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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의 유산
장웨이 지음, 조성환 옮김 / 파람북 / 2021년 3월
평점 :
저자 장웨이(張煒. 장위)는 노벨상 후보로도 거론될 만큼 이름난 중국 작가이며, 10년 전에 <제나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라는 책이 한국말로도 번역이 되어 나왔습니다(아쉽게도 지금은 절판이네요). 1956년생이신데 우리나라에서라면 이 정도 연배분들이 한자, 한문을 꽤 잘하시는 분들이 있겠죠. 물론 한국과 근대 중국의 사정이 크게 다르므로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만. 煒(위)라는 글자도 꽤 어려워서 윈도에서 기본 제공이 안 되며, 뜻은 "붉다, 빛나다" 정도이고 輝(휘)와 뜻이 통합니다. <제나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산문집이지만 고대 중국사를 소재로 삼았으며 본디 이 작가분이 역사에도 깊은 조예가 있는 분입니다. 1955년생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 책에 나온 대로 1956년생이 맞습니다.
도연명은 동진 대에서 유송(劉宋) 초기에 활약한 사람입니다. 동진은 東晉이며, 삼국연의에 나오는 사마의가 사실상 역성혁명으로 세우다시피한 그 나라가 팔왕의 난과 영가의 변으로 망한 후, 그 고손자인 사마예가 강남 건강(삼국시대 오주 손권의 도읍이기도 했던)으로 천도하여 중건한 왕조이고 더 후대의 왕조인 陳(진패선이 세운)이 아닙니다. 그가 남긴 <귀거래사>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의 한학자, 유림에게 필수 교양 문학 작품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오늘날 한국인들도 최소 고등학교 한문 교과서에서 그 발췌 부분이나마 해석을 해 가며 공부하는 텍스트입니다. 도연명은 알고보면 한국인에게도 아주 친숙한(그래야 할) 작가인 셈입니다.
역자 조성환 선생의 글을 보면 "이 책은 (중략) 도연명에게 (여태)덧씌워진 미사여구를 과감히 벗겨버린다... 밀랍인형 속에 갇힌 도연명을 밖으로 탈출시켜 민낯의 도연명을 목도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에게 어떤 미사여구를 덧씌우거나 "밀랍인형" 안에 가둔 이들은 후대 중국과 한국의 문인, 혹은 유학자들이었을 겁니다. 공맹이 제시한 이상적 인간형에 (억지로라도) 맞춰 걸작 문학을 이해하게끔 유도하는 게 글 가르치는 스승의 본분이라 여겼겠으니 예로부터 내려온 다소 정형화한 해석론이 확실히 그런 성향(밀랍인형, 미사여구...)이 있을 겁니다. 여튼 그건 그것대로 선현들의 지혜가 담긴 프레임이며, 이 책은 프레임과 도학적 기준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도연명을 보는 한 가지의 현대적 시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전통적인 해석론에 밝은 독자들이, 오히려 이 책을 더 신선하고 더 파격적으로 받아들이며 저자(논자) 장웨이에 크게 공감할 수도 있겠네요.
전체 7강, 키워드 127항목(이 책 p11)로 도연명 파고들기를 시도하는 이 책은 분량도 꽤 많습니다. 예로부터 문인은 본격 도학자와는 달라서 자유분방한 문학세계를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그런 천재형 문인이다 보니 마치 현대의 문학가들에 대해 해석하듯, 한 가지 각도가 아닌, 정말 127개나 되는 다양한 키워드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이 아닌 다각도의 통찰을 시도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특히 이 책은 서두에 나오는 역자의 해제가 유익하며, 한국의 문인 혹은 독자들과 고대 중국의 도연명이 역사의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교감했는지에 대해서도 소상한 해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해방 후에 한국에서 이뤄진 현대적 도연명 연구에 대해서도 간략한 소개가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해당 저자들을 키워드로 삼아 책들을 더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제가 지금 그렇게 합니다). 역자의 간략한 해제 앞에는 저자의 머리말, 한국어판에 특별히 붙은 서문이 있는데 머리말을 보면 이 책은 강연록을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도연명이 살았던 시대는 중국사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도 가장 잔혹한 시대 중 하나였다(p55)." 도연명 문학 자체도 그렇습니다만 진에서 송제양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는 청담 사상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한참 전에 진(서진)을 사실상 세우다시피한 사마중달도 본디 청류파 유학자의 가문이었습니다. 특히 도연명보다 백 수십 년 전에 활동한 죽림칠현(책 저 뒤 p511) 등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죠. 사실 저자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이 시기를 "잔혹한 시기"라 칭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쳇말로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진," 종래의 신분 질서가 무너지고 대의명분이 쉽게도 훼손되며 권세를 탐하는 이들이 온갖 술수를 부려 가며 부귀를 탐하던 시절이라, 이에 대한 반동으로 청류파가 주목 받기도 한 시대라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저자는 "도연명의 시기 서구는 막 중세 암흑기에 들어설 무렵이다"고 합니다. 사실 암흑기라고 하면 이때보다는 좀 더 지난 시기를 가리키고, 이 무렵이면 서로마가 망하기 직전이니 중세를 막 예비하던 시기이긴 하겠습니다. 게르만 야만족들이 지중해 세계로 몰려와 사정 없는 파괴와 약탈을 일삼던 걸 생각하면 "잔혹한 시기"인 건 또 맞습니다. 물론 당시의 동과 서는 아주 약한 정도의 교류만 있었으니 이런 문명 쇠퇴의 불길한 폭력적 조짐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은 결과는 아니겠습니다만. 여튼 저자는 이 시기(위진)의 중국을 기혈(嗜血), 즉 "피에 굶주림"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p56). 嗜는 "즐길 기" 자 이며, 이 글자는 윈도에서 기본 제공되는 글자입니다. "기호식품"이라고 할 때의 그 글자이니...
