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레이첼 클라크 지음, 박미경 옮김 / 메이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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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영국의 공중보건의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완화의료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위한 진정성이 부족하다"며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저자는 (어디에서나 사정이 비슷하지만) 여건이 매우 열악한 "응급실 근무를 자처하며(책 앞날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도우며 살아 왔습니다. 이 역시 어느 나라나 사정이 비슷한데, 적지 않은 의료인들이 "의술은 인술(仁術)"이라는 명제와는 많이 어긋나게도 "환자를 사람이 아닌, 고쳐야 할 장기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개탄하며, 그 누구보다도 의료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에게 각별한 보호를 베푸는 호스피스 업무에 종사해 왔습니다. 병원이라는 뜻의 영단어인 호스피탈과, 지금 이 맥락에서의 "호스피스"는 서로 발음도 비슷하며 매우 닮은 겉모습입니다. 의료 서비스의 본원이 바로 "환대, 보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일반 시민이 병원에 혹시라도 가게 되면 기대할 법한 서비스의 본질이 바로 이 지점에 있으니 책은 어찌 보면 우리 독자 모두의 가장 첨예한 관심사 중 하나를 다루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 누구나 죽음을 피해갈 수 없으니 말입니다. 


특히 저자는 아버지, 생전에 그 누구보다도 깊은 감정적 유대를 지녔던 부친이 말년에 대장암으로 큰 고통을 겪었기에 이 호스피스 업무에 특별한 사명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부친께서는 어찌해서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독한 (화학) 항암제 처방을 견뎠습니다만 2017년에 안타깝게도 기어이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생전에 무척 음악을 사랑했던 아버지.... 유명한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괴테(의 고전들)를 영국인이 읽을 때에는 번역이 필요하지만, 베토벤의 걸작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저자는 아마도 환자나 죽음 직전의 사람들에 대한 보호와 치료 역시 같은 영역이 아닐까 암시하는 듯도 합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수험생 시절 그녀는 면접을 볼 때 "자 레이첼, 어떤 동기로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습니까?"라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무척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우리하고는 의학교육기관에의 입학 과정이 많이 달라서 그녀는 전직 방송국 직원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막상 방송국에 입사하고 보니 "일이 너무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아마 반대였을 겁니다(점수에 맞춰 의대에 들어오고 보니 공부가 너무 힘들어 방송국 일로 진로를 바꾼...."). 


의학 교육 분위기도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듯합니다. 임상에서 무엇이 환자에게 최상의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레이첼은 (선배 의대생, 전공의, 수련의도 아닌) 무려 교수한테 과감하게도 반대 의견을 수시로 표현합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당돌한 의대생에게 어떤 반응이 돌아왔겠습니까? 또 저자는 의대생 시절 자궁경부암이 의심되어 "치욕적인(p98)" 경험도 하게 됩니다(남성 전문의에게 검사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그녀는 젊은 나이에, 유난히 예민한 감수성 때문이었는지 그저 갑의 위치인 (미래의) 의사로서의 입장만 굳혀 가는 게 아니라 무력한 환자 입장에도 자주 서 보는 체험을 하게 된 듯합니다. 


심폐 소생술을 CPR이라 하죠. 일반인들도 의료 드라마, 혹은 그냥 일반 컨텐츠에서도 자주 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CPR을 두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잔인한 과정(p127)"이라며 아주 비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심정지에 빠진 이들 중 CPR을 통해 소생하는 이들은 1/5" 정도뿐이라고 하며, 의사들 역시 뻔히 알면서 정면 논의를 회피하는 이슈라고 말합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멋진 모습은 거의 과장이거나 환상에 가깝다고 하네요. 


천식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은 레일라라는 19세 소녀를 치료한 경험도 자세히 소개됩니다. "진짜 나는 의사들이 미워요. 멍청한 환자 입장은 돌보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하잖아요?(p153)" 사실 소녀가 분노하는 건 의사들이라기보다 그들의 차갑고 냉정한 태도일 것입니다. 백혈병 재발 때문에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넘나든 앨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톰(이란 남성 환자)은 밤에 잠도 못 자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당시 저자는 그의 고통에 더 깊이 공감해 주지 못하고 그저 사무적으로 대했을 뿐입니다. 무엇이 과연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었을지 당시의 일을 저자는 다소 냉소적으로 회고(p187)합니다.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며 우리는 이런 진실을 그저 남의 사례에서나 합리적으로 이해할 뿐입니다. 


