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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ft Me 시프트 미 - 포스트 코로나 시대, HIP하고 DEEP하게 나만의 일을 찾는 법
이예은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예전 세대는 주변의 대세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것에 나 자신을 최대한 끼워맞추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에 반란을 일으키고 싶거든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호흡법에 집중해라. 그것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p29)
어떤 사람은 고생 끝에 많은 돈을 벌고서도 구태여 고층 건물 위에 올라가 그 막대한 대가를 허공에 뿌려 버립니다. 돈은 많이 벌었으나,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희생한 대가(양심, 자존심, 소중한 꿈, 사랑하는 사람 등)가 너무도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무엇을 성취한다 해도 자신의 고유한 호흡, 자부심, 이상 같은 걸 잃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극한의 허무감을 느끼는 존재인데,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존 그 자체"를 위해 나의 호흡을 지킬 것을 권하는 거죠. 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함을 강조하는 말로 읽힙니다.
회사는 내게 4대보험, 일정량의 급여, 사회적 신분 등을 제공하는 고마운 곳입니다. 과거에는 회사가 인재를 갈구했으나, 지금은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회사 밖에서 성장하기 힘듭니다. 즉 예전과 달리 회사는 일종의 학교와도 같으며, 어느 명문대라 해도 결국은 회사 입사를 위한 프렙 스쿨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회사들은 그 정도로 큰 위상을 가졌습니다. 이러니 대한민국의 모든 청춘들은 대학 입시라는 험한 관문을 뚫고도 다시 취업 준비에 4년을 헌신하는 것입니다. 직장이란 그만큼이나 소중한 목표요 가치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좀 다르게 말합니다. 즉, 직장과 직업은 다르다는 뜻이죠. 직장이란 한 곳을 계속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러기도 힘듭니다. 능력 있는 인재는 여러 회사에서 콜을 받으며 그러기에 이력서에 여러 직장이 적절한 간격을 두고 표시된 사람은 대개 능력자로도 인정 받습니다. 역시 과거와는 달리 말입니다. 물론 스포츠에서도 원 클럽 맨이 인정 받듯, 한 직장에서만 잔뼈를 키운 분도 그 나름 대단한 것 맞습니다.
직장이 주는 안도감과 소속감, 긍지 같은 건 대단합니다. 내가 삼성에 다닌다, 포스코 혹은 현대자동차 사람이다 이러면 동료들 사이에서 뭔가 다른 신분을 가진 듯 뿌듯합니다. 이런 긍지는 또 누구나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직장보다 중요한 건 직업이다.(p72)" "지겹게 반복되는 취업과 퇴사에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p73)"
사실 좀비처럼 직장에서 눈치나 보고 아무런 열의나 적극성 없이 그저 중간만 가자는 식으로 부화뇌동하다가, 결국은 부적응자나 마찬가지로 축출된 후 뒤에서 회사 욕이나 하는 신세로 떨어지느니, 뭐 짤리면 짤리는 거다 하는 각오로 당차고 소신 있게 일하는 사람이 요즘은 훨씬 환영 받습니다. 또 그런 사람이라야, 매순간 부과되는 격무 속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도 가꿔 나가고 뭘 배워도 맥락 있게 배우면서 다른 인재로 거듭나는 겁니다. 이런 이치는 밀레니얼이 아니라, 어느 지역 모든 세대에 두루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수한 대표라는 분은 "퇴사학교"를 이끌면서(p94),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퇴사자, 혹은 퇴사를 준비하는 이들을 교육하는 분입니다. 본인부터가 퇴사한 후 백수 신세로 많은 치열한 고민 끝에 해답을 찾은 분이라서 이런 야심찬 기획을 펼칠 수 있었다는군요. 30대 중반이면 물론 젊은 나이이지만 사람에 따라 그리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저자처럼 밀레니얼은 아니지만, 이런 참신하고 냉철한 마인드를 지녔기에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자신보다 나이도 많은 이들을 리드할 수 있었겠죠. 어찌보면 서른도 많다면 많은 나이인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심각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게 멋진 성취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에는 밀레니얼 세대인 저자의 소중한 깨달음만 실린 게 아니라, 사회 각처에서 자신만의 포부와 비전으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멋진 인생들이 많이 소개됩니다. 이런 분들에게 독자들은 한번 찾아가 볼 수도 있겠고, 또 구태여 그러지 않더라도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인생을 엿보는 일 역시 많은 공부가 되는 간접 체험입니다.
