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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협상법 - 인생의 승부처에서 삶을 승리로 이끄는 협상비법
신용준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4월
평점 :
기업에서 아무리 상품이 좋아도 마케팅 수완이 서투르면 매상이 오르지 않듯, 개인이나 조직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협상법"이 서투르면 큰 성공을 거두기 힘듭니다. "일상에서 비즈니스까지, 인생의 9할은 협상이다!" 속된 말로 "딜을 치는" 방법이 서투르면 매번 손해 보고 살기 십상입니다. 어떻게 하면, 승부를 보아야 할 상대방과 일 대 일로 대면했을 때 내 이익을 충분히 거둘지, 혹은 회사를 대표하여 미팅에 나갔을 때 내가 소속된 조직의 입장을 넉넉히 반영하게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협상의 일반론으로 언제나 명심해야 할 사항이 쉽게 재미있게 정리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저자의 직접 체험에서 우러난 여러 실감나는 일화와 사례가 많이 소개되어, 아마도 비즈니스 현업에서 뛰는 이들이 자기 실무에 바로 적용하거나 참고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원론에만 치중하면 읽는 재미가 없고, 체험담 위주로만 가면 깊이가 없기 쉬운데 이 책은 딱 절묘하게 균형을 잘 맞춘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조파(ZOPA)는 협상가능영역, zone of possible agreement의 약자로서, 협상할 때 반드시 유념해야 할 개념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고 목표도 달성해야 하지만, 무턱대고 내 목소리만 높이는 식이어서는 그저 판만 깨질 뿐 (상대도 얻는 게 없겠지만) 내 손에 들어오는 바가 없어집니다. 내가 원하는 존, 바운더리가 있고, 상대가 원하는 범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 사이에 교집합이라는 게 생길 건데, 협상 잘 하는 사람은 이 교집합 중 최대한 내 쪽으로 바싹 붙은 지점에서 싸인을 하게 만듭니다. 그렇지 않고 애초에 서로가 원하는 바가 너무 다르다면(이 책 p46에 나오는 것처럼), "조파"도 없고 따라서 협상이 애초에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협상자는 상대방의 의중을 노련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애초에 조파가 생성 안 되는 자리라면 최대한 상대방 기분 안 상하게 자리를 마무리짓고, 또 이 점을 상대에게 납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후일 다른 안건 다른 거래에서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을 수도 있으므로, 신사적인 매너로 접대하는 건 상식입니다. 그렇지 않고 슬쩍 떠본 그의 의중에 어느 정도 조파가 만들어지겠다 싶으면, 이때는 목표를 향해 서서히 전진하면 되겠습니다.
저자는 p47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백화점 가격 협상 전략"을 공개합니다. 이 책은 이처럼, 실전에 바로 응용할 수 있는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케이스 스터디 소재를 제공하는 점이 특히 유익하더군요.
1) 한 매장만 공략한다.
저자는 한 번 방문한 가게는 무조건 단골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점이 좀 이해 안 되는 독자도 있겠지만, 상대방 역시 이 사람이 여러 매장 여러 회사를 두루 넘보고 탐색을 하는 "지조 없는(?)" 사람인지, 아니면 한번 맺어진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타입인지는 눈치로 바로 파악 가능할 것입니다. 상대에게 "이 사람은 내 편"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는 건 생각 외로 거래의 여러 국면에서 힘을 발휘하더군요.
2) 매장 매니저에게 친절하고 인간적으로 대한다.
3) 매장 직원의 추천을 받아 가능하면 빨리 결정한다.
