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고 음미하는 삶에 대하여 - 온전한 내 삶을 위해 자존감과 마음근력을 키우는 방법
김권수 지음 / 포춘쿠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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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은 것에 대해서도 그 고마움을 알고 행복을 그로부터 찾아내는 사람이라야 큰 것도 누릴 자격이 생기는 법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온갖 재난, 전쟁, 굶주림, 범죄 등으로 이유 없이 피해를 겪고 고통을 느끼며 목숨까지 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 것도 전혀 아닌데 말입니다. 치안이 안정되어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 우리 나라이지만 당장 요소수가 없어 내일 생계 유지 수단이 막연해진 분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평상심을 찾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안히 살았는지에 대한 고마움을 새기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누리고 음미하는 삶은 불완전한 현재에 살아 숨쉬는 자신과 관계, 환경의 단면을 허용하고 수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p18)." 참으로 심오한 말입니다. 세상이 철두철미, 이치와 논리와 정의에 의해 작동한다면 우리는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한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질서와 문명은 모순투성이이며 우리는 시스템에 의해 언제든 억울한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아담괴 이브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냐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 속의 사슴, 토끼, 여우, 늑대, 호랑이 할 것 없이 모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죽을 고생들을 하며, 느닷 기근이나 홍수, 산불 등으로 목숨을 잃곤 합니다. 이처럼이나 우리 환경은 부조리하고 불완전하니, 우리에게 그저 주어진 작은 것들이나마 얼마나 감사하게 주어진 것인지 우리는 겸손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세상을 탓할 게 아니라 완벽함에 길들여진 내 자신의 감각을 탓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저자의 말입니다. 왜 나한테 이게 없냐고 원망할 게 아니라 이 정도나 가진 게 어디냐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맞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물론 물리법칙에 의해 움직이지만, 우리가 행복하다, 또는 고통스럽다 느끼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감각에 달렸습니다.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당신의 느낌, 감각 등을 점검하고 길들일 것을 독자에게 촉구합니다. 똑같은 걸 경험해도 내 감각이 그걸 불편하게 여기거니 눈이 터무니없이 높아져 있으면 그때부터 불행의 폭포수가 밀려옵니다. 반대로 이만큼 주어진 게 그저 고맙고 행운이다 싶으면 그때부터 행복감, 만족감이 밀려옵니다. 다른 사람의 평판은 그가 나보다 잘났건 못났건 전혀 신경 쓸 바 아닙니다. 못난 사람은 못났으니 그저 불쌍하게 여기면 되며, 잘난 사람은 그가 잘난 데 내가 예전에 보태 준 게 있습니까? 그 사람도 잘나고 싶어서 잘난 게 아닌데 내가 왜 배아파하겠습니까?


"마음챙김은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p65)" 여기서 판단이라는 건, 나의 주관적 기대, 선입견, 이런 걸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내 멋대로 "앞으로 10초 안에 바뀌어라"며 기대를 하는데 20초 넘게 걸렸다, 이러면 아 왜 내 기대는 실현이 되는 법이 없을까? 라며 그 순간 불만과 원망으로 마음이 가득합니다. 현실은 그저 20초일 뿐인데 만약 그 순간 지나가는 미녀라도 구경하고 있었으면 아 왜 20초밖에 시간이 안 걸리며 또 화가 났을 것입니다. 공연한 의미를 부여하고 비합리적인 기대를 미리 거니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겠습니까? 


"가장 잘 누리는 웰빙 투자는 바로 감정 조절 능력(p99)" 진짜 맞는 말씀입니다. 잡곡도 많이 먹고 운동도 많이 하고... 이래야 신체에 탈이 안 생기고 병을 멀리할 수 있지만, 이래 봐야 내 마음이 매번 지옥이고 기대치가 충족 안 되어 짜증이 나고 이러면 암만 좋은 걸 먹어봐야 암이 절로 내 몸에 돋아납니다. 열심히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멍청하게 넋을 놓고 살라는 게 아니라 애초에 무리한 걸 막 추구하고 자신을 들들 볶아 봐야 나아지는 게 없다는 뜻이죠. 실제로 조직에서 출세를 할 때도 감정 조절이 되어야 실수를 안 하고 타인의 반응(동기)과 전체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냥 호구로 살라는 게 아니죠. 또 감정 조절이 되는 사람은 상황의 객관화가 가능해져서 이런저런 스트레스 상황을 자신이 미연에 방지하고 통제할 수 있습니다. 가래로 막을 걸 미리 호미로 막는 거죠. 


"이거 아니면 안돼!" 감정이, 생각이 경직된 사람은 매사가 이렇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반드시 이루겠다며 투지를 불태우는 건 좋습니다. 그것하고, 비합리적으로 집착하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에는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통제 못하는 게 훨씬 많고, 목표가 혹 어그러지면 빨리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책에서는 이걸 유연성(p123)이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고 했는데 이런 사람은 바른 현실 수용에 따라 유연하게 대안을 또 잘 찾습니다. 이게 참다운 생존 능력입니다. 


