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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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사진은 마치 한국의 따스한 한 봄날의 풍경을 담은 듯한 느낌입니다. 그림자의 길이라든가 하늘빛, 혹은 왠지 사진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대기의 안온함 등이 그 근거입니다. 물론 이 모습은 한국이 아닌 러시아가 배경이며, 사진에는 두 소년 소녀가 담겼습니다. 약간 우스꽝스러운 아저씨 패션을 한 남자아이, 얌전하게 학생 룩을 차려 입고 손에는 엄마 심부름인지 비닐백에 뭘 채워 든 여자아이가 우리를 봅니다.

"러시아는 초행이지만 설렘도 걱정도 없다." (p21) 예전부터 서구화와 개혁 개방의 대명사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행이라서 그러시다는 건지, 아니면 러시아 전체에 대해 원래 그런 느낌이라는 건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워낙 중국이 인구가 많고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서도 중국말, 중국인을 마주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운하가 많아서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도 부른다.(p22)" 러시아, 또 표트르 1세가 계획 건설한 그곳은 분명 고위도이며 또 우랄 산맥 이서는 유럽에 속하지만 이곳이 북유럽이었나 하는 생경함이 잠시 머리를 스칩니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하지만 말입니다. 이곳은 저자의 말에 의하면 노상의 주정뱅이도 종종 관찰될 만큼 자유로운 도시입니다. 반면 모스크바는 단정한 사람들이 많다는군요.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2차대전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900일간이나 나치의 포위를 견뎌낸 이력이 있기도 하죠.

"사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카잔 성당에서 찍은 것이다."(p38) 카잔은 2018 피파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멋진 승리를 거둔 곳이기도 하지만 여기는 거기가 아니라 성당(정교회) 이름만 카잔이니 독자들 중 오해하는 분은 없어야겠습니다. 그 앞 앞 페이지에 보면 역시 이곳 시민들 중 한 여성이 귀엽게 웃으며 브이자를 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뭐 여느 서유럽, 혹은 미국에서 찍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 사는 풋풋함과 온기, 자연스러운 감정이 그대로 배어납니다. 저자는 "오랜 동안 공산주의가 지배했지만 종교가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러시아는 사실 그들만의 독실한 종교, 서북부 유럽의 프로테스탄트나 로마 가톨릭과 선명히 구분되는 정교회를 오랜 동안 신실히 믿어 온 나라죠. 공산주의 70년의 지배로는 그 뿌리를 걷여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p39에는 "가톨릭은 세속적 가치에 밀려 신도를 잃었으나 정교회는 주말이면 신도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합니다. 더 폭 넓은 자유가 도시를 감싸고, 더 풍요로운 물자와 자원이 오가는 공동체에서라면 종교가 설 땅이 좁아지고, 그래서 약간 미개한 이런 곳에서나 여전히 종교의 힘이 유지되는 걸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그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사람 손에 물질이 쥐어지면 자신의 통제력, 주도권이라는 걸 실감하고, 그래서 절대자에의 의존이 어리석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문화와 풍토에 따라 다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자도 "세속적 가치에 밀려" 정도로 정리하는 것 아닌지. 세속에는 그런데 과연 "가치"라는 게 있었나요? 순간의 쾌락과 만족 말고 말입니다.

"구글 맵에서는 보통 공원 같은 녹지가 초록색으로 표시된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회색으로 표시된 곳도 가 보면 녹지인 곳이 많다." (p58) 아마도 행정조사가 불철저하면 구글에서도 참고할 만한 자료가 적어 모호한 회색으로 처리했을 법합니다. 한국에서는 군사 보호 시설 등이 모호하게 처리되곤 하는데 이것은 당국의 의도적인 정보 비공개 때문입니다. 녹지가 많다는 건 여튼 반갑습니다. 우리도 경기도 일원이나 서울 변두리에 거주민 빼고는 잘 모르는 근린 공원(물론 구글이나 네이버 맵에는 잘만 표시되죠)들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게 아니라 번잡한 도시에서 참 고마운 존재이며, 여기 상트페레트부르크에서는 "관광객들을 피해 현지인들이 차분히 쉬는 곳"이라 합니다. 그럼 구글의 미흡한 표기는 혹 시 당국에서 의도한 결과일까요? ㅎ 그렇지는 않을 듯합니다. 옆 페이지 사진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생수통 하나를 옆에 두고 약간은 뻘쭘한 미소를 짓습니다. 사는 모습이 참 우리네랑 비슷합니다.

한국의 기차역은 딱히 위험한 환경... 같은 곳은 아니지만 노숙자가 진을 치고들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저자는 미국이나 서유럽 등의 위험한 역 몇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이곳 러시아는 그에 대조하여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합니다. 심지어 "문제에 휘말리거나 위협을 받으면 근처의 지하철역이나 기차역으로 뛰어들면 된다"고도 합니다. 영화 같은 데서 보는 미국의 전철역은 우범지대의 대표격인데도 말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저 둘의 중간쯤인듯 합니다. 미국 역보다는 러시아의 그것에 가깝겠지만.

