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서가명강 시리즈 16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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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는 한여름에 청 제국의 황제가 무더위를 피하던 휴양지였습니다. 조선은 당시 조공국이었기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파견했는데, 경우에 따라 여기서 청의 황제를 회견하곤 했습니다. 이 열하의 풍습을 잘 기록한 기행문이 박지원의 <열하일기>이며 교과서에도 그 일부가 실릴 만큼 고전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기록이니 어느 정도는 오류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이런 고전에조차 사실과 다른 점이 기술되어 있다는 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지금 이 책은 바로 그 오류을 여럿 지적하며, 동시에 과연 열하에 황제를 배알하러 간 우리 사신들의 참된 목적과 그 실상이 무엇인지 알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열하일기> 등 배경 지식이 있으면 더 재미있겠으나, 그렇지 않아도 읽어 내려가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건륭제는 참 오만한 황제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여러 차례 원정에 성공한 십전 노인"으로 불러 달라고 했죠. 이 책에도 티벳의 종교 지도자를 접견하는 데 열하의 별장을 할애하여 마치 상대를 엄청 존중하는 듯 생색을 내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자신을 돋보이려 한 의도였다는 점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건륭제 살아 생전에 청 제국은 최상의 완성된 국력을 자랑했으나, 그가 죽고 화신마저 숙청된 후에는 이 거대한 체제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 빼어난 군주의 "개인기"에만 의존한 시스템은 사실 속으로 곪기 쉽고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점을 이 사례가 보여 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은 본디 불교를 뒤집어 엎고 건국한 나라였습니다. 고려 말 신진 사대부는 집요하리만큼 불교를 공격했고, 건국 이후 수백 년에 걸쳐 불교가 민중에 대해 행사하던 권위를 빼앗았습니다. 이런 조선의 사대부가, 가뜩이나 오랑캐로 경원하던 청나라에 사대하러 가서 그 특유의 봉불 행사에까지 참석했다면, 개인으로서 치욕이고 귀환한 후 본분을 게을리하고 명예를 더럽혔다는 봉박을 얼마나 당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청나라는 우리가 안으로 반청 정책을 취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공연히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자충수를 두기를 신중히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외번과 외국을 보아 성세를 자랑하다" 사실 명 제국은 간만에 등장한 강력한 통일 제국이었으며 강역도 최고 넓이였고 무력도 막강했고 시스템도 세심히 정비되었습니다. 청 역시 산햐관에서 뜻하지 않게 행운을 얻지 못했더라면 결코 입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던 명도 북쪽에서 끊임 없이 도발하는 몽골 족, 오이라트 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이러던 게, 청대에 들어서는 내몽골 전체를 모조히 수하에 넣고(물론 극진히 우대를 했습니다만)오이라트의 일족인 준가르까지 복속하여 최고의 국세를 자랑했던 것입니다. 청나라 황제는 그저 여름 휴가를 열하에서 시원하게 보내려 그리 행차를 한 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 지금 자신들이 어느 정도 전성기를 누리는지 똑똑히 확인시켜 행여 다른 마음(과거 자신들이 명나라에 대해 그러했듯)을 먹지 못하게 만들려 든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도를 아마도 알았을 법한 박지원 역시 적정선에서 기록을 꾸려 조선의 미래를 걱정했겠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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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시라이 사토시 지음,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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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은 고전입니다. 기계(산업 자본)의 사용으로부터는 잉여 가치가 창출되지 않고, 오로지 인간에 대한 착취분에서 이게 가능하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은 적어도 19세기 자본가의 생리를 완전히 꿰뚫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세기 아니라 현재에 이르러서도, 일부 비뚤어진 기업가는 이런 마인드로 사람(반드시 직원만 가리키는 게 아니죠)을 대하고 기업을 운영한다고 해도 별반 틀리지 않습니다. 노동자는 우리 나라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듯 언제나 자신의 권리를 찾고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 수십 년 전 어느 명석한 사상가의 인사이트를 한 번 정도는 면밀히 살필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자본>은 현대에 들어서도 과연 유효한 이론이 될 수 있을까요? 