"감정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라(p163)" 바로 이것이 행복해지는 첫걸음입니다. 제가 요즘 읽는 책에는 공교롭게도 "나를 일정 거리를 두고 바라보라" "그러면서 어린이처럼 달래 줘라" "그저 거리를 두고 아 얘는 지금 이렇구나 하고 느끼기만 해도 벌써 네 마음이 편해진다" 같은 걸 주문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 미쳐 날뀌는 감정이 바로 내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아 왜 내가 이런 상처를 입어야 하냐며 분해 죽을 지경입니다. 왜 내가 모욕을 당해야 하냐고! 그런데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장, 더워서 땀을 흘리는 피부, 이런 걸 다 일일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정도 마찬가지, 어찌 일시적으로 이성을 잃고 날뛰는 감정이 곧 내 자신이겠습니까? 그렇게 허술하게, 덜 수양된 상태로 살지는 않지 않았습니까? 거리를 두십시오. 아프고 상처 받은 건 내 자신이 아니라 나의 일시적 감정일 뿐입니다. 


요즘은 누구누구하고 손절해야겠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주식 용어인데 처음에 매수할 때는 기대를 가졌으나 계속 손해만 나니, 손해가 복구되지는 않았지만 더 손해가 커지기 전에 매도한다는 뜻이죠. 이 책에서는 말합니다. "인연을 함부로 맺지 말라(p181)."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나 내 세계에 들여 놓으면, 그 중에는 나한테 해만 끼치거나 나를 이용만 하려는 자가 반드시 있어서 내 인생을 망치려 듭니다. 그런 사람은 좀 손해다 싶어도 나한테 지금 이 정도만 손해를 끼친 상태에서 끊어 내어야 합니다. "분별력과 용기가 있어야 가지도 치고 관계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관계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다." 저자의 말입니다. 


"일상의 작은 성공을 음미하고 고맙게 여겨라." 그저 작은 고마워하라는 게 아니라, 저자는 음미하라고 합니다. 비싼 와인을 마실 때 벌컥벌컥 들이키고 갈증만 해소하지 않습니다. 음미, 이 속에 답이 있습니다. 그 크기는 작을망정 그 깊이와 밀도는 그 안에 우주를 품습니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워도 내가 가진 작은 것에 깊이 침잠하며 참맛을 음미할 때 우리는 세상의 제왕이 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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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 신라공주와 페르시아왕자의 약속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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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현재 미국에 의해 국제 말썽꾸러기 나라로 찍혀서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만 원래는 세계 문명을 주도하던 엄청난 대국이었습니다. 우리가 서양 문명의 초기 대표 주자로 아는 그리스(스파르타, 아테네를 비롯 이후의 알렉산더 제국에 이르기까지)와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바로 그 나라이며 당시의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였죠. 이후에도 사산 조 페르시아가 등장하여 로마 제국과 내내 자웅을 겨루었습니다. 이 소설 중에도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아들 부시 당시 "악의 축" 3국 중 하나로 꼽힌 과거가 언급됩니다. 


이란은 지금처럼 신정 체제가 등장하기 전 팔레비 샤한샤가 다스릴 때 막 근대화에 열심이던 한국과도 긴밀힌 관계였습니다. 이 소설에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화려한 풍경의, 세속화, 서구화한 기조의 도시가 빛나던 과거 왕정 체제의 이란을 회상하는 구절이 많이 등장합니다. 중동 여러 나라는 건설 근로자의 진출 때문에 한국인들이 익숙해자지만 이란은 그것과는 또 좀 다른 경위였습니다. 팔레비 왕도 당시의 한국처럼 일종의 개발 독재 시스템이었고 그래서 지금 많은 곤궁에 시달리는 이란 국민들이 "그때가 경제는 좋았다"며 회고하는 게 다 그 때문입니다. 비슷한 처지라서 국가 수반끼리 뭐가 통하기라도 했는지 그래서 우리 수도 서울에는 테헤란로가 있고 저쪽에도 그 비슷한 거리 이름이 있죠. 이 소설 중에도 그런 말이 있지만 원래 석유 파동 때문에 1970년대 초반에 괜찮다가 인플레 때문에 고생하고, 이후 유가가 안정을 찾자(폭락까지는....) 갑자기 상황이 안 좋아져 댜규모 소요 사태가 터지고 그 와중에 황실이 무너져 이슬람 신정 체제가 들어선 거죠. 


저자는 우리 역사의 빈 구석을 매혹적인 상상으로 채우며 이 소설을 진행시킵니다. 소설 속에서 "그런 미개한 나라를 왜?"라고 캐릭터 현철은 말하지만 페르시아는 엘람 문명을 일찍부터 발전시켰으며 이 문명은 기존 4대 문명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논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또 무굴 제국의 창업자 바부르나 그 후예들도, 본인들은 몽골의 후예를 자처했으면서 궁정이나 정부의 운영 체제, 나아가 문화적 전통은 한사코 페르시아풍의 그것을 고집했습니다. 영토인 인도 고유의 문화는 한없이 경멸하면서 말입니다. 아마도 일 칸국의 유산을 존중한다는 명분도 있었겠고, 호라산 일대의 유목 민족들의 분위기를 계승해서일 수도 있지만 여튼 널리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페르시아풍의 권위는 매우 높은 것이죠. 액자 밖의 주인공 희석도 이를 강조하며 설득에 성공합니다. 


