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 숏폼으로 브랜딩하다 - MZ 세대를 사로잡는 숏폼 콘텐츠의 성공 법칙
김가현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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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이들은 일단 "틱톡"이 무슨 어플리케이션인지, 아니 그런 앱이 있는 줄도 몰랐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1년여 전 이 앱을 금지한다는 뉴스 덕분에 오히려 유명해졌고, 그런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최근까지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간 결과 이제는 더 세를 불린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유튜브의 개인 방송 플랫폼이 크리에이터와 플랫폼 양측에 윈윈이 된 것처럼, 틱톡은 이제 많은 유저들에게 전에 없던 기회를 주고 있으며 자사 역시 새로운 단계를 향해 도약 중입니다. 책에서는 메시지 중심의 트위터, 사진 중심의 인스타등을 넘어 이제 소셜미디어가 "(짧은) 동영상" 중심으로 진화 중이며 이런 거대한 트렌드(책에서는 한때 유행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를 이끄는 게 틱톡이라고 규정합니다. 틱톡의 장점은 "스마트폰만으로 동영상 편집이 가능한, MZ 세대 최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p6)"이라고 이 책은 요약하는데 이 한 구절만 봐도 책을 편 보람이 독자 입장에서 느껴집니다.


또 이 책은 틱톡의 경영 전략이나 비전만을 설명한 게 아니라, 이 플랫폼을 이용애서 크리에이터들이 어떤 이점을 누리고 자신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지,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실제로 자신의 육성을 통해 설명합니다. 이쪽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도, 지금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바뀌는 중이라는 점 실감하기 위해서라도 정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p35에서 틱톡은 "크리에이터와 팔로워"로 이뤄진 생태계로 나눠진다고 설명합니다. 게다가 틱톡에서는 팔로워가 크리에이터를 겸하는 경우가 유튜브보다 많아, 진정한 프로슈머들의 공간이라고까지 규정하네요. 여기서 재생되는 상황극이 있다면, 이 드라마는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므로 그 연기가 선명하고 극적(p36)"이라고 합니다. 또 AR 필터, 보정 기능, 배경 음악도 제공되는데 이런 게 스마트폰만 가지고도 다 가능하다면 확실히 기존의 다른 플랫폼과는 차별화된다고 하겠네요. "음악저작권, 언어장벽, 영상길이, 고급영상제작"이 기존의 4대 장벽(p33)이었는데, 이걸 기술적으로 유의미하게 허물기 시작한 게 바로 틱톡이라고 합니다. 세계 유수의 의류 브랜드를 비롯해 기업들도 틱톡을 활용한 마케팅에 실제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유튜버와는 별개로 이제 틱토커가 "현실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되어 간다는 점입니다. 영상 길이도 일부 크레에이터에게는 더 늘릴 수 있는 수단이 제공된다니 말입니다(p34).


"MZ 세대는 쉬는 시간에도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세대(p52)"라고 합니다. 어른들이 보면 중독,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흥미 위주의, 큰 의미 없는 콘텐츠가 아직은 다수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방송을 실제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알 수는 없으나 배민에 광고하는 업주들이 마치 약플, 별점 테러에 민감한 것처럼 개인 방송자들은 구독자 유지에 민감할 것입니다. 일단 바이럴이 될 만한 영상을 먼저 제작해 새로운 시청자 확보의 동력으로 삼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p74). 또 이런저런 피드를 잡다하게 늘어놓을 게 아니라, 뭔가 통일성이 느껴지는 배치를 통해 내 채널의 정체성이 뭔지 확 들어오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콘셉트가 분명하게"라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또 필자가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시청자, 팔로워와의 소통"이라고 하네요.


어떤 것이 채널에 어울리는 이른바 "브랜디드 콘텐츠"인가? p82에서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1) 정보성/꿀팁 2) 15초 틱톡 숏폼형 3) 상황극, 코미디 4) 뷰티, 먹방 등 한 분야에서 유니크한 채널 브랜딩. 첫째 채널의 경우는 내가 전문성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며, 2)를 위해서는 틱톡의 최신 트렌드가 무엇인지 타 채널을 꾸준히 참조하여, 언어를 초월한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하라고 합니다. 세번째를 위해서는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연기력이 필수이며, 4)는 수익을 올리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인데 이를 위해서는 "여전히 블루 오션인 이곳에서(p87)" "민쌤" 등의 성공 사례를 참조한 후 자신만의 색깔을 낼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바이럴의 첫째 조건은 따라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p95). 발음대결, 연기챌린지, 상황극 듀엣, 1인칭 영상 등 포멧은 무궁무진하다고 합니다. 또 틱톡에서도 라이브 방송이 가능하다는 점을 유념하라고 합니다. "실시간성"을 최대한 부각하려면 "시청자와 빠르고 짧은 소통(p105)"이 핵심임을 명심하라고 하네요. 


뇌과학자와 틱톡이 무슨 관계일까 싶지만 사실 뇌과학은 반 세기 전부터 광고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해 왔고 유의미한 성과를 내어 왔습니다. p122 이하에서 필자 중 한 분인 장동선 박사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잘 살려 독자에게 틱톡과 뇌과학의 연관을 친절히 설명합니다. 특히 뇌는 수동적으로 엮일때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 더 오래 기억하고 쾌감을 크게 느끼는데, 독자인 저도 틱톡이 성공한 가장 큰 비결도 따지고보면 그 참여의 손쉬움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틱톡은 소통과 교류에 최적화된 앱이다(p129)." 심리학 연구 결과이긴 하나 경영학 조직론 등에도 널리 쓰이는 "강화" 등의 개념이 있죠. p138에는 간헐적 강화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시청자에게 보상을 주는 간격을 완전 랜덤으로 하여 뇌에게 준비를 시키지 않음으로써 이 앱에 대한 중독성을 극대화한다는 겁니다. 


