위기에서 보수당과 영국을 살려 낸 인물은 마거릿 대처였습니다. 그녀의 리더십 덕분에 영국이 상당히 회복된 건 사실이지만, 대신 그녀는 노동계급으로부터 영원한 원성을 들어야 했고 나라의 분열상이 더 깊어진 측면도 부인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지도자는 나라도 살려야 하지만, 나라 안의 계급 대립도 어루만져야 하는데 이 점이 어려운 것입니다.

책에서는 보수당의 파란만장한 리더십 변천이 매우 입체적으로 다뤄집니다. 1차 대전 전후하여 역시 격동기에 놓였던 영국에서 보수당의 리더십은 로이드 조지가 맡았는데, 그는 단신으로 유명한 사람이죠. 책에는 당시 보수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스캔들이라든가 당내 분열상이 자세히 서술되는데 지나놓고 보면 와 이런 위기를 겪고도 당이 공중분해되지 않고 용케 버텼구나 하는 생각만 듭니다.

1930년대에는 세계 경제 대공황(이 자체는 몇 년 먼저 발생했습니다만) 때문에 영국이 또다시 위기를 맞습니다. 노동당은 이제 엄연히 수권세력으로 부상하여 정권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영국에서는 이때 맥도널드의 주도 하에 이른바 "거국내각"이 형성되는데, 이는 이름만 빌려 아주 한참 후에 한국에서도 시도된 적 있지만 당연히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죠.

다시 1차 대전 때로 거슬러올라가면, 남서 아프리카는 대체로 영국과 프랑스가 나눠 지배하던 지역이지만 조금 밑으로 내려오면 독일의 식민지였던 카메룬이 있죠. 독일의 패전 후 이 처분을 둘러싸고 국내 정치의 대립이 있었으며, 아프리카에 소재한 가장 큰 식민지이자 지금도 인재 유입이 활발한 나이지리아 무역 문제가 또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이 무렵 영국사를 다룬 책은 여럿이 있지만 이를 "보수당 내각의 혼란상" 관점에서 접근한 문헌이 그리 많지는 않으므로 이 책이 참 도움되었다는 말을 독자로서 하고 싶습니다. 나이지리아는 사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시스템이 잘 정비된 편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무슨 마약 밀수처럼 부정적 인상이 널리 퍼졌지만 말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히스라는 이름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지만) 미국이건 영국이건 그리 상서로운 이벤트에 엮인 이름이 아닙니다. 이 책에서도 1950년대 영국 정치를 정리하며 "히스는 그리 잘 이끌지 못한 정치인이었다"며 아주 단정적으로 서술합니다. 우수한 엘리트가 영국 정계에 진입하는 건 맞지만, 그 엘리트들이 모두 제 기량을 발휘하는 건 아니며 때로는 이리저리 비위나 잘 맞추거나 대중 선동에만 능한 3류가 전면에 부상하기도 하는데 이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태생적 한계에 가깝습니다. 일본도 비슷하죠. 고만고만한 소인배들이 승자로 떠오르는 풍조가 한심합니다.

데이비드 캐머론은 출신 성분에 있어서나 학력, 경력에 있어서나 영국 최고의 엘리트였고 그런 사람이 내세운 "온정적 보수주의"는 큰 관심을 끌었으나 결국 브렉시트, 스코틀랜드 독립 이슈를 놓고 완전한 파국을 맞았습니다. 그 뒤를 메이 총리, 또 지금의 보리스 존슨 등이 이었으나 어째 인물들이 크게 함랑 미달인 듯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중이라고 책에서는 말합니다만 사실 노동당에서도 워낙 우두머리들이 삽질을 벌이는 통에 정권이 안 넘어갔다 뿐이지 그리 장래가 밝지 못합니다.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가 이 책의 제목이지만, "과연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