머리말, 또 p28의 각주 등에서 저자가 밝히듯 이 소설은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의 내용에서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먼 옛날 신라의 공주가 페르시아의 왕자와 어떤 로맨스로 엮였다는 건 이게 아무리 문학 작품 속의 내용이라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작가도 "우리 역시 사료의 부족 때문에 <삼국유사>를 보조 근거로 인용하듯, 저 페르시아의 서사시 역시 역사의 일부가 못 될 바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합니다. 뭐 문헌에서 작은 단서라도 빠짐없이 활용하여 상상의 극한을 펼치는 작가의 솜씨라서 이 장편 소설을 읽는 재미는 차고 넘칩니다. 


원효 대사는 출신 성분의 한계 때문에 좌절을 겪었으나 대신 불교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구법 유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승불교 역사를 바꿀 명저를 저술하여 당과 왜에서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 소설에도 등장하여 요석공주와의 숨은(?) 사연을 더 털어놓는데, 그 아들 설총 역시 천재적 두뇌를 타고나, 무려 페르시아 문자의 영향을 받아 표음 문자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이두를 만들었다는 건데 기왕 하시는 것 좀 더 창의력을 발휘하셔서 그 당시의 문헌이 더 풍성히 남게, 또 더 표음성을 살리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전란의 영향이 컸지만 말입니다. 페르시아는 저 당시라면 고유 문자를 썼겠죠. 지금은 종교 때문에 아랍 문자를 다소 개량해서 쓰는 처지지만. 


여튼 소설 속에서 설총이 이두를 창제한 것도 아비틴 왕자와의 밀접한 교류 덕분이었다고 나옵니다! "원래 우리는 바실라라 불렀지만 여기서 신라라고 하니 그리 부르도록 하자." 그런데 독자로서 이 대목 읽으면서 아니 신라보다 바실라가 훨 나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애초부터 신라의 이름은 바실라가 아니었을까요? 고유어로 무슨 뜻이 따로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문무왕의 동생이 요석 공주이고 문무왕의 딸이 프라랑 공주이며 이분이 아비틴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얼마나 매혹적인 설정입니까. 소설 초반에는 우리 주변에 유독 서양인처럼 코도 높고 피부도 뽀얀 사람이 가간혹 보이는 게(주인공 희석 포함) 다 이때 페르시아인들이 혈통을 남긴 흔적이라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이란인뿐 아니라 (고려 때까지 교류한) 아랍인도 어족은 멀지만 크게 봐서 코카서스인들의 갈래이니... 


지금도 중국이 골칫덩이이지만 당나라 때도 마찬가지였죠. 물론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인 원죄가 있지만 의자왕 때 백제는 잘 추스려진 국력을 바탕으로 신라를 자주 침공하여 거의 망국 직전까지 몰아넣었습니다. 이 역시 진흥왕이 성왕을 배신한 게 더 먼저이긴 하지만... 여튼 당나라는 (소설 속에서) 신라와의 당초 약조를 깨고 웅진도독부, 계림도독부 등을 설치하여 한반도 전체를 병탄하려 드는데 이 책략의 주체는 측천무후라고 소설 중에 나옵니다. 많은 TV 사극에서 그리 설정하기도 하죠. 


희한하게도 사산 조 페르시아가 아랍인들에게 멸망했고, 이 아랍인들은 그 기세를 몰아 서남아시아를 휩쓸었고 탈라스에서 마침내 당나라와 맞서기까지 합니다. 당은 이 전투에서 패배하여 실크로드의 패권을 잃었는데 하필 이 전투의 패장이 고구려 유민 고선지였고 이 소설에서도 기막히게 아비틴과 페리둔 등과 인연을 맺습니다! 그러니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아랍인들의 제국에 맞서 신라, 고구려, 당나라, 페르시아 등이 모두 연합을 이룬 셈이죠 ㅎㅎ 우리도 망국의 설움을 자주 겪은 나라인데 하필 이 시점에서의 페르시아도 망국으로 굴욕을 겪던 처지(p268)이며 고구려는 멸망, 신라는 당나라로부터 위협을 겪던 시가라서 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정말 놀라운 건 중국사에서는 천하의 역적으로 꼽히는 안녹산(원래 중국계 아닌 소그드 인이었다고 하죠)이 여기서는 페리둔 왕자의 신하를 자처하며 같이 당나라를 멸망시킨 후 이를 바탕으로 아랍으로 쳐들어가 페르시아 제국을 재흥시키자고 합니다. 그 와중에 고선지 장군도 ㅎㅎ 동맹 아닌 동맹이 된 것입니다. 웃음이 나오면서도 작가님 상상력이 참 기발하다 싶었습니다. 


우리 역사는 문헌이 불충분하게 전하며 중국 측 문헌은 왜곡이 있기에, 왜 이 시점에서 뭔가가 크게 허전할까 싶은 대목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 우리의 허전함을 이 소설이 비록 허구와 상상으로일망정 넉넉히 잘 채워 준 것 같습니다. 페르시아, 즉 이란도 형제의 나라(p18)일까요? 뭐 아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형제의 의를 맺어 나쁠 것도 없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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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모범생 특서 청소년문학 23
손현주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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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의 교육열은 세계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고 거의 과열 광기 수준입니다. 어머니들이 필요 이상으로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사교육 광풍을 주도하는 현상은 부동산 투기만큼이나 사회적으로 큰 빈축을 사며 심지어 자신의 자녀들에게까지 (결과적으로)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막상 자신의 자녀가 그런 과정을 통해서라도 성적이 향상되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면 이를 마다할 부모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적 통념과 인식은 그 근본이 바뀌기가 무척 힘들며 사회 성원 모두가 어떤 큰 계기를 통해 집단 각성하지 않는 한 이런 문제적 현상이 발본색원되기는 무망하죠.


