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의 방 -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리옌첸 지음, 정세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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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법의(法醫)인류학자(人類學者)에게는 놀이동산이라고 부를 만큼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이곳을 '뼈의 방(The Bone Room)'이라 부른다. (p8)

 

제목이 대체 무슨 뜻일까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서문에서 저런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 누구나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고, 그 전문 분야의 일을 할 때에는 마치 놀이를 하듯, 일하는 보람이 마음껏 생기게끔 신명 나게 일을 해야 마땅하겠습니다. 저자 리옌첸 박사, 그리고 이 책에 추천사를 쓴 이수정 경기대 교수 같은 분들은 아마 그런 기분으로 자신의 일을 하는 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보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사람의 뼈, 그것도 대부분은 훼손되거나 부검 과정을 통해 들여다 봐야 하는 변사체의 뼈를 다루는 직업군에서 "놀이동산"을 거론한다는 건 아무래도 일반인의 감정과는 거리가 좀 멀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이런 특출한 재능을 지닌 전문가들이, 남다른 영감을 받아 가며 자신의 업무에 몰입하는 과정이 있어야 그 숱한 미제 사건들이 해결되겠죠. 또, 이런 분들의 비범한 "놀이"를 거쳐야, 악랄한 지능범들이 그 소굴에서 안온히 쉬지 못하고 결국은 끌려나와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법의학이라고 하지 뒤에 인류학을 붙이지는 않는데, 저자께서는 홍콩 중문대에서 인류학으로 석사를 한 후, 영국 레스터 대학에서 "법의인류학"으로 박사를 마쳤다고 나옵니다. 용어가 이렇게 된 건 저런 사정을 참고해야 하겠습니다. 법의인류학과 법의학이 어떻게 다른지는 p20 이하에 상세히 나옵니다. 잠시 옮겨 적어 보겠습니다.

 

"법의학자가 주로 시체에서 사망 원인을 찾는다면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의 종류와 원인을 관찰해 낸다. 법의학자들은 연조직이 남아 있는 시체를 다루기 때문에 부패 단계에 들어서거나 백골화한 시체를 접할 일이 거의 없다. 그에 비해 법의인류학자들은 이미 부패가 진행된 시체를 다룬다. 심지어는 미라(mummy)화된 시체를 접하기도 한다."

 

이 구절을 읽고 다시 책 제목인 "뼈의 방"을 보면 우리 독자들도 느낌이 좀 다를 듯합니다. p66에도 언급되는 미드 <본즈>를 즐겨 본 시청자들이라면 책에 특히 몰입할 수 있겠습니다. 

 

"법의인류학자의 사고 방식과 연구 방법은 인류학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p21)"

 

또 우리 독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저자는 동티모르에서 경찰과 함께, 예전 인도네시아의 군부 폭정 당시 학살당한 무연고 사체를 검시한 분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일 뿐 아니라, 인류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공헌을 남기기도 했다는 거죠. 그것도 매우 젊은 나이에. 

 

"법의인류학자들은 국제 법정에서 전범을 판결하는 데 증거를 제공하기도 하고, 무연고자들이 묻힌 집단 무덤에서 사망 원인을 분석하여 고인이 생전에 학대를 당하지는 않았는지 연구할 때도 있다.(p21)"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사법 정의 구현을 위해 자주 참고한 법의학 서적이, 중국 원나라 때 저술된 <무원록(無寃錄)>이었습니다. 조선 초기 이를 보강해서 낸 책이 <신주 무원록>입니다. 학창 시절 국사 교과서나 고전문학 등에서 자주 접한 이름이죠. 

 

지금 이 책에서는 <세원집록(洗寃集錄)>이 언급됩니다(p16). 원나라보다 앞선 송나라 때 송자(宋慈)라는 분이 집필했다고 하며 저자는 이 책이 중국 법의(인류)학의 원조라고 합니다. 그 내용은, 현재 학자들이 기술하는 지식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뼈의 개수라든가), 여튼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고, 간교한 범죄자의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한 지혜와 노하우가 총동원된 뜻 깊은 책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유골을 빨리 발굴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p28)"

 

우리 나라에서 과거 무녕왕릉 발굴 때도 그랬지만 서두르거나 졸속, 경솔한 발굴은 언제나 유물과 유골에 치명적인 해를 끼칩니다. 비록 다른 구석이 많긴 하나 저자는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모두에 공통으로 적용되어야 할 중요한 원칙들이 있다고 합니다.(p29) 

 

1. 누증의 법칙(superpositikon) 
2. 공반 관계(association)
3. 반복(recurrence)

 

이 세 가지가 모여 고고학이든 법의인류학이든 모두 중요시하는 "맥락"이 형성된다고 하네요.

