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받을 권리 - 팬데믹 시대, 역사학자의 병상일기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강우성 옮김 / 엘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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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마땅히 자유의 나라이건만, 병과 두려움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자유롭다는 건 우리가 우리다워지는 것, 자신의 가치와 욕망을 좇아 세상을 누비는 것을 뜻한다.... 행복을 감지하지 못할 만큼 아프거나 이를 추구하지 못할 만큼 허약해지면, 자유란, 불가능하다(p27)."

 

"나는 정의와 평안과 안녕을 숭상했던 미국의 건국자들이 의료의 역사에서 그들이 겪었던 비참한 순간을 우리가 다시 살기 바랐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p81)"

 

저자의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은 한번 병이라도 나면, 사고라도 당하면, 이의 치료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듭니다. 몇 년 전 외국에서 어떤 사고를 당해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어느 청년의 가족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사연을 올려 큰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아무리 기회의 나라이고 노력 여하에 따라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다 해도, 어쩌다 병에라도 걸려 막대한 치료비를 지출하게 된다면, 그래서 좀처럼 회복(신체적이건 재정적이건 간에)을 못 하게 된다면, 그런 기회와 자유가 다 무슨 소용이겠냐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장 아닐까요.

 

"우리(미국인들)의 연방정부와 상업 의료 시스템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p27)"

 

"이 질병은 유독 우리 미국의 것이다. 우리는 23개 유럽 국가의 시민들, 또 일본, 홍콩, 한국, 싱가포르, 이스라엘, 레바논 같은 아시아 사람들보다도 먼저 죽는다.... 내가(=저자가) 열 살이었던 1980년에 미국인들은 국부가 비슷한 다른 나라의 사람들보다 기대 수명이 1년은 짧았다. 내가 쉰 살이 된 지금, 그 격차는 4년으로 늘어났다(pp.24~25)"

 

"그 어떤 민주주의 국가도 미국처럼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 잘못 대처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p25)"

 

어떻습니까? 저자가 열 살이었던 1980년이면 아직 마이클 잭슨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몇 년 전이긴 합니다만, 미국의 문화와 경제와 모범적인 민주 정치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상이었을 겁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기품 있는 태도와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세계를 매료했고, 글로벌 경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공장을 추동력으로 삼아 힘찬 엔진을 가동했습니다. 한국도 이른바 3저(低)의 호황을 맞아 번영과 행복을 가득 누리던 선진국 도약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 흐르는 ♬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도널드 트럼프는 2020년 초까지만 해도 재선이 유력한 현직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었는지 마스크를 끼지 않고 다니다(내내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 자신도 코비드19에 감염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이 조심성 없는 처신으로 전염병에 걸리냐는 거죠. 이후 그는 폭망의 길을 걷고 조지아나 아리조나 등 전통의 공화당 강세 주에서마저 상대에 패배하고 텍사스에서도 지기 직전까지 간 끝에 결국 직을 내 주고 말았습니다. 이는 개인의 패배가 아니라, 미 의료 시스템에 대한 미국인들의 준열한 심판의 결과로 해석할 여지도 있는 것입니다. 제 몸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국민을 보호하겠습니까.

 

"폭군을 만족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의 수를 더 이상 집계하지 않는 게 되어 버렸다.(p121)" 

 

"폭군은 질병을 기회로 여겨 자신을 삶과 죽음의 합법적 중재자로 내세운다.(p134)"

 

참고로 저자는 한국에도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같은 저서로 많은 독자를 확보한 분이며 저도 그 책을 읽고 2019. 10에 독후감( https://blog.naver.com/gloria045/221686791860 )을 남긴 적 있습니다. 


 

p73에는 "약 공장"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의료비가 너무 비싸서 빈곤층이 적당히 마약류나 처방을 받고 버티게 하는 곳을 말하는데 이런 약물 남용으로 이런 계층의 기대수명은 더욱 짧아지는 것입니다. 

 

"병감(病感)"이라는 단어(p9)를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그 뜻은 저자의 버전으로 p10에 설명됩니다. "malaise, malady는 프랑스어,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들로, 영어에서는 수백 년 동안 쓰였다. 이 단어는 미 독립전쟁 시기에는 병과 폭정(暴政)을 아울러 가리켰다"고 합니다. 폭정은 물론 영국 식민 당국의 학정과 독재를 지시합니다. 저자가 이 말을 구태여 꺼내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나쁜 정치, 일부의 이익만을 위해 유지되는 공적 시스템은 일반 대중과 국민에게 질병만큼이나 해롭고 사악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2019년 12월 3일 독일 뮌헨의 강연 과정에서 맹장이 터집니다(p11). 맹장염은 조기에 처치하여 안정을 취하면 큰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간으로 염증이 퍼졌는데 이 점이 독일에서 간과되었나 봅니다. p63에 독일 의사들이 그의 말을 잘 못 알아 들어 적절한 치료가 안 이뤄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구멍 난 맹장을 안고(구멍 난 줄도 모르고)"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맹장 수술을 15일에 받았는데 여기서도 그는 2차 감염에 대한 주의나 항생제 처방을 못 받았습니다(p47). 

 

손발이 욱신거리고 마비 증세가 왔고 23일 플로리다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기는 했으나 결국 저자는 일주일 후 다시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거의 숨이 끊어질 뻔했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응급실에서 처음에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았다고 합니다. 옆에는 노숙자 등이 서로 간호사를 부르며 도움을 요구했고 말이죠. 

 

"분노는 오롯이 나였다."
"나는 분노했다. 고로 존재했다."
"분노는 어떤 대상에 의해서도 훼손되지 않은 채 아름다울 정도로 순수했다."(pp.14~17)

 

당시에 저자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책에서 저런 말을 다 하고 있겠습니까. 저건 명백한 의료 과실이죠. 의료비 부담 체계도 체계이지만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의사의 솜씨와 기술을 마냥 신뢰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이 기가 막힙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 의사들도 정신 좀 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수가가 낮으니 낮은 만큼만 실력 발휘하겠다는 식이면 곤란하죠. 일단 의사로서 할 일 다 하고 갖출 능력은 다 갖추고 그 다음에 국민을 설득하든지 해야 합니다.


 

"응급실의 그 누구도 내 전자기록을 확인하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p39)" 이러니 대체 무슨 올바른 치료가 되겠습니까. 참고로 이 책에서 저자의 분노는 여러 의사와 제도를 대상으로 삼습니다만 특히 뉴헤이븐 모 병원의 의료진에 대해 크게 실망한 듯 보입니다. 뉴헤이븐이란 이름을 가진 곳은 미국만 해도 무척 많으나 여기는 코네티컷 주의 뉴헤이븐(한국인들도 많이 아는)이며 석좌교수인 저자가 재직 중인 예일대 부속 잭슨 국제문제연구소가 여기 소재해서입니다. 아무튼 이런 곳의 병원이 이 정도일 것 같으면 다른 병원은 보나마나 아닐지요. 

