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네기 성공대화론 데일 카네기 성공학 (미래지식)
데일 카네기 지음, 이은정 옮김 / 미래지식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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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데일 카네기 자신이 생전에 유려한 연설가이자 강연자였고 소통의 대가였기 때문에 이 책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독자의 각별한 관심을 부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꼭 능란한 화술로 상대의 감탄을 부르게 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내심으로부터의 설복을 끌어내는,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감화까지를 목표로 삼는 보다 고차원적인 방법론인 듯합니다. 대인 관계에서 있어 군자의 마음가짐과 인화를 강조했던 동아시아적 가치와도 통하는데 이런 걸 보면 사람 사는 이치는 동과 서, 고(古)와 금(今)이 다를 바가 없는 듯도 합니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은, 그저 지금 자신이 상대에게 전달하려는 바에만 집중해도 충분한 것을, 이러다가 혹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잊지 않을까, 상대가 오해를 하지 않을까, 갑자기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등등 뭔가 부정적인 상상(p43)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는 특히 "지나친 무대 공포증을 당신 스스로 만들어내지 말라"고도 합니다. 어느 정도의 긴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너무 잘해야겠다, 완벽을 기한다 등의 강박이 자체 좌절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으나 있기는 있습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많이 겪고 또 지도하기까지 해 본 저자 같은 전문가라야 이런 세심한 코칭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청중이 공감하게, 열렬하게 말하라(p60)" 얼마전 어느 정치인이 약간은 갈라지고 째지는 목소리로 연설하는 걸 들었는데 여튼 그 정치인이 청중의 관심사를 정확히 짚기는 했는지 대단한 호응이 나오기는 하더군요. 데일 카네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화제에 자신이 흥분할 게 아니라 그 흥분을 청중에게도 전달하려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 또 "탁월한 연설가를 보면 어느 정도 복음 전도사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고도 합니다. 약간은 신들린 기질 비슷한 게 있어서 청중과 자신을 함께 파르르 떨게 하는 enthusiasm 같은 게 필요하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이건 정말 쉬운 경지가 아닐 듯도 합니다만 그래도 주위에 보면 사소한 소재로도 주위의 공감을 잘 끌어내는 이들이 있고 일종의 genius입니다. 교육수준이나 지능과도 원칙적으로는 무관해 보입니다. 


데일 카네기는 커리어를 통틀어 많은 이들과 소통했고 지도했고 일종의 "치료"도 했으며 적절한 처방을 제시했습니다. p91에는 다소 재미있어 보이기까지 한 일화가 나오는데 여건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 어느 보험회사 영업사원에게 데일 카네기 본인이 "비둘기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보라"고 무신경하게(!) 조언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카네기는 무심결에 생각한 대로 이 "비둘기"라는 주제를 그에게 꺼낸 건데, 의외로 이 영업사원은 비둘기에 대한 책 40권을 읽고 데일 카네기가 무엇을 그에게 처방하려고 했는지 성의 있게 알아내려 했던 거죠. 일종의 위약 효과라고 할까, 그는 카네기가 의도한 바를 훨씬 넘어 열중과 천착의 대상을 찾아 집중하던 중 자신이 그간 무엇이 부족했는지 (카네기도 모르는 사이에) 답을 찾아 성공의 길 입구를 스스로 마련했다고나 하겠습니다. 비둘기가 대체 그의 영업 스킬에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무성의하게 막 던진 일종의 가짜 화두였으나 그의 믿음(?)이 결국 그를 살린 것입니다. 혹 비둘기 아니라 비둘기 똥이었다고 해도 그의 진지함과 열정이 결국은 좋은 효과를 내었을 거고요. 


"허세를 부리지 말라. 이는 모든 청중을 삽시간에 당신의 적으로 만드는(p108) 특효를 낸다. 반면 구태여 비굴할 필요까지야 없으나 겸손, 겸허의 자세는 호감과 존경을 끌어낼 수밖에 없다." 강연과 연설의 대가였던 데일 카네기의 입에서 과연 나올 법한 말입니다.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고 허풍과 과시를 일삼는 자를 싫어하는 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래서인지 p109에는 공자의 가르침이 인용됩니다. "미국의 방송계는 버텨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가 드는 모범적인 예는 당대 미국의 방송인 에드 설리번(1901~74)인데 우리 한국이라면 유재석 같은 이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추상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데일 카네기는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말을 시작하라(p123)"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데일 카네기의 자계서는 두루뭉술하고 현학적인, 혹은 뼈대만 앙상한 교훈으로 채워지지 않고, 언제나 누구누구가 이런 삶을 살고 이런 식으로 상황에 대처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언제 어디서 산 사람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그 이야기가 구체적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실제 삶에 참고로 삼을 만하겠다며 청중과 독자들이 대뜸 관심을 갖는 거겠죠.


소통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청중의 집중력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이런 판에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를 산으로 바다로 진로를 바꾸면서 장황히 늘어놓아 봤자 누가 관심을 갖겠습니까. 데일 카네기는 그럴 바에 "한 가지 주제만 잡아서 집중적으로 파고들어라(p135)"고 말합니다. 일화에서 소개되는, 사무실의 하잘것없는 일에까지 일일이 꼬투리를 잡는 존스 사장님처럼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합니다. 사장은 사장답게 사장이 할 일에만 집중하면 충분하고 또 그래야만 직원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지난시대 미국의 위인은 대개 유려하고 박식한 문필을 구사하는 능력이 필수 요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편안한 구어(口語)를 잘 써서 대중을 사로잡는 이들도 있었는데 데일 카네기는 이런 쪽의 대가로서 링컨과 우드로 윌슨 두 대통령(p148)을 꼽습니다. 구어를 잘 구사하여 최고의 직위에까지 올랐다는 건 그만큼 대중과 잘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현대에서는 최우선순위에 놓인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네 말의 의미를 새총으로 (대충) 맞히지 마라. 꼭 해야 할 말은 권총으로 정확히 적중시켜야 한다." 명언이죠. 


