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십대를 위한 작은 습관의 힘
장근영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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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녀가 훌륭한 인물이 되기 바랍니다. 버젓한 전문직종에 종사하거나, 남들한테 존경을 받거나, 빼어난 기술과 지식, 어떤 원리를 발견하는 창의적 인물이 되거나...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나도 이를 갈고 닦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재능에 알맞은 훈련 과정을 겪으려면 몸에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십대들이 딱히 어른에 비해 게으른 건 아닙니다.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부지런한 면도 있죠. 그런데 십대때는 아직 "해야 할 일"에 대한 각성이 절실하지 않고 이런 것보다는 딴짓에 더 몰두하는 경향이 있으니 어른들이 보기에 "게으른" 것이죠. 여튼 버릇만 잘 들이면 훨씬 큰 열정을 갖고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십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저자는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뇌가 좋아하는 습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들도 그렇지만 우리의 뇌 역시 좋아하는 습관, 그렇지 않아서 뒤로 밀려나는 습관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뇌가 원하는 게 서로 다르다니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사실 우리도 다 아는 바입니다. 내가 내 마음같지 않다는 것, 행동, 욕구, 당위를 관장하는 기제가 다 달라서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일이 매우 잦다는 것. 


저자는 "우리의 뇌가 게으른 녀석"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어른들은 이 점을 알고 노력이라도 하지만, 십대들은 그걸 모르고 게으른 (자신의) 뇌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기 때문에 어른들은 "애들이 게으르다"라고 지레 단정을 해 버리는 거죠. 사실 게으른 건 사람(어른이든 애들이든)이 아니라 "뇌"입니다. 여기서 "뇌"가 대체 뭘 뜻하는 건지 먼저 정리하자면, 저자는 "내장이나 호흡기관을 움직이기,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를 해석하기, 걷거나 달리면서 균형 잡기" 등을 하는 기관이 바로 "뇌"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니 "아 내가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회사에서 시킨 일을 해야 하는데" 라며 나 자신을 다그치고 통제하려 드는 정신, 초자아, 자아 등을 가리키는 말이 (이 책에서는) 아니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순수하게 자연과학적 의미에서 신경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름이 뭐가 되었든 간에 얘를 잘 길들여야 애들이든 우리 자신이든 "안 게을러지고 원하던 일을 제때 잘 해 낼 수" 있겠습니다. 


"갈망이 행동을 유발한다." 우리의 뇌는 이유, 동기, 계기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것을 갈망해야 행동을 유발하게 합니다. 이것은 애들 같으면 또래 집단에서 뭐가 유행이다, 이런 게 가장 큰 갈망의 생성 이유겠죠.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주식해서 코인해서 큰 돈을 벌었다고 하면 나도 해야지 같은 갈망이 생깁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보상"이 안 생기더라, 이려면 이 갈망은 일회성입니다. 따라서 이런 행동은 "습관"으로 바뀌질 않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제임스 클리어의 주장을 인용하며 단서→갈망→습관→보상→단서의 순환이 잘 이뤄지는 게 핵심이라고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특정행동을 막기 위해 부모가 애한테 겁을 준다, 그래서 아이가 행동을 한다, 상황이 마무리된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문제는 상황을 마무리하는 행동은 한 번이면 되는데(세수, 옷매무새 정리, 문단속, 마지막으로 재검토), 이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강박"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뇌가 겁을 먹어서 쪼그라든 탓에, 침착성을 잃고, 두려움을 그저 없애기 위해서 반복하는 것이며 심하면 정신과에 가 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물론 필요도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게 문제이지, 과업이 중요하고 난도가 높으면 몇 번을 재검토해도 무방하며 오히려 결과에 유익합니다. 일을 허술하게 처리하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자가 자신의 열등감을 무마하기 위해 잘하는 사람더러 "강박" 타령을 하는 건 정말 한심하죠. 


여튼 저자는 이런 말로 1장을 마무리 짓는데요, "두려움을 채찍질하는 건 오히려 진짜 답에서 멀어지는 것이다(p52)." 애들한테 좋은 습관을 들이고 나쁜 습관을 끊기 위해 다그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 어른들이 꼭 명심해야 할 바입니다. 어른 입장에서는 "이 정도야 뭐" 하며 혼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애들은 안 그럴 수도 있고 평생 트라우마로 남거나 이상한 강박이 생길 수도 있죠.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이 말은, 지금 이 책은 10대들에게 좋은 습관을 들이는 방법에 대해 우리 독자에게 가르치는 책이지만, 그런 맥락을 떠나서도 중요합니다. 생각은 그저 생각에 머물 뿐 우리들을 전혀 실제로 바꿔주는 바가 없습니다. 이 책에서도 처음부터 "뇌"와 "우리 자신"을 완전히 분리하고 논의를 전개하지 않습니까? "나는 이렇게 진심을 다해서 말하는데 왜 너희들은 내 말을 들어 주지 않니?" 아무리 친구들에게 호소해도 이 사람의 전적을 알기 때문에 말이 씨가 안 먹힙니다. 이게 지금 이 책에 실제 나오는 예입니다. 다들 이런 사람 예를 하나 정도는 보았지 않습니까? 어른도 이러한데 하물며 애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도 오늘은 뭘 해야지 라며 몇 번이고 결심하지만 작심삼일입니다.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지 이론적으로 감성적으로 100% 납득하는데 실천에 옮기지를 못하며, 에휴 나는 그저 이렇게 생겨먹었나 보지 하며 나중에는 자포자기합니다. 이러니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십대도 십대이지만 저는 어른들 역시 이 책을 보고 똑같은 방법으로 습관 교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오히려 중학생 고등학생들 보는 책을 보고 겸허한 마음으로 공부를 새로 시작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애들 책이 쉽게 쓰였다는 장점도 있겠고 말입니다. 


