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톨스토이 단편선 처음 만나는 초등 고전 시리즈
김유철.이유진 지음, 민소원 그림 / 미래주니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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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모두 세 편의 톨스토이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바보 이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두 노인> 등 세 편입니다. 톨스토이 단편선은 이미 국내에 여러 버전이 나와 있고, 이 세 편도 아주 잘 알려진 작품들이라서 내용은 익숙하겠는데, 이 책은 톨스토이를 처음 접하는 어린 독자를 위한 것입니다. 친숙한 컬러 삽화와 쉬운 문장 덕분에 한글만 깨쳤다면 누구나 쉽게 읽고 감동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페이지 수가 175니까 생각보다는 두껍다고 느꼈고, 그런데도 세 편만 수록되어서 약간 의아했습니다. 성인이 읽었던 톨스토이 단편은 <코카서스의 포로> 같은 논픽션 비슷한 것만 빼면 대개 길이가 짧았기 때문입니다. 하긴 <바보 이반>은 원래 좀 길었습니다. 다 읽어 보니 약간, 텍스트가 더 자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몇 대목에서 설명이 조금 더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군인 시몬이 돈을 걷으려고 자기 땅으로 갔는데 농부들의 불평을 듣고 나서, 부자 농부인 아버지를 찾아갈 때, 원문에는 그 사이에 설명이 없으나 여기서는 "농장의 물건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픈 아내를 어찌할 수 없었던 시몬(p11)"이라며 더 부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왜 농장에 농기구, 말, 젖소 등이 없는지 성인 독자도 이해가 안 될 수 있는데 이걸 "시몬의 아내가 씀씀이가 헤퍼서 이런 자본 시설까지도 다 팔아야 했다"고 독자에게 설명을 해 준 것입니다. 앞에 씀씀이가 헤픈 아내에 대한 설정(p10)은 이미 나와 있었으니 이렇게 연결시킬 수도 있겠죠.

또 원문에는 시몬에게 불평을 하는 건 집사 한 사람인데, 이 책에서는 농부 여럿입니다. 이렇게 좀 각색하는 게 어린 독자들이 (집사가 뭔지 왜 그런 직책이 있어야 하는지 추가 지식 없이) 바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림으로는 p20에 처음 이반이 등장합니다. 원래는 이반이 청년이긴 하나 제법 나이도 있고 또 생김새도 바보 같아야 맞겠으나 이 삽화에서는 머리도 단정하고 나이도 생각보다 더 어리고 똘똘하게 보입니다^^

사실 이반은 착한 거지 바보가 아닙니다. 악마를 만났을 때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서서 이익을 얻어내는데 악마를 상대로 이처럼 침착하고 현명한 대처를 하는 게 파우스트 박사도 못한 일입니다^^ 하긴, 바보니까 복잡한 생각을 안 하고 그저 내키는 대로 행동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반은 궁지에 몰린 형 시몬과 그의 (귀족 출신) 아내가 아버지와 자신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다시 모욕을 당합니다. "내 아내가 거름 냄새가 나서 너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고 하니 나가서 먹어라." 원문에는 아내가 한 말이 "더러운 농노와 정찬을 할 수 없네요"인데 이건 딱히 냄새 문제라기보다 신분 차이를 강조한 언급으로 보입니다. 이걸 시몬이 다시 동생 이반에게 전한 건 "나쁜 냄새가 난다"인데 거름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튼 이 편이 어린 독자에게 더 잘 이해될 듯합니다. 사실 거름 냄새가 나는데(난다면) 식사를 같이하는 게 뭐 곤란하기도 하겠습니다.

여기서 이반의 대처가 현명한 게, "마침 (고생한) 암말에게 먹이도 주어야 하니 나가서 먹을게요."입니다. 어차피 자신은 해야 할 일도 있고 하니 구태여 형과 형수와 마찰을 안 빚겠다는 태도인데, 사람 사는 세상에서 최소한의 자존심 때문에 구태여 충돌하고 마는 게 보통이죠. 이처럼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건 분명 지혜이지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진짜 바보는 스스로를 필요 없이 괴롭히다 병이 나죠. 원문에는 암말에게 그냥 먹이를 주지 고생했다는 말은 없으나 농사일에 쓰는 말이 고생하는 건 당연하고, 이렇게 쓰면 이반의 착한 마음이 더 드러나서 좋습니다.

두번째 악마가 찾아와 풀밭을 진흙으로 만들어 이반의 일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이반은 바보라서(?) 진이 빠지거나 좌절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하루가 걸리더라도 이 일을 마치고 만다"며 더 의지를 불태웁니다. 불운에 직면했을 때 "이렇게 재수가 없는데 아 일할 맛이 나야 말이지"라며 중도 포기하는 게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이반은 정신적으로 지치질 않습니다.

악마는 이반이 쥔 낫의 날을 땅으로 밀어내어 또 일을 방해하나 이반은 아랑곳않습니다. 원문에는 낫의 끝을 잡고 땅 안으로 보낸다고 나오지만 이 말은 이해하기 좀 어렵고 이 책처럼 해석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때 악마가 하는 말이 "내 손이 잘리더라도..."입니다. 악마도 어지간히 무식한 게, 가망이 없는 일을 구태여 끝을 보려고 저리 힘을 낭비하니 말입니다. 이반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지만.

애써 수확한 농작물이 저장을 잘못해서 썩기라도 하면 정말 난감한 일입니다. 악마는 귀리 더미 안으로 들어가 몸에 열을 내어 귀리를 썩게 만드려 시도하다가 ㅎㅎ 잠시 잠이 듭니다. 여튼 어린 독자들은 서늘하게 보관 못 한 곡물이 썩을 수도 있다는 점도 배울 수 있을 듯합니다. 혹은, 갑자기 썩은 곡물을 보고 악마가 제 몸을 데워 장난을 쳤나 보다 하고 옛 사람들이 여겼음을 이해하겠죠. 마치 "바로워스 민담"처럼 말입니다.

pp,30~31에는 악마가 낱알을 병사로 바꾸는 주문을 가르쳐 주는데 이 부분은 박스로 처리되고 빨간색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주문을 좋아하죠. 나중에 실습 해 보고 효과가 안 나서 실망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대체로 이반 3형제의 부모는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프로디걸 썬의 아버지보다도 더) 합리적으로 생각을 하는 이들이라서 손위 두 아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고 이반의 역성을 들어 줍니다. 그러나 p51에는 아들의 바보 같은 행동에 실망했는지 바보라며 야단을 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드라마 태조왕건에서 왕건은 자신의 아내에게 약초를 주지 않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 상주 토호 아자개에게 그 귀한 걸 줘 버리는데, 이반은... 여자 거지에게, 공주한테 가야 할 약초를 줍니다.

이 대목은 마치 톨스토이의 다른 단편 <구두장이의 꿈>에 나오는, 마태복음 25:40의 가르침, 즉 가장 미미한 자에게 베푼 게 바로 예수에게 베푼 것이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제가 어려서 읽을 때에도, 아니 왜 약초도 없이 몸만 달랑 간 이반이 곁에 이르자마자 공주가 낫는 건지, 이건 반칙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사실 약초가 중요한 게 아니죠. 톨스토이의 서사적 과감함이 돋보입니다.

위(p22)에서 시몬의 아내는 귀족의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려 들었지만(또 본디 귀족이 아닌 남편 시몬 역시 그녀의 말을 따랐지만), 여기서 공주는 무려 왕의 딸인데도 멍청한(?) 이반의 말을 따라 자신도 같이 일을 하며 이반 같은 바보의 삶을 택합니다. 이 대목이 너무도 재미있습니다. 하긴 시몬은 처가에 폐나 끼치는 식충이이지만 이반은 아내의 목숨을 살려 준 은인이니 발언권의 크기가 다르죠.

