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
라종일 외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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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한 대통령(혹은 내각수반)들이 평범한 시민들으로 돌아간 후 행복하게 사는 정치, 또 그런 정치가 이뤄지는 나라가 정상입니다. 권력을 내려놓은 후 영어의 몸이 되거나, 목숨을 잃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 당사자뿐 아니라 그 과정을 지켜 보는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지금껏 한국의 대통령들은 모두 불행한 운명을 맞았는데, 당사자들에게만 불명예일 뿐 아니라 그런 역사를 예외 없이 이어가는 국민과 국가의 부끄러움으로 남습니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들도 반성해야겠지만 역사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 갔다는 자성과 회개는 국민의 몫이기도 합니다.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역사". 이것은 우리 자체의 평가일 뿐 아니라, 외국에서 <이코노미스트> 등 권위 있는 미디어가 내린 객관적 판정이기도 합니다(p19). 세계 최빈국에서 글로벌 10위권 무역 대국을 이뤄 냈고, 세계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운 대기업들을 보유했으며,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힘들여 정착시켜 가는 성과도 이뤘습니다. 간혹 민주주의라는 가치 자체를 회의, 부정하는 미친 사람이 보이기는 하나 사리 분별이 부족한 극히 예외일 뿐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행한 대통령의 행렬이 이어지는 현상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왜 이런 식으로 현대사가 채워져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들은 다양한 방향으로부터의 고민을 통해 해답에 가까운 걸 내놓습니다. 일단은 대권을 쥔 최고권력자의 "주변"에 건전치 못한 이들이 포진하기 쉽다는 게 문제입니다. "제왕"의 주변에 황태자, 가신 측근, 궁정 광대(pp.35~36) 들이 머무는 건 당연한데, 민주주의 하에서 대통령이 제왕을 닮아서(그래서는 안 되는 데도 불구하고) 저 비슷한 사람들이 꼬여든다는 건 확실히 문제입니다.

책에서는 아들 관리를 잘못한 김영삼, 김대중, (아들은 아니지만 친인척이 문제였던) 나폴레옹 1세 등의 예를 듭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는 친형의 문제를 거론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관 중 한 분으로 책에 등장하는 분이 전남 보성 출신 박주선씨인데 정말 훌륭한 분이죠. 대한민국 엘리트 중의 엘리트입니다. 이런 뛰어난 인물들을 기용하고 실력을 발휘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용렬한 자는 리더가 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 밑에 쓰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질들입니다.

p45에는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 다음해인 2001년 북한에서 어떤 소설이 출판되어, "김대중 대통령이 불측한 동기를 갖고 방북했으나 김정일의 위엄에 눌려 굴복하고 돌아갔다"는 내용을 담았다는 정보가 나옵니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의 신체적 취약점까지 들먹입니다. 우리가 당시 그 전 과정을 보다시피했는데도 북은 이처럼 한심한 곡해와 유치한 선전을 일삼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아무리 선의로 접근해도 과연 올바른 성과가 나올지 정말로 의심이 되는 대목이죠.

p63에서 "불행한 가정은 다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유명한 구절이 인용되는데 다들 알다시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이죠. 라종일 석좌교수의 박학다식과 인문적 품격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김영삼은 취임하자마자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북으로 돌려보내는데 이런 관대한 화해의 제스처가 북에서는 국내 선전의 목적으로 철저히 악용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남으로 귀환 후 그 제일성이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여기(평양)까지 왔는데, 당신이 답방을 하지 않으면 되겠소!"라고 일갈을 담은 연설을 했었습니다. 이 당시 이한동 씨 등이 측근에서 경외감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런데도 김정일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일국의 지도자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그의 임기 말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했고, 이에 놀란 일본이 강경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게 저쪽의 태도였습니다(국교 회복 후에는 서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하는 게 암묵적인 합의였다는 뜻). 그런데 이 책에는 이 대통령이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각별한 위로의 뜻을 표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뒤통수라도 치듯 일본이 독도 문제를 거론했다고 나옵니다(p93). 그러니 일본의 도발이 (구간을 근거리에서 잡아도) 시간적으로 먼저이며, 이처럼 일본은 전후 사실 관계를 유리할 대로 잘라 왜곡하는 데 아주 이골이 난 나라입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핵실험 직후 시 주석에게 전화를 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한국 정부의 싸드 배치는 이에 상응한 조치인 셈인데, 중국은 배신이라도 당했다는 양 격노하며 한한령을 내리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상회복을 않고 있습니다. 이 역시 가소롭고 유치한 작태입니다. 책에서 이 문제를 상술하는 이유는, 4대 강국에 둘러싸인 한국이 번영과 생존을 이어갈 관건이 외교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외교에서는 초당적 대처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p124 이후에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보다 자세한 회고와 리뷰가 나옵니다. 미국의 주요 신문은 물론, 독일의 쥐트도이체차이퉁이라든가, 인민일보에서도 그의 묵직한 생애를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그의 생 내내 응원을 보내 준 이들 서방 언론(인민일보 제외)에 대해 감사를 표했고, 이에 대해 "그가 국내 언론보다는 해외 미디어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필진 중 한 분인 이구 교수는 말합니다. "김대중 죽이기"라는 용어는 1990년대 중반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고안한 용어인데, 야권의 유력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이 "죽이기"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이어지지 않았느냐는 게 적어도 김대중 대통령 본인의 인식이었다고 필자는 진단하는 듯합니다.

요즘은 기사가 아니라 팩트체크(체킹)이라는 형식의 아티클이 자주 눈에 띕니다. 이런 주장 저런 기사가 난무하는 중, 어떤 게 과연 주장일 뿐이며 어떤 게 명백한 허위인지, 혹은 사실인지는 분명한 확인이 필요하며, 사실이 아닌 것에 기반하여 이뤄지는 어떤 공방도 그저 소모적, 비생산적인 다툼일 뿐입니다. 팩트체크는 민주사회의 건설적 토의, 토론을 위한 필수 조건인데, 다만 요즘 나오는 자칭 팩트체크는 그 자체가 일방적 주장이거나 상대 진영에 대한 저급하고 교활한 비방인 경우가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차라리 그냥 주장이라고 했으면 그토록 보기 싫지는 않았을 텐데요. 이 대목 필자(역시 같은 이구 교수)는 특히 언론인들에 보내는 제언을 통해, 보다 엄격한 자기 성찰이 요구된다고 합니다. 백 번 맞는 말씀이죠.