 

앞서 언급된 <무원록>이나 <세원집록> 등 모든 법의학서와 관련 분야 종사들이 한결같이 추구하는 건 "회복적 정의(p31)"입니다. 뼈는 평생에 걸쳐 만들어지며 훌륭한 법의인류학자는 뼈나 그의 잔해만 보고도 그 사람이 생전에 어떤 습관을 갖고 살았으며 어떤 상해나 질병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뼈보다 더 당사자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는 증거나 단서는 없다고 봐야 하겠네요.

 

"동물과 사람의 뼈, 법랑질은 동식물, 음식, 식수의 근원을 반영한다.(p45)" 이른바 동위 원소 분석에 대해 자주 들어 봤을 건데요. 저자는 특히 스트론튬 분석을 통해 "어린 시절의 거주지를 추정하는 데 유용하다"고 합니다. 또 "뼈가 직접 말할 수 없을 때 우리 법의학자들은 그들을 대신해 말한다(p49)"고도 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기업의 반도체 생산 시설에서 일하던 분들이 백혈병 등의 발병에 대해 피해 배상 소송을 낸 적 있습니다. 18세기에 본격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성냥은 인류에게 많은 편의를 선사했지만 이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들은 인(phosphorus) 중독 때문에 건강에 큰 이상이 생겼다고 합니다. 주된 부작용으로는 턱뼈가 괴사하고 치아가 빠지는 것 등이 있습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남편을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소를 쓰는 것이었다(p59)." 약간은 조크가 들어갔지만 당시에는 큰 사회 문제였고 19세기 후반 크게 유행한 추리 소설에서도 가장 즐겨 쓰이던 소재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현재에도 이런 중독은 결코 사라진 문제가 아니며, 암과 골다공증 치료에 쓰이는 비스포네이트가 이런 증상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법의학에서 중시하는 단서는 (사체 다음으로) 의류품이라고 합니다. 옷에 션명한 노랑색이 남는 경우 아마도 옷을 입었던 사람이 비만이어서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옷에 난 구멍을 잘 분석해서 어떤 흉기로 어떤 방향에서 어떤 손을 주로 쓰는 사람이 남긴 흔적인지 추론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세모그룹 창업자가 수배 중 갑자기 백골화가 급격히 진전된 시선으로 발견되어 논란이 인 적 있습니다. 저자도 일반적으로 어떤 시신이 백골화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추산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강수량이 매우 많다고 하여 반드시 부패 속도가 빠르지는 않는데, 이는 파리의 알이 비에 더 많이 씻겨내려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p84). p90에서는 한국의 세월호 사건을 저자가 직접 언급하면서, 죽은 이들의 사망 원인을 밝히는 일은, 남은 사람들(유가족이나 친지)의 마음에 난 구멍을 메우는 뜻 깊은 작업이라고 강조합니다. p109에는 "죽은 사람을 잊는 것은 그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세계에 사는 종족 중에는 의도적으로 신체를 변형시키는 풍습을 지닌 이들이 많습니다. 책에서는 미얀만의 카렌 족 여성들이 목에 착용하는 여러 개의 링을 거론합니다. 그 외에도 의도적으로 편두를 만드는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 입 안에 링을 끼워 아랫입술을 비정상적으로 크게 키우는 이들, 또 중국의 전족 등 다양한 예가 있죠. 에콰도르의 수아 족은 머리를 수축시키는 문화로 유명한데, 정신과 의사를 가리키는 미국 속어인 "슈링크"도 여기서 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인체의 신비"라는 전시회는 요즘 중국 당국의 투명하지 못한 행정과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소재로 자주 쓰입니다. 물론 해당 전시회가 정말 끔찍한 만행의 결과물이라는 증거는 아직 발견된 바 없습니다. 사실 중국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까지도 인육을 먹는 악습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 왔는데 특히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p130 이하에서 자세히 서술합니다. 인육과는 별개로 이를 지탱한 인골(人骨)의 매매에 대해서도 저자는 동서양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서술합니다. 한결같이, 그 결론은 "뼈에 대해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중을 보내야 한다"입니다. 

 

앞서 언급된 법의학서들의 경우 그 제목에 공통으로 "원(寃)"이라는 글자가 들어갑니다. 이 글자는 원통하다는 뜻이며, 누군가에 대한 원한을 나타내는 "원(怨)"과는 다릅니다. 후자는 가해자라든가, 혹은 가해자로 여겨지는 사람에 대한 복수 등이 암시되지만, 전자는 그저 힘이 없어 억울하게 당했다는 마음가짐이 다입니다. 이렇게 원통한 경위로 죽은 사체는 일찍 강직이 이뤄질까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몸이 일찍 굳을까요? 아직 명확한 결론은 과학적으로 내려진 바 없으나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을 걸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선입견과는 달리 뼈는 매우 생명력 넘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혈관도 있고 신경도 있으며 그 때문에 "뼈를 때리면" 아픔이 극도에 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뼈는 그 민족이나 거주자의 특이 체질 같은 걸 다 반영하며,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국민으로 평가 받는 네덜란드인들의 경우 골반 크기로 남녀를 구분하기 힘들다고 합니다(여성들이 골반이 남자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음). 이는 키가 작아야 성장 과정에서 출산에 유리한 몸을 만들기 위해 골반을 키우는 성향 때문에 그렇다는군요.