"동기는 감정이고 감정은 (곧) 변덕이다" 진짜 맞는 말입니다. 누구한테나 동기는 생기며 주먹을 불끈 쥐고 결심 한 번 안 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도 행동에는 안 옮겨집니다. 이게 그저 감정에만 머물고, 그건 정말로 변덕스러워서 행동으로 굳기 힘들고 따라서 결과가 성과가 안 나옵니다. 앞에서 말한 순환체계를 제대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긍정적인 행동 습관"이 감정 중에서도 가장 "변동성이 적은" 감정을 채워 주는데, 그 감정이 바로 "자신감"이라고 합니다. 자신감은 쉽게 치솟지도 않고, 한번 근거가 있게 마련된 자신감은 쉽게 죽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합니다. "순환체계와 자신감! 이 둘을 통해서만 우리는 긍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p75)."


저자는 마크 그리피스 박사의 이론을 인용하며, 나쁜 습관이 그저 나쁜 습관에 그치지 않고 아주 심각한 수준까지 왔을 때 나타나는 게 행동 중독(p108)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진짜 만족감이 뭔지를 몰라서, 순간의 공허감을 그저 채우기 위해서 이런 행동 중독에 빠진다고 하네요.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대충 하는 습관, 스마트폰 중독, 늦잠 자고 늦게 일어나기" 이런 것들을 책에서 예시하며, "대부분은 이런 행동이 자신도 잘못임을 알고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이런 건 즉시, 마음 먹은 즉시,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서 내 몸에서 끊어내지 않으면 인생 전체를 망칩니다. 


그렇다고 무모한 싸움에 도전하여 거창하게 패배한 후 자신감도 상실하고 "역시 난 안 돼" 같은 패배감만 쌓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길 수 있는 싸움 작은 것 여러 개를 골라 이긴 후 그 결과 좋은 것을 몸에 습관으로 붙이고 더 큰 싸움(힘들지만 좋은 습관 길들이기, 아주 나쁜 습관 끊어내기)을 준비하자는 겁니다.


책에서는 이런 예도 듭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기는 싸움만 하는 기회주의자였다" 물론 민족의 성웅에 대한 폄하나 모독이 아니라, 오히려 저렇게 영리하셨기 때문에 더 위대하셨다는 겁니다. 11배나 병력이 더 많은 명량은 그럼 어떻게 된 건가? 우리는 가망없었겠다고 여기지만, 그분 눈에는 이 싸움이 충분히 이길 가망이 있다고 보여서 그렇게 한 것이고 또 실제로 이긴 것입니다. 사실 이길 가망이 없는 싸움을 하면 부하들부터 제 목숨 살려고 다 도망갑니다. 이분 시키는 대로 하면 이기겠다는 확신이 있었으니 휘하 장졸들도 일심동체로 싸운 거죠. 반대로 가등(=가토)의 목을 베어 오라는 명령은 임금이 시켰는데도 안 따랐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왜 가망 없는 전투에 아까운 화력, 병력을 낭비하겠습니까? 우리도 성웅이신 이 충무공처럼 이기는 싸움을 해야지, 빤히 지는 싸움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에서는 우리도 잘 아는 스키너 박사의 이론을 인용하며 "보상을 주되, 자주가 아닌 드물게, 또 나중이 아닌 즉시, 보상을 주게 하라"고 합니다. 시간적/공간적 인접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게 아니면 행동과 보상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서 습관화가 어렵습니다. 또 드물게 줘야 하는데, 이건 예를 들어 저 스키너 박사의 실험에서 쥐한테 레버를 매번 누를 때마다 보상을 주면 "배가 불러서" 더 이상 행동을 안 한다고 합니다. 배가 고플 때쯤 맞춰서 줘야 지속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죠. 우리가 스포츠 선수들의 나태하고 성의 없는 플레이를 볼 때마다 "저 새x 이제 배가 불렀구만!" 하고 욕을 하는 걸 떠올려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워크에식이 뛰어난 선수들도 많고 인터뷰에서 그게 팍팍 느껴지는 이들도 많습니다. 어제 롯데 손아섭 선수처럼 말입니다. 


습관을 잘 들이기 위해서는 소통이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눈 똑바로 맞추기"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자는 하다못해 식당에서 서빙하는 분들에게도 "꼭 눈을 맞추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 독자들도 다 짐작하지만 아예 눈을 안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일단 둘이 눈을 마주치면 거의 반드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더라고 하네요. 심지어 저자는 청소년들에게, 혹 누구한테 맞을 때 한번 때리는 아이의 눈을 똑바로 보라고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더 맞을 수도 있지만(ㅋ)"... 저는 예전에, 음, 좀 끔찍한 이야기지만 청나라 때 능지처참을 행하는 형리가, 당하는 죄수의 눈꺼풀을 얇게 잘라(이것도 끔찍하지만) 눈을 덮는 게 관례였다고 하는데 이유는 형리 자신이 죄수의 눈을 보면 차마 형을 집행할 마음이 안 들어서였다고 합니다(이 역시 이기적인 행동이지만). 물론 눈만 맞춘다고 다가 아니라 예를 들어 나이 드신 분들에게 아이컨택한답시고 눈을 빤히 보면 무례하다고 혼 날 수 있다는 말도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자주 가져서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하고, 혼자 된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한 사람이 되며, 매사에 너무 기대를 크게 갖지 말며, 수업 시간에는 최대한 집중하는 게 이후에 이중으로 시간을 쓰지 않는 비결이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합니다. 실패하는 사람의 특징은 항상 거창하게 결심하고 너무 높은 목표를 세운 후 쉽게 포기하고 쉽게 타협합니다. 집요하게 결심하고 작은 것부터 성취하며 나 자신을 여튼 좋게 좋게 바꿔 보려는 사람이 진정 인생을 아름답게 가꿔 나갈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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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성지혜 지음 / 문이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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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나를 이겨라>에는 작가 성지혜님과 고 박경리 선생 사이의 여러 인연, 또 유명한 문인들의 사연이 나옵니다. 소설의 형식이지만 회고담이나 마찬가지인 듯 보입니다. 박경리 선생뿐 아니라 <등신불>, <무녀도>, <화랑의 후예> 등 훨씬 앞선 시기에 걸작을 남긴 거장 김동리 선생도 등장하며, 거제와 통영이 낳은 위대한 시인인 청마 유치환 선생이라든가 이영도 선생, 교과서에도 작품이 여럿 실린 시조시인 이호우 선생 등 전설적인 문학가들이 두루 언급됩니다(실명 언급은 없으나 "사위분"인 김지하 시인도 아주 잠시 출현). 바로 다음에 나오는 작품에 쓰이기도 한 단어(동음이의어)인데, 유치환 선생은 특히 시 <깃발>에서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란 명 구절로 사랑 받은 시인이기도 합니다. 


