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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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엇이 진실인가, 애초에 진실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이미 지난 시기에 이 진실이라는 가치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며, 아예 무엇인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도의 진지함마저 부정해 버리고 모든 것을 무의미로 무장시킨 사조가 포스트모더니즘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반동, 극복, 지양을 표명한 게 뉴 리얼리즘인데 그 거두 중 한 명이 1980년생 마르쿠스 가브리엘이며 그의 입장 여럿을 잘 정리하여 마치 오늘의 시국을 특별히 진단하는 듯 오노 가즈모토 씨가 편집하여 낸 책이 이 저서입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기조와 사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이들 중 하나가 오노 선생이므로 인터뷰의 기록인데도 저자 본인이 직접 책의 체제를 기획하고 저술한 듯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되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본문 중에 독일인인 니체의 용어 "위버멘쉬" 같은 것도 "슈퍼맨, 오버맨" 등으로 표현됩니다. 단 인터뷰를 바탕으로 삼은 책이지만 인터뷰 형식은 아니고 가브리엘 박사의 단일한 내러티브로 진행되는 듯한 양상입니다.

책에 실린 목소리 자체는 전부 마르쿠스 가브리엘 본인의 것입니다. 그는 우선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을 비판하는데, "기본적으로 모든 내용이 잘못되었다(p82)"고까지 말합니다. 그 가장 큰 논거는, 자본주의 vs 공산주의 라는 전쟁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으며, 마치 프로레슬링의 태그매치처럼 지금은 전쟁의 바턴을 중국이 이어받아 계속 수행 중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전쟁이건 역사건 아직 "종언, 종말"을 맞지 않았다는 거죠. "전선이 달라졌을 뿐 냉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p83)."

사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최근의 저서 <존중받지 못하는...>( https://blog.naver.com/gloria045/221955039953 )에서 많은 입장을 수정했습니다. 저자 가브리엘 마르쿠스는 그 점까지 "까고" 있습니다. 후쿠야마 교수가 "공산주의의 입장을 받아들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변절자"라고 저자는 맹비판합니다. "하나의 스토리에서 전혀 다른 스토리로 옮겨갔"으며, "(헤겔적 의미에서) 어떤 프로그램에 따르는 무의식의 과정"으로 역사를 보는 시선 자체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니체는 초인을 이야기했고, 또 최후의 인간을 논했는데 (전자가 당연히 아니라) 후자가 바로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가브리엘 박사는 말합니다.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죽음은 그저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갖가지 방법으로 이를 회피하려는 발버둥 정도로 정의되는데, 이 역시 선배 격인 니체로부터 영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두는 니힐리즘에 빠져 있고, 참된 지향을 거부한 채 연명하듯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를 극복하자는 게 가브리엘 박사의 진영인 신실재론의 대전제입니다.

삶과 세계에 의미를 추구하고, 어느 정도는 필연적으로, 이 의미는 "도덕"으로 옮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길 마치 수학을 가르치듯 하자고 주장합니다. 어려서 수학을 안 배우면 나이 들어 수학적 소양을 한창 발휘해야 할 때에도 그의 실력은 비참할 수밖에 없듯, 도덕 역시 마찬가지로서 도덕적 소양이 필요한 시점에 무기력한 사회 성원들이 어려서부터의 교육 결핍으로 전혀 힘을 못 쓰고 사악한 흐름에 쓸려가는 사태를 막자고 주장합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고 전선만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저자이니, 혹시 소련의 소명을 이어받은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기라도 할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단호히 반대하는 건,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는 그 모든 책동과 의지입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무엇인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게 비민주적 사고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 관점에서 트럼피즘 같은 것은 반민주의 대표 징후이겠습니다. 또 스타벅스, 맥도널드 등이 있으니 우리는 독재국가가 아니라고 아무도 안 속는 선전을 벌이는 중국 역시 반민주의 표상이며, 민주주의의 특징은 "결코 그런 거짓 선전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주 명쾌하고 후련합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따르는 상식적인 독자들에게는 말입니다.

