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서 리더십을 배우다 - 리더의 14가지 핵심 가치
이재기 지음 / 샘솟는기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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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실로 놀라운 기록입니다. 우선 4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극적인 행적이 일단은 마무리된 후 그를 의심하거나 부인하기도 했고 또 눈물을 흘리며 이를 참회하기도 했고 마침내 스승의 부활을 목도한 후 완전한 사도, 성도로 거듭난 그의 제자들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바로 사도행전이 후속편(?)으로 잘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 사도행전은 기존의 열두 사도 외에 새로운 주인공인 바울이 처음 등장하는데 이분은 초기 기독교를 조직으로나 이론상으로 튼튼한 토대를 놓은 큰 기여가 있습니다. 바울을 데뷔시킨 경전으로서도 사도행전은 너무도 중요한데, 지금 이 책 저자인 이재기 목사님은 이로부터 "리더십의 모범"을 추출해 냅니다. 


한국은 당연 기독교 전래의 역사가 짧으나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907년 평양 대부흥(p23)을 계기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들 평가합니다. 어찌보면 기독교에 관한 한 완전 불모지나 다름 없던 곳에서 이처럼이나 많은 이들이 해당 종교를 신봉하게 된 것도 하나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만'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대신) 일하신다." 이는 허드슨 테일러의 말이라고 하는데 기도의 힘을 역설한 명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힘이 한계를 만났을 때 주저하지 말고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왜 기도를 하지 않을까요? 아마 우리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오만함이 우리 마음에 깃들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간절히 원하고 기도한다는 건 그 순간 그분의 절대적인 힘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존과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보다 기도에 헌신해야 한다. 그럴 때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영향력이 생기게 될 것이다(p25)." "부활의 증인으로서 앞으로 열두 지파에 사역하기 위해서는 열두 사도의 충분한 인원이 필요했고 그래서 (가롯 유다의 빈 자리를 채워) 맛디아를 포함시키게 되었다(p26)." 저자의 말입니다. 물론 신약의 시대에는 이미 열 지파가 자취를 감췄지만 여튼 Jews and Gentiles, 세상 만방의 길 잃은 어린양들에게 기쁜 소식을 고하려면 스승을 배신하고 제 스스로 목을 맨 악당을 대신하여 영성과 능력 가득한 사도가 들어와야 했던 거죠. 이 역시 맛디아의 선출 과정에서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겠고 그 결과 맛디아의 이름을 후세가 기역하게 되었겠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마치 공산주의와도 비슷한 원리에 의해 작동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공산주의와 닮았다기보다는 태초 이래 인류가 염원하던 바를 초기 공동체가 몸소 실천에 옮겼고 이를 공산주의가 차용하여 그 선전에 쓴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공산주의가 결코 그 구성원이 만족하는 바를 현실화한 적이 없었죠. 혹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 모두는 소련이 선도했을 그 좋다는 공산주의 사회의 혜택을 누리는 중이었을 겁니다. 


"거룩이 능력이다(p89)." "한국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거룩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날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교회의 세속화, 타락, 불신 풍조의 자초 등에 큰 우려를 나타냅니다. 물론 교회 외적인 곳에서 교회를 부당한 시선으로, 편견을 갖고 바라보기도 하며 때로는 악의적인 폄훼를 합니다만, 그래도 성도들은 스스로를 반성해 봐야 합니다. 어쩌다가 교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신앙을 가진 사람은 무엇보다 불신자의 모범이 될 만한 삶을 살아야 하며 존경을 얻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길을 걸었던가? 예수라면 지금 나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한 번이라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살았던가? 이 질문에 자신 있는 대답이 나오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단 열 명의 의인만 있었어도 심판을 면하고 처참하게 불 속에서 파멸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이 이처럼 타락한 건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성도들이 성도답게 살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 성도들이 마치 소금기둥으로 화한 며느리처럼 자꾸 세상의 사치와 향락에 눈을 돌리기 때문에, 세상 전체가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도는 세상에 휩쓸리고 그를 추종할 게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야 합니다. 물론 남 위에 군림하는 가짜 리더십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몸소 모범을 보여 주신 것처럼 섬기는 리더십으로 세상을 깨끗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거룩이며 세상과 나 자신을 바꾸는 능력이고 그 안에 성령이 임재하는 증명일 것입니다.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초기 모티베이터인 새무얼 스마일즈는 "천재는 감탄을 불러일으키지만 인격자는 존경을 부른다"고 했습니다(p147). 우리는 무엇이 부럽습니까? 천재보다는 인격자가 되고 싶지 않을까요? 저자인 이재기 목사 역시 쟐생긴 미남이라는 평가보다는 훌륭한 인격의 힘을 인정 받고 싶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어 성경 속에 인물이 나열된 순서는 나이나 알파벳 순이 아니라 그 인격의 완성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초기에 바나바가 선두에 언급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록에서는 서서히 바울이 앞을 차지합니다. 이는 바울이 그 인격의 힘으로 이미 성도들 사이에서 확고한 리더의 자리를 다져 나갔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도 이처럼 돈이나 외모나 헛된 정치질 따위로 남 앞에 설 게 아니라 참된 인격의 평판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 합니다. 