여튼 이반의 부친은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었는지(?) 그 세 아들이 모두 왕이 됩니다. 이반은 그렇다쳐도 첫째 시몬은 무력으로, 둘째 타라스는 재력으로 둘 다 왕이 되었다는 게... 물론 이반이 준 군사, 금화의 밑천이 없었으면 턱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말입니다. 러시아에는 이처럼 특별한 아들들을 둔 부친이 또 있는데 블라디미르 클리첸코, 비탈리 클리첸코 두 세계 복싱 챔피언을 낳으신 분...

전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읽을 때에도, 왜 시몬은 "키가 크고 얼굴이 깨끗한 병사(p52)"만 모집했을까가 의문스러웠습니다. 키가 큰 건 그렇다 쳐도 얼굴은 왜 깨끗해야 할까요? 어느 나라 군대나 의장대, 근위병은 이렇게 뽑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몬이 필요한 건 전투병일 텐데 말입니다. 이 책에는 키가 크고 얼굴이 깨끗한 사이에 "튼튼한"을 더 넣었습니다. 이게 사실 상식에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제 마음대로 생각하기로는, 시몬 왕은 적국을 상대로 전투를 하기보다 자국민에게 위압감을 줘 수취하는 용도로 이 군대를 쓴 듯합니다. 농담이지만 시몬이 거지가 되었을 때 이반 왕은 군대에게 노래를 가르치라고 하는데(p64) 그렇다면 키 크고 잘생긴 문선대(?)가 필요할 듯도 합니다.

러시아는 역사상 사실 인도와 접점이 없습니다. 러시아와 접점이 있었던 건 투르크나 페르시아겠죠. 톨스토이는 특이하게 이반의 두 형이 인도와 적대하게 이야기를 꾸미는데, 톨스토이의 시대에 인도는 영국의 손에서 꼼짝도 못했지만 여기서는 러시아인들의 군대를 격파할 만큼 강합니다. 제정 러시아가 인도를 넘볼 생각은 잠시 품었으나 자신들의 힘이 영국을 물리칠 만큼 강하지 못했기에 실행에 옮기지를 못했습니다. 훨씬 후에 나치의 외교장관 리벤트롭은 스탈린더러 유럽을 넘보지 말고 저 아래 인도로 진출하여 영국과 대립할 것을 부추겼지만 스탈린도 바보가 아니었죠.

p75에서 악마가 변한 신사가 손이 깨끗한 걸 보고 게으름뱅이를 미워하는 이반의 동생 말라니아가 나옵니다. 공주는 그녀를 두고 "(친족호칭으로) 아가씨"라 칭하는데 원문도 비슷합니다. 영어 텍스트를 보면 이 여동생의 이름이 마르타, 마사, 이를 보고 옮긴 한국어 번역본 중에는 심지어 "몰타"도 있는데, 이 책에는 말라니아(Маланья)라고 정확히 톨스토이 원작대로 나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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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시대, 프로 일잘러의 업무 공식 S.T.A.R
김용무.손병기 지음 / 팜파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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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하는 것에도 공식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직장이건 마치 타고났다는 듯 기획이면 기획, 영업이면 영업, PT면 PT, 신입 시절부터 사수도 없이 척척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며 우리들 대부분은 신입 시절 어떤 지침이 있고 롤모델이 있어야 직장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나마 사기업은 사수가 비공식적으로 붙기라도 하지만, 공무원은 그런 것도 없고 나이가 어리건 많건 간에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해 나가야 합니다. 여튼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일하는 패턴, 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스타일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으므로 이것부터라도 우선 야무지게 챙긴다면 직장에서 훨씬 편하게 첫발을 디딜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런 책을 고를 때, 아유 그저 위에서 지적이나 안 받고 남들 하는 만큼만 좀 했으면 좋겠어,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책을 읽고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우선 그런 무사안일의 마인드 자체를 버려야, 그나마 현 직장에서 버텨내는 수준이라도 가능합니다. 내 영혼과 피지컬을 여기서 하얗게 불태운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이 책에 나온 모든 충고와 제안이 피부로 다가오거나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저자는 톰 피터스의 그 유명한 책을 인용하여, "우리 모두는 미 인코퍼레이티드의 CEO이다"라는 구절을 독자에게 상기시킵니다. 뭐 예를 들어 제가 김진철이면 김진철 주식회사의 회장님이다 이거죠. 나를 브랜딩하고 나를 최상의 상품으로 부각하며(마케팅) 또 실제로 그에 걸맞게 내실을 키워야 합니다. 

 

또 톰 피터스의 같은 책에서 "업무는 프로젝트이다"라는 말을 환기합니다. 내가 작은 회사의 CEO라고 여기고, 거래처에게 일을 따온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냥 급여를 받기 위해 시키는 일을 죽지 못해 하는 것과는 열정(p35)과 성과 면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후자의 경우 저자는 "그냥 하루 늙었다" 같은 느낌 외에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합니다. 나는 직원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맡아 오는 거래처의 사장이다,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물론 이런 마음이 절로 들게끔 사장님 역시 직원한테 최소한의 존중을 해 줘야 하고 신 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사람을 그저 이용이나 하고 최소 급여로 뭘 뽑아나 먹으려는 구시대 마인드로는 요즘은 아무도 붙어있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튼 저자가 제시하는 일잘러의 공식 STAR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살펴 보겠습니다. 

 

S(센스 오브 디렉션. 방향감각) -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고객은 누구인지를 먼저 확실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일은 그저 내가 잘하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해 달라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까지 가고 어디서 멈추며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지를 알고 그에 맞게 일을 해야 하는 거죠. 

 

T(태스크 매니지먼트) - 말하자면 디테일입니다. 막연하게 누구를 만족시켜야겠다가 아니라, 이 사람은 어디에서 언제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이것을 원하므로 1단계 이것, 다음 단계 저것 하는 식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세부 작업을 구체화하여 배분하고 현실화시키는 과정입니다. 보통 일 잘한다고 하면 이런 걸 가리키지만 저자는 보다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네 공식으로 분류를 하고 논의를 전개합니다. 

 

A(어저스트 프라이어리티) - 업무 성격에 맞는 우선순위 조정입니다. 일 못하는 사람은 성격이 전혀 다른 업무로 와서도 이전의 우선순위를 고집하는데 일이 달라지면 달라지는 대로 우선순위를 바꿔야 합니다. 


 
R(리스크 매니지먼트+리포팅+리서치) - 이 역시 어떤 사람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위기를 노련하게 넘길 때 그 사람은 윗선에게 칭찬받고 동료에게 갈채받고 부하에게 리더십을 공인받습니다. 또 리포팅과 리서칭은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p46)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첫번째, 방향성을 잘 포착하려면 저자는 이 업무의 스테이크 홀더(이해 관계자)가 누군인지를 살펴야 한다(p67)고 주장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할 수 있으나 책에서는 예를 들어서 가상의 박 차장이 영업본부의 기획통인데, 각 팀 실적을 정리하고 내년 사업 계획을 멋지게 PT할 생각입니다. 이때 영업본부장만 염두에 두면 되겠냐는 겁니다. 타 팀의 팀장들, 각 팀에서 자료 만드는 실무자(이들에게 자료를 받아야 합니다), 또 다른 본부에서 일하는 자기 같은 기획통까지 다 염두에 둬야 "하수를 면한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내가 아는 걸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알겠거니 여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공유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식의 저주(p57)를 피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 결혼을 앞둔 나 대리는 누구를 스테이크 홀더로 여기고 일을 진행해야 하는가. 물론 예비 신부가 가장 높은 우선순위지만 장인 장모님, 자신의 부모님 등이 모두 스테이크홀더이며 이들을 동시에 염두에 둔 준비라야 큰 일이 잘 마무리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모든 스테이크 홀더를 똑같은 비중으로 둘 수는 없고 우선순위, 가중치를 잘 배분하자는 게 저자의 취지입니다. 