 

한센 병은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됩니다(p161, p178 등). 이 병은 주로 피부를 썩게 하는데, 뼈하고는 무슨 상관일까 생각도 듭니다. 책에서는 나병환자의 경우 특히 손가락, 발가락의 뼈 등에 마치 막대사탕을 빨아먹은 듯한 흔적이 남는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E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규정헸습니다. 저자는 "뼈"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유기적으로 소통하게 돕는 단서이며, 현재와 과거가 순환할 수 있을 때에 우리의 문명이 진보할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저는 "잊는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모욕적이기도 하다"는 망말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고인을 잊는 걸 가리킵니다. 세상에는 뜻 깊게 자신의 목숨을 버린 이들도 많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 깊은 한을 남긴 이들도 많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영원한 생명 같은 게 보장되었다면 망자에 대해 무심해도 상관 없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망자에 대한 망각, 무관심이란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경시이자 모독일 수 있습니다. 뼈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도달하게 된 지점은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의미심장한 힌트였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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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꽃말
김윤지 지음 / 이노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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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풋풋함 그 자체가 좋다.
욕구와 욕망이 앞서는 것보다, 마음이 앞서는 풋풋함이 좋다.
 (p33. <연애> 中)

욕구와 욕망이라고 할 때 꼭 그것이 성(性)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겠습니다. 대뜸 그런 것부터 떠올린다는 게 벌써 풋풋함과는 거리가 먼 타락한 영혼의 증명입니다(독자인 저를 포함해서). 김동인의 단편 <광화사>에는 주인공인 화공이 순수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해 하룻밤의 연을 맺은 후, 바로 그 다음날 이미 알 것을 알고 난 여인의 눈빛이 예전과 달리 흐려져 있는 걸 보고 크게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 때문에 여인과 연을 맺었으니 그 이기심을 지나치게 탓할 건 아니지만 여튼 어떤 경험이 있고 없고가 사람을 이처럼 전과 후가 달리 보이게 만드는지 신기합니다. 

 

이뿐 아니라, 돈과 이익을 위해 달려드는 것, 그렇지 않고 그저 순수히 마음이 끌려서 몰두하는 건 서로 다릅니다. 무엇이든 타고난 본성이 시켜서 그 앞에 다가가는 건 풋풋함이고 순수함이며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가 뭐 별거 있나요.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들이 낱말과 문장이 되고,
당신과 나의 숨결이 우리의 운율이 되고,
 (p35. <시> 中)

 

셋째 행을 보면 전반부는 "당신과 나", 서로 분리된 주체였다가, 후반부에서는 "우리"로 융합됩니다. 이때 숨결은 비로소 운율로 승화합니다. 별거 없지만 분명히 별 게 있습니다. 

 

사랑이란
마음의 온도를 맞추는 것 (p19. <물음> 中)

 

그러나 "설렘의 감정만으로는 지킬 수 없는 것 또한 사랑의 단면이다. 때론 다툼을 통한 성장이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냉혹한 현실을 말할 때 시는 산문을 닮네요(행 구별은 제가 생략했습니다). 그럼 역시 풋풋함만으로는 사랑을 지킬 수 없다, 이어갈 수 없다는 뜻도 될까요? 제가 예전에 읽은 고 이윤기 선생의 책을 보면 군신 아레스의 입을 통한 "사랑도 전쟁과 같아서 때로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활짝 피었던 우리가
이는 바람에 모두 떨어지고
(중략)
그러니 꽃잎 한 점도 남기지 말자, 우리 (p68. <꽃잎 한 점>)

 

길지도 않은 한 편의 시이지만 마지막 행까지 읽고 나서야 제목이 왜 꽃잎 한 점인지 알았습니다. 사랑이건 우정이건 온전히 헌신하고 공유하고 보여 주고 안겨 줘야 하며 어떤 미련이나 비자금을 남겨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하는 말인데 예전에 드라마 <사랑과 전쟁> 어느 에피소드에서 "아낌없이 주는 게 뭐가 좋은지 알아? 미련이 안 남는다는 거야."라는 대사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부정을 저지르고 뉘우치는 전남편의 재결합 요구를 거절한다는 거죠. 물론 저런 건 미련이 남든 안 남든 무조선 거절해야 되는 거고 말입니다. 

 

이 시는 마지막 행에 자꾸 눈이 갑니다. "-X에게로부터-" 왜 이 작품에만 저 말이 붙어 있을까요? 또, "에게로부터"라는 조사 뭉치는 무슨 뜻일까요? "에게+로부터"일까요, 아님 "에게로+부터"일까요.