 

저자는 나치와 홀로코스트의 역사 연구로 특히 유명한 분입니다. 저자는 2009년 즈음에 오스트리아 빈에 체류하며 그곳에서 아들을 보았는데(꽤 늦둥이인 셈이죠)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산모와 아빠를 위한 프로그램도 많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혜택을 다 보았는데 나치 역사 연구를 할 때에는 독일어가 죽음의 언어였으나 "나이 지긋한 부인들이 아이가 예쁘다고 칭찬해 줄 때는 생명의 언어가 되었다(p97)"고 합니다. 반면 두번째 아이는 미국에서 출산했는데 엄청난 비용은 차라리 둘째 치고 필수 과정이 끝나면 분만병동에서 산모와 아기와 가족을 쫓아내기 바빴던 게 병원의 태도였다고 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상업적 의료 시스템 하에 놓여 있다(p101)." 저자의 말입니다. 

 

저자는 이어 유럽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그들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거론합니다. 세상이 무지에 휩싸여 있었다면 오늘날 같은 발전은 없었을 것이며, 어떤 무엇이 분명히 문제라고 생각되면 합당한 근거를 찾아 누군가가 반드시 목청을 높여 문제를 제기해야만 한다, 이런 취지 아니겠습니까. "미국 대부분의 지역은 현재 뉴스의 불모지다(p145)." 이러니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지 않고 엄청난 문제들이 분석되지 못하며 묻힙니다. "의료 검사와 마찬가지로 보도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방도이다(p143)."


 

"환자가 된다는 것이 돈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걱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아야 한다.(p189)" 저자는 맹장염과 그 합병증, 후유증만을 겪은 게 아니라, 뉴헤이븐의 그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옆 병상에 누웠던(나중에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만) 중국인(고 직전에 중국에 다녀왔다고 하던)으로부터 아마도 코로나를 옮은 듯합니다.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났고 이에 대한 치료는 받았으며 병원에서 딱히 말은 하지 않으나 사진을 보니 폐, 그 중에서도 한쪽 폐가 더 손상되었음이 확인되었다고 하네요. 이 과정에서 홀로코스트 중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였던 유대인들과 자신을 더욱 동일시하게 된 저자는 이익만을 최우선시하는 미국식 의료에 대해 분노를 토로하고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독자인 제 주관에 의해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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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팅 : 실전 마케팅 & 퍼스널브랜딩
오두환 지음 / 대한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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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상품과 서비스가 좋아도 마케팅이 나빠서 고객한테 다가가지를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두환 저자는 <광고의 8원칙>으로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고, (주)한국온라인광고연구소 등의 현 대표이며, 여러 강연 등을 통해 올바르고 효과적인 마케팅의 전도사로 활약 중입니다. 그의 지론 중 독특한 건, "광고는 광고(廣告)를 넘어 광고(光高)가 되어야 한다"는 건데 이는 앞 책날개뿐 아니라 본문 p36에도 나옵니다.

저자께서 처음으로 받은 광고료, 그것도 큰 성공을 거둔 광고를 통해 어떤 대가를 받은 건 어렸을 적 부친의 영업을 돕고서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chapter 2의 첫번째 꼭지 "길거리 봉고차 기술자에서 박사님이 되신 아버지"에 잘 나옵니다. 보기에 따라서 사소할 수도 있지만 독자로서 저는 아주 어린 나이에 경험한 이 짜릿한 성공이 소년에게 얼마나 큰 자신감을 주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저 애 쓰시는 아버지께 도움을 드렸다는 효도의 자부심 정도가 아니죠. 나의 노력과 마케팅 센스가 세상에서 통할 수 있다는 확신, (그 어린 나이에 좀처럼 접하기 힘든) 수많은 사람들의 호응과 찬사를 얻은 데서 온 성취감, 이런 것이 오 대표의 인생에 이후로도 계속 어떤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듯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공부에 전념하기 힘들고 세칭 일류대나 인서울대 진학을 이루려면 이 요인이 좀 크죠. 저자는 여튼 지방대를 졸업한 분인데 제1장 p29에서 "개인사를 밝히는 게 조금 부끄러울 수 있어도 독자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 과감히 밝힌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성공한 후 자신의 과거를 윤색하고 과장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순전히 독자의 마인드셋 향상을 위해 이렇게 한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며, 어쩌면 세상과 이렇게 진정성 있게 소통하려는 마음가짐이 그의 성공에 있어 가장 큰 비결이고, 이 "오케팅"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광고는 그야말로 창의력의 총집결체일 듯합니다. 이런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대체로 암기에는 좀 서투른 게 사실이고 오 대표도 너무 암기를 못 한 탓에 학점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부로 친구들을 이길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한 후, 완벽한 포지셔닝을 하고선 브랜드를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아직 대학생일 때에도 오 대표는 이처럼 마치 베테랑 광고맨처럼 전략적으로, 체계를 세우고 행동하는 게 놀라웠습니다. 이래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수님께 잘보이기 위해 늦게까지 열심히하는 모습을 교수님께 일부러 들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해당 문장 뒤 괄호 안에 써 놓은 말이 압권입니다. "광고는 들키는 것이다!(p71)" 그러니 오 대표는 젊었을 때부터 사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광고였던 셈입니다. 브랜드는 누굴 상대로 구축한 브랜드였을까요? 학점을 주는 분이 교수님이니 교수님 상대로 학생 오두환은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만든 셈입니다. 정교사 자격증을 오두환은 졸업할 때 두 개나 취득합니다.

허나 오두환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습니다(책 저 뒤 p124에도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최전선에서 뛰어야 감이 안 죽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사실 한국에서 교사는 꽤 안정된 직업이고 선망도도 높습니다. 그러나 청년 오두환은 뭐랄까... 타고난 끼를 주체하지 못하던 타입 같습니다. 마음 속에서 세상 앞에 강렬히 어필하며 스타가 되길 꿈꾸는 그가 박봉(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깜냥에 비해)의 교사에 만족할 수 없었던 거죠. 마치 부친께서 다재다능한 자질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직업들에 도전했던 모습이나 비슷합니다. 다른 게 있었다면 오두환은 부친과 달리 재능의 연마 자체보다 그의 광고에 몰두했고, 일찍부터 이 분야에 눈을 떴다는 점입니다.

메이저 언론사인 J신문사에 입사하기란, 두드러진 스펙이 없는 청년 오두환으로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류전형에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합격했으며, 면접에서 타 경쟁자들과 비교하여 이런저런 질문을 받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자신이 서지 않자 그는 파격적인 전략을 세웠습니다. 먼저 자신이 면접관들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질문을 던질 기화를 주지 않은 후, 오히려 자신이 그들을 향해 입사 후의 비전과 각오를 설파하는 것입니다. 이 전략이 아주 멋지게 맞아떨어져 그는 최종 합격을 해 내고 말았습니다.

만약 이런 전략을, 혹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구사해도 성공할까요? 전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을 해도 확신과 진정성이 있는 사람의 말과, 그렇지 않고 그저 자기도취 연극과 속임수를 부리기나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구별됩니다. 면접관들도 온갖 경륜과 지혜를 갖춘 이들이었기에, 청년 오두환의 가능성과 열정을 있는 그대로 평가할 줄 알았던 거죠. 그러니 오 대표처럼 여러 체험을 해 보고, 교훈을 얻고, 진정성의 농도를 높이고, 열정을 발휘하는 자질을 갖추는 게 우선이지, 괜히 남따라 튀기만 하는 전략으로 가서는 망신이나 당하기 십상일 것입니다. 아니나다를까 p97에서는 이미 지원자가 아닌 면접관의 위치가 된 지 오래인 자신에게 행여 "의도적으로 노리고 오지는 말라"고 살짝 덧붙입니다.