볼가 강은 문예나 노래 등에서 워낙 자주 등장하기에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지명입니다. p115에서 작가님은 볼사야 거리를 걸으며, 어느새 발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볼가 강변을 걸으며 "상상 속에서 일리야 레핀의 그림을 보고 돈 코사크 합창단의 노래를 들었을 뿐"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아마 저 장소에서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겠습니다. 유튜브를 듣고 짬짬이 구글 검색을 하며 말입니다.

p124에는 책 표지에 나왔던 그 두 어린이를 담았던 똑같은 사진이 다시 나옵니다. 배경이 된 옴스크는 책을 읽어 보면 빈민가 비슷한 곳이라고 해서 약간 놀랐습니다. 남자애 패션이 촌스러워서 시골인가 생각은 했었지만 말입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 중 유일하게 등장인물의 미소가 없는 작품이라고 작가는 말하네요. 가난에 시달려서 미소를 지을 여유도 없는 걸까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애들이라서 그런지 자기들 나름대로는 웃고 있는 듯하기도 합니다.

현지에 가 보고 직접 체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팁들이 많죠. 여행뿐 아니라 세상사 모두가 마찬자기라서 책에서 배우는 건 극히 일부분입니다. p136 이하에서 저자는 자신만의 러시아 여행 팁을 소개해 줍니다. "3등차는 값이 싸지만 복도에까지 2층 침대가 설치되어 있고 칸막이가 없이 개방되어 있다." 그게 안 좋은 거겠죠. 혹은, 열린 여행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외의 정보를 작가님한테 듣게 됩니다. 비싼 카메라와 다량의 현금을 들고 다녔는데도 전혀 신변의 위험을 못 느꼈다는 겁니다. 물론 이는 작가님한테 특유한 케이스일 수 있고 국외는 물론 심지어 한국 내 여행이라고 해도 언제나 조심은 해야 합니다만 말이죠. 여튼 작가님은 이런저런 범죄에 신경 쓸 필요 없는 여행이었다고 하는데, 반대로 그나마 러시아에서는 개방되고 발전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인종 차별 비슷한 적대감까지 간혹 느꼈다고 합니다. 서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이건 과연 뭘 의미하겠습니까? 어설프게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곳에서, 특히 하층민 중심으로 이방인에 대해 터무니없는 적개심을 띠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거죠. 작가는 "경찰국가" 개념도 거론하는데 여행자 입장에서 안심하고 다닐 수 있다면 나쁠 것도 없다고 합니다. 물론 의미를 더 비약해서 해석할 건 아니고, 그저 소박한 여행객 입장에서 이해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독자로서 저는 "과연 자유의 의미가 무엇일까?" 를 좀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통제가 강하고 다소 빈곤한 지역일수록 사람들의 선한 마음은 더 잘 지켜진다? 그럼 중국은 어떻습니까? 모를 일입니다.

참 특히 코카서스 인종이 사는 권역에서, 유대인과 그 사당이 없는 지역은 거의 없다시피한 것 같습니다. 대단합니다(비꼬는 의미가 아니라). p172에는 입장시 반드시 겉옷을 벗어 맡겨야 하는 곳이 꽤 되는데, 작가님은 그 안에 내복만 입고 있는 터라 그럴 수 없어서 약간의 웃지 못할 실랑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여행자라면 이럴 일이 드물겠으나 여튼 우리도 좀 참고해야 할 듯합니다(난방은 잘 된다고 합니다).  p178에는 어느 예술품의 사진이 있는데 두 분의 행위자가 참여한 작품이고 잘 보면(잘 안 봐도) 여성들이라서 약간 당황스럽습니다. 물론 가릴 부분은 어느 정도 가려져 있습니다. p165에 다시 화가 일리야 레핀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도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의 수렴, 획일화를 위해 예술가들이 여전히 탄압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뭐 당연하죠.

도스토옙스키 본인도 그곳에서 살았고, <죄와 벌> 역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배경이었다고 합니다. "왜 그의 동상은 언제나 구부정한가?" 정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스토옙스키와 그 명작을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겠습니다. 저도 꼭 가 보고 싶어요. p202의 저자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사랑하는 팬들이 만든 (거대한) 문학적 게임에 (겨우) 계정 하나를 등록한 느낌이었지만 잊지 못할 느낌이었다." 이 말 듣고 보니 저도 꼭 가서 계정(?) 만들고 싶네요 ㅎㅎ

