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리포트 - 탈코르셋부터 소수자 차별 금지까지, 기자 4인이 추적한 우리사회 변화의 현장들
김아영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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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어느 영화 제작자의 성추문 폭로를 시작으로 세계를 휩쓴 미투 열풍은 이 땅에도 페미니즘에 대해 전면적인 재정립과 성찰의 계기를 가져 왔습니다. 이 책은 지난 5년 간 국내에서 전개된 페미니즘 트렌드와 활동상에 대한 리뷰를 담았는데, 말미인 제4장에는 (제목은 "페미니즘 리포트"이지만) 성소수자 문제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p35에는 여자배구 경기에 선수들이 착용해야 하는 유니폼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저는 남성이고, 배구팬을 자처합니다만 객관적으로 봐서 여성경기 유니폼, 특히 하의가 매우 짧은 편인 건 맞습니다. 농구의 경우 1990년대 중반에 타이트한 의상 착용을 검토했었으나 반대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던 적도 있죠. 개인적으로 여성 배구리그를 보면서 그 유니폼을 통해 어떤 성적인 연상을 한 적은 솔직히 없습니다. 여자배구는 멋진 수비와 오래 지속되는 랠리, 감독들이 구사하는 전술의 묘미가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타 국가(특히 일본) 유니폼에 비해 여성 상의는 타이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대로 하의가 짧은 건 맞습니다. 


집필자는 책에서 "경기력과 관련이 있다면 왜 남자 선수들은 이렇게 입지 않는가?"라고 묻습니다. 1980년대 복싱 경기를 재방송으로 보면 남자 선수들(당시에는 여성 복싱 경기가 없었으므로)이 팬티처럼 짧은 트렁크를 착용합니다. 더 이전 시기 남자 농구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팬들의 항의가 받아들여져 작년겨울~올해봄 여배 시즌에서는 어느 정도 규정이 수정되었다고 전합니다. 


노브라 운동 역시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렀습니다. "대안"의 등장은 언제나 어디서나 중요한데, 구태여 페미니즘 시각으로 이 움직임을 볼 게 아니라 입기 싫은 사람한테 그럴 자유도 줄 필요가 있죠. 이런 이들을 겨냥한 언더웨어 상품도 출시되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미투보다 훨씬 앞선 시점 프랑스에서는 너무 마른 모델들을 특히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들 해서 퇴출시키는 운동, 나아가 법제화(...) 움직임까지 있었습니다. 현재는 더 다양한 체형을 지닌 모델들이 활동하는 듯도 보입니다. "여성의 몸은 결코 균질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p65)" 어떻게 보면 꼭 이념적 캠페인의 결과가 아니라, 패션계가 자기 이익의 논리에 맞춰 다양한 여성을 겨냥하는 식으로 전략을 (늦게) 수정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획일적인 몸을 강조한 게 오히려 이상하죠. 책에서는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이 경향을 요약합니다. 


사실 보행에도 위험한 하이힐을 잘 신고 다니는 여성들을 보면 자주는 아니라도 새삼 놀라울 때가 있습니다. 영화 <스위치>를 보면 외형은 여성인데 남자의 영혼이 들어온 주인공이 하이힐 신고 걸어다니라 엄청 고생하는 장면이 있죠. 일본에서는 "쿠투" 운동이 한창이라는데 대체로 여성에게 더 많은 억압이 들어오는 사회 분위기로 알려진 그 나라에서 이런 운동을 펴는 여성들이 참으로 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p74에는 "탈코르셋" 운동의 지향점에 대해 운동뚱으로 알려진 어느 셀럽의 예를 통해 조명하는 꼭지글이 있습니다. 이 대목은 특히 "탈코"에 대해 거부감이 많다고 하는 젊은 남성들이 한번 읽고 자신과 입장이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취지에서 접근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꼭 설득을 당하라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그들이 여태 접했을 어떤 극단적인 표현이나 주장이 적습니다. 의견의 다툼이 있을 때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면 서로 의견의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없어집니다. 