이 책에서는 마케팅이 무의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무의식만으로는 물론 일이 다 될 리가 없고 의식적으로 방법을 익히며 짬을 내어 훈련을 하라고 합니다. 무의식은 그러니 일상에서 진정성을 갖고 몰입하며 감각을 갖는 거고, 의식적 노력은 따로 해야 하는 거죠. 앞에서 학생 때 전략을 치밀히 짜고 높은 학점을 따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J 신문사에 합격했는데 워낙 확률을 낮게 봤던 터라 기다리는 동안 이미 다른 직장을 잡았던 터입니다. 그 합격증을 윗선에 일단 보여 주고(이걸 안 보여 주면 누가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안 했겠죠), 그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회사에 몸 담으며 평소에 생각했던 바를 논리정연하게 설파합니다. 저는 이 대목도, 그가 워낙 모든 일에 열정과 진정성으로 임하니 이런 구석구석이 눈에 보였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미친놈아, 그게 될 것 같아?" 이런 말을 들으면 저자는 오히려 힘이 불끈 솟는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 오 대표는 말을 특히 잘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데 선천적으로 도가 튼 분 같습니다만 이런 그도 사전에 수읽기,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 본다고 합니다. 어려서 바둑 두기를 무척 즐겼다고 하는데 이 역시 도움이 많이 되었을 듯합니다.

"생계형"이란 말이 붙으면 일단 웃음부터 나오곤 합니다. 저자는 베스트셀러를 내기 전 많은 출판사들로부터 거절당할 것을 예상했고 생계형 마케팅 전문서라는 컨셉 자체가 자신이 생각해도 무모한 면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출판사가 나를 고르게 할 게 아니라 내가 출판사를 골라 확실히 안을 수용하게 만들겠다고 전략을 세웠습니다. 저는 이처럼, 무슨 목표를 정했을 때 그저 주먹구구로 임하지 않고 마치 장군이 전투에 임할 때처럼 치밀하게 작전을 세우는 면부터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치밀하게 계획을 안 세울까요? 일단 일을 되게 하는 바른 버릇이 안 들어서이고, 둘째는 이렇게 공을 많이 들였는데도 실패하면 타격이 크니까, 그냥 대충 하다가 망하면 "에이 뭐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거니까 진짜 내 실력은 아냐" 처럼 나중에 위안거리, 핑계를 만들려는 한심한 계산이 작용해서입니다. 오 대표는 저 시도에서, 그렇게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실패했습니다. 이때 본인도 타격이 꽤 컸다는 건 책을 읽어보면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건, 실패가 두려워서 아예 시도를 안 하거나 대충 하는 걸 그가 단호히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거절을 당했으니 이제 출판사에 원고를 맡기는 건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절대 거절을 안 당하게 이쪽 일 잘하는 분들을 모아 출판사를 만들어 직접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과연 그다운 선택입니다. 물론 이 역시 이대로 따라한다고 다 될 일은 아닙니다. 일단 그는 자신에게 없는 재능("달란트")을 갖춘 이들을 주위에 모았는데, 이것부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단 해당 재능을 알아볼 눈이 있어야 하고, 내가 모르는 분야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합니다. 상당수의 사업가들은 이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잘 쓰지 못하고 혹 써도 믿지를 못합니다. 꼼꼼하게 책을 만들었으니 마케팅은 이분야 달인인 그가 직접 화끈하게 유감없이 펼치면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처음의 출판이 거절당한 것도 꼭 컨텐츠가 나쁘다거나 하는 출판사 측의 판단 때문이 아니라 수익 배분 등의 다른 조건이 안 맞아서가 아니었을까 제 마음대로 짐작해 보았습니다.

저자는 필립 코틀러나 세스 고딘의 저서를 인용하며 "당신 자신을 브랜딩하며 팔라"는 주문을 합니다. 이때 상품화란 어설픈 자기만족이 아니고, 오히려 철저한 자기객관화를 거쳐 고도로 다듬어진 장점의 어필이어야 합니다. 확신을 갖고 나서라는 게 무슨 근거 없는 자기도취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브랜드를 들고 상품으로 내세워진 게 어디 흠이 있어서야 팔리겠습니까. 상품은 초등학생 장기자랑이나 학예회 공연이 아닙니다.

"보물선은 보물을 찾지 않는다(p212)." 일시적으로 보물에 현혹되어 항해에 나서는 게 아니라, 어떤 지속적인 대의를 갖고 장기항해를 도모하라는 거죠. 이처럼 모두를 매혹시킬 대의를 가지려면 일단 내가 누구인지, 내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선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의는 "대의를 위한 대의"가 가장 고차원의 대의라고 합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 하지 말고, 남이 내가 좋아 죽게 만들어라."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에도 "주군은 부하를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죠.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증명하라" 진짜 멋진 상품은 번잡한 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강렬한 한 마디 안에 그의 모든 것을 담죠. 거의 모든 프로젝트와 면접에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해 평소부터, 무의식 중에서도 그가 깊은 성찰을 통해 어떤 분명한 상과 확신을 가졌던 거고, 이것이 은연중에 배어나와 타인에게도 공감과 설득력으로 작용했던 것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힘 있게 열심히 산 사람은 그 자신이 바로 살아 있는 명카피 아니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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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해커스 공인중개사 출제예상문제집 1차 부동산학개론 - 제 32회 공인중개사 1차 시험 대비ㅣ기출지문 빈칸노트 제공 2021 해커스 공인중개사 출제예상문제집
신관식.해커스 공인중개사시험 연구소 지음 / 해커스공인중개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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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먼서 개인적으로 느낀 건 부동산학개론 과목의 경우 "이해를 요구하는 문제"가 많이 출제된다는 점입니다(암기도 물론 많지만). 법과목은 인강 등을 통해 빈출 지문, 판례를 자주 듣고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이 과목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용하는 게 그래도 중요한 듯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문제들을 많이 풀어 보고 틀렸으면 왜 틀렸는지 해설을 보고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해커스 교재는 특히 별책부록의 해설이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 주는 게 좋았습니다. 이게 왜 맞는지, 혹은 왜 틀렸는지를 알아야 같은 실수를 안 할 텐데, 마치 당신들 요 부분이 아마 요래서 이렇게 (잘못) 생각했을거야 라며 속을 들여다 보는 듯 코칭해 준다는 느낌이 들었네요. 물론 책에 너무 세세히는 나올 수 없으므로 더 깊이 들어가려면 연계된 인강도 활용해야 하겠죠. 

 

사실 민법도 그렇고 부동산학(개론)도 원칙적으로는 너무도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한정된 시험 기간 안에 완전히 마스터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공부하는 게 필요하죠. 

 

해커스 시리즈는 포인트를 잘 짚어 본문 중에도 "진짜 포인트가 뭔지" 수험생이 좀 한눈에 빡 느낌이 오게 제시해 주는 게 좋았습니다. 예상문제집은 특히 실전에 도움이 되게 하나를 풀어도 그게 최신 경향에 맥이 닿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참신하고 최신 유형에 많이 맞춘 문제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너무 올드한 건 풀기도 지루하고 과연 도움이 될까? 하며 의심이 들어서 안 좋은데 이 문제집은 신유형이 많기도 했구요.