마귀의 거짓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p173). 어떤 마귀는 참으로 교활하여 그저 의인임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타인을 마귀로 규정하여 제 정체를 감추려 듭니다. 그런 얕은 수에 누가 속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죠. 물론 마귀에 지목당한 자 역시 만만찮은 마귀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선수를 친 그 마귀만큼 악독한 놈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술수를 잘 쓰는 마귀만큼 성도들이 경계헤야 할 녀석은 없습니다. "가장 강한 성도가 소매를 걷어붙이면 마귀가 이를 비웃으나, 가장 약한 성도가 기도를 하면 마귀는 두려움에 떤다(p177)." 마귀는 어차피 중상모략자(diabolic)이므로 그가 무슨 모습을 하고 방해를 한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놈은 본디 해 오던 제 할 일을 하는 것뿐이며, 문제는 성도가 제 할 일이 기도임을 빨리 깨닫는 것입니다. 


리더는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남한테 받은 만큼만 돌려주겠다는 이기적이고 좁은 마음으로는 결코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찾아가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결국은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게 소통해야 합니다. 현재 성도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폐쇄적이라는 건데, 바울이 유대인들과 생판 모르는 이방인들을 방문하며 사역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유대인들은 종래의 고루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영향력 아래 놓인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오히려 이방인보다 복음화가 더 어려웠습니다. 이런 절대 난관을 딛고 바울은 지중해 세계를 기독교의 권역 안에 넣는 초석을 다진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있는 오늘의 성도들은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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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호흡 - 발암물질 미세먼지로부터 내 몸을 지키는 법
노진섭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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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호흡하는 코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기관 가운데 하나가 코다.... 폐와 심장이 사람의 의도와 관계 없이 항상 움직이는 것도 생존 때문이다. 이렇게 항상 개방된 코를 통해 이물질은 채내로 들어온다.(p26)" 그러고 보면 눈꺼풀이 있어 빛에의 시신경 노출을 조절할 수 있듯 코에도 뚜껑 같은 게 달렸더라면 더 좋았을...까요? 책에는 이미 답이 나와 있는데 어차피 들숨과 날숨은 쉴새없이 지속되어야 하므로 그런 건 큰 의미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코털 같은 게 융통성 있게 이런저런 이물질을 (미흡하나마) 걸러 주게 진화한 걸 고맙게 생각해야겠습니다.


"아주 작은 먼지는 산소와 함께 혈관으로 이동한 후 전신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대식세포가 출동하여 이물질이나 병원균을 잡아먹기도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혈액이 끈적해지고 염증도 생긴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적군과 자주 싸우다 보면 아군도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pp. 28~29). "미세 먼지에 장기 노출되면 폐암 발생과 사망이 증가하고 저체중 조숙아 출생, 영아 사망이 발생한다(p31)." p60에는 비만한 사람일수록 미세먼지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됩니다. "갑상샘 기능 저하, LDL 콜레스테롤 증가는 산화 스트레스 및 염증 반응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비만이 이런 반응에 촉매가 된다."