MZ 세대는 "요약과 큐레이션을 좋아한다(p135)"는데 확실히 요즘은 인터넷에 올려지는 기사들도 맨 앞에 세 줄 요약을 첨부합니다. 물론 정보를 온전히 취득하려면 전문 읽기가 습관화해야 합니다만 여튼 요즘의 트렌드가 그러하고 틱톡 등 숏폼 활용 컨텐츠는 특히나 이 점을 명심해야 하겠네요. 또 "연출보다는 리얼함, 완성보다는 진행형을 선호(p136)"한다고 합니다. 


덕업일치란 말이 예전부터 있었는데 p140 이하에는 아나운서 유아나씨가 자신의 틱토커로서의 비결을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그전부터 PD와 앵커 경험은 있었으나 처음에는 "이미 고인물이 되어 버린 자신이 과연 MZ 세대와 잘 소통할 수 있을지(p143)" 고민이었다고 하네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첫 해시태그를 "한국어체크"로 정했는데 이것으로 성공적인 퍼스널 브랜딩의 스타트를 끊었다고 밝힙니다. 이제 그녀가 당당하게 하는 말은 "채널의 가치가 삶의 가치가 되었다"입니다. 이것이 비단 전직 아나운서, 방송인에게만 가능한일은 아니겠습니다. 


코리안훈 채널은 처음부터 "세상에서 유일한 채널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안고 시작했다고 합니다. 같은 한국어 교육 카테고리라고 해도 강의를 하는 식, 답변을 해 주는 식, 상황극을 통해 알려 주는 식 등 여럿이 있는데 카테고리 안에서 어떤 차별화를 기하며 시청자에게 어필할지 자신의 개성과 강점을 잘 살려 기획하라고 필자는 말합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채널에서 방송을 하는 이들은 "크리에이터"이므로, 비단 틱톡뿐 아니라 방송 플랫폼 전반에 걸쳐 필요한 건 "자신만의 창조적인 문법 마련(p178)"이겠습니다. 콘텐츠와 어울리는 스타일링을 시도하고, 틱톡이면 틱톡, 카카오면 카카오, 이렇게 각 플랫폼에 잘 어울리는 분위기(p181)를 염두에 두라고도 합니다. 심지어 이 책에는 틱톡과 전혀 안 어울릴 듯한 과학 교육 채널의 성공사례도 소개되는데, 그만큼 틱톡만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여기에 자신만의 문법을 스타일링하면 얼마든지, 주제의 무거움 가벼움 여부와 무관하게 성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바일이 진화하면 가장 먼저 어떤 산업이 뜰지 십여년 전 전문가들의 여러 예측이 있었는데 대부분 짐작을 못한 뜻밖의 분야에서 금맥이 하나 발견된 셈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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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심리 도감 - 색이 지닌 힘으로 사람의 심리를 간파한다
포포 포로덕션 지음, 김기태 옮김 / 성안당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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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색과 인간 심리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미묘한 상관 관계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불교에서도 그 심오한 가르침의 정수를 "색즉시공"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을 시도했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서양 문학에서는 "그것을 보게 해 주는 빛을 내려 주신 신에게 감사" 등의 표현이 관용적으로 쓰이는데, 빛을 분해하면 각각의 색이 나옵니다. 이처럼 빛, 그리고 색은 사람이 사물을 파악하는 매개 중 하나이며 우리가 (불완전한) 눈과 뇌를 통해 그리 파악할 뿐 사실 사물의 참모습이 뭔지는 모르지만 여튼 근삿값으로 저런 색을 지녔겠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더 완전한 생명체의 시각(그런 게 있다면)으로는 지금의 사물들이 또 어찌 보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책은 주로 마케팅, 광고업, 기타 시각적 디자인을 중시해야 할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이 곁에 두고 수시로 참조하면 좋을 그런 내용들로 꾸려졌습니다. 아마 원 저자가 일본 전문가들 같은데, 일본은 2차 대전 후 산업과 경제를 부흥시키면서 그간 많은 성공을 거두었고 성과를 꽤 축적시켰습니다. 그 중 광고와 디자인, 색채 관련 노하우를 축적한 결과물 중 하나가 이 책 같습니다. 내가 어떤 효과를 대중 상대로 어필하려 드는데, 일단 광고에서 셰이프도 셰이프지만 가장 간략하게는 색, 컬러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글자가 채 안 들어갈 공간에도 색은 배치할 수가 있습니다. 과거 간호사들은 흰색 유니폼으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표시했고 지금도 의사들은 그리합니다. 또 경찰 역시 거의 만국 공통으로 현장 업무에서 특정 색을 착용합니다. 


