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해커스 공인중개사 출제예상문제집 2차 부동산공법 - 제 32회 공인중개사 2차 시험 대비ㅣ기출지문 빈칸노트 제공 2021 해커스 공인중개사 출제예상문제집
한종민.해커스 공인중개사시험 연구소 지음 / 해커스공인중개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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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보다 부동산공법을 어려워하는 수험생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 수험생 중 한 명인데요. 그 과목은 국토의이용및계획에관한법률, 도시개발법,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건축법, 주택법, 농지법 등입니다. 이 법들은 건축기사 등 다른 자격증 시험에도 고스란히 범위에 포함됩니다(단, 도로법은 제외). 사실 살면서 자주 부딪히는 법들은 이런 건축 관계법규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공인중개사 등 특정 자격증 시험을 떠나서 상식적으로도 잘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야말로 문제 위주 구성이므로 개념 파트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이 시리즈(예상문제집)가 다 그렇듯 포인트 TIP은 빠지지 않고 적절한 장소에 실려 있습니다. 

 

제1편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

 

p23의 10번 문제가 고득점용입니다. 기반시설을 유발하는 시설에서 제외되는 게 아닌 것, 이중부정이므로 결국 유발 시설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규정은 해당 법규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암기로 해결해야 합니다. 별책 해설 p12을 보면 "녹지지역, 농림지역, 관리지역, 자연환경보전지역에 설치되는 공판장"이라고 나옵니다. 이런 공판장은 예외이지만, 선지 ②처럼 "상업지역"은 예외로 봐 주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상업지역인데 이걸 예외 취급할 리가 없고 오히려 더 규제를 강화하겠죠.

 

p33의 06번을 보면 문제에서 OO도의 관할구역에 속한다고 했으므로 원칙적으로 S시는 도지사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국토교통부장관의 승인 사항은 따로 있죠. 

 

p39의 12번도 고득점용입니다. ②③④⑤는 법조문에 다 나와 있고, ①은 선지 안에 "상업지역"이란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앞선 10번 문제처럼, "상업지역"은 오히려 규제를 받아야 할 판인데 토지적성평가가 면제될 수 있겠습니까? 

 

p50의 11번. 고득점용 문제인데, 선지 ①에는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해설책 p18에는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이, 농공단지에는 적용된다고 합니다. ①이 그래서 틀렸다는 거죠. 이것은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 제76조 5항 2호에 나옵니다. 이런 건 그냥 외우는 수밖에 없죠. 또, 선지에서 오답의 포인트인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은 이런 부동산공법과는 관계가 크지 않습니다. 

 

p82의 30번도 고득점용 문제입니다. 답은 ①인데 선지 중 20년이 아니라 10년이 맞다는 소리죠(별책 p26). 도시군계획시설 결정을 해제하기 위해, 관리계획 입안을 신청할 수 있는 기한이 10년이라는 소리입니다. 이런 시한을 정하는 데 20년은 너무 긴 기간입니다. 또, 땅을 저렇게 묶어만 놓고선 사업을 하지 않고 무한정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건 부당하기에 이런 규정이 마련된 것입니다.

 

p100의 25번에는 중요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①은 "기반시설의 설치가 곤란한 지역"에 지정하는 건, "기반시설부담구역"이 아니라 개발밀도관리구역이라는 뜻입니다. 도로, 녹지, 공원, 수도, 하수도 등이 "기반시설부담구역"에 지어지는 대표적인 예인데, 이걸 "기반시설의 설치가 곤란한 지역"에 지정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프라를 그냥 갖다버리는 거죠.

 

제2편 도시개발법 

 

p115의 10번은 많은 초심자들이 자주 틀리는 사항 중의 하나입니다. 보통 지레짐작으로 ④를 고르는데, 인구 50만 이상의 시장은 오히려 도시개발구역의 지정권자가 될 필요가 큽니다. 반면 자치구의 구청장은 설령 해당 자치구의 인구가 50만이 넘어도 이를 지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p125. 중요 표시가 찍힌 10번은 도시개발조합에 대한 걸 묻는 문제입니다. ①은 어디가 틀렸을까요? 인가권자는 지정권자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p115의 10번과 똑 같이, 구청장이 빠져야 올바른 답이 됩니다. 따라서 대도시가 아닌 시장, 군수도 제외됩니다. ④는 어디가 틀렸을까요? "사무소 소재지 변경"의 경우는 인가가 아니라 신고만으로 충분합니다. 

 

p144에서 ③은 "행정청인 시행자"에 해당하는 설명입니다. 행정청이 아닌 시행자에게는 "감가보상금"은 적용이 없죠. 청산금 징수의 경우는 "행정청이 아닌 시행자"는 위탁을 할 수 있습니다. 

 

제3편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법

 

p168의 05번은 고득점 유형입니다. 재개발 사업의 경우 국공유지의 경우에도 면적기준 1/3이 아니라 1/2라고 규정됩니다. 그래서 ①이 틀렸습니다.

 

p191의 57번은 중요 표시가 찍혔습니다. ⑤가 틀렸으며 중지 또는 폐지의 경우에도 인가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신고로 그쳐도 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p197의 03번은 계산문제처럼 보여 어려운 듯 착각이 일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규정상 4%를 곱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50억의 4%이므로 답은 2억이 됩니다. 