이영도 선생에 대해서는 "섬섬옥수가 아닌 손"이란 묘사가 특히 기억에 남네요. 작가님은 ㅈ여고 출신이라고 나오며 독자인 저도 개인적으로 진주 출신 지인들이 꽤 되는데(고교 은사님 포함) 하나같이 자부심이 높고 명문교를 나온 엘리트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고장 자체가 교육을 중시하고 문장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뿌리 깊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진주, 통영, 고성 일대가 다 그러하죠. 


작가님이 언니처럼 따른다는 김지연 작가님도 원래 이름이 "명자"이셨으며 성 작가님도 본명인 "명숙(밝을 명이 아니라 숨 명 자라고 나옵니다)" 대신 김시종 선생에게 새 이름 "효장"을 받습니다. 이처럼 젊은 시절에 거장에게 손수 필명을 지어 받은 체험이 정말 큰 영광이었을 듯합니다. 박경리 선생의 <시장과 전장> 창작을 둘러싼 비화도 소개되는데... 이 <나를 이겨라>는 30쪽 남짓 분량입니다만 사연과 인물들이 묵직해서인지 읽으면서 아주 긴 장편처럼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저희 모친이 통영여고 졸업자라서 더 관심 깊게 읽었습니다.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는 이 책의 표제작입니다. 냄새에 관해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연이 있는 화자 새미와 그 딸 토리, 또 남편분 항조, 돈 많은 70대 과부이신 "마님", 이분이 키우는 개 린드버그, 돌아가신 남편 루이 등이 등장합니다. 터키에는 터키석이 없고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으며 새미가 모으는 향수병에는 정작 향수가 없습니다. 왜 컨텐트인 향수는 간혹 버리기까지 하며 병만 모은 컬렉션인지는 작품만 읽어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 있으며 최대한 돌려 말하는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주제에 대한 감도 잡힙니다. 수집가들이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발견했으나 현금이 부족할 때 자신의 다른 수집품과 교환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향수는 香水이며 鄕愁가 아니지만. 


오동은 왜 그저 오동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느티는 항상 뒤에 "나무"가 붙어야 하는가. 한남동 회장님 댁에서 정원사를 지낸 기현은 미조 앞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내내 "나를 낳은... 생모"라 지칭하며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대화의 말투라든가 인생에 대한 씁쓸한 관조 어린 그 내용만 보면 인생의 황혼을 벌써 지난 두 분이 나누는 말 같습니다만 사실 두 사람 다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입니다. 미조는 자신이 근무하는 유치원에 일일 강사로 기현을 초빙합니다. 원아들에게 들려 줄 강연치고는 좀 내용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만. 여튼 앞 작품의 새미처럼 미조도 크리스천인지 예루살렘 등 성지 순례 이야기가 또 등장합니다. 맨 앞 작품 <나를 이겨라>에도 민족주의 관련 언급이 자주 나왔는데 여기서도 가상의 원로 목사님 설교를 통해 단 지파와 우리 민족 사이의 연관이 짧게 코멘트됩니다. 두 사람 다 생계가 막막할 뻔한 상황에서 부유한 인척 등의 연줄로 직업을 마련한 사연도 비슷합니다. 서신 교류 말고 몸소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어디서 별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지요. 김광섭 시인 作 <저녁에>의 한 구절처럼. 


<청백리의 숨결>에는 오리 이원익, 미수 허목, 그리고 서애 류성룡 세 분 재상의 생애가 화자 류담을 통해 이야기됩니다. 잘 알려진 예송 이야기도 있고, 우암한테 미수가 비상을 처방해 준 이야기 등등 해서 마치 예전 벽초나 월탄의 작품에 구수한 옛 야사가 실린 작품을 읽는 느낌인데... 안현철 박사, 장규호 화백 등 가상의 인물들이 가끔 한 마디씩 거드는 속에 작가의 진짜 의도(?)가 숨어 있는 듯도 하네요. 이처럼 뛰어난 지성인들, 유능한 관료들이 조심스럽게 그 초석을 놓은 나라였기에 조선이 가난할망정 그 시대 다른 나라들을 고려할 때 비교적 태평성대를 누린 건데... 작품 마무리는 "현재 대한민국이 누리는 풍요 예찬"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미우새의 날개는 어디로 갔을까>. 레게머리... 1990년대에 크게 유행한 스타일인데 dreadlock(p146)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이야기는 성경 속의 나실인(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릅니다)까지 미쳐 삼손과 들릴라(데릴라)까지 나옵니다. 지혜가 두개골에 있다, 머리털은 그 알곡이다... 삼손이라고 하면 그저 힘만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개인이나 겨레나 그 생존의 비결은 지혜에 있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분(문맥상 심인성 같습니다만), 지성이 약간 미발달한 청소년... 그런데도 분위기는 어둡지 않고 오히려 럭셔리에 가까운 건 저만의 착각인지. 이 작품도 <향수병...>에서처럼 방대한 인문 지식이 수놓아졌습니다.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맨 앞 작품만 빼고 외국인들이 꼭 얼굴을 내밉니다. 인물들은 외국을 자주 다니거나 외국인과 깊이 교류하거나 해서 글로벌한 감성(마인드까지는 모르겠지만)을 가진 이들입니다. <그 남자가 마냥 귀여워>에서는 한국형 미남, 외국에서 두루 통할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품평과 논의 끝에 혼혈아 이슈, 혈육에 대한 보편적인 그리움과 애정 문제까지 차분히 착륙합니다. 다른 작가 같으면 굉장히 심각하게, 그러나 뻔하게 발전할(퇴보할?) 주제인데도 말입니다. 


<결을 향(向)한 단상>에서는 신화인지 기독교 성경인지 아리송한 이야기가 많은 결, 이런 결 저런 결 들을 건드리며 몽환적으로 펼쳐집니다. 번식은 사실 야만적이고 무섭지만 생명에게는 유일한 진리이죠.