예전에는 건축 자재에 일급 발암물질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80년대 이후 삶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암환자가 급증한 데에는 이런 원인이 있었겠습니다. p72에는 폼알데히드(=포름알데히드), 라돈, 일산화질소 등이 인체에 치명적 문제를 일으키는 물질들로 소개됩니다. "인쇄, 고무, 가죽 산업 등에서 용매로 사용하는 자일렌을 고농도로 흡입하면 현기증, 졸림, 폐부종 등이 나타난다.(p73)" 다 사람이 편하게 살자고 만든 시설이고 물질들이지만 자연에 본디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들이 이런 무서운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이러니 이런저런 공장 등에 근무하던 노동자들한테 산업 재해가 발생하여 불구가 되거나 소중한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미국에 처음 상륙했을 때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던 어느 부자는 갑자기 우울증에 걸려 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왔었습니다. 우리 주변이 예전에 없던 미세먼지 등으로 둘러싸여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시원하게 숨도 못 쉬는 상황이 벌써 7년 넘게 계속되니 멀쩡한 사람도 우울증에 걸릴 판입니다. 도시의 공기가 나쁘다고 해도 주거지역은 그런대로 괜찮았었는데 이제는 산골이나 어촌에 가도 미세먼지로부터 도망갈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관리만 잘하면 문제없다고 하지만 당뇨는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격한 운동도 못한다면 사는 재미가 얼마나 줄어들겠습니까. 그러니 병에 걸린 후에 관리를 잘할 생각을 하지 말고 아예 걸리지 않게끔 노력해야 합니다. 당뇨가 유전이라고 하는데 이는 식생활습관이 유전되어 결국은 일정 나이대에 발병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무작정 이유도 없이 병이 생긴다는 게 아닙니다. 여튼 이 책에서는 미세먼지가 당뇨 발병과 상관관계가 아주 높다는 가설도 소개합니다. p99에는 미세먼지와 조산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p225에서도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하네요. 


p112 이하에는 오히려 지난 30년 동안 한반도의 공기가 좋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옵니다. 원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싶지만 내용을 잘 읽어 보면 석탄 연료 사용이 감소한 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내용입니다. 1966년에는 연탄 가격이 폭등하여 이른바 연탄 파동이 발생했고(p113), 이후 연탄 사용은 차차 감소했으나 1973년, 1978년 두 차례 석유 파동이 발생하며 일시 다시 연탄 사용이 늘었다고 합니다. 이후의 사정은 우리가 다들 잘 아는 바입니다. 도시에서 연탄 사용하는 곳은 이제 고깃집 말고는 찾기 힘듭니다. 그러니 한반도 내에서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이며, 만약 중국의 영향이 없었으면 우리는 지금쯤 공기 질에 관한 한 얼마나 만족스러운 상태를 누리고 있었겠습니까. 


다만 이 책 저자의 입장은 달라서 "중국의 영향은 줄어들고 있으며 우리가 최대한 노력을 해야지 남 탓만으로는 국제 협력을 구하기 힘들다(p190, p292)"에 가깝습니다. 또 p265에는 어느 국제 기구가 세계 4대 기후 악당 중 하나로 한국을 꼽았다는 사실이 또 인용됩니다. 책 중에는 예전 정부의 "고등어 탓"이 비판되기도 하는데, p295 이하에선 "우리 주변의 미세먼지부터 잡자"고 하니 결국 무슨 차이가 있는가 싶기도 하네요. 뭐 판단은 이 책을 읽는 독자 각각의 몫입니다. 


먼지는 자연적으로도 생기며 이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 높다란 산악 지형도 수만 년 풍화를 거치며 평지가 되고 일교차가 큰 기후가 암석을 자갈로 만들고 마침내 모래로도 변합니다. 이런 자연먼지는 애초에 인체에 그리 큰 악영향이 없지만(있기야 하죠), 인공적으로 만든 먼지가 문제라는 겁니다. p145에는 미세먼지 배출된 기여도에 대한 원 차트가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조금 편하자고 만들어낸 이런저런 장치 때문에 겪게 되는 엄청난 피해입니다. "인간은 공기를 더럽히는 방법을 꾸준히도 찾아 왔다(p152)." 