오래 전에 함성득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이라는 저서에서 대통령의 실패 원인 다섯 개를 제시했다고 필자 허태회 박사는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당시 저도 그 저서를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 지금 읽는 이 책이 훨씬 발전된 방법론으로 무장하여 시대 정신을 더 절실히 반영한 듯하여 독자로서 기분이 뿌듯합니다. 이 부분 필자는 "행위자 vs 구조"의 프레임으로 접근하여, 왜 한국의 (전임)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운명을 맞는지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합니다. 제왕적 대통령 곁에는 항상 실세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었는데, 노태우 시절에는 박 아무개, 김영삼 시절에는 김 아무개 등이 국정을 농단하다 결국 좋지 못한 끝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들 이름은 사실 우리가 다 아는 사항인데 책에서는 구태여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네요.

p159에는 정치학자 오도넬이 말한 "위임 민주주의의 위기"가 나옵니다. 책의 후주에는 허태회 장우영 공저 논문 <촛불시위와 한국정치>가 출전으로 언급되기만 하는데 여기서 오도넬은 아르헨티나 태생이며 2011년에 타계한 Guillermo O'Donnell 전 캠브리지大 교수를 가리킵니다. 아무래도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포맷으로 실현되기가 힘들고 국민이 뽑은 대표자의 손을 거쳐야 하는데, 의원과 달리 국민 전체가 참여하다시피하여 선출된 선거의 대표자는 그만큼 권력의 정당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오용되면 제왕적 대통령으로 타락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거죠.

현대 한국사에서는 여러 차례,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세력 사이의 연합이 있었습니다. 1990년의 3당 합당이라든가, 1997년의 소위 DJP연합 같은 게 그것입니다. 1990년 당시 김대중, 이기택, 노무현 등은 자신들이 소외된 저 정치적 동맹을 가리켜 "야합"이라고 맹비판했으며, 반대로 1997년의 DJP 연합에 대해서는 이회창씨가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비난한 적 있는데 이들의 이런 성명, 혹은 회고 모두가 이 책 중에 언급이 되어 흥미롭습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그 시대의 정치적 이벤트는 그 당시 국민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할 뿐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 드립니다.(p214)"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중 일부 구절인데, 이것이 최근에 나온 게 아니라 (책 후주에 의하면) 2012년의 연합뉴스 기사 인용이라서 참 묘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이처럼 강도 높은 워딩의 사과는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민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 필자들은 "결국은 평상시 소통이 부족하여 초래된 문제"로 성격을 정리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에게 결여된 건 바로 소통이며, 반대로 제왕적 대통령이 태생적으로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초심을 잃고 소통을 게을리하면 결국 끝이 나쁜 제왕적 대통령의 운명을 맞게 되는 거죠.

새 대통령이 취임만 하면 기존의 행정조직을 뜯어고치는데 문제는 이것이 정책적 적실성에 기인한 게 아니라 새로운 권력의 편의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입니다(p244 등). 과거 김영삼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서 정작 "재정경제부"라는 공룡을 탄생시켜 결국 외환위기의 한 원인을 만든 적도 있습니다. 현 정부는 의외로 몇 부처의 명칭 변경 외에는 출범 초기 크게 정부조직법을 손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공수처 설치 문제로 노이즈가 이는 중입니다. 공수처는 준사법기관이므로 이 책에서 거론하는 전 정부들의 행정조직 개편(남용)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슈입니다.

"국정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재 등용에 코드를 중시하지 않아야 합니다(p250)." 사실 못난 사람일수록 자기 밑에 똑똑한 사람을 두지 못하며, 역량이 부족한 자가 권력자의 측근에서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걸 우리는 이미 이기붕, 김 아무개 등등 숱한 예를 통해 봐 왔습니다. 대통령을 비롯 모든 선출직 대표들은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하며, 적재적소에 훌륭한 인재를 배치하여 능력을 발휘하게 해야 하고, 아울러 국민과 격의 없는 소통을 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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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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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서건 신분 자체의 세습(世襲)은 폐습(弊習)으로 여겨지며,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다면 그건 정상국가가 아닙니다. 대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교육을 시켜 좋은 학벌을 얻어 주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돕는 부모가 있다면 그런 이들은 칭찬을 받습니다. 중국인이나 유대인들, 또 일부 인도인들은 유독 자국 아닌 다른 나라들에 진출하여 터잡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디아스포라), 대부분이 자녀 교육에 열성이라서 토착인들보다 더 잘살고 사회적 존경을 더 많이 받곤 합니다. 오바마도 한국에 대해 유독 정감 어린 언급을 자주 하는 사람인데 그 모친의 행태가 한국인들의 그것과 닮은 데가 많아서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먼저 위대해야 자식들이 출세하거나 위대해지는 법인지 말이죠.

그런데 이런 메리토크라시(물론 메리토크라시라고 해서 무조건 부모의 열성 교육을 전제로 삼는 건 아니겠지만요)를 두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면서 경계의 시선을 보내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 책의 저자가 그러합니다. 최근 저는 수학 신규 교육과정에 AI수학을 편입하는 문제를 두고, 일부 시민단체에서 어려운 내용은 안 된다, 지필고사 위주는 안 된다, 실습 위주라야 한다며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이 이슈 한정은 아니고 대체로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수월성 위주의 교육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사교육을 뿌리뽑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 시민 간 연대 의식 고취가 중요하다 등의 명분이 있으나 사실 그 외에 다른 근본적인 이유를 거론하기도 합니다.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며, 훈장 등의 영전은... 어떠한 특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게 건국 이래로 계속 이어진 우리 헌법의 전문 또는 본문 등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기회만 균등하면 불평등 문제는 해결될 줄 알았는데, 해결되기는 고사하고 소득 불균등 문제는 오히려 지금이 (한국이든 미국이든) 가장 심각하다고도 합니다. 저자 대니얼 마코비츠 역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천재형 학자이며 의심할 여지 없는 엘리트 출신입니다(책 날개에 나오는 문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날로 심각해지는 불평등 문제의 진짜 원인이 따로 있으며, 그게 바로 메리토크라시라고 지적합니다. 메리토크라시야말로 사회적 부조리를 타파하는 지름길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폐단의 주범이라니 진정 충격입니다.

"능력주의 직업 문화는 육체에는 만족을 줄지 모르지만 정신에는 타격을 준다."(p110)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조직 안에서 인정 받고 성과 내고 승진 빨리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 몸이 좀 축날 수는 있어도 마음은 진정 뿌듯한데, 정반대로 저자가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저자는, 몸과 마음이 힘든 건 육체노동의 장(場)뿐 아니라 아마존의 사무실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 아마존의 사무실이 아니라 물류창고로 잘못 읽었을 정도입니다.

그 이유인즉슨, "서로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어색하거나 민망한 느낌이 들어도 (다른 동료 앞에서) 자아비판을 하라" 같은 윗선에서의 주문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풍조를 가리켜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라고도 하네요. 하긴 그렇습니다. 생전에 정주영 현대 창업주는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들을 불러 놓고 한강 백사장에서 씨름을 시킨다거나,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 큰 소리로 판촉을 시킨다거나 하는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샌님 같은 기질을 뜯어고치고 참된 조직인이 되려면 이런 방법밖에 없다는 거죠.