요즘 케이블 채널에서 2019년작 <안나>를 자주 틀어주는 편인데, 작가님은 러시아의 음험한 스파이 묘사로 그 이미지가 많이 왜곡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지에 가서 보면 크렘림과 붉은 광장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관광지가 된 지 오래라고 합니다(p241). 제 생각에 이 두 사실은 서로 모순이 아니며, 러시아가 스파이전에서는 자유 진영을 압도할 만큼 놀라운 실력(?)을 보인 건 팩트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실력이 좋아서 불과 몇 주 전에 미국 주요 시설을 해킹으로 다 털어 먹었죠. <솔트>의 졸리, 또 <레드 스패로> 같은 영화를 언급하시는데 올가 쿠릴리엔코도 러시아 태생(정확하게는 우크라이나 혈통에 프랑스 국적이지만), 스파이 액션 자주 출현, 본드걸 역임 커리어 등 빼놓을 수 없는 배우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황석영의 기행문 제목이 생각나기도 하는 이 한 문장으로 독후감을 요약하고 싶습니다. 어느 지역, 어느 민족, 국민에 대한 선입견은 대체로 뚜렷한 근거가 없습니다. 가서 실제로 만나 보고 살을 (가능하다면) 부대껴 봐야 그들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풍경도 아름답고 사람들 사는 모습은 더 아름다운 나라 러시아. 저도 꼭 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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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오아물 루 그림,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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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가 생텍쥐페리 탄생 120주년이 된다고 합니다. 생텍스는 40대 초반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망했고 아주 많은 작품을 남긴 것도 아닌데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세계 사람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거의 없지 싶지만 아직 <어린 왕자>를 안 읽어 본 이라고 해도, 외로운 별에 혼자 예쁜 옷을 입고 서 있는 어린왕자의 이미지, 선명한 삽화를 모르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린 왕자의 그 많은 명언 명구, 깨끗한 심상도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더 인지도가 높은 건 삽화입니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지은 피터 래빗 시리즈도 나온 지 118년 정도 되는데 이 동화가 그렇게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작가 포터 여사가 직접 그린 삽화의 매력입니다. 비슷하게, 어린 왕자도 언제나 삽화와 함께 출간되는 이유는 생텍쥐페리가 그 유명한 그림들을 직접 그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어렸을 때 범우사판으로 읽었는데 물론 이 책처럼 깨끗한 고급의 백상지에 원판의 일러스트가 모두 수록된 버전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물론 우리와 동시대인인, 세계적인 일러스트 작가인 오아물 루의 멋진 작품들이 더 들어 있고요. 우리 독자들도 <어린 왕자>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오리지널 삽화가 뭔지는 머리 속에서 다 재현해 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텍스트나 이야기만큼이나 생텍스의 원 그림이 유명한데, 이 책에 고맙게 수록된 오아물 루의 그림들은 어느 게 원화이며 어느 게 그의 창작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마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에다, 현대의 솜씨 좋은 어떤 작곡가가 완성의 붓을 더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도 생텍쥐페리가 현대에 부활한다면 오아물 루의 그림을 보고 더 흐뭇해할 것 같습니다. 마치 레전드 가수들이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여 아이돌 가수들의 재해석을 듣고 감격하듯 말입니다. 오아물루는 중국인인데 본명은 卤猫이라 쓴다고 하네요. 卤는 소금 로 자입니다. 우리 식으로는 鹵이라고도 씁니다.

"밀은 황금빛이니까 밀을 보면 네가 생각나겠지. 네가 나를 길들여놓으면 신날 거야. 나는 밀밭을 지나는 바람소리도 좋아하게 될 거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찡해지는 구절입니다. 사실 황금빛 밀밭을 본 적이 없어서 완전한 실감은 못하지만, 주인공의 머리 빛깔을 암시하는 의도라는 건 누구나 파악할 수 있죠. 어린 왕자 자신은 사실 머리가 좀 짧은 편이라서 그렇게 찰랑찰랑하는 느낌은 없지만 말입니다. 여튼 어린 왕자는 화자에게 저렇게 말합니다. 자신은 빵을 먹지 않기 때문에 밀이 그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다고도 하죠. 선녀가 이슬만 먹고 산다는 설화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은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이것저것 구차하게 먹고 배설도 해야 하지만요.

들판에 핀 장미꽃은 누구 눈에도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빨간 장미를 흉내내어 입술도 새빨갛게 바르고 간혹 의상도 빨간 드레스로 차려입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미라고 해도, 어린왕자는 "길들여짐"을 거치지 않았다면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마치 김춘수 시인이 "그의 이름을 불러 주고 난 후에야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한 것이나 비슷합니다.

사실 무엇이 아름답다고 단정하는 것도 어쩌면 일방적인 처사입니다. 마치 이 이야기에 나오는 어떤 임금님이 타자에 대해 부당한 권력을 마구 휘두르려 드는 것과 같죠. "길들임"이란 소통, 서로 오가는(reciprocal) 사귐인 듯합니다. 사실 우리말의 "길들임"은 약간 좋지 않은 뉘앙스도 있기 때문에 해당 작품을 처음 읽는 한국인 독자라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120주년 기념판이고 그 유명하신 김석희 선생 번역이라서 저는 이 부분이 다른 말로 혹시 바뀌지는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선생도 우리 독자들에게 익숙한 그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여튼 이 작품에서 "길들이기"는 순수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가리키는 핵심 어휘죠. 시간과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장미 한 송이는 광활한 우주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특별한 장미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장미, 혹은 내가 길들인 여우는 이제 나를 향해 특별한 눈빛을 보냅니다. 그와 관계를 맺기 전의 나는, 이제 그 때문에 그에게 특별해진 지금의 나와 다른 존재입니다. 이것은 시간의 전후가 끼친 영향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닌 그에게 무엇이 된 나로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었기 때문에, 나 역시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보석이 된 것입니다.