 

체제는 총 8편으로 되었는데 목차만 봐도 머리가 아픕니다. 그러나이 문제집을 다 풀고 나니 음 이 정도면 진짜 최소한 과락은 면하겠다 싶었습니다. 누구한테도, 아무리 노베라고 해도 그런 최소한의 자신감은 갖게 해 주는 문제집이더군요.

 

문제집치고는 개념 정리도 꽤 자세한 편입니다. 따라서 문제 풀면서 잘 모르겠다 싶을 때 구태여 개념서를 꼭 다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제1편 총론

 

p20에 나지(裸地)에 대한 설명이 간략히 나오는데 민법에서 배운 여러 제한물권이 없고, 건물 기타 정착물이 없는 토지라고 정의됩니다. 그런데 그 밑에, 나대지를 설명하며 "나지는 반드시 지목이 대(垈)일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수험생들이 간혹 헷갈리고 여러 번 출제되었던 항목이라 적절히 잘 지적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해커스 시리즈에는 기출문제만 따로 묶은 책도 있지만 이 책(예상문제집)도 최근에 출제된 중요한 문제, 또 신유형에 가까운 건 기출이라고 해도 싣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p31의 11번 같은 것입니다. 물론 개념만 충실히 공부했다면 이 문제는 쉽게 풀립니다.

 

p48을 보면 페이지 상단에 TIP이라고 하여 "출제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총론에서 기본적으로 점검할 사항이므로 기본서를 정독하고 기출문제를 통해 대비하는 게 좋다"고 조언합니다. 달리 말하면 시간이 없으면 이런 부분은 구태여 예상문제까지 일일이 안 풀어도 된다는 거죠(기출과 개념으로 충분). 이게 바로 해커스 시리즈에서 강조하는 "전략적 접근, 전략적 공부"입니다. 

 

제2편 부동산경제론

 

이 파트는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요구하는 문제가 많아서 수험생들이 어려움을 느낍니다. 기초가 덜 되어 있으면 반드시 기본서로 돌아가서 확실히 공부를 마치고 다시 이리 돌아와서 문제를 풀어야 하겠습니다. 이 단원은 개념+기출만으로 절대 안 되고 혹 개념이 완벽하게 되어 있어도 응용 문제 풀이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p48과는 달리, p63 같은 곳을 보면, 역시 상단 TIP에서 "유량지표와 저량지표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며, 유량은 신규주택 공급, 저량은 기존주택이다", 이렇게 핵심만 딱 짚어서 수험생들에게 알려 줍니다. flow와 stock은 원래 경제학 개념이지만 이렇게 부동산학으로 옮아와 적용되면 신규 - flow, 기존(합) - stock 처럼 아예 공식화가 되어 버리는 거죠. 공인중개사 시험에서야 이 정도만 확실히 머리에 넣고 있어도 이것 관련 문제는 얼추 해결이 됩니다. 

 

p66의 08번 문항 같은 걸 보십시오. 이처럼 그래프(아무리 간략한 모습이라도 해도)가 나오는 문제를, 단순 암기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동산학개론은 사실 기본서로 학습할 때 이론 파트를 충실히 다졌어야 이후에 고생을 안 합니다. 답은 ⑤인데 보완재, 대체재에 대한 개념만 확실해도 이 문제는 바로 풀립니다. 이해를 하면 보자마자 바로 답이 나오고, 단순 암기에 기대면 아무리 들여다 봐도 문제가 안 풀립니다. 그래서 학개론은 공부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질이 중요합니다.


 

p72에 고득점용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고 그래프가 나오는 다른 문제, 23번을 풀어 봤습니다. 네 개의 선지 중 가장 까다로운 건 ㉠입니다. 대체재의 개념을 알아야 하고, 그 내용을 문제의 그래프와 연결시킬 줄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죠. 일단 그래프를 봤을 때 이것으로부터 알 수 있는 내용은 A가 B보다 가격 탄력성이 작다는 겁니다. 그럼 A의 수요가 잘 안 변한다는 소리죠. 안 변한다는 건 대체재가 적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대체재가 있으면 갈아타면 되니까요. 

 

㉡은 무조건 틀렸습니다. 소득이 증가하면 부동산의 수요곡선은 A고 B이고가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우측으로 이동하죠. 소득이 증가하는데 수요가 좌측이동하는(=줄어드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부동산이 무슨 핵폐기물 처리시설(애초에 수요 자체가 형성 안 되는)이 아닌 이상 말입니다. ㉢도 말이 안 됩니다. 가격이 하락하는데 왜 부동산의 수요가 감소하겠습니까? ㉡과 ㉢은 그래프를 볼 필요도 없이 선지의 설명만 읽어 봐도 무조건 틀린 것입니다. 

 

p73에는 25번 문제에서 수식이 나옵니다. 사실 이런 건 원리만 알면 초등학생도 풀 수 있는 방정식(초5때 배웁니다)이지만, 원리를 모르면 눈 앞이 캄캄할 수밖에 없죠. 일단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만 변했다고 문제에서 말합니다. 그럼 수요 측 요인이니 만약 가격이 올랐으면 균형량도 올라야 합니다. 또 가격이 내렸으면 양도 줄어야 합니다(수요측 원인이니까). 답은 ②③⑤ 중에만 있습니다. 

 

그런데 수요곡선이 -P 부분은 그대로고 900에서 1500으로 늘어난 거니까 결국 수요가 증가(=우측이동)했다는 뜻입니다. 그럼 ② 아님 ⑤입니다. ①~④에서 모두 숫자가 같은데, ⑤만 숫자가 다르니 ⑤가 정답일 가능성은 극히 낮죠. 잘 몰라도 이처럼 감각 있게 문제를 분석하면 답이 나올 수 있네요. 물론 별책부록 해설의 풀이처럼 대수적으로 정석 같은 풀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안전하게 말이죠. 

 

p81의 46번은 가격탄력성이 2, 소득탄력성이 0.5라는 거죠. 그럼 수요는 가격 변동시가 소득 변동시에 비해 4배 민감히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는 당연히 줄어듭니다. 그럼 소득이 올라 줘야 수요가 그대로일 텐데... 가격이 4% 올랐으므로 (둔한) 소득은 16%나 올라 줘야 맞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p80의 45번은 별책부록 해설이 참 명쾌합니다. 이건 사실 탄력성과 변화율을 각각 곱하면 됩니다. 가격은 0.5x4, 소득은 0.8x5. 그런데 가격은 상승했으니 수요는 마이너스, 소득은 증가했으니 수요는 플러스, 그러므로 마이너스 2 플러스 4 하여 답은 ③ 2% 증가가 되는 것입니다. 

 

p81의 48번(재작년인 '19년 기출)도 마찬가지 유형인데, 오피스텔 가격에 대한 아파트 수요 교차탄력성이 좀 낯설 수 있으나 이 역시 "탄력성 곱하기 변화율"을 하면 됩니다. 오피스텔과 아파트가 대체재라고 했으므로 오피스텔 가격이 오르면 아파트 수요가 증가한다고 처리하면 되겠네요. 

