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포식자들
장지웅 지음 / 여의도책방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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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짜 문제를 보는 사람 눈에 돈이 (비로소) 보이기 마련이다(p73)." 사회 초년생이라서 돈의 흐름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지 모른다면 우선 주식 투자를 소액이라도 해 보는 게 낫다는 권유가 있습니다. 이때 전문가 누구누구의 추천 같은 걸 듣고 따라하는 식이라면 아무 소용 없고, 자신이 직접 정보와 뉴스를 분석하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시도해 봐야 합니다. 물론 잘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 큰손, 기관투자가, 재벌 상속자 등이 무슨 생각을 갖고 결정을 하겠는지 생전 처음으로 한번 생각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돈을 벌려면 돈 많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입장에 먼저 서 봐야 한다"는 단 한 마디로 그 내용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니 돈 없는 사람이 그 입장에 어떻게 서?"라든가, 결국 가진자의 입장만을 충실히 대변하는 머슴의 논리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만약 "주식해서 돈 좀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라고 하면 아무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겠습니다. 똑같습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태어나 완전히 틀을 당장 갈아엎을 게 아니라면 누가 경쟁에서 구태여 손해를 보고 싶어하겠습니까. 이 책의 내러티브가 마음에 안 든다면 최소한 "게임에서 패자가 되지 않는 소소한 기술 전략 소개" 정도로만 받아들여도 좋을 듯합니다. 


"진정한 포식자들은 이미지가 아닌 실익을 따진다(p73)" 이 책 초반부에는 어느 유명한 금융인이자 책 저자분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자세히 나옵니다. 이 저자분의 입장은 결론적으로 "그가 틀렸다"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 유명 전직 금융인이 정계에 반쯤 발을 들여 놓았었는데 왜 더 밀고 나가지 않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현재 합당이 논의되는 어느 정당에 소속된 분인데 아직 국회의원직은 얻지 못했습니다. 여튼 이 책 저자는 "이 게임판에서 수익을 얻고 나오려면 현실의 냉정한 논리를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주장의 요지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차피 사회에서 논쟁을 벌여봐야 결판이 나지도 않는 논쟁에 몰두할 게 아니라 무엇이 돈이 되겠는지에만 집중하자는 겁니다. 


예전에도 한국에는 굴지의 재벌들이 있었지만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았고(적어도 지금처럼은), 금융 시장이 완전 개방된 게 아니라서 외국계, 혹은 외국계를 가장한^^ 검머외의 돈뭉치가 국경을 넘어 마음대로 활개치지를 못했습니다. 정부가 권력을 발동해 기업을 부도낼 수는 있었지만(겉으로는 은행의 채권 회수) 지금처럼 이런저런 무서운 사모펀드가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여 남의 기업을 꿀꺽하는 일은 좀처럼 힘들었습니다(정경유착도 있고 해서 보호가 되었고). 저자는 책 곳곳에서 "기업 하나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창업주와 그 가족들이 애를 쓰는 줄 아는가?"라면서 예를 들어 SK그룹의 하이닉스 지배를 둘러싼 노력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물론 저자분의 취지는 잘 이해하지만 하이닉스는 본디 LG반도체, 현대전자가 외환위기 당시 떨어져 나와 주인없이 배회하며 사원들이 기를 쓰고 살려 놓은 걸 SK가 이후에 잘 접수한 것입니다. SK는 이처럼 기(旣) 우량기업의 인수에 능한 곳이었죠. 5공, 6공때부터. 물론 "일감몰아주기가 잘 없는 기업(p43)"이란 평가에는 동의합니다. 


p30 이하에는 의미심장한 분석이 나옵니다.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씨는 오랜 와병 중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 마침내 별세했습니다. 이때 상속재산의 최종 처리를 놓고 어떤 움직임이 있을지에 대해 증권가에서 엄청난 분석들이 있었죠. 온갖 시나리오가 난무했는데 이런 추측들은 기본적으로 주요 플레이어들이 어떤 입장인지를 알아야 정확한 결론이 나옵니다. 하우스나 개별 애널리스트들은 대외용으로 온건하게 발표하는 게 있고, 대내적으로는 따로 머리를 굴리고 정보를 수집해 가며 결론을 냅니다. 이 책에는 고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와 그 두 따님들이 어떤 입장인지에 대해 (독자가 읽기에 따라) 미묘할 수 있는 추정을 제시합니다. 왜 저렇게 이재용 회장의 안색이 좋지 않느냐에 대해 오피셜한 답변이 있을 수 있고, 뭐 이 책에서 은근 암시하는 듯한 다른 시나리오를 따르자면 또다른 추정이 가능하죠. 참 세상은 무서운 곳입니다. "재벌은 재벌 외에 아무도 모를 다른 고충이 있다(p221 등)"는 저자의 말은, 이 점을 고려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도 들립니다. 가정이 화평한 모든 서민분들은 복 받은 줄 아십시오. 아마 이 책의 다른 부분에 소개된 손 모 전 의원님도 남모를 다른 고충이 있으셨겠죠? ㅜ


"먼저 먹는 놈이 임자였다(p165)" 그만큼 시세조종, 다른 말로 주가조작이 쉬웠다는 소립니다. 저자가 20년 전으로 특정을 하시니 대충 뭘, 또 누구를 염두에 둔 말인지 짐작이 갑니다. 이때 정말 대한민국은 돈의 흐름이 크게 움직였죠. 점쟁이한테 왜 여아인줄 알려 주지 않았냐고 따지자 "소중한 생명이..." 운운하며 둘러대더라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은 사람이죠. "역으로 간다"던 어느 스포츠 해설가의 말재주도 생각이 납니다. 