순수해지려면 혼자 고립되어서는 안 되며, 나를 길들이고 내가 길들인 당신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은 순수한 게 아니라 술주정뱅이, 임금님, 허영꾼처럼 오히려 타락하기 쉽습니다. 관계의 소중함 속에서 태어날 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이 고전에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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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옳았다 - 미처 만들지 못한 나라, 국민의 대한민국
이광재 지음 / 포르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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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저자는 한때 노무현 대통령의 양대 브레인 중 한 명으로 꼽혔고 10년 전 강원도지사를 거쳐 올해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7대, 18대에도 젊은 나이에 이미 의원을 역임했으며 특히 국회에 뉴페이스가 대거 진출했던 17대에 활동상이 많았습니다. 18대에는 보수정당 웨이브가 거셀 때였는데 그때도 당선되었죠.

현재 여권에서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재판 중이라 아주 힘든 시기이며 이낙연 전 총리도 몇몇 악재가 생겼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친문과 불편한 사이라서 대권 도전이 힘들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제3후보론인데 이 후보군에는 정세균 현 총리라든가 이 책 저자 이광재씨 같은 인물이 꼽힙니다. 이런 시사적 배경이 있어서인지 책이 더욱 흥미롭게 읽히며, 책 제목 "노무현이 옳았다"는 구절도 과연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가 벌써부터 호사가들의 입에 오릅니다. 여러 재미난 해석이 있으나 ㅎㅎ 과연 저자 말고 누가 그 뜻을 정확히 알겠습니까.

"민주주의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물론 어찌 민주주의라는 단어, 개념에 저 뜻만 담겼겠습니까만 저자가 이 시점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민주주의가 타인에 대한 존중인가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그 반대가 독재이며, 독재가 이른바 "타자"에 대해 철저한 무시, 경멸로 일관한다는 점에 생각에 미치면 아! 하고 수긍할 만하죠. 그렇습니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독재이며, 독재와 민주주의는 어떤 지점에서도 서로 만나지 않습니다. 이 시점에서 과연 민주주의를 위해 그 청춘을 불사른 투사이자 왕년의 정책통답게 참 절묘한 말씀을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보다시피 "이광재가 옳았다"가 아니라 "노무현이 옳았다"입니다. 왜 이 시점에서 노무현인가? 그 취지는 책의 p16에 잘 나옵니다. 노 대통령은 당시 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는데, 그때 꺼낸 말씀이 "야당이 우리의 적은 아니지 않나?"였답니다. 노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모시던 저자이기에 이런 사정은 누구보다도 잘 아시겠죠. 이런 제안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한 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습니다. 또 야당과 공생하려는 태도도 보였던 노 대통령을 아쉽게 대하여 결국 자살이라는 비극이 벌어졌기에 그 반대편 진영이 당시에 비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야당을 적으로 보지 않았던 노무현 정신의 일면에 대해 주목을 하자는 겁니다, 저자의 취지가 말이죠. (또, 당연한 소리지만, 노무현 진영의 반대편에서도 역시 그 상대를 적으로 보면 안 되는 겁니다)

권위주의와 권위가 다르다는 말은 1987년 6월 민주혁명 직후 동아일보의 어느 칼럼에서 개인적으로 처음 봤던 기억입니다. 김진현씨였나 필자가 뭐 그랬었습니다. 이광재 저자께서도 유독 이 시국에서 그 말을 다시 떠올리는군요. "노무현 대통령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권위주의를 버렸고 반대진영을 끌어안았다. 그가 우리의 대통령이었을 때 우리는 그가 권위 없이 행동한다고 비난하곤 했다(p19)."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워지는 대목입니다.

저자는 말을 이어갑니다. "독선과 호통을 내려놓은 그(=노 대통령)의 권위를 지켜 주기보다는 진영, 집단의 힘으로 그를 구석까지 몰아붙였다. 결국 우리는 권위주의를 다시 불러들였다. 민주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도 다시 불안해졌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폐부를 찌르는 지적입니다. 역시 젊은 나이부터 중책을 맡고 세상을 넓게 경험한 분 답습니다. 이렇게 유연한 사고를 가진 분이, 20대 대학생 시절에는 또 누구보다 최선봉에 서서 목숨을 걸고 불의와 타협 없이 투쟁도 했던 것입니다. 반대로 상황이 엄중할 때는 구석에서 벌벌 떨던 위선자가 상황 다 끝나고 나서 요란하게 밥숟갈을 얹는 거죠.

p36에는 김대중 정부의 치적이 하나 나옵니다. "1990년대에 청년 세대를 대거 등용하여 차세대 정치 리더들이 기반을 잡을 수 있게 도와 주었다. 그런데 어느덧 기성세대가 된 386은 새로운 디지털 세대를 여간해서는 기용하지 않는다." 청년은 아니었지만 저 무렵에 기용된 분이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낙연씨였고 당시 대변인으로 막 데뷔했습니다. 그 당시 부대변인이 여성으로서는 파격으로 뽑혔는데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김현미 전 장관입니다. ㅎㅎ 참 역사의 아이러니죠. 정작 저자 이광재씨는 저 무렵 픽업된 청년 지도자도 아니었는데 김대중 정부의 이 훌륭한 선택을 특별히 기념하는 겁니다. 이때는 새천년민주당이 갓 출범할 때였고, 이보다 앞서 새정치국민회의가 4년 전 창당될 때는(김대중 대통령이 아직 야인 시절) 30대 여성 판사 추미애, 또 호남의 수재로 유명했던 천정배 씨, 또 MBC 앵커 정동영 씨 등이 있습니다. 뒤의 두 분은 권노갑 의원이 직접 맞이한 인재였죠.