 

나날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미련들이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어요.
살면서 이런 기분을 몇 번이고 느껴 본 적이 있습니다.
미련들이 사라져 삶의 마련이 사라지는 그런 기분을. (p170. <미련이 남기는 마련> 中)

 

미련이 저렇게 사라져 버리면 "마련"도 결국 같이 사라지고 만다, 정말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결국 미련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미련은 떠나 보내어도 마련은 남겨 둬야 할 텐데 그게 그렇게 다 뜻대로 되면 인생이 참 쉽겠죠.

 

집 안 어딘가에 있는 서랍장 안에는
전달되지 못한 주인 잃은 편지들이 있다 
(중략)
그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p60. <서랍장> 中)

 

화자도 그 서랍장이 집 안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지,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는 듯합니다. 그러니 주인을 잃은 것 아닐지... 혹은, 어차피 처음부터 편지들이 주인을 잃게 하려고 내심 작정했기에, 알고 있었던 서랍장에 대한 기억을 고의로 잃었는지... 누구를 향해 쓴 편지도 그 누구한테 전달되게 하려면 그 나름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행의 "사랑들"을 저는 처음에 "사람들"로 잘못 읽었습니다. 서랍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내가 잊은 사람들, 내가 잃은 사람들... 편지를 집 삼아 서랍장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 안에는 하나씩의 사랑이 둥지를 틉니다...라고 생각했었으나 제가 잘못 읽은 것일뿐...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무한하지만 유한한 시간들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로 흘러가는가.
(중략)
닿지 못한 한마디 한마디들이 쌓여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지는 않을까. (p115. <무한하면서도 유한한 것> 中)

 

이 작품에서도 "전달되지 못한 주인 잃은 편지들"이 연상됩니다.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말은 유한하지만 담은 정은 무한합니다. 3차원 공간도 테두리는 유한하지만 그 안에 무한대의 넓이를 품을 수 있습니다. 유치환의 <깃발>에서처럼 노스탤지어 때문에 소리 없이 질러진 아우성들이 유한한 서랍장을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그 서랍장은 사실 무한한 공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사랑들이 그리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니...

 

사회에서도 보면 꽤나 많은 타인들이 우리의, 나의 삶에 필요치 않은 간섭을 하는 때가 있다. 
(중략)
나를 어느 정도 안다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의하지 말아주길.
(중략)
우리가 아무리 가깝더라도 우리는 결국에는 다르기에, 
우리는 더없이 가깝고 그래서 더 서로가 서로를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는 소중한 타인입니다. 
(p161. <우리는 타인입니다> 中)

 

사실 이런 무례한 언행을 우리는 일상에서 겪기도 하고, 혹은 내가 타인에게 저지르기도 합니다. 내가 저지른다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당한 사람은 많다는 것도 좀 신기합니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한테 그러고 다니는 건지... 그런데, 아마, 그랬던 사람도 혼자서 나중에 생각하기로, 그때 선을 넘은 게 아닌가 하고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너무 상처 받지 말자구요.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놓는 것이 더 힘든 일이란 것을 
몇 번의 좌절과 실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중략)
틀린 길, 맞는 길은 없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내가 있는 길이고 나이다. 
(p192. <내려놓기>)

 

틀린 길, 맞는 길이 따로 없고 각자가 서 있는 길이 모두 다 이유가 있어서 그리 된 것입니다. 자연계에도 얼마나 다양한 생물들이 있습니까. 꽃은 또 얼마나 종류가 많습니까. 그 다양한 모습 중에 틀린 것도 없고 맞는 것도 없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의 꽃말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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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책고래마을 38
이경은 지음 / 책고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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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Godfather III>을 보면 처음에 기념 파티 장면에서 이른바 cumulative song인 "Eh, cumpari!"라는 이탈리아어 노래가 나옵니다. 우리로 치면 어렸을 때 하던 놀이인 "시장에 가면 ♪ 옷도 있고 ♬ 떡볶이도 있고..." 처럼 앞사람이 부른 구절을 다 받아서 뒷사람이 하나씩 추가하는 것과 비슷한 꼴인데요...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저것과 조금 비슷합니다. 조이라는 이름의, 보라색 머리(약간 브리지)를 한 여자아이가 나오는데, 이 아이는 무엇인가를 찾아달라고 합니다. "혼자서는 찾기 어려워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려고 해.(이 그림책에는 페이지수가 안 적혀서 출처를 못 적겠네요)"라고 우리 독자에게 말을 거는데요... "너희도 같이 찾아 주지 않을래?"라고 묻는데 저 "너희"가 아마 독자를 가리키겠습니다만 말만 저렇게 하고 우리 독자들에게는 직접 힌트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책을 읽어 가면서 뭔지 우리가 짐작을 해 내야 합니다. 수수께끼와도 비슷합니다. 아니, 뒤에 나오는 힌트를 보니 수수께끼가 맞습니다.