비즈니스 영역은 더욱 미묘한 심리가 색에 반영됩니다. 물론 우리들도 일을 하다 보면, 또 일을 하지 않는 이들이라 해도 하다못해 광고만 줄창 보는 입장이라 해도, 어느 색이 무슨 상황, 무슨 메시지와 연관이 있겠다 정도는 감을 잡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드물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해도 자신의 업무를 볼 때 수시로 참조를 필요는 항상 있다시피합니다. 하다못해 ppt나 기안 올릴 때조차 과연 색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우리 자신도 모르고 지나가는 색 연관 심리를 알기 위해서라도 이런 책이 필요합니다. 


p60이하에는 "좋아하는 색과 성격"에 대한 여러 설명이 나옵니다. 조금만 인용해 보면 "진한 분홍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적 교양도가 높고...." 등 설명이 자세합니다. 한 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성격 분석 사항이 제법 많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짙한분홍과 밝은분홍, 그리고 빨강에 대한 설명이 다 분리 제시됩니다. 물론 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는 건 아닙니다만 업계의 노하우 정도로만 여겨도 실무에 도움이 많이 되지 않겠습니까? 읽어 보면 상식선에서 납득도 되고, 또 많은 현업 종사자들이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이 선상에서 일을 진행한다면 그게 곧 진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p56에서는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색"과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물론 실제로 우리가 출근길에 "나는 지금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중"이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을 때 이런 의상을 걸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선택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소양을 넓혀(...) 아 저 어두운 색 옷을 입으신 분은 지금 이런 생각이신가 보다 하고 바로 메시지를 접수했으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혹은, 내가 지금 어떤 광고 초안을 작성해야 하는데 스트레스에 민감한 이들을 타겟으로 하는 상품이라면 모델한테 이런 옷을 입히고 특정 상황 속에 넣을 수 있겠지요.


원론적인 설명도 있습니다. 주로 책 초반에 나오는데 우리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웠던 명도, 채도 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개념상으로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만, 막상 이걸 실무에 적용해 보라고 하면 못하는 사람이 또 대부분입니다. 이 책이 진짜 좋은 점은, 원론 다음에 "이 색은 이런 메시지를 담았어요!"라며 바로 실전 설명이 나오니까, 그제서야 아 우리가 전에 배웠던 채도 명도 색상이 실제 일에서는 이렇게 적용이 되는구나 하고 참 때늦은 깨달음이 온다는 거죠. 미대에서 정식으로 이론 안 배운 저 같은 독자는 최소한 그랬네요.


미술 이론뿐 아니라 이 책 제목이 "색채 심리 도감"인 만큼 심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사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이 책의 핵심 내용이 심리 이야기입니다. 물론 심리학과에서 배우는 어려운 내용이 아니고, 마케팅 실무에서 자주 쓰이는 레벨의 내용들입니다. 감정, 감각, 판단, 심지어 색은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피부에 근육 등에 영향 끼치는 색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위 위 문단에 적은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 항목도, 색이 감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 내용 일부입니다. 


제 눈이 이상한 건지 이 책에서 제시한 청록색(p65 등)은 제 눈에는 짙은 파랑으로 보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배운 청록은 이것보다는 더 그린에 가까웠는데... 하긴 우리가 일상에서 부르는 색이 엄밀히 정의된 채 그리 불리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또 이 책에서 말하는 파랑은 괄호 안에 "시안(cyan)"이라고 더 특정화합니다. 


위위위 문단에서 신체도 색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책 내용을 인용했는데 p104 등에 "피부의 광감각"이라고 해서 정말로 물리적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자세히 가르쳐집니다. 단백질의 일종인 옵신이 피부에 분포하여 감광 작용한다는 설명이 있는데, "아직 과학적으로 세밀히 밝혀지지는 않았다"는 설명도 붙어 있습니다. 또 근육 긴장도를 표시하는 라이트 토너스 값에 대한 설명도 이어집니다. p168에는 추체의 기능을 설명하며 퍼킨제 효과가 자세히 나오는데 역시 유익합니다. p148의 먼셀 표색계는 이제 뭐 상식이죠. 정말 이 정도는 실무에서도 알아 둬야 합니다. p164에는 항상성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일을 떠나 그저 흥미를 위해서도 잘 읽히는 대목입니다. 


역시 원론에서 배우는 내용으로 대비효과, 시인성, 유목성, 식별성, 가독성 등이 나옵니다. 정말 이런 내용은 전공자 아니라도, 아니 오히려 아니기 때문에, 실무자들이 반드시반드시 알아둬야 하겠습니다. p134에 나오듯이 아이작 뉴턴의 말처럼 "색은 과학"인 것입니다. 색은 그러나 인간의 인식에 좌우되는 하나의 편의, 혹은 환상이라고 해도 됩니다. 항상성이란 게 뭐겠습니까. 분명 환경이 달라졌으니 색도 달라 보이는 게 정상인데 인간의 뇌는 종전의 정보를 잊지 않고 어느 정도는 대상의 색을 동일하게 인식합니다. 색은 매우 "인간적"이므로 이런 일관성이 유지되는 거죠. 색과 인간 심리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 이 정도가 아니라, 색이 곧 인간 심리였던 겁니다. 이 책을 읽고 새삼 확인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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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다 - 카르멘 라포렛 탄생 100주년 기념판
카르멘 라포렛 지음, 김수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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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스페인 내전 직후이니 꽤 오래 전이고 작가분도 근 백 년 전 사람이지만 적어도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드러내는 감정, 형제, 친족, 부모, 자녀 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와 소소한(때로는 심각한) 갈등 등은 한국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한국 역시 이념의 좌우 대립 탓에 적잖은 갈등상을 겪었으며 어느 정도는 상황이 현재진행형이므로 더 공감되는 바가 큽니다. 


소설 초반을 읽으며 저는 처음에 화자인 안드레아, 아직 나이가 젊고 거의 어린애같은 감성을 지님과 동시에 어른들 속을 몇 번은 들어갔다 나온 듯한 의뭉스러운 구석도 많은 여대생의 이름과, 이 집의 가정부인 안토니아 두 이름이 내내 헷갈렸는데 사실 지금도 헷갈립니다. 둘은 나이, 신분, 성격 등 모든 면에서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는데 작가님이 왜 이렇게 이름을 지었는지 지금도 좀 원망스럽습니다. 이 점만 제외하면 소설은, 과연 고전은 고전이었구나 싶게, 어찌보면 평범한 가정과 평범한 주인공을 내세워 참 의미 깊은 장면 장면들을 만들어 내었으며, 두고두고 생각할 메시지를 던져도 줍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특히 한국 독자들이 읽어 보면 공감할 대목이 많습니다.


