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딩 타임 - 절대적 부의 영역을 창조한 시간 사용의 비밀
대니얼 해머메시 지음, 송경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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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대니얼 해머메시는 미국 노동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고 합니다(책날개 중). 저자는 정통파 경제학자(시카고 학파에 속합니다. p91)이며, 책 뒤표지에 나오듯 "'부(富)'와 '삶의 질'의 동시 달성, 노동과 휴식의 완벽한 균형"을 이 책에서 논합니다.

저자는 일단 발생률과 강도의 차이를 아냐고 독자에게 묻습니다(이런 접근부터가, 역시 학자의 그것답다 싶어서 좋았습니다). "빅3"라는 게 있는데 ㅎㅎ "잠자고, 돈 벌러 일하고, TV 보는 시간" 셋이라고 합니다. 간단한 비유는 남부 텍사스의 오스틴 같은 도시가, 비 오는 날은 적지만(발생률, 빈도 낮음), 한번 왔다 하면 많이 옵니다(강도 큼). 이걸 책 서두부터 강조하는 이유는, 시간 관리라는 것의 체계적 기초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좀 뒤인 p76 같은 곳에서 이 개념이 다시 강조됩니다. "경제활동참가율"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저자는, 무려 백 년이 넘도록 "경제학자들"이 우리 인간 활동의 범주를 대체로 어떻게 나눠 왔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1) 유급 근로 2) 가정 활동 3) 개인 관리(퍼스널 케어) 4) 여가 활동 등의 넷이라고 합니다. 2)는 다른 사람(가사도우미 등)에게 시킬 수 있으나, 3)는 그런 "아웃소싱"이 불가능한 가리킵니다. 3)에서 예컨대 머리 손질을 물론 다른 사람(미용사)에게 시키지만, 머리 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또다른 사람을 사서 머리 손질을 "받을" 수는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씻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다른 사람에게 대신 씻음을 받게 하거나 밥을 대신 먹게 할 수 없다고 하면 이 뜻이 더 잘 와 닿겠습니다. "러시아 차르도 걸을 땐 자신이 걷는다." 배변, 수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아하지 못하다고 해서 아무리 돈을 많이 지불해도 내 배변을 남이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장이나 방광은 직접 비워야죠.

예전에 고 마이클 크라이튼은 "세탁기 등 편리한 기계가 발명되었으나 여성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나아진 게 무엇인가?"라고 소설 속에서 물었지만 이는 불합리하고 의도가 뭔지도 모를 질문입니다. 세탁기 사는 돈이 아까우면 직접 빨래를 하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아웃소싱의 대체안이 있는 2)의 가정관리이고 책에서도 분명히 그런 태도입니다.

3)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수면이라고 p56에서 다시 강조합니다. 아무리 생활이 풍요로워지고 기술이 발전해도 이게 2)로 바뀌기란 좀처럼 어려울 것입니다. 또 잘 행해진 수면에서 우리는 대체 불가능 급의 만족을 얻습니다.

3부에서 저자는 미국만의 독특한 문화, 즉 인센티브가 있고 다른 나라보다 일을 많이 하며 이런 노동 시간은 물론 강요에 의한 게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며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워커홀릭"이 많다는 점 등을 요약합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 우리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부분이 많습니다. 먹고살 걱정 없는 강남 건물주인데도 남는 시간에 집에 있기 좀이 쑤셔서 배민 라이더를 한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 있죠. 이게 현대 한국인의 특성을 잘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라이더는 없어서 못 구합니다. 여튼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1970년대만 해도 미국이 이렇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공공정책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건데(p93), 시카고 학파에 대한 일반의 선입견을 생각하면 조금은 의외의 주장이긴 합니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 추세가 보편화하였고, 미디어는 "24시간 경제"라는 개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경제 활동은 쉴새없이 돌아가며 시차를 고려하여 미국의 근로자들은 전세계의 친구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그러나 저자는 이 개념이 그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오버타임(OT), 야간 인센티브 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걸 봐도 알 수 있죠(p106). 물론 탄력근무 시간제도 확산되었고 긱 경제는 그의 좋은 예입니다(p109). 이 챕터 말미에서 저자는 "근로시간이 일주일 전체에 확산하려는 현상을 줄이려는 정책의 부재(p110)"를 지적함으로써 앞에서 말한 "바뀌어야 할 공공정책(p93)"이 무엇인지 좀 더 선명하게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요즘 여성 경찰의 역할에 대해 큰 논란이 이는 중입니다. 이는 아직 일의 성 역할 분담에 대해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죠. 저자도 5장에서 업무에 있어 성별의 의의를 자세하게 논합니다. 심지어 성별은 인간 존재적 특징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배우자가 있는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2), 즉 앞서 말한 가정 관리 활동에 시간을 덜 씁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겠으나 이제는 가사의 기회비용(=가사를 안 했을 시 그 시간에 직장에 나가 일을 할 경우 받았을 급여 등)을 남녀 동일하게 고려(p123)합니다. 직장에서의 급여가 남녀 성차별이 없다는 가정 하에 말입니다. 그러나 같은 페이지에서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돈을 적게 받는다고 하며, 이로 인해 여성은 '가정 관리'에의 인센티브가 더 커진다"고 합니다. 확실히 부조리한 결과입니다. 쉽게 말해, 이럴 바엔 집에 가서 밥이나 하고 애나 보자 같은 생각을 여성들이 더 쉽게 갖게 된다는 거죠.