 

제4편 건축법

 

p205의 09번은 건축물에 대한 사항을 묻습니다. ②에서 대지가 없는 공작물이라 해도 고가의 경우사무소 공연장, 점포, 차고, 창고 등은 건축물이 맞습니다. 이들이 지하에 설치되어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법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게, 어느 시설이 어느 시설군에 포함되는지 일일이 암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예상문제집에 딸려 있는 빈칸노트나 요약집 같은 걸 휴대하고 다니면서, 자꾸 외우고 복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p211의 26번을 보면 답이 ②인데 "위락시설"이 문화집회시설군에 포함된다는 점을 주의해야겠습니다. 교육연구시설이 "교육 및 복지시설군"에 속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p229의 04번. 중요 표시가 찍혀 있네요. ①에서 조경은 200㎡ 이상인 대지에서만 의무입니다. 이는 상식이므로 일반인이라 해도 알아 둘 필요가 있죠. ②에서 옥상 면적의 2/3이므로 400㎡이면 충분합니다. 원래는 500㎡이어야 하지만 옥상의 경우 특례 규정이 있는 거죠. ③에서 원래 일반주거지역의 공개공지는 "OOO 이상"처럼 규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상한을 10/100으로 법에서 묶어 두고 구체적인 건 지자체의 조례로 정하는 거죠. 또한 이는 필로티 구조로 할 수 있다고 법률에서 정합니다. 


 

p243에 대지면적 계산하는 문제(05번)가 나옵니다. 그림이 묘하게 되어서, 짙은 색이 칠해진 부분이 대지면적인데, 도로가 4m라야 하므로 3m밖에 안 되는 도로 때문에 가로로 1m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세로 10m라고 쓰여진 세로선이 마치 밀고들어온 선처럼 착시를 부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튼 그 선만큼 잘려나간다고 치고 왼쪽 사각형은 6x10, 또 오른쪽 사각형 7x20 합하여 200(㎡)가 답이 됩니다. 


 

p245의 10번. 연면적은 400㎡이 한계이지만 1층 주차장이 필로티 구조이므로 60㎡은 제외됩니다. 또 다락은 지붕이 경사이고 1.7m라 했으므로 건축법령상 1.8이하라는 조건이 충족되어 50㎡도 제외됩니다. 그러므로 100+100+40=240이 답입니다. 

 

제5편 주택법

 

p269의 18번(중요). 아무래도 주택법에서 어느 시험에건 자주 출제되는 파트가 리모델링입니다. 증축 가능 면적 범위 안에서(이게 중요하죠), 세대 수의 15% 내에서 가능하다는 게 법규입니다. "세대 수의 15%"가 쉽게는 안 외워지므로 평소에 신경 좀 써야 할 대목입니다. 

 

p278의 20번. ①은 무한정 탈퇴가 되는 건 아니고 조합의 규약이 정한 바에 의해 탈퇴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④는 공개모집은 물론 신고도 필요 없고 선착순으로 정합니다. ⑤는 이렇게 하면 법적 안정성이 침해되기 때문에 안 되죠. 

 

제6편 농지법

 

p316의 10번. ①에서 농업법인은 원래 많은 우대를 받으므로 구태여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게 하지 않습니다. 우대라기보다는 경자유전의 원칙(p314)상 당연한 처리입니다. ②는 전용협의를 이미 마쳤으면 역시 법에서 예외로 취급합니다. ⑤시효의 완성 역시 취득시효 요건에서 이미 많은 사항이 충족되었겠으므로 구태여 자격증명을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양이 방대하고 좀처럼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 파트이므로 꼼꼼하게 여러 번 돌릴 필요가 있는 과목입니다. 문제가 대체로 최신 경향에 잘 맞고 문제를 풀면서 암기 사항이 다시 재생되게 꾸몄으므로마무리를 앞둔 수험생에게 필요한 문제집입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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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수호지 - 난세가 만들어낸 영웅들의 통쾌하면서도 슬픈 반란 교양으로 읽는 시리즈
시내암 지음, 장순필 옮김 / 탐나는책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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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현세와 내세의 연(緣)을 만든다고 합니다만 <수호지>에서는 태위 홍신이 복마전을 잘못 열어 세상에 108귀신을 풀어 놓게 되고 이것이 바로 향후 양산박의 백팔 두령이 된다는 설정을 세웁니다. 그런데 백팔 호걸은 이 군담소설의 주인공인데도 그 본색이 복마(伏魔)라는 것이니 아이러니입니다. 주인공들이 아무리 선한 의도, 굳센 의리, 애민 정신을 가지고 활약해도 그 근본은 결국 천계이건 지상에서건 마냥 환영 받을 수만은 없는 어떤 사악한 영(靈)이라는 점을 소설에서는 전제합니다. 


 

책표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난세가 만들어낸 영웅들의 통쾌하면서도 슬픈 반란." 우리는 이 고전을 읽을 때 재미있다, 통쾌하다 같은 느낌은 항상 가져 왔지만, "슬프다"는 감상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고전에 등장하는 많은 사연들은 "슬픕니다." 누명을 쓰고 쫓겨 다니며, 아내로부터 배신 당하고, 힘 없는 민초는 없는 죄를 뒤집어쓰고 재물을 착취당하거나 가솔을 빼앗기고, 호걸은 그런 불의를 참고 보아 넘기지 못해 개입하다 관(官)으로부터 죄를 받고.... 이런 이야기가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결국 산채로 숨어들어 도적이 되고, 관과 항쟁하고, 폭력과 편법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슬픈 사연들입니다. 이 책은 대하소설 분량인 <수호전>의 요약본입니다만, 그저 요약에 그치지 않고, 이처럼 주제와 구성 중 "슬픔"이라는 키워드를 포착하여 독자 앞에 제시한 게 고유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소설의 서두는 간교한 탐관오리인 고구의 횡포로부터 시작합니다. 고구는 공놀이 잘하는 재주 하나로 황제의 눈에 들어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는데, 힘이 생기고 보니 과거의 개인적 원한을 푸는 데 권한을 남용하려는 못된 마음을 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호걸인 사진, 이충, 노달 세 사람이 독자에게 먼저 소개됩니다. 특이하게 이충은 호걸이라 불리기엔 조금 부족한 인물됨인데도 사진에게 한때 무술을 가르친 스승(스승으로 불리기에도 부족하지 않냐는 게 독자로서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이라서 이 정도 대접을 받네요. 저 뒤 p345에 등장하는 설영도 여기 이충처럼 약쟝수 출신입니다.