앞서 평범하다고 했지만, 아니 형제 중 하나는 공화파에 가담하고, 그 모친은 여전히 가톨릭 신앙을 간직하며(그렇다면 좀 과장해서 반대 진영인 국민파에 한 발은 담갔다는 소립니다), 다른 형제는 반대 진영에 가담할 것을 농반진반으로 권유 받는 가정이 어떻게 평범한가, 또 그 겪는 일들을 보면? 이렇게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이 무렵 스페인의 어느 가정이 이런 이념 대립, 혹은 내전의 상흔으로부터 자유로웠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이 가정은 평범한 가정입니다. 


또, 사실 다른 의미에서도 이 가정은 평범합니다. 로만 삼촌은 화자 안드레아와 어떤 끈적한 감정이나 가진 듯 처음에 묘사되지만 사실 초반부까지 진행을 봐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안드레아가 얼마나, 몇 겹의 속내를 지닌 능청스러운 처녀입니까. 늙은 삼촌이 아무리 다재다능하고 그 나름 매력적이라 해도 그를 향해 이 처녀가 그런 일차원적인 감정을 품지는 않습니다(윤리적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윤리 문제에 대해 혹 불편하게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이 상황, 즉 안드레아가 아직 이 집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었다는 "상황"을 자꾸 떠올리십시오. 또 나중에 새 인물 에나가 등장하기 때문에 그리 오래 신경도 안 쓰입니다. 에나만 나오는 게 아니라 더 나중에는 하이메란 "늘씬한(안드레아의 표현)" 체격을 가진 녀석도 나타나서 안드레아 주변에 알짱거립니다. 


로만이란 자는 꽤나 자기 중심적이고 나르시스트적인 면도 보이지만, 또 소문에 의하면 공화파에서 꽤 중요한 직분을 맡았다고도 하지만, 사실 전혀 거물도 아니고 그럴 만한 그릇도 못 됩니다. 척 보면 아는 거죠. 말하자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파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파샤는 나중에 그 진영에서 크게 출세하여 스텔리니코프 장군(으로 개명)이 되잖아요. 동생 후안더러 반대 진영에 가담하라고 권하는 걸 보십시오. 진지하고 심각한 각성을 거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이 사람은 어떤 시대 정신을 대변할 만한 사람이 전~~~혀 아닙니다. 후안은 그저 망나니(이런 집에 으레 한둘은 있기 마련)일 뿐이니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안드레아 저애가 얼마나 여우 같은지 알기나 해? 그저 연극이나 꾸며대면서 남들 무시하기나 하고, 그저 너랑 쿵짝쿵짝할 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애라고!"(p329)


와, 이런 걸 보면 딴 건 몰라도 후안이 사람 꿰뚫어보는 직관력만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래봤자 독자인 저한테는 못 미치죠. 전 초반부만 읽고도 안드레아의 사람됨을 다 알아봤거든요. 별 말도 안 하고 그저 할머니와 외숙모의 대화를 중계방송만 했는데도 말입니다. 


안드레아와 이름이 비슷한 가정부는 소설 내내 적어도 안드레아의 시선에서는 "가정부"로만 불립니다. 안드레아는 심적으로 이 가정부와 제법 거리를 둔다는 소립니다. 그 할머니는 적어도 가정부를 이름으로 부르며, 또 심한 악평("짐승")을 할망정 적어도 어떤 감정상의 교차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가정부는 아마 "니네들은 나한테 죽어라 하고 일을 시켜라. 단 어느 선을 넘어들어오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 같은, 하층민스러운 방어막을 치고 사는 일종의 전형입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완전히 그녀를 타자시하지 않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생의 한 구간에 그런 여자(계층)와 접점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반면 안드레아에게 가정부 안토니아는 완전히 타자입니다. 뭐 이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독자인 저는 그리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눈여겨 봐야 할 인물이 바로 글로리아 이모죠. 로만에게는 형수가 되는... 저는 처음에 로만이 형이고 후안이 동생인 줄 알았는데 뭐 여튼요. 근데 이건 저의 명백한 실수였던 게... 도착하는 장면에서 이미 안드레아가 큰삼촌 작은삼촌으로 구별해서 부르는데도 말입니다. 제가 확인은 안 해 봤지만 김수진 역자가 독자들에게 성의를 보여 이렇게 일부러 번역한 거겠죠? 이래서 제가 또 문예출판사 책을 좋아합니다. 여튼 글로리아 이모는 글쎄 뒤에 보면 후안이 자기 마누라한테 만족한다는 대사가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아직 어른이 덜 된 사람입니다. 언젯적 일인데 시동생이 자신한테 관심이 있었다느니 뭐니 흉한 이야기를 한참 어린 조카한테 떠들고... 물론 현재의 삶이 불행하니 그나마 행복했던, 아니 행복을 꿈꿀 수나 있었던 처녀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이후 이야기는 스포라서 이 독후감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로만이 확실히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형제간 터울이 많이 나긴 합니다만) 매력은 있는가 봅니다. 이 독후감 앞에 언급한 그 인물과 기어이 일이 벌어지니 말입니다. 또 저분, 누구라고 이야기는 안하겠습니다만 또 기어이 누구하고 일을 저지릅니다. 이러니 이거 뭐 무슨 한국 아침 드라마의 스페인 고전판인가 하실 분도 있겠으나...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감동적입니다. 또 고전 소설답게 정격을 지키고 따라서 구성이 이지적입니다. 긴 말 하지 않겠으니 꼭 읽어들 보십시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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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 - 7번의 세계화로 본 인류의 미래 Philos 시리즈 7
제프리 삭스 지음, 이종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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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삭스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대로 세계적인 경제학자입니다. 경제학은 본디 경제사 연구 파트가 따로 있어 세계 역사를 산업, 경제 구조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별개의 관점으로 정리합니다만 제프리 삭스의 그간 연구 성향으로 보아 이처럼 긴 구간을 그만의 프레임으로 통찰한 책은 독자로서 꼭 읽어 보고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2020)에 출판된 이 책은 원 제목이 <에이지즈 오브 글로벌리제이션>인데, 각 종족, 민족, 문명권, 인종들이 각기 자신들의 터전을 일구고 살다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세계화한 세상"으로 진입하는지 총 일곱 개의 구간으로 나눠 설명합니다. "OOO의 세계화"처럼, 저자의 관점에서 일곱 번의 세계화 동인, 동기가 작용한 구간으로 나뉩니다. 