"신의 손"은 보통 귀신 같이 골을 잘 잡아내는 축구 골키퍼를 칭송하는 단어인데(반대로 뻔뻔스러운 반칙에 대한 비꼼이거나), 여기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입니다. 에피그래프에 이사야서 49장 일부가 인용되는데... 이 작품은 이 책에 실린 중 저한테는 가장 서사가 뚜렷이 다가왔으며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나 싶었습니다.  


문학수첩 이덕화 주간이 쓴 권말의 작품해설을 보면 "소설은 어떤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과 관계에 의한 긴장을 유발하는 서사(p265)"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와 비슷하게 "희곡은 의지와 의지 사이 갈등의 집약"이란 정의도 있죠. 그 갈등이라든가 긴장은 그리스 고전에서처럼 영웅들, 혹은 신들 사이에 벌어지는 거창한 것만은 아닙니다. 한 개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작은 망설임이라든가, 기분 상함이라든가, 괜한 젠체함이라든가, 무료하기 짝이 없어서 나 혹은 내 지인의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에 던진 작은 돌 하나가 빚은 소소한 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갈등이고 긴장인데, 때로는 이것이 거대한 역사와 사건과 작은 접점을 빚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작은 개인의 새초롬한 내면으로 별 파문 없이 복귀했다 해도 얼마든지 명작 소설의 멋진 성취가 될 수 있겠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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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쓸모 - 상한 마음으로 힘겨운 당신에게 바칩니다
홍선화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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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더하기와 빼기가 분명하다는 말이 있다(p25)." 예를 들어 뭘 배울 때, 그게 지식이든 세상 사는 요령이든 간에, 머리에 들어와도 들어온 것 같지가 않고, 또 분명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까맣게 잊혔고... 머리로 다루는 사항은 본래 더하기와 빼기가 불분명합니다. 이게 분명하다면 그건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 감정은 누구에게나 평등합니다. 상처를 입었으면 그 감정의 상처가 오래갑니다. 반면, 좋은 일이 있으면 감정적으로 분명히 반응합니다. 이걸 해 냈다 싶으면 뛸 듯이 기쁘지 그냥 무덤덤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감정은 다 버겁게만 느껴져 거부하고 싶다." 사람이 기쁠 일이 있으면 또 슬플 일도 있다는 건데, 그럴 바에는 기쁜 일(이라기보다 기쁜 감정)도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는 거죠. 


"우울증은 누적된 상처와 결핍의 결과인 셈이다. 그러니 집중해야 할 건 우울증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 상처와 결핍으로 다친 마음이겠다." 작은 상처라도 매번 소독하고 아물게 다스려줘야지 방치하면 그게 쌓이고 쌓여 큰 병 된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어디서나 면역력을 강조합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팬데믹 이후에는 너도나도 면역력에 신경 씁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노이로제는 면역력을 떨어뜨린다(p32)." 비유적 표현인데 여기서 면역력이라 하면 신체적인 게 아니라 정신적인 걸 뜻합니다. "정신적 면역력이 약해지면 스트레스에 쥐약해지고 작은 일에도 민감해진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아홉 살인데 자꾸 자기 손목을 커터칼로 긋는 아이가 있습니다. 일본에 이런 증후군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한국에 이런 경우가 있다니 확실히 어떤 기제가 있긴 한가 봅니다. 엄마 아빠가 무섭게 싸우고 나서 엄마가 병원에 실려 갔고, 그 후로 두 분이 별거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싸우는 것만 봐도 아이는 불안하고 무섭겠는데, 이런 일이 있었으니... 손목을 긋는 이유는 아이가 직접 말하는데 "내가 살아 있는 걸 확인하기 위해(p35)"라고 하네요. 한편으로 "그랬구나" 하고 수긍이 되면서도 여전히 가슴이 아프고 섬뜩합니다. 그 예민한 곳에 칼이 가까이 간다는 것만으로도 무섭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렸을 때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본 적 있는데 거기서 (일제 당국이 저지른) 주 목사의 살해 장면에 그 비슷한 설정이 나와서 지금까지도 섬뜩한 기분이 듭니다. 저희 부모님은 왜 그런 무서운 영화를 애한테 보여 줬는지 원... (살아 있다는 건 다른 방법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여튼 이 대목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소아 우울의 위험성, 심각성에 대한 것입니다.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꼭 참고하실 만합니다. 


요즘은 메타인지를 많이들 강조합니다. 이 책에서도 p47 "마음살핌"에서 초인지에 대해 언급합니다. 어떤 청중은 "초인지는 스캔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답니다. 나 자신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죽 훑는 일. 여튼 여기서 중요한 건 "내 생각에 시비를 걸지 말자"는 겁니다. 자꾸 "걱정하고 시름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면" 초인지는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감정 낭비, 학대 상태로 복귀할 테니 말입니다. 초인지는 내가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 (일단은) 바라보는 것이니까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자신 속에 블랙홀을 만들게 하지 말라(p46)."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셀프 논박"입니다. 책에 나온 예를 그대로 옮겨 보자면 "울면 안 된다"를 "울어도 된다"로 뒤집는 건 셀프 논박이 아닙니다. 그냥 부정이죠. 이게 아니라, 왜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그 맥락, 상황(이게 중요합니다)을 떠올려 보고, 마치 제3자처럼, 상담자처럼, 내가 내 자신을 다독이라는 거죠. 이때 나오는 말이 "울어도 괜찮아"입니다. 이렇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어느 정도 마음의 힘이 강해졌을 때, 내가 내 자신을 달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블랙홀이라는 표현이 실감 납니다. 부정적인 감정의 덫에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그런 구멍이 간혹 있지 않습니까.