 

이후엔 저 두 사람은 무대에서 잠시 퇴장하고 노달의 원맨쇼가 이어집니다. 아마 <수호전>에서 가장 큰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인물은 바로 노달, 즉 노지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달은 본디 하급 군관인 제할 역을 맡은 이였으나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애매한 일에 엮여 김 노인 부녀를 돕다 쫓기는 몸이 됩니다. 이후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법명을 받는데 그게 "지심"이죠. 

 

이 과정에서 동경 개봉부(p32)라는 말이 잠시 나오는데 이곳은 변경이라 불리는, 시대적 배경이 된 북송 시기의 수도입니다. 개봉부라는 이름이 아직도 일부 남아 현재도 카이펑이라 불리죠. 1500여년 전 전국 칠웅 중 하나였던 위(魏)나라의 수도이기도 했으며 당시 대량, 변량이라 불렸습니다. 이 외의 주요 도시는 서경 하남부, 남경 응천부, 북경 대명부(p68)입니다.

 

임충(앞서 나온 이충과는 물론 다른 사람입니다)이 등장하여 양산박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는 이야기가 잠시 나옵니다. 이 다음으로 중요한 이야기는, 양중서가 채경에게 보내는 생신강을 양지가 호송하는데, 이 보물을 조개, 오용, 공손승 등의 호걸이 작심하고 계획을 세워 도중에 훔칠 계획을 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벌이는 책략이 마치 현대의 하이스트(heist)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롭습니다. 그저 출중한 무력만 쓰는 게 아니라 제법 치밀한 속임수가 개입해서입니다. 임무를 다하지 못한 양지는 누명을 혼자 뒤집어쓰고 도망하여 노지심과 합류합니다. 십자파의 장청과 그 부인 손이랑도 이때 처음 등장(p85)하는데 이 무시무시한 부부는 뒤(p259)에 다시 자세하게 그 행적이 나옵니다. 노지심과 양지는 보주사의 산적들을 무릎 꿇리고 두령이 됩니다.

 

한편 나중에 양산박에서 가장 고매한 인격자로 추앙 받는 송강이 이때 처음 모습을 드러냅니다. 조개 등이 등장시부터 도적의 본색을 거의 숨기지도 않는 것과는 다르게 송강은 그야말로 의리의 화신이며 유교적 덕목을 훌륭히 실천하는 지사입니다. 송강의 친구 조개, 그리고 그 휘하의 오용 등은 쫓겨 다니다 양산박에 당도하는데 이때 먼저 자리를 잡았던 임충과 의기투합하여 그릇이 작은 왕륜을 몰아내고 두령이 됩니다. 양산박의 진짜 신화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거죠.

 

송강은 남자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최고인데 까무잡잡한 얼굴에 다소 왜소한 체격 때문인지 여자들한테는 별로입니다. 놀라운 건, 염씨 할멈과 그 딸 파석이 송강에게 큰 신세를 지고도, 장문원이라는 미남자와 파석이 불륜 관계를 맺는 바람에 큰 파문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파석은 물론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못된 수작을 벌이기에 죽어 마땅하다는 느낌을 독자에게 자아내지만, 송강 본인도 처신이 좀 더 치밀했다면 이런 일이 애초에 벌어지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여튼 살인죄로 송강은 쫓기는 몸이 되며 이 과정에서 시진과 만납니다. 시진 하면 단서철권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함께 떠오르는데, 시진의 시(柴)씨가 바로 북송의 전조였던 후주의 마지막 왕 시 세종의 성씨입니다. 호걸 중에 지체가 가장 높은 인물이었으며 나중에 조정으로부터 대사면을 받는 데에 하나의 복선이겠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무송을 만나는데 이 캐릭터 역시 <수호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높은 인물로 꼽히곤 하죠. 

 

무송의 이야기는 압축, 요약 없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사연, 또 그 형인 못난이 무대와 형수 반금련, 서문 경에 얽힌 사연이 이 책에 아주 자세히 펼쳐집니다. 이처럼 이 책은 <수호지> 전체에서 비교적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과감히 요약하지만, 널리 읽히고 사랑 받아 온 부분은 원본과 별 차이 없이 자세히 풀어 줍니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원본에 비해 별반 죽지를 않습니다. 


 

이 대목을 읽고 다시 느끼는 건 차라리 반금련 본인보다 뚜쟁이 왕 노파야말로 악인 중의 악인이라는 점입니다. 서문경은 위의 장문원과 비슷한 포지션이고요. 아마 여기서 영향을 받았는지 요시카와 에이지의 장편 <미야모도 무사시>에도 코믹한(본인은 전혀 웃기려는 의도가 아니지만) 노파가 하나 나오죠. 과일을 파는 꼬마 운가도 그렇고요. 여튼 이 책에서 무송의 이야기는 원본으로부터의 축약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분량이 상당히 깁니다. 