저자의 결론은, 이런 무자비한 풍조 하에서 "거의 모든 동료가 자기 자리에서 흐느끼는 모습"을 보는 걸로 끝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게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희한한 풍토가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 아마존의 풍속도 중 하나라는 거죠. 확실히, 이렇게 해야만 조직이 발전하고, 경쟁의 장에서 전리품을 취하고, 조직원들과 주주들에게 줄 셰어가 늘어난다면, 이 회사, 나아가 이런 경쟁의 구조가 앞으로 얼마나 지속가능하겠냐는 겁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이고, 그에 따른 (예측 가능한) 해답 도출의 입구이겠습니다.

저자는 예일 대학 로스쿨의 예도 듭니다. 이 학교는 원래 동문의 자녀에게 가산점을 주는 등의 입학 관행으로 유명하죠(이 학교뿐 아니라 아이비리그 어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스탠포드라든가). 학교 순위를 높이려면 능력주의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고, 그래서 최근에 이곳은 저 관행을 폐지했다고 합니다(p6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생의 출신 성분을 조사하면 상위 1% 출신이 훨씬 많아졌다고 합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에 더욱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을 조사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가 나옵니다. 우리는 흔히 자본이 노동의 소득 지분을 빼앗아간다고 여기지만(p69), 최근의 추세는 노동 내 소득 이전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할 수 있는데, 책에서 예로 드는 건 대기업 CEO와 생산직의 급여 격차입니다. 전문의와 간호사의 급여 격차는, 종전의 4배에서 현재 7배로 벌어졌다고 합니다. 70년 전에 20배이던 것이, 현재는 300배라고 합니다. 이것은 상대비율이므로 절대금액을 고려한 인플레이션과도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물론 인플레까지 감안하면 생산직 노동자가 받는 고통은 훨씬 클 것입니다). 과거 마르크스 등은 자본 섹터가 노동 섹터로부터 빼앗아가는 현상과 기제만 분석하고 비판했지만, 이제는 노동 섹터 안에서 더 심각한 이전(移轉)이 벌어지는 겁니다.

사실 독자인 저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런 격차가 생긴 원인은 어쩌면 각 직군의 생산성과 기여도의 차이가 그만큼 세밀하게 측정 가능해졌고, 관리직의 난도는 그대로이거나 더 늘어난 반면, 단순노무직의 경우 자동화시스템에 의해 대체되거나(앞으로 강한 의미의 AI가 산업에 전면 도입되면 모를까, 의사결정, 관리직은 그 대체가 힘듭니다) 해외이주노동자들과의 경쟁(자유무역협정 등)에 직면하게 된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간호사가 노무직이라는 건 절대 아니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고요. 여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능력주의 관철이 만능이 아니다, 능력주의가 불평등의 결과적 심화라는 역작용을 분명 낳기도 한다는 쪽이며, 이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별로 없을 줄 압니다.

더 심각한 건 이른바 인간소외 현상입니다. 앞에서 예로 든, 아마존 사 내에서 그 나름 주변의 부러움을 받고 일류 회사에 입사한 엘리트 사원들이, 일과가 끝나고 나서 자기 모멸감을 달랠 길 없어 책상 앞에서 눈물 짓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직장은 물론 급여를 받기 위해서 다니지만, 그 외에도 자아실현이라는 고차원 욕구의 충족에도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자아실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존엄도 유지 못하며 무너진다는 게 어디 말이 되겠습니까. 엘리트 사무직이 이 정도이면 생산직의 사정이야 미루어 짐작이 되죠. 이런 사회에서 구성원의 행복과 만족이란 달성되기 어렵겠고 말입니다.

"악의적인 토착주의는 어김없이 그 같은 패턴(가장 억압받는 이들, 혹은 소수자 집단에게서 체제에 대한 정당한 항의 수단을 뺏어가는 패턴)이며, 능력주의의 이방인 선호로 말미암아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을 사로잡는다.(p142)" 참 표현의 맛이 기가 막힐 뿐더러, 사실 지난 4년 동안 미국에서 트럼프라는 이단아적 정치인이 그토록 환영받았던 비결을 정확하게도 짚은 문장입니다(다음 페이지에 바로, 포퓰리즘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당신이 그런 처지인 건 어디까지나 본인 능력과 노력이 부족해서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는 간단한 설명, 아니 강요가 가능해진다는 겁니다. 뭐 이 역시 부분적으로는 강력한 진실임에 틀림 없습니다. "능력주의의 이방인 선호!" 캬. 이 한 구절이 왜 그토록 대학교재(이름난 대학일수록 더)의 저자 이름이 그토록 발음하기가 어려운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존 스미스 같은 이름이 원서에 새겨진 걸 혹 본 적 있습니까? ㅋ 한편으로,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미국에 가서 놀아야 하는 겁니다. 머리만 좋고 자기 분야 실력만 확실하면 열렬히 환영해 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능력주의 만능의 사고가 자동으로 정당성을 얻는 건 물론 아니겠고요.

"부유한 가정 출신 고교 졸업생을 명문대에 확실히 보낼 방법은 없다. 그러기에는 부유한 가정이 너무 많고 명문대의 숫자가 너무 적다.(p249)" 이것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목동 같은 중간층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입시 교육 경쟁이 그토록 치열하게 이뤄지는 것이며, 이들이 정시위주 정책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부유한 부모에게 태어나는 게 대학 졸업의 충분조건이며, 엘리트 대학 졸업의 필요조건인 것이다.(p251)"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정확하게(적어도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려는 데 정확하게) 쓰였는지를 보십시오. 또 그냥 대학과 엘리트 대학이란 범주가 얼마나 차별적이면서도 저자의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게끔 사용되었는지를 보십시오. 이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건 아니건 간에 이런 서술 스타일은 경탄을 자아냅니다. 사실 이런 정책적 제안과 단정은, 몇 가지 소수의 반례만으로 쉽게 뒤집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19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 기업은 경영인 없이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300)" 제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경영인의 역할이 달라지고, 하위 성원에 비해 기여도와 생산성이 높아지는 게 또한 사실입니다. 이런 게 누가 자의로 획정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시장의 법칙에 의한 것이니 말입니다. 또 19세기의 중역의 주요 역할은 조직의 관리 감독이 아니라 자금 조달에 가까워 마치 오늘날의 벤처 캐피탈과 유사했다는 진단도 소름끼칠 만큼 정확합니다. 결론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기보다 이렇게 사회현상을 보는 뷰의 레인지, 혹은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의 우아함과 치밀성에서 천재의 재능이 증명되는 듯합니다.