책에서는 인공지능의 예를 듭니다. 확실히 자본의 생리가 변하지 않았다는 좋은 예를 들기에 이것만한 실증도 없지 싶습니다. 얼마 전 어느 서울 시장 후보가 통번역대학원 졸업자에게 장래 진로로 번역 앱 설계 참여를 권했는데, 사실 이건 큰 실수입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고 해도 말입니다. 왜냐 하니, 이런 시스템은 결국 해당 분야 전공자의 (가뜩이나 좁은) 취업 진로를 더욱 좁히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런 앱에 참여하는 건, 해당 졸업자들로서는 "당장 수입을 올리기 위해 치어까지 모조리 그물로 쓸어담으라"는 식의,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처방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포디즘은 테일러 방식과 결합하여 현대 자본주의의 생산성을 극대화한 아주 좋은 예였습니다. 포드 회장은 노동자들이 자사가 생산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임금을 올려 주기까지 했는데, 사실 이는 조삼모사 정책과 본질에 있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아무튼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이런 방식을 채택했는데 결국은 빈부의 차이가 더 늘어나고 노동자는 일종의 "카-푸어" 상태에서 더 벗어나지 못하고 구조적으로 힘들어진다는 게 이 책의 결론입니다.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겠으나 적어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자본가 측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의 지나친 약탈적 행태를 막기 위해서도 이런 지식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해킹을 당해서 피해자가 속출하는데도 자신들은 알지 못하는 기술적 문제라며 발뺌으로 일관한다? 책에는 일본 기업 세븐일레븐이 2019년에 실제로 보인 한심한 행태에 대해 설명합니다. 과거에는 그래도 기계와 시스템에 대해 최고 경영자가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AI가 완전히 일반화하면 이제 소비자는 두 눈 뜨고 피해를 봐도 어디 가서 누구한테 따져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갈 수 있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어떤 앱을 이용할 때, 오로지 이매일로만 클레임을 걸 수 있고, 목소리를 가진 "사람 담장자"와 직접 소통할 수 없을 때 큰 불편을 느꼈습니다. AI는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찾아내기가 무척 힘들며, 책임 소재의 공방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사회 문제를 유발할 수 있고, 이 문제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예리하게 분석한 점이 이 책의 탁월한 강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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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말 공부
임영주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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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도 말을 잘하고 싶어합니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정확한 발성, 그윽한 음색, 청중의 관심을 잡아채는 호소력, ...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런 능력을 두루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을 잘한다는 것"는 이런 것만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황석영 선생님의 <삼포 가는 길>이라든가, 박경리의 <토지> 같은 명작 소설을 재미있게 정확히 읽고 이해하는 것도 크게 보아 "말 잘 하기"의 준비 과정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나아가, "말 잘하기"의 궁극적 경지는 친구들과 잘 소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 의사와 감정을 다른 친구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친구의 뜻을 바람직하게 이해하여 쓸데없는 싸움을 줄이거나 피하고, 좋은 우정을 가꿔 나간다면 이게 진정 "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예전 나이 많은 분들은 "개성은 개 같은 성질을 가리킨다"며 허무개그를 즐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는 단순한 넌센스퀴즈가 아니라, 종래의 획일적인 사회에서 개인 개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자 기성 세대층에서 이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생기며 그 부산물로 풍자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개성이 없는 사회는 획일주의 사회이며,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타락할 염려마저 있습니다. 인간 문명은 명백히 자유주의, 개인주의로 방향성을 잡았으며 그 반대의 지표는 무슨 미사여구로 위장하든 간에 반인륜, 반인도주의 사회의 징후입니다.