p126 이하에는 동등하다고 여겨지는 총근로시간이 남녀가 각각 어떻게 다른지에 대햔 논의가 나옵니다. 이걸 원어로는 iso-work라고 하는데 국제표준기구인 ISO하고는 전혀, 젼혀 관계가 없으니 추가 이해를 위해 검색할 때 주의해야겠습니다. 책 미주를 보면 Burda 등의 논문을 찾아 보라고 하는데 제가 말한 대로 ISO 관련 말고 total work 등의 검색어를 쓰면 그 논문이 PDF 포멧으로 된 게 바로 나옵니다. 발췌가 아니라 논문 전편이 나오므로 읽어 보면 유익합니다. 그래프에는 특히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 오히려 여성 근로시간이 더 적은 걸로 나와 역시 이 나라가 특이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여성 근로 시간이 더 많게 평가됩니다.

p130에는 비가톨릭, 가톨릭 여부에 따라 이 iso-work가 어떻게 차이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위의 Burda 등의 논문도 거의 똑같은 논의를 합니다. 확실히 이 챕터에서는 해당 연구에 크게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여튼 결론은 총노동시간이 균일해야 선진국이고 바람직한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iso-work의 또다른 함의는, 이것이 잘 이뤄지면 각 개인이 성별 차이 없이 동일한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3)과 4), 즉 개인 관리 시간과 여가 시간을 합쳐서 가리킵니다. 미국에서는 카우치 포테이토가 대개 수컷이다, 즉 TV 시청은 "guy thing, 즉 남성의 일"이라 인식되는 게 재미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이 챕터에서는 성소수자 싱글, 혹은 커플에 따른 패턴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는 부부의 시간 보내는 패턴에 대해 더 깊은 논의가 이뤄집니다. 개인 말고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그저 함께 있는 시간이나, 공동 활동을 모두 포함합니다)이 과연 어떠할지에 대한 논의인데 재미있는 건 남자가 여자보다 약간 더 시간이 많다는 점입니다. 분명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응답인데 어떻게 남자가 더 많을 수 있을까요? 또 미국 부부의 경우 이 시간이 다른 나라 부부에 비해 적다고 합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이는 미국의 노동 시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길어서 그렇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그들의 웰빙(well-being)에 도움이 될까요? 동성 배우자의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이 챕터에서는 이런 상식적인 궁금함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청소년은 성인과 대조할 때 시간 쓰는 패턴이 꽤나 다를 것입니다. 또 노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인생의 전반은 인생의 후반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가동연한이 훨씬 줄어든 만큼 이는 타당한 지적입니다.

8장은 민족과 인종에 따라(주로 미국의 사정이긴 하지만) 어떻게 시간 소비 패턴이 달라지는지를 설명합니다. 아프리카계, 히스패닉, 아시아계(이 중 특히 아프리카계)는 백인에 비해 더 많이 자고, 더 많이 TV를 보며, 가정 활동에는 시간을 덜 쓴다고 합니다. 이는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고, 급여와 기회비용의 차이(쉽게 말해, 급여가 적으므로 그 시간에 잠을 자도 시간이 덜 아깝다 같은) 등 인종 차별의 효과일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도시인은 시골 사람에 비해 노동 시장에서 더 많이 시간을 쓰고 가정 활동에는 시간을 덜 쓴다고 합니다. 우리의 상식에도 맞는 결과입니다. 미국은 동서로 길게 걸쳐 있는 나라이므로 시간대의 차이가 있습니다. 시간대는 거주하는 사람의 행복, 심지어 살인율에도 영향을 끼치며(p241), 반대로 중국 같은 경우 자연적 시간을 무시하고 북경을 기준으로 한 동일 시간으로 통합하기까지 했습니다. 서머타임, 즉 DST는 이런 배경에서 특히 미국 사회에 널리 보급된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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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느른 - 오늘을 사는 어른들
최별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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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받아들었을 때 사철제본이라서 놀랐습니다(책꽂이에 꽂아 두어야 하니 띠지를 함께 오래 보관해야겠습니다). 펼쳐 보니 내용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 사진, 그림이라서 다시 놀랐습니다. 사실 그림은 없고 도판은 모두 사진이지만, 상당수는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사진들입니다. 꿈꾸는 화가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듯한 사진...

어려서 몸 담았던 고향으로 돌아가 폐가든 뭐든 몸 붙일 집을 사는 일은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어느날 갑자기 전북 김제에 4500만원짜리 낡은 집을 덜컥 샀다고 합니다. 이미 중산층으로 이룰 정도는 다 이루신 분인데,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얼마 전 읽은 심리학책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른 모두의 마음 속에는, 어릴 적 상처를 그대로 품고 사는 어린아이가 있어서, 잘 돌봐 주지 않으면 큰 사고를 칠 수도 있다."

독자인 저도 이 구절을 근 7년 전에 읽었는데 어느 책에서 처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많은 심리학 대중서에서 쉽고 직관적인 비유로 자주 인용하는 것 같습니다. 여튼 저자는 "상당히 빡센 아이를 달래기 위해" 집을 샀고, 이런 충동구매(?) 끝에 피로감도 느꼈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지방 폐가는 4500 정도면 사는구나 하고 상식도 하나 늘렸습니다.

p43에는 아마도 저자분일 듯한 어느 여성분의 뒷모습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신 듯합니다. "아마 지난 수십 년 간은 내가 말을 걸어주지 않아 삐졌나 봐요(p45)." 이 모습은 삐진 모습이라기보다, 내가 이렇게 삐졌으니 말 좀 걸어달라는 얌전한 요청 중인 자세 같습니다. 앞에는 빨래줄, 나무, 장독, 헛간 등이 보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 인물 외에 먼저 탁 들어온 느낌은, 이 공간에서는 돈이나 효율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물건과 건물을 마구 배치해도 되는구나 하는 그 자유로움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고마운 무질서 같은 것 말입니다. 혹시 장독을 최근에 보신 적 있습니까? 우리는 장류를 대개 플라스틱통에 보관하죠.