"마음이 상처를 입으면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어기제를 만들어 낸다.(p77)" 이런 걸 보면 그저 유기체의 대사 작용만으로 육신이 돌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게 효율적이든 그렇지 않든 심리적인 무엇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동물이 무척 신기합니다. 아마 동물도 어느 정도는 그럴 것입니다. 망상이란 무엇인가, 이 방어체계가 이떤 이유에서든 뚫리면 만들어지는 거라고 합니다. p79에서는 정신분석가 윌프레드 비온의 말 "Descent into a state of Reverie!"가 인용됩니다. descent가 동사로 쓰인 예죠. 저자가 이 앞 페이지에서 인용한 <정신적 은신처>는 검색해 보니 구순을 바라보는 존 스타이너 교수의 유명한 저작이더군요. 독자인 저도 다음 기회에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조절력을 상실한 사람의 최선의 선택은 조절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p106)." 매우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이미 상실된 능력으로 뭘 하려 해 봐야 오히려 역효과가 날 테니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닥까지 내려가면 더 나빠질 데가 없다." 이 말도 참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인데 말이 쉽지 실제로 그렇게 되겠냐는 의심도 들었습니다만 저자는 실제로 바닥을 치면 그 반작용으로 올라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올라오긴 하는데, 방향이 바뀌기는 하는데 실제로 얼마까지 다시 회복되느냐는 또 별개 문제고 일단 방향 전환의 동력을 얻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거죠. "그런 다음에야 그걸 끊어낼 마음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강조합니다. 정신적으로 어디가 아픈 사람, 알코올 등에 중독된 사람은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 힘으로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일단은 전문가나 전문 기관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야 하며, 저자는 또한 "자율학습"도 권하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을 찾아서 읽으라는 겁니다. 이때, 물론 당사자가 스스로 책을 읽고 문제 해결을 모색하면 좋겠으나, 옆에 있는 가족도 책을 찾아 주고 같이 읽으며 길을 함께 찾아나가는 걸 이 책 여러 군데에서 저자는 권하는 듯했습니다. 


대략 몇 년 전에 어느 정신질환자가 아직 어린 아이(생판 남)를 창 밖으로 던지는 사고가 났는데, 보통 매체에서는 정신질환자에게 편견을 갖지 말자고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대체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해하는 어느 어머니의 하소연을 접한 적 있습니다. 이 경우 법적으로는 오래 전에 이미 결론이 나 있고 문명 세계 공통의 해법이긴 합니다만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매우 부족하죠. 한편으로 그 가해자(...)의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 무슨 죄나 지은 것 같고... p140에 사정이 자세히 나오는데 이런 경우는 참 답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당사자끼리 조금씩 양보해서 역지사지하는 수밖에....


우리 나라에는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남의 장점이 보이면 내가 괴로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타입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해코지에 나서는 인간도 있는데 당하는 사람도 그걸 가만 참고 볼 리가 없으므로 결국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을 시기하는 못난 본인 손해입니다. 법으로 된통 당하면 그때 가서 물질적 손해가 나는 건 일단 별개로 하고, 시기하며 배알이 뒤틀려하는 그 순간도 결국 본인의 감정 대미지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 모든 시기심에 감정의 깊은 뿌리가 있으며 일단 남과 나를 비교하는 습관 자체를 멈추라고 충고합니다. 


어떤 자계서에서는 "당신이 백만장자가 되고 싶으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걸로는 불충분하다. 이미 된 것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하던데 이게 제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돈을 쓰고 거드름을 피우라는 뜻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절실한 마음가짐이 있으면 마인드셋과 행동 자체가 모두 달라진다는 건데, 사실 가난한 사람은 애초에 가난뱅이의 습관과 사고 방식이 몸에 물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쩌다 큰 돈이 생겨도 이를 잘 간수하지 못하고 날리는 일이 많죠. 부자는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돈을 필요한 곳에만 쓰는 사람입니다. 비슷한 논리로, 저자는 알코올 중독자 등 각종 질환자들에게 "당신이 이미 병을 고친 것처럼 행동하라(p174)"고 합니다. 중독자 중에는 자신에게 셀프 단죄를 하는 유형이 있어서, 잘못인 걸 알면서도 중독자의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래서는 평생 중독에서 못 벗어나죠.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람이, 이미 날씬한 몸짱이 다 된 것처럼 행동한다면 아마 겁나서, 몸매가 아까워서 음식을 더 이상 못 먹을 것입니다....라고 여기며 독자인 저도 이미 날씬한 사람이 다 된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마음을 잃고서는 그럴 줄을 도통 모른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게 아니라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뿐이다."(p207)


어디 학문뿐이겠습니까? 우리들이 성실하고 보람된 일상을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을 바로 다스리고 있어야 할 곳, 가야 할 길에 제대로 놓는 게 최우선입니다. 마음을 챙기는 방법을 자꾸 소홀히하면 결국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환우들처럼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분들도 꼭 제 자리로 돌아오셔야 하겠고, 우리들도 부쩍 경각심을 가지며, 먼저 내 마음 내 감정을 잘 돌보는 게 가장 우선순위가 높고 큰 일 하는 것이라는 점 다시 새겨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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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 직장인, 길을 찾다 - 조용하지만 강한 힘을 깨우는 비밀
이태우 지음 / 미래와사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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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십 년 넘게, 다른 분야도 아니고 HRD을 다뤄 온 저자는 다름 아닌 본인이 내향인이라고 밝힙니다. 예전에 정주영 현대 창업주는 자사 신입사원들(상당수가 명문대를 나온 젊은이들)에게 번화가 한복판에서 영업활동을 시키기도 했고 한강백사장에서 씨름을 시키기도 했다고 전하죠. 내향인이 조용히 연구에만 몰두하거나 사람 접촉이 드문 업무에 종사할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회사 같은 곳에서 조직인의 직분을 맡으면 꽤 어려워집니다. 직장내 따돌림 등 문제에 휘말리는 것도 대체로는 내향인들이며, 그걸 떠나서 내향인은 아무리 점잖고 신사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조직 안에 속한다고 해도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내향인은 내향인으로 태어난 자체가 어려운데, 사회와 조직 안에 적응까지 하려니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 책이나 직종이 진즉에 나왔어야 했죠. 우리 독자들도, 혹 본인이 아니라고 해도 주변에 이런 성격 문제로 고민을 넘어 고생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실 인싸 체질이 아닌데 그런 외양을 유지하느라고 애 쓰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도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성격 문제는 여러 학자들이 그간 구분을 시도해 왔으나 이 책에서는 p52 등에서 아이젠크의 모델에 기초를 두고 논의를 시작합니다. 안정-불안정이 하나의 축이고, 내향-외향이 다른 하나의 축입니다. 담즙질, 다혈질, 점액질, 우울질의 네 가지로 유형이 나뉘며, 과민~느긋~태평~사려~진지 등으로 32개 성격이 다시 나뉩니다. 이 중 내향성 축에 매우 가깝고 안정보다는 불안정 축에 가까운 게 "소심(reserved)"인데 저자 스스로는 32개 유형 중 여기에다 자신을 넣습니다.