앞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가루가 되도록 깔 때에도 가브리엘 박사는 "문화 상대주의"라는 프레임도 들고 나와 그를 비판했습니다. 대개 한국의 중등 교과 과정에서는 어느 한 문화가 절대적 선험적 우월성을 가질 수 없다는 맥락에서 학생들에게 문화 상대주의를 가르치며, 우습지만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도 그의 작품 <알렉산더>에서 이 가치를 (어설프게) 설파한 적 있습니다.

p64에서 저자는 "현대인 대부분은 문화상대주의(의 가치)를 믿는다"고도 합니다. 정작 상대주의는 가치를 부정하는 경향에 가깝다는 걸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입니다. p99 이하에서 저자는 "(무기력할 뿐 아니라 증오와 독선을 결과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상대성에서 다원성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이해하는 듯합니다. 상대성과 다원성의 차이는 "도덕의 보편성, 상식(common sense)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않고에 있다고 이해되네요.

자본주의에는 어떤 원천적인 사악함이 내재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그럼 "노동의 분담"을 포기하고 공산주의로 이행해야 하나? 이분이 그런 결론에 이를 리가 없고, 참치 요리를 먹으려면 일단 바다에 나가 참치를 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듯, 노동의 분담 포기가 불가능하다는 명백한 사실을 제발 인정하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의 입장 중 중요 사항 하나는, 반민주 요소의 핵심 공통점이 바로 "명백한 팩트를 부정하고 든다"는 겁니다. 공산주의나 파쇼, 혹은 인종차별 모두 말이죠.

그는 사회적 연대를 "상호 면책"이라는 개념으로 바꿔, 지나치게 가혹한 책임을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부담시키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수정하자고 제안합니다. 이걸 가리켜 그는 "co-immunism(공면역주의)"으로 명명하는데 물론 communism에 대한 패러디입니다. 다른 말로 그는 이를 "윤리자본주의"라 부릅니다.

확실히 1980년대 말의 후쿠야마 교수는 "상대적 관점에서 역사(의 의미)의 종말"을 논한 게 맞으며, 그가 이 이론을 들고 나왔을 때 세계는 그 칼날 같은 설득력과 바로 눈 앞에서 보고 있는 현실의 엄연한 흐름 앞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의미를 좋아하는 인류는 그리 쉽게 오랜 습관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좋든 싫든 간에 이는 21세기의 1/5이 지난 지금 이미 엄연한 현실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지금처럼 세상이 온통 인종차별주의로 물든 적이 없었다(p75)." 의미 찾기 좋아하는 인간의 손에서 강제로 의미를 뺏으려 든 게, 1) 이것도 저것도 모두 옳거나 모두 틀렸다는 상대주의, 2) 옳고 그르고를 가리려 드는 자체가 그르며 의미 자체가 애초에 없다던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사조 아닌 사조였습니다. p145에서 저자는 "새로운 거대 이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거대 이론 안에 모두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건전한 상식을 채워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 바탕에는 "상대성 아닌 다원성"이 작동해야 하며 이것이 인류 최후의 가치인 민주주의 작동을 담보한다는 거죠. 참 맞는 말씀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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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리 dele 2
혼다 다카요시 지음, 박정임 옮김 / 살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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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권에는 모두 세 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지막 에피소드가 분량이 좀 길며 읽어 보면 아 그럴 이유가 있었구나 하게 됩니다. 왠지 사연이 여기서 다 정리가 되는 느낌인데, 명탐정 코난이 아직도 검은 조직에 의해 아이의 몸이 된 채 머물고 20년 동안이나 사골을 우리듯, 이 독특한 이야기도 좀 계속 속편이 나와서 독자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탐정이나 범인이 아니라 일종의 디지털 장의사들이, 한 사람은 두뇌 한 사람은 액션으로 역할을 나눠 그 나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으니 말입니다.