집을 샀으니 대청소를 해야 하는데 대청소를 두고 저자는 "이 집의 버려진 사연을 치움(p48)"이라고 합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보면 아내가 남편의 직전 여인이 쓰던 신혼용품, 가구 등인 걸 알고 기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단순히 그걸 돈 주고 장만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무덤덤할 뿐이겠습니다. 특히 집에 마련된 가구라든가, 아니 방이라고 해도, 이런 것에는 전 주인이 쓰던 사연이 다 깃든 셈입니다. 청소는 위생상의 이유 외에도 확실히 이런 이유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앞 문단에서 약간은 쓸쓸한 뒷마당 풍경에 대해 독자로서 제 느낌을 적었는데, 저자는 "풍경을 4500만원 주고 산 셈(p48)"이라고도 합니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특별히 아쉬울 게 없지만, "이대로 늙어 버릴 내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덜컥 사버린 집. 주위에서는 잘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내 친구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음... 그 상황에 대입시키고 보니 저도 왠지 칭찬이 나올 것 같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런 행동의 깊은 동기, 속뜻을 잘 알고 나오는 칭찬일까요? 나는 전혀 못 할 것 같은데 너는 했으니 그런 과단성이 부럽다는 칭찬이라면, 그건 사실 칭찬이 아닙니다. 그럼 뭘까요? 역시 저 자신에 대입하고 보니, 그 실체가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갑자기 씁쓸해집니다.

p74에는 "가벼운 사람"이 나옵니다. 물론 저자 자신입니다. 생각과 행동이 가벼워서 어른이건 아이이건 쉽게 친구가 된다... 참 이런 성격이 부럽습니다. 남자라고 해도 학교나 조직에서 사람을 쉽게 사귀는 타입, 아니 이런 타입이라야 남자들 사이에서 환영받는 남자가 되니, 남자가 더 부러운 성격입니다. 하긴 이 점을 다시 저 위의 일에 대입하면, 평소에 그런 성격이시니 김제에 4500짜리 집을 샀다고 해도 너답다며 칭찬을 받겠죠. 그러고 보니 맥락이 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p77에 "이여사님"이 언급되어서 누구실까 했는데 p106에 자세히 설명이 나옵니다. "시골 어르신들 오지랖" 역시 우리가 흔히 갖곤 하는 선입견입니다. 선입견이란 참 무서워서 우리들이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도 없으면서 관계의 형성과 소통만 가로막습니다. "엄마가 내 인생의 신이 아니었다는 걸, 그저 미완의 어른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이란 구절이 p113에 나옵니다. 자녀들, 특히 딸들이 좀 마음에 새겨야 할 구절 같습니다(이 구절만 수시로 떠올려도, 특히 딸들이 모친과의 갈등은 미연에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로 저자분의 모친은 돌아가셨다고 하며, 여기서 만난 이여사님이 아마 생전, 혹은 사후의 어머니 빈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저 마음대로 짐작해 봅니다.

"세상을 떠난 화분이 다섯 손가락을 넘겼습니다." 저도 화분을 여럿 두었다가 판판이 다 죽여 본 경험이 있어서 격공하는 구절입니다. 마치 부모로서 할 일을 다 못한 자괴감이 생기기도 하는... 특히 어떤 난은 제가 이사하면서 그냥 야산에 갖다 버렸는데 마치 낙태를 한 미혼모(!)가 된 듯한 느낌이 몇 년을 가더군요(ㅠ). p181의 문장을 읽으면서 아 이 글들이 원래 저자님의 브이로그에 연재되던 글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늦게 들었습니다.

pp.100~103에는 텃밭 가꾸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저자는 내 안의 욕심이 그리도 컸던 줄 몰랐다고 하시는데, 마치 톨스토이의 동화에서 하루 동안 가장 많은 땅을 확보하느라 무리해서 뛰다가 해질녘에 죽어 버린 농부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과연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하단 말인가?" p103의 사진은 마치 밀레의 <만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대로 늙어 버릴 내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라는 말은 p48에 있었고 "집은 제대로 못 고쳐도 돼. 나를 고쳐 보자(p60)."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 아쉬움의 내용이 뭔지는 알 수가 없었는데, "그대로 앞만 보고 살다가는 나중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강제로라도 내 자신에 집중하기 위해서(p213)"라고 합니다. "이곳은 나에게 시험기간 독서실 같은 곳"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도시에서 사는 이들은, 내가 누군지에 집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대로 가다간 아예 내가 누군지 잊고 살기 쉽다는 거죠. 그렇게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무서워지기도 합니다.

p238에서는 저자분이 배추를 뽑을 때 옆집 노인분이 계속 자신은 톱질을 하다가, 배추를 다 뽑으니까 그제서야 톱질을 멈추더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습기도 하지만 본래 사람 사는 게 다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은 호기심, 반은 내 삶에 박자와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이웃이 필요하고, 힘든 일도 이렇게 호흡이 맞고 눈빛이 통하면 덜 힘들어지고...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사람 사이의 정(情)과 소통의 힘, 안도감 같은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p287에는 부암동 카페가 나옵니다! 이제서야 그나마 눈에 익숙한 모습이 나오는 걸 보고 안심이 되는 걸 보면 도시인의 감성이라는 게 어지간히도 왜곡되기 쉬운가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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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블레스 유 - 적게 벌어도 내 집 마련에 성공하는 3단계 생각 플랜
정은길 지음 / 에디토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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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는 원래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다(p47)." 요즘은 영 앤 리치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20~30대에 평생 쓸 돈 다 벌어 놓고 이후에는 여유롭게 사는 게 꿈입니다. 실제로 코인 덕분에 큰돈 번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고, 주변의 성공 사례를 보면 괜히 배만 아픕니다. 이때 저자는 찰리 브라운에 나오는 명언을 인용하며 이보다 더 맞는 말도 없다고 합니다. "내가 가진 건 나를 미소짓게 하며, 내가 못 가진 건 나를 우울하게 하니,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자." 또 요즘은 백세 시대이니(요즘 태어나는 애들은 150까지 산다고도 하니), 심지어 50대, 60대에 한 번 정도만 성공해도 재테크는 만족스러운 것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투자를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며, 정말로 50대 60대에 가서야 성공하자는 게 아니겠습니다.