그가 속한 세대의 감정선을 잘 건드리며 저자는 p66에서 하루키가 쓴 <랑겔한스섬의 오후>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여기서 그는 하루키식 감성이 물씬 배어나는 여러 심상을 말하는데, 대부분이 요즘 젊은 세대가 지평으로 삼는 "소확행"입니다. 어떤 야무진 비전이나 과장된 야심은 일찍이 포기하고, 일상에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잔잔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 이는 한편으로 젊음의 특권인 끝없는 상상과 포부를 포기한 것이라서 슬프지만, 다른 한편으로 엄중한 현실에 눈을 뜬 결과라서 대견해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20대는 그 전 세대가 젊었을 때의 성향보다 훨씬 보수적이라고도 하고, 한편으로 업무 능력이라든가 사회를 보는 시야가 훨씬 폭이 넓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특정 매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무조건 믿고 따르며 베껴대는 성향이 없다시피합니다. 젊은 세대가 그전 세대보다야 더 현명하고 더 지혜가 늘어야 정상이므로 이런 현상은 대단히 바람직합니다. 책에서도 이런 새로운 세대들에 대해 저자의 애정이 잘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지도자라면 이처럼 시대가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예민한 촉수를 갖춰야 합니다. 자신이 젊었을 때 형성한 가치관에 갇혀 있다면 남 앞에 나설 그릇이 못 됩니다.

p103에는 역시 한때 대통령의 최측근에 서서 정책통 노릇을 했던 저자다운 명석함이 두드러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정부출연 연구소와 국공립 연구소에 매번 많은 예산을 지출하는데, 그 과제의 성공률이 98%에 달한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나라의 연구원들은 두뇌가 우수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라도 하는 건가? 저자의 해석은 정반대입니다. 애초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안전한 과제만 골라 제출하고, 그에 자금이 지원되어 성공하는 것이니 이걸 어떻게 도전이라 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나온 산물이 어떻게 높은 성과와 파생의 성취를 담보하겠냐는 겁니다. 세계 4위의 특허강국이 라이센스로 전환되는 예가 드문 것도 이로부터 설명이 가능하지 않냐고 저자는 묻습니다. 상품화, 비즈니스로 이어지지 못하는 특허 양산이란, 그저 스펙 쌓기라든가 보여주기식 행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생각의 힘으로 진화한다(p147)." 이는 인구대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재를 배출하는 사실로 유명한 유대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입니다. 유대인은 한국인처럼이나 교육열이 높은 민족이지만, 한국인처럼 주입식 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임기응변 능력도 그리 높이 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중요시하는 건 일상의 매 순간이 배움으로 충만한, 지혜의 축적과 숙련입니다. 흔히 주입식 교육의 낙오자들이 창의력이나 토론이 뭔지도 모르고 함부로 자신들의 특기인 양 참칭하지만 기실 그들이 능한 건 뻔한 상투어의 반복이라든가 흔해빠진 자기연민뿐입니다. 유대인은 언제나 토론과 비판을 중시하며, 종족이 중히 여긴 도그마라 해도 회의와 개량의 여지를 남겨 둡니다. 아랍과 살벌히 대립하는 그들이지만 이스라엘의 의회에는 언제나 다양한 정파가 모여 끝장 토론을 즐긴 후에 최상의 안을 도출하려 애씁니다. 살아생전 대한민국에서 토론에 제일 능했던 분 중 하나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한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비단 코비드19 같은 전염병이 아니었다 해도, 여러 아젠다를 두고 격렬히 찬반이 대립하여 나라가 두 쪽이 나기 직전입니다. 현명한 지도자가 나와야 이 난국이 수습되겠으며, 그런 의미에서 "다시 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외치는 이 저자 같은 분이 지혜롭게 대중을 이끌어가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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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한국사를 다시 읽는 유성운의 역사정치 지도로 읽는다
유성운 지음 / 이다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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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언제나 지도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필독서처럼 꼽히는 <삼국연의>도 후한말의 행정구역도와 함께 읽어갈 때 각 인물이 구사하는 전술과 책략의 구체적인 의의를 파악할 수 있고 해당 분야의 많은 마니아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죠. 그런데 각종 취업 시험에서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점수를 요구하는 요즘인데도 정작 한국사를 지도와 함께 공부하려는 노력은 드문 듯합니다. 시험의 최신 추세가 그쪽을 묻고 있는데도 말이죠. 한국사 역시 지도와 함께 공부하면 대단히 재미있어지고 의미가 정확히 와 닿는데다 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맥락이 와 닿습니다. 이 책은 물론 수험서는 아니지만 평소에 역사를 취미로 재미로 넉넉히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면 각종 시험도 한결 수월히 통과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유성운 저자님은 중앙일보 기자입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N모나 D모 포털에 역사 관련 독특한 제목을 단 아티클이 노출될 때가 있는데 클릭해서 읽어 보고 재미있다 싶어서 지난 연재물까지 죽 읽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역사는 물론 한국인이면 누구나 중고등 과정에서 필수로 배우지만, 교과서에서 딱딱하게 그 의의를 정리한 내용 말고, 우리가 사는 이 현대의 맥락으로, 혹은 실용적 프레임으로 재해석하면 어떨까, 어떤 이런 고민, 그리고 재미가 녹아 있는 글들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지도와 함께 책으로 나와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잡념과 근심이 싹 잊혀지고 독서에만 완전히 몰입항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p108에는 5대 10국 시대의 컬러 지도가 나오고, 이무렵에 해당되는 한반도의 시대의 고려 초기입니다. 조광윤의 송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것보다 고려의 건국, 반도 통일이 조금 더 빠르죠. 조광윤이 대체로 화북에서 큰 인망을 얻었던 정치인이었던 것처럼 왕건도 이 땅애서 당시 두루 존경과 기대를 모은 인물이었습니다. 견훤의 후백제도 망하기 전에 오월과 통교했다는 사항을 국사 교과서에서 배웠는데, 이 책의 지도를 보면 그 의미가 확실히 와닿습니다. 발해는 926년에 상경성이 포위되어 큰 위기에 빠졌는데(p109), 아무도 와서 돕지 않았다고 책에 나옵니다. 사실 거란이 동북아시아에서 너무도 강성했기에 그 비위를 거스를 수 없었겠죠. 미국이 쿼드를 만들어 동참을 권유하지만 일본조차도 흔쾌히 미국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 것(공동성명이라든가)과 비슷하네요. 발해는 수도를 여러 번 옮겼으나 주된 근거지는 상경성이었고 책에도 그래서 이 곳을 특별히 언급합니다. 바다 건너에는 왜(倭)가 있는데 지도를 보면 확실히 그 판도가 파악됩니다.