 

무송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질 않고, 장몽방과 장문신의 교묘한 흉계에 말려 고생하는 이야기가 또 한참 펼쳐집니다. 여기서 무송에게 신세를 지는 시은은 성이 시(施)씨이므로 앞의 시진과는 다릅니다. 시은은 그 이름만 놓고 보면 남한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인데 이야기에서의 역할은 정반대라서 아이러니입니다. 아무튼 노지심과 더불어 <수호지>의 양대 스타라 할 만한 무송도 결국 머리를 깎고 뜻하지 않게 (노지심처럼) 중 행세를 합니다. 

 

송강은 청풍산 산적들에게 잘못하여 죽을 뻔했으나 이곳 두령들은 앞서 보문사나 양산박의 경우와 달리 호걸로서의 송강을 알아보고 극진히 대접합니다. 이 과정에서 의기지사인 송강은 유고의 아내를 도적들로부터 구해 주는데, 어찌된 일인지 <수호지>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천하의 악질들입니다. 장청의 부인 손이랑 역시 비록 호걸들과 의기투합하기는 하나 본업이 인육만두를 빚는 악질이니 기가 막히죠. 

 

p275에 모용언달이 나오는데 소설에서는 이 인물이 모용귀비의 친정 오라비라고 하지만 창작된 캐릭터입니다. 또 소설에서는 모용귀비가 송 휘종의 애첩이라고 나오지만 사실은 휘종의 형 철종의 첩이었죠. 둘째 줄에 지부의 한자 표기가 地部라고 나오는데 이는 저자께서 잠시 착각하신 듯합니다. 벼슬 이름이 지부, 지현 하는 식이니까 知府가 맞습니다. 知縣이라는 표기는 이 책 앞부분에서 맞게 나왔더랬습니다. 또 앞 p249에서는 知府라고 바로 나와 있습니다. 

 

송강은 평소에 잘 다져 둔 인맥과 평판에 힘 입어 형벌을 거의 모면하던 중 대종과 흑선풍 이규를 만납니다. 이규 역시 <수호지>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캐릭터죠. 공손승도 도술에 능한 인물이지만 여기서 만난 대종 역시 만만치 않은 내공을 지녔습니다. 이규는 본인도 얼굴이 검으면서 송강더러 "시커먼 자(p312)"라 부르는 게 우습습니다. 

 

동아시아의 역사나 픽션 속에서 영웅과 충신은 간혹 필화(筆禍)를 겪는데 대개 간교한 자가 글 몇 획을 고치거나 곡해하여 큰 사고를 일으키는 식입니다. 여기서는 황문병이라는 악인이 나와 송강을 모함하는데 그 와중에 군사(軍師) 오용이 실력을 발휘하여 문서 위조를 하는 등 재주를 부리지만 먹혀들지 않습니다. 

 

양산박에 어느 정도 서열과 체제가 갖춰진 후 축가장과 일대 결전을 벌입니다. 작가 시내암은 본디 원말에 일어난 도적의 무리 중 장사성의 진에 가담했다고도 전해지는데 이 대목은 작가 자신의 이런 체험을 어느 정도 반영한 듯합니다. 조정은 절대선이자 최고 권위인데도 도적들이 감히 부정하고 든 것도, 이름만 송 황실이지 혹 작중의 조정이 원조(元朝)를 암유한 것이라면 주제의식이 떳떳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걸 호삼랑이 맹활약하는 모습도 볼 만합니다. 장팔사모를 휘두르는 임충이 등장하고서야 싸움이 진정됩니다. 저 앞에서 유고의 간악한 아내를 처단할 때 두령 중 왕영이 큰 불만(p293)을 품었는데 송강은 이 대목(p393)에서 비로소 자신의 약속을 지켜 호삼랑에게 왕영을 장가들게 합니다. 


 

천하를 벌벌 떨게 하는 이 호걸들이 애초에 산 속으로 쫓겨 와 도적질을 하며 살게 된 건 모두 희대의 간신 고구의 악의 때문이었습니다. 소설은 나라를 망치고 영웅을 핍박한 간신을 처단하고 호걸들이 제 명예를 찾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허나 시대가 변해도 악소배들이 국정을 전횡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는 패턴은 변함 없이 반복됩니다. 이 고전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각종의 폐단과 비위가 횡행함을 독자에게 일깨우며 깨어 있는 정신으로 공동체를 일궈 나갈 필요가 있음을 각성시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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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로부터 - 과거에서 기다리고 있는 미래
민이언 지음 / 다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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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겉모양만 봐도 예쁜 책입니다. 이런 책은 보통 여행작가님들의 책, 시집(이라면 좀 두꺼운 편이겠지만)이 보통 이렇게 책을 만들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판형의 책입니다. 책을 열면 예쁜 사진, 그림 등이 가득 담겼을 것 같은데 기대만큼 많지는 않았습니다만 역시 좋은, 은은한 그림과 사진이 품어져 있었습니다.