 

조이는 먼저 티미를 찾아가는데요. 티미가 누구인지는 말로는 설명이 없고, 다음 페이지를 넘겨 보니 아 티미는 생쥐구나, 하고 우리 독자들도 알게 됩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샤갈 풍의 그림 안에 큰 시계가 보이는 걸로 봐서 이 티미는 시계탑 같은 곳에 사는 듯합니다. 영어에 as poor as a church mouse라는 표현도 있듯 티미는 교회에 사는 애일수도 있죠. 

 

조이가 뭘 찾는지 티미가 조이한테 듣고 말 해 주는 힌트를 보면 "소중한 것, 까만 나무로 된 몸"뿐입니다. 티미는 알지 못한다고 하고, 척척박사 휴고한테 가서 물어 보라고 합니다. 이때 티미도 따라가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이처럼 동행하는 친구 하나씩이 늘어나면서 힌트도 조금씩 늘어나는 식입니다. 

 

"부드럽게 만져 주면 노래를 불러서 널 기쁘게 해 준다고?" 조이에게 말을 듣고 휴고가 되묻습니다. 힌트가 더 는 거죠. 처음부터 힌트를 다 말해 줬으면 덜 번거로웠을 건데... 아마, 친구들이 잘 모르니까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그때마다 조이가 머리를 더 짜내서 생각을  해 내는 것 같습니다. 


 

휴고는 도서관 같은 데 사는 올빼미인데 자신도 모르겠어서 티미와 조이를 데리고 "파란 숲에 사는 마빈 형제"한테 물으러 가자고 합니다. 역시 소개만 시켜 주는 게 아니라 자신도 동행, 아니 리드를 하는데 새라서 날개로 날아갑니다. 티미와 조이는 휴고의 발을 잡은 채 매달립니다. 휴고가 아는 것만 많은 게 아니라 힘도 좋습니다. 매달린 티미의 등을 보니 은은한 와인색 장미가 그려져 있습니다. 


 

책 제목이 "똑똑똑"인데 이 뜻은 조이와 그의 친구들(처음에는 친구가 아니었으나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하나 둘 친구가 되었죠)의 다른 친구 집을 방문하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파란 숲"이라고 해서 정말로 blue한 숲일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고 그냥 초록색이었습니다. 올빼미는 나이가 많아서인지 언어 습관이 좀 올드하네요. 마빈 형제는 미어캣으로 보입니다. 

 

마빈 형제에게는 앞선 힌트에 "가끔 화가 나면 '꽝'하고 입을 닫는다"는 말을 덧붙여서 묻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어떤 독자들에게는 "혹시?"하고 느낌이 오는 뭔가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산꼭대기 탑에 사는 루크는 뭔가 고깃덩이 같은 걸 뜯고 있는데 저는 얘가 무슨 동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작은 용처럼도 보입니다. 또 힌트가 하나 추가되는데 "루크처럼 이빨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어떤 독자는 여기서 "역시!"하고 확신이 오겠고, 어떤 독자는 "아닌가?"라고 오히려 더 흔들릴 것 같습니다. 

 

루크는 혼자서 살며, 조이 들과 같이 떠나게 될 목적지인 페리네 바다동굴로 가게 되면 "100년만의 외출"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안 움직이고 살면 수명이 길지 못할 텐데 말입니다. 

 

페리는 어떤 관악기를 불고 있는 뮤지션이며 해마처럼 보입니다. 페리에게는 티미, 휴고, 마빈, 루크가 모두 다가와 한 마디씩 힌트를 얘기해 줍니다. 이쯤 되면 이제 페리가 답을 알아낼 것 같습니다. 

 

답은 스포일러이므로 이 독후감에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왜 이걸 찾았냐고 묻자, 조이는 동생 로이의 생일이라서 축하 노래를 불러 주려고 했다고 합니다. 책 맨 앞 페이지에 달력이 하나 나오는데 생일은 5월 11일인가 봅니다. 


 

동생에게 노래 한 곡 불러 주기 위해 그토록 먼 여행을 떠나 기어이 답을 알아내고 만 조이의 노력을 보고 우리들도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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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지음 / 탑메이드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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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완성"이라고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해답과 색인, 자료 등을 포함하여 책은 모두 332페이지입니다. 양이 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초등학생 때 학습해야 할 내용을 다 담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네요. 


 

올컬러로 인쇄되었고 페이지마다 많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초등 교재 중에 이렇게 꽉 차게 내용을 담은 책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봐도 그렇고, 학생한테 보여 줘도, 눈이 피곤하다는 반응은 안 나옵니다. 누가 봐도, 아, 책을 참 공들여 만들었다, 뭐 그런 느낌이 드는 교재입니다. 