 

거미집 이론은 공급이 수요에 비해 비탄력적일 때 수렴형이 되고, 공급이 더 탄력적이면 발산형이 된다는 게 요지입니다. 아무래도 공급이 자유롭지 못하면 가격이 덜 유동적이지 않겠습니까(물건이 만들어져야 뭘 살 수가 있죠). p86의 TIP에 잘 나와 있지만 기울기 부호는 그냥 무시하고 절댓값만 보면 된다는 게 핵심이죠.

 

p88의 64번을 보면 이 책의 팁이나 개념 정리에서 항상 강조하는 게 "부호는 무시하고 (기울기의) 절댓값만 보라"는 겁니다. 그런데 혹 서두르다가 A 부동산에서 공급은 -1, 수요는 +1이므로 아 이거는 기울기의 절댓값이 같아서 순환형이다, 답은 ⑤, 뭐 이래서는 안 되는 거죠. 왜냐면 공급 방정식 좌변이 Q가 아니라 2Q입니다. 그럼 똑같이 Q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양변을 2로 나누면 기울기는 +1이 아니라 +0.5가 되죠. 공급 기울기 절댓값이 적으므로 A는 수렴형입니다. 

 

B부동산은 공급 방정식의 좌변이 3Q로 나오므로 역시 양변을 3으로 나눠 줘야 합니다. 그럼 기울기는 +2이므로 수요 공급의 기울기 절댓갑이 같습니다. 따라서 순환형. 문제 표시는 "고득점용"이라고 되었지만 사실 난이도는 TIP에 나온 저 내용대로만 따라해도 답이 바로 나오죠.

 

제3편 부동산시장론

 

p106의 TIP을 보면 이 단원에 대해 "암기가 아니라 용어 정리에 주력해야 한다"고 수험생들에게 충고합니다. 이 말은, 지나치게 암기 위주로 접근하면 오히려 암기가 더 안 되므로 가급적이면 이해를 시도하고 성의 있게(단기 메모리가 아닌) 공부에 임하라는 뜻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단원의 전반부는 암기 위주 내용에 가깝습니다. 

 

p120의 33번은 튀넨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출제된 문제입니다. 결국 생산자가 들인 비용이 가격보다 높아서는 이윤을 남길 수 없죠. 문제에서 (생산비용)+ (교통비용)x(거리) < (가격) 이 되는 건 쌀 하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 문제는 별책부록 해설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뿐 아니라 제2편, 제3편의 경제이론은 계산이나 그래프 문제가 많아서 해설이 정말 중요한데 별책 해설이 아쉬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4편 부동산정책론

 

시장의 실패, 외부 효과... 이런 것들은 전형적인 미시경제학의 토픽들입니다. 그래서 암기가 아니라 개념의 정확한 이해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p153의 14번 문제를 보면 그래프 문제가 또 나옵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②를 보면 사적(私的) 비용이 사회적 비용보다 크다고 합니다. 그림만 봐도 사회적 비용 곡선(사실 직선이지만)이 사적 비용보다 위에 위치합니다. 그럼 큰 거죠. 그래서 틀렸습니다.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건 예를 들면 플라스틱 용기 남용입니다. 플라스틱은 쓸모는 뛰어나고 원가는 워낙 싸다 보니 많이들 씁니다. 그러나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라는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큽니까? 그래서 시장에 내버려 두면 이는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초래되는 거죠. 부동산 시장에서는 재건축에 비길 수 있겠습니다. 같은 부지 같은 입지조건이라도 일단 재건축만 했다 하면 값이 뛰기 때문에 너도나도 재건축을 하려 듭니다. 이걸 방치하면 엄청난 자원 낭비가 이뤄질 겁니다. 

 

4편(정책론)의 후반부는 대체로 암기 사항이지만 고득점용인 43번(p166)은 또 계산 문제입니다. 이건 그냥 문제의 지시에 충실히만 따르면 암산으로도 사실 답이 나오는 문제이긴 합니다.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건 수요 Q와 공급 Q가 같아야 균형 가격, 균형량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 역시 별책부록 p37 해설이 굉장히 잘 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면 사실 인강 없이 책만 보고도 자력으로 이해가 되는 수준입니다. 참고로 이 문제는 14년 전인 2007년도에 출제되었습니다. 

 

p172의 57번, 58번 문제의 선지에는 동결효과(lock-in effect)가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주식에서 락업(lock-up)이라 하면 대주주, IB가 일정 기간 안에 처분을 못 하게 하는 조치를 말하는데... 사실 개념만 정확히 숙지하면 쉽게 풀리는 문제들입니다. 이 문제도 별책부록의 해설이 충실히 쓰였다고 느꼈습니다. 

 

제5편 부동산투자론

 

pp.180~187에는 특히 공인중개사 수험생들이 학개론에서 어려워하는 공식과 개념들이 나옵니다. 이 부분은 경영학과의 재무관리, 경제학과의 화폐금융론 강좌에서 다룰 만한 내용들인데 특히 경영학, 회계학 전공자들이라면 아주 친숙해할 토픽들입니다. 

 

p192의 12번 같은 문제는 개념 이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말고 이런 문제 하나를 풀어 보면 더 빨리 이해가 됩니다. p188의 TIP에 보면 "이런 유형은 1분 안에 해결하라"고 조언합니다. 매각대금은 9억, 여기서 경비 9천(=10%)를 빼면 8억 1천입니다. 총투자액은 6억인데 이 중 대부비율이 50%라 했으므로 미상환저당잔금은 3억입니다. 8억 1천에서 3억을 빼면 5억 1천이 남고 이게 정답입니다. 별책부록 p42 해설을 보면 "세전"을 구하는 문제이므로 자본이득세율이라는 자료는 불필요하다고 합니다.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11번 문제를 보면 과세대상소득을 구할 때 원리금상환액을 다 더하지 말고 원금상환분만 더하면 됩니다. 문제의 조건들에만 의한다고 했으므로 (문제에 말이 없는) 대체충당금은 그냥 0으로 처리하면 됩니다. 별책부록 p42 해설에도 그리 나와 있습니다. 

 

p209의 50번 문제에서는 특정 상황에서의 예상 수익률을 구하라고 하는데 표에서 각 상황이 20%, 40%, 40%이므로 합이 100%입니다. 이런 경우 가중평균을 구하는 건데 그 답이 표의 맨오른쪽 열에 나오는 대로 8%이라는 거죠. 가중평균을 혹 모르는 분이라고 해도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유형은 문제 2~3개를 풀면서(혹 모르면 풀이를 보면서) 익히면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p210의 53번 문제는 사실 "표준편차"의 정의만 알아도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합니다. ④와 ⑤는 서로 모순이므로, 틀린 걸 고르는 이 문제에서는 저 둘 중의 하나가 정답이 되어야 합니다. 별책부록 p49의 해설을 보면 위험회피적 투자자가 아니라, 보수적 투자자가 저런 선택(④)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둘을 헷갈리는 수험생들이 많으므로 유익한 해설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제6편 부동산금융론

 

이 단원 역시 계산문제 대표 유형을 반복 학습하면 나중에는 몸에 배어서 저절로 풀린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작년인 31회에 출제된 문제인 p239의 16번에 보면 문제에서 균등상환이라고 했으므로 20년 동안 똑같은 금액을 갚아야 합니다. 물론 이자가 포함되므로 4억원 보다는 금액이 크며 얼마가 될지는 계산을 해 봐야 알겠네요.