이 소설은 황건휘, 황선휘 두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쌍둥이이지만 건휘가 형이고 동생 선휘가 이 소설의 1인칭 주인공입니다. 두 형제는 무역업을 하는 기업인 아빠와 전직 입시 피아노 학원 원장님 엄마 사이에 태어나고 성장했는데, 두 분 부모님 역시 대한민국 최상류층에서 태어난 그야말로 축복받은 인생들입니다. 그나마 아빠가, 본인 역시 우수한 학력과 경력을 지닌 엘리트 집안에서 성장하며 공부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애들한테 공부 공부 재촉은 덜하는 편인데, 엄마가 좀 정도가 심합니다. 자신의 아이들한테만 닦달하는 게 아니라 주변 엄마들한테도 영향을 끼치는 이른바 돼지엄마인데, 그 친구 중 한 명인 O우는 소설 후반부에 자살하는 걸로 나옵니다. 


황건휘 황선휘 두 형재는 적성이 없는데도 돼지엄마가 잘 리드해서 모범생이 되었다거나 한 게 아니고 본인들 스스로가 우수한 머리를 타고난 경우입니다. 하긴 엄마 아빠 집안 모두 머리가 좋으니 그 유전자를 애써 피해서 태어나기도 어려웠을 터입니다. 엄마는 다소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낳았는지라 가끔 신세 한탄을 하길 너희 때문에 학원일도 도중에 그만두고 출산시 고생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거죠. 이런 경우일수록 더욱 이기적인 집착으로 아이 교육에 매달리게 되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여튼 형제 모두 24개월에 한글을 마스터하고 옹알이 없이 말도 한 경우라서 이건 뭐 의심의 여지 없는 영재입니다. 주변에서도 아니 하나도 아니고 둘을 모두 영재로 키웠다며 부러움이 자자하며 형제는 고교에서도 전교 1등을 맡아 놓고 합니다만 형인 건휘가 더 공부를 잘합니다. 둘째 선휘는 좀 더 멘탈이 강하다는 게 장점인데 아마 엄마를 닮았나 봅니다. 형 건휘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음이 뒤에 나오는데 이것 역시 엄마의 단점을 닮은 듯합니다. 엄마는 성격이 불 같고 매우 이기적입니다. 동생인 "대종 이모"하고도 성격이 판이하며 아빠는 오히려 이모와 더 의견이 잘 통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 이하 소설 내용에 대한 누설이 있습니다


이미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인데 뭐하러 엄마가 저렇게까지 극성을 피우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합니다. 운동이나 공부나 타고난 재능, 적성이 크게 좌우하며 엄마가 얼마나 개입하고 케어하는지는 부차적 변수에 불과한데, 가만 내버려둬도 알아서 할 아이들을 엄마가 망친 듯도 합니다. 알지도 못하는 애와 길에서 시비가 붙어 거의 죽기 직전까지 폭행을 가하는 바람에 형 건휘는 인생을 망치기 직전까지 가며.... 독자를 충격으로 몰아넣는 건 그 엄마의 태도인데... 형 건휘가 공부를 훨씬 잘하는 대신 멘탈이 약한 걸 알고는 동생 선휘더러 형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라고 권하는 겁니다! 이쯤 되면 이 엄마는 정상이 아니라고 봐야죠. 


저는 여기까지 읽고 엄마가 자신을 안 아픈 손가락 취급하는 줄 알고 선휘가 크게 엇나가는 진행이겠다 지레짐작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엇나가는 건.... 어느 정도는 뭐 그 이전부터 그랬고, 형 대신 죄를 뒤집어쓰라는 말도 선휘는 (마음이 아프고 충격 받을망정) 그대로 듣습니다. 아마 이유는, 자기 생각에도 형의 멘탈이 감당을 못 할 것 같으니 차라리 냉정한 자신이 짐을 지겠다는, 참 순수하게 형에 대한 애정만으로 내린 결단이라는 생각이... 여튼 엄마가 원망스러울망정 현 시점에서 가장 나은 방법이다 싶어 또 이걸 그대로 수용하는 선휘를 보면서 얘도 엄마처럼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다 싶었습니다. 아니 아무리 타당한(?) 전략이라 해도 겨우 고등학생이 말입니다. 


여튼 진상은 의외로 눈이 날카로웠던 피해자 학생에 의해 그대로 드러나고 형 건휘는 자살을 택합니다. 이런저런 충격적인 일을 겪고 정신이 망가질 만한데도 과연 엄마를 닮아(!) 멘탈이 강철인 선휘는 그 와중에 김은빈이라는 (자신과는 교과 성적이 극과 극인) 편모 슬하에서 자란 김은빈이란 여학생을 만나 좋은 감정을 키워 가는데 이것도 참 놀랍다 싶었습니다. 음.... 피아노는 고전음악이지만 김은빈은 실용음악인 뮤지컬을 배우는 학생인데 성대 쓰는 법을 어려서부터 잘못 익혀 작곡 쪽으로 진로를 선회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적성을 알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는데 이 말을 듣고 어려서부터 형에 대한 열등감이 있던 선휘는 깨끗이 한국식 공부를 포기하려고 합니다. 