그러나 대인관계에서 정제되지 않은 나만의 개성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그것 역시 큰 문제입니다. 요즘 "쎈캐"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이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미를 위해 과장한 면이 큽니다. 현실에서 이처럼 "쎈캐" 놀이에 몰입하다 친구와 싸우거나 학폭 문제에 휘말린다면 본인만 손해이며, 피해를 혹 보게 된 친구에게는 얼마나 또 미안한 일입니까. 그래서 이 책에서는, 욕을 하지 말 것, 친구를 수준 차별하며 가리고 사귀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나쁜 버릇을 정녕 고치지 못하고 남 위에 군림하거나 강한 척하는 친구는 "근주자적"이라며 조심할 것도 가르칩니다. 사실 쎈 게 아니라 쎈척하는 캐릭터들은 약자에게만 강할 뿐, 강자 앞에서는 한도 끝도 없이 비굴한 게 보통입니다.

책에는 정말 좋은 말이 나옵니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초감정 대화법을 만들자(p71)" 아이들한테는 약간 어려운 말일 수도 있지만, 내용은 매우 쉽습니다(실천이 어려울 뿐). 즉, 내 감정을 내가 먼저 정확히 읽자는 겁니다. 내 감정이 정리가 안 되었는데 내 감정(과 의사)를 어떻게 남에게 전달하겠습니까. 또, 내 감정이 정확히 나 자신에게 파악되면, 이를 출발점으로 상대의 감정 또한 나 자신이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나를 알고 남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게 <손자>에 나오는 가르침인데, 비단 "싸움"이 아니라 "교유, 사귐, 친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감정)를 알고 남을 알면 대체 싸울 일이 없고, 마음이 맞는 친구와는 기분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친구들 사이에도 인기 최고가 됩니다.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불리한 상황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p92)." ㅎㅎ 아이들에게는 솔직히 좀 어렵지 않나 싶은 말씀인데, 그래도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고, 불리한 상황이 있으면 아 내 잘못도 있으니까 받아들여야겠다는 식의 수동적이고 자포자기 반응이 아니라 가능하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영리한 의도를 품는 게 보통입니다. 영리해져야지 하고 마음만 먹으면 아무 소용 없고 어떻게 해야 영리한 결과가 생길 수 있는지를 어른들이 (이런 걸 관심 있어하는 애들에게) 가르쳐야 하겠지요. 책에서 내리는 결론은 "(바른, 적절한) 태도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입니다. "말투도 볼멘소리에다 흥분해서 말하니 말의 앞뒤도 엉망진창이 되기 쉽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모든 것을 친구와 공유해야 할까?" 아이들 중에는 이기적인 애들도 있지만, 반대로 또래 눈치를 너무 보거나, 필요 이상으로 애들 사이의 도덕과 기준에 맞추려 드는 애들도 있습니다. 힘이 없고 애들한테 휘둘려 다녀서 꼭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의리 때문에, 착해서 그러는 애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애들은 모든 걸 친구에게 오픈 안 하면 오히려 죄의식을 느낍니다. 누구라고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공개와 공유는 적정 선까지만 유지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괜히 나중에 불필요하고 예측 못하던 결과가 생기기 쉬우며, 오히려 친구 사이의 우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공유의 태도는 다른 친구에게 강요해도 안 됩니다. "너 그걸 나한테 말해 주지 않다니 참 이기적이다." 저자는 "이기적이다 어떻다 같은 말로 친구의 성격을 함부로 판단하는 자체"가 나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남의 성격을 함부로 판단하면, 남도 내게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그런 대접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까요? 내가 받아서 기분이 나쁠 것 같으면 나도 남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유지해 주는 것도 우정이다(p101)."

"이쁘게 말하면 행복 에너지를 부른다(p114)" "왜 전화를 안 받아?" "내가 몇 번이나 전화 했잖아?" 특히 엄마라든가 윗사람한테 이런 이쁘지 못한 말투는, 내 의사를 전달도 하지 못하고 혼만 나는, 원치 않던 결과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좀 억울한 상황이라 해도 "일단은 잘 듣는 능력"을 갖추는 게 "말 잘하는 능력"의 전제라고 합니다.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을 수 없습니다. 비꼬는 말, 기분 나쁜 말도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요즘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이라고 해도 사소한 자극이든 뭐든 바로 폭발하고 보지, 일단 참고 보는 식의 반응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참는다고 해도 그건 권력 관계가 그리 정해지다 보니 인내를 강요받는 거겠죠. 그러나 상대에게 굴종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성숙한 인격으로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고, 성숙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단호하게 "No"라고 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말끝을 정확히 맺으면 스마트해 보인다고 합니다. (p160) 우물우물 말을 삼키지 말고, 정확히 아웃풋 하라고 합니다. "당당하고 멋진 나"가 곧 "상대에게 존중받는 나"라고 합니다. 사실 좀 미숙한 아이들은 말을 얼버무리고 내가 힘든 걸 표시하면 상대가 나를 배려할 줄 압니다. 그러나 물론 그런 좋은 상대방도 있겠지만, 2차 관계 위주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 누가 부탁 같은 걸 할 때 내가 들어 주기 어려운 부탁은 오해의 여지 없이 "들어 줄 수 없다"고 딱부러지게 말해야 합니다. 상대가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을 범위 안에서 말입니다.