 

1개월 완성이 목표인 책이라서 DAY 01, DAY 02... 이런 식으로 30일분으로 나눠서 구성됩니다. 그뿐이 아니라 페이지 옆면에 며칠째의 분량인지 알려 주는 색인이 다 찍혀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진짜 공이 많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탄스럽습니다. 

 

이 책은 어휘 공부 교재이기 때문에 모든 내용은 단어 학습 위주입니다. 맨 앞에 preview test가 나옵니다. preview test는 그림하고 단어를 매칭시키는 거고, today's task는 아는 단어, 모르는 단어가 뭔지 점검을 하는 코너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게 이 책의 핵심인 VOCABULARY 공부입니다. 발음기호도 적어 주고 이게 지금 초등학생용 교재이므로 한글로도 발음을 적어 놓았네요. 영어는 액센트가 없으면 뭔 소린지 못 알아듣기 때문에 강세가 있는 음절에 볼드체로 강조를 해 놓았습니다. 가끔 일러스트도 같이 나와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네요. 

 

어떤 사람은 한글로 읽어 버릇하면 안된다고 하던데, 그런 얘기가 나온지도 30년이 넘었죠. 그런데도 막상 애들한테 시켜 보니까 안 되지 않습니까. 어른이 아니라 애들이 공부하는 것이니 공부하는 애들이 편하게 해 줘야죠. 이 책처럼 애들 눈높이에 맞추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DAY 07의 p49를 보면 A bird in the hand is worth two in the bush라는 예문이 나옵니다. 초등학생한테 조금 어려운 느낌도 듭니다만, 따지고 보면 필요할 때 이런 속담을 즉석에서 떠올려야 할 어른들 입장에서나 어렵지, 저 문장을 주고 해석만 하라고 하면 단어도 어려운 단어가 없고 그리 어렵게 읽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초등생에게는 아직, worth 같은, 목적어를 취하는 형용사가 어렵긴 하죠. 이것도 문법적으로 분석을 하려고 해서 어렵지 직관적으로 보면 그렇지도 않겠습니다. 이런 것도 공부할 의욕이 넘치는 상위권 학생들은 잘 소화합니다. 공부는 내가 설사 중위권이라고 해도 나중에 상위권을 따라잡겠다는 생각으로 해야지(=롤 모델은 상위권이 되어야지) 중위권에 걸맞은 공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DAY 27 p171에 보면 I suppose it was worth waiting이란 문장이 나옵니다. 이 예문은 suppose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건데 저는 여기서도 worth가 더 눈에 띕니다. worth는 목적어를 취하는 특이한 형용사이지만, 그 중에서도 능동의 뜻인 ~ing꼴로 수동인 뜻을 나타내는 용법이죠. 이런 건 동사 중에는 need, want 같은 게있습니다. 이건, 보다 상급 학교로 가서 배우는 거고, 여기서는 suppose가 저렇게 절(clause)을 목적어로 취하는 모습만 눈에 익혀 두면 되겠습니다. 물론 초등 과정이므로 절(節)이다 뭐다 하는 문법 용어는 알 필요가 없죠. 그냥 모습이 저렇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제가 생각할 때 단어를 정말 정확히 공부하려면 단어가 문장 속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이처럼 예문이 중요합니다. 


 

empty(p49)가 "비어 있다"라는 뜻인 건 다 알지만, 이 책에 나온 예문처럼 (잔 등을) 비운다는 뜻이 있는 건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초등학생은 물론 어른들도). 어렸을 때부터, 영단어에는 우리말과 달라서 이처럼 형용사가 동사 노릇을 겸하기도 한다는 점 알려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문에까지 이런 용법이 나와서 좀 의외였습니다. 사실 어려서부터 이런 습관이 안 들면, 커서, 고등학생 정도만 돼도, 이미 머리가 굳어가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DAY 03 p25를 보면 discuss가 나오는데 이 단어는 중학교 쯤으로 올라가면 "자동사로 착각하기 쉬운 타동사" 범주에 묶여서 자주 보는 단어죠. 우리말이 그렇기 때문에 discuss가 아니라 discuss about으로 잘못 쓰기 쉽다는 겁니다. 저 페이지를 보면 예문에도 discuss a few things이라 하여 전치사 없이 쓰는 타동사임을 학생들에게 보여 주고 있네요. 예문도 신경 써서 잘 골라 넣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 초등학생이니까 자동사 타동사 하는 문법까지는 알 필요 없지만 여튼 이런 게 눈에 익어 가야 하지 않을까요.


 

p170에 나오는 relate라는 단어는 오히려 타동사로 착각하기 쉬운 자동사죠. 그 명사형인 relation 때문에 생긴 게 눈에 익은데 이 책 예문(What he said does not relate to the fact.)에도 잘 나와 있듯 전치사 to와 보통 결합하여 "~에 부합하다"로 쓰입니다. ㅎㅎ 초등생 자녀를 둔 학부형들은 이 용법, 이 단어를 과연 알고 계실까요? 아이를 잘 가르치려면 먼저 가르치는 사람부터가 막히는 게 없어야 합니다. 요즘 초등 교재 수준이 글쎄 이렇습니다. 