 

거의 모든 프로젝트는 삼각관계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기대보다 너무 높은 품질을 맞춰 갖고 가면, "좋긴 한데 비용은? 요즘 이 일만 하나?(우선순위)" 같은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질이 낮으면 이는 품질사고(事故)라고 합니다(p75). 품질이 낮으면 다시 작업을 해야 하고, "일반적으로 비용을 늘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작업 시간을 추가로 투입하여(오버타임) 이를 보충해야 한다"는 거죠(p75). 그래서 비용, 작업 범위, 시간 사이의 삼각관계를 적절히 조절해서 애초에 프로젝트의 방향성 자체를 정확히 정립하고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디테일을 잘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디테일이란 것도 일의 전체를 바라보고 난 후에 업무를 쪼개야 합니다. 저자는 이를 위해 WBS를 제시하는데, 워크 브레이크다운 스트럭처, 즉 작업 분류 체계(p90)를 적극 활용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원활해지려면 계층성, 완결성, 포괄성의 원리 셋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완결성은 같은 수위에서 모든 것이 빠짐 없이 포함된다는 뜻이고, 포괄성은 하위 업무를 다 하고 나면 자동으로 직상위 업무가 완성되게 하는 걸 말합니다. 

 

WBS에도 하향식이 있고 상향식이 있는데(p96) 전자는 일하는 사람 본인이 해 본 적 있거나 전문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합니다. 후자는 기존에 없던 업무를 위해 디테일을 먼저 철저히 파악하고 서서히 윗단계로 일을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며 팀원들이 지혜를 모아 행하는 대부분의 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어느 방식이건 간에 MECE가 중요한데 이 파트에서는 별 설명이 없지만 매우 중요한 개념이므로 조금 뒤인 p120에 따로 뽑아서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사실 이 분야에 속한 책 어디서도 강조하는 개념이므로 웬만한 독자이면 내용을 알겠으나(혹은 학교에서 배웠거나), pp.120~121에서 더 심화한 버전으로 익혀 둬도 좋겠습니다. p121 말미에 잠시 참고서적 소개도 있네요.

 

두번째 T공식에서 작업의 디테일과 완성도를 강조했다면, 세번째 A공식에서는 작업과 작업 사이의 관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간트 차트가 나오는데 계획 품의서, 중간 보고서에 자주 쓰이는 형식(p127)으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만한 폼입니다. 그 뒤에는 많이들 해 보셨을 PERT, 크리티컬 패스 등이 나오는데 경영학개론 시간에 필수로 나올 뿐 아니라 각종 자격증 시험에까지 단골 출제 항목이죠. 잊지 말아야 할 건, 한눈에 보이도록 해야 관계이니 순서이니 우선순위이니 진척도니 하는 게 파악이 된다는 겁니다. 한눈에 보이도록! 이 "한눈에 보이게"의 중요성은 책 저 뒤 p254에서도 FLOW 기법을 설명하면서 강조됩니다. 

 

리스크를 고려하는 건 예전에는 CEO의 일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CEO는 최전방에서 조직의 운명을 걱정하고, 직원들은 시키는 일의 세부사항만 신경 쓰면 되었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노예한테 시키는 자존감 없는 일(p23)"이 아니라, 뭐라고요? 나한테 사장이 맡긴 프로젝트입니다. 내가 진행하는 (일단) 내 프로젝트인데 왜 내가 이 일의 리스크를 신경 안 쓰겠습니까? 무책임하게 말입니다.

 

리스크 관리에서는 발생가능성을 가로축(row), 영향지표를 세로축(column)으로 두고 매트릭스를 만듭니다(p162). 그러면 각 리스크 간의 우선순위가 보기 좋게 도출됩니다. 이 매트릭스 방법은 저 뒤 p204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시간을 고려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으로 쓰입니다. 세로축에 긴급성, 가로축에 중요성을 두고 업무를 네 칸(혹은 그 이상)에 배분합니다. 이로서 우선순위가 정해지죠. 

네번째 R 공식에는 리스크 관리 말고도 리포팅이 있었습니다. 사실 직원 레벨에서는 위기관리보다 중요한 게 (상사와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셔) 이 리포팅이 조금 더 높은 순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에서도 분량이 조금 더 많습니다. 이 리포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p174)입니다. 형식도 수신인, 제목, 도입부, 본문, 인사말에서 서명까지 깔끔해야 합니다. 

 

사회에도 해결사가 있듯 회의도 그저 회의 자체를 위한 무익한, 심지어 해롭기까지 한 회의가 되지 않으려면 퍼실리테이터가 있어야 합니다. 참석자, 프로세스, 목적, 결과 등 4P를 염두에 두고 사전에 꼼꼼히 실무를 챙기는 퍼실리테이터가 따로 있으면 좋습니다. 

 

일잘러는 항상 여유가 있고, 이 여유의 비결은 초반에 항상 80%를 미리 해 두는 것입니다. 이걸 두고 시간 파레토 곡선(p199)이라고 합니다. 파레토의 80대 20의 법칙을 떠올리면 명칭의 유래와 함의까지를 알 수 있겠네요. 피터 드러커는 "고성과 조직일수록, 또 효율이 높은 조직일수록, 일을 할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p201)"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였는데, 일을 할 때 한 가지 일만 하면 오히려 집중도가 떨어집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업무의 이종교배라고 부릅니다(p217). 일과 일뿐 아니라, 업무와 학습 역시도 이종교배의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단 일과 놀이의 이종교배는... 글쎄요. 

 

아무래도 직장인에게는 정보가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얼마 전 동학개미가 일으킨(게다가 유동성이 대거 풀린 국제 장세에다가 뜬금없던 테슬라 폭등이 합쳐 벌어진) 주식 열풍 때도 초기에 들어가서 요령껏 분위기 파악한 사람은 큰 돈 번 사람이 제법 많고, 끝물에 들어간 사람은 결국 상투만 잡고 물린 겁니다. 그래서 네번째 공식 중 리서치가 무척 중요한데 단 책에서는 5장에 통합하지 않고 7장에 따로 분리시켜 놨습니다. 

 

아날로그 방식의 메모 중요성은 여러 책에서 강조하는데 이 책도 예외가 아니며 "아날로그 메모 시스템을 만들자(p245)고 제언합니다. 좋은 예시로는 코넬식 노트 정리법이 있습니다. 정리와 메모의 달인으로는 봉준호, 정구호, 신유진 등의 유명인이 모범으로 제시되네요. 

 

p267 이하에, 본문의 모든 내용이 비주얼로 깔끔하게 요약되며 아래에는 독자의 노트 공간도 제공됩니다. 이런 책은 확실히 눈으로 읽고 끝내면 안 되며 내가 펜을 잡고 실전 적용을 해 봐야 합니다. 

 

매 챕터가 끝날 무렵 저자는 예제를 하나씩 제시하여 실전에서 이 공식(STAR)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 부분까지 꼼꼼히 읽고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어떻게 응용이 될지 숙고하는 과정까지 거쳐야 책을 완전히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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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 마스터 - 아이디어에서 기획서 작성, 제안 통과까지 프로 일잘러들의 실전 스킬
윤영돈 지음 / 예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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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는 기획서에 대해 보통 오해하는 게 있습니다. 앙상하고 건조하며 기계적으로 최소한의 내용만 추린 게 잘된 기획서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혹은 반대로, 잔뜩 어려운 내용만 열거하며 전문성을 과시한다거나 말이죠. 그러나 윗선에서 좋아하는 기획서, 내용이 알차고 명작으로 꼽히는 기획서는 꼭 그런 게 아닙니다. 기획서도 엄연히 글이니만큼 형식상으로는 탄탄한 구조를 갖춰야 하고 내용상으로는 시적인 영감이 번득이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단번에 통과되는 기획서", "소통에 능한 기획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독서를 마치고 복습도 할 겸 책 내용을 이 독후감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단 저자는 "기획서는 쓰는(write) 게 아니라 만드는(build) 것"이라고 합니다. 또 "톱다운이 아니라 바텀업(p16)"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 마디 말이 책 전체를 꿰뚫는다 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이미 머리 속에 100% 완성된 그림이 자리잡고 있다면 그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술술 적어 내려가기만 하거나, 결론이 이미 내려졌기에 깨끗한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제목만 써도 벌써 하부구조가 자동으로 완성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획, 기획자는 극히 드물며, 따지고 보면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기획이라 해도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저런 건 무오류의 사고를 전제로 삼기 때문이죠. 건실하고 실용적인 기획은 기초부터 탄탄히 쌓고 실행의 문턱을 넘어 목표를 향해 높이 도약하는 청사진이어야 합니다.