저자는 어린 시절을 잠시 회고하는데, 특히 초등 6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성격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폭력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아이들에게는관대하게 대하는 사람이었는데, 사실 이 저자분 나이 또래들에게는 이런 선생이 일종의 유년 트라우마를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촌지를 쥐어 주고 나서 잘대해 준 게 드러난 어떤 선생 이야기가 나오죠. 성격은 이때 형성되는 게 사실은 아닙니다만 여튼 저자의 자존감은 이 시기에 크게 꺾였다고 합니다. 성격은 타고난 바도 크지만 후천적 요인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능력도 없는 인간이 돈은 돈대로 밝히며 평판이 나쁜 학교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합니다. 물론 훌륭하신 선생님들도 있습니다만.


"내향인으로 태어난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상하게도, 내향인은 그저 자신이 성격이 그럴 뿐인데 거기다가 죄의식이나 수치감까지 느낍니다. 사실 죄의식을 느껴야 마땅한 사람 중에는 구태여 따지자면 외향인의 비중이 더 높을 텐데도 말입니다. 우리 나라 엄마들이 어린 자녀의 공공질서 위반에 대해 "애 기 안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유독 더 관대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을 겁니다. 남한테 당하고 사는 애보다는 차라리 남한테 폐 끼치고 사는 사람으로 크는 게 더 좋다고 여기는 거죠. 성격이 내향적이면 우리 나라 같은 분위기에서 손해 보는 게 너무 많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p38에서 특히 한국은 폐허 속에서 국가를 재건하며 짧은 시간 동안에 압축 성장을 이루느라 외향인의 능력, 덕목을 더 중하게 여긴 탓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좀 소심하다 싶으면 정신병원에 데려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도 나오듯 강남의 좋은 학군에서 성장한 경우입니다. 


p62에서 저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직장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상사: "이런 덜 떨어진 놈!"

1) 자존감 높은 부하직원 -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겠습니다. (당신의 그런 심한 말이 나의 자존감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2) 자존감 낮은 부하직원 유형 1 - 자책. 수용. 자기비하. 

3) 자존감 낮은 부하직원 유형 2 - 강한 부정, 분노. 그러나 결국 크게 흔들리는 자존감. 


말하자면 이 책은 2)나 3)을 1)로 최대한 바꿔 주려는 목적입니다. 3)은 겉으로는 엄청 쎄게 보이지만 결국은 2)와 다를 바가 없고 위태로운 상태이며 스스로를 잘 지키기 어렵습니다. 즉 저러한 외부 자극에 여유를 갖고 대처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거죠. 2)만 문제인 게 아니라 이 책에서는 3)도 심각함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p65에는 크리스토퍼 머룩 박사가 정리한, 자기 가치감과 자기 효능감을 두 축으로 한 자존감 분석 매트릭스가 나옵니다. 머룩 박사는 "자존감" 연구에서 단연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 심리학자이죠. 책에서 이 부분 내용 소개가 아주 잘되어 있기 때문에 저도 이 독후감에서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가치감 높고 효능감 낮은 유형 -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 타인의 평판에 잘 휘둘림. 나르시시즘에 쉽게 빠짐. 우월감이 열등감으로 쉽게 바뀜. 

2) 가치감 효능감 둘 다 낮음 -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소심하며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3) 가치감 낮고 효능감은 높음 - 자신의 역량에 의한 결과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매김. 따라서 타인 평판에 민감. 완벽주의 성향. 능력 떨어지는 타인을 함부로 대함. 반사회성향 위험. 간혹 자기비하. 

4) 가치감 효능감 모두 높음 - 저자는 이런 유형이야말로 진정한 자존감이 높은 유형이라고 합니다. 올바른 의미에서 자기 중심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외부의 자극에 의해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분류에서도 위의 2)와 여기에서의 2)가 잘 통하며, 3)도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책의 본론이라 할 수 있는 2편, 3편에서 다섯가지 과제를 독자에게 제안합니다. 2편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시작하기"에서는 자존감 회복과 나를 대하는 마음가짐 재설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3편 "조용하지만 강한 힘 발휘하기"에서는 삶의 목적 발견하기, 일을 의미 있는 활동으로 재배치하기, 내향성을 빛나게 하는 무기 개발하기 등의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저자는 먼저 나를 마주해 보라고 합니다. 이 책 1편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초6때 경험을 정리하여 독자에게 들려 주는데 내향인 대부분은 이런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다만 회상하기 괴로우니까 그냥 망각 속에 묻어 두기를 시도하는 건데 이게 결코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문제를 모두 떠올려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게 우선이죠. 그 다음은 자기를 긍정해야 합니다. 물론 이게 잘 되지는 않죠. 못난 모습은 모습인데 그게 긍정한다고 멋있어지겠습니까. 그러나 최대한, 어린아이를 돌본다고 생각하고 상처 받은 나를 최대한 이해하며 달래 주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가해를 한 사람(저자에게는 그 선생)을 용서하고, 부분적으로 고마워할 점이 있다면 감사까지 해 보라고 합니다. 물론 이건 무척 어렵습니다만 이 과정이 만약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내 상처가 그만큼 더 확실히 낫습니다. 이 과정은 나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며 안 되는 걸 억지로 하는 건 안 하느니만도 못합니다. 다만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진행해야 하며 그저 상처만 달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인격도 그만큼 성숙해지는 거죠. 책에서는 틱낫한 스님의 말도 인용합니다. 