2)와 3)은 주로 매장 매니저와 직원 들의 인간적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입니다. 사실 입장을 바꾸어 그들 입장에 서 보면, 어차피 어딜 가도 조건은 서로 비슷한데 괜히 이것저것 재고 사람 힘들게 하느니 차라리 인간적 신뢰를 확실히 쌓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보통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마련이고, 자신에게 평소 잘해준 사람한테 뭔가 편의를 봐 주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역시 저자가 직접 경험한 사례, 즉 백화점에서 선물세트 25개 동시 구매 건과 영어 단기 캠프 장소 물색 건이 나옵니다. 두 건 다 모두, 나는 상대가 이 이하 조건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예상하여 가격을 제시했는데, 상대는 오히려 횡재라고 생각했는지 덥석 받아들여 당황했다는 회고입니다. 이때 저자가 아쉽게 생각하는 건, "아, 처음에 상대에게 '어디까지 가능하십니까?'라고 의향을 먼저 떠 봤어야 했다"는 거죠. 확실히 협상에서 내 안을 먼저 제시하는 건, 그게 아무리 내 입장에서 충분히 계산을 거친 결과였어도, 더 유리한 조건을 받는 데에는 방해가 됩니다. 협상에서는 입장을 먼저 노출하는 쪽이 지는 거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도 덧붙입니다. "주도권 때문에, 먼저 제안하는 게 적절할 수도 있다(p51)." 이 이슈 관련, 더 일반적이고 더 광범위한 논의는 이 책 파트 4의 29장(p189) 이하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집니다.
협상을 잘하는 만능의 방법으로 무조건 어떤 하나의 절차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협상의 장에 나오는 모든 플레이어가 그런 방법만 들고 협상에 임할 건데 극소수의 몇 상황만 제외하고는 애초에 진행이 안 될 것입니다. 또 그런 방법이 있다고 쳐도 내 스타일상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다 싶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 멋진 옷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 체형이 못 된다면 이를 걸쳐 봐야 웃음거리만 될 뿐입니다. 그보다는, 좀 스타일이 덜 나더라도 최대한 내가 소화 가능한 의상이 최상의 선택이겠는데, 협상 스타일도 마찬가지라서 내 성격에 맞는 방식이 가장 좋습니다.
p52 이하에는 표가 나오는데 A와 B 중 내게 더 맞는 걸 골라 표시해 나간 후, 그 결괏값(p55)을 구해 다음 페이지의 레이더 차트에 대힙해 봅니다. 저는 "강압 스타일"이 나오던데 ㅎㅎ 저자는 각자의 스타일을 구해 본 후 자신의 상대지향형/자기지향형 태도를 점검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이후에는 구체적으로 강압, 회피, 양보, 타협, 문제해결 스타일이 각각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지 상황의 예들이 나옵니다. 이 부분이 아주 쉽고 재미있으므로 자기 스타일이 이 중에서 뭔지, 그 경우에 어떤 방식으로 협상에 임해야 할지를 바로 배울 수 있습니다. "문제해결 스타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최상은 아니므로, 자기 스타일을 파악하되, 상황에 따라 여러 방법을 (가능한 한) 많이 구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판매왕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정신력이다(p74)." 뉴스나 책에도 많이 소개되지만 사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부러운 게 이런 판매왕들, 일류 세일즈맨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업직이 불안정한 직업이라고는 합니다만 이런 S클래스들은 신분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죠. 아무리 승자 독식의 사회라고 하지만 이런 분들은 정말로 큰 셰어를 가져 갑니다. 영업직이 아니라고 해도, 화이트컬러는 결국 기획력 외에도 영업력이 있어야 살아남고, 이사 등 임원이 되면 사실상 영업을 얼마나 따오느냐로 이후 대접이 결정됩니다. 그러니 판매왕들의 비법은 누구나 궁금해합니다. 판매왕들이 또 보면 언제나 기존 인맥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인맥에만 의존하는 세일즈는 지속 가능하지도 못합니다.
판매왕들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옵니다. 이럴 때 그들은 "여튼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p75). 보다 구체적으로 프로골퍼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1) 크게 심호흡 세 번을 한다
2) 처해진 한 샷만 생각한다.
3) 샷을 하기 전 좋은 그림을 떠올려라.