"기획서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문서를 만드는 것이다." 에드워드 데밍 박사가 고안한 PDCA 사이클이 기획서를 만드는 데 보통은 가장 널리 쓰이는 절차라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플랜, 두(do), 체크, 액션, 즉 "계획, 실행, 검토, 개선"의 과정을 가리키죠.

설계도에 비유되는 기획서는 일단 두 가지 별개의 요소로 구성됩니다. 기획이 있고, 또 작성이 있습니다. 기획에도 7단계가 있고, 작성에도 또한 7단계가 있습니다. p19에 나온 내용을 잠시 옮겨 보면


먼저 기획의 7단계는 1) 분석 2) 컨셉 설정 3) 자료 수집 4) 현황 조사 5) 대책 수립 6) 전략 설정 7) 실행 계획 입니다. 책에 나온 도해에는 이 과정이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바텀 업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 작성의 7단계는 키워드 설정부터 마무리 퇴고까지 7단계인데 이 과정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탑다운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기획서는 내용을 만드는 단계인 기획에서는 바텀업, 그 내용을 실제 작성하는 단계에서는 글쓰기의 일반 원칙인 탑다운으로 가야 하는 거죠. 또 저 뒤 p66에는 바텀업=확산형 사고, 탑다운=수렴형 사고로 따로 성격 규정을 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기획적 사고가 바로 확산적 사고를 의미하는 건 아니며, 두 사고를 통합해야 가능하다(p67)"고 합니다. 혹시 이 대목(p19)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또 책에서 지적하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보통은 일일이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지만 매뉴얼대로 하면 엄격이 구분되는 건데, 기획서, 계획서, 제안서, 보고서는 알고보면 다 다른 것입니다. 저자가 이를 알기 쉽게 건축 실무에 비유해 놓았는데,

1) 기획서는 설계도
2) 계획서는 일정표
3) 제안서는 모델하우스
4) 보고서는 현황판

위와 같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문서 작성을 조금이라도 해 본 독자(설령 신입사원이라고 해도)라면 이 비유가 확 와 닿을 것입니다. 과연 그렇죠.

"기획서는 글을 잘 쓰기 위함이 아니라, 채택되기 위한 문서를 만드는 것이다(p21)." 이런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채택 안 되는 기획서를 쓰게 되는 이유는 이런 원칙, 애초의 목적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써서 과연 채택이 될까?" 절실한 고민 없이 그저 곁눈으로 보고 배운 요령만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하나마나한 기획서 쓰기는 끝없는 좌절만 부를 뿐입니다. 일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한다는 생각으로, 빠릿빠릿하고 감동까지 주는 기획서를 작품 하나 만든다는 일념으로 지어(build) 나가야 합니다.

"마음을 훔치기 위한 기획" 저자는 접근, 다리 놓기, 차별화의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지금 내가 컨펌 받아야 하는 상대가 누구인가요? 실무자는 전문성에 관심이 많고,, CEO 같은 결재권자는 얼마나 수익이 나느냐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이 방향성을 잘못 잡거나 반대로 설정하면 그 기획은 효과를 못 내거나 역효과를 냅니다.

또 "자신의 유식함을 그저 과시하는 기획서는 결재권자의 이해를 돕지 못해 결과적으로 결재를 못 받는 경우가 있다(p27)"고 합니다. 읽는 이가 결재권자, CEO일 때 특히 이 점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내용만 풍성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CEO라면 설령 아랫사람이 어려운 기획서를 상신했다 쳐도 자신이 소화를 해 내며 내용으로 승부를 보는 기획서를 컨펌해야 올바르겠습니다만 현실이 꼭 그렇지는 못하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나를 알아주는 CEO를 찾아 매번 회사를 옮겨다닐 수도 없고... 또 "기회의 이점을 중심으로 최대한 간결하게 어필하는 게 좋다"고도 책에서는 말합니다.

"상대의 니즈보다는 원츠를 찾아야 한다(p33)." p34에는 원츠의 특징으로 2차욕구, 잠재적 욕구,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욕구, 미래 시점 지향 등을 듭니다. 니즈는 이 원츠의 반대입니다. 기획서를 지을 때에는 이 니즈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상대의 은밀한 내심까지 다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가 자신의 원츠였는지도 미처 몰랐던 것마저 읽고 작성하는 기획서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가 말한 것만 곧이곧대로 받아적지 말고, 그를 바탕으로 삼아 "혹시 이런 게 더 있는데 빼먹고 말 안 한 것 아닌가?"하며 적실한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걸 책에서는 "피드백이 아니라 피드포워드"라고 하네요. 말하자면 선제적 질문쯤이 되겠습니다.

"당신이 원했던 건 이거 아냐?" 우리는 스마트폰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그걸 속으로 얼마나 원했는지 알았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저 말(p36)을, "기획서 짓기"에도 적용하라고 저자는 제언합니다. 책 p39에는 "니즈 원츠를 넘어 디맨드로 가야 하며, 니즈나 원츠를 디맨드로 착각하지 말라"는 필립 코틀러의 명언도 인용됩니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습니다. 미팅 당시에, 혹 의문나는 점이 있으면(아예, 나중에 생각날 것 같은 사항까지도 지금 미리 생각해 낼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질문을 해서 상황을 분명히해야 하며, 나중에 가서 "혹시 이건...?" 같은 말을 해 봐야 이미 "비 활성화"되었을 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예를 들면, 쇼핑몰에서 뭘 주문했다가 혹시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취소를 하고 싶어도, 이미 셀러에게 통고가 간 후라서 취소 버튼이 비활성화된 경우나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기획은 단순한 아이디어 창출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실제로 구현하게 하는 과정(p46)을 말합니다. 예전에 인기 작곡가 김창환씨("잘못된 만남", "쿵따리샤바라 등")는 "대중보다 한 발짝도 말고 딱 반 발짝만 앞서라"고 했습니다. 이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옵니다. 대중의 원츠, 니즈, 디맨드보다 너무 앞서갈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뜻이겠습니다.

육하원칙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으나 책에서는 십하원칙을 설명합니다. 5W 4H 1T라고도 합니다. 5W 1H까지는 보통 아는 내용이고, 나머지 3H는 how many, how much, how long, 그리고 1T는 target이라고 합니다. target은 주고객 대상의 연령, 직업 등을 가리킵니다. 사실 마케팅 이론에서는 저 target 그룹에 대한 지적을 수십 년 전부터 해 오긴 했습니다.

매킨지에서는 grow 질문법을 중시합니다. goal(목표), realty(현상확인), option(대안), will(실행의지) 입니다. 이런 신랄한 질문을 먼저 자신에게 던져 봐야, 작성하려는 기획안이 빈틈 없고 내실에 가득찬 것으로 형성됩니다.