p33에 책의 내용을 개관할 수 있는 표가 실렸는데 시간이 정 없는 분들은 이 표만 봐도 대강의, 아주 대강의 내용은 알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와 주장하는 바를 정확히 캐치하려면 몇 번을 거듭 읽을 필요가 당연히 있겠고요. 


경제학자답게 저자는 정량적 지표로 일단은 접근합니다. 무엇이 시대 구간을 가르는 핵심 기준(저자의 원 표현에 따르면 "장기적 변화의 세 가지 차원[p37]")이 될 것인가. 첫째 인구, 둘째 도시화 비율, 셋째 1인당 생산량입니다. 인구 수는 그 시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최소 요건들을 얼마나 갖추고 살았느냐를 가늠할, 단순하고도 확실한 지표가 될 만합니다. 질병이나 전쟁, 기근 등 불리한 여건이 지배적이면 인구가 늘 리 없고, 이는 적어도 전근대 사회의 형편을 짐작하기에 쓸 만한 인덱스입니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대규모 시장이 존재할 때 어떤 유리한 결과가 생기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직업 전문화, 노동 생산성 상승, 생산비용 저하, 혁신에의 욕구 증가). 


저자의 평소 경향 답게 맬서스의 음산하고 운수 불길한 예언을 언급하며 살짝 비판하지만, 동시에 그 기분 나쁜 예언이 실현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해서도 학자다운 제언을 곁들입니다. 이어 저자는 이 책의 한국어판 번역 제목이기도 한 "지리, 기술, 제도(制度. system)"가 이 책에서 어떤 분석 도구나 프레임, 혹은 개념으로 쓰이는지 설명합니다. 이 3요소의 상호작용에 대해 p50에 도해화가 되어 있습니다. 3요소의 세부 분석 대목은 우리가 중고교 과정에서 대체로 배웠던 상식적인 내용들이 환기되는 정도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시대의 3대 이슈"라 하여 저자가 염두에 두었던 사항들이 짧게 언급됩니다. 첫째 번영, 포용, 환경지속가능성이 선택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다극화 시대 글로벌 행정을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 셋째 글로벌 평화가 과연 가능하겠으며, 어떻게 가능하겠는지의 문제입니다. 여튼 저자는 이 3대 문제 의식을 갖고 이 긴 책에서의 논의를 전개하겠다는 뜻입니다. 


구석기 시대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아메린디언들의 인구 수에 "야생 말의 멸종(기후 요인에 의한)"이 어떻게 타격을 주었는지 환기합니다. 이 무렵에 발생한 취약점을 끝내 극복 못 했기에 15세기 유럽인들의 대거 침입 시 이 문명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멸망에 이르렀다는 건데 물론 저자의 의견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 현생 인류는 데니소바, 네안데르탈 인을 끝내 절멸으로 몰아넣었으나 심지어 현재 우리들도 그들 유전자의 일부를 여전히 지니고 있음도 독자에게 일깨웁니다. 역시 우리 독자들도 상식으로 아는 내용이죠.


이 책 앞부분에서 저자는 기후 인자의 결정이라 할 만한 영향력에 대해 잠시 강조했었는데, 제3장에서는 신석기 시대 농업혁명에서 다시 한 번 상세히 언급하며, 특히 문명의 발달은 "행운의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는 바 있다고 합니다. 물론 과거로 거슬러올라갈수록 사람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늘어나고, 그런 부분을 뭉뚱그려 "행운"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밖에 없죠. 이 "행운의 위도" 개념은 책 중후반부 4장, 5장에 걸쳐 계속 강조됩니다. 


저자는 특히 이 책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통칭하는 개념인 "유라시아"를 자주 사용합니다. 물론 우리도 다 아는 바이지만 저자의 의도는 좀 다른 데 있는 듯합니다. 이 거대한 땅덩이가 애초에 하나로 연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대륙으로 가르는 게 오히려 인위적인데, 이 개념을 저자가 자주 쓰는 이유는 전혀 별개로 보이는 두 대륙이, 우리 선입견보다는 서로 영향과 도움을 주고받은 바가 많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여튼 저자는 이른바 농업을 위해 순치된 동물, 즉 역축(役畜)의 대거 번식이 주로 유라시아,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이뤄졌음을 강조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하라로 가로막힌 아프리카의 북과 남은 같은 대륙이면서도 별 공통점이 없이 각자의 호흡대로 발전했죠. 