사실 주식투자를 할 때 동업자의 시선(p110)으로 볼 줄만 알아도 양반입니다. 하수들은 아예 시선이라는 게 없거나, 자신에게 그저 목소리가 좋다 얼굴이 잘생겼다 왠지 끌린다 같은 느낌을 준 전문가를 좇아 개인숭배 패턴으로 투자(?)를 합니다. 이런 단계에서 벗어나 "맞아, 나는 소액일망정 주주이니 회사의 주인 중 하나야, 그러니 동업자의 시선으로 봐야지" 정도로만 마음 먹어도 그건 박수를 쳐 줘야 할 일이죠. 그런데 저자는 그것도 곤란하며, "최대주주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맞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리딩방에서 "선생님뿐 아니라 저희와 협업하는 모든 분들이 같은 정보 하에 움직입니다. 그럼 주가가 안 오르고 배기겠습니까?"라는 말에는 바로 혹합니다. 이런 합리적인(?) 판단을 하시는 분들이, 몇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최대주주의 시선으로"라는 제안에 설득되지 않을 이유가 뭐겠습니까. 돈뭉치 사이즈 자체가 아예 다른데요. 아 참고로 리딩방의 저런 정보는 설거지용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좋은 정보를 "제때" 줄 리가 없죠. 


첵 후반부에는 일본에 대한 호된 질타가 나와 다소 놀랐습니다. 사실 읽으면서 혹 일본의 안정된 시스템에 대한 예찬이 나오지 않을지 조마조마했기 때문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일본은 우리처럼 기호와 이름이 인쇄된 투표용지에 도장을 간단히 찍는 시스템이 아니라 한자로(!) 후보자의 이름을 일일이 쓰는 식입니다. 하... 물론 미국에서도 19세기까지 저런 방식을 유지했습니다만 이건 뭐 말도 안 되는 거죠. 상세한 내용은 책을 직접 읽어들 보시고, 저자의 결론은 머지않아 일본은 생산성 저하로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다는 겁니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장인정신이 더이상 필요없다"는 말도 나옵니다. 얍삽한 이탈리아인들이 이 격동기에 가장 앞서나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일본에서 돈 버는 건 현재 대부업체들뿐입니다. 플라자 합의 후 제조업이 무너지고 혁신 정신이 사라진 대가를 치르는 거죠. 우리 나라에도 한때 숙녀 전용 대출이니 뭐니 하는 게 많았는데 ㅎㅎ 물정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와 여성을 존중하는구나 싶지만 전~~혀 아니고 "여성은 겁을 잘 먹어 추심이 쉽기 때문(p311)"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중국에 대해서도 미래를 암울하게 봅니다. 문화를 정부가 나서서 통제하는 나라에서 알리바바가 아마존이 될 수 없고, 애플이 화웨이가 될 수 없습니다. 위안화가치를 계속 낮춰 저가 수출을 유지하고 싶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환율을 국제시장이 용인하겠으며 기축통화로서의 신인도 획득이 가능하겠습니까?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권경민 사장은 "솔직히, 임동규가 생각해도 강두기잖아?"라고 했습니다. 이 책 저자는 "중국인이 생각해도 달러를 선택할 것 아닌가?"라고 묻습니다. "조증의 중국과 울증의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그 특유의 화병만 버리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말미에 짐 로저스의 예는 좀 뺐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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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진상 - 인생의 비밀을 시로 묻고 에세이로 답하는 엉뚱한 단어사전
최성일 지음 / 성안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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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단어라고 해도 그 의미를 곰곰 뜯어 보면 생각지도 않은 심오한 의미를 만나는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일반 독자들 능력으로는 "뜯기"가 쉽지 않기에 이런 책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데 그 결과가 반갑기도 하고 충격이기도 해서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혼자(혹은 집단적으로) 착각 속에 사는 것보다야 진실을 아는 편이 낫겠죠. 단어뿐 아니라 세상사 모든 게, 차라리 속시원하게 "진상"을 아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략 십 년 전부터 내비게이션이 일상화되었는데 책에서는 경로를 안내해 준다며 편의를 제공하려 드는 우리 주변에 온갖 내비들, 인간 내비, 조직 내비, 광고 내비 등 온갖 안내자들이 기실 사이비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독특하게도 작가님은 부모 관계에 그게 빈발하다고 하네요. 저는 남친 여친을 가장한 가스라이터 같은 걸 먼저 떠올렸는데... 그럼 부모 관계에 어떤 가짜 내비가 성행하는가. 원치 않는데도 의대를 가라는 부모, 공무원 시험을 강요하는 부모, 특목고 가라는 부모(p61).... 자녀 입장에서는 하긴 난감할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일단 공부해서 남 주냐는 생각이 우선 들며, 그래도 (부모 욕심도 물론 있겠으나) 일단 나 잘되라고 사회에서 나 무시 받지 말라고 번듯한 간판 만들어 주려는 부모님 간섭이 뭐 그리 나쁜 것이겠나, 최소한 인간관계에서 "의도는 좋았다" 정도만 돼도 얼마나 고마운가, 이 세상에는 처음부터 뻔뻔스러운 도둑놈 심뽀로 남을 벼랑으로 몰고 자신은 지갑만 쏙 빼가려는 (그나마 멍청한) 강도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걸 놔 두고 그나마 자신을 돌보려는 부모를 원망한다는 건 좀 생각해 볼 일 아닐까 싶습니다. 