특히 3)은, 판매왕들이 언제나 강조하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과 관계 있습니다. 심리적인 압박이 다가올 때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오히려 일을 망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건 막상 최악의 결과가 닥쳤을 때 최대한 damage를 심리적으로 덜 입으려고 미리 준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결과 자체를 긍정으로 빚어야지, 나쁜 결과를 의연하게 맞을 준비란 그걸 아무리 철저히 해 봐야 내 인생에 어떤 진전이 오질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협상의 달인으로 칭하는 걸 봤습니다. 자신은 컴퓨터 같은 두뇌로, 칼날처럼 상대의 심리를 캐치하여, 한순간에 정확한 대안을 도출하여 비즈니스를 마무리짓는다는 거죠. 그런데 이 책 저자께서는 "(그런 지식이나 계산보다는) 감정이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친다(p83)"고 말합니다. 확실히, 협상 테이블에서는 별의별 돌발 사태가 다 벌어지며, 상대방의 예상 밖 제안이나 반응, 태도에 놀라거나 불쾌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속으로 쾌재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떼 냉철하게 감정을 일정히 유지해야, 새로운 상황을 정확히 계산하여 전략을 수정할 수도 있고, 상대에게 내심을 들키지 않겠죠.
때로는 룰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만으로 폭주하는 상대를 협상장에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뭐 사회에는 별의별 부류가 다 있으니까요. 이처럼 사회 최소한의 룰도 무시하는 자를 두고 보통은 "양아치"라 부르는데(이 책에 그런 말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책에는 이런 양아치들을 상대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자승자박 전술이 그것입니다. 상대가 쓴 방법을 고스란히 고대로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1) 실컷 떠들게 내버려둔 후, 그 안에서 논리적 모순을 찾아내서는 "당신 말대로라면 이렇다는 건데, 앞에 한 말과 반대되지 않냐?"라며 공박합니다. 사람은 본래 말이 많아지면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2) 그가 이전에 한 말이나 약속을 들이밀어 그의 말이 그 자신이 스스로 발 묶이게 합니다. 책에서 소개한 파르스 왕자(p97)가 발휘한 기지가 그것입니다. 파르스는 고대 페르시아의 다른 이름이죠.
3)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으니, 상대의 말과 원칙에서 전혀 다른 논리적 결론을 도출하여 상대가 말문이 막히게 만든다.
저자는 자신의 회사 직원이 "왜 급여를 (전에 했던 말씀과 달리)안 올려 주시나요?"라고 했다든가, 어린 자제분의 "약속 이행 촉구" 등을 그 좋은 예로 들고 있습니다. 반대로, 섣부른 약속 때문에 고생하는 결과를 피하려면, 애초에 이런저런 단서를 많이 붙이라(p101)는 요령도 일러 줍니다.
협상에는 BATNA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의 약자인데, 책에는 글라스를 구입하려는 레스토랑의 입장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사실 가격이 너무 높아서 곤란하긴 한데, 글라스 자체는 다른 데서 대체품을 못 구할 만큼 마음에 들 때 무슨 BATNA를 제시할지의 문제입니다.
1) 장기 거래하겠다
2) 추가 구매하겠다
3) 현금으로 결제하겠다
4) 글라스를 필요로 하는 다른 업체도 소개해 주겠다
5) 일괄구매하겠다(상대의 재고 감소라는 메리트가 있다고 합니다)
6) 포장지를 최소화해도 된다(이런 제안이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의외로 고맙게 받아들여진다고 합니다)
7) AS나 반품 요청을 하지 않겠다(조금 위험하지만 경우에 따라 이런 방법도 효과가 있을 겁니다)
8) 다음에 술 한 잔 사겠다(이 방법은 요즘 잘 안 쓰인다고 하며 ㅎㅎ 아마 이런 제안을 들으면 상대가 기분 나빠할 것 같습니다)
여튼 BATNA라는 건 생각 외로, 셀 수 없이 많으며, 협상에서 경직된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음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상기하려는 의도입니다. 내가 이런저런 BATNA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상대에게 알려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상대의 태도를 완화할 수 있고, 거래할 의향이 없던 상대에겐 일종의 미끼를 물게 유도하는 셈도 됩니다.