"당신의 전성기, 리즈 시절, 영광의 시기는 언제였나요?" 누가 이렇게 혹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만화 슬램덩크에서는 "지금"이라 대답한다고 합니다만 아마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 물론 그런 사람은 분명 행복한 분이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교직원으로부터 "학생들은 4년 후면 여길 떠나지만, 우리는 평생 직장이야"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되나? 고개가 갸웃해졌겠지만 그분이 그렇게 생각하겠다는데 뭐 막을 수는 없죠. 이 책에 가득 담긴 추억의 회고 중 초반에 등장하는 건 "매점돌이"입니다. 초등학생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엄마 아빠가 고교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분이라서 아이가 계속 해당 고교를 드나늘었나 봅니다. "넌 누군데 여길 들어왔니?" "아니 이 매점돌이를 모르다니?" 그야말로 주객전도이지만 애 입장에서는 도리어 황당했을 만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다니던 도장 건물 아래 1층에서 운영되던 미니슈퍼 아들이었던 어느 형과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나네요.

"때로 우리의 미래는 과거에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산물입니다. 과거의 족쇄에 얽매어 현재가 좌우된다는 게 아니라, 과거에 어떠어떠한 행적을 밟았기에 우리의 현재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놓인 것이죠. 여튼 우리는 우리의 과거에 책임을 져야 하며 때로는 과거를 진지하게 회상하며 과거를 재구성하거나 반성할 필요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과거를 떠올릴 때 가장 자주 발동되는 동기는 "추억과 만나고픈 욕구"일 것입니다.

p52에는 작가 정용훈님의 작품이라는 어떤 일러스트가 있습니다. 민이언 작가의 말로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패러디가 정 작가님의 의도였다고 하네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데, 제 잘난 멋에 살아가고 있을 저 녀석이 불쌍해." 이 말을 들으니 좀 뜨끔해지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도 참 남 말을 잘 안 듣는 편인데, 고등학생 시절이라면 얼마나 귀를 닫고 살았을까요?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의 제가 정체도 다 밝히면서 "이렇게 해 보라"고 진지하게 간절하게 충고한다면 과연 말을 들을까요? 딴 건 몰라도 몇 가지는 꼭 가르쳐 주고 싶은 게 있는데... 혹 안 듣는다면 에이 어차피 그렇게 생겨먹은 녀석이겠거니 하고 포기하겠습니다. 지금의 저도 아직 이런데 걔야 오죽하겠습니까.

듀스의 김성재가 멋있어 보여 저자는 남자인데도 경희대 의상과를 지원했었다고 합니다. 요즘 같으면 남학생이 의상과를 간다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안 볼 듯합니다. 선망하는 연예인 따라 대학을 지망하거나 목표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가장 빛났던 시절로 대학 시절을 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뭘 어디다 두고 온 게 십수 년이 지나도 계속 미련으로 남는 게 있습니까? 저도 그런 게 있는데 책에서는 어렸을 때 음주운전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이야기를 합니다(제 경우는 물건이었으나 책에서 말하는 건 사람, 사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고였네요). 십 년 후에 저자는 입장이 바뀌어, 그때 곤란과 슬픔을 겪었던 "물리선생님(p79)"의 처지에 서게 됩니다. 아직 어린 학생이 저지른 어떤 쉬쉬해야 할 일, 이를 덮고 영원히 마음 속에 묻어야 할 교사의 책임... 하긴 이런 스승이 있는가 하면, 학생보다 더 경박하고 천한 처신으로 잔머리를 굴리며 정치를 하는 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교사에게서 사내의 한숨과 고민, 눈물, 진정성을 학창 시절에 목격한 이는 행운아입니다. p272에 나오듯 저자는 물리 쌤은 아니고 중국어/한문 교사입니다.

연예인이 많이 다닌다는 대학 중에 단국대가 있죠. 데니 안, 손호영, 하지원 등 발에 채이는 게 연예인이었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그런데 유난히 큰 키 외에도 남다른 아우라 때문에 "진짜 연예인"이란 느낌을 주었던 이가 고 이은주였다고 합니다. 사실 스크린이나 TV 화면에서 볼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저자의 이런 회고를 읽으니 다시 생각하게도 되네요. 여튼 고인의 명복을...

이 책에는 매점에 관한 사연이 참 많이 등장하네요. 고교 때 초등학생이었던 매점돌이, 저 이은주를 만난 장소도 캠퍼스 내 사범대 매점, p112에 나오는 "깐돌이네"도 외상값에 얽힌 이야기... 하긴 누구에게나 매점은 허기를 달래고 가벼운 잡담을 나누던 추억의 장소이긴 합니다. 공부만 하느라 안 그랬던 사람도 있겠지만.

특히 여성의 경우 과거에는 능력도 좋고 외모도 멋진데 그냥 결혼 후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죠. 지금은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만 현재 평범하게 그냥 주부로서 늙어가는 분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왜 그런 대단한 포텐을 살리지 못했나 하는 마음도 듭니다. 저자분도 1988년 올림픽 때 외대생 신분이면서 통역으로 일했던 사촌 누나를 책에서 떠올립니다. 여성으로서 통역 관련 일은 참 멋진 로망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꼭 활짝 피고 스폿라이트를 받아야만 제대로 사는 것이겠습니까. 내가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이들과 평안한 현재를 함께하며, 지금 이 순간이 만족스럽다면 그 이상 잘산 분도 없을 것입니다.

p206에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네요. 말씀대로 리메이크도 자주 되었고 한때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랭크에서 예스터데이, 홀리데이(스콜피언스 곡)을 이어 3위를 차지하기도 했죠.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먼 지평을 응시하게 하는 명곡은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모든 세대로부터 리퀘스트 되는 것 같습니다.