 

p152를 보면 suggest가 나오는데 예문의 목적절을 보면 you change라고 해서 조동사 will, would 같은 게 없죠. 그냥 동사원형이 쓰이는 건데 상급 학교로 가면 이 문법을 배웁니다. 주어가 2인칭이라서 그냥 suggest이니 이 꼴이 원형인지 어떤지 알 방법이 없지만 만약 주어가 she 같은 것이었으면 changes가 아니라서 이상한 게 눈에 확 띄었을 겁니다. 

 

모든 단원 뒤에는 엑서사이즈가 나오는데 6~10번과 16~20번은 녹음된 내용을 들어야 풀 수 있습니다. 녹음 파일을 듣고 나서 문제의 지시에 맞게 풀어야 합니다. 녹음파일은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하듯이 그냥 책만 갖고 눈으로만 풀지 말고, 시청각 교재를 함께 활용해야 살아 있는 영어, 써 먹을 수 있는 영어가 됩니다. 또 그저 기억이 오래가게 하기 위해서라도 음성 파일을 자꾸 들어야 합니다. 

 

30일만에 마스터하기엔 양이 많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초등학생 아니라 어른이라도 30일 안에 이 책의 내용을 완전히 머리 속에 넣을 수는 없죠. p5에 나와 있듯이 반복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한 번 돌리는 데에 이 책의 커리대로 30일이 걸리겠고, 그 다음 두 번 세 번 돌릴 때에는 조금 기간을 단축해서라도 여러 번 반복할 수 있을 겁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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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이 미래를 바꾼다 - 미래의 부를 주도하며 살 것인가 구경꾼으로 살 것인가
오진현 지음 / 굿웰스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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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암호화폐의 경우, 비잔틴 장군의 문제에 대한 수학적 증명을 통해 발생과 거래내역 등 진위의 위조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채굴 과정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무한정으로 찍는 게 불가능하니(도지코인 등 예외가 있죠) 많은 이들의 우려가 해소된다고 하죠. 그러나 저자는 "코인 시장은 위조품이 판을 치는 곳이다. 메이저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코인은 99% 가짜라고 보면 된다. 메이저 거래소 상장 코인도 다 믿을 건 못된다.(p31)"라고 합니다.

저자는 코인 사업을 하려고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절대 안 되며, 된다고 해도 200년은 지나야 합니다." 대표의 말이었습니다. 이랬던 그가 연락을 해 와서는 코인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말레이시아, 중국, 캄보디아에서 해당 코인이 유통되는 걸 보여 줬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육군 소장이 마치 보증이라도 서는 듯했습니다. 얼마 후 본사와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사기였던 것입니다.

이러던 그가 다시 재기에 성공한 건 채굴사업을 알고부터입니다. 이때가 2016년입니다. 이때 비트코인 전망을 어둡게 보던 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비트코인뿐 아니라 다른 가상화폐까지 가격이 폭등했으므로 타이밍 잘 탄 분들은 돈깨나 벌었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중국에서 채굴을 본격적으로 단속하고 있으며 한국의 코인 거래소들도 (보시다시피) 코인 삭제에 아주 열심이므로 시황이 아주 좋지 않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가상화폐 시장은 주식보다 훨씬 더 위험요소가 많다. 곳곳이 지뢰밭이다." "2018년 비트코인이 한창 상승할 때 2700만원에 매수하여 물린 후 큰 손실을 보고 매도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 중에는 코인 시장을 영원히 떠난 이들도 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딘(이른바 "존버") 사람들은 3년 뒤 큰 수익을 내었다. 그 사람들은 적어도 블록체인이 뭔지 알았던 사람들이다."(pp.68~69)

이래서 판단이 어려운 겁니다. 2018년 대폭락 후 비트코인에 물린 사람들한테 이른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당시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손절할 때 손절할 줄을 알아야 투자를 할 수 있다. 손절 못 하는 사람들이 꼭 보면 미련하게 물려 있다 패가망신한다." 과연 어떤 경우에 존버를 해야 하며, 반대로 어떤 경우에 미련없이 손절을 결단해야 하는 걸까요? 저자는 그에 대한 답으로 "블록체인을 공부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꼭 전문가 수준으로 알아야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하네요. p211)

모든 투자는 공부를 거친 후에 시도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 그저 단톡방에서 소문 듣고 친구 말 믿고 대출 받아서 투자하는 사람들은 투기를 하는 것이며, 언제 망할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길, 지뢰밭(p68)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블록체인을 공부할 것을 권유합니다. 앞으로 블록체인은 인터넷 자체를 대체할 것이며, 가뜩이나 불이 붙은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하며 그 핵심 원리로 작동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책 앞에서 그 대표분은 "된다고 해도(된다고 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가정입니다) 200년 뒤에나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앞으로 가상화폐는 가상 자산도 아니고 가상도 아니며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화폐'가 될 것이다." 내가 해외여행이라도 갈라치면 현지화폐로 환전, 갔다 와서 한국 원으로 또 환전, 이 과정에서 두 번의 수수료를 내고 은행만 배불립니다. 이처럼 불합리한 게 또 어디 있냐는 겁니다.