2장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리포트가 나오는데 참 외국도 아니고 우리 나라에 이런 사건들이 다 있었나 싶을 만큼 충격적입니다. "처벌이 면죄부가 되는 아이러니" 원래는 면죄부라 함은 처벌을 안 해 주는 것이니 약간은 논리적 문제가 있습니다만, 물론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들쭉날쭉 구형, 선고", "높은 재발률", "여전히 후진적인 의식" 등을 지적하고자 함이겠습니다. 본래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봐도 어떤 범죄나 처벌이 그저 만능은 아닙니다. 사형제가 유지되는 나라가 범죄율이 낮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디지털 성범죄(혹은 그 외의 성범죄라 해도)에 대해 형량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학교 등에서 이것이 얼마나 타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지를 경각심 함양과 함께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게 중요합니다. 남성 우월주의 같은 게 혹시 있다면 이 역시 바로잡아야 맞겠지요.


"자신이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게 뭐가 문제일까?(p140)" 정말 그렇습니다. 이에는 아마 여성들의 근로 능력과 효율이 남성의 그것보다 떨어진다고 여기는 잘못된 편견이 크게 작용했을 듯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성과의 발휘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며 같은 남성 그룹 내부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레 여성이라고 가치를 미리부터 평가절하하고 들어가는 건 오히려 해당 조직 관리직의 고과업무 해태라고 봐야 하겠죠. 왜 여성의 노동은 미리부터 "그림자" 취급을 당하나? 같은 항변도 있습니다. "그림자 노동"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점은 없는지 학계에서도 검토가 필요하겠네요. 


"트랜스젠더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는데 외래어라서 없는 게 아니었다. 게이, 레즈비언 등은 버젓이 등재되었었다.(p174)" 글쎄 사용 빈도로만 보면 뒤 두 단어에 미치지 못할 바 없을 것 같은데 왜 누락되었을까요? 게이나 레즈비언이 받곤 하는 혐오보다 더 심하게 기피되는 대상(이자 단어)이라서 그럴까요?(이런 좋지 못한 말을 사전에까지 실을 수는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어느 나라나 법원만큼 보수적인 곳은 없는데 놀랍게도 수술을 통한 성별 정정을 한국 법원은 일찍부터 인정했습니다. 사전이 사법부보다 더 보수적이라니 좀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필자 중 한 분(한고은 기자)은 "몇 년 전에는 '당신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궁금해했다"고 말합니다(p119). 독자인 저에게는 그 당시 필자 자신도 확신은 없었다는 말로 읽혔습니다. 이제 그는 "나도 페미니스트구나!"라고 생각을 정리했으며, 그때의 뜻은 "내가 내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방해되는 것들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은 워낙 복잡다기하여 무엇이 궁극적인 지향이고 무엇이 그 범주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 아직 합의된 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페미니즘 운동의 성패는, 상식을 갖춘 남성들의 많은 협조가 있어야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이미 많은 남성들은, 저렇게 올바른 명분, 또 구체적인 활동에 얼마든지 동의하고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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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로 했다 - 스타트업을 꿈꾸는 MZ들에게 아이돌 출신 스타트업 CEO가 말하는 창업 노하우
노영태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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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해 보며 사는 것도 멋진 인생 같습니다. 자신의 재능이나 적성에 대해서도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자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아 이 전공이 나하고 잘 맞지 않는구나 하고 느꼈다(p19)고 합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은데 아무 문제 없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그 대학에서 운영하는 커리큘럼이 전혀 낯설어 보이고 졸업 후의 진로 역시 막막해서 도중에 그만두고 다른 길을 택한다든가 하는... 


취업 준비, 학점 관리, 자격증 취득 등 남들이 살벌하게 자신의 장래에 필요한 스펙을 갖춰 나갈 때 고작 UCC 활동을 하는 자신을 한심하게 보는 이들도 주위에 많았다고 합니다(p26). 그러나 그때 열중했던 UCC 활동은 이후 저자가 자신만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큰 밑받침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책을 읽어 보면 마케팅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의 작품이 많은데 이 책 저자님 역시 p33에 잘 나오듯 광고 쪽에 일가견이 있었던 분입니다. 광고의 감각이란 건 일단 젊은 시절 젊은이들이 해 보고 싶은 걸 다 해 보고 놀아 봤다면 어디서 놀아 본 경력 빠지지 않는, 감각적으로 뛰어난 이들이 갖추는 건데, 확실히 감성으로 승부하는 요즘은 이런 경험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영역 불문하고 말입니다. 