제일 무서운 게 거울(p78)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요즘 손쉬운 남탓이 성행입니다. 정치인이 썩었다, 재벌은 해체해야 한다, 뭐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데, 작가님은 거울이 제일 무섭다고 하네요. 거울을 보는 순간 아 저게 나구나, 저렇게 초라하고 저렇게 흠 잡을 데가 많구나. 사실 "진상"이라는 게 나 자신을 향할 때 어찌보면 제일 부담스럽습니다. 누가 나 자신의 허점, 약점, 상처... 이런 걸 제대로 응시하고 싶겠습니까? 예전에 저는 테드 창의 단편을 읽으면서 사람의 급소를 찔러 즉사에 이르게 하는 건 어떤 무공의 비급이 아니라 자신의 나쁜 기억을 모아 한 번에 재생되게 하는 신공이라는 서술을 접한 적 있습니다. 엉터리 같은 선동으로 보잘것없는 자신을 망각하고 과대포장 푸닥거리로 현실을 도피할 게 아니라 먼저 자신의 내실을 다지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일을 안 만드는 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도 더 높은 우선순위를 갖습니다. 


"이별 후에야 사랑의 소중함을 안다(p140)." 이 파트의 결론은 간단히 말해서 "있을 때 잘하자"이겠는데 다소 이기적으로도 보입니다. 있을 때 잘해주지 않았던 것도 이기적이고, 막상 없으니까 아 차라리 걔라도 있는 편이 나았는데, 이 역시 이기적이지 않습니까? 다시 오면 잘해 주겠다는 게 왜 이기적이냐고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내 마음 편하자고, 혹은 꿩 대신 닭이라도 옆에 붙들어 두려고 계산적으로 잘해 주는 거라면 이 상황에 그녀(혹은 그)는 또 소외되는 겁니다. 기왕 이별 후에 소중함을 알았거든, 이번에는 내 자신부터가 다른 사람으로 좀 거듭나 봅시다. 남 주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늦은 시각 귀갓길에 사람 별로 없는 버스(책에선 시내 버스가 나옵니다만 광역이나 시외도 마찬가지입니다)에 앉노라면 온갖 센치한 기분이 다 듭니다. 내 차 안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운전대를 잡는다는 자체가 삭막해지니. "서로에게 아무도 아니고 아무도 되어 줄 수 없는 공간(p168)" 물론 되어 줄 수도 없지만 되어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서로 모른척하는 게 오히려 매너이죠. "알고 보면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 물론 당초에 행선지가 같으니 같은 버스를 탔겠으나 뭔가 그 이상의 공통점이 있을 것도 같죠. 


"선천적 DNA가 100% 유전되지는 않듯이, 후천적 DNA도...(p205)" 그런데 후천적인 건 애초에 유전이 안 됩니다 생명과학 교과서에도 나오죠. "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고. 세상이 그나마 이 정도까지라도 온 건 나쁜 유전자만 있었던 인간이라는 동물이 그나마 악착같이 발버둥쳐서 자신의 힘으로 개선시킨 바 만큼이라도 후손에 물려주려 난리를 쳤기 때문입니다. 유전이 안 되는 걸 악으로 깡으로 되게 만든 게 인간인데 그 후손들이 이처럼이나 편의를 누리면서 남탓 환경탓을 한다면 그게 어디 인간 값어치를 한다고 말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나무 위로 동굴 속으로 도로 돌아가는 편이 낫겠죠. 