p37에는 요즘 서울 집값이 엄청 올라서 다들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솔직한 느낌이 나옵니다. 해당 사항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요즘 말로 "벼락거지". p43). 그런데 집값이 오른 사람들은 그럼 어떤가? 오른 사람도, 다른 동네가 더 올랐으면 그것 때문에 우울하다고 하며, 또 열심히 일해서 번 돈보다 이렇게 아무 이유도 없이 생긴 돈(아직 안 생겼지만)이 더 큰 걸 알고 허탈해진다고도 합니다. 사실 아무리 집값이 올랐어도, 이걸 당장 팔아서 차액을 실현할 게 아니면 내 돈이 아직 아닌 건데, 설령 판다고 해도 주변에 값이 다 오른 집밖에 없으니 이사할 데도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안 오른 곳으로 가자니 주거 조건이 좋지 않겠거나 (이런 상황에도 안 오른 집이라면) 보유 전망이 얼마나 암울하다는 뜻이겠습니까. 애초부터 여기서 딱 서울 생활 정리하고 귀농을 마음 먹었던 분이라면 모를까.

내 집 마련을 강력히 원하는 동기, 대한민국 사람이면 대부분 다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YOLO가 유행한다고 해도 절대 다수는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악착같이 아껴서 내 집을 마련하려고 할 겁니다. 저자분 역시 20대때 이처럼 아껴서 반지하 빌라를 처음 마련했는데(7년 동안 저축하여, 29세때 1억을 모았다고 합니다. p23) 그 기쁨은 짐작이 충분히 됩니다. 어떤 분이 "그렇게 아껴서 뭐하게요?"라고 묻자 "집 샀어요!"라고 대답(p29)했다는데 이런 질문에 대한 가장 통쾌한 종류의 응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아나운서라는 직종이 화려한 것만 같아도 이런 애환과 고충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새삼 들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남들 아무렇지도 않게 큰돈 버는 걸 보면 이른바 "현타"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돈태기 맞는다"라고 부른다고 하네요(p25). 여튼 저자는 그 동기가 어려서의 결핍이든 뭐든 간에, "핏빛처럼 선명한 목표"를 찾고 흔들리는 나를 다잡는다면 수시로 찾아오는 이런 "돈태기 맞는 위기"를 잘 넘길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과거의 후회에 발목을 잡힌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면 결과적으로 현재의 행복까지 모두 망가지는 것이다(p45)."라고도 합니다.

p34에는 "생각보드"가 나옵니다.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저자 정은길 아나운서가 아닌, 가상의 이경자(2030 세대- 이제는 경제 자립하자라는 뜻으로, 저자이자 동시에 독자. p13) 씨가 대답한 내용입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우리 독자가 시도해 볼 수 있게 같은 시트가 나오네요. 저 뒤 p150 등, 이 책은 총 10챕터인데 매 챕터의 끝에 다른 9개의 보드들이 있습니다.

p75에는 저자가 젊은 시절 구입했었다는 반지하 빌라 이야기가 다시 나옵니다. 전철역 도보 5분에 1층 위치라서 구입했으나 살아 보니 역시 단점이 나오더라는 거죠(머리말 중 p7에 "당시[2008]에는 무지해서" 그런 결정을 했었다고 합니다) . p76에는 이런 경우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있습니다. p94에 그 "사당동 소재" 빌라에 대해 또 후회하는 대목이 나옵니다(p112, p123에도).

"대출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p91)." 특히 저자는 당시 방송국의 정규직 아나운서여서 여러 우대 조건이 있었을 텐데도 "대출은 꼭 나쁜 짓 하는 것 같아서" 이를 꺼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시세가 이렇게 되고 보니 역시 집을 일찍 장만하는 편이 나았으며, 부동산 추세와 정반대로 움직였던 과거(머리말 중 p9)가 후회되었다고도 합니다. 빌라건 아파트건 처음에 장만해야 하는 돈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니 말입니다.

1) 진짜 마음에 드는 집 발견할 때까지 발품을 판다
2) 환금성이 좋은 아파트가 더 낫다
3) 대출을 무조건 두려워하지는 말라. 기회나 가능성이 있다면 이용하는 편이 낫다.

다만 내년이나 올해 하반기에 금리가 미국발로 오를 수가 있으니 주의는 필요하겠습니다. 지금처럼 저금리 기조가 오래간 적은 역대 없었으니 말입니다.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상환이 꽤 부담이 됩니다. 2030은 이 역시 최근에 겪어 본 적이 없으니...

1) 내가 전세 준 아파트의 전세금이란 빚을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자.
2) 수입의 100%를 빚 상환에 쓰지는 마라. 소득은 원래 물가 오르는 속도를 못 따라가니 투자를 해야 한다. 삼전이나 ETF 추천.
3) 잘 아는 지역의 아파트를 사라. (p97)

이 역시 저자분의 상황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 참조하면 좋을 팁입니다. 특히 1)은, 전재산이 그 아파트뿐이면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 저자분처럼 따로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금을 돌려받는다는 보장이 있으면 여유를 좀 가지고 상황을 보자는 뜻입니다. 2)는 투자에 좀 실력이 있으면 백번 추천해도 되겠죠. 원론적으로도 무조건 맞는 말씀이니 말입니다. 3)은, 책 조금 뒤 p114에는 다소 상반되어 보이는 충고가 나오는데, 맥락이 조금 다르니 주의해서 읽어야겠습니다. 모르는 지역은 가급적 피하되(원칙), p114에서 말하는 다른 장점이 있으면 꺼릴 필요가 없다는 뜻(예외)이겠습니다.