1권 독후감에서도 말했지만 주인공들의 역할이란 아주 제한되어 있습니다. 의뢰인이 지목한 파일을 삭제하고, 그 내용은 삭제자인 자신들도 보면 안 되며, 나머지는 경찰이 해결하든 뭘 하든 자신들은 손을 떼고 그걸로 끝입니다. 그런데도 보면, 케이시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불법에 협조하거나 기타 합당치 못한 결과를 남기는 걸 아주 싫어하며, 사후 합리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이러이러하기에 나머지는 우리가 손 안 댄다"며 아주 깔끔하게 일을 처리합니다. 하지만 이런 업종이 실제 존재한다면 그렇게 모든 건이 말끔하게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첫째 사연 <언체인드 멜로디>(이것도 미국의 스탠다드 넘버 제목이죠)에는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데, 외모 때문에 좋은 역할을 동생에게 다 맡긴 어느 비운의 작곡가, 뮤지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도 유타로는 또 헛다리를 짚고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ㅎㅎ 몰고 가는데 뻔히 사정을 알지만 독자는 그의 시나리오가 너무 그럴싸하게 들려서 나중에 뒤집어질 줄 알고도 일단 속아넘어가게 되네요.

사실 자칫하면 자신이 큰 누명을 쓸 뻔했으나.... 보다 고상하고 인간적인 동기 때문에 이를 감수하고, 또 한 사람은 역시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배려하고 사랑했기에 그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마는데... 역시 이 시리즈에는 좀 부담스러울 만큼 고상한 인격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다못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도 구제불능의 악당들이 전면이 많이 나서는데, 이 작품에는 의외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순정파들이, 억울하게 악의 가면을 쓰고 많이들 등장합니다. 여튼 읽기에 흐뭇해서 좋았습니다.

<유령 소녀들>. 제목에서도 나오듯 가짜 삶을 사는 젊은 여성들 이야기인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더 어린 나이에 인생의 쓰디쓴 진실을 알게 되어 보는 입장에서 더 안타깝습니다. 이 에피소드에는 유타로가 비교적 큰 액션을 치르는 과정이 나오는데 미국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케이시는 아주 유능한 프로그래머이며 세상사에 밝고 나이에 비해 인생 관록이 두텁게 묻어나는 편이어서 사소한 단서로도 많은 걸 알아내는 게 대단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일단 젠트리피케이션 이슈가 살짝 나오는데 확실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또 SNS 때문에 삶 자체가 이상해진, 가짜의 모습을 웹상에 드러내고 이에서 벗어날 줄 모르며, 어쩌면 가짜인지 뻔히 알면서도 이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열광하는 희한한 군상도 나옵니다. 얼마 전 일어난 모녀 살인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소셜 미디어가 처음 생길 때에는 이런 기이한 부작용을 아마 아무도 예상 못 했을 것입니다. 어린 소녀가 그 모든 걸 알면서도(자신이 정상이 아님) 나쁜 환경 때문에 쿨한 척 적응해 가는 과정이 안타까웠습니다. 저 1권에 나오던 <스토커 블루스>에서 여동생 복슬이가 잠시 겹치기도 했고요.

마지막 이야기 <그림자 추적>은 여태 명확히 드러나지 않던 유타로의 과거, 그리고 케이시에 얽힌 사연까지 다 정리되는 내용이라 독자에겐 좀 충격이며 분량도 그래서 좀 깁니다. 일단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신약 개발로 떼돈을 벌려는 이들이 많은 건 공통이며 한국의 코스닥에서 왜 그렇게 제약바이오 업종에 거품이 많이 끼는지도 이 에피소드를 통해 내막 그 일단이 짐작이 갈 만큼입니다.

유타로는 이 에피소드에서 그의 실력을 마음껏 드러냅니다. 여태 그는 전화를 통해, 혹은 직접 찾아가서 다른 사람인 척 능청을 떨며 의뢰인의 사망 여부를 확인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어떤 정보를 캐는 게 장기인데, 이 사연 속에서 그의 매력이 최대한 다 드러나는 게 특징이더군요. 특히 아마다 사에 찾아가서 구사카베를 구워삶은 후 데이터를 빼내는데 뜻하지 않게 어떤 여직원 때문에 방해 받는 장면은 잘 만들어진 미국 오락물을 보는 듯 흥미진진했고 서스펜스 만점이었습니다.