장국영이 부른 노래 <투 유>는 저는 현재 곡조가 잘 생각나지 않네요. 그리 안 좋아해서일 수도 있고... 저자는 "처음으로 가사를 외워 본 팝송(?)"이라고 합니다. 곡조 자체가 생각 안 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게 그런데 한국에서 광고를 찍기 위해 일부러 가사를 영어로 번역한 거였고, 북경어, 광동어 버전에는 "비"가 언급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튼 저 당시에는 이상하게도 장국영, 왕조현, 임청하 등 중화권 배우들이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하죠. 지금은 그때와는 팬덤 사이즈가 달라진 대륙의 대스타들이 있지만 한국인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시피합니다. 정말 예전 이야기입니다.

p243에도 나오지만 <천장지구>의 원제는 "천약유정"이죠. 이게 희한하게 한국에서 개봉만 하면 제목이 이상하게 바뀌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자는 학교 다닐 때 한시(漢詩)를 외워 구술하는 시험을 본 적 있다고 합니다. 백거이의 명편이 그 대상이었다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한시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제가 만약 그 학교를 다녔다면 꽤 유리했을 듯합니다.

이 책에는 만화 <슬램덩크>가 자주 인용됩니다. 어쩌면 생의 모든 국면을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사, 사건, 상황, 배경, 교훈으로 일일이 대치시켜 회고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하긴 우리 누구에게나 그런 문학 작품, 만화, 애니, 드라마는 한 편 정도 있기 마련이죠.

p256 이하에는 포송령의 <요재지이>에서 모티브를 딴 <쳔녀유혼>이 분석됩니다. 라캉의 실재계와 상징계 이론도 원용되고 그 시절 이 영화를 아주 몰입하여 감상한 분만이 할 수 있는 분석이 이어집니다. 돌이켜보면 과연 실제 있었던 일인지, 꿈에서 잠시 엿본 환상인지 모를 과거의 추억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의 실재 여부가 아니라, 과거를 자양 삼아 현재를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자신에게 떳떳이 자문할 수 있느냐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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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어나려 흔들리는 당신에게 - 해낼 수 없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중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양소울 옮김 / 멀리깊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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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우리 나라에도 많은 독자를 보유한 철학자입니다. 한국에서는(일본에서도 상황이 비슷했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알프레드 아들러에 대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개론서 수준의 프로이트 관련서적만 봐도 아들러의 이름은 언제나 언급되곤 했죠. 지금 이 저자 덕분에 동아시아의 대중은 알프레드 아들러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부모님이 이상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머리가 굵어 가며 부모님과 의견 충돌도 빚게 되고, 실망스러운 모습도 보게 되고, 어쩌면 그렇게 부모님께 실망을 느끼면서 사람은 어른이 되고 성숙해지는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이 생각만큼 완벽한 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며, 그 빈 부분은 차라리 내가 메우자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나만의 인격과 세계관이 무르익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영어로 person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persona에서 왔는데 이 말은 가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삽니다. 이는 남을 속이고 떳떳지 못한 이익을 취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와 상대하는 상대에 대한 배려의 목적이 더 많을 겁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솔직하겠답시고 대뜸 인상을 쓴다거나 욕설을 한다면 어디 사회 생활이 가능하겠습니까? 사람은 그래서 그 의도가 무엇이건 상황이 어떠하건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게 그 숙명과도 같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저자의 책은 언제나 독자의 현실적 니즈를 고려한 실용적이고 친절한 충고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이 책에서도 p112에 건강에 대한 주제로 유익한 말씀을 들려 줍니다. 내가 건강할 때는 신체의 각 부분에 대한 의식이 없습니다. 내 맘대로 언제나 움직여 주는 게 내 몸입니다. 내 몸에 대한 의식이 특별히 시작될 때는 바로 신체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이상을 가능하면 조기에 발견하라, 이상이 생겼으면 괜히 무시하지 말고 이건 정상이 아니다, 병원에 갈 필요도 있다며 빠른 인정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5년 후면 연세가 칠순이 됩니다. 어떤 기준으로도 고령자이죠. 이 나이 또래의 어르신들이 항상 걱정하는 건 첫째가 자신의 치매, 둘째가 배우자의 치매입니다. 치매가 시작되면 가까운 기억부터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닦기, 샤워하기, 식사 등 가장 간단한 걸 헷갈려 몇 번이고 반복하는 거죠. 옆에서 간호하는 이가 명심할 게 있다고 합니다. 본인이 자녀이건 배우자이건 간에, 환자 곁에서 먼저 자신이 행복해하라는 겁니다. 간병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간병자가 마음이 불편한 건 다 이심전심으로 알 수 있나 봅니다. 간병자의 불편함을 눈치 챈 환자가 병이 낫기란 더 어렵다는 거죠. 늙은 부모님 구완하는 분들은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는 게 진정한 효도란 점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죽음은 도착지일 뿐 목적지가 아니다." 어디로 가기는 가는데 앞으로 향할 곳이 어디일지 알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을 두고 "방랑 감정"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게 꼭 불안감이겠습니까? 저자는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감정의 고양(高揚)을 느낀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 것입니다.

죽음을 우리가 앞에 두고도 꼭 우리가 좌절과 공포에 떨어야 할까요? 우리는 갑자기 용무가 생겨 잠시 먼 곳으로 떠날 때도 친구, 부모님과 헤어진다며 울음을 쏟기도 합니다. 아니 어디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돌아올 일정이 뻔히 정해져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막상 길을 떠나 뜻밖에 보람되고 재미 있는 체험을 하면, 이거 돌아가서 전해줘야지 라며 더 신이 날 거면서 말이죠.