여튼 앞선 시대에 유럽이 아시아로부터 화를 입은 건 첫째 아틸라 등 훈 족의 침공(물론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분분하지만), 둘째 주치, 바투의 킵차크 한국 혹은 골든 호드의 정복 등이 있겠습니다. 이 병화(兵禍)는 둘 다 기병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한 이들이 그 주체였죠. 이에 곁들여 저자는 사막 지대에서 중요한 노릇을 한 낙타나 말에 버금가는 당나귀 등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합니다. 허나 이 4장에서 무엇보다 크게 강조되는 건 "말"의 힘입니다. 유라시아 최초의 기마 사회에 대해 저자는 "코카서스인과 동유럽에서 온 수렵채집자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얌나야 부족"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오늘날 유럽 인구는 이 얌나야 부족과, 아나톨리아 인들(물론 현재의 터키인들과는 크게 다른)이 혼합되어 형성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합니다. 얌나야 인들이 후대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인도 유럽 어족"의 형성입니다. 


p128에는 "21세기(sic.) 독일의 역사가 겸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라는 개념으로 고전 시대를 정의했다고 나옵니다. 야스퍼스는 우리가 다 잘 아는 대로 20세기의 그 철학자이며, 몇 년 전에 캐런 암스트롱이라는 저자가 이 "축의 시대" 개념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를 펴낸 적이 있었죠. 사실 어느 나라, 지명의 유래를 살펴 보면 흥미롭게도 "색깔"에서 비롯한 게 꽤 되는데 브라질은 나무와 그 색상이 어원이며 페니키아도 (비록 exonym이긴 하나) 보라색이 기원이라고 역주에서 밝혀 줍니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틀어 "3대" 규정을 즐겨 쓰는데 여기서는 고대 3대 제국으로 로마, 파르티아, 한 제국 셋을 꼽네요. p146에서 통시적으로 알렉산더, 로마, 우마야드, 몽골, 오스만, 티무르 제국을 비교하며 기후지대에 따른 인구 비율을 소개합니다. A, B, C, D, H 등은 쾨펜-가이거 구분체계(고교 지리 시간에 배웠죠)라고 앞 p56에 이미 나왔더랬으며, p146의 저 표를 p69의 표와 대조하여 살피는 것도 독자들에게 유익하겠습니다. 


애덤 스미스 역시 중화제국의 풍요로움에 대해 적절히 평가하지만 "최근(그의 시대 기준) 발전이 정체되었음(p164)"을 지적하고 이는 비슷한 시기 독일 철학자 헤겔도 말한 바 있죠. 이에 대해 저자는 "중국이 해양 무역을 중단하여 외부로부터의 선진 기술 흡수가 어려웠음"으로 분석합니다. 중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폐쇄적입니다. 이 책에서는 1978년에 비로소 대외 개방을 시작한 걸로 평가합니다. 이어 대항해시대, 유럽의 지식 혁명 등이 서술되는데, 외국에서 고려의 금속활자 발명을 높이 치지 않는 이유도 "대체 그로 인해 무엇이 바뀌었나?"를 더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유럽 역사는 구텐베르크가 실제로 많이 바꿔 놓았죠. 이어서 책은 제국주의의 대두, 유럽에서 빈발했던 전쟁에 대해 길세 서술합니다. 


p201에서 애덤 스미스가 다시 인용되는데 이 대목은 "공평한 구경꾼(impartial spectator)"을 자처하며 유럽인들이 "발견"한 "신"대륙에서 원주민들이 겪은 부당하고 처참한 대우를 지적하는 <국부론>의 구절들이 두 페이지 가깝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저자는 "세력의 재균형이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꿈꾼 스미스에 대해 전폭적으로 찬동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것을 이 책의 핵심 주제로 봐도 될 듯합니다. 


p221에서 저자는 경제학 교과서들 경기순환론 파트에서 필수로 다루는 (초장기) 콘트라티예프 웨이브를 다루는데 베테랑 역자인 이종인 선생은 구태여 파동이 아닌 "파도"로 번역했습니다. p224에 특히 예쁜 그래프가 나와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이노베이션이 이노베이션을 낳는다"는 진리는 구태여 그 창안자인 슘페터의 논거가 아니라 해도 이미 우리가 가까운 역사에서, 또 주변의 현실에서 거듭 그 실증을 확인하는 바입니다. 이 부분에서부터 저자는 "나라 간의 격차"와 "아시아인들의 대응 전략"을 슬슬 언급합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분화의 시대에서 집중의 시대로의 전환"을 언급하는데 이 뜻은 "후발 국가들이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혀 나가는 시대(p256)"로 설명되네요. 1차 대전의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이 결국 파시즘과 나치의 발호, 또 2차 대전을 불렀는데 저자는 이미 당시에 (저자 자신과 학문적 궤, 세계관을 함께하는) 케인즈가 모두의 공존 공영을 가져올 처방을 이미 제시했다면서 그의 혜안(p248)을 칭송합니다. 