인물 묘사도 매우 구체적이어서 p179의 "미인이었지만 표정이 부족했다"라든가, 고인의 아들 이치로의 미숙하고 유치한 성격(이 점을 구사카베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이치로를 사칭하는 유타로를 두고 "생각보다 듬직한데?" 같은 말을 하죠) 묘사 같은 게 일품이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디지털 기술도 제법 세부적으로 서술되며, 저 앞 에피소드 <유령 소녀들>를 보면 어떻게 소설 미디어에서 사기를 치는지 매우 자세하게 그 요령이 나오는 등 디테일이 장난 아닙니다. 여튼 이 2권에서 유타로와 케이시의 개인사가 일단 다 정리되는 만큼 여태 애착을 갖고 캐릭터를 봐 온 독자들은 미리 마음을 정리해야 할 겁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모두가 평등해집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부자와 권력자 혹은 깡패나 사회 낙오자 등 죽음을 앞두고는 그저 필멸의 존재로서 한없이 작아지고 또 스스로 겸손해집니다. 죽음 앞에서는 허세도 사술도 돈도 배짱도 폭력도 다 무소용입니다. 죽음 앞에서 부끄러워질 부분이 많이 남았는지 아닌지, 남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못 속입니다. 파일은 쉽게 지울 수 있어도 죄업과 후과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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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리 dele 1
혼다 다카요시 지음, 박정임 옮김 / 살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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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그걸로 끝일 뿐입니다. 그러나 교통 사고 등으로 생을 미처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죽게 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라도 이제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세상에 남게 될 자신의 흔적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생전에 이를 위해 크든 작든 노력을 합니다.

한국에도 물론 "디지털 장의사"라는 업종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만 지금 이 소설에서 다뤄지는, "의뢰인의 죽음이 명확히 확인 된 후 개시하는, 의뢰받은 데이터에 한해 원격 혹은 직접으로 삭제를 진행하는 사업"과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설령 이 소설 속의 그런 업종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연 작중의 케이시나 그 누나 마이(변호사)처럼 철두철미한 직업정신으로 수행하는 이들이 있을지는 극히 의문입니다.

일본에는 혹 자신만의 고집으로 세상을 사는 이들이 많아서 케이시 같은 타입이 실재할 수도 있겠으나, 한국이라면 본 수입보다 왠지 (어뷰징을 통한) 부수입이 더 클 것 같은 사무의 성격 때문에 오히려 예상치 않던 부작용만 커질 듯도 합니다. 이 소설 중에도 실제 그런 언급이 있고, 사생활 침해나 다른 범죄에의 악용 위험도 크기에 치안 당국에서 특별히 견제할 듯합니다.

유타로는 이른바 "스트리트 스마트" 타입으로서 아직은 경험도 적고 지식도 부족하지만 여튼 순간의 기지와 근성으로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는 유형이며, 나이가 어려서 여러 모로 서투르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구린 잡일의 해결사 비슷하게 생계를 꾸립니다. 지금은 케이시가 운영하는 dele dot LIFE라는 회사에서 유일한 직원으로 일하는데, 이곳은 저 케이시 같은 아주 고지식하고 철두철미한 프로그래머가 운영하는 곳이라 범법 같은 것과 거리가 멉니다. 정해진 궤도에서 한 치도 이탈하지 않으려는 젊은 고용주 케이시 때문에 오히려 똑같은 일도 피곤하게 해 나가죠.

세상에는 아주 악질의 인간들이 많아서 노인 등 판단력이 어두운 이들을 골라 강매 사기를 치는 일도 빈발합니다. 이 시리즈에 실린거의 모든 이야기가 이런 식인데, 뭐냐면 처음에 (아직은 좀 서투른) 유타로가 "이 사건의 진상은 이러이러하다"고 추리하고, 따라가는 독자도 그런 줄로 이해하나, 마지막에 가서 케이시가 진짜 비밀을 밝혀 내는 식입니다. 예전 추리소설 고전 형성기에 간혹 나오던 "안락의자형 탐정"애 가까운데 실제로 케이시는 걷지를 못해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장애인입니다.