노인 사이먼과 그의 딸을 대할 때 저자는 더 성숙하고 더 공감 잘하는 의사였습니다. 사이먼은 의사들에게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환자였으며 이런 경우를 능란히 다루는, 그래서 그와 더 깊은 소통에 마침내 성공하는 저자의 변모를 지켜 보는 건 독자로서 또다른 재미입니다. 결국 환자는 의사한테 깊이 의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환자에 더 밀도 높게 공감하는 건 결국 의사의 능력이고 성취고 보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대장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방송국 일도 그녀는 처음에 오지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겠다는 의도에서 지원한 거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 현실은 크게 다달랐던 거죠. 이제 그녀는 아픈 사람을 돕기 위해 그 힘든 공부를 마치고 까탈스러운 환자들을 두루 겪고 자랑스러운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픈 아버지를,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만납니다. 이런 운명을 맞기 위해 그녀는 그 먼 길을 돌아온 것일까요? 인생은 참 얄궂습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닌 제3로서 접하는 이런 스토리는 언제나 또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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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
내털리 제너 지음, 김나연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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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해야 할 때 적절한 변화를 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결국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국면에서는 변화란 변화 그 자체로 긍정적이고 생산적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지, 작은 변화가 어떻게 일파만파 번져가며 조직이나 사회, 국가 안에서 엄청난 결과를 낳는지, 이런 과정은 많은 학자, CEO, 실무자들이 연구하는 주제입니다. 이 책은 "변화"라는 주제 하나에 엄청나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연관되며, 그런 이야기 속에서 얼마나 유익한 교훈을 우리가 캐치할 수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일어날 법하지 않은 변화, 예를 들면 1980년대말 철의 장막 붕괴, 2011년 아랍 세계를 휩쓸었던 민주화 바람, 이런 놀라운 변화의 배후에는 소셜 네트워크가 있었습니다. 동독을 위시한 공산권 붕괴에도,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인터넷을 통한 소셜 미디어는 없었지만, 대신 영향력 있는 소수의 움직임이 유발한 사회적 파동이 체제 변혁에 큰 몫을 했습니다. 책에서는 이 사건보다 훨씬 이전인 1950년대 미국에서 흑인 차별 철폐에 큰 영향을 끼친 로자 파크스 씨의 예를 들기도 합니다. 이들보다 덜 알려진 활동가 중에서도 위대한 이들이 많았으나,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소수입니다. 그 이유를 책에서는 소셜 네트워크의 위력 차이라고 짚습니다. 


산아 제한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한국에서 몇몇 마을을 대상으로 한 피임법의 확산은 피임법 자체로 보면 성공적이었지만, 마을마다 대세로 받아들인 피임법들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케냐에서는 이와는 패턴이 달라, 어느 마을에서는 성공한 반면 다른 곳에서는 전혀 수용되지를 않았습니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의 성공은 피임법 자체의 확산이 아니라, 피임법의 수용하는 태도의 확산이며 피임법의 효용이 아닌 지인들 사이에서의 승인이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피임법의 가치를 개인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친구, 이웃이 좋다고 하면 너도나도 따라하는 식이라는 건데 이는 한국에서 사실 아직도 보편적인 행태입니다. 1970년대에 한정된 게 아니라 말이죠. 대체로 교육을 잘 못 받은 축에서 이런 식으로 의사를 결정합니다. 냉철하게 이치를 따지는 게 아니라 단톡방에서 뭐가 대세다 싶으면 그대로 따라하는 등. 