이 책은 완역본답게, 본문에 역자 주석을 달아 간혹 그 의미가 명확지 않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독자를 분명히 일깨우기도 합니다. 영어에서 grasp, 혹은 clutch 같은 동사는 일차 의미가 "움켜쥐다"인데, p172 같은 곳에서 저자는 이를 "파악하다", "마음을 사로잡다" 등의 뜻으로 쓴다고 역자는 친절히 알려 줍니다. 아마 clutch라는 단어는 스포츠에서 쓰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도 그 첫번째 뜻만은 알 것 같습니다. 


또 저자는 현장에서 바로 떠올려 이야기하는 주제가 청중을 매혹시킨다고 좋은 힌트 하나를 알려 주네요. 아무래도 저자가 강연의 달인이다 보니 이런 재치 있는 테크닉을 당대에 잘 구사했을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즉석 연설이라고 해도 즉석에서 하지는 말라"고도 합니다. ㅎㅎ 저도 바로 앞에서 말씀하신 바와 살짝 모순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저자도 아니나다를까 그 언급을 합니다. 그러나 결코 모순이 아닙니다. 화제 자체는 즉석에서 떠올려서 청중을 지루하지 않게 할망정, 연설의 내용만큼은 마치 사전에 원고를 준비나 한 듯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으로 승부를 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평소에 깊은 사고를 하여 해당 주제가 무엇이 되든 그에 대해 피상적이지 않은 분석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하며, 또 어떤 영역에서건 조리가 선 발언이 나오게 사고의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평소 실력이 탄탄하게 갖춰져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그의 사역을 할 때 비유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연설자는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면 안 되고, 혹 구체적인 사례를 들기 어려울 때에는 청중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p226)를 쓰는 게 효과적이라고 데일 카네기는 말합니다. 여기서도 데일 카네기 본인이 언제나 존경해 마지 않았던 링컨의 사례가 나옵니다. 그는 줄타기 곡예사 블롱댕의 비유를 드는데, 남북 전쟁이라는 험난한 난국을 헤치고 나아갸는 정부를 향해 국민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촉구하는 연설에서 이런 멋진 비유를 든 것입니다. 이런 비유가 적시적소에 나오려면 그만큼 많은 독서를 통해 적확한 연결을 짓는 지적 훈련이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요점을 요약하고, 행동을 촉구하라." 먼저 요지가 잘 정리되어야 청중은 그 긴 시간 동안 자신들이 무엇을 들었으며 무엇이 변화되어야 하는지 마지막에 다시 유념할 수 있습니다. 또 결국은 나 자신의 일상 속에서 행동상의 변화가 실천되어야만 이 모든 감흥과 각성이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괜한 양해를 구하며 겸손을 가장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청중은 언제나 연사가 잘 준비된 사람이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성실성, 열의, 진정성, 명료함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공감능력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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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 원본 완역본 데일 카네기 성공학 (미래지식)
데일 카네기 지음, 김미옥 옮김 / 미래지식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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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계서의 원조라 할 만한 데일 카네기 시리즈 중 <자기관리론>입니다. 원제는 이 책 표지에 나온 대로 <How to stop worrying and start living>입니다. 이 책 표지의 부제에는 저 문구의 번역을 통해 책 내용을 보다 분명히 밝히는데 이렇게 원제를 먼저 머리에 새기고 본문을 읽어 나가는 맛도 색다른 듯합니다. 


"캐리어"라고 하면 그 특유의 로고를 한 에어컨 메이커로 유명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캐OO 에어컨이 있는데 이것은 미국의 자회사나 현지 종속법인이 아니라 한국인인 경영자가 브랜드 사용권만 사 와서 제조업을 독자 영위하는 방식인데 그 또한 고유의 기술력으로 인정 받고 있죠. 여튼 이 책 p39에서는 미국의 캐리어 코퍼레이션 사장 윌리스 캐리어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이 번역서는 회사 등의 고유명사에 일일이 원어를 병기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일어난 일의 배경과 등장인물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걱정을 하지 말라, 안절부절하는 마음의 동요는, 최악의 결과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그 최악을 현실화하는 촉진제가 된다, 책에 나온 저 캐리어 씨의 일화 취지를 독자인 제가 제 나름대로 요약하면 이 정도가 될 듯합니다. 미국 노래 중에도 "돈 워리 비 해피"라는 게 있죠. 다가올 수 있는 나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아무 소득도 없이 그저 마음만 좀먹히는 건 큰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는 아무 데도 쓸데 없다는 뜻입니다. 책에서 소개된 첫번째 일화부터가 책 제목에 쓰인 문구를 증명하는 멋진 예화입니다. 


이 책은 각각의 부(部)가 끝날 때마다 내용 요약 코너가 따로 있습니다. 자계서이니 만큼 재미있게 읽고 끝낼 게 아니라 그 내용으로부터 내가 무슨 교훈을 얻었는지 정리할 시간을 따로 가지는 게 좋을 텐데 책에서 알아서 이렇게 요약을 해 주니 독자 입장에서 편합니다. p83에 제시된, 앞 제2부의 내용 요약 중 특히 마음에 근심이 닥칠 때 대처 절차를 한번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문제가 무엇인가?

2) 그 원인은 또 무엇인가?

3) 해결할 방법에는 어떤 게 있는가?

4) 이 중 최상의 방법은 무엇인가? 


독자인 제 나름대로 2-`1) 정도를 추가하자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걱정은 하지 말자"가 되겠네요. 여기서도 그렇지만, 어느 경우에나 저자 데일 카네기가 강조했던 건 "생각보다는 실행이 중요하다"입니다. 