<첫 포옹>에서 케이시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 주는데, 저러 범죄조직에서 최말단의 행동대원들은 간혹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 사건의 진상도 그런 쪽으로 드러나는데 시리즈의 첫째 사연으로 아주 인상 깊은, 멋진 반전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크릿 가든>은 유명한 북유럽 밴드의 이름이기도 한데 이 시리즈에는 좀 독특하게 음악 관련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생을 거의 마감하게 될 황혼의 인생에게도 불륜이란 가끔 찾아오는 굴곡이겠는데, 죽은 부친과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알고 있던 "누군가" 말고 전혀 엉뚱한 다른 여인이 구질구질한 목적으로 찾아왔다면 정말 황당할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유명인(연예인)을 대상으로 알지도 못하는 일반인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해서 큰 문제가 된 적 있었죠. 일본은 지금도 이런 제도상의 허점이 있나 본데 물론 대체로 사회적 신뢰라는 게 있어서 편의를 유지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이제는 시대가 바뀐 만큼 시정이 필요할 듯 보입니다. 또, 의외로 이 작품에는 젠더 이슈가 슬쩍 등장하는데 사람의 감정은 처지에 따라 다르지 않고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 공감하게 하려는 의도 같았습니다.

<스토커 블루스>. 이번에도 유타로는 사건의 진상을 너무 거창하게 지레짐작하는데 사실은... 우리는 보통 히키고모리와 오타쿠를 같은 범주 안에 놓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둘은 엄연히 별개이죠. 히키고모리라고 해도 애니 같은 것에 전혀 관심 없을 수도 있습니다. 겹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히키고모리의 특징으로 지레짐작했던 "어떤 것"이, 사실은 당사자와 전혀 관계가 없었음을 알고 놀라게 되며, 또한 "정상인 나는 과연 타인(완전 타인은 아닙니다만)을 저 정도나 배려하고 살았던가?" 하는 생각에 속마음이 뜨끔해지기까지 합니다. 별 것 아닌 진상에 맥이 빠지기보다, 이 역시 반전의 묘가 돋보였다고 느꼈습니다.

<인형의 꿈>.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가장 좋았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유타로는 헛다리를 짚습니다. "폴더 안에는 ....였다! 따라서 의뢰인이 의도한 건, 영원히 그 남편이.... 였던 것이다!" 이 시나리오도 상당히 그럴싸하지만, 그게 사건 진상의 전부였다면 좀 허무합니다. 시리즈의 구조에 대해 눈치챘으니 당연히 다른 진상이 앞으로 케이시의 입을 통해 드러날 거라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사실 이런 추정도 꽤 그럴싸했습니다. 이미 작품 초반에 힌트를 충분히, 충분히 주었는데, 우리들 독자들은 아이들 주변의 사정은 그냥 액세서리겠거니 여기고 무심히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가는 그 허점을 멋지게 찌른 것입니다. p214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거야말로 자기 만족입니다."라고 쏘아붙일 때 나이에 걸맞지 않은 유타로의 인생내공이 느껴집니다.

교육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가난 때문에 재능을 발휘 못 한다면 그야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헌데 겉으로는 평온하고 바람직한 공부방의 외관 뒤 전혀 엉뚱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면? 이 1권에는 모두 다섯 편의 에피소드가 실렸는데 케이시와 유타로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만 같을 뿐 모두 서로 별개의 이야기들입니다. 못된 인간이 잔인하게 본성을 드러내는 모습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좀 더 깨끗한 영혼으로 생을 정리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더 자주들 보였으며, 어떤 충족되지 못한 정의감, 설욕의 의지를 품고 사는 인간답게 유타로도 정직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이 더 자주 드러납니다. 다들 별나다 싶을 만큼 자신만의 윤리관에 충실한데, 이런저런 비열한 술수를 사회에서 더 자주 목격하는 독자 입장에서 뭔가 뿌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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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 요즘 나를 지치게 하는 사람 고민에서 탈출하는 법
유진명 지음 / 레인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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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께서는 10년차 직장인이며 다국적기업인 베바스토코리아 인재개발부에 근무 중이라고 합니다. 책날개에 보면 에니어그램 강사, 심리상담사이기도 하다고 나오는데 막상 책 내용을 보니 너무 솔직한 내용이 많아서 좀 놀랐습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심지어 가정에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곤 하는데, 많은 이들이 이런 어려움을 자신만 겪는 줄 착각합니다. 사실은 이 책 저자님처럼, 정말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겪는 일이며, 반면 이런 일 하나도 없이 잘 지내는 사람이란 게 얼마나 행복하고, 또 드문 케이스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본래가 사회적 동물이며, 성격이나 취향, 이상, 목적, 충동, 욕구가 모두 다 다른데 애초에 알콩달콩 섞여 사는 일 자체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사람 사이에 살며 스트레스, 갈등, 아픔, 속상함 등을 겪는 건 너무도 당연하며, 중요한 건 이런 애로사항을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일 뿐입니다.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대학에 합격한 후 처음으로 자취생활을 하며 누렸던 독립의 해방감을 회고합니다. 사실 이런 느낌은, 특히 지방에서 유학(留學) 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유할 만합니다. 부모님의 훈육과 간섭을 받으며 자라 왔기에 아들이라고 해도 적잖은 속박감을 느꼈을 만하죠. 이처럼 혼자 지내는 게 좋은데, 타인과 어울려 사는 건 어찌 보면 마치못해 하는 선택이지 꼭 우리의 본능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성인으로서 독립 생계를 꾸리려면 직장에 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유독 까다롭게 구는 상사 때문에 마음 고생을 크게 했다고 합니다. 왜 나한테만 짜증을 내고, 이것저것 지적하고... 앞에 나가 PT를 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 직장에서 이런 일 겪는 건 비슷한 또래의 99%가 공유하는 경험이겠죠.