여튼 "싸가지 없고 짜증나는 말투"는 남한테 환영 받지 못합니다. 말은 최대한 이쁘게 해야 하고(p189), 남에게 오해 받을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고객을 상담하는 분들의 경우 친절하고 자신이 먼저 활기 있고 신 나 하는 어조로 말을 하면, 설령 짜증나는 일이 있어 항의를 하려 전화를 한 고객도 차마 폭언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는커녕 그럴 마음을 먹은 사람도 죄의식을 느끼죠. 반면 일이 힘들고 내가 왜 박봉에 이런 일을 하고 무시를 받냐며 피해의식에 쩐 사람은, 상대에게 안 나올 폭언도 스스로 자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일에 자신 있는 사람은 상대에게 존중을 스스로 만들게 자세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말이나 행동을 다듬고 외면도 잘 가꾸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큰 물의를 빚은 연예인도 단정하게 꾸미고 나와 포토라인 앞에 서니까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줄어들고 "뭔 일이 있나?"라며 동정을 갖게 하는 경향마저 있습니다. 잘 가꾼 외모가 이미 보는 사람한테 이미 예의를 갖춘다는 느낌을 주고 시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외모 문제가 아니라 예의 범절의 범주로 들어가는 겁니다.

말하기 전에 손이나 코나 어디를 매만지는 버릇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도 최근에 어떤 유튜브를 보는데 말하는 사람이 뭐 결정적인 말만 하면 꼭 코를 만지고 시작을 해서, 아 저 사람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또 시작하는구나, 혹은 저 사람은 저런 식으로 거짓말 예고를 하고 시작하는 건가 해서 참 불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에게 신뢰를 주지 않고 어떻게 소통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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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애착장애
오카다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메이트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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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 무엇에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다." 이 말은 예전에 고 이윤기 선생 저 <뮈토스> 중, 오이디푸스 신화를 다룬 부분에서 읽었습니다. 모든 불행은 무엇인가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합니다. 집착을 해서 그 결과로 무엇인가를 얻어내면 물론 좋을 텐데, 우리들 대부분은 그게 안 되니까 문제입니다. 매번 뭘 시도해서 원하는 결과를 손에 쥘 수는 없는 만큼, 집착을 우리 마음에서 덜어내는 게 우리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이겠습니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절박한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의욕도 없고 생에 대한 집착도 없으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 테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는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고, 혹 사랑한다 해도 방법이 전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그럼 왜 이들은 ("정상적인" 사람들과 달리) 자신에 대해 살아갈 가치도 없다 여기고, 완벽한 성공에 이르지 못하면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을까요? 여기서 물론 가난하고 버림 받은 처지의 사람들도 이 범주에 해당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괜찮다 싶은 성취를 해 낸 사람들도 이 범주에 들어가기도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완벽이 아니면 모두 쓰레기가 되는 겁니다. 왜 이렇게들 생각하는가? 그건, 저자에 따르면, "어렸을 때 그들을 소중히 돌봐 줬어야 했을 그 누군가가 그들을 버렸거나 방치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혹은 "예뻐하는 척만 하고 진심으로 애정을 주지 않아서"라고도 합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어쩔 수 없다고나 하지만, 저 중 후자의 경우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고 또 그랬어야 마땅했는데도 그렇지 못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예뻐하는 척만 하고 진심으로 애정을 주지 않아서"라! 아이들은 확실히 영리합니다. 애들도 기대했던 누구한테 가서 "왜 척만 하세요?"라고 따지지는 않습니다. 눈치껏 만족하는 척하고 뒤로 물러나죠. 그런데 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으며, 이 상처를 어른이 되어서도, 혹은 늙어 죽을 때까지 간직한다는 겁니다. 어떤 자는 아주 효녀인 척을 합니다. 누구 보라는 듯이 모친에게 잘합니다. 하지만 그런 과잉 이상 행동의 심리에는, 그 모친이 어려서 자신에게 배풀어주지 않은 애정을, "당신이 내게 이렇게 했어야 마땅했다"며 일종의 역 복수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연"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효도가 합당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좌절감은 결국 다른 관계에까지 전이되고 모든 소통이 파탄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이상심리가 경우에 따라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표현되기도 합니다. 알고 보면 참 불쌍한 사람이죠. 뭐 모르고 봐도 불쌍하긴 합니다만.

우울증은 대개 중장년층이 겪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도 않으며, 놀랍게도 우울증을 앓는 "아동"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책에는 미국 대공황 시기(1920~30년대)에 예전의 씀씀이를 고치지 못하고, 가난하게 된 중에도 사치를 일삼는 아내에 화를 내며 다른 여성과 외도를 한 그 부친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소녀"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신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이 정도 핀치에 몰리면 당연히 우울증 아니라 뭐 어떤 더 심한 정신질환이라도, 더군다나 상황에 적응할 능력이 아직은 부족한 어린이에게 찾아올 만합니다.