"장기 복용해도 말귀를 못 알아먹을 수 있음(p241)" 이 세상에는 참으로 큰 아이러니가 뭐냐면, 가장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오히려 남더러 제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고, 반대로 알아먹는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적반하장"이라 할 수 있죠. 가장 씨게 교화되어야 할 인간이, 거꾸로 남을 교화시키려 듭니다. 혹 사회가 뜯어고쳐져야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런 적폐부터를 싸그리 도려내어야 마땅합니다. 정 못 견디겠으면 이 책 p290에 나오는 대로 "누구에게나 불면의 시간은 오게 마련이니 애써 극복하지도 말고 반항하지도 말며" 그렇게 그냥 버틸 일입니다. 이미 익숙하지 않습니까. 


"시로 묻고 에세이로 답하다" 말그대로네요^^. 마음이 답답하고 세상이 내 뜻 같지 않을 때 펼쳐 놓고 읽어 보면 좋~을 책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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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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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영화로 개봉된 <라스트 듀얼>의 원작 도서입니다. 나무위키 같은 데를 보면 이 책을 "원작 소설"이라 소개하는데 에릭 재거 교수가 쓴 이 책은 논픽션입니다. 원작이기는 하나 원작 "소설"은 아니라는 점에서 수정될 필요가 있죠. 논픽션도 소설적 재미를 첨가하거나 작가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사하여 독자를 자극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도 않고 철저히 논픽션 본령의 경지를 추구합니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이미 십여년 전 <킹덤 오브 헤븐>이란 대작 속에서 수준 높은 고증, 품격 있는 세계관 등을 잘 녹여낸 시대물을 관객에게 선사한 바 있습니다. 저는 아직 <라스트 듀얼> 영화판을 보지는 못했는데, 시대는 저 대작과 비슷한 구간입니다. 이 책이 워낙 깐깐하게 학문적 근거를 철저히 의존하면서 저술된책이라서, 논픽션 읽는 보람, 혹은 헤비 역덕들에게 진실을 추적하는 재미는 확실히 있습니다만 극적 흥미가 두드러져야 할 역사 소재 영화에서 과연 얼마나 재미있게 구현되었는지는 잘 상상이 안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엇이 되었든 간에 책 원작을 언제나 먼저 읽고 영화를 본다는 주의이지만 이 책만큼은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의문이 생기는 바가 있으면 책을 참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래 백년전쟁하고 십자군이 많이 겹칩니다. 왕이 기사, 영주들을 몰락시켜 가며 서서히 nation을 만들어가는 큰 과정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보통 십자군을 현지 이슬람 세력에 대한 부당한 군사적 침공으로만 간주하고, 또 이와 관련 얼마 전에 교황청이 사과도 했습니다만 사실 이것은 십자군 캠페인에 대한 다소 협소한 관점의 반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읽어 보면 중세 봉건제의 고전적 틀이 시대 변화에 따라 어떻게 스스로, 혹은 외생변수에 따라 기반을 무너뜨려 가는지 (저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독자가 실감나게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본래 의도는 "한 여인과 여러 영지를 둘러싼 두 귀족 가문의 오랜 반목과 투쟁사의 분석"이지만, 이 상세하다못해 때로는 중언부언되는 듯한 서술 속에는 봉건제의 황혼이 다른 외양을 쓴 채 장엄하거나 종종 난감할 만큼 추악하게 묘사됩니다. 이 논픽션 속에서 싸워 대는 두 가문의 수장은, 마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 기업의 turf를 빼앗기 위해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고 때로는 정계와 관계 유력자를 구워삶는 반칙을 일삼는 행태나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 중세를 배경으로 삼은 여러 전형적 문학은 거의 접할 길이 없습니다. 인기가 떨어지니 시장성이 없어서 출판사가 찍어내질 않기 때문이며 이걸 현대 독자들이 읽어 내게끔 잘 손질할 인력도 부족하고 연구도 미진합니다. 반면 저들 구닥다리 문학을 풍자하려는 의도로 나온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정작 원 풍자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르면서 열렬히 읽습니다. 원작은 실종된 채 패러디만 남았으니 그 패러디의 가치와 성취가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으면서 명작이라 칭송하는 건 어찌보면 난센스입니다. 아마도 그 빈 자리를 이런 역사 재구성-복원 목적의 논픽션이 채워 줄 것 같습니다.


저는 얼마 전 요나스 요나손의 해학 소설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를 읽었습니다. 그 소설의 서두와 이 논픽션의 도입부가 참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사실은 요나스 요나손이 이런 유의 논픽션을 자신의 소설에서 차용, 패러디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실감을 증강하기 위해 인물들의 족보를 길게 서술하는 형식이 그렇다는 겁니다. 저자인 에릭 재거 교수는 이런 논픽션의 서술 정석에 아주 충실히 맞춰 책을 써 나갔으며, 아마 이런 형식이 덜 익숙한 독자로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파편적 기록을 효율적으로 취합하여 이런 꼼꼼한 크로니클을 재구성해 낸 업적은 역사 애호가들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내 발품을 대신 팔아서 궁금증을 해결해 준 장인 정신의 산물입니다. 