사실 가짜 모범생이라고 하면 머리도 나쁜데 억지로 부모 서슬에 눌려서 사교육으로 근근히 연명하는, 참된 자신을 잃고 주위 시선만 의식하며 허깨비 인생을 사는 좀비 같은 주인공을 떠올렸는데, 이 소설의 선휘는 그런 타입은 아닙니다. 성격도 야무지고 감정도 스스로 잘 추스르며, 형에 비해서 못한다는 것뿐이지 그 좋은 머리를 타고나서는 왜! 한국식 공부를 포기한다는 건지 읽으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이를 이렇게 만든 건 그 엄마의 광기 어린 행보 탓입니다. 차라리 가만 놔뒀으면 잘할 공부를 그 엄마 때문에 넌덜머리가 나개 한 거죠. 뭐 여튼 좋은 유전자 50%를 물려주신 건 감사하게 생각하고, 미국에 가서 영재로서 제대로 포텐이 터지는 공부를 하길 독자로서 기원합니다. 현실이 소설을 능가한다고 사실 우리 나라에는 이보다 더한 충격적인 사건이 터진 적이 있습니다. 이땅의 모든 학생들이, 정직하게 자신이 원하는 살을 찾아나갈 수 있는 날이 하루바삐 와야 하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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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투 원 (리커버) - 스탠퍼드대학교 스타트업 최고 명강의
피터 틸.블레이크 매스터스 지음, 이지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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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부를 쌓은 사람들을 보면 상위 0.1%와 1% 사이에, 격차가 그렇게나 크게 납니다. 또 수능 성적 같은 것도 마찬가지라서 1%라고 하면 엄청 잘하는 것 같지만 0.1%하고의 사이에는 그야말로 넘사벽이 존재합니다. 차라리 1%와 7% 사이의 격차가 더 유동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경영의 세계는 좀 다른 듯합니다. 물론 여기도 예를 들어 재벌서열 상위 10위까지와 20위권 사이의 그룹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하죠. 그런데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못 가진 제로에서 바로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게 너무도 힘든 반면, 일단 이 단계만 넘어서면 어느 정도는 견적이 나오긴 합니다. 그러니 무에서 유를 일단 만들고 보는 게 시장 진입자에게는 관건입니다. 


저자는 먼저 글로벌화와 기술 진보 둘을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p17에서, 닉슨과 그의 국무장관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해 국교를 텄을 때 기술 발전은 많이 진척되었을망정 아직은 글로벌화가 미진했다고 합니다. 1971년 이후에는 글로벌화는 빠르게 진전되었으나, 기술 발전은 (이 부분이 중요한데) "IT를 제외하고는" 그리 크게 나아가질 못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맞는 말 같습니다. 의료 기술 발전은 그 당시 시험관 아기다 인공 심장이다 하는 게 처음 나왔지만 그 이후로 큰 어떤 진보가 체감이 안 되고요(물론 현장에서는 엄청난 발전이 있었으나 일반인의 체감 기준으로 하는 말입니다), 반면 IT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기기를 쓰는 사람은 누구나 절절히 느낄 것입니다. 그 엄청난 진보의 정도를.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더 나은 미래가 절로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달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수 있으며, 에너지 가격은 공기처럼 낮아지고... 우리는 (IT 기기의 놀라운 발전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 주변이 (여전히) 구식이라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1980년대 중후반에 만들어진 <백 투 더 퓨처>(특히 2편)를 보면 2010년대 중반에 어떤 환경에서 우리가 살게 될지 미래를 그린 장면이 있습니다. 그 중 상당수는 아직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데, 저런 영화를 보면 부모 세대가 30년 후의 미래를 얼마나 (근거 없이) 낙관했는지 약간은 실소가 나올 만큼이죠. 요즘은 오히려 환경 오염, 핵전쟁으로 엉망이 된 디스토피아물, 좀비 영화가 더 많이 나오며 세계관도 훨씬 비관적입니다. 


또 IT의 (지나친?) 발전 때문에 여전히 주변이 구식이라는 점도 잊게 된다는 저자의 지적 역시 동감합니다. 사실 코로나19 같은 새로운 질병이 만연해도 어쩐지 의료, 약학계는 그에 적절한 처방을 빨리 내놓지 못하며 각종 부작용에 대해서도 명쾌한 이유를 설명 못하는 것 같습니다. 코비드19는커녕 십수년 전에 유행하다 갑자기 없어진 사스도 마찬가지며, 암 치료는 1980년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제자리걸음입니다. 표적항암제다 면역항암제다 말은 많지만 주가를 올리기 위한 사기극 같고, 심지어 주가 스캔들이 벌어지고 나서도 그게 사기인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듯합니다. 예전에는 주가조작이 큰 규모로 일어나면 검찰이 칼 같이 잡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저자는 특히 정실자본주의(p26)가 휩쓸던 동남아시아를 1997년 금융위기가 강타한 사실, 또 2000년 닷컴 버블이 잠시 커졌다 곧바로 터진 사실 등을 지적하며, 전세계에 만연한 비관주의가 "그럼,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해 보자"는 분위기를 일으켜 인터넷 경제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ㅎ 좀 말이 그렇긴 합니다만 여튼 인터넷 경제의 큰 호황과 저런 시대 분위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맞물린 건 사실입니다. 