두 번의 실패를 딛고 경기도 외곽에 빚 전혀 깨끗한 상태로 내 명의(정확하게는 부부 공동 명의)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이동이 불편해서 결국 (서울은 아니고 비교적 가까운) 1기 신도시로, "자가를 팔고 전세로" 이사했다고 하십니다(대출 없음). 근데 이게 네번째 실수였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때는 갈아타기를 했어야 했는데 전세가 실수였다는 거고, 부족한 돈은 이때 대출을 받아야 했었다는 거죠. 구입을 망설인 건 첫째 대출에 대한 두려움, 둘째 직전 주택 구입시 처분이 너무 어려웠었다는 점 때문인데, 이거는 본래 환금성이 떨어지는 주택 형태가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p113에는 "살던 집의 전세를 내놓은 부동산 중개소를 통해서 다른 집을 구입하면, 중개수수료는 집 매매시 발생하는 비용만 받는다"는 팁이 나옵니다. 이것도 전 몰랐는데 참고하면 좋을 듯합니다.

pp.126~130에는 전세 처음 구할 때 젊은 분들이 참고하면 좋을 팁이 나옵니다(p194도 읽어 보십시오). 집주인들이 다 이렇게 몰상식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우리 아들이 결혼하면 계약 종료" 같은 불확실한 조건이 항상 걸리는 걸까요? (이 저자분이나, 이경자씨뿐이 아니죠) 야박하게 이런 것도 다 문서로 구체화하자고 할 수도 없고. 반대로, pp.131~135에는 몰상식한 세입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 왜 집을 사기 어려운가? 첫째 감당이 어려울 만큼 올랐다. 둘째 상투 잡을까 겁이 난다. 두번째 이유는 모든 투자에 다 공통적인 심리겠습니다. 낮은 가격에 사서 높은 데서 파는 게 기본인데 그게 판단이 쉽지가 않죠. 이럴 때에는 "어차피 나와 잘 맞는 집이라면 후회없다"는 생각으로 사라고 합니다. 집은 반드시 투자 목적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원래는 내가 입주하여 이용하려는 거죠(모든 게 다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그저 막연히 느낌상 맞기만 하다고 살 게 아니라, 이 책 p76의 체크리스트를 잘 활용해야겠습니다. 또 전문가들의 말을 무조건 믿지 말고 자신이 잘 판단해야 한다고 합니다(p147). p161에는 "집값이 설령 떨어져도 되는, 나만의 가치가 담긴 집을 찾으라"고도 합니다. p172에는 "내 집 마련은 믿음과 용기의 문제"라고도 합니다.

요즘은 포털 뉴스에 달리는 댓글을 안 보고 살 수가 없습니다. p154에 실감나는 말씀이 있는데, 폭락론 믿는 사람은 "막차 타다 골로 간다"고 하고, 그 반대편은 "그러니 당신이 무주택자인 겁니다."라고들 하죠. 아주 자주 보는 패턴입니다. 2010년 즈음에도 X대X씨 같은 분들이 "인구 절벽, 대가족 감소, 현재 넓은 평수 아파트 수요 급감, 소형 주택 위주 전환, 집값 폭락"을 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p204에 보면 그러나 1인 가구라 해도 꼭 작은 평수 방 한 개만 선호하라는 법은 없다고 나옵니다. 이 역시 맞는 말씀입니다.

저자는 2020년 초에도 폭락론이 나왔기에 그말만 믿었는데 시장은 웬걸 정반대로 움직였죠. 사실 저런 말들이 큰 추세로 보면 결국은 맞을 겁니다. 그런데 시장은 미시적으로 아주 복잡한 추세를 보이며 격동하기 때문에 거시만 믿고 가면 손해를 많이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판단대로 정보를 충분히 입수하고 심사숙고해서 결정했으면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게 저자의 충고입니다.

"노동의 가치가 퇴색(p186)"되었음을 확인하는 게 최근 집값 상승이 부른 가장 씁쓸한 점입니다. 그러나 여튼 내 집 마련은 필요하며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p178)라고 합니다. p97에서 "그전보다는 세상을 조금 더 아는 언니가 이제 된" 저자께서는 MZ세대에게 조금이라도 피부에 더 와 닿고 솔직한 팁들을 이 책에서 전해 줍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하는 말은 가식이 없고 너무 솔직해서 좋습니다. 또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p187에서 주식 매도타이밍을 놓쳐 현재 8년째 장투 중이시라는 말을 읽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어쩜 이렇게 다들 비슷한 모습일까요. 적어도 이 책은 독자의 상처 입고 불안한 마음은 확실하게 달래 주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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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휘둘리는 당신을 위한 심리수업 - 성숙한 어른으로 살기 위해 다져야 할 마음의 기본기
김세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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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자기 감정만 제대로 다스릴 수 있어도 큰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일단 피해갈 수 있을 듯합니다. 감정이 자유자재로 조절 가능하다면 그 사람은 아마 사회에서 큰 성공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들은 어떤 큰 성공까지를 바란다기보다, 다른 사람 앞에서 민망한 모습 보이지 않거나, 혹은 내 자신이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고 평정심만 유지해도 대만족이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그의 책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를 통해 "감각이 살아 있는 발을 잘 어루만져 준 빌이라는 친구 덕분에 절망의 끝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p27). 그 책을 아직 읽지 않아 잘 모르긴 해도, 저자께서 아주 깊이 공감하셨기에 특별히 인용했을 듯합니다. 상황을 잘 모르긴 해도, 나보다 나의 아픈 구석에 더 잘 공감해 주는 친구가 (다소 엉뚱하게) 내 발을 만져 준다면 너무 고마울 듯도 합니다. 그래서 친구는 "또다른 나"라고 하는 거겠죠.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빌 같은 친구를 둘 것"을 권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런 벗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우리는 적당히 친하고 적당히 먼 친구는 여럿 있어도 저 정도로 나를 공감해 주는 이가 곁에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당장 나부터가, 어떤 친구에게 그런 소중한 벗이 되고 있기 쉽지 않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자는 "감각을 깨우는 경험을 반복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산책, 목공예, 뜨개질 같은 것입니다. 이게 그저 취미생활을 뜻하는 게 아니라(취미와 겹칠 가능성이 높지만), 이것만 하면 나의 좋은 감정, 기분, 살 맛, 혹은 예전의 좋은 추억(구 이성친구와의 교감이라든가)이 생각나고 도로 살아나는 행동이 반드시 누구한테건 있을 테니 말입니다.