저자는 비단 위진(魏-晉) 시대뿐 아니라, 중국사 전체를 통틀어 지식인이 갖는 불안한 위상에 대해 논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지식인은 "상대적으로 독립된 공간"에 놓여 있어야 지식인다운 사유와 행동이 가능한데, 그 "독립된 공간"은 "정글"이며 이곳은 세상의 부와 권력을 놓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곳입니다. "정글을 항상 염두에 두고, 동경하기도 하며, 두려워하다가, 개조를 시도한다." 참 멋진 요약입니다. 춘추전국 시대의 순수 도가적 사상 조류는 아예 세상과 절연되어 있지만, 이미 유가가 천하의 지배 사조로 정착한 후에는 어떤 지식인이라도 정글 같은 세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심지어 지식인들 상당수는 그런 썩어빠진 정글을 "동경"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정글에 몸 담그는 순간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 못 하니, 상대적, 추상적 의미로서의 "개인 공간"이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저자가 127개 키워드 중 하나로 특별히 "개인 공간"을 꼽은 것은 그런 의의가 있습니다.
"정글"이란 말은 이 책에서 p84 등 여러 군데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쓰입니다. 저자는 이 파트에서 특히 조조에게 죽은 공융 같은 지식인의 삶을 도연명과 대비시키는데, 그 비유가 매우 재미있습니다. (정글의) 짐승을 대할 때 그 부드러운 가죽, 평온한 코 고는 소리, 늘씬한 체형에 감탄하여 그 잔인한 본성을 모르고 겁도 없이 접근하여 만지다가 목숨을 잃는 게 공융 같은 지식인의 실수(p58.이 워딩은 독자인 제가 다소 변형했습니다)라는 겁니다. 도연명은 그렇지 않아서 자신의 시대에 군벌 혹은 권력자였던 환현, 유유 등과 거리를 두었답니다. 유유는 도연명의 생애 후반 즈음에 동진을 공식적으로 폐하고 자신의 제국 송(宋)을 세운 인물이며, 환현은 그럴 야망을 품었으나 그릇이 작아 결과적으로 부하 유유에게 길만 열어 주고 떠난, 말하자면 한국사의 궁예 같은 포지션입니다(물론 유송도 길게 가지는 못했지만). 환현과 유유에 대해서는 간략한 설명이 책 저 뒤 p246에 나옵니다.
지식인이 독립된 공간을 가지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어야 합니다. 도연명 같이 단기간의 출사만 마치고 이내 귀농, 귀향하여 음풍농월만 일삼다가는 가산이 넉넉해도 다 까먹기 일쑤이겠습니다만, 그나마 도연명은 그런 형편도 못 되었다는 걸 우리는 어려서 학교에서 배워 잘 알고 있습니다. p61에는 특히 루쉰 선생(물론 존경 받아 마땅한 분이나 저자 장웨이는 특히 이분에 대해 "선생"이라는 경칭을 붙입니다. 이는 현장의 "강의록"으로서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의 "유머스러운" 평가를 인용합니다.
사실 헤겔 같은 철학자도 심지어 일생의 시기별로 노작의 경향성이나 문체가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하물며 도연명은 문학가이니 설령 아무리 우리 현대 독자들이 "치사, 청렴, 자연친화" 등의 한정된 키워드로 그를 (좁게) 이해한다 쳐도, 그에 무관하게 생애별로 경향성의 차이를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여태 선입견에 갇혀 그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겠죠. 저자 장웨이는 시기별로 작풍(作風)을 분류하는데 청년/중년/근만년/만년 이 네 단계라고 합니다(p87). 특히 저자는 도연명에게 근만년과 만년이 불과 몇 년 차이지만 작품 분석에 있어 그 준별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근(近)만년"의 작품에는 "분노, 비분강개"의 기운이 담겨 있으며 한참 선배인 굴원과 비슷한 경향(저자는 "강화"라고 평가합니다)이지만, 만년의 작품에서는 평온한 달관이 엿보인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그렇게 치면, 상대적으로 굴원은 끝내 울화를 달래지 못한 채로 생을 마친 셈입니다. 우리 한국 독자들도 좀 유념해 두어야 할 기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보통 굴원과 도연명의 작품 세계를 거의 같은 컬러로들 여기는데 둘은 시대도 크게 차이 나며 결국 시대의 성숙만큼이나 더 진화한 문인을 도연명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니 말입니다(어디까지나 제 개인적 생각에 불과합니다).