특히 저자는 "내면과 외면의 디커플링"에 대해 지적합니다. 저자는 좋은 스펙을 쌓고 남부러울 것 없는 회사에 입사하였으나 이 내향인 성격 문제가 내내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책에는 "이 세상은 외향인들의 독무대"라는 구절이 자주 나옵니다. 발표도, 회식자리에서의 매너도, 대인 관계도, 영업도... 아마 이 구절이 많은내향인들, 조직 내에서 다 그 나름 능력도 좋은데 매번 성격이 발목 잡는다고 느끼는 내향인들에게 정말 공감이 될 것 같습니다. 어려서 중상 이상의 지인들만 곁에 두고 성장했을 저자 같은 분이, 지능 컴플렉스를 쉽게 떨치지 못했을 경우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야 훨씬 높겠지만 주위에 유독 똑똑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겠습니까. 여기서 저자가 제안하는 게 "나만의 장점을 찾고 나만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자"는 겁니다. 자존감도 그렇고 삶의 질 문제에서 저는 이게 핵심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p185 이하에서는 직업관의 차이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저 생계 수단인 직업이 있고, 커리어 관리 수단으로서의 직업이 있으며, 이게 내게 주어진 소명(calling)이라는 의의를 가진 직업이 있습니다. 몰입도나 성취감 면에서 세번째 직업관이 최상의 효과를 낼 것이라는 건 자명합니다. 이 분류를 심리학에 접목시킨 분은 Amy Wrzesniewski 예일대 교수이죠. 직업이 소명이 되기 위해 저자는 관계 크래프팅이라는 걸 제안합니다. p189의 정의에 따르면, 이는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의 관계를 변경하는 걸 뜻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일이 행위자를 지배하는 어떤 노예상태로부터 "해방"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만의 리듬(p207)이 먼저 설정되어야 합니다. 


내항인은 일을 추진할 때 리스크를 먼저 고려합니다. 이익을 먼저 떠올리고 그로부터 동력을 얻는 외향인과는 다르죠. 또 외부를 향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외향인과 달리 내향인은 그 에너지가 내면으로 흐릅니다. 이런 내향인이 일을 재배치하려면 긴급성과 중요성을 양 축으로 삼는 p219의 2x2 매트릭스에 따라 모든 일을 재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p244 이하에는 자기만의 무기 중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자세히 소개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 내용이 너무 좋아서 내향인 주제와는 무관하게, 더 몰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성격 유형과 무관하게 독해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독자들, 혹은 어린 학생들이 독서 논술 능력 제고를 시도할 때 이 부분을 읽히면 좋겠다 싶더군요. 여튼 저자는 내향인들이 타 유형에 비해 이처럼 깊이 침잠하고 몰두하는 분석력 계발 면에서 유리하다는 주장을 폅니다. 단지 너무 이쪽을 계발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중요한 우선순위를 게을리할 수 있으니 직장에서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p258 이하에 이어지는 맥킨지 모델, GE 모델, 3M 모델, 케프너 모델, DMADV 모델 등이 설명되는데 웬만한 경영학개론, CPA 수험서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해 줍니다.


GRIT은 우리나라에서도 대략 8년 전에 번역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저자는 특히 저 책의 결론을 내향인들에게 알맞게 변형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하는데 첫째 관심가는 일을 하라, 둘째 높은 목적의식을 가져라, 셋째 의식적 연습을 하라, 넷째 낙관주의로 다시 일어서라, 등으로 요약됩니다. 성격이 내향적이라는게 다른 사람을 능숙히 잘 못 대한다는 거지 내면의 에너지, 능력 등이 뒤떨어진다는 뜻은 결코 아니겠죠. 책이 비교적 두꺼운 편이며 무엇보다 저자 본인이 성격 문제로 고민했고 이를 실천적, 이론적(이 문제로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한 분입니다)으로 극복한 분이므로 해당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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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긍정주의자 선언 -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답게 살기를 원하는 당신에게
우희경 지음 / 포춘쿠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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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가장 예뻐야 할 20대에 너무 궁색했나 싶기도 하다... 젊은 아가씨가 재테크를 한다고 돈을 아끼면서 살다 보니 남편 잘 만나는 친구들을 보면 수시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소신을 지켜야 했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쥐고 싶었으므로(p49)."


나는 돈 한 푼 아끼겠다고 이처럼이나 아둥바둥 궁상떨면서 사는데 어떤 친구들은 보다 쉽게 사는 방법을 택해서 온갖 명품 다 걸치고 젊은 시절 누려야 할 호사를 다 누리는 걸 보면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당연히 들 것입니다. 게다가 저자께서는 당시 항공사에서 일했으며 주로 부유층을 상대하는 업무였다고 합니다. 이때 저자는 놀랍게도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명품백 드는 사람보다는 내가 명품이 되어야지."


이런 말이라는 게, 떠올리기도 쉽고 듣기도 쉽지만 그걸 실천에 옮기기는 정말 힘듭니다. 별 힘 안 들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위신을 부리고,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더 풍족한 삶을 사는 친구들을 보면, 나 혼자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기도 하지만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의 노력 덕분에, 나중에 경력단절이 되었을 때 나에게 투자할 종잣돈을 모을 수 있었다. 이 소중한 돈으로 직장을 그만두고도 계속 나에게 투자하며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난 처음부터 돈 걱정 안 시키는 남자와 결혼했기에, 애초에 취업할 필요도 없었고 따라서 경력단절 같은 걸 걱정 안했으며 지금도 풍요롭게 잘 산다. 머리아프게 뭘 공부할 필요도 없고 돈 잘 쓰며 행복하게 잘 산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죠. 사람이 누구한테도 그 자유의지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남에게 피해 안 주는 범위 안에서)을 펼쳐 나가며 내 삶을 내 뜻대로 펼쳐 나가는 삶이야말로 그 인생을 가치있게 만듭니다. 매 순간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일궈 나가는 삶은, 그 주인공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게 만듭니다. 풍족한 삶을 살아도 노예로 사는 삶, 무엇에 질질 끌려가는 삶은 이미 그 인상에 좋지 못한 흔적을 남깁니다. 아무리 비싸게 꾸미고 다녀도 "저 여성은 자기 삶을 사는 분이 아니구나" 같은 느낌은 누구라도 받게 마련이죠. 면전에서는 돈 몇 푼 더 뽑아내느라 다들 좋은 대접을 해 주겠지만 말입니다. 