저자는 화려한 표현력을 자랑합니다. p31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그 예입니다. "벽돌에서 클릭으로의 이행(오프라인 매출에서 온라인 위주로의 전환)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투자자들은 다시 벽돌(주택 공급)과 브릭스(글로벌화)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전자가 책에 나오는 대로 1990년대에 있었던 현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표현은 절묘합니다. 여튼 그 결과로 부동산 버블이 생겼다고도 합니다. 판단은 독자의 몫입니다. 


여튼 저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2000년대 초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벤처기업, 스타트업들, 이들은 대부분 0에서 1을 만들려고 했던 도전자들이었고, 0에서 1을 만드는 건 바로 "(신)기술의 힘"입니다. 확실히 그 당시의 신생 기업들은 일찍이 없던 걸 세상에 새로 내놓으려고 했습니다. 실리콘 밸리 자체는 이미 1980년대 이전부터 있었으나 당시는 소프트웨어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책 처음부터 강조하기를,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건 누가 뭐라 해도 기술의 힘이며 기술 발전 외 어떤 것도 우리에게 그런 기적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문학사상 최고의 서두가 톨스토이의 대작 <안나 카레니나>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으나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그 문장으로 흔히 꼽히죠. p49에서 저자도 이 문장을 인용하는데 행복한(?) 기업은 제각각의 이유로 행복해지지만 실패한 기업은 "독점을 이루지 못했기에", 이 이유 하나로 불행해진다고 합니다. 저자도 말하지만 이 책에서 논하는 "독점"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독점 기업과는 그 의미가 제법 다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독점기업은, 말하자면 대체 불가의 기업으로서 모든 소비자들이 그 물건(서비스)이라면 그 기업에만 의존해야 하는 그런 걸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바로 구글이죠. 구글은 그야말로 맨손에서 시작해서 오늘날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기업이 되었는데 그 걸린 시간이 불과 이십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제로 투 원입니다. 


영어에는 at the drop of a hat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자는 p61에서 <햄릿>의 한 구절을 또 멋있게 인용하며 명예가 걸린 싸움에서는 달걀껍질만한(이건 저자의 표현입니다) 명예라도 그걸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게 참 용기라고 하는 그 대사를 들려 줍니다(물론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햄릿은 그러지 못했지만).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싸우려거든 아예 한방에 적을 죽여 놓거나, 못 그러겠거든 합병이나 인수 등 다른 적절한 방법을 찾으라는 겁니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나쁜 건 바로 경쟁이다, 이게 저자의 핵심 요지입니다. 경쟁을 하지 않고 독점을 하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 당신 기업만의 기술이다 이거죠. 


p44에는 구글 CEO 에릭 슈미트의 말을 저자가 "해석"한 게 나오는데, 구글은 (법에서 말하는) 독점 기업이 아니라 "연못에서 언제 다른 물고기에게 잡혀 먹힐지 모르는 불쌍한 또하나의 물고기"라는 겁니다. 애초에, 항구적인 독점 기업 같은 건 없으며 언제든지 추격자가 나타나고 그들에 의해 경쟁기업 중 하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거죠. 여튼 독점기업으로서 머무는 시기를 가능한 한 늘려야 하며 만약 산업 자체가 이미 성숙기로 접어들었다면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 유럽, 영국이 사양산업을 일찌감치 중국에 떠넘겨 저가 생산기지로 삼았으며 중국이 나라로는 많이 규모가 커졌으나 국민 삶이 그닥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지 싶죠. 


경쟁기업은 일단 이윤이 박하며 (그러기에) 피용인의 임금을 가차없이 줄이는 등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피폐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독점기업은 어떠한가? 구글의 예에서 보듯 직원 후생과 복지가 최고 수준입니다. 독점 기업은 경영진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덩달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거죠.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니 너무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가 실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는 이미 독자들에게 다 접수가 되니 말입니다. 


이베이는 한국의 옥션을 가진 기업이지만 사업 모델은 좀 다릅니다. "일반 상품은 사실 경매 방식을 꼭 도입해야 할 영역은 아니며 이런 건 아마존에서 사는 게 낫고(p77), 이베이는 좀 다른 영역에서 특화한 독점기업이다, 따라서 2004년 당시 사람들이 기대한 만큼 크지는 못했다", 뭐 이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저자가 만약 한국의 옥션닷컴을 본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기업상은 "완전히 독보적이라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점기업"입니다. 그래서 혹 누가 나중에 시장에 진입해서 선두를 추격할 수 있는 그런 시장이다 싶으면, 먼저 들어가서 개척한다고 땀을 뺄 것이 아니라 아예 나중에 들어가는 라스트 무버가 되라(p80)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1994년 당시 현대그룹이 프로야구 시장에 가입하려다가 다른 기업의 반대로 벽에 부딪히고 묘한 방법을 써서 외곽을 때려 기어이 1996년 리그 진입에 성공한 예가 생각납니다. 팬들 입장에서는 팀이 늘어나면 좋지만(수준 저하라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기존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얌체가 얄밉겠죠. 물론 가입금도 따로 받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떤 스타트업을 만드느냐는 미래를 어떻게 보냐는 관점에 달려 있습니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건 같으나 그 확신 강도에 차이가 있는 건, 확신에 가득찼던 과거의 미국, 그리고 뭔가 믿음을 잃은 현재의 미국이 그렇다고 합니다. 반면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것도 차이가 있는데 확신을 갖고 부정적으로 보는 중국, 그 정도는 아니지만 미래가 좋지 않다고 보는 게 유럽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중국 지도자들은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며 국민에게 채근하듯 주의를 촉구하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그들이 목표("세계를 다 잡아먹자')를 너무 높이 세운 탓에 매사가 심각한 분위기를 지적합니다. 맞는 듯도 합니다. 