주식 전문가 중에도 그저 현황의 분석을 보고서나 말로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꼭 마인드맵을 곁들이는 분이 있습니다. 주식 투자가 성공하러면 하나의 사건이 파생하는 여러 단계의 다른 사건들을 거쳐 특정 종목들에 가격 상승, 하락 등의 효과를 끼치기 때문이죠. 이처럼 생각을 그저 생각으로만 담아 두지 말고 "이미지화(p77)"하면 기획의 과정이라는 막막한 길에 서서 그저 직감과 우연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지도"를 갖고 여행하는 셈이 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것 관련해서 저자는 책 앞 부분인 p18에서 이미 "초안은 컴퓨터가 아니라 반드시 백지에 핸드라이팅을 하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이 책에는 참 실감나는 충고가 많은데, 주변에 보면 검색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따로 있습니다. 책에서 하는 말은, "네이버나 구글의 검색 엔진이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최적화한 키워드로 검색하라(p84)"인데, 이건 블로그 마케팅에서 중요시되는 원칙이라고 합니다. 꼭 블로그 마케팅이 아니라 해도 그저 자신의 궁금함 해결이나 업무 관련 정보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 pp.90~91에는 정보 수집에 도움이 되는 여러 정보 사이트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실제 검색을 하다 보면 무엇보다 본인이 자기 일에 맞는 정보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사이트가 따로 있습니다. 그걸 그때그때 우연에 맡기지 말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다음 번에도 써먹게 해야 합니다. 시행착오라는 게 얼마나 귀한 자산인데요. pp.194~195에는 차트나 무료 이미지를 구할 수 있는 사이트들도 소개됩니다.

"이건 너무 밋밋하지 않나요?(p99)" 사실 일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 혹은 지적이 이런 것이겠죠. 그때는 "심플한 것일수록 이해가 쉽다"가 답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이 책에서는 "핵심만 잘 간추려서 디자인하고 단순화한" 기획서의 미덕을 무척 강조합니다. 비단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입장들도, 장황하고 요령부득인 기획서를 지향하는 쪽은 아무도 없죠. CEO, 심지어 실무자라고 해도 시간이 돈이고 남의 장광설을 즐겨듣는 취미는 누구도 없겠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KISS의 법칙, 즉 keep it simple. stupid! 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정리합니다. 재미있습니다. 기획서에 비주얼을 막 채워 페이지 수만 늘이는 걸 위에서는 너무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런 기획서는 나 일 많이 했어요 같은 자기 만족, 혹은 변명이 깃든 기획서이지 상대더러 읽고 이해해 달라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카테고리가 아니라 키워드 중심으로 진행하라는 말은 저 뒤 p160 이하에도 다시 나옵니다.

문제를 구체적이고 정확히 인식해야 답이 제대로 나옵니다. 책에는 p109에 4C 분석이 나옵니다. 고객(customer), 경쟁(competitor), 기업(company), 채널(channel) 분석이 그것입니다.

기획서는, 내가 이런 걸 준비했으니 당신은 받아들여라는 식으로 털썩 던지는 게 아닙니다. 이게 곤란하다고 여기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이걸 또 준비했다며 플랜B(차선책)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소설 <삼국연의>(뿐 아니라 중국 정사서류)를 보면 책사들이 항상 주군에게 상책, 중책, 하책을 제시하지 자신이 최상이라 여기는 한 가지 안만 불쑥 내미는 게 아니며 또 그래서 그들이 신임을 얻고 유능하다고 인정 받는 것입니다.

"나는 권투선수였습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p138)." 심지어 저는 최근에 "나는 소년보호처분 대상자였습니다"로 시작하는 글도 읽어 보았습니다. 그 뒤에 쓰인 말은 뭐 웬만큼 교육 받고 상식을 갖춘 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이라 쳐도, 자신을 소년범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저 한 문장 덕분에 완전히 다른 주목도, 존재감을 가지게 되는 거죠("소년범이 잘 교화되어 어른이 되어 이제 이런 성숙하고 이지적인 생각까지도 가능하다는 것?"). 이처럼 책에서는 공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절절한 스토리에 색깔을 입히라고 권합니다. 또 이런 스토리는 신뢰를 얻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된다고 합니다(p140). 물론 관심을 받고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어려서 일부러 범죄를 저지를 필요까지는 없겠습니다만(농담입니다).

기획서는 말의 성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획서를 읽는 사람은 훌륭한 문장을 읽고 감탄하거나 예전 과거의 장원급제를 뽑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자신이 돈을 벌 수 있는 방안이 뭔지에만 관심이 있는 거죠. 돈 버는 게 목적인 사람 앞에 앉혀 놓고 다른 이야기를 해 봐야 누가 그걸 들을 리 없습니다. "말만 앞서는 구호보다 실제적인 이익을 챙겨 줘야 한다(p149)." 책에는 또 이런 말도 나옵니다. "일류 기획과 삼류 실행, 삼류 기획과 일류 실행, 둘 중 당신은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마윈과 손정의는 후자에 의견이 일치했다고 합니다. 사실 마윈이 알리바바 창투안을 갖고 손정의를 찾았을 때 손 회장이 눈여겨 본 건 그의 기획안이 아니라 범상한 실행의지를 누구한테나 각인시키는 마윈의 태도와 개성이었을 겁니다. CEO뿐 아니라 심지어 일반 대중이라고 해도, 의외로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민첩하게 계산한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좋게 만들 수 없다면, 적어도 좋아 보이도록 만들어라 - 빌 게이츠(p176)." 목적에 맞는 레이아웃을 결정하고 문서 용도에 맞게 편집하라고 합니다. 항목을 잘 구분할 것이며, 워드는 대개 세로문서이며 PPT는 가로문서이니 그에 맞는 포장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p208에서 저자는 "프레젠테이션은 '선물'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동시에 PT의 기본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정신이 버쩍 들게 하는 한 줄 요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치 애인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고 정성을 다하듯, PT에도 그런 성의가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능력은 타고날 필요도 없고, 설령 말투가 어눌해도 메시지가 창의적이면 청중은 자연스럽게 주목, 경청하게 된다고 합니다. PT에도 TPO 전략이 필요한 건 물론입니다. 전문용어를 남발하지 말고, 오버액션 하지 말고, 청중이 듣거나 말거나 나는 떠든다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청중에게 수시로 질문을 하는 형식도 좋다고 하네요.

p221에는 저자 윤코치의 프레젠테이션 노하우가 있는데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하라, PT 기술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혀라, 최신 도구를 구비하라 등이 있습니다. 프로는 "자신감"으로 아마추어와 차별되며, 스스로 촬영을 한 후 자신에게 피드백을 보내 보라고도 합니다. p241 이하에는 PT 십계명, 그리고 기획용어사전이 나오는데 혹시 이 책 본문을 읽는 중 모르는 말이 나오면 여기서 찾아 보면 될 것 같습니다.

p22에 나오는 "한 번에 컨펌받는 기획서"의 특징 일부를 인용하며 독후감을 마무리짓겠습니다.

- 도입부에 결론을 배치해서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 마지막에 한 방의 훅(hook)을 넣어라.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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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 현대 주식시장의 핵심 메커니즘을 밝히다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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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래소는 아득한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군부대 내 매점을 PX라 부르는데 이 역시 "거래소"에서 온 이름이며 이 고전 서문에서 저자 막스 베버 본인이 자세하게, 혹은 난해하게(?) 설명하는 바와 같습니다. 이 간략한 고전은 본디 막스 베버(<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로 한국에는 널리 알려진, 지지난세기의 독일사회학자)가 "노동자를 위해 쉽게 거래소의 본질을 요약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사실 너무 쉬운 설명서와 PPT에 익숙해진 현대의 게으른 대중에게는 이마저도 어렵고, 아니 어렵다기보다 "거래소의 본질이 이처럼이나 심오했나?" 같은 경외감을 부르기도 합니다. 여튼 세기의 천재였던 막스(Max) 베버(Weber)의 책은 그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정독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 고전에서 베버가 주제로 삼는 건 주로 "증권거래소"입니다. 꼭 폼나는(?) 증권거래소뿐 아니라 무슨 농산물, 원유 등 중간재, 하다못해 공동어시장의 거래소 역시 그 나름 꽤 복잡한 원리에 의해 작동됩니다. 책을 통해 베버는 아마 독일의 노동 대중에게 최대한 간명하게 거래와 거래소의 본질을 가르치고 싶었겠지만, 우리가 얻는 건 간단한 이해와 끄덕거림이 아니라 체제와 현상 저 깊이에서 작동하는 근본원리에 대한 심오한 통찰입니다.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말입니다.