네트워크의 질, 영향력 등을 따질 때 가교(bridge)의 길이와 폭 두 가지의 기준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좁은 가교는 약한 유대를 통해 정보를 빨리 전달한다. 넓은 가교는 강한 유대를 통해 사회 변화를 촉진한다(p149)" 즉 어떤 가교든, 각자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조직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그 조직 성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p152). 단순한 정보 공유에는 "좁은 가교"가 좋지만, 조직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에는 좁은 가교만으로 충분치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설득을 더 쉽게 하고, 나아가 변화를 유발하려면 "넓은 가교"가 필요하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넓은 가교는 "신뢰"를 얻기 쉽게 돕고,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어서, "협응(coordination)"을 더 광범위하게 촉진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네트워크 성패 여부의 키 팩터를 "협응"으로 본다고 독자인 저 개인적으로는 판단될 정도였습니다. 협응은 그저 법이 이러이러하게 강제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1967년 스웨덴은 D데이 H아워를 정하여 좌측통행을 우측통행으로 변경했습니다. 법은 그러하지만, 지금 애매한 시각에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운전자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고 했을 때, 나는 법을 고지식하게 지켜야 할까요, 아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큰 사고를 피하기 위해 융통성 있게 처신해야 할까요? 이런 문제는 사실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나빠서, 윤리적으로 타락해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나 혼자만 받을 수 있는 손해를 모면하려는 계산 심리의 발동은 마냥 비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걸 두고 책에서는 협응의 딜레마라고 부릅니다. 


위 문제에서 상대방 운전자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갈등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저 법을 지키려 들거나, 그 반대로 반사회 성향을 드러내며 대놓고 위법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게임 이론에서는 이런 걸 두고 "상대방 반응을 살펴 가며, 만약 배신의 징후가 나타나면 한 수 빠르게 내가 규칙을 어겨 응징하는 게 최상의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기도 합니다. 법을 어기라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해법을 내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입니다. 


책에서는 모든 협응 게임에 티핑 포인트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변화를 누가 주창할 때 처음에는 보수 성향이 발동하여 대다수가 그에 호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일정 시점부터는 대세가 바뀌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주류가 교체되는 것입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이처럼 사회 생활을 일종의 협응 게임으로 파악한 선구자라고 합니다. 책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미투 열풍에도 이 법칙을 적용시킵니다. 


어떻게 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며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까요? 책에서는 산탄총 전략이라는 걸 제시합니다. 이것이 바이럴 마케팅의 핵심이라고도 하는데(p269), 변화 촉진자 열 명 정도를 먼저 선정하여 소문을 퍼뜨리게 하고 나중에 "팬데믹"을 이룰 만큼 확산을 노리는 방식입니다. 책을 소수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고 좋은 평을 퍼뜨리게 하는 것도 다 이런 전략의 응용이겠습니다^^


이것은 역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소문이 널리 퍼지게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 혁신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면 이번에는 "그게 망했다더라" 같은 소문만 널리 퍼뜨리게 됩니다. 책에서는 이 여러 군데에서 구글글래스(웨어러블 디바이스), 구글플러스의 실패 사례를 거론합니다. 이런 실패 사례가 생기면 이후에 론칭하는 신상품의 앞날에까지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재미있는 건 요즘 소비자들은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놓고 "좋다, 나쁘다"의 평판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어떤 기업이 다른 기업과 특정 시장을 놓고 벌이는 싸움도 승패를 정해가며 추이를 관전한다는 겁니다. 기업은 소비자를 놓고 그 심리를 교묘히 조장하려 들지만, 소비자 역시 알고보면 그런 기업들의 심리를 꿰뚫고 갖고 놀려 든다는 거죠. 우리도 이런저런 커뮤니티에서 그런 품평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는 교과서에서 대체 에너지의 중요성을 계몽 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실제로 대체 에너지가 산업화의 단계까지 간다거나,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그 어떤 것이 대신하리라고까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당위로서 인식하기만 했죠. 하지만 지금은 유럽에서 풍력, 태양열 발전 등이 중요한 산업 섹터로 부상했고 이 시장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의 주가도 코스닥에서 춤을 춥니다. 또 길거리에는 테슬라 등 전기차 모델이 이제 얼마나 많이 다니고 있습니까. 책에서는 이런 혁신의 수용, 혹은 전염이 어떤 패턴과 경로로 퍼지는지 재미있게 분석합니다. 