저자가 미국 사람이라서인지 책에서는 미래를 긍정적으로는 보되, 뭔가 불확실성이 크게 개입한 세계를 상정합니다. 어떻습니까? 한국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중국처럼 강박적으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뿐일까요? 걱정은 많이 해도 대체로는 "그래도 나아지겠지"하는 기조가 더 강하다고 봅니다. 만약 "지금 이렇게 애는 쓰고 있지만 어차피 나빠질거야"라고 믿는다면 아메리칸 스타일이 아니라 차이니즈입니다 ㅎㅎ


주식 투자를 할 때에도 거듭제곱의 법칙에 따라 초기 성장을 이루는 벤처기업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왜 이미 성장의 풀이 꺾인 대기업에 투자하냐는 겁니다. 또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이른바 분산 포트폴리오는 결국 다 시원찮은 것만 잔뜩 담는 다이X(이것 자체는 우리 나라 투자자들이 즐겨 쓰는 속어이지만)가 되기 쉽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식으로 말하면 코스피 하지 말고 코스닥 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전문가 중에 운OO 같은 분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아니 대형주를 사서 안정적으로 굴려야지 왜 위험이 큰 코스닥 하냐고 말이죠. 이건 뭐 누구 말을 무조건 따를 게 아니라 잘 생각해서 본인 취향, 적성에 맞는, 후회 없는 투자가 필요할 듯합니다. 여튼 잘나가는 스타트업 초기에 투자해서 대박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 자체는 사실입니다. 그걸 알아보는 우리 눈이 부족해서 문제이지만요. 


저자는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p158)"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에 걸맞게 저자는 "내 편을 많이 만들라"는 조언을 독자에게 해 줍니다. "특전에 목숨 걸지 않고 그저 우리 회사가 잘 맞다 싶어 찾아온 작당 공모자(신입)를 모으고, 분명히 구분된 책임을 지우고, 광신도처럼 일하게 하며, 아무도 찾지 못한 비밀(p125)을 설레는 마음으로 찾는 기업을 만들라"는 겁니다.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하고 말단직원에 이르기까지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꿈으로 무장한 기업만이 대체 불가능의 "독점" 기업이 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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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합격할 자격이 있습니다 - 취업 합격을 부르는 STL 글쓰기
남현우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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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다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으며 어떤 유의 글이 딱히 잘 쓰는 글이라며 독점적으로 자격을 갖추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업 입사나 학교입학전형 등에 쓰이는 자기소개서 등의 글이라면 아마 합격이 더 잘 되는 글의 유형, 완성도, 경향 같은 게 따로 있을 듯합니다. 이 책은 주로 그런 글 잘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만, 그런 특정 목적을 떠나서 읽는 사람에게 두루 감동을 주는 글쓰기의 방법도 알려 줍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떤 글쓰기가 그저 자기 만족이 아니라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꼭 감동까지는 아니라도 어떤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한 번 정도는 고민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자기소개서는 차별성이 중요하다(p53)." 읽는 입장에서 얼마나 많은 서류를 눈으로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어디서 의뢰나 주고 받아온 듯 천편일률적이기까지 하다면 그 이상 고역이 없을 듯합니다. 저는 두어 달 전에 다른 책을 읽고 그 속에서 그저 차별성 하나로 면접위원의 눈에 띄어 큰 언론사에 기자로 뽑힌 분의 이야기를 접한 적 있습니다. 물론 면접위원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저 튄다고 그 지원자를 선발한 건 아니겠죠. 그러나 아무 스펙 없는 처지(p60)에서 그 모든 불리한 점을 뛰어넘으려면 확실히 "차별성 부각"은 승부를 걸어볼 만한 전략이 됩니다. 


"취업에서 차별화 요소는 두 개인데, 스토리와 룰 파괴다(p53)." 흔히 차별성이라 하면 후자만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아주 강조되는 요소가 바로 "스토리"입니다. 요즘은 면접(전형)뿐 아니라 정치인, 선출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권자는 그만의 스토리가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원하며 저는 6년 전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당시 어떤 이용자가 "이제 그에게 스토리가 생겼으니 딱히 불운으로 여길 것 없다"고 댓글을 남긴 걸 보았습니다. 물론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당사자가 정치에 야심을 두었다면 저런 전망을 딱히 불쾌하게 부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중요한 말을 덧붙입니다. "차별성의 완성은, 스토리이든 룰파괴이든 간에 행동에 달려 있다(p56)." 구직 활동에서 이런 "행동"의 예라면 중요 문의 사항이 있을 때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 본다든가 하는 게 있습니다. 이것도 과하면 안 좋은데, 저는 예전에 저한테 조언을 구한 이에게 "나하고 함께 해당 기업을 찾아가자"고 한 적 있습니다. 그분 대답은 "보여주기식이 될 것 같다"였죠. 어떤 대안이 썩 내키지 않을 때 우리는 갖가지 방법으로 그럴싸한 합리화, 핑계를 찾아 냅니다. 이처럼 소극적인 태도도 문제지만, 반대로 과한 것도 좋지 않습니다. 저 개인적 생각으로 과함과 그렇지 않음의 기준선은 "진정성"입니다. 진정성 없이 그저 튀어야겠다는 동기라면 인사 담당자에게도 그게 느껴지죠. 