p89 이하부터는 특히 저자가 젊은 시절 쓸데없는 걱정에 정력을 갉아먹힌 경험이 실제로 있었던지 "나는 너무 바빠서 걱정할 시간이 없다"라는 찰스 케터링 같은 뛰어난 자기 통제력을 지닌 이들의 명언이 소개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를 개선하거나 극복할 현실적인 궁리에 몰두하는 이에게 "근심 걱정" 따위는 그저 사치일 뿐입니다.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는 데 골몰하는 이의 마음에 소모적인 걱정 따위는 자리할 데가 없습니다. 공연한 자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일 카네기의 책들 특징 중 하나는 그저 명언이나 교훈적 일화를 모아 놓은 게 아니라, 그 일화에 자신만의 의의를 부여하고, 강연하듯이 맥락을 넣어 술술 엮어간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독자와 청중과 활발히 소통한 모티베이터였기에 독자로부터 받은 서한, 상담 사례 등을 책 속에 강연 속에 풍부히 집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만큼 생동감 있는 저술과 강연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요즘 저술되는 자계서들보다 이 고전이 훨씬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괜한 걱정으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았고 현실적인 대처 방법도 충분히 강구했건만 결국 불행한 결과가 터졌거나 임박했을 때는 어떻게 헤야 할까요? 책에서는 "피할 수 없으면 받아들여라"고 합니다. 맥빠지고 무책임한 충고처럼도 들리지만 인생에서 모든 걸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불가피한 결과는 그대로 수용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드라마 <태조 왕건>이나 <용의 눈물>을 보면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서인지 "이 사람, 자네가 그러고도 의원인가? 세상에 약이 없는 병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같은 대사가 자주 들립니다. "약이 없는 병"은 고려 조선은 물론 심지어 지금도 무척 많기에 저 대사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이 책 p125에서는 "마더구스의 노래" 한 소절을 떠올리며 어려울 때마다 힘을 낸 컬럼비아 호크스 학장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태양 아래 모든 병에는

치료약이 있거나 없으니

있다면 찾아 보고

없다면 신경 쓰지 마라."


구글링을 해 보니 원문은 다음과 같더군요.


For all ailments under the sun, 

There is a remedy or there is none.

If there be one, try to find it.

If there be none, never mind it.


라임도 잘 맞지만 품은 뜻도 묵직한,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해학미 넘치는 멋진 구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 대책이 없으면 초연하게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법이 있을 때에는" 사정없이 낱낱이 최선을 다해 그걸 찾아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방법이 있을 때 대강대강 처리하고, 방법이 없으면 근심걱정으로 나와 주변을 모두 힘들게 하는 게 보통이죠. 


이런 천하에 쓸모없는 "걱정하는 습관"을 고치려면 어떻게 할까요? 데일 카네기는 특유의 달변으로 3부에서 멋지게 독자를 설득합니다만 p151에 내용 요약이 잘 되어 있습니다. 


1) 바쁘게 생활해서 걱정을 몰아내라. 

2) 사소한 일에 법석을 떨지 마라.

3) 평균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라. 


실제로 비행기를 타야 할 때마다 끔찍한 사고가 날 걸 걱정해서 못 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한테 3)이 특히 유익한 충고가 될 듯합니다. 


링컨은 "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마침 이 저자 데일 카네기가 링컨 연구의 권위자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나는 증오와 원한 때문에 구겨지고 일그러진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수 없이 보아 왔다(p176). 왜 원수를 용서해야 하는가? 증오, 원한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합니다. 외모 관리를 위해서라도(!) 마음에 증오를 품지 말라는 그의 충고는 실용적이면서도 교훈적입니다. 마음 속에 원한과 열등감, 피해 의식을 품은 자의 표정은 언제나 어둡고 음침하며 촌구석 미용실 안에서조차 그 특유의 불안과 찌듦이 풍기기 마련이죠. 


아무리 생을 오래 살아도 진정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핵심적인 가치를 깨닫고 체험해야 하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윌리엄 블리소(p223)는 24세 때 차량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못 쓰게 되었는데 그 젊은 나이에 끔찍한 불편을 항구적으로 겪게 된 당사자의 분노와 좌절은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독서와 음악 감상에 집중하면서 전에 모르던 지식을 쌓고 사색에 빠졌으며, 특히 지루해게만 느끼던 고전 음악의 참된 아름다움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그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대해 아무런 불만 없이, 오히려 새로이 눈뜨게 된 세상에 고마워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반신을 못 쓰는 이조차 이처럼 행복을 향한 각성이 가능한데 하물며 몸이 자유로운 이들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약점이 뜻밖에도 우리를 돕는다."


"얕은 철학은 사람을 무신론으로 기울게 하고, 심오한 철학은 사람을 종교로 이끈다.(p259)" 이는 영국 경험론 철학의 선구자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한국형 인문학에 새롭고 천재적인 기여를 한 이어령 박사 같은 분이 말년에 신심을 굳힌 걸 보면 역시 맞는 말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단 한국의 경우 사찰이나 교회를 찾는 게 마뜩지 않은 이들은 자신 나름대로 경전을 읽으면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스스로 성찰하는 선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꼭 승려나 목사를 찾아야 종교인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아무리 절이나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마음이 탐욕과 불안으로 가득하다면 종교를 믿는 의의가 대체 뭐겠습니까. 


콜게이트는 치약이나 비누 등으로 이름 높은 미국의 브랜드입니다. 어느 판매원(p301)이 저자 데일 카네기, 혹은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꼭 제 비누를 사달라는 게 아닙니다. 제 판매 방식이 마음에 안 드시면 수고스러우시더라도 솔직한 비판을 제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다음에 제가 꼭 고쳐서 더 나은 소통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데일 카네기는 이 대목에서 그저 남의 비판을 고깝게 듣지 않는 방법을 얘기하는 듯하다가, 한 술 더 떠서 "비판이 나의 자양분이 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게 하는 법"까지 가르칩니다. 비판도 좋게 넘기자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비판을 독이 아닌 약으로 바꾸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거죠. "부당한 비판은 칭찬의 다른 이름이니 절대 걱정할 일이 아니다."


"1만년의 관점에서 상황을 판단하라! 당신의 일상에 대한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고 하찮은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p364)"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전쟁사, 정치사, 외교사 등을 놓고, 까다로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애써 찾아 읽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듯합니다. 왕이나 지도자, 혹은 도시의 시민들이 외침이나 경제 공황 등을 겪으며 이를 어떻게 타개하는지를 읽어 나가면 그 지난한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되죠. 나의 고통은 그게 비록 엄지발가락을 찧은 작은 규모라 해도 내 개인에게는 지독한 고난입니다. 그러나 큰 난관을 헤쳐 나가는 선례를 참조하여 얼마든지 내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찾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엘머 톰머스의 사례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기에 자신보다 나은 출발점에서 시작한 이들을 보고 그는 언제나 열등감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교사 자격증 등에 도전하여 남을 가르칠 자격을 얻고, 그 과정에서 많은 지식을 쌓고 더불어 인격까지 수양하게 되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자가 타의 어엿한 모범이 되는 과정이 이러합니다. 나잇값도 못하고 남의 흠이나 잡으러 골몰하면서 어디 공짜 협찬 자리나 없나 살피며 더러운 머리결에 눈이 뻘게진 인생이라면 참으로 뼈에 새기며 본받아야 할 사례가 아니겠습니까. 