p80에는 페르시아의 서사시 <쿠시나메>가 소개되는데 여기에 신라가 바실라라는 안전한 나라로 등장합니다. 당시 신라가 얼마나 번성했는지도 간접적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p87에는 저자께서 이라크의 한 공무원과 대화를 나눈 사실이 적혔는데, 이라크도 한때 페르시아에 복속된 지역이었으므로 중동인들의 어떤 이상향을 현대의 후손들이 공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산수 경관이 수려한 곳... 예전 어느 프랑스인도 故 김소희 명창의 연주(창)을 듣고 우리 나라가 맑은 물, 자연의 물을 그대로 식용수로 쓸 수 있는 나라 아니겠냐고 (사전 지식 없이) 추측한 적이 있다고 하죠. 금이 풍부하다는 말은 고려, 조선 代까지 계속 내려왔는데 그동안에 너무 채굴이 되어서인지 이후에는 그런 사정이 기록에 보이지 않고 고작 구한말에 미국, 러시아, 영국인들의 이권 침탈 건 연관뿐입니다. 손님을 환대하는 풍습이 아름다운 우리지만 이제는 국제 정세와 우리 내부의 사정이 복잡하게 변해서 그런 멋진 리액션의 발휘가 힘들지 않을지... 저자도 그 비슷한 말씀을 p89에서 합니다.

우리는 예전부터 대륙의 강대국을 큰 충돌 없이 무마하기 위해 각종 묘안을 많이 내었는데 이를 두고 "약소국의 잔꾀"라며 조롱하는 전통도 대륙에서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뭐 어쨌건 간에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국토를 물려 주려고 고군분투한 조상님들의 노력에 감사하는 바입니다. 욱하는 성미를 부리기는 쉬워도 참고 또 참으며 생존의 지혜를 발휘하기란 쉬운 게 아닙니다. p167에는 이런 사연, 즉 일본이 절대 (갓 대륙을 통일한) 원조에 입조하지 않으리라는 냉정한 판단을 내린 고려의 필사적인 노력이 나옵니다. 이렇게 애를 썼는데도 쿠빌라이는 기어이 원정을 단행했고,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게 됩니다. 이 비슷한 일이 태종~세종 연간에도 있었는데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마도를 정벌했기에 당시 명 성조 영락제의 무리한 요구가 더 이상 없었겠죠.

책에서는 고려 문종 대에 큰 번영을 누린 비결 중 하나가, 이전 시대에 주적을 거란으로만 잡고 분명히 국력을 집중했었고, 남쪽의 근심거리를 없앤 덕분이 크다고 합니다. 일본만 헤이안 시대가 아니라 고려 역시 "평안"했었다고 규정(p149)합니다. 일본은 그런데 왜 고려를 적대했던가. 그 이전 신라시대에 중앙정부가 통제력을 잃었고 이 무렵 신라 해적이 일본에 적지 않은 피해를 끼친 탓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일본이 신라를 적지 않게 침공했고 양국은 거의 항상 적대관계였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백제와 연대했기 때문이죠. 신라를 계승한 게 고려였고 고려 역시 일본의 적국이라는 태도가 일본 사서에 보인다고 하며, 우습지만 일본은 신라나 발해도 다 자신의 속국으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한참 후 고려말에는 열도에 남북조시대가 전개되며 이때 대거 왜구들이 반도 남부에 침략, 막대한 피해를 끼칩니다. 이때 큰 활약을 한 무장이 최영, 최무신, 그리고 이성계 등이죠.