제사 등을 지낼 때 보통 향을 피웁니다. 향은 냄새도 좋고 문화적 의미 결부 때문인지는 몰라도 맡고 있노라면 뭔가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18년 타계한 배우 신성일씨는 생전에 회고하기를 폐가 가족력 때문에 약하긴 했으나 금연도 한 자신이 암에 걸린 건 부모님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매일 앉아 있었던 게 컸던 것 같다고 했답니다. 생각도 못한 결과지만 향에도 발암물질이 들어 있을 수 있다(p175)는 저자의 말은 귀기울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어느 경우에나 중요한 건 잦은 실내 환기이며 특히 오미크론 변이가 발생했다는 지금은 코로나 예방을 위해서도 더 필요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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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유난 떨며 삽니다 - 소심한 사람이 세상에 던지는 유쾌한 저항
박현선 지음 / 헤이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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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이 있어야 마찰이 있고 그럼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성된다.(p8)" 한국은 확실히 어느 집단이건 다른 사람들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저자 머리말 중에도 나오듯 공동 작업 중에서 몸이 아프다고 빠지고, 뭔 사정이 있다고 빠지고.. 이러면 그 사람은 다음부터 모임이나 조직 중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 사람은 조만간 퇴사를 해야 할 분위기에 몰릴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핀란드에서 생활하며 이렇게 한국식으로 길들여진 마인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지인들의 행태에 당혹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들을 따라서, 나도 그냥 내 생각 표현하고 싶을 때 그대로 표현하기로 하자고 마음 먹고 그대로 해 보니, 1) 의외로 마음이 편하고 2) 핀란드인들과 더 소통이 잘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뭣보다 일단 내 마음이 편해야 이게 정답이었구나 싶겠는데, 그걸 넘어서 현지인들과 더 공감이 잘되기까지 하니 일석이조입니다. 이게 핀란드식 개인주의라면 혹 한국에도 자일리톨처럼 셩공적으로 이식될 수 있진 않을까요.


우리는 어느 조직에서라도 어떤 질문을 제기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아직도 지배적입니다. "좀, 원래 그런 줄 알고 넘어가면 안 되겠니?" 이처럼, 저자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저 튀지 않고 남들 하는 건 다 해 주면서 무난하게 분위기에 묻어가는 방식이 모범생이라며 칭찬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직이건 개인이건 관성이 생깁니다. 관성(p19)은 물론 물리계를 지배하는 제1법칙이지만 여기에만 지배되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조직이건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혁신과 창의를 강조하는 시대라고도 하니 저런 건 더욱 문제가 큽니다. 


에코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좋은 줄 압니다. 나도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작은 노력이나마 보태고 동참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는데 알고 보니 가짜 에코였다, 이런 에코백(p35) 하나 생산하는 데 오히려 더 많은 탄소가 소모되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하는 마케팅을 두고 "그린 워싱"이란 말도 쓰곤 합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분리수거를 놓고 더 많은 고민이 이뤄집니다. 애써 분리배출을 해 놓았더니 소용없는 짓이었더라, 뭘 어디에 분류해야 하는지 아직도 기준이 모호하다 등등... (이 비슷한 이야기가 "그거 다 소용없대"라는 말과 함께 이 책 p49 이하에도 마침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시민들은 대개 착하기에 그 나름 고민을 하고 최선이다 싶은 선택들을 합니다. 아파트 같으면 동 규약을 정해서 일단은 고대로 모두가 따르기도 합니다. 무엇이 최선인지 정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으나 일단은 최선을 다해 보자는 게 저자와 그 남편분(p37)의 선택이었던 듯합니다. 이런 모습은 흐뭇하고 어디에서건 공통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연 플라스틱은 절대 악일까요? 바다에 버려지는 폐 플라스틱 때문에 해양 생물이 죽어간다고 하는데 이게 걔네들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패류를 섭취하며 생물 농축이 이뤄지면 결국 우리한테 끔찍한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오는 거죠. 그러니 플라스틱은 안 쓰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 플라스틱이라는 게 특히 지난 20세기 동안 생필품 가격을 낮추고 우리한테 편의를 제공한 게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저자도 이 책 곳곳에서 "그래도 얼마나 편한 게 플라스틱인데..." 같은 아쉬움을 솔직하게 털어 놓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아직 채 대안이 마련되기 전인데 그 끔찍한 해악이 발견되어 눈물을 머금고 작별을 해야 한다는 게...