잭 뎀프시(p407)는 영화 같은 데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미국의 레전드 복서입니다. "내가 싸운 최대의 강적은 바로 나의 걱정이었다."가 그가 남긴 명언입니다. 한국의 프로야구 투수 최고봉을 밟았던 선동렬은 "최대이 라이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명언들의 공통점은, 어차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다른 변수와 위험에 집착하기보다, 내 자신과 내가 직면한 과제에 보다 집중하는 게 현실의 성과를 내는 데 훨씬 유익하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걱정을 떨쳐 버리고 나의 문제에 몰두하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참된 "자기 관리"의 요체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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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질문력 - 대화에 서툴고 서로가 어색한 아빠와 아들의 생활밀착형 카운슬링
조영탁.조예준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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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넷 창업자 조영탁씨와 그 아드님(미국 명문 과학고 재학중)이 소통한 방법과 기록을 다룬 책입니다. 부모와 자녀 간 소통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특히 아빠와 아들 사이의 소통은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잘 통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이야기가 잘 되지만, 어떤 분들은 정말 극한의 대립상을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부자의 갈등의 역사의 큰 줄기를 바꿔 놓기까지 했습니다. 그 부친이 어려서부터 아들과 잘 소통하고 애정을 좀 더 기울이기만 했어도 저렇게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기업인이 그 바쁜 와중에도 아들과 꼼꼼하게 자상하게 소통하는 모습은 더군다나 드물기에 책을 열심히 읽어 봤습니다.


조 대표께서 창업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던 사람 중에는 아마 빌 게이츠가 있었을 겁니다. 그즈음이야말로 MS의 전성기였고 경쟁사 애플의 제품은 호환성 결여로 갈라파고스식 실패의 대명사처럼 여겨졌죠. p26에는 그런 빌 게이츠의 삶에 대해 제법 긴 설명이 나오며 "사회로부터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했기에 위대한 인물"로 그를 정리합니다. 


"똑똑한데 나쁜 사람보다는, 일단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p20)" 이는 조 대표의 아드님이 한 말입니다. 여기서 그 부친으로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인성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일단은 안심한다"입니다. 안심까지 하셨던 걸로 보아 아드님이 일단 꽤 똑똑한 편인가 봅니다. 만약 똑똑하지 않은 아들이 저런 말을 했다면 "넌 이미 충분히 착해. 그러니 이제부터는 똑똑해지기 위해 노력하렴." 같은 말을 아버지가 하진 않을까요?(농담입니다) 여튼 인성이라는 말이 상당히 막연하기는 하나, 정상적인 주변 인물로부터 동료로 받아들여지는 평판을 얻기는 한다면 성공인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조 대표가 안심했다고 한 건 그간 기울인 아버지로서 자신의 소통 노력이 일단 의도한 바대로 나타났다고 봤기 때문이겠습니다. 


인생은 어떤 면에서 허무합니다. 잘생기건 못생기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똑똑하건 멍청하건, 긍정의 기운으로 가득찼건, 자신에게서 아무 장점도 찾을 수 없어 남탓 타령으로 날을 지새우는 인간이건 간에, 늙으면 모두 추하게 주름이 진 얼굴로 변해가다 한 줌 재로 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은 공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그렇기에 가장 소중한 건,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쓰는 것이다.(p42)"라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영화 <빠삐용>에서도 꿈에 주인공에게 신이 나타나 "(네가 설령 아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해도) 너는 네 인생을 낭비한 죄를 저질렀기에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런 선고를 받으면 아무도 억울하다는 항변을 못할 것입니다. 


아빠가 이런저런 좋은 말씀을 해 주면 그 다음에 아들의 소감이 나옵니다. "아빠는 돈에 대한 내 가치관이 좋다고 칭찬해 주셨다.... 또한 실제로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게임이나 유튜브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게 좋지 않다는 걸...(p48)" 사실 요즘 청소년들은 유튜브나 틱톡을 보는 시간이 너무 많죠. 하긴 노인분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유튜브에 과한 시간을 쓰긴 하지만... 언제부터 우리가 별 의미 없는 소일거리에 이처럼이나 많은, 귀한 시간을 쓰게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유대인이 그 두뇌가 우수하고 교육열이 높은데 한국인도 이와 비슷하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크게 다르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유대인은 뭐든지 다른 사람과 다른 방법으로 하려 드는 반면 한국인은 남들이 하면 무조건 따라하려 든다.(p55)" 남을 따라한다는 게 얼마나 멍청하게 보이는지도 모르고, 스타일을 제대로 소화도 못한 채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걸치고 머리 모양을 우습게 가꾸는 걸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앞에서도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일단 구체적으로 목표를 정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목표를 정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합니다. 이 "세상에의 기여"라는 말은 앞에서 빌 게이츠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일관되이 이 책에서 강조됩니다. 


유대인들에게 남들과 다르다는 건 곧 거룩하다는 의미라고 저자는 말합니다(p67). "아빠는 60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회사의 미래에 대한 꿈 이야기를 하면 신 나서 막 떠드신다.(p79)" 표현이 저렇긴 해도 실제로 이 창업주가 아직도 자신의 회사에 대해 더 나은 비전을 갖고 이런저런 개선과 창성의 미래를 설계하며 그 포부를 밝힐 때 아마 그 안광이 형형할 것이라 상상됩니다. 회사는 자신의 분신이고 그 자신의 미래를 꿈에 들떠 논할 때 그에게는 일종의 신이 강림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이 말하는 "다르다는 이름의 거룩함"인 것이죠. 