그런데 저자는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물론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분이지만, 특히 아산에서 먼 전남 순천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다며 고통을 호소했고, 시댁 식구들과의 사이도 원만치 않았던 듯합니다. 저자는 아내분이 특별히 민감한 분이었다고 하는데 그렇기도 한 듯 보입니다만 사실 이는 아내분께만 원인을 돌릴 수도 없는 문제 아니었을까 하고 독자인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여튼 부부 간에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도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억지로 참고 사는 게 능사도 아닐 뿐더러 그럴 수도 없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본인이 직접, 사람이 소속된 집단 중 가장 기본적인 것, 가정과 회사에서 이처럼이나 힘든 일을 겪으셨기에, 소통의 어려움과 그 극복 노하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또 우리가 참고할 만한 요령을 들려 주실 거라 기대가 되었습니다. 책 서두부터 자신의 아픔을 이렇게 솔직히 꺼내는 자체부터가 벌써 신뢰가 간다고 할까요.

책을 더 읽어 보니 저자께서도 역시 자신의 아픔을 다른 상담사님(여성분이며, 책 저자이자 자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분)께 상담을 한 경험이 나옵니다. 그 프로그램이 참 성공적이었기에, 프로그램을 통해 이 책 저자분 같은 분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네요. 자상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건, 그렇지 않건 간에 독립은 유쾌하고 즐겁습니다만 이 책 저자께서 서두에 그 일을 특별히 언급한 건 남다른 해방감이 정말로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상담자님께 자신의 사정을 다 솔직히 털어 놓은 건 아니지만, 그분은 마치 속을 다 꿰뚫어 본다는 듯 "유진명씨(이 책 저자)는 더 솔직하게 자신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절감한 건, 그 여성 저자분(상담자)의 말처럼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아직 너무도 잘 모른다"입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에게 솔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그 모든, 내 마음을 괴롭히는 문제들의 해결 첫걸음이 놓입니다.