"좋은 자기소개서는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것이다(p65)." 무슨 소리인가 하면 나의 자소서를 정말 빛나게 하려면 RISS 같은 곳을 찾아가서 멋진 논문을 좀 인용하자는 겁니다. 우리는 학교 다니면서 갖가지 교과서, 학술서도 읽고 그 안에 표시된 출처 등도 다 한 번 정도는 구경합니다. 졸업 논문에도 이런 걸 표시하는 방법을 다 배우고 졸업합니다. 그런데도 막상 배운 걸 써먹지를 않죠.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말씀이 옳습니다. 왜 자소서에 논문을 인용하면 안 되겠습니까? 


p77에는 어떤 의뢰인이, 애써 저자가 작성해 준 걸 거부하고 이렇게이렇게 고쳐 달라고 했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그러면 좋은 점수를 못 받습니다." 가르쳐 줬는데도 막무가내입니다. 꼭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살면서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분들이 참 많고, 하나같이 ill-advised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결과가 안 좋으면 이건 또 남 탓을 한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며, 악성 후기를 안 올리겠다는 어떤 다짐을 받아야 합니다. 잘 되었어도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잘해서 결과가 좋았다고 나올 겁니다. 


스펙이 나쁜데도 그 나름의 방법으로 노력하여 성공한 예는 의외로 많습니다. 이 책 p94에도 그런 분이 하나 나옵니다. 저자가 꿰뚫어본 그의 비결은 "성장과정을 스토리로 풀어낸 능력"과 "진정성"입니다. 특히 저는 후자에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스토리 역시 우리 주변에 차고넘치는데, 그게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마음을 끌지도 않습니다. 진정성이란 (그것이 없는 사람한테는) 어찌보면 가장 얻기 어려운 자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문계 졸업자라고 다 글을 잘 쓰는 건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 여타 전공자보다 더 못 쓰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저자는 원래 공대 출신이라 글쓰기를 잘하는 편이 못되었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시는데 제가 겪어 보기로는 공대 출신이 더 조리있게, 정확하게 잘 쓰는 경향도 있습니다. 여튼 이런 저자가 스스로 "긴급처방"아라면서 가르쳐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필사입니다. 필사도 많은 분들이 해 보는 방법이지만 성과가 안 나는 수가 있는데 이건 방법이 잘못되어서입니다(라는 걸 이 책을 읽고 확인하게 되었네요). 저자가 권하는 방법은 맛, 리듬을 느껴 가면서(p114) 필사를 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과정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베끼기만 하면 실력이 늘 수가 없겠죠. 


또, 문장이 아니라 문단 단위로 승부를 보라고도 합니다. 평범한 할머니가 무슨 글쓰기를 능숙하게 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자는 책에서 그런 글을 인용하며 왜 이렇게 아름다움이 느껴지는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것이다" 같은 말투를 남발하지 말라고 합니다. 저도 고치려고 노력하는데 서평 쓰는 데 무한정 시간을 쓸 형편이 안 되어 고치지 않고 그냥 올리는 게 후회가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ppt 같은 걸 만들 때 인터넷에서 막 템플릿을 급하게 찾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게 안 되지요. 책 p158 이하에는 저자가 제시하는 자소서 템플릿이 여럿 나오는데 물론 그런 템플릿은 아니고(그런 건 있을 수도 없죠) 논리 템플릿, 스토리 템플릿 같은 것입니다. 짧지만 엄청 임팩트 있고, 과연 글쓰기의 본질이 뭔지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이 책의 부제는 "SLT 글쓰기"인데 바로 여기서 앞 글자를 따와 만든 말입니다. 스토리와 논리(logic)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SLT.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책의 진가는 3장부터 드러납니다. 왜 구체적인 숫자, 수치를 인용해야 설득력이 생기는가? 소제목은 어떻게 붙여야 하는가? 읽어 보면 아 정말 타인을, 독자를 설득하고 적어도 영향을 끼치는 글쓰기란 이래야 하겠구나 하고 절로 느낌과 각성이 옵니다. 또 신입 자소서와 경력직은 글쓰기 패턴과 강조하는 포인트가 달라야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특히 경력직 지원자는 꼭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읽으면서 자소서 종류가 세상에 이렇게 많다는 점, 또 자소서 등 글쓰기뿐 아니라 면접 방법론도 엄청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이런 게 그냥 잘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극소수이겠으며, 혹 잘하는 분이라고 해도 기왕이면 더 다듬고 더 폭 넓게 통하는 기법을 익히면 좋지 않겠습니까? 사실 자주 불합격하는 사람은 냉정히 말해 그럴 만해서, 자격이 없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다듬어 봅시다. 남한테 지적 받고 고치는 것보다 나으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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