막스 베버는 보면 책 서문이 참 어렵습니다. 물론 본문도 어렵지만 서문이 왜 이처럼 어려운지 텍스트와 씨름하다가, 혹은 대체 왜 이렇게 서문을 어렵게 썼는지 그 의도를 이해하려 들다 잠깐 눈이 감길 만큼 어렵습니다. 사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서문을 보면 독자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게 단초를 잡아 주는 게 아니라, 아직 나오지도 않았을 초판의 내용에 대한 (평단이나 반대 진영의) 예상되는 (가상의) 반론을 놓고 미리 재반박을 뭐 한다든가, 천재 특유의, 일반인에게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부지런한 세팅(?)이 엿보일 정도지요. 이 고전도 저는 본문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서문으로 돌아와 여기여기는 왜 이런 말을 썼는지 다시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만 저의 능력으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주식을 채권과 혼동하기 쉽다(p28)." 제 주변에는 아주 감이 좋아서 주식은 물론 채권도 그저 차트만 보고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어 최상의 시점에 매도 매수를 능란하게 하는 이가 있고, 이런 분에게는 사실 주식/채권의 분별도 필요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공부를 하고 나서 무슨 투자를 해도 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 베버는 주식을 일러 "말하자면 채무 증서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채권의 본질은 채무증서와 완전히 같지만(같음을 전제로 하고), 주식은 "비슷하다"고 그는 말하는 거죠. 이렇게 말을 해야 회사법제에 대해 아무 기초 지식이 없는 노동자가 잘 이해할 수 있겠지요(그나마). 이 구절은, 본인의 그 명석하고 천재적인 두뇌로는 주식과 채권을 혼동할 우려가 꿈 속에서조차 없을 텐데도 무지한 노동자의 처지에 최대한 서 보려는 관대한 그의 태도를 증명하는 부분입니다.

현대의 주식 거래에서 많은 이들은 유상증자를 할 때 예컨대 왜 60,000짜리 "시가"의 주식을 100% 유증한다면서 30,000짜리 두 장으로 나눠 줄 뿐인지 궁금해합니다. 액면분할과 무엇이 다른가 하면서요. 베버는 이 책에서 "주주에게는 (액면) 1000마르크로 평가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하며, 주식, 혹은 지분의 가치가 일단은 액면가임을 설명합니다. 물론 실제 납입한 금액은 그때나 지금이나 액면가를 훨씬 넘는 게 보통입니다. 또 그는 "채권자의 채권(債權이기도 하고, 여기서는 債券이기도 합니다)"과 주식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파산 시 잔여재산청구권이라는 점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당연히" 채권자는 주주보다 선순위여야 한다는 거죠. 이게 바로 주식이 채권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입니다.

주식회사 제도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계 최초로 알려졌지만 법제화가 치밀하게 이뤄져서 사업가는 물론 일반 대중도 어떤 속임수나 갑작스러운 부도 위험 등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고 참여 가능한 반영구적인 제도로 주식회사 시스템이 정착한 건 독일에서 그로부터 350년 정도가 지나 악치엔레히트, 즉 주식(회사)법이 만들어진 후입니다. 즉 이것은 막스 베버와 동시대의 사건인 거죠. 베버는 "경영 자체는 관심이 없고 배당 수익에만 골몰하는 주주 혹은 투자자를 위한 제도(p33)"라며 그 본질을 정확히 짚습니다.

베버는 사회학자답게 중세의 장원제도도 예시의 하나로 듭니다. 장원 역시 영주와 농노가 일정 공동 투자를 한 산물이라는 겁니다. 영주가 외부 세력으로부터 무력적 보호를 베풀고, 농노는 일정한 토지를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으로 투자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장원에는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거나 이익을 그로부터 취할 수 없는데 "투자자"에게 배타적으로 이익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버의 설명을 들으니 주식뿐 아니라 중세 장원까지도 새롭게 보이네요.

주주가 받는 자본수익, 즉 배당금을 두고 그는 "자본을 빌려 준 저당권자가 받는 이자"로 비유(p34)해서 설명합니다. 물론 이는 노동자 독자의 수준을 감안한 일종의 "비유"이며, 주주의 권리는 보통 개별 부동산에 특정하여 설정되는 저당권과는 법제적으로 크게 다르지만 비슷한 구석도 분명히 있습니다.

p45에서 그는 독일 거래소만의 "물리적" 특징을 설명합니다. 상품이건 증권이건 한 군데에 모여 있는 게 특이하다는 거죠. 이 책에서 "거래소"라 함은 물론 증권거래소가 주된 토픽입니다만 역사적 발달 과정을 고려한 서술이다 보니 상품거래소도 자주 언급되며 실제로 우리가 지금 다루곤 하는 "선물"도 비록 증권화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물건이 그 본체입니다. 대두, 옥수수, 구리, 은, ...

거래소의 중개인, 입회인 등의 직책이 설명되며 이런 자리 역시 "사실상" 팔고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도 한국거래소가 국가 기관이 아니며 민간 조직에 지나지 않는데 다만 은행처럼 고도로 공신력이 높은 것뿐입니다. 서유럽(독일 포함)은 당연히 민간에서 오랜 역사를 두고 이런 제도가 만들어졌으니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영국, 프랑스 등은 독일처럼 늦게 통일이 이뤄지고 인위적으로 무슨 제도를 급히 만든 게 아니라서 당연히 거래소 조직이 한 군데 모여 있질 않았겠죠. 함부르크 거래소의 중개인들이 프랑스 등과는 달리 특권이 없다는 점도 베버는 지적하는데 이것도 연혁적으로 같은 이유입니다. 베를린 거래소는 함부르크와 사정이 달라 "상인 사회의 장로들 집단"에 가깝다고 하는데 그다운 노련한 비유입니다.

"명예감정은 모든 사회조직의 힘이다(p53)" 독일어에는 다른 언어에는 없는 독특한 개념이 많은데 저 명예감정이라는 말도 법학에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의 보호법익으로 삼곤 하는 것입니다. 사실 거래소뿐 아니라 어음 수표 제도도 그렇고 지점, 대리인, 지배인 등을 여러 지역에 둔 상인 제도 자체가, 고도의 신뢰가 없으면 애초에 유지가 안 되는 거죠. 중세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그리스의 왕족들이 즉위 후 채무를 갚지 않자 군대를 조직해서 다른 일 하는 척 하면서 엉뚱하게 콘스탄티노플로 쳐들어가 쑥대밭을 만들고 직접 채권 추심을 헸는데 그게 바로 4차 십자군 운동이었습니다. 저 말에 대해 베버는 각주에서 "나의 (이) 의견은 이 분야의 가장 유명한 전문가들과 일치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ㅎㅎ

공동어시장이나 농산물 시장에 가면 새벽 시간에 다소 기이한 형태로 "경매"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죠. 주식 거래 역시 (지금은 전산화가 완벽히 이뤄졌다뿐) 매도자와 매수자의 상호 경매 형태가 발전한 것입니다. p62 이하에서 베버는 가상의 중개인 "마이어"가 러시아 루블 화를 매매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구태여 루블화를 예시한 건 p97 각주에 나오듯 저자가 은행가 파울 폴케 스캔들을 아마 염두에 두어서인 듯합니다(스캔들은 이 책이 쓰여지기 3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 "An Sie(당신에게)!" "von Ihnen(당신에게서)!" 독어에서 경칭을 나타내는 2인칭 대명사는 저처럼 대문자로 시작하죠.