누가 뭐라 해도 한 분야에서 끈질기게 노력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가 재능이 아닐까요? 애초에 재능이 없다면 그처럼 노력을 할 수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 독자인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공저자 중 한 분인 조예준의 생각은 다르다고 (그 부친이) 말합니다. "그릿이라는 단어도 오늘 처음 들어보았다.(p133)" 사실 그릿은 미국 자계서에서 먼저 개발해 우리 나라에 퍼졌죠. 읽어 보니 그리 적극적인 반대는 아니고, 아마도 재능을 가진 자신에 비해 노력에 더 의존해야 하는 다른 또래 경쟁자들이 의식되어 그리 말한 듯합니다. 재능이 있어도 바짝 노력해야 경쟁자가 아예 접근할 엄두를 못 내는 법이니 열심히 했으면 합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말 "보보시도량(步步是道場)"이 p145에 인용됩니다. 道場을 "도량"으로 읽는 게 특이하죠. 여기서도 저자 조 대표는 끝없는 노력을 강조합니다. "평생 학습을 즐기고 성장 마인드셋을 장착하라." 이처럼 내가 아직도 부족하고 배우고 더 배워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라야 어떤 발전이라는 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격 수양(p172), 상부상조(p165) 등 파편화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온전한 자아실현을 해 내는 공감형 인간을 강조합니다. 앞으로 세상은 망의 발달로 더 촘촘히 연결된 구조를 가질 것이며, 그럴수록 공감능력 증대와 가식 없고 참된 감정으로 교류하는 자질이 중시될 듯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도 결국 이런 사회 변천의 핵심을 꿰뚫는 이가 더 큰 성과를 내고 높은 평판을 받지 않을까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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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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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이자 수필가, 베스트셀러 저자인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더군요. "마지막이란 말이 왠지 슬프게 느껴지고 특히 이어령 선생님 같은 분은 마지막 아니라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좋은 말씀 들려 주셔야 하는 스승인데 책 제목을 보며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읽어 보니 여전히 정신이 건강하시고 젊은이들 몇 배의 총기와 활력을 갖고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독자로서 안도가 되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날씨처럼 변하는 게 감정이지요.(김지수 인터뷰어)" "마인드로 채워지기 전의 그 void는 사라지지 않아. 공허를 채웠던 영혼은 빅뱅과 통했던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거야.(p23)" 빈 공간은 화나는 마음, 기쁜 마음 등 다양한 변덕이 교차하지만 빈 공간은 여튼 그래도 있죠. 그럼 그 빈 공간이 평상시에(심지어 빅뱅과도 만났던)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느냐? 바로 그게 영혼이라는 게 선생의 뜻입니다. 이렇게 글로 읽어도 좋지만 김지수 저자처럼 현장에서 저런 석학의 말을 바로 그 기운을 느껴 가며 들었다면 더 깊은 울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서양이 전통적으로 이원론 바탕에 선 건 맞으나 여기 영혼을 추가한 삼원론은 선생님이 처음은 아니시고 독일쪽에서 많이들 하던 거죠. 


"왜 연구자가 되지 않으셨습니까?""논문 통과가 되려면 주 수십 개를 달아야 해. 그게 싫었거든.(p40)" 사실 연구자라면 앞선 학자들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학계에서 지금 어떤 논의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지 훤히 꿰뚫어야 합니다. 그러니 주석을 위한 주석이 아니라 내가 이만큼의 노력을 통해 기존의 성과를 알 만큼 안다는 증명인데.... 선생님처럼 천재형 두뇌에게는 그저그런 선배들의 밋밋한 주장들을 읽는 자체가 고역일 수 있었겠죠. 그 자유로운 상상력이 천재의 전유물인데, 따분하게 기존의 성과를 더듬는 게 서로 안 맞기는 할 듯합니다. 수시로 쏟아지는 그런 영감의 샤워를 받아 본 천재가 아니니 그저 추측이긴 합니다만.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읽고 또 읽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세 번을 읽었으니.(p41)" 우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저 대작을 고전 읽기 의무감으로 읽지만, 저런 천재는 라이트노벨처럼 술술 읽힐 것입니다. 평소의 관심사이기도 하니 얼마나 재미가 나셨겠습니까. 선생은 과연 천재라서 p25 같은 곳에서 빅뱅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김지수 작가에게 설명도 해 주는데 이 과정에서 "눈을 빛내며"라는 지문이 있습니다. 이처럼 천재(p77)들이 갖는 공통점은 신이 나서 이야기할 때 그 눈에서 보통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광채(p21)가 난다는 점이기도 하죠. 


"라스트라는 말에는 애절함이 배어 있습니다. 라스트 콘서트, 라스트 인터뷰....(p47)" 이 앞부분에서 이어령 선생은 "책은 꼼꼼히 읽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찾아 건너뛰면서 읽는다"고 했습니다(<카라마조프...> 같은 건 예외).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는 영화 전체를 다 보는 게 아니라) 불현듯 뛰어들어가 후반부만 보는 거랑 같지."라고 하시는데... 이 대목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젊은 시절이라면, 그것이 화려하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풀 무비를 처음부터 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김지수 저자(인터뷰어)가 고마운 설명을 하나 달아 주네요. "매 순간이 지금 이 순간과의 헤어짐이니까요." 그것도 참 명언입니다. 


따님(p29)도 암으로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선생께서도 지금 투병 중이라고 합니다. p57에서는 선생이 암(癌. cancer)의 어원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놈이 라틴어로 게(영어의 crab)라는 뜻이라고 하시네요. 본문 중에도 그 비슷한 뉘앙스로 말하지만 몸에 암이 퍼진 게 마치 게가 여덟 다리를 편 모습 같다고 해서 병명이 그렇게 붙었지요.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신이 네게 준 게 무엇이냐? 차라리 신을 저주하고 죽어라.(p59)" 기독교 구약 욥기의 아주 유명한 구절이죠. 이 구절들이 너무나도, 현세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심경을 잘 대변하기에 심지어 이어령 선생 같은 분도 결국 언급을 하시나 봅니다. 독자는 그저 선생께서 힘을 내시길 기원할 뿐입니다. 