과거 독일은 300여 개의 영방(領邦)으로 분립되었습니다. 이 상태가 육백 년 넘게 지속되었으나 결국 프로이센에 의해 통일되고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뤘죠. 국경을 (거의) 걷어치우고 관세를 철폐하니 주민들의 편의가 예전 같을 리 없습니다. 개인의 삶도 이전과 달리 국경 안에서 가장 싼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기업들도 이전보다 자유롭게 노동력을 고용하니 경쟁력이 증가할 밖에요. 지금은 상품과 서비스, 인력이 비교적 자유롭게(아직은 많은 제약이 있지만) 국경을 넘나듭니다. 이 정도도 전에는 상상 못 할 상황이었고, 앞으로는 세상이 통일된 화폐를 쓰리라는 저자의 전망은 마냥 근거 없는 환상만은 아닙니다.

"첫째,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 법정화폐가 된다. 둘째, 이는 단순 투자가 아니라 시대 흐름을 따라가는 투자다.(pp.115~116)" 이렇게 되면 코인은 이미 자산이 아니니 거래소도 필요 없겠지요. 지금도 물론 외환 거래소가 있습니다만 이는 각 화폐가 국가의 경계를 못 벗어나기에 존재하는 거죠. 저자의 말대로 미래에 모두가 국가의 횡포를 벗어나(저자의 말입니다) 단일 화폐를 쓰고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살면 거래소는 필요가 없죠. 사실 영화 <스타워즈>에서 가장 신기한 건 어떻게 은하계 모두가 신용할 수 있는 화폐를 쓰고 있냐는 거였습니다. 아직 "황제"가 세상을 다 장악한 게 아니라서 그(같은 존재)가 보증한 화폐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여튼 현재 돌아다니는 코인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이 책의 저자분도 좋은 전망을 표현하는 건 비트코인, 이더 정도이지 코인 자체에 대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고 만든 코인도 있다(p143)"고까지 말합니다. ICO에서 사기 안 당하려면 그나마 규모가 큰 곳에 참여해야 피해를 볼 확률이 낮아진다고 합니다. 이 역시 조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p251에서는 "주식에 삼전이 있다면 코인에는 비트, 이더가 있으니 모든 자산에는 이른바 급이라는 게 있는 법"이라고 합니다.

코인 발행 회사가 자체 거래소를 운영하기도 하니 특히 조심하라고 합니다. "허접한 거래소에 상장해서 자전거래로 투자자를 현혹하고 무가치한 코인을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기획 사기는 전혀 사기가 아닌 것처럼 철저히 위장하여 투자자들 진을 빼고 마무리된다.(p154)" 수사 기관도 제대로 모르고, 이 일에 밝은 변호사도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조심하는 게 그저 상책입니다.

이른바 김프, 즉 한국 시장에서 유독 비트코인 등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현상은 중국인 투기 세력만 배를 불려 준다고 언론에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전혀 다릅니다. 앞으로 비트코인의 가치가 뛰면, 한국에서 비트코인을 팔아치운 중국인의 손에는 위안화(그대로인)만 쥐어졌으나, 한국인은 앞으로 가치가 크게 오른 비트코인을 쥐고 있으니, 과연 누가 이익이냐(p165)는 겁니다. 이 부분은 사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더 지켜 봐야죠.

"현금이 사라진다니 말이 됩니까? 같이 쓰인다면 몰라도 현금이 사라지고 비트코인만 통용되다뇨!(p205)"

현금의 대체물은 많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세계적으로도 이른 시기에 완비된 한국의 온라인 송금도 크게 보면 현금의 대체품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기껏해야 우체국의 전신환이었죠. 신용 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드결제도 아무리 이게 현금 거래를 대체한다고 해도 현금은 병용이 되어야 거래가 안전하죠. 그러나 만약 비트코인이 화폐가 된다면, 그건 신용카드나 상품권처럼 보조 수단이 아니라 이미 메인이므로 기존 법화가 설 땅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창업은 돈보다 생각이 중요하고 행동이 중요하다. 사업은 결코 돈으로 하는 게 아니다(p288)." 저자는 "나는 돈을 벌고 싶다기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도 합니다. 세상이 뒤집어질 만큼 큰 기회가 비트코인 안에 있다는 뜻이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이 과연 저점 매수의 기회일까요? 부자들은 지금 비트코인으로 갈아타고 있다는데, 우리도 동참해야 할까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신중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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