p110 이하에서 저자는 이제 본격적으로 도연명에 덧씌워진 "미사여구", "밀랍인형 프레임"을 벗기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진나라 왕실의 정통을 유지하고 강권과 협력하지 않는 전형이길 바라면서 시인의 대항성을 기꺼이 강화하길 바랐다... (중략) (그러나) 그의 말과 행실은 곳곳에서 강권과 당시 정치 상황에 대응하지도 않았다. (중략) 도리어 자신의 흥취와 본성에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쉽게 풀어 말하면, 사람들은 도연명이 마치 조조에 대항하다 비참한 죽음을 한 예형처럼 투사형 인물로 보길 원하지만, 생각 외로 실제 민낯(p11. 역자 해제 中)의 그는 유연하고 융통성 있고 문학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더 사랑하던 인물이었다는 뜻입니다.
p111에서 그는 "존엄 표현은 자유로운 것이며, 인류 문명을 촉진하는 방식도 결코 하나일 수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비협력의 분노는 자유의지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고, 오히려 주변 군체의 충동에 굴종하고 순응하게 되니 차라리 타협의 산물"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소위 강골 지식인의 허상(내지는 위선)을 폭로하는 구절이며, 작가의 놀라운 통찰을 보여 줍니다. 주위에 보면 그저 멋있게 보이려고 현실성도 없는 극한 강경 노선을 (실천에 옮길 자신도 없으면서) 목소리만 높이는 인물들도 있습니다. 작가의 말은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며, 이 대목에서 독자는 다소 통쾌해지기까지 합니다(제가 오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자는 p180에서 "도연명 시는 동진 시단에서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며, 당시에는 가장자리에 처했다"고 합니다. 이 역시, <귀거래사> 등만 읽고 도연명을 위진남북조 시문학의 전형으로 인식하는 한국 독자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 주는 문장입니다(심지어 도연명이란 문인에 대해 중학교 사회 교과서[동아시아사 파트]에서조차 이리 기술합니다!). 대표성과 전형성은 서로 다른 개념임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죠. "내재적인 화려함, 현란함, (심지어)통속성"까지 그는 지적하는데, 이 모든 개성이 당대 주류 문학 경향과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거죠. 이는 "개인으로서 그의 천재성"이, 후천적으로 습득된 시대적 경향보다 그의 문학 세계 안에서 더 철저히 구현되고 지배적 동력이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천재인 개인으로서 그를 바라봐야지, 비타협과 청류의 상징, 반골 소신파 등으로 억지로 프레임을 씌울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재능과 확연히 떼어놓을 수는 없으며, 이것은 함께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총체"라고도 말합니다.
p222에도 루쉰 "선생"이 다시 원용됩니다(p228에도 또 나옴). 여기서 저자는 도연명이 "요 임금이 우리의 조상"이라며 다소 "억지스럽게" 계보를 밝히는데, 이 부분은 많은 학자들이 굴원의 <이소> 중 해당 대목을 따라한 흔적이라고 지적하며 저자도 같은 견해입니다. 사실 이런 일종의 허세는 위진남북조의 도잠뿐 아니라 (책에 나오듯) 다른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현대의 일반 독자들도 마찬가지 심리입니다. 그러나 도잠은 조상의 영광에 비추어 (비루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후손들에 미안히 여긴다고 저자는 꿰뚫어봅니다. 입신영달이 글 배운 사람으로서 몽매간에도 잊을 수 없는 일생 목표인 건 중국사 오천년을 통틀어 변한 바가 없죠. 저자는 훨씬 후대 당 제국의 이백과 두보도 거론하며 이백은 조상으로서 이광 장군을 드는데 이분은 사마천의 <사기>에도 열전 중 독립 항목을 차지하고 있죠. 그에 비하면 두보가 드는 연혁은 다소 추상적이며 도연명의 이런 태도와도 더 닮았습니다. 저자는 도잠의 "근만년"과 "만년"을 엄격히 구별(p87)하지만, 만년의 작품 중에서도 "맹사(猛士)"와 "형가"의 형상이 출현(p232)한다고 말합니다. "맹사"는 그저 사나운 선비라는 뜻이며, 형가는 전국~진초(秦初)의 자객입니다(역시 사마천의 <열전> 중에 나오죠).