니체는 마지막 십 년을 미쳐서 식물인간처럼 살다 죽었다(p32)" 그렇게나 똑똑한 사람이 말년에 발광하여 토리노의 말 같은 사건을 겪고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는 게 참 불쌍하죠. 아마도 투병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는 선생이 특별히 감정이입하실 만도 하겠다고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 선생은 토리노의 그 광장에서 채찍을 맞는 말, 그리고 대신 맞으려 들었던 니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행을 봅니다. 여튼 선생은 여기서 어느 영화 <토리노의 말>로 화제를 돌리는데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루말할 수 없이 지루한 영화(선생이나 김 작가에겐 전혀 지루하지 않을)라고 평합니다. 좀 뜬금없지만 그래도 한국은 반도라서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나은 창조성의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좀 국뽕 같기도 하지만 다른 분도 아니고 선생의 평이니 일단 귀담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영어에서 직업을 콜링(calling)이라고도 하는데 장 칼뱅의 직업소명설이 남긴 흔적이기도 합니다. 이 콜링이라는 다의적 어휘를 선생은 p31 등 여러 군데에서 다양하게 풀어 주기도 하네요.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이라고 하셨지요. 잊지 않고 있습니다(p70)." 김지수 작가의 이 말은 중의적으로도 들립니다. 여기에 대해 선생은 "맞아, 잊고 있던 것 중에 진실이 있어. 은폐가 곧 거짓이야."라고 답합니다. 반대말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반대말을 안에 품는다는 게 형식논리상으로는 좀 재미있게도 들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뭘 의도하시는지는 이해가 됩니다만 잠시 달 말고 손가락도 구경 좀 했습니다. 


"... 이게 곧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론이야. 할아버지, 증조부, 증조모... 이분들 중 단 한 분이라도 잘못되셨으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질 않았어.(p86)" 그런데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애석하다 뭐 어떻다 할 느낌과 판단의 주체가 없는 건데 태어나서 이처럼 고마움을 느끼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저 앞 p22에서 선생은 "고려 청자는 수백 년 동안 무덤 안에 있었어. 내 눈 앞에 없었고 있는 줄조차 몰랐어도 고려 청자는 수백 년을 존재했다는 거야."라고 합니다. 이 구절들을 연결시키면 선생이 생각하시는 답이 나올 듯합니다. "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를 못해(p76)." 석가모니는 네 가지 고통 속에 "태어남"을 넣었지만 말입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면 이상한 게 대번에 보이는데도 어른들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프레임에 갇혀, 혹은 권위에 짓눌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선생은 어렸을 때에도, 똑똑해서 항상 사람 받았던 형과 달리 자신은 언제나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지적했기에 오히려 경계 받던 아이였다고 합니다. 항상 그는 프레임에 갇히지 말 것을 경고하며,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해야지!"라며 김지수 작가에게 호통을 칩니다(p97). 그래도 사회 생활 하면서 마냥 매번 의문을 제기할 수야 있겠습니까. 설익고 미성숙한 느낌을 함부로 표현하다가는 넌씨눈 소리나 듣기 쉽죠. 선생님은 천재니까 열외가 되는 거고.


"우리는 유교의 영향으로 자신의 추함을 숨기지만 일본 작가들은 숨기지 않아.(p121)"라고 하시지만 앞에서 김지수 인터뷰어의 말도 그렇고 작가들이 어디까지나 안 숨기고 드러내는 거지 일반인들은 한국인보다 더합니다. 다만 일본에서는 작가한테 그런 특별한 위상을 허용해 주는 거고(일본뿐 아니라 문명국은 어디라도 마찬가지) 우리는 작가 아니라 누구라 해도 그런 예외를 허용해 주지 않는 거고 말입니다. 이렇게 된 건 다른 나라에서는 특별한 지적 훈련을 거치고 일정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대개 글을 쓰는 반면 우리 나라는 개나소나 다 작가를 참칭하는 풍조라는 데 기인한 게 아닌가 싶지만요. 다만 김승옥 작가(이분도 인생 후반부에 기독교에 귀의했죠)에 대한 언급은 흥미롭습니다. 


확실히 작가는 외모도 좀 빼어난 구석이 있거나, 적어도 자신의 사유 그 성과와 흔적이 외양에 배어나는 분이라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지수 인터뷰어는 <우상과 이성> 시절의 이어령 선생을 돌아보며 "날렵한 턱선에 수려한 콧날... 흑백사진 속의 잘생긴 사내(p157)" 등의 표현을 씁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모친(ㅎㅎ)도 예전에 그렇게 이어령 저자의 책을 좋아했던 데에 그런 영향도 있었는지 모르겠네요ㅋ


"천재가 있으면 특별한 교육을 시켜야 해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눈곱을 떼어내어 붙여 주면 그게 화가가 되고, 귀지 좀 붙여 주면 그게 음악가가 되는 거에요." 이런 그의 천재관은 어째 좀 슬프게 들립니다.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도 "아인슈타인이 한국에 태어나면 배달 일을 하게 된다"고 한 적이 있는데 한국이 유독 평준화를 강조하는 풍조다 보니 천재들이 그 재능의 가치에 비해 대접을 못 받는 원인이 있습니다. 반대로 좀 모자란 백수가 협찬질에 맛을 들여 비참한 현실을 잠시 잊은 후 뭐가 싫다느니 뭐니 이상한 불평을 꾸물꾸물 늘어놓기도 하는 여유가 생기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선생은 그래도 특유의 문재(文材)를 살려 세상에서 널리 인정을 받은 분이고 (그 살아온 궤적이 크게 다른 데도) 마치 드골 내각에서의 앙드레 말로 같은 사례에 비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전 정원식 내각(p168)에서 약간 소외 받으신 이야기도 여기서 풀어 놓으시고, 또 게임이론 창시자 잔 내시의 생을 다룬 영화 <뷰티플 마인드>를 놓고 주인공의 삶에 깊이 몰입(p201)하기도 합니다. 이런 대목이 40페이지 이상 이어지며 당신만의 천재론을 들려 주시는데 솔직히 이렇게 어두운 색깔일 줄 몰라서 놀랐습니다. 그래도 천재는 이데아를 직시하는 순간이 잦아 그 동안이라도 행복하기 때문이죠. 계속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세상에서의 쓸모"입니다. 이는 사실 천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아픔이죠. 특히 한국 같은 나라에서. 그런데 정 머리가 좋으면 다른 영역으로 쉽게 방향을 틀어 돈 되는 분야에서 두각도 나타내고 인정도 받고 잘 삽니다. 아무리 한국이라도. 