 

이 문제에서 가장 핵심은 문제 조건에 나오는 "저당상수"입니다. 0.09라고 합니다. 이걸 대출원금 4억원에 곱하면 (1년에) 3,600만원인데 이걸 20년 동안 갚으면 단순 계산으로 7억 2천만원입니다. 

 

문제 조건을 보면 1회차 원금 상환액이 1,000만원입니다. 그런데 1회차 총상환액을 아까 3,600만원으로 구했습니다. 그러면 이자 부분은 2,600만원입니다. 대출원금이 4억인데 이자가 2,600만원이므로 금리는 6.5%가 되는 겁니다. 2600 나누기 40000 하면 0.065이니까요. 

 

조심해야 할 게 대출원금이 4억인데 3600만원을 갚았다고는 하나 원금만 따지면 1000만원만 갚은 겁니다. 따라서 대출 원금 중 이제 갚아야 할 부분은 3천 9백만원입니다. 여기에 고정금리 6.5%를 곱하면 2,535만원이 나옵니다. 2회차에도 갚아야 할 총 금액은 3,600만원이므로 3600 빼기 2535 하면 1065가 나오고, 이게 문제에서 묻는 "2회차에 상환해야 하는 원금"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매년 상환해야 하는 총금액은 3,600만원이고 이 중에 원금만 따지면 얼마냐를 묻고 있는 거죠. 

 

제7편 부동산개발 및 관리론

 

요즘은 신문을 봐도 BTL이니 BTO니 BLT니 하는 말들이 일상처럼 나옵니다. 이런 용어를 모르면 해당 기사가 뭘 말하는지를 모르고 눈뜬 장님처럼 되는 거죠. 이 7편은 그런 상식 면에서도 공부가 매우 유익하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임대사업 하시는 분들은 평소에 체계적인 사업 영위를 위해서도 이 부분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p288의 21번을 보면 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별책부록 해설 p63을 보면 입지계수의 정의에 의해 아주 정석적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1000 나누기 2000 부분은 A, B, C 세 도시 모두 공통이므로(전국지표 기준) 무시해도 됩니다. 즉

 

A: 3/(3+4) ≒ 0.43
B: 5/(5+1) ≒ 0.83
C: 2/(2+5) ≒ 0.29

 

이것은 입지계수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에서 크기 순을 물었으므로 답은 B>A>C로 결과는 같습니다. 

 

제8편 부동산감정평가론

 

이 역시 만만하게 보면 안 되는 단원입니다. TIP에서는 개념 정리가 철저히 되어야 한다거나, 빈도가 높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출제된다거나, 기출문제 중심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식으로, 토픽별 특성을 일일이 구별하여 수험생들에게 알려 줍니다. 

 

특히 계산문제는 그 대표 유형을 완전히 몸에 배게 해야 하겠네요. p345의 35번은 꽤 어려워 보이지만 별책부록 해설 p70을 보면 허무할 만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개념을 일일이 글자대로 외우기보다 대표유형 문제를 풀고 이런 식으로 하는 거다, 몸에 배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뜻이죠. 

 

p350의 45번은 고득점용 문제입니다. 그러나 개념에서 제시된 수식만 정확하게 알고 숫자만 대입해도 풀 수가 있습니다. 부채감당률에 대부비율을 곱하고 저당상수를 여기에 다시 곱해 주면 환원이율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는 저당 대출기관의 입장에서 구하는, 부채감당법(p322)을 적용한 결과입니다. 

 

45번에서는 부채서비스액이 중요한 단서였지만, 46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수익가액을 구해야 하므로 기대이율도 쓰이지 않는 정보입니다. 

 

p351의 48번 문제는 공인중개사가 아니라 감정평가사 2017년도에 출제된 것인데 집필진이 특별히 수록했네요. 별책부록 해설 p72를 보면 물리적 투자결합법에 의한 환원이율(앞 45번을 다시 복습할 필요가 있습니다)에서 (0.5 x 5%)+((0.5 x 7%)이라고 합니다. 이때 앞에 각각 붙은 0.5는 문제에서 토지, 건물 각각 50%라고 했기 때문에 그리 한 것입니다. 만약 문제가 토지 30%, 건물 70%이었으면 0.3, 07을 각각 곱해야죠. 

 

이 교재 역시 해커스 예상문제집 시리즈 다른 책들처럼, 학개론용 기출문제 빈칸노트가 부록으로 맨 앞에 달려 있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체크하기에 아주 유익한 자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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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조선의 586 - 그들은 나라를 어떻게 바꿨나?
유성운 지음 / 이다미디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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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은 본디 훈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 9대 임금 성종이 정책적으로 키운 데서 그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조선 자체가 성리학 원리에 기반한 국가였으며, 여말에 원에서 본격적으로 이 체계를 배운 유학자들이 대거 확산하며 종래의 불교 중심 국가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국가와 군주에 대한 충절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성리학자들이 갓 활동 범위를 넓혀갈 무렵 역성 혁명이 일어났다는 건 아이러니입니다만 본격적으로 선비를 우대하겠다는 새 나라의 비전 표방이 있었으니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기로도 훈구는 적폐, 사림은 도덕적이고 청렴함, 뭐 이런 이분법으로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사림이 집권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세뇌 작업(의 잔재)"라고 이를 평가절하합니다.

중종실록을 보면 "<소학>은 기묘사림이 숭상했던 것이라 부형들이 자제를 가르치고 훈계함에 있어 한 사람이라도 이 책을 언급할까 걱정했습니다."라는 기술이 있다고 합니다(p31). 이는 당시 아직도 세를 크게 떨치던 훈구 세력이 사림에 대해 품었던 두려움을 표현한 것인데, 세상은 과연 그리 변하여 사림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후에는 유학적 도그마를 바탕으로 군주의 행보를 강력 견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은 게 말하자면 <소학> 등의 유교 경전이었던 셈입니다. 저자는 이를 오늘날 586이 1980년대에 즐겨 읽던 <해전사>에 비기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자의 견해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소학>은 p91에 이황의 입을 빌려 다시 등장합니다.

임사홍은 조선 내내 간신으로 낙인 찍혔고 저희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책, 만화 등에도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동시대인이었던 유자광도 그러했고, 좀 뒤인 중종 대로 오면 남곤, 심정 등이 그런 포지션이죠. 뒤의 세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인 인상입니다만 드라마 <왕과 비>에서 임혁 씨가 좋은 연기를 보여서인지 임사홍은 최근 들어 다소 평가가 좋아지는 느낌입니다. 저자는 pp.34~35에서 흙비, 화재 등 천재, 인재를 두고 사실 그대로를 지적하는 임사홍과 그를 탄핵하는 사림의 태도를 대비시키며 "지금 눈으로는 임사홍이 훨씬 정상"이라 지적합니다. 이런 사림의 태도는 시대를 2400년 역행하여 고대 중국 주나라의 질서로 회귀하려는 일종의 퇴행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는 계유정난 당시 사림이 받은 충격에 대해 언급합니다. (한참 전의) 왕자의 난에 대해서는 무덤덤하던 것이 이 사건에 대해서는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전두환의 12.12나 5.18에 대해 당시 학생들이 느꼈던 충격에 비유합니다. 예를 들어 20년 전인 5.16에 대해서는 초기 오히려 장준하 선생처럼 환영을 하던 움직임도 있었던 것과 확실하게 대비되죠.