하... 중세 기사도의 정수는 여성, 존중받고 숭배 받아야 마땅한 어느 고아한 여성 그 미덕과 신분과 품행에의 현창입니다. 반면, 속이 시커먼 악당들은 오히려 이런 미덕을 질시하고 누명을 씌워 사회적 평판 하락을 도모합니다. 이때 이 lady를 옹호하는 자를 챔피언이라 하며 그에 도전하는 적수를 챌린저라고 부르는데 이게 현대에 들어 숙녀는 사라지고 챔피언의 명예, 그를 화체한 벨트가 숙녀의 자리에 대신 놓여 복싱 등 일대일 격투기 스포츠에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우스운 건 이 결투라는 게 신의 의사가 반영된다고 보아, 챔피언이 이기면 그 숙녀의 결백이 증명되었다고 보아 일종의 무죄 판결을 갈음하며, 반대로 도전자가 이기면 그녀의 유죄 입증이 된 걸로 보았습니다. 참 원시적이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사도 문화와 이를 기록, 미화한 중세 문학에서는 이 과정이 더없이 아름답고 숭고한 낭만의 결정체로 여겨졌습니다. 


그 모든 가식과 위선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탐욕스러운 귀족들에게 사실 여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논픽션에서도 겉으로는 르그리 가문과 카루주 가문의, 특히 장 4세 카루주 측의 여주인 그 명예를 놓고 싸우는, 사내들의 엄청난 결단과 용기의 표출인 듯 보이지만, 그 실질은 재산 싸움입니다. 종기사 레벨에서도 소출이 높은 알짜 땅을 놓고 이처럼이나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종래의 우정이나 연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상위 귀족인 백작이나 왕 등도 그저 책략과 친분에 의해 부동산의 귀속을 결정할 뿐 민사적 정의나 합리성에 대한 판결은 흔적도 없습니다. 결혼 역시 전적으로 가문의 실리만을 염두에 둔 철저한 정략의 산물이니 외도와 불륜과 사생아 출산이 난무하며, 재산을 상속할 적자들 사이에 나눠줄 몫의 확보가 바로 이런 추잡한 재산 다툼의 근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군의 약탈 원정 그 근원적 동기도 결국 이처럼, 한사 상속에 따른 재산 감소와 차자 이하의 몫을 찾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 아니었겠습니까? 땅은 본질적으로 증가시키는 게 불가능하니 말입니다. 마지막 결투라 하면, 당사자 사이에 그저 생사를 판가름하는 더 이상의 이벤트가 없다는 비장한 각오, 평가가 담긴 말이지만, 사실 죽고 죽이는 결투로는 체제와 사회가 지속될 수 없다는 반어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모든 싸움은 그 자체로 야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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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2 -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22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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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연말에 김난도 교수님 팀의 미래의창 <트렌드코리아>를 안 읽고 넘어가면 뭔가 인생을 불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되는 느낌입니다. 어떤 분은 키워드 고안이 갈수록 억지스러워진다고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어차피 분석 대상이 될 만한 크기의 트렌드는 거기서 거긴데 뭐 매년 새로워질 게 있냐고도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이 다 가능합니다. 또 저자진 역시 그런 비판을 의식하는 흔적이 역력하게 매년 새 책에 반영이 됩니다(눈치 빠른 독자는 다 눈치 채죠). 의식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적극적으로 피드백까지 됩니다. 


뿐만 아니라 벌써 몇 년 전부터(아니, 거의 초기 버전부터) 작년 책에서 트렌드라고 예측한 바에 대한 상세한 리뷰까지 첨가하는 게 이 시리즈입니다. 다만, 저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올해판부터 편제상으로는 이 부분이 생략된다는 겁니다. 뭐 여튼 결론은, 적어도 산업계의 동향과 시장의 바람 그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안 훑고 넘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아니 적어도 자신만의 어떤 관점을 갖고 세상을 주시하는 사람이라면 김난도 팀과 내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만이라도 비교를 해 보고 싶어진다는 거죠. 


올해가 소띠 해였는데 어째 연초를 제외하곤 아무도 관심 안 기울이는 듯합니다. 여튼 올해가 소띠였으니 내년에는 호랑이띠겠는데... 책에서는 "TIGER or CAT?"를 타이틀로 내세웁니다. 뭐 저 말만 봐도 저자팀의 일차 의도가 무엇인지는 짐작이 되지만 좀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저 타이틀의 "벼리 키워드"는 "나노 사회"라고 하네요. 이 말은 거의 20년 전부터 산업계의 핵심 동력 중 하나인 나노공학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거리두기 때문에 개인 단위로라도 필사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의 절박한 "돈 벌기 욕구"를 특히 유념했다고 밝힙니다(p13). 또 우리 독자들이 언제나 관심 많은 서브 키워드로 破字(?)에 들어가자면 특히 T에서 "트랜지션 인투 나노사회"로 풀기 때문에 벼리 키워드가 서브 레벨에서 다시 등장하는 셈입니다. p13 이하에 10개 두문자(타이거와 캣 뿐 아니라 연결사 or도 포함입니다)에 대한 설명이 나오므로 정 시간 없는 분들은 이 머리말이라도 정독을 할 필요가 있겠네요.