"20세기 중반의 엘리트는, 다른 계층과 차별화할 정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단이 많지 않았다(p344)." 그래서 디자인도 모더니즘, 간소한 맛을 더 선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엘리트와 중산층 (중간층이 아닌)사이에 명확한 단층선이 존재(p348)한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며 아마 동시대인 다수가 공감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에 불필요한 과시적 향락 산업이 더욱 발달하며, 그 결과는 구태여 번잡한 말로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예전이라고 무조건 빈부의 격차가 적었다는 게 아니고, 19세기 제2차 산업혁명이 진행할 당시 미국의 신흥 부유층(졸부)의 타락한 소비상은 베블렌의 저서 <유한계급론>에도 잘 나옵니다. 이 책에도 베블렌의 문장과 업적이 언급됩니다. 아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제2의 베블렌을 자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블렌 역시 당대 부유층 사이에서 인기 있던(?) 지성인이었으니 말입니다

과거에는 부유층과 지배 계급이 게으른 빈곤층을 닦달했다면, 현재는 그 반대입니다. 엘리트층은 경쟁 때문에 숨 쉴 수도 없을 만큼 어떤 강박에 시달리며, 하위 계층은 갈수록 부족해지는 일자리 때문에 본의 아니게 게으름에 내몰립니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강요이지요. 대출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으며, 우리나 일본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급전 대출 업체가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p373). 소득의 불균등이 심해지니 주제 못할 돈을 어떻게든 굴려야 하겠으며, 반대로 하위 계층은 어디서건 돈을 빌려야 생계가 유지되겠으니 말이죠. 이러니 어떤 정치인이 거론한 "보편적 대출권"도 한편으로 수긍이 가는 겁니다. p401에는 대출을 증권화한 채권이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인 분야 중 하나라고 나오며, 다른 이야기 할 필요 없이 2008년 대위기를 불러온 (파산한) 페니매이 같은 게 다 이런 부류였습니다.

메리토크라시는 원래 사회학자 마이클 영에 의해 "비판적, 풍자적" 의도로 고안된 용어(p435)이며, 그래서 메리토크라시의 어떤 "메리트"를 논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역설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어떤 시스템을 비판할 때는 그에 대한 대안이 반드시 제시되어야 하며, 무작정 감정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고 부분적 폐단을 일반화하는 건 매우 미성숙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경제정책도 케인지언과 클래시컬을 병용해야 하듯, 사회의 자원과 성과 배분도 무작정 능력주의에 의존해서는 (어떤 시각으로 보더라도) 파멸만 부를 뿐입니다. 온정과 인도주의, 연대의식 같은 것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거버넌스 요소로 작용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기업도 ESG를 강조하는 거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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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지음 / 비즈니스아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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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름대로 열심히 시방 작성하고 성의껏 계산해서 비드를 넣었는데도 수주를 못 따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관적으로 정성을 다했다고 결과가 항상 좋을 수는 없고, 발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사태를 조감할 수 있어야 하겠으며, 혹시 나에게 뭔가 부족한 점이 없었는지 자성도 해야 합니다. 사실 저는 수주에 만능의 비법이 과연 있겠는가, 경우에 따라 다 다른 것 아닐까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수학뿐 아니라 수주에도 정석이 있고 기술이 있는 줄 이 책을 읽고 처음 실감했습니다. 확신이 안 서거나 생각이 막힐 때, 혹은 아예 평소부터, 이런 책을 읽고 마인드셋부터 다져야 실무에서 디테일이 술술 진행되겠다 싶었습니다.

저자의 말씀대로, 마케팅이란 뭔가 폼 나는 작업입니다. 제품 자체의 완성도와 레벨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 생각이 들어도, 이 세상의 고객들은 일단 그럴싸한 말과 포장에 현혹됩니다. 그래서 "소비자형 마케팅"에 대한 자료와 기술, 정보는 여기저기에 널려 있지만, 방향이 반대인 "수주형 비즈니스를 위한 마케팅(p47)" 지침은 어디서도 찾기 힘듭니다. 일반 소비자가 아닌, 기업을 상대로 한 마케팅도 전략과 계획이 필요한데 왜 레퍼런스가 잘 보이지 않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거론합니다.

1) 시장 자체의 형성과 성장이 느리다.
2) 결과 확인에 장기간이 소요된다.
3) 수주 수요자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고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치기에 변수가 많다.
4) 비드하는 입장에서, 특정 인적자원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에, 과학적 예측이 무의미해지고 마케팅의 위상이 커지기 힘들다.

독자 입장에서 특히 공감되는 게 3)과 4)였습니다. 수요자측의 센티라든가 포지션이 매번 같을 수가 (당연히) 없고, 대략 타겟 그룹을 설정하고 그 소속 개인들이 비슷한 성향을 가지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소비자 마케팅과는 전혀 상황이 다르며, 이 때문에 "수주 마케팅 개념 일반이 성립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 내가 무엇을 수주하려들지에 따라 전략과 방향성이 매번 달라지고, 나뿐 아니라 누구도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 없으니 케이스 바이 케이스 매번 달라지는 인력에 의존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러니 일반론(그것도 과학적, 체계적인 일반론)이 과연 설 자리가 있겠는지 짙은 회의감이 생깁니다.

수주 마케팅 원칙이라는 게 회사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가치 있는 사업을 가치 있게 수주할 수 있어야(p49)" 균형 있는 성장이 담보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수주 마케팅이란 "수주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하네요. 그때그때 다르다는 생각으로 매번 인적 자원에 즉흥적으로 의존하는 식이라면, 완성된 안을 내놓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걸려들기만 기다리는 식이라면, (저자의 관점에서) 수주 기회를 편식하는 셈입니다. 특정 부위만 비만해진 회사는 위기가 닥쳤을 때 극복이 힘들다고도 합니다. 참 맞는 말씀입니다. 수주 마케팅 원칙이 평소에 확립되어 있어야 최대한 많은 기회를 잡아 수주할 수 있고, 회사의 체질도 장기적으로 건전해집니다.

수주 마케팅도 거시적으로 보면 마케팅 형태 중 하나이므로(p49), 마케팅 믹스다 서비스 소싱이다 포지셔닝 분석이다 하는 게 일반 마케팅 절차와 같이 요구됩니다. 회사를 상대로 한 수주 일반에도 이런 과정이 적용된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건 세일즈 툴킷(p56)의 개발이었습니다. 회사 소개, 표준 제안서는 미리 마련해야 하며, 기술백서나 성공사례 자료 등도 깔끔하게 구비되어야 합니다. 이런 게 개별 수주에 있어서도 준비된 모듈로 척척 입수가능(available)해야 하죠.

일반 대중 소비자를 상대로 한 마케팅에서야 수요예측을 하고 발굴을 하는 등의 프로세스가 당연히 여겨지며 마케팅의 본체 중 하나겠습니다. 저자의 견해는, 기업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하긴 수요자 입장에서도, 그때그때 임프로바이즈해서 꾸려 온 제안서와, 마치 우리는 당신 상황과 니즈 예상 다 하고 준비 다 했다는 듯이 척 꾸려 온 제안서가 같이 보일 리 없습니다. 살 사람 입장에서 어떤 놀라움이 느껴져야 내 것이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그 사람 눈에 띄게 마련입니다. 에휴 남들 하는 평균이나 하고 운 좋게 당첨되길 기다리자, 뭐 이런 생각으로는 일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평소에  느껴 오던 생각인데, 공교롭게도 이 책 p107에 이걸 지적하는 비슷한 이야기가 또 나오더군요. 읽으면서 무릎을 쳤습니다(ㅋ). 여튼 저런 구태의연한 마인드는 요즘 한국의 어떤 섹터에서도 먹혀들 수 없죠.