p41에서는 저자가 신계륜씨가 정형근씨를 국회에서 보고 "주먹이 쥐어졌다"고 한 말을, 신숙주에 대해 사림이 당시 느꼈을 감정과 비교합니다. 이어, 정말 흥미롭게도 YS가 구 민정계, 혹은 상도동계만으로 국정을 이끌 수 없다고 여겨 김문수, 손학규, 이재오 등 이질적인 민주화운동 경력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정치에 참여시켰던 행적을 성종의 사림 스카웃에 비견합니다. 이 부분 읽으면서 재미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 세 분(적어도 두 분)은 이후 전 소속 진영과 확실히 선을 그었지만 말입니다.

p53에는 앞서 잠시 언급한 남곤이 등장하여 "우리 나라는 사대뿐 아니라 교린에 있어서도 사화(詞華)가 필요하니 문장 쓰는 능력을 결코 홀대할 수 없다"고 한 말이 인용됩니다. 실제로 앞선 시대의 신숙주도 대(對) 일본 외교를 중시했고 훈구파는 이처럼 국정 운영의 실무 능력 면에서 확실히 뛰어난 점이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는 그 앞선 고려 말처럼 왜구의 극심한 병폐가 덜했고 이런 국면이 훈구파의 집권기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죠. 이후 인종~명종 대는 훈구 집권기라기보다 외척에 의한 세도 정치에 가까우니 말입니다. 여튼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이른바 "사장파와 도학파의 대립"은 이런 구체적인 역사 기록을 보며 의미가 깊어지기도 하네요.

정치권에서는 종종 적통의 논란이 일곤 하는데 사실 이는 적절치 못합니다. 현재의 유권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 선택되면 충분하지 과거사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물론 다른 조건이 같다면 기왕이면 족보 좋은 인재를 선택하겠지만 말입니다. 권근이 학문적인 면모로도 포은과 야은에 못 할 바 없었지만, 도학의 적통을 논함에 있어 배척되고, 끝까지 조선 조정을 외면한 저 두 분이 이후 사림에 의해 내내 숭앙되었음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이 다음이 포인트인데, 건국 세력이 경멸되고 그 반대 진영이 고평가되는 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기는 합니다(저자의 견해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무관하게 말이죠).

"조선에 있어서는 사습(士習)이 비루하여 나아갈 바를 몰랐는데 김굉필이 젊어서 김종직에게 수업하여 문호를 조금 알고 스스로 송유(宋儒)의 끼친 실마리를 얻어서 규모를 극진히 하고 그 동정과 시위가 바로 정자, 주자와 같았으니..." 김굉필의 문묘 배향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크게 일었을 때 그를 옹호하는 논변 중 일부입니다. 사실 한반도 성리학의 대종은 안향에서 찾을 뿐이며 이분은 원(元)에서 학문한 분인데도 구태여 더 멀리 정주(程朱)의 송(宋)을 거론하는 걸 보면... 여튼 그 앞에는 "멀리 정몽주의 계통을 잇고 염락(濂洛)의 연원을 찾았다"며 김굉필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자는 김굉필을 두고 그리 경지가 높지는 못했으나 오로지 제자들을 잘 길러 학맥을 이은 공 하나로 기묘사림이 이처럼 무리수를 둔다며 비판합니다. "정의를 독점하고 배타성이 남달랐던(p90)" 사림은 결국 김굉필의 문묘 배향은 달성하지 못하였으나 절반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저자는 평가합니다.

썩어빠진 훈구 세력을 몰아내고 세력을 잡은 사림은 그럼 청렴하게 살았을까? 저자는 선조 연간 감사를 지냈던 유희춘을 거론하며, 심지어 첩의 집도 영암 군수와 전라 수사가 맡아 지어 줘야 했을 만큼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김해에 거주하던 박천이라는 인물이 도망한 왜비(倭婢)를 반환할 것을 왜의 사자에 요구하자 "우리는 본래 사천(私賤)이 없다"고 대답했다는 태종 연간의 일화가 나옵니다. 사실 사사로이 노비를 부린 건 고려 말 권문세족 발호 후부터의 폐습이며 딱히 이걸 두고 사림을 욕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여튼 청신한 기풍을 내세웠다는 사림 주도의 사회에서 오히려 노비의 비중이 증가했다는 건 문제입니다.

가장 문제인 게, 사림은 이른바 "열녀"라는 왜곡된 여성상을 만들어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노예적 삶을 동시대 여성에게 강요하고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근래 여성계 주도로 "고려 때만 해도 자녀 균분 상속 등 여성의 지위가 그리 낮지 않았으나 조선 들어 사림의 교조적 사회 개조 움직임이 크게 일며 남존여비의 사회 풍조가 지배했다"는 주장이 크게 대두하는 것과도 맥이 통합니다. ㅎㅎ

향약을 통해 사림들은 향촌 사회를 확고히 장악했는데 이른바 惡籍을 통해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만든 점도 특이합니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말을 빌려 "모두가 평등하지만 조금 더 평등한 사람"들의 명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군요. 오웰의 저 문장은 참 아무리 생각해도 명언입니다. 여튼 "당동벌이"의 배타성은 조선을 대외적이건 대내적이건 지극히 폐쇄적인 사회로 만들었고 국력은 날로 침체하여 결국 중국에 사대하고 왜에 뒤떨어지는 희망 없는 실패 국가로 전락하게 된 게 사실입니다.

사림이 오랜 기간 동안 소인배로 낙인 찍은 탓에 수백 년 후의 우리들도 그리 알고 있는 남곤(공교롭게도 북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에도 남곤 심정이가 소인배라는 말이 나옵니다)은,

"인심이 순박하지 못하여 교사한 마음이 날로 늘어나 공도로 과거를 설치하였는데도 폐단이 생겼는데 하물며 천거의 공정을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p147)"

현량과의 실시를 반대하며 저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 누가 이런 주장을 하면 20대 청년들이 아마 열화와 같이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사실 성리학이 태동했던 시기인 송대에도 道學이 오래 세력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저자는 주장하기를 송을 정복한 몽골의 원나라가 상업과 국제무역을 활성화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과 자본을 발전시켰다(그래서 성리학이 설 땅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남송도 강남을 적극 개발하여 물산을 폭발적으로 늘렸고 상업의 번성함은 비할 바가 없어서 금나라의 그 거센 공격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경제력 하나로 버텼던 것입니다.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완전히 자리한 국가는 따지고 보면 조선이 유일한 셈입니다. 덕천 막부도 시늉만 하다 결국관두고 중상주의로 갔으니 말이죠. 물론 사농공상의 확고한 신분질서와 성리학 체계를 바로 동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중종 때 속고내(束古乃)라는 여진족 추장의 처리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임꺽정>에 중요한, 아주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이장곤이 선제적 정벌의 찬성론자였고, 이에 반대하던 게 조광조 등 기유사림이었습니다. 결론은 조광조 등의 의견을 수용하여 여진족에게 강경책을 쓰지 않았고(이전 세종~세조 연간과는 반대로), 그 결과 백 년 뒤 여진족은 엄청난 세력을 이뤄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겼다는 겁니다. 이 사실은 근래 재주목되어 비단 이 책 저자분뿐 아니라 요즘 신진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 p173에 길게 인용된 조광조의 변론은 매우 유려하고 (많이 배운 사람 특유의) 품위를 풍깁니다. 그 담은 내용이 비록 국가 시책의 패착을 부른 어리석은 것이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사림은 결과적으로 우민화 정책을 폈다고 봐도 되는데 책 p192에는 "백성이 상공업에 종사하면 간사해진다"는 말도 나옵니다. 반면 중국은 오천 년 역사 동안 말만 사농공상이지 상인 세력이 배후에서 힘을 휘두르지 않은 역사가 없습니다. 원도 교초의 남발 때문에 유통 질서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망한 것입니다. 이처럼 교조화한 유림은 대개 상인 세력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이는 민생의 피폐로 귀결합니다. 저자는 586 특유의 반기업정서를 이와 연관 짓는 듯합니다.