조선 시대 대체로 남인계는 일천즉천 정책을 지지했습니다. 이 먼 뿌리로 책에서는 퇴계 이황이 노비를 양인과 적극 혼인시키려 든 예를 듭니다. 부모 양쪽 중 하나가 노비면 그 자식도 노비가 되는 식입니다. 이황은 전처와 후처 가문이 모두 지역 명문이었는데 이로서 특히 가세가 확장되었다는 말도 책에 있습니다. 학문적 재능이 뛰어난 이황의 가문과 혼사를 맺으면 앞으로 정신적 영향력을 향토에서 크게 확대하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겠죠. 책에서는 어떤 현대 정치인의 예를 들며 이황의 노련한 처세를 부각하는 듯하지만 아무려면 그 사람과 이황이 같은 선상이겠습니까. 바로 앞에는 조광조의 현량과 시도를 비판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이슈에서는 독자인 저도 저자분께 적극 찬동합니다. 사실 당대의 사정에서 추천제로 인재를 등용하는 건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거죠. 중국에서도 과거제가 확고히 자리잡았고, 이후 조광조의 후예를 자처한 사림들도 그 어느 당색에서도 현량과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습니다. 과거제는 비록 일부 타락, 변질했지만 뼈대 자체는 갑오경장때까지 유지되었죠.

다만 그렇다고 과거제가 만능이라는 건 아닙니다. p318 이하에서는 과거제 역시 생계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양반계급의 특권이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양인인 이상 일개 농민이라고 해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자체가 어디겠습니까. 고려나 신라 대에는 없던 제도적 장점이죠. 한국도 요즘 이런저런 아빠찬스 무슨 찬스가 문제가 됩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씩이나 기회가 공평히 주어지는 나라도 드뭅니다. 미국은 대놓고 기여입학제가 있지 않습니까. 다만 제도를 잘 돌보지 않으면 어떤 이상한 이들이 조삼모사식 술책을 부려 불공정을 시스템화할지 모르는 일이죠.

전쟁은 본래가 문명 혁신의 기회입니다. 내가 살고 적을 죽이기 위해 그야말로 있는 지혜 없는 지혜를 다 짜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p354에는 임란을 거치며 하이테크에 눈을 뜬 후기 조선을 조명합니다. 비록 왜란과 호란을 겪었으나 조선은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었고(p390), 나선 정벌에 정예 포수들을 보낸 것도 강대국의 요구에 굴복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저력을 보여 줬다고 봐야 합니다. 정조가 화성을 축조한 것도 나라 형편이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방증인데, 다만 서세동점의 결정적 시기에 집정자들이 단견이었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통신사는 조선 초,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고도 하나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큰 비용을 들이며 정기적으로 파견된 건 임란 후 풍신수길 세력이 망하고 덕천 막부가 들어선 후입니다. 이것도 덕천 막부가 먼저 청해서 이뤄진 거고요. p499에는 "18세기 들어 기반이 탄탄해진 막부는 더 이상 통신사 효과가 필요없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역으로 그 이전에는 조선과 교류할 필요가 저쪽에서 더 절실했다는 뜻입니다. 역사에서 가슴이 아픈 대목은, 왜란 같은 끔찍한 재난을 당하고도 왜 곧바로 반격하여 복수를 꾀하지 않았냐 같은 게 아니라, 처음에 확고했던 경제적, 문화적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을 당하는 이런 국면입니다. 실제로 조선은 호란에 대해서는 국치로 여겨 이후 효종 등이 북벌을 꾀했지만, 왜에 대해서는 남정 같은 시도가 미미했습니다. 상대도 안 되는 야만인에 대해 구태여 복수심을 품을 필요도 없다는, 역설적인 자신감의 발로 아닐까요? 진짜 분한 건 경제적 문화적 실력의 역전상입니다. 그러니 19세기 서세 동점의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이 그처럼 차이났던 거죠.