소비자 마케팅도 그렇지만 기업 상대 마케팅도 언론매체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우호적인 광고 열 건보다 부정적 기사 한 건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합니다(p65). 이 회사에 대해 잘 모르는데, 담당자가 인터넷 검색 한 번 해 보고 대뜸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면 일이 잘 진행되기 힘듭니다. 물론 요즘은 기사, 기자에 대해서도 마냥 신뢰를 하진 않아서, 기사 내용이 이렇게 부정적이라 해도 과연 그러할지 추가로 정보를 탐색도 해 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담당자에게 이런 성의와 호의, 관심을 기대할 수 없고, 대개는 네이버에서 찾고 이상한 기사가 나오기라도 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기자들 관리를 잘 해야 하죠. 책에는 설령 수주가 확정되었다 해도 이후 탈락자들한테 약점이 잡혀 집중 공격 받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뭐 이런 경우야 사후 해명, 방어 기회라도 생긴다는 점에서 그나마 낫습니다.

어떤 회사에 대해서 좀 알아볼라치면 그 회사가 운영하는 공식 웹사이트를 찾아 보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예전 한때는 누구나 다 폼으로 운영했는데 요즘은 또 과감히(?) 없는 곳도 있습니다. 서버 비용 아끼려는 생각이겠으나 일단 신뢰 부여 면에서 효과 차이가 큽니다. 제 생각으로 여튼 자체 도메인 확보해서 뭐라고 갖고 있어야지 그냥 네이버 블로그, 다음 카페, 페이스북 운영하는 수준이라면 좀 곤란합니다. 책에서는 "방치된 웹사이트는 차라리 운영하지 않는 만도 못하다"고 합니다. 근데 요즘은 이렇게 웹사이트를 방치하는 곳이 또 너무 많습니다. 생각만큼 사람들이 안 찾아서 그러는가 본데, 자기 회사가 네이버일 수는 없으니 당연히 방문자수가 적죠. 이런 건 어쩌다 찾는 그 관심고객 한 사람을 위해 마련하는 것이니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성의 있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공공사업, 대형사업의 경우(p67) 외부 전문가를 평가자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를 위해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용역 과제 수행, 초청 강연 등을 마련하라는 게 저자의 주문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 로비와의 경계가 막연합니다만 다들 하는 건 해 줘야 하며, 기왕이면 남들 형식적으로 최소한으로 하는 것 더 성의있게 할 필요도 있고 한국이나 중국이나 이런 인적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게 먹힐 수 있습니다.

독자인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건 발주자의 환경 분석입니다. 산업 동향 전반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해당 기업 발주 담당자의 성향 분석이 중요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겠으나, 책에서는 바로 전 단계, 즉 프리세일즈 프로세스와 이 단계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그때그때 임프로바이즈하는 대응보다 훨씬 체계적인 준비, 혹은 진행이 될 수 있게 독자를 이끕니다. 애초부터 수주 마케팅 일반에 대한 대비, 베이스가 확실하면 개별 응찰 페이즈에서도 훨씬 체계 있게 진행이 되며 그 내용도 충실해진다는 뜻입니다. 어차피 해당 프로젝트의 담당자만 잘 구워삶으면... 같은 건 구태 마인드입니다.

정식 제안서 이전에, 발주자(수요자)가 입찰자들에게 제안정보제공서를 요구하는 수가 있습니다(p89). 이걸 RFI라고 하는데 책에도 잘 나와 있지만 여기다 너무 많은 내용을 담기 꺼리는 수가 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기밀 보안 책임도 모호하고 구속력이 없"는 게 치명적 약점입니다. 너무 의욕 과잉이 되어서 RFI에 온갖 이야기를 다 해 놓으면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셈이 되죠. 뿐만 아니라 발주자는 정부 기관이 아니어서, 어떤 의도로 이 일을 진행하는지 마치 부모님 선생님처럼 신뢰할 게 아닙니다. 이번에도 금호아시아나에서 현산측과 일이 깨지고 난 뒤, 애초에 인수할 의향도 없으면서 왜 회사 내부를 꼬치꼬치 살폈냐면서 공격한 적이 있죠. 물론 금호측 잘못이 더 크다고 전 보지만, 금호측에서도 저런 이야기를 할 명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그쪽도 이쪽도 다 게임 플레이어라서 자기 영업비밀은 결국 자기가 알아서 지켜야 합니다. 다만 말을 너무 아끼면, 책에 나오는 대로 발주자에게 "부정적 인식"을 주게 되는데 이러면 역효과이며 수주에 참여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그저 남들 하는 평균만 하고 당첨을 기다리는 식의 마인드라면 큰 위험도 없겠으나 대신 성과도 그만큼 달성 확률이 희박해지고, 저자의 지적대로(p107) 차별화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제안서는 어떻게 기획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발주자측의 제안요청서를 꼼꼼히 살피고, 그들의 의도와 니즈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 팀에는 제안PM이 있고(PM이라 함은 프로젝트 매니저입니다), 수주 전문가인 제안대표가 있고, 영업대표가 있고, 그 밑에 각종 세부 파트가 있습니다. 책 앞부분에서 특정 HR에만 의존하는 병폐가 있다고 했는데, 인적 자원에 의존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그건 불가능하죠), 기왕의 인적 자원에 보다 체계적으로 의존하라는 뜻입니다. 가장 딱한 게 인적자원을 비효율적으로 굴리거나, 있는 포텐도 못 뽑아먹는 경우입니다.

제안요청서는 꼼꼼히 분석해야 하지만, 저자께서 하는 재미있는 지적이 "행간을 읽어야 한다"입니다. 일반 대중 소비자는 이런 게 없고, 대부분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업 수주는 저쪽에서 요구하는 게 사실 명확하며, 같은 기업 내부의 소통과는 달리 "그거 알지? 그거" 같은 고맥락 표현이 없고 모호하나마 뭐가 있긴 하다는 게 다릅니다. 이걸 센스 있게 알아채야 하죠.

어떤 제안에 참여할지를 두고 최근에는 회사에서 그때그때 소수 담장자가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업 심의 기구(VRB)를 구성하여 결정케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네요(p126). 같은 페이지에 그 세부적인 평가요소, 평가기준이 표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개인 가게가 아니라 회사라면 이 정도 체계가 마련되고 또 운영되어야 합니다. 개인사업자라 해도 요즘은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차별화가 중요하다고 나왔는데, 어떻게 차별화를 시킬지가 또 관건입니다. 차별화에는 MORE이 있고 BETTER가 있다고 합니다. 전자가 객관적이고 수치적으로 더 확실한 방법이고,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제안자 입장에서 더 고통(p129)스럽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가격을 싸게 하든지 양을 늘리든지 하는 게 이 수주를 따내기 위해 이쪽의 출혈을 감수하는 길이기 때문이죠. 효과는 상대적으로 불확실하지만 왜 나의 제안이 더 좋은지 "좋게 보이게 하는" 길이 후자, 즉 BETTER 차별화입니다. 똑같은 사실을 남다르게 보이게 하는 게 핵심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게 마케팅의 본체인지도 모릅니다. 있어 보이게 하는 것....