이런 상황까지 가면 조울증이라 흔히 부르는 양극성 장애도 겪게 된다고 하는데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실제 제 주변에도 최근에 그런 어려움을 겪게 된 아이가 하나 있는데 부모님들은 "가뜩이나 머리가 뛰어난 애가 정서가 예민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얘 같은 경우는 곁에 지극정성으로 참된 애정을 쏟는 부모님이 있으니까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죠. 머지않아 회복되리라 믿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붉은털 원숭이 대리모 실험"을 통해 "특별한 존재에 대한 집착"이 원숭이의 정서적 안정에 엄청난 기여를 한다는 점을 알아내었고, 영국의 정신과 의사 에드워드 볼비는 이런 정서적 반응에 대해 "애착(attachment)"라 명명했다고 합니다. 하긴 이런 예는 우리가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을 봐도 나옵니다. 엄마 없는 원숭이가 (엉뚱하게도) 돼지에게 집착한다든지 하는 장면 같은 게 그렇죠.

예전 중국 성어에 "단장지통"이란 게 있는데 말 그대로 새끼와 헤어진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졌더라는 고사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경우는 자식이 아니라 부모이긴 합니다만. 또 인도에서도 어려서 어미가 사냥꾼들에게 죽는 걸 본 아기코끼리가 끝내 미쳐 버린 채 인간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참 놀랍게도, 포유류는 이처럼 어린 시절에 그 어미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고 성장하는 게 매우 중요한가 봅니다. 문명 생활을 하는 사람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 놀라우며, 사정이 이렇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 어떤 "의지"만으로 극복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 자계서의 선구자 이시형 선생도 그의 책들에서 "옥시토신 분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 책에도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호르몬"으로 그 중요성이 설명됩니다. 이게 잘 분비되지 않으면 애가 ADHD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한 십 년 전에 강남 엄마들 사이에 항 ADHD약을 애들한테 먹이는 게 매우 크게 유행했습니다. 애들한테 스트레스를 안 주고 애정만 쏟으면 약을 먹일 필요가 없을 건데, 더 웃기는 건 이걸 애한테 먹어야 강남 엄마만큼 잘하는 엄마가 되는 줄 알고 너도나도 병원에서 처방을 받더라는 겁니다. 이 정도면 아이를 위하는 게 아니라, 소속되고 싶은 집단의 유행을 무작정 따라하는 허영심이란 병에 엄마 자신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엄마가 이렇게 아프니 애가 없던 병도 생길 밖에요. p211에는 "약 투여를 중단하면 곧바로 요요 현상이 나타나며, 그나마 사춘기 이후에는 항ADHD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말도 나옵니다. 제 개인적 생각에는 이런 건 뭐 거의 아무 의미도 없는 치료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어릴 적 불우한 환경 속에서 애착이 불안정하게 형성되었다면 비만에 걸릴 확률이 무척 크다(p98)." 물론 비만하다고 다 불우한 환경이었던 건 아니고, 그 반대의 케이스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중에서도 특히 교감신경계), 그리고 반대 기능(길항 작용)을 하는 HPA축(상대적으로 느리게 반응)이 큰 기능을 한다고 지금까지 여겨왔는데, 비교적 최근에는 옥시토신계(OSS)가 또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로 규명된 바 있다고 합니다(p100). 특히 이것은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저자는 "항생제 남용 풍조 때문에 오히려 원인 불명의 컨디션 난조를 겪는 이들이 많아진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건, 어려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이 옥시토신계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아이들이 조기에 사망할 확률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이 이야기는 책 p115 이하, 또 p138 이하에 아주 자세히 나오는데 책 후반부는 거의 이 토픽으로 꾸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이 임상례는 흥미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섭기도 합니다. 어려서 사랑을 못 받은 사람은 질병에도 약하고 스트레스에도 쉽게 노출된다!