이 책에서 규정하는 제7의 세계화 동력은 디지털 혁명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도 체감하지만, 세상은 이를 기점으로 더욱 심하게 빈부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저자는 중국의 급속한 기술 발전을 칭찬하며 결국 미국 정부가 화웨이의 안보위협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안보 위협은 그것을 악용하려는 권한 있는 자가 구체적으로 위협을 실행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증명할 수가 없죠. 여튼 벤처 자본 투자에서 중국의 그것은 EU를 앞지른지 오래되었다고 책에서 또 지적합니다. 그 결과도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중이고 말이죠.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미 그의 전작 <빈곤의 종말>에서 강조했던 양극화의 해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환경 아젠다 등을 다시 강조하고, 경제, 사회, 환경 아젠다를 각각 8, 3, 5개 제시합니다. 책 말미에는 본문 내용의 이해를 도울 컬러 지도가 많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독자들에게 유익할 듯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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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교육에 대한 10가지 환상 -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에 맞서기
쿠보타 류코.지영은 지음, 손정혜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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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영어 교육에 대해 골머리를 앓는 건 사정이 비슷한 듯합니다.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울 때에는 딱히 신택스나 문법 면에서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영어에 대해서는 사정이 크게 다릅니다. 어족 자체가 완전히 계보를 달리하므로 영어를 한국인이 어렵게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한편으로 일본인들은, 기본 모음 체계가 한국어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가나 역시 한글보다 융통성이 떨어지는 문자이므로 영어를 배울 때 우리보다 더 힘든 면이 있지 않겠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한국인 영어교육 전문가 한 분과, 일본인인 영어교육학 교수님 한 분이 공저하신, 동아시아의 영어 교육 실태를 점검하고 반성하는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교육 전문가들이 일본의 영어 교육 실태를 통렬히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읽다 보면 우리 한국인들도 뜨끔해지는 면이 많습니다. 또 우리 독자들은 대부분, 영어를 교습하는 입장이 아니라 그 반대로 배우는 입장이지만, 영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어떤 잘못된 선입견을 잔뜩 갖고 있기에, 수요자 중심 시장에서 결국 교습자에게 잘못된 교습을 유도하기까지 하는 면이 다분함을 알게도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들도 이게 잘못된 줄을 알면서, 현장에서 배우는 사람들이 이러이러한 걸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맞추지 않겠습니까.


사실 요즘은 예컨대 프린스턴 大에서 나온 교재 같은, 어떤 표준적인 교과서로 불릴 만한 책에서도 "표준적인 영어"라는 관념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걸 보곤 합니다. 우리 한국이나 일본이나,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마치 존 F 케네디 같은 깔끔한 억양, 수준 높은 어휘 구사,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길 바라지, 인도라든가 필리핀, 혹은 할렘 가의 흑인 영어를 (아무리 유창하다고 해도) 말하는 걸 원치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현대 영어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들조차 어떤 표준 발음, 어법 같은 것을 이미 포기하는 추세입니다. 그것이 피진이라 해도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의의가 있으며 어떤 "리셉터블" 같은 걸 정해 놓고 나머지를 "비표준"이라 폄하하고 교정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영어는 또한 (교육 받은 사람들 기준에서는) 글말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건 일본어에서는 여전히 그러하며, 반대로 한국어는 최근 수십 년 동안 가독성이 없는 읽을거리는 퇴출되는 경향이 뚜렷하여 글말에서는 어떤 층위가 사라져 갑니다. 인터넷 사용자 백과 사전인 위키피디아를 보면 "심플 잉글리시"라는 Db가 마치 별개 언어처럼 따로 꾸려져 있는데 글말에서 영어가 (아직도) 뚜렷이 여러 층위를 지님을 증명하는 좋은 예입니다. 저자들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과연 19세기처럼 까다롭고 문어적인 글말 쓰기를 아직도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유학 전문 기관, 혹은 토플 강의에서 어떤 스타일을 수험생, 학생들에게 가르치는지 한번 보십시오. 또 텝스나 심지어 수능 영어 지문이라고 해도 까다롭고 현학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p45 등에서 일본인들이 어려워하는 th 발음의 예를 들며, 이것의 무성음이든 유성음이든 간에 [s] 혹은 [z[, [d] 등으로 잘못 발음하여도 일상 회화에서 맥락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알아 듣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런데 이는 일본인들에 한정된 사정에 가까우며, 한국인이라면 적어도 [θ]과 [ð]을 조음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world, wood, turtle 같은 발음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정확히 내질 못합니다. 사실 milk, egg, film 등 아주 기초적인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식으로 우드, 밀크, 월드, 엑, 터틀 이러면 미국인들이 전혀 못 알아 듣습니다. 


만약에 어느 한국인 학부형이 어린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고자 할 때, 미국 출신 백인이며 최종 학력은 고졸 정도인데 평균적인 한국인이 들었을 때 그 발음이 완벽한 사람과, 인도나 필리핀 현지에서 최고 명문대 영어교육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발음은 그저 인도인, 필리핀 사람 같이 들릴 때, 둘 중 누구를 고용할까요? 전 아마 99% 이상이 전자를 고용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만큼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마 일본인 학부형들도, 원어민처럼 깔끔한 발음을 구사하는 걸 영어 능력의 99% 이상으로 여길 겁니다. 어차피 문법적으로 혹은 어휘 면에서 얼마나 뛰어난 영어를 말하거나 쓸 줄 아는지는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인영어능력시험, 가령 토익 같은 게 990점이라 해도 발음이 나쁘다면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뭐 토익 같은 거야 고득점 내는 요령만 있으면 다들 갖추는 스펙에 불과하지"라며 가당치 않은 합리화까지 시도하며 말입니다. 


저자는 과연 원어민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를 반성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한국어는 제대로 못하면서 어려서부터 오로지 미국식 영어만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 한국 교포도, 한국인들이 그를 과연 "원어민"의 범주에 넣을 지 의문입니다. 국적도 미국이고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뿐이라면 어떤 언어학적 정의에 의해서도 그는 원어민인데도 말이죠. 이처럼 일본인들이나 우리나 "영어 교습 자격", "무엇이 진정한 영어실력인지", "원어민이란 누굴 가리키는지" 나아가 내 자녀에게 "누가 과연 바람직하고 정확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지"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배우는 사람들(혹은 그의 학부모들)의 인식이 이러하니, 제도권 공교육 나아가 사교육이 무슨 재주를 피워도 일본인 혹은 한국인의 영어 실력이 늘지를 않는 것입니다. 두 나라 다 영어 교육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고 지출 비용도 크며 생활 수준도 세계적 레벨이건만 말입니다. 