예전에 현대자동차 TV CF에서 어느 점잖은 고객이 명품 매장에서 환불, 교환을 요청하자 매장 직원이 "아니 고객님 이런 걸 누가 해줘요?"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때 그 고객 말이 "현대자동차는 되던데?"라고 하자 직원이 당황한다는 스토리를 담았는데... 책에서는 남들도 다, 시장에서는 이렇게들 한다면서 "객관적 기준을 들이대는 전략"을 소개합니다. "90%는 이렇게들 하고 있습니다." "사장님 같은 분들은 이렇게들 하십니다." 이런 객관적 기준은 앵커링 효과(p128)를 주기 때문에 상대가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책 3부에서부터는 "심리유도 협상법"을 가르치는데 개인적으로 이 파트가 가장 재미있었고 도움도 많이 되었던 듯합니다. 경제학 전공자 아니라 해도 학교에서 게임이론은 많이들 배우셨을 듯한데, 죄소수의 딜레마 역시 익숙한 내용일 겁니다. 왜 죄수들은 최적의 상황에 이르지 못하고 서로 파멸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게임 플레이어(여기서는 죄수)들이 경쟁적 상황(혹은 그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다시 안 볼 사이"라고들 할 때가 있는데 정말로 다시 안 볼 사이라면 잘할 필요가 없고, 심지어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고 결별하는 게 (도덕을 떠나 계산적으로는) 낫겠죠. 책에서는 "다행히도 대부분의 협상 상황은 관계 유지, 평판 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p146)."
저자께선 아무래도 협상 전문가이자 S급 명강사이시다보니 협상 자리뿐 아니라 강의실에서도 많은 이들을 만납니다. 청중 중에는 고성과자 모임도 있고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한 것도 있습니다. 고성과자는 확실히, 저래서 고성과를 낼 수밖에 없겠구나 싶게,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 이해의 정도, 참여의 적극성,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내면화하려는 태도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나더라(p154)는 겁니다. 독자로서 제가 여러 책을 읽어 보면, 저자들이 이처럼 자신의 책들에서, 강사로서 경험한 바를 자주 술회를 합니다. 청중이나 수강생 태도가 불량하면 반드시 한 마디를 책 안에서 하시더라구요. 우리들 독자(청중)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저자나 강사)을 평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 역시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을 평가할 수도 있으나, 일단 나부터 남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난 후에 무슨 말을 해도 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만나는 자리가 어색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저자는 "내가 받고 싶은 대접을 남에게 먼저 베푸는 분위기로 어색함을 깨자"고 합니다. 이걸 두고 미러링(p158)이라 하는데 요즘은 미러링이라고 하면 무슨 싸움 났을 때 상대의 방식을 고대로 돌려 주는 걸 가리키곤 합니다만 그런 험악한 의미가 아닙니다(그 방식은 [약간 다르긴 하나] 책에서 "자승자박" 전술로 소개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남에게 자신이 원하는 만큼이라도 베풀라"고 했고 이걸 서양권에서는 골든 룰이라고 부르죠. 공자 역시 기소불욕이면 물시어인이라고 한 적 있습니다.
책에서는 로저 피셔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을 인용하며 억지로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적절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효과적(p170)이라고 합니다. 파트 1의 9장에서는 "감정을 통제하라"고 했지만, 또 협상에서는 일반적으로 포커페이스가 선호된다고 하지만, 이는 감정을 자신이 유리하도록 "통제"하는 것이지 무작정 숨기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너무 감정을 숨기고 들면 상대가 불쾌해하거나 이용당한다고 여길 수 있어서 더 협상이 안 풀릴 겁니다. 장기적 신뢰를 쌓는 것도 중요하거니와, 한 번 정도 협상 주도권을 넘겨 줌으로 해서 오히려 주도권을 내가 유지하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의 이 말을 한번 곱씹어 보십시오.
협상은 감정으로 시작하여 감정으로 끝난다. "두려움"으로 시작하여 "분노"로 과정을 거치는 협상은 결국 "신뢰"라는 결과로 끝맺음해야 한다(p172).
"관계"는 사실 협상을 불필요하게 합니다. 나의 친형, 나의 매부, 나의 부친 등이 소유 경영하는 회사하고 무슨 힘든 협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쩌면 힘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 애 쓰는 것도 그 피곤하고 고단한 협상, 수많은 협상들을 생략하고 좀 편하게 살기 위한 전략입니다. 그러나 책에서는 때로 이런 관계가 독이 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p180). 또, 때로는 모르는 사람들과 협상을 일일이 하며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게, 고까운 관계 억지로 유지하느라 자존심 자존감 다 다쳐 가며 사는 것보다 훨씬 나으며 오히려 이런 게 능력 있는 사람이 사는 방식입니다.