"앵프라망스라고 아주 엷은 막을 느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말야. 그런데 그걸 뚫는 게 바로 (나한테는) 영성이라네.(p218)" 예를 들어 개신교 안수기도 같은 걸 할 때 당사자(놈이 아주 악질이라든가 하는 이유로)가 느낄 수 없어야 마땅한 이상한 뜨겁고 후회스럽고 눈물 나는 것 같은 체험이 그런 걸까요? 그게 영성이고, 앵프라망스를 꿰뚫는 순간이다... 흠... 보통 사람 사이에선 제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엷은 막 같은 게 아니라 당연히 장벽이 느껴집니다. 안 그러면 그게 이상한 건데... 여튼 이런 한국 최고의 두뇌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인간이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기막힌 게 돈이라네. 핵심 교환은 세 가지야. 첫째 피, 둘째 언어, 셋째 돈. 돈은 돈의 교환을 해야지 피의 교환을 하면 안 되는 거거든? 그런데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재벌가는 정략 결혼을 한단 말야.(p262)" 이 대목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선생에 대한 특별한 회고를 하는데 이 중에는 선생이 젊은 시절 프랑수아 모리아크(당시 표기로 "모리악")를 만나고 쓴 칼럼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모리아크는 요즘 가톨릭 성향 작가 정도로 기억되지만 1970년대에는 여러 문제적 장편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분인데 선생이 그런 분도 직접 만났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본문 p42 이하에는 선생이 그 특유의 박식으로 inerview의 본질에 대해 논하는 대목이 있는데 비록 마지막이란 수식이 있으나 이 대담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특히, 가슴 뭉클하게 읽힙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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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셰프 서유구의 식초 이야기 임원경제지 전통음식 복원 및 현대화 시리즈 7
서유구 외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외 옮김 / 자연경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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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리즈 제8권 <식초 음식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 책 제7권도 문간공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중 정조지 미료지류를 기본 출처로 삼고 정성들여 그 레시피를 현대 감각에 맞게 복원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유독 미료지류 편에는 식초와 그를 적용한 음식들이 자주 언급된다고 합니다. 저자의 현대식 복원뿐 아니라 이 책에는 문간공 저서 한문 원문이 상당 부분이 번역(직역)과 함께 소개되었으므로 이중삼중으로 우리 독자들에게 유익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후속권이 발간되겠으나 여태 나온 여덟 권 중 두 권 분량이 오로지 식초와 그 응용에 대한 내용이니, 문간공 원저에서 식초 적용 발효음식의 비중이 얼마나 높았을지 이 분야 완전 문외한인 독자조차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식초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압축 성장기를 거치며 우리 조상들이 애써 가꾼 전통의 맛과 메뉴, 조리 방법이 많이 사라지거나 잊혀져서 고서들을 통해 이를 복원하자는 취지입니다. 이 중 식초에 초점을 맞추자면, 우리 현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게 빙초산(헉) 희석 합성 식초, 양조 식초 정도이겠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임원경제지> 등으로부터 복원한) 전통 식초는 발효 식품에 적용하는 본원의 기능에 훨씬 더 적합하고, 우리가 잊었던 맛을 다시 일깨운다는 점에서, 또 의외로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도, 현대 한국인의 식단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게 저자의 뜻 같습니다. 


저자는 예를 들어 이 책 p9 같은 곳에서 "우리 조상들은 다섯 가지 맛을 고루, 균형 있게 갖춘 식습관을 중히 여기고 이것이 올바른 정신 상태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현재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사회 문제를 빈번히 겪는 건 극단의 단짠맵으로 치우친 식단 역시 그 원인의 일부"라고까지 주장합니다.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사람 사는 국면의 모든 것이 조화를 갖추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지극히 타당합니다. 하물며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식생활 습관의 경우야 더 말할 것도 없죠. 


p16의 프롤로그에서는 저자가 개인적 추억을 회고합니다. 어려서 어떤 친구가 "서커스 단원들 몸이 유연한 이유는 식초를 많이 먹어 뼈가 부드러운 덕분"이라고 한 것, 어머니께서 민물고기의 디스토마 균을 식초가 죽인다고 한 것(좀 뒤 p86의 식초 소독 기능에서 체계적으로 다시 설명됩니다), 고모분이 특히 강조한 식초의 효능 등을 회고합니다. 미디어에서 비블리오 패혈증, 디스토마의 위험성을 널리 강조하던 게 1980년대라고 들었는데 아마 이 부분 집필자께서는 그즈음 성장기를 보내신 건 아닐지 추측해 봅니다. 과거 식초는 그저 약방 감초처럼 어디나 끼는 부수 재료 정도였으나 지금은 아예 독자 병입으로 건강식품이 따로 나올 만큼 현대에 더 주목받습니다. 프롤로그 정독에 이어 이 책 본문까지를 다 읽고 나니 식초라는 게 아예 자신의 영역, 왕국 하나를 뚜렷이 구성하는 으뜸 식자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8권까지를 읽으면 아마 많은 독자들이 오로지 식초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음식의 세계 하나를 탐방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p34 이하에는 문간공의 원저나 조선 후기 다른 실학 서적들의 관점을 일단 떠나 현대 식영학에서 식초가 갖는 의의, 성분, 종류 등이 자세히 설명됩니다. 전통 식초를 공부하기 전 우리 일반 독자들은 일단 이 부분부터 정독하여 앞으로 이어질 본문의 전통 식초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지 먼저 기본을 갖출 수 있습니다. 