물론 죽음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겁니다만 혹시 사후세계에 뜻밖의 무엇이 마련되었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죽음 후에 완전한 존재 소멸, 절망, 고통만이 예비되었다 해도,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담담히 현실을 직면하는 게 건전한 생의 태도일 것입니다. 괜히 확실치도 않은 일을 가지고 지레 좌절하고 슬퍼하며 미리 영혼을 파괴할 필요는 없습니다.

p172에는 영화 <만추>가 언급됩니다. 한국인인 남자는 하오[好]라는 중국어가 "나쁘다"는 뜻인 줄 잘못 압니다. 중국인인 여자는 이를 바로잡으며, "나쁘다"는 하오가 아니라 "화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 글자는 흙 토(土) 변에 아닐 불(不)을 쓰는 글자인데 윈도에서 기본 제공되지 않네요. 우리 식으로는 언덕 배, 무너질 괴라고 읽는데 현대 중국어뿐 아니라 전통 한문에서도 "나쁘다"라는 뜻을 갖고는 있습니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겁니다. 과연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가? 모든 선악의 문제는 결국 개개인이 살면서 선택을 하는 과정이 아닌가? 내가 혼자서 선이고 악이라 우기는 그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나도 편하고 타인도 얼마나 편해지겠는가 말이죠. 누구에겐가는 하오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화이가 될 수 있는 겁니다. 확실한 건, 개인의 하오와 화이를 남한테 강요하는 그 사람만큼은 확실하게 "화이"라는 겁니다. 또, 저자가 "절대의 선"이라 단언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입니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관계를 끊고 혼자 사는 분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솔직히 공감이 잘 안 돠고 그런 환경에서라면 꼼짝없이 적응에 실패한 후 죽을 것만 같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좋아해서 매우 자주 여러 채널에서 재방송이 되는 프로그램이죠. 그 이유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다들 지쳐서 그렇겠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매우 심한 편에 속하는 사회입니다. 어제도 주한 외국인들이 기어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하는 뉴스가 나왔죠. 외국인들이 한국 특유의 정에 끌려 한국에 정착하기도 하지만 이런 이면이 있습니다. 특히 직장 내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 책 p199에는 그런 독자들을 향해 저자가 "타자의 도움 없이는 살아낼 수 없는 게 인생"이라며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합니다. 그 도움이라 함은 공짜로 주는 도움도 많을 테고(실제로 아무리 사회가 각박하다 해도 지나가다가 한두 번쯤은 대가 없는 도움을 받고들 살지 않습니까?), 돈을 주고 얻는 도움도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보면 대가를 분명 지불했는데도 형편없는 서비스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한국 같은 사회에 산다는 건 조금 축복이기도 합니다.

독일어에는 참 다양한 단어가 있습니다. mit는 영어로 with 같은 전치사인데, Mitmenschen이라고 하면 여러 뜻이 있겠으나 저자는 "연결성"을 강조하여 아들러의 책 중 이 단어를 "동료"라고 번역했다고 합니다. 맞는 말씀이지만 원어의 뉘앙스는 다소 깎여 나가죠. 이래서 철학(서)의 완전한 번역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철학 제대로 공부하려면 원 언어를 배워 원서로 읽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미트멘셴으로 대해야지, 게겐멘셴(gegen은 영어로 against라는 뜻입니다)으로 대하면 타인이나 나나 똑같이 지옥이 됩니다. "고독은 관계의 당연한 일부"이기는 하나 그게 일상이 되면 안 됩니다. 저자는 자신이 심근경색으로 입원했을 때 받았던 도움에 대해 상기하는데 사실 이 저자분께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난 건 이 일이 큰 계기가 된 면도 있죠. 타인의 도움 없이 개인은 생존이 불가능하니 어떻게 타인을 적으로 돌리겠습니까. 타인 속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사회인으로 거듭납니다.

책장에 꽂는 책이 정해져 있는 편일까요, 아니면 가리고 가려서 꽂는 편일까요? 책은 어떤 편이라도 자기 취향대로 관리하면 되지만, 추억과 기억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집착은 버려야 합니다. 나쁜 기억도 그것을 설욕하려 들며 자꾸 책장에 꽂아 두면 안 됩니다. 잊어야 합니다. 당신이 그걸 기억하고 절치부심하면 그 원수를 갚을 수 있습니까? 갚을 수 있다고 치고, 그 후폭풍은 뒷감당할 수 있습니까? 엉뚱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진 않을까요? 현실이 이렇다면 먼저 내 자신을 겸허히 반성하고 유한한 인생 알차고 행복한 체험으로 더 채워 나갈 일입니다.

인생은 찰나와 같이 짧습니다. 그런 인생을, 좋은 사람들과 체험, 감정을 공유해 가며 알콩달콩 채워 가도 모자랄 판에, 분노와 회한, 집착, 통분 등의 건설적이지 못한 감정에 사로잡혀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면 되겠습니까?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목표, 아릅답게 가꿔야 할 추억과 대상이 무엇인지를 언제나처럼 확실히, 그리고 쉽고 친절하게 가르쳐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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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이 어떻게 1년 만에 2권의 책을 썼을까
황준연 지음 / 와일드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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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정상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성장하면서 주변의 어른들에게 몇 번 정도는 심한 질책도 듣고 비판도 받는 건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안 그런 경우가 이상한 거죠. 그러나 만약 저런 말을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그건 저 말을 한 사람과 들은 사람 둘 중 하나는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권을 책을 읽으면서 남달리 불우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는 저자들의 사연을 많이 접했습니다. 최근에도 그런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아마 그 책들도 이 책 저자님만큼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그 다른 책 저자들은 이미 연세가 지긋하신 편이고 당시에는 누구나 어려웠으므로 이 책 저자분처럼 나이가 젊은 분과는 사정이 또 다릅니다.