앞에서(p111) 파트가 전략, 분석, 기본 파트가 있다고 했는데 p143에서 더 세부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여기서 제안서 파트별 속성을 분류하는 겁니다. 제안서 패키징 설계에 대해서도 잘 설명되는데, "최근 MP3플레이어, 휴대전화를 구입했다면, 어차피 버릴 포장을 왜 이렇게 정성들여 마련했을까? 같은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이 책은 2011년에 출간되었다는 점 감안해야 하겠네요ㅎㅎ). 그에 대한 저자의 답은 "패키징에서부터 구매자의 이런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포장 디자인에 신경 쓰는 것이다"입니다(p149). "시작도 하기 전에 점수가 깎이지 말라"는 게 저자의 말이며, 첫인상이란 게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중요합니다.

수주 마케팅도 마케팅이라서 책에서는 SWOT 분석기법, As-Is, To-Be 기법, 레이다 차트를 통한 벤치마킹, FAW 등이 나옵니다. 이 내용을 아는 독자라고 해도, "수주"에서 이게 어떻게 변형 적용되는지 꼼꼼히 살펴야겠습니다. 안다고 그냥 넘어가면 실제 업무에서 결국 간과됩니다. 지식으로 아는 건 아무 소용 없고 실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업무 중에 반영 표출이 되어야 합니다.

비단 제안서뿐 아니라 모든 문서에 다 통용되는 원칙인데, 내용과 단락 사이에 지배 종속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특히 글머리 기호를 통해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글머리 기호의 혼란은 "작성자와 편집자가 다를시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p178)"라고 하네요.

어쨌든 중요한 건 현실적인 가격 요소입니다. 책에서는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을 경우 유사사업(p188)에서 낙찰률이 어느 정도인지 살피라고 합니다. 만약 발주자가 추가 인하를 요구한다면 우리가 받아들일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미리 산정하라고 합니다. 단순히 마인드셋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협상 단계에서 바로바로 의사표현을 하고 나중에 고칠 수 없이 그자리에서 정해지기 때문에 이 문제가 중요합니다.

정성평가와 정량평가가 모두 중요하지만 기술평가에 비해 가격평가는 엄격히 정량평가를 해야 합니다(p199). 책에서는 세 가지 상황을 가정하여 평점 산정방식을 하나 예시하는데, 60%~80%을 기준으로 삼분되는 구간이라든가 그에 대한 대응이 매번 철칙은 아니겠으나 중요한 참고가 되는 건 분명합니다. 수주의 신이 제시하는 수치이므로 다가오는 무게가 다르죠.

그 외에 프레젠테이션의 이슈가 있습니다. 한번 잘 읽어 보시면 발표자의 멘탈까지 해서 이런 이야기가 다 있나 싶을 만큼 상세합니다. 어떤 책이든 독자에 따라 상황에 따라 해당되는 사항이 있고 고려 정도 사항이 있겠는데, 이 책은 해당 안 되는 사항이 아마 없을 만큼 광범위한 이슈를 제한된 분량 안에 많이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comprehensive하다는 게 이런 때 쓰는 말 같습니다. "프레젠터를 마음대로 평가하는 건 청중의 권리이다", 이 말도 꼭 새겨야 하겠습니다. 청중은 나의 부모가 아닙니다. 나도 TV에 나오는 연예인에 대해 시청 중 내 맘대로 평가하지 않습니까? 어떤 혹독한 평가가 나오더라도 쿨하게 수용하고 약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모니터링을 공짜로 해 준다고 하면 오히려 고맙죠.

스토리보드도 꼼꼼하게 준비하고 극적 요소도 넣어야 합니다(p250).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나오듯 극적인 PT는 모든 결과와 대세를 다 바꿔 놓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이런 시대이니만치 아 나는 제안의 질로 승부를 하겠다는 구태의연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발주자에게 전달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감성적 클로징으로 마무리한다(p309)" 등 책 후반부는 PT를 실제 해 본 사람들에게 너무도 공감이 들 만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수주에서 실제 가중치(?)를 반영하듯 이 책은 PT 실제 요령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그저 PT 기술만 알고 싶은 독자한테도 이 책 후반부가 매우 유익하게 참고될 듯합니다. 수주 요령이 간절히 지금 고픈 독자에게 이 책은 인생책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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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 연습 - 심아진 짧은 소설
심아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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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28편의 아주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네요. 짧지만 선명하고 때로 반전도 담은 작품들이라서 전혀 안 지루하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섬의 여우>는 처음에 "여우"가 어떤 비유인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우리가 익숙한, 그러나 실제로 잘 보지는 못했을 그 동물 여우를 그대로 가리키더군요. 구름과 그 외에 다른 애들에게도 순위가 밀리는 해가 나와서 저 여우가 아마 여우비를 말하는 가보다 착각했었죠. 섬인데도 "여전히 일할 사람은 많다"고 하는데 거제도나 남해도쯤 되는 제법 큰 섬일까요? 이런 섬에서라면 나 한 사람 설 자리 정도야 없겠나 싶어도 결국은 실망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조금씩 포기하지만 여전히 무언가는 남는 장점"을 가진 게 섬이라고 합니다.

여우나 여자나 이 섬에서는 겉돌고 환영받지 못하는 게 닮았으며, 그래서 여자는 어린왕자처럼 여우를 길들이려 하지만 여우는 여우라서 (여우답지 않게 우둔하게) 여자하고 거리를 계속 두려 하네요. "간두지세에 이른 이"에게 백 가지 행운이 필요 없고, 그를 홀리는 한 마리 여우면 충분하다." 마치 불교 설화에서 벼랑 끝에 매달린 이애게 작은 산딸기 한 점이 구원을 베푼다는 그 내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크고작건 간에 인생은 사실 누구도 견딜 수 없는 고해이며, 우리는 우리를 홀릴 무엇인가가 필요한 건지. 여우가 아니라 해도 우리 주변에는 고양이들이 아주 많습니다. 여우 대용으로 홀릴 만하죠. 여기서 문제의 여우는 얼굴이 넓적하고 덩치가 크다는데, 우리 상식("여우같이 생긴" 어쩌구 할 때)과는 많이 다른 외모인가 봅니다. 하긴 동료들을 제압하려면 간사한 재치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떤 완력이 필요하죠. 이 여우는 저 뒤(p110). <두 자매>에서 나이 지긋한 곽 여사와 그의 언니한테 다시 나타났다가(?), p161에서는 방생된 랍스터(<랍스터 도난 사건>)를 훔쳐 먹으며 까다로운 식감을 뽑냅니다(...).