머리말에서도 잠시 언급이 있었지만 보복 소비라는 것도 한계가 있고 어차피 코로나 이전부터 그리 방향을 틀었던 만큼 이제 코로나 치하(?)에서 한번 방향을 잡은 건 다시는 예전으로 안 돌아간다는 게 이 책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언택트와 콘택트가 조화를 이루며(p30)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도 이 언택트 추세에 빠르게 적응했다는 겁니다(p31). 음... 트렌드에 대해 거의 무관심했던 이들도 코로나 19가 세계를 휩쓴 후에는 주식 투자건 일선 현장이건 언텍트다 뭐다 하는 트렌드에 대해 거의 생존 차원에서 관심을 안 기울일 수가 없겠는데 한국에서 이런 트렌드 분석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아직도 언택트를 짚어 준다는 점에서 고마움까지 느꼈습니다. 그동안 혼자서 너무 멀리 안 나가 주신 데 대한... ㅎㅎ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일단 분석이 구체적이고 한국의 실정에 미세초점까지 다 맞춰 준다는 점입니다(반복되지만, 전년도 책에 대한 리뷰가 있다는 것 역시). p117 이하에서는 중고시장, 바이백(N차 신상), 구독시장 등에 대해 자세히 짚습니다. (온라인) 중고시장이야 그전부터 있던 거지만 요즘은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탈바꿈하며 당OOO처럼 근거리 가입자만을 연결하는 새로운 포맷도 등장하죠. 컨셉 구독, 토털 구독 등 갈수록 세분해가는 구독 서비스도 자세히 소개합니다. 참, 구독이라는 건 본래 신문 등 읽을거리에만 쓰는 말이었는데 영어의 subscription을 그대로 갖다쓰다 보니 "읽기[讀]"와는 전혀 무관한 영역에까지 적용됩니다. 물론 이 책뿐 아니라 모든 다른 책, 미디어에서 다 그리 쓰긴 합니다만. 여튼 한국의 실정에 대해 이리 자세한 분석이 이뤄지는 건 오로지 이 미래의 창 시리즈만의 특장점입니다. 


10대 트렌드 상품. 역시 이 책만의 기대되는 feature이며( 요즘은 각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꼽는 올해의 10대 뉴스 같은 게 궁금하지 않고 올해는 김난도 교수님이 뭘 뽑으셨을지가 궁금합니다. 물론 책에도 나오듯이 설문조사 등 체계적 메소드를 거칩니다만 이 절차 역시 해당 연구진만의 고유한 개성이 있죠. 다만 개별 상품이 아니라 상품군이라는 게 저 개인적으론 아쉬워서 다음부터는 과감하게 개별 상품도 좀 선정하시면 어떨지 희망사항을 가져 봅니다. 


이제 이 책의 본론이라 할 수 있는 2장에서 본격적으로 10개 키워드 전망이 시작됩니다. 트렌드의 미세화, 노동의 파편화, 산업의 세분화 등이 선도하는 게 바로 나노사회로의 이행(트랜지션)인데, 이 안에 긱(gig) 노동도 들어가고 요즘 논쟁이 첨예하게 붙은 공정성 이슈도 포함됩니다. 이에 저자가 강조하는 가치는 공감력 증대와 세렌디피티의 가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후자는 기술만능주의의 지양도 함축합니다. 


"피어 오브 미싱 아웃"을 줄여서 포모라고 하는데 이 현상과 "머니 러시" 즉 돈벌이에 대한 강박을 연결시킨 분석이 흥미롭습니다. 어떤 강남 건물주는 그냥 노는 게 아까워서 배O 라이더를 한다는데 한국 특유의 실용주의를 반영하는 면도 있으나 이 책의 관점에 연관시키자면 그 역시 일종의 강박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만의 강점은 그저 건조한 마케팅용어나 경영학의 툴(tool)만 동원되지 않고, 풍부한 인문적 전거와 상경 영역 외적 개념이 풍부하게 끌어와진다는 점입니다. 


베블렌은 백 수십 년 전 미국이 속물사회로 맹렬한 몸부림을 펼칠 때 만연하던 현상을 "속물적 소비"라는 짧은 말(과 체계적 분석)으로 잘 요약한 학자이며 유시민 같은 사람도 그의 책에서 소개한 적 있습니다. 이걸 두고 책에서는 "득템력"과 연결시키는데, 확실히 무슨 플랙스라든가 험블브래깅 같은 것도 베블랜적 관점에서 보는 게 더 포괄적인 이해를 돕습니다. 그런데 특히 MZ세대가 이런 득템 활동에 민감하고, 기존의 온오프라인 매장은 이런 취향을 빨리 이해하여 이들에게 "판"을 깔아주라고 책은 조언합니다. 