감정의 침체는 곧 무기력을 가져옵니다. 이 책 p49에 나오는 서연이는 공부, 엄마의 맥빠지게 하는 잔소리, 오빠와의 비교 때문에 무기력증에 걸렸습니다. 원래는 서연이도 공부를 곧잘했습니다만, 엄마의 욕심이 한도끝도 없고 잠시 폰 좀 들여다봤을 뿐인데 "그딴 식으로 할 거 같으면 다 집어치워라"는 극단적인 질책을 듣고 의욕이 다 사라졌습니다.

앞에서 저자는 "감각을 깨우는 경험을 반복"하라는 충고를 했는데 서연이에게는 반려견 보리의 털을 깎아 주게 했다네요. 저도 예전에 저희 모친이 개 털갈이를 도와 주셨는데 애가 아주 시원해하고 좋아하던 게 기억 납니다. 서연이도 아마 예전에 한 번 깎아 주니 보리가 엄청 좋아하던 기억 때문에 이걸 모멘텀으로 삼았을 겁니다. 엄마는 나한테 짜증을 내지만 나는 (거꾸로) 애한테 잘해준다, 뭐 이런 식으로 부정적 감정과 기억을 반대로 승화시키는 것 아닐지요. 아주 멋진, 극복의 사례인 듯하며, 사실 이런 어린 학생의 경우에는 본인 노력도 노력이지만 엄마가 좀 더 따님에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할 듯합니다.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책 제목을 전에 본 적 있는데(읽지는 못했고요), 어떤 엄마의 경우 딸한테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물론 반대로 딸이 엄마한테 너무 마구 대하는 경우도 있죠(아주 많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반성하시길).

서로 한창 깨가 쏟아질 30대 부부 역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 돌이킬 수 없을 지경 직전까지 가기도 합니다. p74에는 선영- 준범 씨 부부 얘기가 나오는데 이분들은 마음뿐 아니라 물리적 상처까지 진행된 경우네요. 부부는 상대 배우자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한국인치고 경증이라도 이 "분노조절장애"가 있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너무 자주, 또 비전문적으로, 이 핑계가 동원되는 것 같습니다. 뭐 말만 나왔다 하면 분노조절장애입니다. 상대가 비정상이라고 지탄하는 건지, 아니면 장애가 있으니 이해할 수도 있다고 한 걸음 물러서는 건지 헷갈립니다.

p76에 인용된 마셜 로젠버그의 말이 놀랍습니다. "(모든 분노에는) 목적이 있다." 즉 누가 분노를 표출하는 건 그만한 이유, 목적, 동기가 다 있다는 겁니다. 당사자 자신이 의식을 하든 못 하든 간에 말입니다. 이 사례에서 남편은 물론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만, 저자는 부인 역시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냐, 감정의 문제가 있다면 감정을 잘 달래어(타인이든 자신이든 마찬가지)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성급히" 이성(理性)을 불러서 감정을 잠재우려 하는 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고, 이 역시 "감정 발달이 저해된 결과"라는 겁니다. 사실 이성으로 빨리 복귀하는 것도 내 솔직한 감정을 무시하고 무작정 덮는 식은, 이미 가짜 이성인 거죠.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쿨병 같은 것?

이 부부의 사연은 책에서 비교적 길게 다뤄집니다. 준범씨는 아내에게 존중 받는 이슈에 대해 좀 민감한데 이는 어려서 그의 가정 환경에 일정 부분 이유가 있었습니다. 선영씨 역시 그리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 때문에 남편에게 이를 투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감정 통제와 치유는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의 특정 체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p96에는 인생 곡선, 혹은 삶 그래프가 나오는데 내가 몇 살 때 무슨 일이 있었고... 이런 걸 그래프 상에 표시한 것입니다. 가로축은 누구나 이해가 되고, 세로축이 문제인데 이것은 감정의 긍정, 부정을 수치로 나타낸 거네요. 이분은 초등학교 이전까지 무척 행복한 기간이었다가 학교에 입학하며 서서히 긍정 지수가 낮아지고, 처음으로 마이너스 구간에 들어간 게 초5때 부모의 이혼이었으며, 고3때 다시 마이너스, 그리고 입학 결과 발표까지 마이너스를 유지합니다. 보통 기다리는 시간이 오히려 놀러 다닌다고 즐거운 사람도 꽤 많은 걸 고려하면 이분은 그 시간이 참 괴로웠나 봅니다(수능 직후 기간이 플러스이긴 합니다).