"전원"과 "관리사회"는 과연 현대인이 이해(오해)하듯 그리 멀리 떨어진 공간이 당시에는 아니었으며 생각보다 복잡미묘한 공존을 이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는 전원을 사랑했으나, 전원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p245)." 여기서 저자는 도연명의 만년에 대해, 성공적인 귀향 귀농을 이루고 자연스레 시심이 솟아오른 쾌락의 경지인지, 그렇지 않고 빈한에 시달리다 부적응으로 끝낸 인생인지가 미스테리라고 합니다. 이는 문학이 아닌 역사의 영역이므로 이렇게 문학 작품만 응시해서는 명쾌한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연명식 "전원"의 의의에 대해서는 pp.307~318에 더 자세히 논의됩니다.
술은 문사의 흥취, 삶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촉매이자 제재(題材)이자 테마이자 작품 자체입니다. 실제로 도잠은 술을 직접 담궈 빚기도 했습니다. 이백 역시 시선(詩仙)이라 불릴 때 그의 곁에 항상 술이 함께했음을 누구나 증언하고 그 자신도 고백합니다. 저자는 도연명에게 "술은 진정한 이웃이고, 고향 사람이며, 도화원이고, 애인이었다(p297)."고 평가합니다. "노동의 중요성"은 특히 이 책 저자가 수시로 강조하는데 이게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을 신성시하는 현대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흔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그 "노동"의 중요성과 의의는 도연명에게 "술의 가치"와 동일시되기까지 한다는 언급도 있습니다. 또 "노동"에의 전폭 긍정 여부가, 도연명의 귀향, 귀농 그 적응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는 언급도 앞에 있었습니다.
도연명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저자는 도연명의 시대로부터 천 년 뒤에 지구 반대편에 출현한 셰익스피어(역시 시대정신과 천재적 개성의 혼연일체)의 <햄릿> 한 구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들며, 서양인과 중국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상기시킵니다. <논어>에도 未知生 焉知死라는 구절이 있죠. 도연명 역시 중국인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아예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회피, 도피가 아니며, 오히려 달관, 초연의 경지에 가깝지 않을지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두려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태도(p394)이나, 저자는 "서양에서 죽음에 대해 개인적 견해 하나를 내놓지 못한다면 철학 논변을 취소해야 한다"며 그 날카로운 차이점을 선명하게도 인식합니다.
그는 "문학의 표본이며 생명의 표본(p438)"입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듯 "그는 단순한 반항자가 아니었고 사회에서 도덕적 우세를 차지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재주가 세상에서 으뜸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반항하는 대상에 의존하지 않고도 존재하며 그의 의의는 항구적이고 보편적이다(p441)." 이게 강의록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함축적이고 심지어 시적인 언명, 규정이 책을 가득 채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당송팔대가의 한 명은 아니지만 당시를 애호하는 독자들이 반드시 곁에 두고 읽는 맹호연을 거론(p471)하며 그는 도연명과 달리 명백한 은사였으며 도연명처럼 생존을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이 외에도 왕유, 임화정 등 거론). 그래서인지 맹호연의 시세계에서 자연과 전원은 도연명처럼 시적 화자와 일체가 아니며 다분히 분리된 완상의 대상이지만, 그래도 맹호연에 대해서는 특히 "시인 자신이 들국화 한 떨기"였으며 도연명과 몹시 닮아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마다 모두 자신의 담장을 가지고 있다(p594)는 게 저자의 말인데 이는 앞에서 말한 지식인의 "자기 공간(p58)"과 견주어 그 뜻을 새길 만합니다. 저자는 특히 프랑스의 몽테뉴와 그를 대조하는데 몽테뉴는 특히 부유한 형편에서 여유 있게 철학을 전개할 수 있었죠. 반면 천 삼백 년 전의 도연명은 "물질적 빈곤이 그의 담장"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여기서 주위와 쉽게 융화하지 못하고 사회적 고립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조건이 생성되는데 여기서 저자는 다시 루쉰 "선생"을 원용합니다. 루쉰 선생의 담장은 "가시"였다고 하네요. 이 역시 다른 사람이 쉽게 접근 못하는 여건입니다.
전통적으로 도연명은 충절, 청렴, 자연친화 등 동아시아인이 공통적으로 아주 귀히 여기는 가치를 체화한 시인으로 숭앙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장웨이 저자가 분석하고 해설한 이 책에서 도연명은 서유럽 그 어느 천재 시인 못지 않게 개인으로서 자신만의 가치와 주제를 자신만의 운율에 담아 노래로 빚은 천재입니다. 이로서 그간 딱딱하게만 여겨진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한 천재가 "담장"을 허물고 현대 독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또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졌다고나 할까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