메세나 프로젝트라는 게 있죠. 아무래도 프로젝트의 성격상 공익 요소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저자는 이 포인트를 정확히 짚고 여기서 큰 상을 받았는데 창업한 지 불과 2년만에 받은 상이며 쾌거였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저자는 중국의 가장 큰 쇼핑 시즌인 "광곤절" 행사에 참여하여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둡니다. 여기서 저자는 귀한 교훈을 얻는데 "나 자신의 한계를 내가 먼저 그으면 결국 성장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p66)"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길성이 형이라는 분 도움을 크게 받았다며 감사의 뜻을 표하는데 이 이야기는 책 저 뒤 p139에 또 나옵니다. 


아무리 감각이 중요하다고 해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과 제도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협상 과정에서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사실 어음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까지 나오는 판인데, 저자는 위험하게도 대금을 전자 어음으로 받겠다고 해 버린 것입니다. 앞에 "전자"가 붙어도 어음은 어음이라서, 계약상의 乙의 위치에 있는 자는 어음 때문에 골치를 썩일 수밖에 없죠. p81에는 이제 보증보험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어 돈 떼일 걱정 없이 "너무나도 편안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BTS 글로벌 옥외광고, 2019 대학가요제, D사의 워커힐 파티 등등 저자분이 기획한 행사의 컬러 사진들이 pp.98~102에 나오는데 확실히 텍스트로 이러이러한 굵직한 행사를 책임졌다고 말로만 접하는 것보다, 이런 멋진 사진들과 함께 보는 게 이해도 빠르고, 이분이 한 일이 구체적으로 뭐였겠다라는 느낌이 팍팍 지면을 넘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p111 이하에는 광고 입찰 노하우가 나옵니다. 사실 이 책을 골라 읽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순전히 실용적 관점에서 이런 정보들이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인터뷰를 할 때 광고주가 대체 무슨 목적을 갖고 이걸 발주하려는 것인가, 이 점을 정확히 캐치해야 한다는 거죠. 광고주 입장에서도요, 인터뷰를 통해 꼼꼼하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회사라야 아 이 젊은이들이 책임감 갖고 일을 하는구나, 이런 안심을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역시 사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소통입니다. 열심히 일만 하면 뭐하겠습니까. 광고주가 원했던 건 전혀 다른 것이어서 헛다리를 짚었다면 아무 소용 없죠. 


배민도 세계 유수의 회사에게 인수되면서 그 창업자의 성공 드라마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 저자분도 결국 자신의 회사가 상장회사와 멋진 결합을 이루면서 그 여정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합니다(아직 젊은 분이긴 하지만). 우리는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서 그저 상장기업이라고 하면 그게 뭐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저자분은 겸허하고 솔직하게 "아, 상장기업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며 감탄을 표현합니다. 작은 성공이라도 내 손으로 직접 해 보려면 이처럼 이루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회사 대표는 돈 버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건 대표이사의 본분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지요.(p178)" 


직원들에게도 칭찬을 해 줘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나는 항상 긍정의 인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작은 것에 집착하다 보니 부정적인 인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우리 자신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중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함께 반성할 일입니다. "지금부터 결정은 내가 한다. 나의 삶의 CEO는 바로 나다." 이 한 마디만 깊이 새기고 실천해도 바로 내일의 태양부터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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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하나 옮김 / 코너스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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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인정 받고, 올곧고 무리 없는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또 그렇게 살아온 모습이 자신의 외모로 드러나길 원합니다. 이 고전도 서두는 "그 남자"의 사진 여러 장을 둘러보는 주인공 화자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그 남자"의 얼굴을 평하면서 이런저런 느낌을 털어 놓습니다. 사실 이런 느낌은 "그 남자"의 어떤 객관적인 면모를 반영한다기보다, 결국 그런 느낌을 받고 털어 놓고 싶어하는 자기 자신의 관점, 세계관, 느낌, 처지 등에 대한 고백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몇 곱절은 난해한 존재였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이 사람처럼 기괴한 내면을 자아 안에 감추고, 또 그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이라며 은근 프라이드까지 간간이 드러내는 사람으로서는 여성이란 정말로 이해 못 할 난제였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사회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성공적으로(여러 기준이 있겠으나) 마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공통점을 찾자면, 그들은 대체로 여성들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점입니다. 여성을 잘 다루고, 여성에게서 공감을 많이 받는 상사람이 대개 자기 만족도까지도 높습니다. 그 반대가 바로 이 주인공 같은 인간, 아주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 친누나라고 생각해" "그럴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을 겁니다. 좀 뒤로 가서 p75에 보면 시부타의 숨겨 둔 자식으로 어느 점원 아이가 나오는데, 주인공은 바로 이 아이한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느낀 것입니다. "제게 차가운 의지를 주시옵소서." 하고많은 소원 다 놔두고 구태여 이런 걸 신에게 비는 어린이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요? 이런 소원을, 어렸을 때 비는 아이일수록 정말로 커서 그런 사람이 되는 경향이 많더라구요. 이는 신이 그의 소원을 들어줘서라기보다(모르는 일이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성장 과정 내내 그 아이한테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들 성경을 잘못 읽은 거야. 그게 아니라면 상식도 지혜도 없는 거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담배는? 주사는? 약은? 이런 명사들은 비극일까요 아니면 희극일까요? 어떤 맥락에서 보느냐로 결론이 크게 달라짐은 자명합니다. "지금도 폐결핵인데, 균을 술로 죽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한때나마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는 큰 착각이었고, 지금은 코로나라는 새로운 강적을 맞아 백신도 마음 못 놓고 맞는 고충이 있습니다. 균을 술로 죽인다니, 완전히 삶을 포기한 인생이라야 이런 자가당착 합리화를 시도할 수 있겠지요. 