책에는 대학교 2학년 때 어떤 호감이 가는 여성을 두고, 가장 친하던 친구와 큰 싸움이 난 경험이 회고됩니다. 이 역시 내담자의 사례가 아니라 작가분 본인의 고백입니다. 저자께서는 "만약 친구한테 솔직히 이야기했더라면 오히려 둘이 맺어질 수 있게 그가 도와줬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찌질하고 소심해서 일을 그르쳤다"고 하십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사실 꼭 그렇게 되라는 법은 없는데 이런 부분은 저자가 너무 자책을 하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더군요. 여튼 내 마음을 너무 부끄러워할 것만이 아니라 터놓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습관, 성향 자체는 좋은 것이긴 합니다. 항상 잘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소통에 과연 정답이 있을까? 저자는 참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는데, "내 생각이 정답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이게 모든 해결의 전제"라는 거죠. 정(正)답이 이미 정(定)해져 있는데 소통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타인은 그저 내 말을 따르기만 해야 할 뿐이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당당하고 멋있다(p80)." 동생에게 늘 양보해야 한다고 들으며 자라 온 자신(장남), 그리고 고모는 조카의 너무 솔직한 말에 무척 놀랐지만 동시에 통쾌함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좀 억울하신 면도 있을 듯합니다. 거꾸로 형한테 동생이 양보하는 집도 적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실 요즘은 자기 감정에만 솔직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게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튼 속으로 그저 삭이고 참고 억압된 유형은, 좀 솔직해져야 우선 자신이 살아 남습니다. 안 그러면 병 생기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 p130 이하에 계속 나옵니다. 회사에서 전에 한 번 일려 준 걸 계속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데 후배도 아니고 동료이니 문제입니다. 이때 상사가 왜 자꾸 받아 주냐고 오히려 한 마디를 하는데, 저자는 이 문제를 이제 명쾌히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유익한 충고를 들려 주게 됩니다. "남의 감정쓰레기통이 되지 마라" "좋은 사람이기보다는 명확한 사람이 되라" "나와 함께 살아 온 사람이 많을 텐데, 한번 결단을 내려 보기 바란다"

상대와 나의 온도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합니다. "상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갈등은 마법처럼 풀린다"고도 하네요. 절대 상대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려는 고집 불통도 세상에는 많습니다만 저자님처럼 오히려 남한테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는 분들도 오히려 정작 상대방의 처지에 서는 게 쉽지 않은 듯합니다. 물론 어떤 성격 유형이건 간에 상대방의 처지에 서는 건 일단 만능의 해법입니다.

그렇다고 욱하는 분노의 감정은 자주 표현하면 할수록 오히려 커진다고 하니 조심해야겠습니다. 분노 호르몬도 더 상습적으로 분비되는 경향이 있고 분노의 신경도 습관에 따라 더 발달한다고 합니다. 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p172에 세 가지 조언이 나옵니다.

우리는 누구나 조직 안에서 지인들 사이에서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데일 카네기에 따르면 이 욕구가 실현되기 가장 어려운 범주에 속한다고도 하네요. 이 경우 상대방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 주는 방식은, 겉으로는 지는 듯 보이나 결국은 상대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승복을 끌어내는, 결국 이기게 되는 슬기로운 소통법이라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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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에는 긴 머리 - 지금의 내가 더 좋아
이봄 지음 / 이비락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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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 내가 20대였던 때에는 나는 어른들을 몹시 싫어했다. 어른들은 멀쩡하게 생긴 것 같다가도 반대편으로 돌려 보면 멍든 살구처럼 미심쩍은 데가 있었다.. (중략)... 나는 절대 그런 어른이 되지 말자고 결의를 다졌다. 늙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p17)

실제로 31세의 나이에 자살한 전혜린 독문학자는 "늙음 그 추함을 어떻게 견딜까"를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완연한 기성세대인 사십 대에 들어서야 그 어른들을 용서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의문의 죽음을 당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그의 회고록(김경재 著)에서 "비밀을 알고 보니 도대체 존경을 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죠. 어른이 되고서야 그처럼 구리고 결함 많은 어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고백이 그래서 좀 쓸쓸하게 들립니다. 젊어서 죽지 않고서는 초심을 지키지 못하는 셈이니 말입니다.
 
"싫은 데는 절대 가지 않는 게 행복해지는 비결" 그러나 어른이면 가기 싫은 모임에도 참석해야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상대한테도 호응을 해 줘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저자는 어느 브런치 모임에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자녀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는 식의 입시 정보 교육 정보를 잔뜩 들었다고 합니다. "너가 여기(=대치동) 안 살아서 모르는 거야." 떠드는 건 그쪽인데 듣는 자신이 숨이 차더라고 하네요. 원래 자기가 좋아서 떠드는 건 힘이 안 듭니다.