어느 문명권이라도 주류가 그 문화권의 특색에 맞게 발전되어 어떤 형태로든 널리 사랑 받는다는 사실도 과거 교통의 불편함과 정보 교류의 제한성을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인간이 그만큼 술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는 거고 그 술로부터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식초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각 문명권에서 개발하여 음식에 쓰는 것도 놀랍다면 놀랍습니다. 책에서는 당화, 전분 등 식초의 제조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는 과정과 성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처럼 이론적 바탕이 잘 되어 있어야, 우리 독자들이 전통 레시피를 따라해 보는 체험을 넘어 창의적으로 식초(전통이든 현대식이든 간에)를 여러 음식에 어떻게 적용할지까지도 생각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풍미를 중시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자국의 풍토에 맞는 여러 식초를 개발한 것은 그렇다 쳐도, p70 이하를 보면 확실히 중국이 넓기는 넓은 나라이며 역사도 오래된 곳임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식초 하나도 이처럼 다양하게 발전했으며 그 지방색을 잘 반영합니다. p73에는 섬나라이기에 생선이 풍부하고 염장의 필요성이 특히 높았던 조건의 일본, 그 일본에서 자기네 식으로 발전시킨 토착 식초의 개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한국도 삼면이 바다인 지형인데 어째서 일본처럼 생선 요리가 넉넉하게 성행하지 못했는지 그 점이 아쉽긴 합니다. 세계 방방곡곡, 그 술이 다양한 만큼이나 식초도 다양하다는 결론도 다시 확인합니다. 그건 그렇고 식초 맛이 다 다른 이유를 생화학적으로 따지면 "초산균의 대사 차이(p87)"라고 요약 가능합니다. 


술도 과일, 곡물 등이 그 원료가 되듯 식초 제조도 마찬가지라서 pp. 93~98에는 여러 대표 곡물에 대한 설명이 니오는데 식초를 떠나서 곡물에 대한 간명한 설명으로 참 유익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p99의 술지게미 설명도 여태 못 보던 측면을 이해시켜 주어서 좋았습니다. 8권에는 "온몸을 강타할 정도로 강렬한 신맛의 기억"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 7권 p116에는 "마음의 잡념을 몰아내는 강렬한 신맛"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마음수양과 정진은 유가의 중요 지침이기도 하지만 불가에서도 매우 강조합니다. 이 7권이 각종 식초를 소개하는 내용이니만치 醋(초)라는 글자가 자주 나오며, 예컨대 p116 상단 한자어는 "선초방(仙醋方)"입니다(方은 그저 처방, 레시피라는 뜻이겠죠). 잘 생각해 보니 비록 도교가 (더 오래된)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저 글자가 禪이 아니라 仙인 만큼 이 대목은 불교보다는 도교 관련으로 생각의 방향을 잡아야겠네요. 


p118에는 문간공 본인의 말씀이 간만에 인용됩니다. "선가에서는 식초를 화지(華池)라고 한다." 식자재에 대한 일종의 극찬이죠. 화지... 화지... 불교든 도교든 수행자가 아무것도 안 먹고 살 수는 없으므로 기본 대사를 유지하는 데 최소한의 섭식을 하되 그 정신을 맑고 정갈하게 지키는 여러 전통의 비방이 있었을 터입니다. 그런 분들이 고작(?) 식초를 두고서 그만큼이나 큰 의미를 부여했으니... 책에서는 아예 "수행"을 위한 식초를 따로 논할 정도입니다.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밀을 주식으로 삼지는 않으나 여튼 밀은 민중에 친숙한 작품입니다. 정조지 중 "소맥초방"으로부터 인용(복원)한 p142의 밀식초는 밀의 별칭을 따라 소맥초라고도 불리나 봅니다. 술을 좋아하건 안 좋아하건 간에 원 주정의 냄새까지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들이 그리 많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책에선 "밀식초의 달콤한 꽃 향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밀식초 담그면서 종래의 선입견이 완전히 깨지고 심지어 그 고유의 향기까지에 놀랐다는 거죠. 인공적 방법을 배제하고 그저 자연의 섭리를 좇아 순응하듯 만든 음식과 자재는 이처럼 그 과정부터가 건강하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이런 오랜 섭리를 거역하고 온갖 첨가물로 범벅이 된 몹쓸 걸 먹으니까 몸에 탈이 나고 아토피 같은 게 생기는 겁니다.


앞서 p99의 술지게미 설명이 예사롭지 않다고 했었는데 p157에도 이 술지게미가 놀랍게 응용됩니다. 밀기울식초 만드는 법이 나오는데 역시 오른쪽 상단의 한자는 보리 맥(麥)변에 사내 부(夫)를 쓴 것인데 "밀기울 부"자 입니다(윈도 기본에서 지원하지 않아 이 독후감에 쓸 수 없네요). 저자분의 경우 이 밀기울 레시피는 그리 고유한 맛이 나지 않아 실패로 여기지만(책에서 드물게 봅니다), 대신 술지게미의 활용법 하나를 얻어 가신 듯합니다. 저는 이 파트 제목이 "돌아갈 수 없는 고향 같은 맛"이라고 해서 무슨 뜻인가 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 그 의도를 겨우 알았습니다^^


뷸가에서는 연꽃을 신성히 여깁니다. 어찌 보면 연은 그리 화려하고 존귀하게 보이지 않는데, 그 중에서 깊은 뜻을 애써 찾아내는 자세부터가 경건한 종교적 마음가짐이겠습니다. 정조지가 소개한 레시피 중에는 "연화초방"도 있는데 이 역시 복원 결과가 그리 확연히 드러나는 건 아닌가 봅니다(독자인 제 생각입니다). "연꽃을 닮은 사람만 이 식초에서 연꽃의 그것을 느낄 수 있다시니 말입니다. 어떤 분은 복원 결과가 그리 성공적이지 않을 때 이것을 환경 오염의 탓으로도 돌리신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대추, 창포... 나아가 꿀, 엿으로 만드는 식초도 있습니다. 위 밀기울 식초에서 저자는 제조 도중 벌 한 마리가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주위에서는 이러면 못 먹는다고들 했으나 그렇지는 않다고 저자는 말씀합니다. p213에는 벌들과 벌집 사진이 나오며, 이곳뿐 아니라 이 시리즈 전체가 컬러 사진으로 가득하여 텍스트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과 정보를 독자에게 넉넉히 전달합니다. 식초는 두루 소독 기능을 가지지만 특히 p237의 녹두식초는 해독 기능까지 있습니다. 크림빵 하면 생각나는 흑임자, 그 흑임자로 만들어 두놔에도 좋다고 하는 식초도 나오네요. 선비의 첫째 덕목은 지조인데 그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식초(p262)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먹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서양 격언도 있지만 조상들이 남긴 지혜의 집결 중 이처럼이나 식초 단일 품목(차라리 장르입니다만) 안에 엄청난 처방과 효험이 깃들 줄은 몰랐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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