아이들한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솟구칠 수도 있지만, 또 하나 유념해야 할 게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짜 사랑을 감별하는 데 귀신 같다는 사실입니다. 가짜 사랑으로 부모의 죄책감만 간신히 면할 생각이라면 그런 애정공세는 안 하느니만도 못합니다. "사랑받지 못한 작은 아기는 자신에 대해 배우기 전에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부터 먼저 배운다(p166)." 특히 주변에 대한 정리정돈을 잘 못 한다면 발달장애보다는 애착장애를 먼저 의심하라고 저자는 말합니다(p196)."

p220 이하에는 아이를 애착장애로 만드는 부모의 유형으로 1) 학대 2) 방임 3) 심리적 지배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1)과 2)는 뉴스에나 간혹 나올 뿐 우리 주변에는 잘 찾아보기 힘들겠지만, 3)이 문제입니다. 3)은 특히 교육 충분히 받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부모들, "알 만한 사람들"이 이런다는 게 문제죠. 남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부터 이런 (겉으로는 흠 잡을 데 없으면서) 사실 최악의 부모가 되는 건 아닌지 깊이 반성할 일입니다. 아이를 애착장애인으로 키우는 게 가장 몹쓸 짓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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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빙혈 2021-05-02 06:17   좋아요 1 | URL
아, 제가 본문에 오타가 났엇군요... ㅎㅎ

개인적으로 겪은 바라 일반화하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분명 ˝사실˝입니다.

2021-05-07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빙혈 2021-05-11 11:53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저도 기억이 납니다^^
 
나의 식사에는 감정이 있습니다 - 내 삶을 옥죄는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심리 수업
박지현 지음 / 에디토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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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갖가지 장애가 다 있고, 우리는 그 중 몇을, 그 정도가 심하건 약하건 간에, 또 이를 의식을 하건 못 하건 간에, 몸과 마음에 계속 지니고 삽니다. 특히 요즘은 여성분들이 마른 몸에 대한 강박 때문에 식이장애로 고생한다는데, 사실 한국처럼 여성들이 몸매 관리를 열심히, 속된 말로 "빡세게", 이어가는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어떤 드라마에는 "한국에서는 살찐 사람이 사람 대접 못 받는다"며 개탄하는 대사도 나오던데, 좀 과장이 섞이기는 했으나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싶습니다. 물론 이는 외모지상주의와 함께 대단히 우려스러운 풍조일 뿐입니다. 살은 그저 건강을 유지할 정도로만 빼는 게 좋겠죠.

저자는 이런 식이 장애를 가진 분들이 과거의 이런저런 아픈 경험으로부터 여러 트라우마를 가졌다고 진단합니다. 즉 이런 분들은 감정을 다친 상태이며, 이런 마음의 상처를 미리 낫우지 않고는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해 나갈 수 없다는 거죠. 다이어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을 건강하게 지켜 나가려면 먼저 마음가짐이 바로서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식단이 마련되었고, 또 이를 칼 같이 지켜 나간다고 해도,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 이를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다이어트를 설령 기계적으로 이어가도, 몸은 비록 날씬하게 유지될망정 마음이 지옥인 채 억지로 음식을 절제할 뿐이라면,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도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감정의 상처가 먼저 나으면, 폭식하려는(혹은 반대로 음식을 거부하려는) 충동 자체가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멋진 몸도 유지될 것입니다. 너무 뚱뚱하지도 너무 마르지도 않은 채 말이죠.

다이어트 문제로 고통을 겪은 이들 중 상당수는 대인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나의 노력 여하가 미치지 않는, 타인의 감정과 관련되어 있기에(p25)" 이 문제가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타인의 애정이란 참 얄팍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얄팍한 것에 휘둘리다가 끝내 다이어트 감옥에 스스로 들어갑니다.(p28)" 참 맞는 말입니다. 살 쪘을 때는 다들 무관심하다가, 살이 좀 빠지고 미모가 살아나니까 다들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 뭐 이런 경험을 한번 하면 절대 예전으로 못 돌아가고, 음식을 먹고 그 칼로리가 내 몸에 머문다는 상상만으로도 공포에 떨게 됩니다. 날씬한 체형 유지로 일단 안도하더라도, 이렇게 살아서는 내 가치 내 행복이 전적으로 타인의 반응에 의해 좌우되니 결코 올바른 상태가 못 됩니다.

그래서, 저자분과 같은 전문상담심리사를 찾아오는(=내담하는) 이들은 다이어트에 성공한 적 없는 경우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한 적이 있는 분들(p33)이라는 겁니다. 그냥 자포자기 상태로 지내는 이들은 (혹 다른 도움이 필요할 수는 있어도) 이런 식이장애를 겪지는 않겠지요. 다이어트에 일단 성공했다가 요요를 겪는다거나, 지금 성공한 상태라고 해도 도무지 정신적 안정이 안 찾아지는 분들이 더 큰 문제다, 뭐 이런 뜻인 듯합니다.