임영복 선생은 나이 스물 여섯에 뜻을 세운 분인데, 이 책 저자가 대안학교를 다닐 때 자신을 이끈 스승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인 듯합니다. 이분이 "라이프워크 수업"을 펼치는 사하라 인생 학교는 제주도에 소재했는데, 제자와 오랜만에 조우해서도 "육지 사정은 어떻니?"라고 묻는 모습부터가 흥미롭습니다.
"천재는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인가?" p99에는 피아니스트 김요한 군이 나오는데, 천재답게 그는 학교 정규 교육이 아니라 홈스쿨링을 택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이처럼 홈스쿨링을 하는 이들이 많으며, 남들과 다른 재능을 가진 어린 학생들이 예민한 시기에 상처 안 받고 자신의 재능을 올바로 키우는 데 하나의 방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천재는 물론 타고납니다만, 주변의 질시와 지인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 자주 마주치게 되는 좌절(어떤 천재라도 모든 문제를 힘 안 들이고 해결하는 건 아니며, 아인슈타인이라 해도 죽을 듯 치열한 모색의 과정을 거쳐 광전자 원리 등을 발견한 것입니다) 등을 기어이 극복 못 하고 평범 이하의 인생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후천적인 다듬기 과정은 그래서 재능 못지 않게 중요하며, 심지어 재능도 뭣도 없고 그저 미칠 듯한 집념만 가진 이에게 추월당하기도 합니다. 성취와 성공의 틀은 사회가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요즘은 선택 장애, 결정 장애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어찌보면 행복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풍요로워졌고 그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후회가 없을지를 고민한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에 대해 조금 다른 결의 평가를 합니다. 내 스스로가 매번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갖고 살아왔다면 결정장애가 찾아오기 힘들다는 뜻에서 저자는 결정장애를 이제 그만 떨쳐버리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음식점에서 메뉴를 고를 때부터 친구들과 놀러갈 행선지를 고를 때까지 시원시원합니다. 결정이 시원시원하다는 건 남들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갈등할 때 당사자보다 그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고 답을 대신 구해주기까지 합니다. 매 순간 자신을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하고 밀도 있는 방식으로 고민한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성취입니다.
앞에서 직장보다는 직업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p147에는 이른바 "덕업일치"에 대해 저자가 느낀 바가 서술됩니다. 여기서 "덕"은 물론 오타쿠에서 온 말이므로, 저 "사자성어"는 몰입하는 취미와 생업이 일치하는, 참으로 행복할 경지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 서술이 참 일품인데, 앞서 저자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을 강조했었죠. 그런데 참된 덕업일치 역시 자신이 "최애하는" 바를 직업으로 승화한 경지이니, 저자가 이 책에서 지금까지 강조하던 지향점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목에서 책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할 수 있겠네요.
능수능란, 자유자재. 어떤 사람이 설령 직장에서 "그 사람 성실하긴 해" 같은 평을 들어도, 일솜씨에 개성이나 탁월함이 없고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무난하다는 정도라면, 요즘 같은 시대에 환영받기가 어려울 겁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에 맞게 능력과 적성을 계발한 이라면, 설령 천재 비슷한 존재가 못 되더라도 자신의 필드에서 그야말로 자유자재, 능수능란의 경지로 일을 해 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혹 급여가 적어도, 매 순간이 참된 자아실현의 희열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진정으로 행복한 게 뭔지를 알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반면 시기와 질투, 열등감에 시달리고 늦은 나이까지 자아상이 확립되지 못한 채 미숙한 단계에 머문 사람은 그 곁에만 가도 실의와 불길함, 좌절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이죠.
"질문하지 않으면 답을 얻을 수 없다.(p208)" 진지충은 결코 욕이 아닙니다. 매 순간 진지하게 살지 않으면 결국 정신이 딴 데 출장간 좀비가 되기 마련이죠. 진지하다는 건 자신에게 주어진 매 순간을, 주어진 과제를 푸느라 몰두한다는 걸 뜻합니다. 이렇게 생을 충실히 산 사람이라야, 미리 숙제를 마치고 자신만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초등학생처럼 삶의 여유를 더 알차게 향유합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바로 파악하고, 그런 나 자신을 참되게 사랑해 본 사람이라야 공동체 안에서 제 자리도 찾고, 타인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