대략 십 년 전에 인도와 한국이 CEPA를 체결했을 때 인도의 유능한 영어 교육 인력들이 한국에 대거 들어와 교육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 예상하는 미디어가 많았습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 주변에 피부 검은 인디아 출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영어 교습하는 풍경이 과연 얼마나 자주 눈에 띌까요? 책에서는 "인종이 체질적, 생리적 특징이 아닌 사회적으로 결정되며, 영어 원어민이라 하면 무조건 백인"이라는 고정 관념이 가히 철석 같다"고 비판합니다. 사실 서울의 서초구 같은 좋은 학군의 중고등학교들에서도 자질 없는 백인 교사가 엉터리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학부형들부터가 빼어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자녀 교육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는 학군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게 사실은 일본인들이나 우리나 뿌리 깊은 인종차별 의식을 갖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책에서는 마이크로어그레션(p87) 또는 포스트식민주의 등 인문적 담론 도구까지 동원하며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합니다. 특히 일본은 20세기 전반 식민 제국의 지배자 입장이었지만 우리는 피지배의 쓰라린 경험까지 갖고 있기에 이런 분석이 더욱 효과를 발휘할 듯합니다. 


1980년대 초중반 일본의 무역 흑자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미국의 이른바 "재팬 배싱(bashing)"이 커졌는데 이 때문에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레이건 대통령에게 "전액 일본 부담으로" 미국의 청년들을 일본의 직장에 고용시켜 일본 사회에 대한 편견(?)을 일소하려는 정책까지 폈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정도면 과거 동아시아 세계를 지배한 조공 체제를 연상시킬 정도입니다. 이때 일본 당국의 영어 목표가 "일상에서의 의사 소통 능력 배양"을 최우선순위로 삼았다는데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공교롭게도 한국 역시 이 무렵 "회화 중심"으로 목표를 전환하였는데 그 결과는 30년이 지난 지금 회화 능력은 그것대로 여전히 유의미하게 개선되지 않고 문해력은 문해력대로 저하했습니다. 문해력은 오히려 그 앞세대보다 더 못합니다. 


이 무렵은 "일본인이란 과연 누구이며, 미국인들의 언어 구사 방식은 일본인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그 나름 치열한 고민이 이뤄진 시기였나 봅니다. 일본인의 화법과 언어는 직설적이지 않고 에둘러말하는 게 지배적이며, 미국인의 글쓰기는 직설적이고 (구조가) 직선적이다" 등등.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성급하고 졸속적인 결론은 오히려 섣부른 인종주의적 편견만 양산했으며 대체 이상적인 글쓰기에 일본적 특성과 미국식의 스테레오타입 같은 게 어디 있으며, 설령 있다 한들 어린 세대를 그에 맞춰 교육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되묻습니다. 저자는 나아가 "영어실력 증가 = 연봉 증가"같은 피상적인 등식이나, 영어실력의 향상이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자기계발이라는 게 모두 신자유주의가 이식한 환상이라고 비판합니다. 또 만약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취업 기회 확대,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면, 어떤 획일적 표준에 대한 집착과 환상을 깨고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라고 충고합니다. 


영어 공부는 무조건 어려서부터 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업의 질, 수업 시간, 아이의 집중도 등이 훨씬 영향이 크다고 하며, 혹시 아이가 지능이 아니라 어떤 심리적 이유로 외국어를 배우기 꺼려하지는 않는지도 살펴 봐야 한다고 하네요. 또 외국어 학습과 모어 학습은 함께 진행될 수 있으니 구태여 순위를 두지 말라고도 합니다. 또 영어 수업을 반드시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경우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융통성 있게 찾아가는 게 오히려 중요하다고 합니다. 고집스럽게 영어 전용 수업만 고집하다가 영어 기초 단어도 못 배우고 공포심만 잔뜩 는 채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영어는 대체  뭣 때문에 배우는 걸까요? 일상에서의 의사소통이라 답한다면 이 역시 비효율적인 편견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취미 생활을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데 그에게는 이게 가장 만족을 극대화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일처리를 위해 영어를 배우는데 이것은 회화 교육을 통해 해결될 것이 아닙니다. 그에 알맞은 다른 코스를 밟아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책에서는 심지어 "고달픈 현실 도피"를 위해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의 예도 소개되는데 이 역시 극소수이긴 하겠으나 당사자에게는 필요하겠으므로 무작정 말릴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텝스 고득점자가 교도소 재소자 중에서 나온 예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획일적인 커리큘럼의 강요가 최악이라는 걸 모두가 빨리 깨닫는 것입니다. 


역자 손정혜씨는 맺음말에서 "수십 년 전 소설가 복거일씨가 영어 공용어 지정을 주장한 걸 기억하는가?"라고 독자에게 묻습니다. 영어기 세계화 시대의 무기라는 관점을 이처럼 잘 반영한 주장도 없겠는데, 지금 누가 이런 주장을 하면 아마 그때처럼 반향이 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영어를 우리말처럼 유창하게 하는 능력은 누구나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잘 사는 방법, 무기, 수단이 꼭 영어에만 있지 않다는 걸 이제 우리도 세상을 겪어 보고 다 압니다. 그보다는 각자의 상황에 맞춰, 영어가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다양한 방법을 여럿 찾아 개발하여 여러 사람을 그에 알맞게 돕는 게 훨씬 바람직할 것입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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