"이제 내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냥 지나갑니다." 어쩌면 안일과 퇴폐와 무기력의 극한을 달려야 이런 표백이 가능할 듯도 합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고, 혹은 환희에 가득차게하고, 때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성격의 결함을 완전히 잊게 할 수 있는 체험은 어떤 것일까요? 이런 것만 절묘히 추출할 수 있어도 어차피 고해라는 인생 크게 마음 쓰며 시간을 지낼 일은 없을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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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신감 - AI와 코로나19에 녹다운된 나약한 우리를 위한 비장의 무기
임채엽 지음 / 라온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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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을 넘어[超] 초 자신감을 가지라는 충고, 아직 자신감도 채 갖지 못한 독자에겐 약간 무리일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그래도 책을 넘기면서 꼼꼼히 읽어 봤습니다. 오히려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한테 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내용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자신감을 가진 사람보다도 말입니다.


"나는 ~인 줄 알았다." 이 말은, 물론 아무것도 아직 못 갖춘 이들에게는 처음으로 소속감이나 정체성을 마련해 주겠지만, 나는 이 정도가 고작이라고 여겨 온 이들에게는 오히려 가능성을 가두는 규정이기도 합니다. 바꿔 말하면 "나는 이 이상은 못한다" 정도. 그런데 이 규정, 이 테두리를 처음으로 깨 보는 쾌감은, 몸소 이걸 겪어 보고 성취해 본 사람이라야 그 가치를 실감합니다. 알고 보니 내가 ~이런 것도 더 할 수 있었다! 이런 껍질이 깨어지는 "유월"을 겪어 봐야, 사람은 능력치건 인격의 성숙도이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실직이다. 휴학이다, 이런 건 당사자에게 큰 불안감을 줍니다. 여기서 한 번 단절되면 영영 커리어를 못 이어가는 것 아닌가. 이런 감정을 떠나서, 어디에 계속 소속되어 있다가 그 소속이 해제되면, 특히 한국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는 영 낙오가 된 느낌밖에 안 들죠. 그런데 저자는 이를 역발상으로 활용하여, 지금까지 흐트러지거나 미처 챙기지 못한 자신을 추스리는 릴랙스의 기회로 삼으라고 합니다. 잘되는 사람은 이런 기회조차도 최상으로 활용하여 온전한 포텐을 일일이 더 실현시키는 시간이 된다는 거죠.


아무리 기술이 능숙해도 현장에서 전혀 여태 겪어 보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당황하는 게 당연합니다. 저자는 베테랑 건축사인데도 "아니, 이게 왜 이러지?" 같은 난감한 장애 요소를 시공 현장에서 자주 겪어 봤다고 합니다. 그럴 때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을 끝까지 패닉 상태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이를 능숙하게 극복하게 돕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나는 그 일을 정말 목숨 걸고 했을까?" 사람은 그저 자신이 해 오던 루틴에만 기댈 게 아니라,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최선을 다할 줄 아는 결기가 있어야 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서양 격언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건 내가 아무리 애 써 봐야 안 되는 일이라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되는 범위 안에서라도 다 해 본다는 각오로 일단 일을 마쳐야 합니다. 