러스틱 라이프는 이 책의 표현에 의하면 "촌스러움의 트렌드화"입니다. 미국에서 러스트 벨트라고 할 때의 그 러스트입니다. 이 배경을 두고 코로나 사태가 가속(p263)한 면이 있다고 합니다. 마치 <데카메론>에서처럼 전염병을 피해 사람이 덜 붐비는 시골로 일시 피하여 그곳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도심 복귀 후까지 이어진다는 거죠. 저자는 이를 젠트리피케이션 회피와 임팩트 투자에까지 연결시킵니다. 트렌드 분석의 묘미와 요체는 연결에 있습니다. 


길티 플레저(p277)가 아니라 헬시 플레저라고 이 팀이 새로 말을 코이닝할만큼 우리 주변에는 이제 헬스에 미친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 장에서 다루는 "헬시"는 피트니스 관련 운동만 말하는 게 아니라 두루 건강을 챙기는 모든 액티비티와 산업을 다 포함합니다. 건기식은 노인층만 찾는 게 아니라 이제 젊은이들도 관심을 가지는 영역이며 이 역시 코로나가 촉진한 바 큽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시리즈는 지난해판에 대한 리뷰가 따로 있었으나 올해부터 전년도의 10대 트렌드 분석이나 본문 중의 이런저런 코너로 회고 파트가 분산 이동되었습니다. 이 중 바른생활 루틴이 트렌드는 2년 전의 "업글인간"과 맥이 닿는다고 합니다(p331). 실재감 테크라고 하면 요즘 핫한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캣의 C를 뽑아 커넥트와 연관짓습니다. 다중감각, 동시성, 체험성 등의 3요소를 이 실재감의 핵심으로 꼽네요. 얼마 전 이재용 홍라희 모녀가 통도사를 방문하여 원본과 똑같은 <반야심경>을 선물했다는 기사도 떴는데 역시 실재감이란 이 시대의 핵심 트렌드 중 하나입니다. 


라이크커머스라고 들어 본 적 있을까요? "좋아하면 산다"고 책에선 요약합니다. 책에서는 C2C, D2C와 함께 H2H 모델을 이 라이크 커머스의 3대 핵심으로 꼽습니다. 기호와 지향점이 같은 휴먼끼리의 상거래를 가리키는데 어쩌면 사람 사는 세상의 모든 거래는 이 형태로 수렴하지 않겠나 싶기도 합니다. 고양이로 움츠려 들 게 아니라 시장에서 호랑이로 군림하려면 이 복잡한 세상에서 무엇이 핵심인지 잘 꿰뚫어 봐야 하겠습니다. 역시 명불허전 김난도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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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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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금 이 책은 그의 모든 저작들이 그 본문 중에서 일일이 참조하는 레퍼런스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읽어도 재미있고 유익한 지식의 보고죠. 초판이 나왔을 때는 이렇게 두껍진 않았는데 이제는 하루이틀 독서로는 감당이 안 될 만큼 분량이 많고 깊이있어졌습니다. 이 책을 제목대로 "백과사전"으로 읽어도 좋지만, 베르베르의 문학세계 압권이기도 한 만큼 책을 요리조리 뜯어보면 독자 나름대로 문학 해석론 하나가 머리에 절로 그려질 정도가 됩니다. 


특정 작품만을 꼽을 게 아니라 최근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두 작품에서도 그렇고 베르베르의 작품에는 세계사적 사건이 자주 언급되는 편입니다. 여기에 항목으로 게시된 사건들의 설명은 작품 본문에도 비교적 상세한 편인데, 이 책은 아예 레퍼런스로 작정하고 만들어진 책이니까 더 자세하죠. 


이 개정판은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듯이 이전판과는 항목 순서를 좀 달리 배치했습니다. 이전판보다는 개별 작품에 언급된 연관성으로 더 항목들을 가까이 묶어 놨고, 그래서 백과사전 성격보다는 개별 작품 해설의 성격이 더 강해지지 않았나 하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반 독자 입장에서야 그냥 백과사전으로 읽어도 좋을 만큼 절대적(?)인 내용 정확성은 여전히 높으며, 상대적(?) 성격은 그저 재미를 더하는 정도입니다. 너무 상대적 요소가 덜하면 우리 독자들이 베르베르의 글을 읽는 특유의 끌림이 덜하겠죠. 


독자에 따라서는 순서가 더 백과사전 같았던 이전 판이 편제면에서 더 그리워질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갈래사전과 작품 사전 그 중간쯤으로 위치를 이동한 듯도 합니다. 다만, 다만, 두께와 내용 보강 면에서는 (당연한 소리지만) 이 최신판을 이전판이 도무지 대체할 수 없습니다. 