p67에는 재정거래의 개념이 나오는데 몇 달 전 비트코인에 유독 큰 프리미엄이 한국의 코인거래에서만 붙는 걸 이용해서 중국인 투자자들이 엄청 돈을 벌었다고 하죠. 이게 바로 알비트리지, 즉 재정거래의 좋은 예입니다. 베버는 이를 통해 "투기", 즉 시간에 따른 가격의 앙등을 이용한 이익 수취의 개념에까지 설명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 다음, pp.72~82로 이어지는 설명은 바로 "선물(先物. future) 거래입니다. 이 열 페이지 동안의 설명은 매우 쉽고도 정확해서, 거의 백 년 전에 이뤄진 서술이지만 현재의 선물 거래에도 그대로 적용한들 별로 어색한 구석이 없습니다. 무슨 단톡방에서 나눠주는 얄팍한 pdf보다 이 고전의 이 파트가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p67의 재정은 裁定이고 p96의 재정은 책에 나와 있는 대로 財政입니다. 발음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말이죠. 거래소의 규모가 커지면 이 품목을 거래하는 (세계) 시장 안에서의 위상도 커지고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거래소가 소재한 국가의 위상이 커진다는 말도 해당 페이지에서 베버는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잡주 잡주 하는데 이게 속어나 비어가 사실은 아니며(?) 이 책 p97에 나옵니다. 원문에는 kleine Papiere(작은 株)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독일 고전 답게 거래의 세세한 과정에서 중개인의 업무와 신분까지, 경제학적 측면은 물론 사회학적 고찰이 이뤄지며 결론부분에 가서는 미시가 아닌 "국민경제"에의 파급까지 두루 분석이 이뤄집니다. 투자의 기본은 일확천금이 아닌, 언제나 기본에 충실하고 대상에의 철저한 연구 끝에 이뤄지는 매매임을 잊지 않게 해 주는 명저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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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 프랑수아 를로르 장편소설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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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이지만 프랑수아 를로르의 기존 작품 꾸뻬 씨 시리즈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중간쯤인 p77에 꾸뻬 씨가 이 책 중에서는 처음 등장하고 이후 계속 감초처럼 나와서 울릭이 방황할 무렵 수시로 도와 주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울릭은 물론 강한 사람이라서 남의 도움이 거의 필요 없긴 하지만요.

이누이트 족은 세상이 온통 영(靈)으로 가득찼다(p17)고 믿습니다. 울릭이 어느 석유 회사와 그 외 여러 단체 협업으로 기획된 행사에서 이누이트 대사 역할을 맡아 세계적인 대도시인 파리에 왔을 때, 그는 이상하게도 여기에서 영을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이누크라서 카블루나(이누이트 입장에서 이방인이라는 뜻의 단어)의 영을 못 본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도시 사람들이나 도시 안에는 영이 이미 떠나서인 줄 나중에 (우리 독자들과 함께) 알게 됩니다. p122에는 프랑스에서도 "숲"은 영으로 충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도시 사람들도 언제부터인지 떠나서 부재한 영을 찾기 위해 알게모르게 노력 중이며, 문제를 안 이상 도로 찾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약간 스포지만) 울릭은 방송 대담 쇼에 출연하고 광고에 등장한 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는데, 세계인들이 그에게 호응을 보낸 건 물론 개성이 재미있었서도 있겠지만 그에게서 자신들이 오래 전에 잊은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벽지 문명(현대인들이 원시 혹은 야만이라고 부르는 전통 문명)에서 한 개인이 도시를 찾아 이방인처럼 고독을 느끼는 설정은 여태 여러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 채용해 왔습니다. 이 작품이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그러겠거니 생각하는 전통 문명 출신 개인의 사고과 행동이 아니라, 보다 철저히, 진짜 현지인의 마인드와 느낌으로 주인공의 세계를 꾸려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서야 "진짜 현지인이라면 아마 이렇게 하겠구나" 같은 각성이, 기존의 선입견을 몰아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울릭은 물론 이누이트의 전형 범주에 넉넉히 속할 만한 개성이지만, 그저 정의롭고 순박하며 성실한 사람만은 아닙니다(물론 우리들 도시 사람에 비하면 여전히 그러합니다만). 그는 처음 파리에 왔을 때 고독을 못 이겨 여성을 찾는데 고향에 두고 온 구(舊) 약혼녀 나바라나바를 꿈에도 못 잊는다는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 울릭이 아직 혈기왕성한 청년임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또 p83에는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이누크 남자는 여자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도 나옵니다). 여튼 그가 파리 호텔에 묵으며 밤에 한 행동은 엄연히 성매수인데 이를 알선해 준 자가 에스키모(틀린 표현이라고 하죠)한테는 중국인이 알맞겠다고 여겼는지 중국인 성매매여성을 들여보낸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울릭은 카블루나들이 "모두 직업이 있다"는 걸 아주 특이하게 생각합니다. 이누이트는 남자는 모두 사냥꾼, 여성은 집에서 가사노동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p28에서 그는 대뜸 파리에 오자마자 이 생각부터 하며, 저 뒤, 소설 중후반 TV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이 말을 꺼내 대중의 관심, 호기심을 얻게 됩니다. "아 저 사람은 우리를 그런 식으로 보겠구나" 같은) 앞에 나온 이름 모를 그 중국인 여성은 "다정함을 판다"는 식으로 그는 이해합니다. p233에서 울릭은 "남자가 고독을 더 탄다"고 하며, p103에는 "고독과 맞서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울릭은 꿈에도 나바라나바를 잊지 못한다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의 눈으로, 고향 마을의 여성들과 이곳의 카블루나 여성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꼼꼼히도 분석합니다. 분석이라기보다 일차 관심사가 그쪽이니 그런 생각부터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를 "최악의 조건(p266)이라며 자학하는 아드린느에게 그는 "이누이트 사회에서라면 인기가 좋았을 것"이라 위로하며 저 앞 소설 중반부에서도 "도움"을 제안했었지만 거절당했던 적 있습니다. 그래서 아드린느가 나중에 울릭이 유명인사가 되고 난 후 집에 초대했던 건데 한 맺힌(?) 여성들의 열띤 토론을 듣고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농담)을 하자 그는 아니라고 합니다. 당황하긴 했지만 이누크(p218에서 이누크는 단수, 이누이트는 복수[종족명]라며 울릭이 명확히 설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죠.

울릭은 용감한 사람이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북극곰 올라와 함께 영상을 찍을 때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아마 이를 본 카블루나들이 이상하게 여겼겠으나, 그는 이미 곰 두 마리를 죽인 적도 있는 타고난 사냥꾼(p68에서 자폐아 토마스가 얘기를 해 달라고 조릅니다)입니다. 다만 그는 당시 룰을 어기고 사냥을 했으므로, 이에 노한 곰의 영이 그를 벌하지 않을까가 두려웠고, 이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인과응보의 죄의식, 혹은 명예감정에 가깝죠.

울릭에게 카블루나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더 수수께끼입니다. p67에서 그는 카블루나 여성들이 "이해심 많은 남자"를 찾는다고 했을 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를 못합니다(이해보다는 동의에 가깝지만). p231에서 여성들의 대화를 듣고 난 후 울릭은 혀를 차는데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겠냐는 뜻에서입니다. p202에서는 꾸뻬 박사에게 "백마탄 왕자"라는 말이 있다는 걸 처음 듣고 자기 나름대로 "좋은 남자(줄리엣의 친구 디안[p94]이 말한)"를 떠올립니다.