"만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 이는 요절한 배우 제임스 딘의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왜 결과에만 그토록 집착하는 걸까요? 사람은 확실히 무엇을 해 내는 과정, 꼭 결과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해도 그 과정에서 내 능력의 한계도 넓혀 보고 주변의 인정도 얻어 내었다면 뭔가 마음이 뿌듯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근원적인 자신감도 확장하고, 내 일의 기술이나 통찰도 더 확장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자신감을 넘어선 초자신감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라고 이 책을 읽고나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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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의 덫
김명조 지음 / 문이당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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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 범죄를 저질러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이가 있고, 바로 연결되는 특별한 보상이 없는데도 사명감이 더 크게 작용해서 그런 범죄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소설 가상의 주인공 유진하 형사 같은 사람이 바로 후자의 좋은 예입니다. 


택시 기사란 참 어려운 직업입니다. 손님을 한번 태우면 쉼 없는 수다를 이어간다거나, 필요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한다거나 하는 이들도 있지만, 혹시 손님한테 방해가 될까봐 그냥 침묵만 지키는 이들도 있고, 손님의 비매너(무의식 중에 한 일일 수도 있고)에 대해 짜증 내지 않고 점잖게 충고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비매너, 즉 토사물을 실내, 시트에 묻힌다든가 하는 아주 난감한 일이 있어도 어느 정도 감내하고 적정 비용만 청구하는 분도 있죠. p64에서 그런 택시기사분이 한 사람 등장하는데 너무 술냄새, 혹은 다른 냄새가 진동을 하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한편으로, 결말까지 다 읽고 나면 이 역시 작은 암시가 되었다는 생각에 살짝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미현은 선효에게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씨는 사윗감으로 그가 영 마뜩지 않습니다. 몽둥이까지 휘둘렀다니 말 다한 셈입니다. 이 대목은 제가 읽으면서 과연 사건 전개, 앞선 미스테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의아하기도 했습니다만... 세상에는 아주 작은 단서, 혹은 예상치 못하게 벌여 놓은 일 하나가 커다란 나비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고 또 실제로 그대로 되는 일도 매우 잦습니다. 세상사가 그래서 재미있는 지도 모르죠.


예전 사극을 보면 상민들은 양반네 일을 돕고도 제때 삯을 못 받는다든가, 억울하게 값을 후려친다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고 나옵니다. 서양 법제사가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말로도 요약되지만, 요즘은 아무리 일을 시켜도 돈은 주고 계약을 종료하는 게 룰입니다. 진하가 진술을 받는 구자길 같은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한 일을 겪고 수모를 받아도 악착 같이 일을 해서, 말 그대로 개 같이 벌고 정승 같이 사는 게 해방 이후 한국인들의 모토였을지 모릅니다. 장 회장의 장례식장을 때려 부순 건 이런 기초적인 상식도 통하지 않는 지독한 인간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유진하는 "그래도 심했다"고 말하지만(공권력 집행자로서 당연한 반응이지만) 그래도 우리 독자들은 왠지 이런 사람에게 더 동정이 갑니다. 


신 부장은 말합니다. "나는 검사 이전에 시인의 시각으로 범죄를 살펴 보곤 해요." 시인의 시각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세상이 마땅히 갖춰야 할 질서가 있고 그에 따라 운행하지 않는 건 일단 의심의 눈길을 주고 보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검사로서 잔뼈가 굵은 그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유진하의 근성과 성실성, 집요함, 탁월한 "감" 등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동전화번호". 참 요즘은 귀에 설게 들리는 말입니다. 그냥 폰 번호라든가 번호라고만 해도 유선전화가 사무실 말고는 거의 없는 요즘 다 알아 듣죠. 예전에는 집 전화가 보통이고 "이동전화"를 드물게 소지했던 때라 저런 말이 널리 통했고 말입니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 사건은 그 해결을 향해 내리막길을 급하게 달려갑니다. 범인을 예상한 독자도 있을 테고 한 방 먹었다 싶은 독자도 있겠지만, 여튼 세상사는 매번 뻔하게 굴러가는 듯해도 때로 뜻밖의 지점에서 반전을 마련하는 법입니다. 결국 정의가 승리하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해서 좋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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