여튼 우리는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묘수가 없나 하고 매일 골몰하며 고민합니다. 거창한 도덕적, 정치적 신념의 확산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가 널리 팔리게끔, 쓰이게끔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가며 윗선에 올리는 게 다 그의 일환입니다. 이 책에서는 변화의 확산을 위한 일곱 가지 전략을 마지막 챕터에서 제시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당장 내가 하는 일에 바로 효과를 내며 적용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가 지금 고민하는 일의 본질에 대해 더 잘 들여다 보고 더 근원적인 솔루션을 찾게 돕는 것 같기는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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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셰프 서유구의 과자 이야기 2 : 당전과·포과편 임원경제지 전통음식 복원 및 현대화 시리즈 9
서유구 외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외 옮김 / 자연경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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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국사 시간에, 조선 후기 실학자와 그의 저작을 공부할 때 꼭 한 번은 접하곤 하는 게 서유구라는 분이 쓴 <임원경제지>입니다. 이 책 제목은 반드시 암기해야 하는 사항에 속하죠.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저자님의 성함과 책 제목 정도만 알 뿐 무슨 소중한 내용이 들어있는지는 잘 모르기가 쉽습니다. 개탄스러운 일이죠. 이 책은 저 <임원경제지>의 연구를 통해 "전통 음식 복원 및 현대화"를 표방하며 나온 두번째 책입니다. 조상님들이 저술한 책 중에, 현대인들이 그 레시피를 공부하여 전통의 맛을 오늘에 다시 살릴 가능성이 이처럼 높고도 구체적일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제 주관적 느낌으로는 마치 <쥬라기 공원>에서 호박 중에 매몰된 모기의 피 중 공룡의 DNA를 추출하는 작업만큼이나 흥미롭습니다. 


서유구 저자께서 조선 후기 당시 이 대목을 서술한 동기도 정말 놀랍습니다. "왜 우리는 맛있는 과자를 먹을 때, 이처럼 귀하고 어려운 경로를 통해 높은 사람이나 접촉하고서야 진미를 간신히 만날 수 있는가?" 요즘이야 서민들도 단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염려 때문에 자제를 하는 편이지만, 당시에는 단 맛을 물씬 풍기는 이런 별미를 특권층이라야 맛볼 수 있었을 겁니다. 소수만 누리는 특권을 전 백성에게 두루 공유시키려는 정신이야말로 실학의 핵심 모토 아니겠습니까. 자랑스럽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또 그 귀한 레시피를 현대에 재현이 가능하다니, 맛도 맛이겠거니와 정말 보람되고도 색다른 체험이지 않겠습니까.


"찹쌀 즙, 전분 가루를 섞어 오래 달이는 제법(p83)" 이것은 당시 기준으로도 고급의 혀를 만족시키기 위해 "과학적으로" 고안되고 연구된 조리법이라고 합니다. 과학이나 세련된 조리법은 그저 현대인의 전유물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임원경제지>에 나온 저 구체적이고도 체계 있고 과학적이기까자 한 조리법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런 과자류는 화학적 첨가물이 없기에, 많이 먹어도 건강에 그닥 해롭지 않고, 손님에게 접대용으로 내어 놓으면 큰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고급 음식은 접대하는 측의 자랑과 긍지가 될 수 있죠.


이 책에서 정말 자주 나오는 단어가 "가수저라"입니다. 한자로 가차하여 저런 발음이며, 우리가 잘 아는 카스텔라를 가리킵니다. 사실 카스탤라는 해방 후에 비교적 손 쉽게 접할 수 있는 빵류였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매우 친숙한 기호식품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았겠으나 우리 나라처럼 카스텔라가 큰 환영을 받아 온 나라도 별로 없지 싶습니다. 지금은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을 거치며 선호도가 크게 감소했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이른 시기에 우리 조상들도,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카스텔라를 먹곤 했다는 점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시건방". 여기에서 시건은 곶감을 가리킵니다. 뭐, "시"라는 글자는 감을 가리키며, "건"은 건조한다는 그 뜻이니 쉽게 이해는 됩니다. 흔한 감 하나로 그런 과자류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우리 조상들의 독특한 지혜를 증명합니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 영향 때문에(p226) 남방 한계선이 올라가 사과 대신에 감을 재배한다는 풍기(경북) 지방의 현황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이런 뜻밖의 지점에서도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우리는 인식하고 조우하게 되네요. 