저자는 광해군의 중립 외교에 대해 "전장 최전선에서 직접 전쟁을 겪어 본 그였기에 남다른 현실 감각으로 힘의 향방을 판단했을 것"이라 말합니다. 또 병자호란 당시의 한심한 혼란상을 길게 설명합니다. 척화파 주화파 사이의 대립을 마치 구질서 집착 - 신질서 적응 사이의 대립으로 치환시켜 친미는 죽을 길이고 새로 떠오르는 중국과 친해야 그게 실용주의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도 대략 십 년 전쯤에 있었습니다.

책에는 다양한 역사 기사가 인용되며 이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책을 고른 보람이 충분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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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의 정치혁명
장기표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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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선생님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거목 중 한 분입니다. 아마도 현재 활동하시는 분 중에는 가장 연로하신 분에 속하며, 또 아마 가장 오랜 동안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온 인사로 꼽혀야 할 듯합니다.

장기표 선생께서 서울 법대 재학생이었던 시절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의 분신이 있었죠. 이때 장기표 선생, 그리고 훗날 <전태일 열전>을 집필한 고 조영래 변호사 등은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가 시대의 비극 그 현장 앞에서 오열했습니다.

생전에 조영래 변호사는 한겨레신문(창간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 기고하여 "장기표는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라는 칼럼을 쓴 적 있습니다. 민주화 조치를 단행한 후 종래의 재야 인사들이 대거 석방, 사면 복권 된 후에도 유독 장기표 선생만큼은 이런저런 법적 규제를 통해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영래 변호사는 장 선생보다 2년 연하인데도 두 분은 간담상조하는 벗으로 오래 교유하신 듯합니다.

저 무렵부터 장기표 선생은 차세대 야권 지도자, 대통령감으로 꼽혔죠. 실제로 2000년 그가 민주국민당에 가담했을 때 YS는 "느그들 중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돼"라며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와 뜻을 같이했던 인사들은 박찬종, 김광일, 이기택 등 쟁쟁한 야권 원로들이었죠. 고 김광일 변호사도 서울 법대 출신인데 장 선생보다 6년 연상입니다. 마치 호랑이 같은 인상에, 말과 행동, 인격 등 모든 면에서 적들에게 한 치 흠을 잡히지 않는 지사이자 투사형인 거물이었죠.

장 선생은 이후로도 계속 독자 노선을 겪으며 정통 진보 세력의 한 맥을 정치세력화하려 애 썼으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 그의 엄청난 네임밸류에는 미치지 못하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아마도 대중은 (그의 실제 행적에 비해) 그를 널리 인지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장기표 선생은 근년에 들어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상에 대한 자신 나름의 깊은 통찰을 담은 저술, 강연 활동을 통해 우리 대중을 만나는 중입니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이며, 이 책이 저술된 경위는 책 서문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최근에 저도 많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출판사 행복에너지 권선복 대표님의 권유, 그리고 에디터인 한영미 작가님의 도움이 있었다고 선생은 스스로 밝힙니다.

이 책에서 그가 밝히는 신념과 비전 중 하나는 민주시장주의입니다. 20세기 들어 모든 왕정, 전체주의가 타파되고 오로지 살아남아 보편적 지지를 받는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아닌 어떤 체제도 이제는 인류의 심판과 타매를 받아 퇴장했으며, 혹 아직 퇴장하지 않은 레짐이 있다면 아마도 곧 그리될 운명이겠습니다. 그러니 어떤 지표와 이상이 민주주의 카테고리 밖에서 이뤄진다면, 이를 추구하는 자는 인류의 공적(公敵)으로 영원한 저주의 낙인이 찍혀 마땅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만한 풍요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통해 달성했습니다. 시장경제는 물론 많은 결함이 있으나 일단 전체가 먹을 파이를 이 정도씩이나 키워 줄 수 있는 다른 대안이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장 선생은 "민주시장주의"를 아젠다의 첫머리에 두는 것입니다.

또한 장 선생은 보수세력 일각의 종미(從美) 경향에 대해서도 매서운 일침을 놓습니다. 미국은 물론 선진국이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여전히 많지만, 그 사회에도 아주 몹쓸 병폐가 있으며 개탄스럽게도 우리는 어쩜 이런 가장 못된 점부터 거꾸로 배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대국의 영향력 행사를 자청하는 나쁜 습성이 있는데 사실 말이야바른말이지 YS도 야당 총재 시절 NYT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적이 있었죠. 아무튼 이게 우리의 고질적인 사대주의 습벽이며 장 선생이 책에서 이를 매섭고 준렬하게 질타하는 것입니다. 예전 원나라 때도 입성(立省)의 논의가 있었으며 명나라 때 조선의 조정이 굴신했던 역사야 두 말 하면 입이 아플 뿐입니다.

장기표 선생은 누구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민족의 재통일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자입니다. 그는 중국 역시 내심으로는 한국 중심의 통일을 그리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는데, 1) 어차피 체제가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는 북한은 자기 영토 보전도 중국에 의존해야 하는 실패한 국가이며 2) 자주적이고 강력한 자체 의지를 지닌 통일 한국은 종전처럼 마냥 미국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고 3) 이런 통일 한국이라야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결국은 내보낼 수 있을 것인데 이는 중국에 눈엣가시인 현안을 근본에서 해결할 수 있으므로 그들 역시 환영하는 바가 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을 오히려 친중으로 포섭하기 위해 중국은 지금보다 한국에게 유화적인 태도로 나올 수 있다는 거죠.

이를 요약하면 장 선생의 명명으로 "신문명정치"입니다. 종래 한국에서 이뤄진 온갖 부패하고 퇴행적인 구태가 일소되고, 당당하게 민족 통일을 이뤄 자주적인 국가를 이루고, 국력의 일대 도약을 달성하여 미국과 중국 등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강국을 건설한 후 세계 평화까지 도모하는, 인류 역사의 새 지평을 열어젖히는 감격의 도정을 닦아 나가자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얼마나 원대하며 벅찬 비전의 표명입니까.

장기표 선생을 현실 정당 정치 지도자로서 제대로 동반하지 못하고 "영원한 재야인사"로만 모시게 된 건 우리들의 불운입니다. 물론 저 호칭에는 추억과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 담긴 표현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장 선생님을 앞으로도 오래오래, 책을 통해 강연을 통해(서나마)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책을 내 주신 행복에너지에도 독자로서 감사 드립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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