서양 역사에는 별 괴짜 같은 사람들이 다 등장하여 희한한 소리를 학문의 탈을 쓰고 늘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석학 故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 중에 자주 등장하죠. 그런데 간혹은 현재까지 그 성과가 자주 언급되며 해당 학문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되는 사람 중에도 기괴한 설을 푸는(풀었던)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p124의 파라켈수스 같은 이가 대표적인데, 출간 당시 큰 인기를 끌었고 저도 오래 전에 독후감을 남겼던 <제3인류>에서도 언급되었고 (아마도) 베르베르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사람이죠. 


모세는 특정 작품을 가릴 게 아니라 베르베르의 거의 모든 작품에 지나가듯이라도 한 번 정도는 언급이 되는 위인이죠? 우리는 기독교 신자 아니고서는 큰 관심도 없지만, 서양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예속 상태를 끊어내고 고난과 선택의 연속이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을 자유로 민중을 이끈 영웅"으로, 종교 떠나서 널리 높이 평가되는 사람입니다. 이 부분 베르베르의 설명은 꽤나 건조하게 팩트 위주로 진행되며 따라서 "절대적" 성격이 강합니다. 물론 읽기에 유익하지만 작가만의 "상대성"이 좀 발휘되었더라면 아쉬움이 여전히 이 개정판에서도 남습니다. 


p223에는 네로가 등장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번안가요 <검은 고양이 네로>를 떠올릴 수 있는데 노래 속의 네로는 "네그로"가 변천된 형태로서 그저 검다는 뜻입니다. 반면 고대 로마에서 저 황제의 이름에 쓰인 단어 "네로(당연히 라틴어이겠죠)"는 사내답다는 뜻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네로의 악행에 대해 가장 실감나게 설명한 출전은 문학 중에서는 시옌키비치의 <쿠오 바디스>였고, 논픽션 중에서는 콜린 윌슨(<아웃사이더>의 저자)의 <잔혹(원제는 [세계 범죄의 역사])>이었습니다. 짧지만 베르베르의 이 버전도 무척 풍자적이고 강렬합니다. 


p174에는 아즈테카인들이 상상한 종말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 역시 내용이 보강된 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최신작들에서 자주 이 사항이 언급되었기 때문입니다. 네 번의 태양기를 거치며 파멸과 생성을 거듭했는데, 그리스 신화와도 유사하고 종말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유대 설화(나아가 기독교관)과도 닮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베르베르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과정이 미래에 반복될 수 있다"는 겁니다. 반복의 본성은 동아시아 여러 문명의 세계관에서 언제나 염두에 두는 것이죠. 정말로 북미 원주민들이 시베리아에서 합류하여 베링 해협을 건너간 이들의 후예라면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p387에는 군신 아레스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베르베르는 본문이 아니라 각주 안에서 아레스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 설명합니다. 아마도 자신의 취향과 관점에 의해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타 문헌의 단순 인용에 불과한 건 이리 처리하는 듯합니다. 여기서도 "남자다움"이라는 뜻이 환기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캐릭터 중에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아니 신인데요. 마치 <수호전>의 흑선풍 이규라든가 벽초판 임꺽정에서 곽오주 같은 게 생각나곤 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요즘은 한국의 이런저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일상적으로 논의될 만큼 대중화된 토픽입니다. p468에는 다소 짧은 분량으로 설명되는데 베르베르만의 통찰이 궁금한 독자로서는 예전판이나 지금이나 다소 아쉬운 부분이죠. 그런데 마지막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고 있는 건 오로지 고양이뿐이다." 그렇긴 할까요? 고양이가 자신이 산 줄(혹은 죽은 줄)아는 것과 "절대적으로" 살아 있는 상태라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어찌보면 이야말로 지식의 상대성과 절대성을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 될 듯도 한데요.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관점"이라는 짧은 우화를 베르베르가 소개합니다. 마치 예전 책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 같은 책에 나올 법한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이 책에서 직접 읽어 보시고.... 살고 죽음의 판단 주체가 되려면 (이 이야기의 프레임을 빌리자면) 그걸 개구리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지, 아니면 사람의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야할지를 먼저 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정하는" 건 또 누구여야 할지. 


"과연 누가 피해자들의 위대함을 이야기해줘야 할지(p408)." 그런데 중국사에서 이를테면 조송 초기에 사천(쓰촨)에서 대거 학살이 이뤄진 탓에 오늘날 그 지방에 사는 이들은 사천 원주민의 특성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중원인들의 개성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서하인들도 몽골에 의해 절멸되었죠. 오늘날 동아시아인들이 기억하는 건 위대한 중화문명의 면면한 역사뿐이지 소수자로서 기록말살형까지 당한 숱한 그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습니다. 어떤 논자는 그 와중에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한 한국인들은 그 생존 자체가 기적이라고도 하는데 그래서 중국이 한국을 못 잡아먹어서 저리 이를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 소르망은 예전에 한국이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뿐이라고도 했죠(뭔지는 직접 찾아보시길). 아 참 그래도 서양 문명이나 서반구 역사는 베르베르 같은 동정심 깊은 옹호자, 기록자가 있어서 우리에게 이렇게 패자의 사연을 전해라도 주지 않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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