"물리적 공간은 심리적 공간을 반영한다(p103)." 이 말은 윌라드 프릭의 <자기에로의 여행>에 나온다고 합니다. 저자는 내게 중요했던 집의 평면도를 생각해 내서 그려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 다음에, p107에 나오는 자기치유 질문에 답해 보라고 합니다. 이 책에는 p107말고도 여러 세트의 자기치유 질문이 나오는데 독자는 이 책에 실린 여러 사례 중 자신과 가장 비슷한 케이스 끝에 나오는 질문 세트를 골라 시도해 보면 될 듯합니다.

p117에 나오는 딸 예은씨, 또 바로 뒤에 나오는 어떤 아버지의 경우 자신(의 부모)가 살았던 좋지 않은 경험을 결코 대물림해 줘서는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자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 사례입니다. 앞의 사례는 딸, 뒤의 사례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체인 건 아마 실제 내담자가 그들이라서인 것 같습니다. 이들의 경우는 책임감이 너무 지나친 게 문제였던 듯합니다.

p157에는 "자기 관찰을 위한 다섯 가지 질문"이 나오는데 이는 필립파 페리의 <인생학교 정신>에서 재인용했다고 합니다. 이 다섯 가지 질문에 답하는 걸 1회로 그치지 말고, 계속해서 습관을 들이라고 합니다. 이게 습관이 되면, "자기 관찰"이 (비로소) 시작된 거라는데, 우리가 이처럼 자신을 올바로 관찰하는 일조차 어렵습니다. 우리가 과감히 우리의 민낯을 응시 못하고서 어떻게 상처가 저절로 운 좋게 낫길 바라겠습니까(물론 그런 경우도 드물게나마 있긴 할 겁니다).

경애씨는 65세인데 아들을 잃고 현재 남편과 며느리, 손주 등과 함께 삽니다. 이분이 분노하게 된 건 아들의 묘지 이장 문제였는데, 가문에서 시아주버니가 남편과 이미 합의했다고 하며 아들 묘를 옮기고 땅을 팔라고 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이 상담은 며느리가 예약한 것인데, 알고 보니 이런 표면적인 문제 말고도 며느라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고 그를 보상하려는 심리가 생전, 그리고 사후의 아들에 더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그러나 여전히 그 문중 어르신의 태도와 행동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아이콘택트인가 하는 예능이 인기였는데, 저자는 반드시 한번 "나 자신과 아이컨택"을 해보자고 합니다(p190). 병든 자기애가 아니라 참된 자기애를 갖기 위해 나와 눈을 마주치자고 합니다. 루이스 L 헤이의 <미러>에 이런 사례가 나온다고 하네요. 아무튼 내 마음을 내가 속일 수는 없습니다. 뭔가가 당당하거나 반대로 창피할 때 이걸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속이는 건 쉽지만, 세상 천지에 나만큼은 지금 내가 이걸 속이는 건지 아닌지 다 압니다. 내 안의 나를 자꾸 병들게 하지 말고, 나 자신에의 관찰을 통해 정직하게 내 감정을 만나 얘를 치유해 줘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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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하지 않고 행동 수정하는 ABA 육아법 : 문제행동편 - 행동분석전문가가 Q&A로 알려주는 문제행동 중재 방법
이노우에 마사히코 지음, 조성헌 그림, 민정윤 옮김, 홍이레 감수 / 마음책방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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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산모들이 노산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중국발 미세먼지나 환경호르몬 등 다른 원인 때문인지, 장애아, 자폐아, 과잉행동증후군 등 아동들과 부모님들께 다양한 고민이 생기는 듯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비율 정도는 있었는데 요즘은 한자녀 가정이 많고 양육에 더 정성을 들이다 보니 이런 예외적 현상이 우리 눈에 더 부각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학적으로 어떤 근본적인 방책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할 텐데 참 걱정입니다. 여튼 행동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동, 자폐아 등에게는 전문가들이 기존에 마련한 공신력 있는 프로그램과 처방약이 그나마 도움이 될 테니 부모님들이 잘 참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응용행동분석학, 임상심리학, 장애아심리학 전공이며 현재 돗토리대학원 임상심리학 교수라고 합니다(앞 책날개). 무지한 탓에 저는 처음에 ABA 육아법이라고 해서 저자(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론에 이름을 붙인 건가 착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고 Applied Behavior Analysis의 약칭, 즉 학문적으로 이미 튼튼한 베이스가 있는 이론체계였습니다. 응용행동분석은 pp.18~19에 아주 간단한, 그러나 핵심만 짚은 설명이 나옵니다.

p18에서는 ABA가 특히 "자폐아" 같은 발달장애 치료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 방법은 "모든 행동을 아주 잘게 쪼개어 효과적인 치료에 접근하며" "언어인지, 사회성 강화뿐 아니라 옷 입기, 양치" 등 일상적인 동작 하나하나에 도움이 되는 "포괄적인(comprehensive) 프로그램(p19)"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자폐아를 둔 부모님만을 위한 건 아니고, 일반적으로 이상행동이다 과잉행동이다 하는 걸 자신의 아이가 보이곤 하는 부모님들 경우라면 두루 읽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 책의 편저자는 이오우에(井上)마사히코(雅彦) 교수 한 분이지만 pp.6~9에 나오는 추천사를 보면 추천사를 쓴 윤지은, 김수정, 허은정, 김명하, 홍준표, 한상민 여섯 분과, 옮긴이인 민정윤 소장은 모두 행동분석가(BCBA) 자격을 갖고 있네요.

BCBA가 뭔지를 몰라서 찾아 보니 Board Certified Behavior Analyst라고 구글에 나옵니다. behavior analyst는 이해가 되고 board-certified에서 어떤 board가 certify 해 준 걸까 더 읽어 보니 the Behavior Analyst Certification Board라고 합니다. 협회 홈페이지에 가서 확인하니 BCBA는 석사급, BCBA-D는 박사급입니다. 이 책 감수자 홍이레 고문, 또 위 여섯 명의 추천인 중 윤지은 교수, 허은정, 홍준표 세 분 등 모두 네 분이 이에 해당합니다. 독자들도 이런 기관이 있다는 걸 알고, 젊은 분들은 혹 진로를 그쪽으로 모색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ACICS와 ICE 중, ICE의 NCCA 인증입니다.