제안은 먼저 하는 게 나을까요, 아님 상대의 제안을 먼저 들어 보는 게 나을까요? 이는 다양한 앵커링 효과를 감안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상대가 먼저 제안하면, 이것이 일종의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되어 상대가 협상 내내 주도권을 쥐는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반대로 내가 제안을 먼저 한다면? 앞에서 본 대로(pp. 49~50. 저자가 직접 겪은 예를 들었습니다) 시세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하는 바람에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pp.205~206에는 DISC 성격 분석표가 있습니다. 책 앞 p52에도 성격에 따른 협상 유형이 나오는데, 내 성격과 강점, 약점, 스타일을 잘 알고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을 골라서 테이블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책에서 p208의 표 하나만 꼼꼼히 훑어도 도움이 크게 됩니다
조직에 따라 누가 실세인지, 공은 누구한테 들여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컨택헤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잘 살피고 나서 딜을 쳐도 쳐야 할 것입니다. "결정 권한도 없는 상대방(p213)"과는 공연히 힘 빼가며 협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한 소리 같아도 협상 실무에서는 의외로 이런 경우가 잦습니다. p209에 나온 표를 꼼꼼히 보십시오. 대체로 모든 회사, 조직이 이 구성표를 따르므로 표에다가 사람 이름, 사진만 붙여 놓고 일별만 해도 전략의 큰 그림이 잡힙니다. 대충 주먹구구로 머리 속으로만 즉흥적으로 구상하는 것과는 효과가 다르죠.
류재언 변호사의 <협상 바이블>에서 가장 협상하기 어려운 상대로 꼽는 건 "배우자"라고 합니다. 1) 모든 정보가 노출되어 있다 2) 과거의 경험, 감정이 개입되어 있다 3) 수많은 이해관계인이 얽혀 있다 4) 결렬시 대안 확보가 불가능하다. 얼마 전 빌 게이츠와 멜린다 부부 사이에 이혼이 결정되었다는 뉴스가 떴는데 가장 쉬운 게 부부 사이 같아도 알고 보면 가장 어려운 관계인 법이죠.
책에는 허브 코언의 말도 인용됩니다. 가장 협상하기 어려운 상대는 1) 미친 사람 2) 비이성적인 사람 3) 바보. 그런데 이 원리를 역이용해서 베트남 전 당시 닉슨 대통령은 매드맨 스트래티지를 구사하기고 했습니다. 내부 단속을 못 해서 비리가 들통나는 바람에 만사휴의가 되긴 했습니다만.
여러 재미있는 테크닉도 많습니다. 친밀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먼저 소통의 작은 단서부터 마련해야 하므로 "풋 인 더 도어", 즉 상대가 문을 닫기 전에 먼저 한 발을 밀어넣듯, 작은 부탁, 누구라도 들어 줄 수 있는 부탁부터 하고 친밀도를 서서히 쌓아가는 방법입니다. 반대로 친한 관계에서는 "도어 인 더 페이스" 즉 면전에서 문을 닫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터무니없는 부탁은 상대가 들어줄 수가 없지만 앞으로 안 보고 살 것도 아닌데 어떻게 면전에서 문을 닫겠습니까. 그때 정말 원하는 걸 말하면, 앞에서 들은 것보다는 덜 부담스럽게 여겨지므로 요청이 수락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이 외에도 책에는 플린칭, 레드 헤링, 살라미, 기정사실화 등 다양한 기법이 소개되는데 실전 활용 여부는 둘째치고 읽기만 해도 일단 재미가 납니다.
정말로 협상을 타고나면서부터 잘하는 유형도 있겠고, 기법보다는 먼저 점유한 위치(재벌 2세, 건물주 등)가 좋아서 협상력이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협상이 잘 안 된다면 처지를 탓하며 무기력하게 상황에 떠밀려갈 게 아니라, 책을 보고 공부를 해서라도 내 실력을 높여서 난국을 타개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