"생계형"이라는 말 뜻에 대해 이 책 표지에서는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기 위해 무엇을 함"이라 정의합니다. 이 책 1장 맨처음에 나오는 부잣집 훈이가 부러웠다는 회고, 맨날 계란 후라이만 먹어서 생각보다 키가 안 커서 속상했다는 이야기 등을 독자로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훈이도 그렇지만, 돈은 정말 있다가도 없는 것이어서, 사업은 한번 망하면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어려운 사람이 계속 어렵게 사는 건 물론 재미도 없고 죽을 맛이겠지만, 잘살던 사람이 망하게 되면 바뀐 삶에의 적응 자체가 어렵습니다. 키가 안 크는 건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기초적인 영양 자체가 공급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남들보다 뭘 못 먹어서 키가 안 크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계란에 얼마나 많은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습니까? 균형 잡힌 영양은 신장(身長)보다는 건강과 체질에 영향을 주겠죠. 그보다는 독자로서 제 주변의 경험을 보면 "무엇인가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건 집안의 경제 형편과는 무관하죠. 


"부러우면 지는 거다." 독자인 제 생각에는, 아니 마음이 이미 부러운데 그걸 어쩌겠습니까. 내가 정직하게 저 사람이 부럽다고 여기는데 그건 뭐 부인할 방법이 없이 부러운 게 맞고, 진 것도 맞죠. 그것보다는 내가 책을 읽든지 뭐 세상 경험(p214)을 좀 쌓든지 해서, 정말로 진심으로 나만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저 사람은 저런 장점이 있지만 나도 내 나름 좋은 점이 있으니 부럽지 않다"는 확신이 생기고, "안 지는"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 저자님도 "그때는 부러웠는데 나중에 훈이한테 오순도순 사는 게 더 부러웠다는 말을 듣고 그때 가진 것에 집중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p21)"고 합니다. 뭐 어렸을 때야 이런 성숙한 생각을 하기가 힘들죠. 그리고 뭐 우리가 안 성숙해도, "암만 돈이 많음 뭐하나, 저렇게 양아치 같이 살면서 아슬아슬해지는 건 하나도 안 부럽다" 이런 생각 들게 하는 사람, 가족도 있지 않습니까. 세상 일이 다 그런 겁니다. 애초에 돈을 가질 자격도 없는 인간들이 나중에 사업도 보면 꼭 망하곤 하는 거죠. 근본이 없고 배운 게 없어서 그런 겁니다. 근본이 없기 때문에 사업도 재기를 못 합니다. 주제도 모르고 과거 잘살때만 계속 생각하니 형편이 어디 나아지겠습니까. 


"명품백 드는 사람보다는 내가 명품이 되어야지."


다시 말하지만 저는 이 말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말을 이 책에서 처음 접해서가 아니라, 이 말을 정말 본인이 영혼 레벨에서 각성하셨기에 그처럼 억척같이(20대의 나이에) 돈을 모으셨던 것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2,30대에 안 먹고 안 쓰고 해서 돈 모아 봐야 태어날때부터 금수저인 사람을 못 당합니다. 죽어도 역전 못합니다. 그래도 배부른 돼지처럼 세상사 깊은 이치도 모르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자신의 눈으로 발견 못 해 보고 그저 배만 부른 채 죽는 돼지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삶 아니겠습니까? 부모에게 100억을 물려받아 (별 낭비나 실패 없이) 90억을 세이브하고 죽는 사람보다, 돈 천만으로 시작해서 5천으로 불린 인생이 훨씬 가치 있는 삶입니다. 근데 이걸 책에서 그렇게 읽어서 말로만 머리로만 그리 아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그리 확신을 갖고 그런 삶을 사는 게 보기 드문 겁니다. 그래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p207)인 겁니다. 


"사람은 가끔 나에게로 초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p103)." 이 말을 들으니 저는 과거 버즈의 히트곡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란 곡이 생각났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아무리 바쁘게 열심히 살아도 가끔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자기가 나이가 십대인 줄 알고 연예인 동정 기사에만 정신이 쏠립니다. 허황된 망상에만 젖어 단톡방에서 주워들은 주식이 그저 최고일 줄 알고 상담비 50만원을 겁도 없이 송금하다 고스란히 떼이죠. 물론 그렇게 해서 산 주식은 모두 물려서 반대매매로 다 청산당했습니다. 반면 눈 밝은 사람은 종목 하나를 추천해도 하나하나가 윈픽입니다. 작년 11월에 19,000 하던 게 지금은 7만원이 넘었습니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잘 걸으며 사는 삶"을 강조합니다. 저자 본인이 결혼을 잘 했으며 결혼관 자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눈이 뜨였다 생각되니 지인에게도 좋은 사람을 추천(p121)했습니다. 문제는 그 남자가 돌싱이었다는 건데, 친구분은 제법 큰 충격을 받았나 봅니다(책에는 그 지인분이 평소에 돌싱도 괜찮다는 말을 해 왔다고 나옵니다만). 저자는 이 점이 지금도 후회된다고 합니다. 자신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서 추천해 준 건데... 사회의 인식이 바뀌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돌싱이든 뭐든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이 중요한 건데 말이죠. 근데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그 친구분은 아직도 독신이긴 한데, 대신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싱글이 돌싱과 초혼을 하는 것도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면이 있지만, 여성이 계속 독신으로 사는 것도 역시 조직에서는 그리 좋게 보지 않습니다(이게 맞다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신 나름대로 잘 산다는 겁니다. 이 역시 또 좋은 겁니다. 남이 어떻게 보든 말든 화려한 솔로로 잘 사는 것 아닙니까. 취집해서 기도 못 펴고 맨날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당연히 이게 나을 수 있죠. 


가수 에디트 피아프는 전후 피폐해진 프랑스에서 "Non, je ne regrette rien"을 불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p151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적어도 저는 제 인생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나 자산을 이해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삶(p250)은 산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할 자격이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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