일단 문제행동이 어떤 걸 가리키는지부터 잘 판단을 해야 합니다. 엄마들은 대개 아동행동 문제의 전문가들이 아닙니다. 아닌데도 성급히 특정 행동을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거나, 혹은 반대로 문제가  있는 행동을 예사로 봐 넘기곤 합니다. 문제행동이 문제행동인지 아닌지는 특정 상항의 맥락, 행동의 주체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므로 일단 책 p32에 나온 예시를 잘 읽어 본 후, 자세한 건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어떤 행동이 문제행동이라면 약화(퍼니시먼트. 줄이는 것), 소거(익스팅션. 더 늘어나지 않게 하는 것)를 해야 합니다(p36). 큰 소리로 울거나 머리를 바닥에 부딪힌다든가 하는 행동은 일단 문제행동으로 봐야 하며(더 확실한 건 전문가 상담이 필요), 처음에는 이런 제지를 위한 행동이 더 역효과를 부르기도 합니다(전문용어로 소거 폭발[익스팅션 버스트]이라 칭한다고 하네요). 소거 폭발시에는 부모님이 꾹 참고 아이가 원하는 결과를 절대 베풀어 주지 않아야 합니다. 해 주면 이는 강화(인포스먼트)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강화, 약화, 소거 이전에 이런 행동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TV를 없앤다든가 다른 여가 활동을 마련) 이걸 "선행 중재(앤티씨던트 인터벤션)"라고 합니다.

질문을 하면 아이가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질문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걸 반향어(p51)라고 합니다. 항상 이게 문제행동이라는 법은 없으므로 이걸 그저 제지하기보다는 이를 대체할 바람직한 적절한 행동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벤션은 본래 "개입(p70)"이란 뜻이지만 책을 잘 읽어 보면 확실히 이 이론체계에서는 "중재"라는 번역이 맞는 듯합니다. 학문적 번역이 그렇게 된 데에는 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까요. 이 체계에서는 특히 ABC 기록이 중요한데 A는 앤티시던트(=선행행동), B는 비헤이비어(행동), C는 결과(칸시퀀스)이며 이를 시트(sheet)에 다 기록을 해 두어야 합니다(p62). 이 시트는 행동 관찰 시트이며, "전략 시트"는 따로 있는데 제3부에 자세히 설명됩니다.

행동관찰에는 아이의 행동을 자세히 기록하는 게 중요(p60)하며 그저 막연히 "아이가 너무 산만하다" 식으로 적어서는 안 됩니다. 기록을 할 때에는 긍정형으로 적어야 하며 부정형은 안 된다고 하는데 여기서 긍정 부정이란 태도나 시각에 희망이 들어가고 여부가 아니라, "무엇을 구체적으로 했다"가 긍정이며, "무엇을 하지 않았다"가 부정 서술입니다. 이런 식의 부정 서술은 아무 소용이 없죠.

p78부터 전략 시트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옵니다. 행동 관찰 시트는 적는 내용이 자세해야 하고 시트 폼 자체는 단순하지만, 전략 시트는 행동 관찰 시트에 대응 전략이 추가되므로 형식이 더 복잡합니다. 작성이나 활용 방법 자체는 복잡하니 않으니 p79에 나온 예시를 직접 보고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저작권 때문에 이 독후감에서는 사진 생략). 특히 C, 결과란 체크에서 해당이 되는지 안 되는지 헷갈린다면 일단은 모두 체크하라고 합니다.

p126에는 경도의 지적장애가 있는 5세 아이를 둔 엄마의 상담이 나옵니다. 무모하고 집요(책의 표현입니다)한 요구를 하면, 물론 이는 강화(리인포스먼트)가 되므로 이걸 들어줘선 안 됩니다. 대신 "브로큰 레코드 방법"을 쓰라고 하는데, 당장 기분을 진정시켜 줄 수 있는 말을 되풀이하라는 거죠. 짜증을 낼 때는 일단 엄마가 다른 방으로 피하라고 하며, 간식을 주는 방식으로 진정시키면 짜증내기 행동의 강화가 되므로 안 된다고 합니다. 실제 이런 일을 겪으시는 부모님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하나의 상담례뿐 아니라 4부 150부 전체가 39개의 상담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방이 아주 구체적이므로 일단은 책에 나온 부분만 읽어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더 자세한 건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겠으나).


p162에는 이동 순서에 집착하는 아이에 대한 고민이 나옵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도 배우 잭 니콜슨이 이런 강박증이 있는 작가 역을 연기했었죠. 경도의 지적 장애가 있는 4세아라고 하는데 전문가의 해답은 이렇습니다. "특정 루트에 대한 집착이 평생 가지는 않는다. 한 발 물러서서 지켜 봐 주는 여유를 갖는다. 만약 특정 이동 지점이 위험하면 이는 적극적으로 말려야 하므로, 지도(간단한 그림지도) 등에 스티커를 붙이고 피하게 가르치며 피하는 행동을 하면 보상을 해줘야 한다" 등입니다.

ABA 방식의 가장 탁월한 점은 "아이의 행동 자체보다 그 행동 뒤에 숨어 있는 감정과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 초점을 두며, (그래서 이 이론 체계에서는) 행동의 형태보다는 기능이 중요하다고 합니다(p9의 한상민 전문가 추천사 중).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를 섬세하게 지도하는 데에는 이만큼이나 많은 수고가 들며, 그저 기저귀나 갈아입히고 끼니 밥이나 챙겨 주는 게 육아의 전부가 결코 아님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보상, 강화, 소거 등의 방법을 보니 어린이 양육은 거의 애완동물 키우는 만큼이나 잔인한 구석이 있습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안이하게 방치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의뢰를 해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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