읽으면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얘가 정상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대놓고 말은 안 해도 제가 만약 저 소년 근처에서 지켜 본 어른이었다면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커서 큰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다." 이 독후감에 일일이 옮겨 적지는 않겠지만 여튼 요즘 세상에 이처럼 굴곡진 청춘기를 보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군대라도 일찍 다녀오는데 저자의 경우 그렇지도 않아서 27세가 되어서야 입대했다고 합니다.

일단 오랜 동안 연을 끊었던 어머니와 다시 연락이 닿아 제주도로 이주한 게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말하기를 대구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주변 지인들도 환경도 그대로라서 아마 종전의 삶을 그대로 이어갔으리라는 거죠. 이처럼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는 주변 환경을 확 바꿔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듯합니다.

또 저자에게 큰 도움이 된 건 몇 분의 친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자는 음악 면에서 적성을 타고난 듯 보이는데 이 음악 방면 재능을 기부할 수 있었던 것도 어떤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남에게 도움만 받고 살아온 이가, 나 역시 남한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은 경험은 상당히 의미가 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번역 공부, 용접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알바 비슷하게 했던 일에서 결국 뭐 하나를 챙겨서 나온, 어떤 성실성 같은 요소가 끝내 저자분을 수렁에서 건져낸 동력이 된 것도 같습니다.

항상 남들한테 문제아로만 여겨졌던 그가 결국 권유를 듣고 대학교를 졸업하여 선생님이 된 건 정말 잘한 결단이었습니다. R선생님은 좋은 조언을 베풀어 주었을 뿐 아니라 금전적 도움까지도 줬습니다. 본인도 어려우면서 친구가 어려울 때마다 돈을 빌려 줬던 그 벗 역시 정말로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반대로 가뜩이나 어려운 저자의 인생을 더욱 어렵게 만든 아주 나쁜 사람도 있었는데 저자는 이 때문에 어린 나이에 금융회사의 빚 독촉에 쫓겨 다녀야 했습니다. 이런 인간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수법이, 남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자신이 가로챈 후 종적을 감추는 것입니다.

자계서에 대해 많이들 비판합니다만 저자는 20대에 엄청나게 많은 자계서를 읽고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계서 중에는 일반 대중의 눈에 평범하게 보이는 저자들이 쓴 것도 많습니다. 이런 책을 왜 쓸까 싶은 것도 있지만(출판에는 큰 비용이 드는 편이므로) 여튼 저자들의 입장에선 내 인생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면서 그 나름 절실한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던 경우도 있겠고, 그냥 복권 긁어 보자는 생각으로 스토리가 있는 분, 혹은 없는 스토리를 지어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출판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혹은 이 책을 읽고 내 인생이 이렇게 바뀌었다며 찾아오는 이들을 향해 일종의 네트워크 영업을 목적으로 펴낸 책들도 있을 듯합니다.

여튼 그런 책들도 대놓고 나쁜 이야기를 적지는 않았을 터이므로, 방황하는 청소년, 청년들이 읽고 어떤 감동을 받고 회심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 역시 아 이런 경우도 있겠구나 하며 자계서의 순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열린 귀를 갖고 남의 말을 경청한다는 건 확실히 보통 큰 장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결코 남의 말을 안 듣고 기어이 자기 직성대로 해야만 하며, 어떤 사람은 나쁜 말만 골라서 듣습니다. 그러나 내 주견만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의 말에 일단 귀를 기울이는 습관은 매우 좋은 것입니다. 물론 앞에 저 대출 건처럼 나쁜 인간이 찾아와 이렇게 해 보자면서 현혹하는 말은 단호히 걸러 들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본인은 능력이 없으면서 남의 능력과 노고를 가로채어 편하게 살아 보려는 쓰레기들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받아 챙긴 건 전혀 생각도 않고 받아챙길 것만 챙기려는 아주 썩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죠. 가족 중에 범죄자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쁜 본을 받고 자라니 성장해서도 내내 그꼴인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건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입니다. 이렇게 행동을 하려면 먼저 주변 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만약 저자가 22세 정도에 바로 입대했더라면 혹시 이런 회심의 계기가 더 빨리 찾아와 훌륭한 작가로 더 이른 시기에 변모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제는 책쓰기 연구소를 창업한 어엿한 회사의 대표님이 되었으니 말이죠.

"내 목표가 흐릿해지고 지칠 때면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과 영상을 본다. 그리고 힘을 내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지쳤을 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고 기분이 새로워지는 어떤 원천이 있을 것입니다. 없으면 만들어라도 내어야 합니다. 10대 때의 저자분처럼 그것이 무슨 게임이라거나 어떤 도피처 같은 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타성을 벗어나 새롭고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는 그런 긍정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꾼다."

당장 어떻게 성장할지 막막하다면 어떤 롤모델이나 틀을 마련하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누구를 따라해 보기라도 하라는 뜻이죠.

"누구나 다 하는 얘기 아닌가요?"

통나무 위 개구리의 우화(p136)처럼, 말하는 것, 마음만 먹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건, 서로 아주 다릅니다(p216).

"책 쓰기는 인생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누구나 주인공의 삶을 살 수 있다."

청소년기 그처럼이나 어려운 삶을 살았던 저자가 우리 독자에게 던지는 말입니다. 이 말을 받아들여 우리 인생을 바꿀 계기로 삼고 안 삼고는 우리의 몫이겠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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