<산책>. ATM 아래에 진을 친 노숙자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 어째 어디서 본 듯 눈 앞에 그려집니다. 품에 안은 개는, 노숙자라든가, 혹은 시선을 마주하기 부담스러운 노인들을 적당히 외면하기에 좋은 핑계네요. 사실 소통을 하나 안 하나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니 모든 소통은 가식이고 피곤한 연극입니다. 이 노숙자는 저 뒤 <우연의 도시>에 나오는 개토끼(p65)와 사실 같은 사람 아닙니까? 아일랜드 더블린과 한국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읽던 이솝 우화는 매 꼭지마다 끝에 "교훈"을 요약해 둔 판이 있었는데 아마 숙제 같은 것 할 때 편하라고 그리 만들어 놨던 것 같습니다. 1992년에 출판된 로버트 짐러의 <패러독스 이솝 우화>도 본편 못지 않게 끝에 달아 놓은 한 마디가 비중이 큰 뭐 그런 형식이었는제. 이 단편집도 우리 독자들이 혹시 작가분 메시지를 놓칠까 염려가 되셨는지 "흐르는 말"이 꼭 붙어 있는데 흘려 들을 수 없고 자꾸 눈이 가더군요.

<한 사람>은 "한 사람은 결코 한 사람이 아니다. 무수한 사람이 깃든 한 사람과의 사투가 삶이다.(p33)"는 문장이 구태여 아니라도 아 그 말이구나 하는 느낌이 모든 독자한테 들지 싶습니다. 남편 안에는 시아버지, 시할아버지, 시증조, 또 그를 가르친 은사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인격과 영혼을 만들며 들어앉아 있겠죠. 근데 여자는 왜 남편 안의 무수한 인간들은 버겁게 하나하나 만나면서, 자신의 네트워크는 의식하지 않을까요? 여자(아내)는 남편이 아니라 네트워크까지를 같이 대하지만, 이 힘겨운 싸움을 여자는 (자신 안에 깃든) 친정엄마나 자매의 도움 없이 혼자 치러내는 게 보통이라서일까요? 더미에 깔린 건 (그) 남편뿐이 아닌데도요. 자세한 걸 물어 보려면 저 뒤 p79에 나오는 "도끼에 꽃을 달면 도끼가 아닌가요?"라고 형사에게 반문하는 그 아내를 만나야 하겠습니다.

<감자와 나>의 화자는 마치 체홉의 단편에 나오는, 남 이야기는 신나게 하면서 정작 자신은 누군지 알 수 없(게 하)는 그런 1인칭 영혼 같았습니다. 본질은 그게 아니라면서 따지지 말라고도 합니다. p35에는 수학 문제가 하나 나오는데 "기본도 안 되는 문제"라는 그의 평가 전혀 "황당"하지 않고, 문제 푸는 요령만 익히면 초등학생도 풀 수 있는 그런 거죠. 생긴 건 아주 어렵게 보이지만.



풀었다는 사실을 숨기라고 하셨으나, 디스토마(p232)처럼 입이 근질근질해서 기어이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자, 이 그림에서 파랑 원이 왼쪽 직선에 접할 때 그 반지름의 길이가, 이 문제가 원하는 최솟값이 되며, 이 값은, 점(원점)과 직선(왼쪽 직선) 사이의 거리 공식을 갖고 숫자 대입을 통해 기계적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답은 9/5가 되죠.

검색을 통해 내가 원하는 정보는 뻔한게 그거 하나 얻어 내려고 주인의 쓸데없는 주절거림까지 먼저 읽어 줘야 하는 데서 오는 짜증. "본질"은 그게 아닌데도, 안물안궁인데도 말이죠. 정작 필요한 정보는 흐릿하게 제시된 통에 애먼 손까지 다치고. 다 이게 본질에 집중하지 않는 비효율과 산만함의 폐단입니다. 본질은 사실 성공적인 감자채볶음도 아니고, 내가 손수 뭘 해봤다는 그 체험이라고 위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전>은 알고보니 반전이 있죠. (내용 누설 유의하세요) 빌라 입주자 모두가 싫어하던 "그 녀석"은 알고 보니 나였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주인이 친절하지 않았으면 그걸 핑계로 한 끼 정도 건너뛰고 흡입 칼로리를 줄일 수 있었겠는데... 그러나 만약 불친절했으면 그걸 또 핑계로 다른 가게에서 뭘 시켜도 시키고 쓰레기를 엄청 배출했을 테고. 결국 결전은 매번 패배이며,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이웃들을 다 끌어모아도 가망이 애초에 없었던...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비빔밥은 솔직히 참기름맛으로 그간 먹어 왔던 거 아닌가. 마치 저 앞에서 "내"가 현실이 아닌 여우에게 홀려 힘든 삶을 버텨내듯 말입니다. 여우인지 뭔지도 사실은 모르는 거죠. 고양이인데 그냥 여우라고 여기고, 비빔밥은 밥과 채소 맛으로 먹는다고 스스로에게 우기고...

<징후>에서 진은 쿨한 여자네요. 미리 차근차근 징후를 충분히 고지하고 이별을 단행하는. 공정하고 깔끔합니다. 이렇게 절차를 잘 밟아 이뤄지는 이별이라 해도 언제나 갑작스럽습니다. 물론 그리 여기는 사람(남자) 잘못입니다. 전혀 천사 같지 않고 토하고 먹고 깨고를 반복하는 남의 아기, 멍청한 부하 직원.... 알고 보니 이런 것도 진이 아닌, 누군가(?)가 알려 준 징후.....였을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유 없이(p95) 울지는 않습니다. 다 알고 보면 이유가 있었다는. 호모 라크리모수스라는 명명이 그래서 타당하네요(p144).

<천사의 벌>. 어른이 되어 갈수록 속에 들어온 천사는 목소리가 낮아지고 아이는 자기의 에고와 육신을 만들어 갑니다. 왜 3번 교향곡이, 하늘로 돌아온 천사한테 고문일까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좀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면 나폴레옹의 한자식 표기가 "나팔륜"이기도 합니다.

<그저 우연일 뿐이겠는가?>에는 많은 한자성어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굴곡지고 비루한 삶을 살아가려면 여러 개념어를 고안해서 자신을 전술적으로 기만할 필요가 있을 텐데 현학적인 간디스토마들도 우리와 별 다를 바가 없나 봅니다. 남의 (더러운) 내장 속도 보기에 따라 가시광선의 시중을 받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될 수 있겠죠? 이 지구도 알고 보면 누구 창자의, 항문의 한 구석일 수도.

<혁명>. "혁명"은 거대한 사기극입니다. 지켜 낸 이들이 결국 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아예 우리들이 적이었던 거죠. 인간 역사는 한 치도 진보한 적 없고, 다만 디스토마의 입김이 번잡한 거짓말을 만들어 냈을 뿐입니다.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 그냥 대변이고 토사물이죠. 명도 혁이도 다 지옥에 가야 합니다.