책은 모든 페이지가 고급 백상지이고 실린 지도도 컬러라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저자님은 현대사에 대해서도 신문사의 같은 코너에서 흥미로운 글을 오래 연재해 주셨는데 후속편도 독자로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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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직원 대처법 - 오늘도 직원들의 문제행동에 시달린 상사를 위한 즉시 적용 해결책
이시카와 히로코 지음, 오성원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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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회사 등 조직에서 상급자가 무조건 하급자를 찍어 누르는 강압적 태도가 문제였습니다만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물론 여전히 부하를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부당한 지시를 일삼으며 아이디어와 공을 가로채는 한심한 유형은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불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며 조직의 기강도 어지럽히는 타입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니 상사 입장에서 차라리 몬스터처럼 두렵게만 여겨지는 직원이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 된 판입니다. 이런 추세나 행태는 한국뿐 아니라 세대간 의식 변화를 크게 겪는 일본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p46에는 이른바 "바보 트위터" 이슈가 등장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조회수만 증가시키려는 의도로 자신의 바보 같은 행동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행위인데, 이 책에도 (가상인지 실제 사례의 변형인지는 모르겠으나) 국부만 가린 채 회식에서 춤을 추는 동영상을 보고 해당 직원뿐 아니라 회사 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져서 과장이 거래처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국에서 이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어떨까요? 그런 사례가 아직은 안 나오는 것 같은데, 대신 특정 대리점이나 지점의 갑질, 추태, 막말로 체인점 전체가 피해를 보는 일은 있었습니다. 반대로 프랜차이즈 측의 경솔한 언행 때문에 애꿎은 지점이 날벼락을 맞는 경우도 있었죠.

회사도 사람이 모인 곳이라서, 앙심을 품은 직원이 상대에 대해 근거 없는 헛소문을 퍼뜨린다거나 해서 큰 소동을 일으키는 일이 있습니다. p83에는 자신을 찬 상대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뜨린 Y카와 이야기가 나오는데, 피해자가 여성인 R코입니다. 여자 입장에서는 미치고 어이가 없어지는 상황이죠. 반대로 어떤 미친 여자가 남자한테 당치도 않은 헛소문을 퍼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헛소문도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를 해야 설득력을 가지는데, 저능한 머리의 소유자 답게 어디서 유치하고 터무니없는 헛소리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건 한번 혼이 나 봐야 지 부모가 안 가르친 버릇을 고쳐 놓게 된다는 걸 좀 가르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상사의 말을 듣지 않는 깡패 직원(p173)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 역시 부모가 버르장머리를 잘못 가르쳐서 어른이 되어서도 이모냥으로 사는 거죠. 군대에서도 소대장 길들이기라는 게 있는데, 이 사연에서 F시마라는 자는 U무라씨가 갓 부임한 공장장이라고 마구 무시하고 폭언, 망동을 일삼습니다. 이런 놈도 말을 시켜 보면 뭐 지가 억울하다는 둥 합리화를 합니다.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고 변명이고 나이에 걸맞지도 않는 자기 중심적 생각 일변도이죠. 그렇다고 동료 직원들하고나 잘 지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깡패가 괜히 깡패겠습니까. 동료들과 잘 지내고 상사와 불화한다면 오히려 그 상사가 무능한 건 아닌지, 그 부하가 리더십이 출중한 건 아닌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만 이런 놈들은 그렇지도 못합니다. 돈 만 원에 벌벌 떠는 아주 치사하고 구질구질한 유형이 대부분이죠.

"제멋대로인 부장 때문에 괴로워하는 신입(p227)" 사실 아직도 더 흔하게 발견되고 물의를 빚는 유형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여기서는 50대 후반의 나이에 아직도 부장인 Y다 씨가 대표로 등장합니다. 회사에서 아주 오래된 창업 멤버 격이나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새로 배치된 부서에서 적응 문제를 일으키는 거죠. 승진 문제에 대한 개인적 좌절감이 이처럼 부하직원에 대한 릴레이션십 이슈를 빚는 패턴입니다.

p261에는 비뚤어진 자기애를 지닌 부하 유형이 나옵니다. 저 위에 나온 F시마 같은 놈도 따지고 보면 자기애 과잉 타입입니다. 다만 여기서 다루는 유형은 그런 폭력배 타입이 아니라, 자기 껍질 안에서 빠져나오기를 거부하는 일부 미성숙한 여성들을 두고 주로 이르는 겁니다. 남자는 F시마 같은 게 문제고, 여자는 특히 조직에서 이런 비뚤어진 자기 중심 유형이 문제죠. 비극의 주인공을 자처한다는 게 코믹한 점입니다. 책에서는 혹시 여성 차별, 선입견 이슈를 우려했는지 바로 남자 문제로 전환합니다. ㅎㅎ 제가 말한 대로, 남자가 이렇게 미숙한 유형이라면 힘의 과시 문제를 반드시 일으킵니다. 힘을 가진 사람은 구태여 과시를 안 합니다. 제 스스로도 무기력한 걸 알기 때문에 찌질한 오버를 떠는 거죠.

회사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일 못해서 문제 빚는 사람, 주위 사람 괴롭혀서 시끄럽게 하는 사람, 정반대로 자신도 강해져서 적절히 받아치면 될 걸 괜히 기를 쓰고 피해자가 되어 자신도 비참해지고 주위도 피곤하게 하는 사람... 이런 다양한 유형을 다 감싸안을 줄 알아야 진정한 리더이며, 그래서 지금은 평사원이라도 언젠가 팀장이 되고 이사가 되려는 이라면 일찍부터 리더십을 키우고 상사의 입장에서 사태를, 조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상사뿐 아니라 아직은 어린 직원들도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나는 혹시 몬스터 직원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내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높은 자리까지 못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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