이 책은 참으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며, 구체적인 설명, 또 컬러 사진과 함께하는 분명한 레시피들이 유익합니다. 400페이지에 달할 만큼 분량도 많아서, 독자는 자기 입맛에 맞는 대로 골라 시도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조상들이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우리 특유의 미감을 만족시키게끔 고안한 과자 레시피, 너무도 흥미롭고 유익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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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 메시지보다 메신저에 끌리는 8가지 프레임
스티브 마틴.조지프 마크스 지음, 김윤재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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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떤 공방이 오갈 때, "메시지에 주목하지 않고 그 메신저를 공격하는 오류"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확실히, 어떤 명제나 주장의 당부를 따질 때 그 자체의 옳고 그름보다는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을 두고 공격하는 건 정정당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논점을 흐리는 결과를 낳으며, 애초에 논쟁을 시작한 이유까지도 불분명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공동체의 목표까지 그 달성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처럼 메신저와 관련한 오류에 자주 빠지는 건, 그만큼 인간 본성 속에 메시지보다는 메신저에 집착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자리한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책에서는 먼저 카산드라의 저주를 예로 듭니다. 카산드라는 호메로스의 고전시가나 신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으로서, 아무리 올바른 말을 해도 사람들이 이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예언자입니다. 책에서는 오히려 카산드라와 같은 외양, 출신 성분 등을 지닌 이라면 대중을 더욱 강하게 매혹할 텐데 정반대의 결과를 빚는 것에 대해 흥미로워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조건이 좋다고 해서 꼭 의도한 대로 효과가 나는 건 아니고,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하게 꼬여 있기도 하기에 중간에 어떤 스토리가 개입하느냐에 따라 반대 방향으로 흐름이 바뀌기도 하죠, 역으로, 메신저가 이러이러할 때 메시지가 이런 효과만 반드시 낸다고 하면, 이런 책이 사실 나올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메신저가 메시지에 미치는 함수관계가 꽤나 복잡하지만 그렇다고 랜덤은 아니기에, 이런 책을 읽고 우리 독자들이 공부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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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과 인목대비 - 역사야화소설
오영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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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기 2주차에 범우사르비아문고판 <계축일기, 인현왕후전>을 읽고 독후감을 쓴 적 있습니다. 그 두 작품은 서로 직접 연관이 없으나 궁중문학이라는 점, 작가가 여성으로 추측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습니다. 계축일기의 경우 아무리 폐주라고 하나 광해군을 "대전" 등으로 호칭하며 아무런 추가 존대가 없는 과감한 표현으로 일관하여 독자인 저는 흥미로웠습니다. 논자에 따라 저자를 인수대비 본인으로 추정하는 입장도 있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교과서나 대중서에서는 광해군이 폭군이라며 축출된 이유로 "폐모살제"를 듭니다. 재미있는 게, 인목대비는 유폐되었을망정 궁내에 머무른 상태였고 공식적으로 "폐비"된 적은 없다는 점입니다. 또 광해군은 즉위한지 얼마되지도 않아 저 유폐 조치를 단행했고 따라서 인목대비는 아주 긴 기간, 광해군 재위기 거의 전부를 유폐 상태로 보냈다는 점이죠. 여기에 대한 찬성, 반대 입장의 차이 때문에 동인의 분당이 한층 고착화되었고, 광해군은 자신을 지지하는 대북의 정인홍, 이이첨 등 소수에 기대어 정치를 이끌어가야 했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많은 옥사를 벌였고, 남인, 서인 등은 그저 파리목숨처럼 두려움에 떨었고, 이 때문에 코너에 몰린 서인 세력이 정변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점은 분명 폭군의 면모가 맞고 중종 반정의 발발 과정과도 무척 닮았습니다.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이, 욱일승천하여 중원을 넘보던 만주 세력의 무서움을 모르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옛 주인 명을 맹목적으로 섬기다 치욕을 당한 줄로만 우리는 압니다. 물론 위 문장은 그 자체로 틀린 구석이 없습니다. 그런데 광해군을 보좌하여 정치를 주도하던 파벌인 대북 역시, 놀랍게도 숭명배금의 기조에는 전혀 서인과 다를 바가 없었으며, 일부에서는 더 심한 경향마저 있었다는 점이 놀랍죠. 광해군과 북인이 기조를 같이한 대목은 "폐모"뿐이었던 겁니다. 