사람에게는 유전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지방의 양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두고 "지방량의 세트 포인트"라고 부른다는데(p35), 이걸 무시하고 억지로 모델이나 가수처럼 변하려 하면 몸이고 마음이고 반드시 탈이 날 수밖에 없죠. 이런 분들 중에는 "씹고 뱉기(chewing and spitting)"라는 악습관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도 많다고 합니다(p40). 고대 로마에서 귀족들이 양껏 먹은 후 토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하나 이는 식도락이 목적이므로 현대의 식이 장애로 고생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처지가 나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식이장애로 고생하는 이들 중엔 먹방을 즐겨 보는 이들도 많은데, 진행자 중 상당수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타입"이 또 많다는군요. 그러면 시청자는 "먹고 싶어서 먹고, 그래서 살이 찌는, 저들과는 다른 나"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게 되며, 이런 경험이 지속되면 또 트라우마가 생겨 식이장애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 하게 된다는 겁니다. 먹방을 안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먹방을 보는 동기는 대개 "안 먹으면서 대리만족을 하기 위함"이라니, "먹방을 보면서 나도 함께 먹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한 게 큰 착각인 줄 새삼 알게 되었네요.

결국은 내 뇌가 안정을 찾아야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놓인다고 합니다. 이걸 위해서는 "내가 가장 편안해하는 사람과 포만감 있는 식사를 함께 하기"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시도해 보라고 합니다. 또 체중은 고정된 수치가 아니라 "범주"로 인식할 필요도 있다고 합니다. "나를 믿으세요. 제일 정확한 기준은 내 몸의 감각입니다(p72)." 저자의 말입니다.

폭싱을 하는 사람은 왜 그렇게 하는가? 저자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표현 못 하는 사람, 특히 그런 여성(p83)"에게서 이런 어려움이 자주 나타난다고 합니다. "신체적 배고픔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부정적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건 결코 좋은 식사가 아니(같은 페이지) "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가짜 배고픔과 진짜 배고픔을 잘 구별해야 하듯, 잘못된 죄책감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게, 식사를 대하는 올바른 감정을 세팅하는 첫걸음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p133). 죄책감은 대개 3~5세 사이에 발달하는데, 보통은 자신의 죄책감에 대해 가장 숭고하고 정직한 영역이라 여기므로, 적어도 스스로가 죄책감이 드는 행위라면 마땅히 자제해야 한다고들 생각하게 되죠. 문제는 이 중 일부 감정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는 데 있습니다. 진짜 죄책감이라면 나의 슈퍼에고로서 존중해야겠으나 그렇지 않은 가짜라면 내 몸과 마음을 망쳐가면서까지 복종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남을 챙기는 게 나 자신을 챙기는 것보다 더 쉽다고 합니다. 이는 물론 대단히 숭고한 일임에 틀림 없죠. 그런데 이런 분들 중 일부는 "가정 내에서 충족되지 못한 사랑과 인정의 욕구를 대신 채워주도록 (남을) 돌보는 자아"가 형성된 결과(p161)라고 합니다. "나는 못 돌보고 남만 돌보는 구멍난 가슴을 한 채 웃으며 살아가는(같은 페이지)" 삶이 되어서는, 비록 남을 돌보는 일이 아무리 보람 있어도 어떤 시점에서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겠죠.

"거식증과 폭식증은 결국 당사자가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p198)"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생존을 위한 활력을 얻는 원천, 즉 생존자원(p216)이 필요한데 이 생존자원 중에는 외적(혹은 내적) 긍정자원이라는 게 있다는군요. 이런 자원들을 주변에 많이 확보해 두는 게, 내 감정의 치유와 음식에 대한 태도를 개선하는 데 유용하다고 합니다.

"생각이 아닌, 감정에 집중하라(p231)." 많은 이들에게 직접 목표는 날씬한 몸을 위해 음식을 자제하는 것이며 이것이 동시에 최종 목표가 되는 게 흔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라고 하며, 그 중에서도 이런저런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을 마음에 쌓아 두지 말고 생산적으로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다이어트나 식이장애 외에 우리가 고생하는 여러 다른 문제도 결국 해결책의 시작이 이 지점 아닐지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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