당연하지만 울릭은 이누이트에게 아주 스테레오타입인 전통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습니다. p241, p244에서 그는 처음으로 "마초"라는 단어를 들었는데 무슨 뜻이냐고 묻는 울릭에게 여자들은 "한물 간 고루한 남자"라고 대답해 줍니다. 울릭이 언제나 되고 싶어했던 게 바로 그런 유형이며 이 여자들이 말하는 마초가 사실은 자신임도 눈치채게 됩니다. 아니 대체 마초가 무슨 잘못이냐, 울릭은 이렇게 생각할 뿐이지만 비단 이 부분뿐 아니라 아직은 젊은 울릭이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 점에 적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그 성숙해 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플로랑스 같은 여성은 "남자의 영을 가졌다(p108)"고 그는 여기며, p33, p180, p185 등에서 남자 없이도 자기 일을 척척 해 내는 여성들을 보고 그는 "'추장'이 될 자격이 있다"며 높이 평가합니다(p108에서 올릭은 플로랑스를 두고 "신기한 방법으로 얻은 완벽한 금발"이라 평하는데 물론 그 뜻이 뭔지는 우리가 다 잘 알죠. 한국인 중에도 많습니다). 추장은 '리더, 보스' 정도로 옮기면 적당하겠습니다. 사회에는 크고작은 다양한 보스가 있으니 말입니다.

p135에서 울릭은 "진정한 남자라면 나클리크를 타인에게서 얻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위안" 정도의 뜻입니다. 닥터 꾸뻬는 그 말을 듣고 "나는 나클리크를 파는 사람이군요"라고 대꾸합니다. 이처럼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처지 개성, 또 서로가 속한 문명의 특징을 객관화하는 과정에 깊이 몰입합니다. p81에서 나폴레옹이 많았다면 작은 문명들은 일찍 다 멸망했을 것이라고 닥터 꾸뻬가 말하자, 그를 위대한 사냥꾼으로 알고 있던 울릭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폴레옹을 침략자로 인식하는 건 독일, 영국 등의 정서인데 닥터 꾸뻬는 리버럴 성향인지 프랑스인이면서도 이러네요.

p210에서 울릭은 불과 몇 번 잤을 뿐인데도 이제 마리가 다른 남자와 자는 걸 상상도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ㅎㅎ 하긴 우리도 전 여친이 결혼했다는 소식에 분해서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울릭과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습니다.

p199 이하에는 토크쇼 장면이 나오는데 울릭은 그 당찬 여성이 객석의 파란 셔츠 입은 남자(그저 관객이며, 사실 쇼의 재미를 위해 방송국 측이 일부러 심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왜 웃어넘길 뿐인지 이해를 못합니다. 하긴 우리 나라라고 해도, 이런 쇼의 포맷과 특징에 익숙지 않은 시골 노인이라면 똑같이 이해 못 할 형식, 상황이긴 하죠. p74, p37에서 욕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누이트 사회라면 살인이 날 만했을 겁니다. p37에서 울릭은 마리 같은 용감한 여성이 왜 지나가는 남성 난폭 운전자에게 욕을 듣고도 그냥 넘기는지, 그녀의 명예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 한국에도 이런 사람은 많죠. 또 저는 p37을 읽으면서, 상대가 여자라고 무조건 무시하고 욕하는 난폭운전자가 파리에도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p162 이하에서 울릭은 마리 알릭스와 긴 대화를 나누는데, 이 대목이 현대 프랑스 돌싱 정서를 잘 보여 줘서 흥미롭습니다. 남자건 여자건 같은 또래에게는 매력을 못 느끼고 나이 어린 상대를 찾는데, 나이 어린 상대는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없으면 관심을 안 보인다는 식으로 고충을 말합니다. 물론 이는 한국도 다를 바가 없지만, 한국의 돌싱들은 또래의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게 보통이니 한국이 프랑스보다 돌싱에겐 더 나은지 모르겠습니다. 뭐 마리 알릭스의 설명에만 의한다면 말입니다.

"남자들은 누구한테 존경을 받지 못하면 불안해하며 이것이 바로 젊은 여성과 불륜이 터지는 주된 이유(p83)"라고 닥터 꾸뻬가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마리 알릭스의 전남편이자 자폐아 토마스의 아빠인 샤를르의 경우를 설명하면서 이 말을 합니다. 이 책에는 "아드린느, 샤를르" 등 예전 독자들이 더 눈익어할 만한 방식으로 프랑스어 인명을 표기하네요.

울릭은 어디서 교육을 받았길래 불어를 이렇게 잘하며, 또 특히 라퐁텐의 우화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는지 궁금했는데 중후반인 p245에 편지를 통해 어느 대위의 사연이 나옵니다. p34, 또 p234에 라퐁텐 우화가 "서울쥐 시골쥐", "무갈인의 꿈"이 각각 나오고 p234에서는 마리 알릭스가 감탄하는 장면 있습니다.

이누이트는 설령 탁월한 사냥꾼이 포획한 수확물도, 아무 노동 능력 없는 다른 구성원과 평등하게 나누는데 이것은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대목(177)에서 탐욕스러운 석유회사의 CEO를 의식하여 청중들이 환호를 보내며, 그러나 셀럽이 되어 큰 재산을 지니게 된 울릭은 p233에서 이제 그것을 다른 이와 나누기 싫어졌다는 사실도 정직히 표현합니다. 물론 (스포일러) 다른 사정이 생기기도 했습니다만.

울릭은 고아 출신입니다. 고아의 삶이 팍팍한 건 이누이트 사회가 사정이 더 나쁜가 봅니다. 그래서 그 대위(p245)가 죄책감을 가졌었고(남이지만 여튼 고아를 더 돌보지 못하고 버리고 옴), p24에서 울릭은 "고아가 된 기분"을 느꼈다고 말하는데 원래부터 고아인 그가 왜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하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p270에 보면 "오랜 동안 봉인해 둔 고아의 기억"이 풀렸다고 하는데 이 대목이 앞 p24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겠습니다. p127에서 그는 "소년, 소녀, 그리고 장신의 여성"에 대해 "연결되는 느낌"을 가졌다고 하는데 p103에서 "고독과 맞서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 말의 동기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여성"보다는 "가족"이었으니 말입니다.

이누이트 족은 마치 몽골 족이 탁월한 시력을 가졌듯 신체 능력이 뛰어납니다. p116, p94에는 귀가 밝아서 남들 하는 말을 다 엿듣고(엿들은 게 아니라 그들이 설마 울릭이 자기 말을 못 들을 거라 여김), p159에는 역시 시야가 남달리 넓어서 득을 보는 장면이 있네요. 동물원(p220)에서 곰이 잠시 울릭을 보는데, 토마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지만 울릭은 그 곰에 "자신이 규칙을 어기고 죽인 나누크의 영(p18, p45)이 깃들었다고 여깁니다. p48에서 그는 TV 쇼 사회자가 매우 나이 많은 사람이면서도 꽤 젊어 보이는 사실에 놀라고, 점잖은 외모이지만 눈에 "사냥꾼의 날카로움"이 빛나는 걸 알고 더 놀랍니다. 울릭이 잘 본 것이, 그 사람이 그런 날카로운 눈이 있었기에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설 수 있었겠죠.

무슈 꾸뻬, 아니 닥터 꾸뻬 시리즈를 보며 언제나 느끼는 건, 이렇게 단순한 말을 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질문의 정곡을 찌르나 하는 점입니다. 읽다 보면 인생 궁극의 진리와 해답은 꾸뻬 박사한테 다 들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특히 p130). p139에서 그는 서구사회가 이처럼 방황하는 이유를 놓고 전통 사회가 이미 다 발견한 해답을 그들이 잊고 있으며 이제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라서라고 설명합니다. p150에서 출산율이 주는 이유를, 본디 서구는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하며, 가족이 생기면 이는 구속과 의무를 뜻하기에 그로 인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고도 설명합니다.

약간 슬픈 엔딩이지만 여튼 울릭 커플은 북극은 아니지만 비슷한 영혼을 지닌 이들이 사는 마을에 정착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영을 그곳에서 영원히 간직했으면 좋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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