이른바 중립외교는 광해군과 극소수 측근만이 공감하던 정책이었으며, 사실 반정을 촉발한 결정적 실책은 폐모살제 같은 게 아니라 만주의 군주를 "한 전하"라 호칭한 외교 문서의 어느 표현이라는 지적도 귀 기울일 만합니다. "한"은 한이라고 쳐도 "전하"가 문제입니다. 조선은 사대교린 정책을 국초부터 유지했으므로 왜의 쇼군 등에 대해서는 전하라는 호칭이 종종 등장하는데, 왜보다도 등급이 낮은(?) 여진에 대해서까지 그 추장(...)에게 전하로 호칭함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는 거죠. 이는 사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바도 있으며, 여진에게 당당히 처신하는 건 논리필연적으로 숭명사대와 꼭 엮여야 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고루한 선비 상당수는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보았겠지만 말입니다.


이후에 여진이 얼마나 강성해져서, 중국 오천년 역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강한 위신을 확립하고 강토도 넓혔는지는 그 한참 후의 사정일 뿐입니다. 안타까운 건 물론 많은 희생이 따랐겠으나 우리 자신의 자존을 지키고 오히려 명에 대해 큰소리를 치기 위해서라도, 당시의 여진, 아직 후금이나 청 등으로 발전 못했던 단계의 여진에 대해서는 국력을 잘 추스려서 한판 붙어볼 필요도 있지 않았었나 싶은 것입니다. 우리 실력으로, 당시 아직 크기 전의 여진을 좀 밟았으면, 당시로부터 수백 년 전 삼봉 정도전이 꿈꿨던 요동 경영 같은 걸 꿈꾸지 못할 바도 뭐가 있었겠습니까? 다만 광해군이 현지의 정보를 냉철하게 수집하고 여진 내 친 조선파를 구별하여 공작도 벌이고 한 점은 대단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우리가 그런 큰 수치를 당한 건, 중립외교다 실리주의다 사대주의다 이런 게 문제가 아니라, 군주와 집권층에 하필 불운하게도 사리 분별이 그냥 안되는 무능한 이들이 가득차 있었다는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고려 초에도 주전 주화의 대립이 있었지만 일단 외적(거란)이 침입해 왔으면 지혜를 짜내 최대한 상대한테  타격도 주면서 막아내는 게 기본이었죠. 거란은 당시 동아시아 최강의 무력을 자랑했는데 한번 혼이 나고 나서는 다시는 쳐들어올 생각을 못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아 그때 청나라한테 더 빨리 꿇었어야 했는데 같은 비굴한 후회를 할 게 아니라 그로부터 6백년 전 강감찬처럼 할 수 없었을지를 성찰해 보는 게 맞지 않을지. 또 이자겸 같은 자는 아구타의 금이 크게 일어나자 바로 사대의 대상을 바꾸고 평화를 유지했는데 이런 건 중립외교다 실리주의다 하면서 칭찬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ㅋ)는 게 또 특이하죠. 


인목대비는 그걸 떠나서 광헤군에게 그 긴 세월을 핍박받고, 언제 해코지를 당할 줄 모르는 불안한 상태로 인생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나아가 아들까지 잃었으니 그를 철천지원수로 여길 만합니다. 이는 그녀의 입장이고, 제3자로서 충분히 동정을 보낼 만합니다. 하지만 인목대비의 세계관이나 철학을 국정 운영의 기본으로 삼았어야 한다, 이렇게까지 비약할 필요는 없겠죠. 이 소설은 그 여성의 절절한 심정도 잘 녹여내어 표현했고 우리 독자들은 그 점 역시 충분히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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