예전에 이미연씨를 일약 스타로 만든 어떤 영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어느 여학생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저자분이 속한 세대는 거의 모두 그 인물에 감정이입하면서 청춘을 보냈다고 하네요. 앞 문단(이 책기준으로는 바로 뒤 파트 이야기)에서 저자가 왜 대치동 엄마인 친구분에게 그리 불쾌감을 느꼈는지 알 만합니다. 책 앞에서 "어른들을 용서 못 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핌"은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이기도 한데 저자(동명이인이 많던 흔한 이름을 가져 피곤했던)에게 멋진 별명을 지어주어 고마웠던 친구(의 별명)라고 합니다. "외로움이 피톤치드보다 세더라." 그러니 귀농해서 쬐게 되는 피톤치드의 효험보다 외로움이 주는 악효과가 더 크더라는 소리죠. 그가 귀농한 곳은 전북 무주인데, 사실 TV에서 간혹 비춰지기도 합니다만 이런 곳에 예상 외로 아주 멋진 거리가 꾸려져 있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무주는 유명한 리조트 소재지이기도 하니.

교수인 남편분은 패션 센스가 대단히 뛰어나다고 합니다. "무슨 남자가 여자보다 옷이 더 많아? 안 입는 건 좀 버려!" 사실 교수님쯤 되면 패션 센스도 뛰어나야 하고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찌질이 오타쿠처럼 보이는 교수보다야 훨씬 낫죠. 아내가 안 챙겨 줘도 알아서 잘 입고 다니는 남편은 참 편할 듯합니다. 뒤에는 정교수가 된 게 마냥 좋은 건 아니고 오히려 "작가(예술)로서의 커리어를 망치게 될 위험(남편 본인이 한 말)" 때문에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교수는 커리어의 무덤이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 여튼 육아와 가정 생활, 생계를 위한 직업 영위 등 모든 토끼를 한 번에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나는 별다른 방황이나 반항 없이 사십대의 문지방을 넘었다" 사십 대가 젊음의 마지노선이라서 최선을 다해 즐기고 싶다고도 합니다. 일본에 큰 지진이 난 건 2011년말고도 1994년에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메리켄 공원에서 그 사람들이 재기한 흔적을 보고, 자신도 지막 청춘의 시간을 보람되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듯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있지만, 불륜의 주인공이 막상 자신이 되면 이 책 p85에 나오는 것처럼 혼자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찍는 기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누군가와 불측한 사랑에 빠진, 자기 나름대로는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사람도 꼭 보면 저 한물간 영화를 언급하더군요. 곁에서 보면 짜증나 죽겠는데 말입니다. 또 위기에 빠진 남의 가정을 보며 이런저런 뒷담화하는 것만큼 재미진 게 또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자책을 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마흔이 넘으면 쉽게 살이 찌고, 살이 일단 찌면 쉽게 안 빠진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늘어나는 주름의 공포... 여튼 이래서 이런 기로에 선 연령대의 여성들이 유난히 힘들어하는 거겠고 말입니다. 여튼 저자의 결론은 "포니 승용차처럼 단정하게 나이 들고 싶다"입니다.

딸과 엄마 사이는 마냥 친구 같고 서로 좋을 것 같아도 사실 결코 쉽지 않은 관계일 뿐 아니라 오히려 가장 상처 주기 쉽고 원수지간으로 타락할 가능성도 큽니다. 이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는데 딸이 미숙해서 문제일 수도 있고, 반대로 엄마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철이 덜 들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리베카 솔닛의 어느 책을 소개하는데, 저자 역시 수수께끼 같은 모친을 이해하느라 고생했고 이 책에도 30대의 나이에 어머니와 절연을 고민하기까지 했던 분이라서 더욱 공감하는 바가 컸나 봅니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고민이 되는 딸이라면 이 책도 함께 읽어 봤으면 합니다.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 저자는 체호프의 <세 자매>를 읽고 큰 공감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체호프의 작품에는 의외로 극단적인 삶을 살게 된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데 톨스토이가 극찬했다는 <사랑스러운 여인>도 그 좋은 예죠. 대체 뭐가 그토록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후렴처럼 따라붙을까요? 사람들은 갖가지 이유에서 힘듭니다. 그래도 작은 보람을 찾고 입가에 미소를 띄울 때는 서로 닮았습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도 있는데 나이 사십이면 이제 단맛 쓴맛 종류를 분간하고 첫걸음마를 떼는 아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르페 디엠, 하루하루가 소중한 줄 알고 주위 사람한테 잘하면서 시간을 아낄 일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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