간혹 만나는 삽화가 묘하고 예쁘던데 책 뒤에 적힌 유지안이라는 분이 그 웹툰 작가인지 다른 예술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적이고 시니컬한 짧은 이야기들이 매우 유쾌했네요. 잘 모르면 그냥 웃기만 해도 결국 그게 남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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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열풍 : 남인수에서 임영웅까지
유차영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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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강점기 비록 일본 엔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트로트는 수십 년 동안 한국의 민중과 함께했으며 엄연히 우리의 대중문화입니다. 작년 즈음부터 부쩍 트로트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며 요즘은 웬만한 채널마다 고정편성(혹은 재방송)하는 트로트 프로그램이 하나씩은 있던데 그 배경을 정확히 분석하기는 어려우나 여튼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아마 요즘 가요가 너무 젊은층 위주로 제작, 소비되다 보니 장노년층이 즐길 장르가 절실히 욕구된 게 아닐까 짐작합니다.

이 책은 강점기 말엽 정도로 거슬러올라가는 한국 트로트 역사를 거의 다 커버하고 있으나 저자의 풍부한 지식으로 각 구간의 대중문화사 중요 화제, 에피소드, 굵직한 사건 등을 두루 다룹니다. 그래서 나이 많이 자신 층, 세대가 읽으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 같고, 젊은 층이 읽어도 간혹 TV에 나오는 나이 드신 올드스타가 누구인지(누구였는지) 배우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사에는 가장 생생하고 선명한 민중의 애환이 배어 있기 마련입니다. 순전히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히겠습니다.

p92에 보면 "우리 정치사에서 대표적 라이벌이 박정희 & 김대중이었다면, 대중가요사에는 나훈아 & 남진이 용호상박이었다."라 말이 있습니다. 원문 그대로이며, 아마 나이 많으신 분들은 남진 선생을 먼저 거론하기도 할 겁니다. 젊었을 때에는 남진(이하 경칭은 생략)이 더 인기가 좋았으니 말입니다. 어떤 분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은 상상이 안 가지만) 지방 대도시 나이트클럽에 와서 뭐 테이블 위에도 올라가고 쇼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하죠. 나훈아씨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했고 이후 대규모 콘서트가 큰 성공을 거둠에 따라 넘사벽 레벨로 올라섰습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얼마 전 추석 연휴에 전 국민의 화제가 된 방송 공연을 한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

이 책에는 작곡가 임종수씨가 (진심) 불후의 명곡이라 할 <고향역>을 작곡하여 나훈아씨에게 준 에피소드(1972년)가 나옵니다. 저는 전혀 몰랐는데 임종수씨도 당시 정말 젊은 나이였네요. 나훈아씨는 당시 이미 스타였으므로 임종수씨(5년 연상인)가 "딱 5분만 시간을 내 주십시오"라고 부탁해서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작곡가가 당시라고 무조건 갑이었겠다는 선입견은 틀린 거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그 시대를 정말 몸으로 살아내고 다문(多聞)한 저자만이 들려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풍성하다는 겁니다.

193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 반도에서도 대중문화가 그 나름 무르익어서 다양한 스타들이 탄생합니다. 저는 처음 들어 보는데 황해도 박연 태생의 야인초라는 분에 대한 소개가 p46에 나옵니다. 여기서 부산 최초의 음반사인 코로나레코드사가 거론되네요. "코로나"라는 단어는 그때로부터 거의 90년이 지난 이제 웬만하면 상표 이름으로 쓰이지 않을 것 같지만 말이죠. 저자는 운치 그윽하게도, 고려가요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서경별곡>의 가사를 풀어서 책 안에 함께 담기도 합니다. 저 무렵만 해도 대중문화의 무대, 배경, 소재는 반도 남북에 두루 미쳤음을 상기하면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p30에 보면 반야월 선생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게 풀어집니다. <울고넘는 박달재>라는 명곡은 1948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저자는 풍부한 상식을 바탕으로 가사 중에 등장하는 "천등산"이 고개가 아니라고 구수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박재홍 선생에 대한 설명도 있는데 원래 이분은 강점기 시절 은행원이었다고 하네요. 제가 몇 달 전에 읽고 리뷰도 남겼던 <청년사업가... >라는 만화책에도 주인공이 은행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딛는 내용이 있죠. 반야월 작곡가는 (1980년대 후반 노래방 업종의 등장 덕에 뒤늦게 히트를 친) <소양강 처녀>도 지은 분이죠.

책은 참 내용이 풍성합니다. 예를 들면 가사에 나오는 박달재에 대해, 1217년 고려 고종 연간에 김취려 장군이 거란군을 소탕했다는 말까지 담깁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역사상식까지 느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니, 1217년인데 그때도 거란이 남아 있었나? 천등산은 충북 제천 소재인데, 김취려 장군은 서북 지방에서 적군을 격퇴하지 않았던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말하는 거란군은 여진의 금나라에 복속되었던 잔당이고 자칭 대요수국 세력이었습니다. 그 한 무리가 멀리 남쪽까지 내려왔다가 소탕된 거죠. 트로트 책 읽으면서 국사까지 공부하게 되어 정말 좋습니다^^ 저는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노래 가사의 산이 "전등산'인 줄 알았습니다(TV 자막도 그리 나왔던 것 같은데....).

나이 지긋한 50대 장년층에선 <선녀와 나무꾼>이란 노래를 아는 분들이 많겠습니다. 이 노래가 이 책에 왜 나올까 생각했는데, 미스터트롯 본선에서 미스터붐박스가 불렀다고 하는군요. 저자께서 일일이 그 프로그램을 다 시청하고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 노래에 대한 사연을 풀어 놓는 게 너무 재미있습니다. 솔직히 저 세대분들이라고 해도 저 노래를 다 알 것 같지는 않은데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의미가 크게 다가왔습니다. 김창남씨는 1980년대 후반에 인기를 끌었던 <달빛 창가에서>를 부른 "도시의 아이들" 듀오 중 한 분이죠. 안타깝게도 간암으로 타계했습니다. 책에 보면 "심기남"이라고 나오는데 "신"기남이 맞습니다. 예전에 DJ,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계자군 중 한 명으로 키우던 정치인들 중 한 명이죠. 천-신-정이라고. 지금은 저 세 분 모두 일선에서 쓸쓸히 퇴장했습니다. 여기에 설명이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까지 화제를 이어가서, 그 근원이 금강산에 닿음을 논급합니다. 저자의 역량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유클리드의 원론>에 명시된 평행선을 음유하면 가슴은 더 아린다.(p369)" 와, 정말 트로트책이 맞나요? 제가 이런 구절들만 독후감에 인용하니까 내용이 어려운가 보다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책에 실린 모든 꼭지가 하나하나 다, 트로트 명곡에 대한 소회와 설명과 역사 이야기입니다. <평행선>이라니 사실 저는 모르는 노래인데, 이 책에 나온 설명을 읽고 나서 웹에서 검색을 따로 해 보게 되었습니다. 트로트라고 하면 젊은이들은 "다 그 노래가 그 노래" 같다며 주의깊게 듣지 않고 넘기지 않습니까? 그러던 게 빼어난 가창자를 만나 생명력을 새로 얻고, 이런 책의 멋진 설명이 입혀지고 나서 완전히 신선한 인문의 의미까지를 얻게 되는 겁니다. 최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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