미니멀리즘은 이 역시 마케팅이 교묘히 유도하는 또하나의 트렌드일 뿐 그 안에는 엉뚱하게도 맥시멀리즘이 감춰진 건 아닐까?(p73) 디드로 효과라고 해서 하나를 구매하면 그와 연관된 상품을 또 줄줄이 구매해 줘야 하는 역작용이 생깁니다. 이러면 최소로 만족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됩니다. 결국은 누가 이게 좋다더라는 걸 생각 없이 따라할 게 아니라 진짜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일지 평소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냉철하게 계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주의자(p93)가 되되, 현명하게 고르고 따지는 물질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사람이 물건을 쓰다 보면 지겨워지고 남 보기엔 멀쩡한 걸 내다버리고 싶고 한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십 수 년 전에는 아나바다 운동 같은 게 유행도 했죠. 그런데 작정을 하고 나는 남들이 뭐라 하건 이걸 끝까지 쓰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p115에는 "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라는 말이 나오는데 기업부터가 벌써 생산단계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니 힘 없는 개인이 어떻게 대응을 하겠습니까. 결국 남들 사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건가. 저항(저자가 이 책에서 자주 강조하는 주제어)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는 건가. 이런 회의가 들 수밖에 없네요. 


전통(p150)이란, 알고보면 허상에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전통이, 다른 문화권에선 얼마나 혐오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는지요. 식습관부터 해서 이런 예는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전통과 인습 사이

의 경계도 모호합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들 중 하나인 "관성"과도 아주 가까이 닿아 있다는 걸 떠올리면 더욱 꺼림칙합니다. 


한국에서 현재의 음식쓰레기(음쓰)를 처리하는 방법은 아직 최적화되지 못했습니다. 갈아서 버린다고 해도 이것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 하수관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모릅니다. 핀란드에서는 콤포스터(p188)를 사용하여 쓰레기도 줄이고 친환경 농업에도 활용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노리지만 저자는 좀 복잡한 생각을 갖습니다. 


"그랬다간 호적에서 파버릴 줄 알아!(p233)" 자녀에게 아내의 성씨를 물려주고 싶다고 하자 그 부모님이 저런 취지로 말씀하셨다는데 이게 한국 사람이 아니고 어느 핀란드인이 겪은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전통 관념에 얽매어 때로는 부모자식 간의 천륜보다 어떤 컨벤션 같은 걸 더 우선시하는 게 동서양이 따로 없는 듯합니다. 비합리와 인습을 타파하는 데 어떤 거창한 혁명 같은 게 꼭 필요한 건 아니고 이런저런 소심한 시민들이 별로 유난스럽진 않으면서 진지하게 조금씩 의문을 제기해 가며 그야말로 소심하게 의견을 모아가면 언젠가는 그런 거대한 굴레, 족쇄 같은 것에도 저절로 녹이 슬어 알아서 툭 부러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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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성공학 (미래지식)
데일 카네기 지음, 김지현 옮김 / 미래지식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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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 사람이 어떤 적성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자아실현을 꾀하건 간에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이를 이룰 방법이 없습니다. 성취도 성공도 모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손에 넣을 수 있으며 동지와 우군을 얻고 여러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데일 카네기는 예의 구체적 실천 방법론과 풍부한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영화 <대부>에는 "친구를 가까이하며, 적은 그보다 더 가까이하라"는 명대사가 나옵니다. 저 영화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쓰인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본 오브레곤 장군의 흉상 어느 문구가 소개됩니다. "네가 공격하는 적을 두려워하지 말라. 네게 아첨하는 친구를 두려워하라.(p60)" 조지 5세 왕은 "값싼 칭찬을 하거나 받지 않도록 가르쳐 주세요."라는 금언을 걸어 놓았다고도 책에 나옵니다. 어떤 평가나 진단은 객관적이거나 그에 최대한 가까워야 하며, 몇몇 편협하고 미성숙한 이들이 모여 쑥덕거리며 만든 터무니없는 세계관 따위에 매몰되지 않아야 합니다. 아주 좁은 인간관계에 집착하다가 더 큰 네트웍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편집자(p94)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사람들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작가의 이야기라면 사람들도 역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참 핵심을 찌른 말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유명한 작가들은 혼자 고고한 척하는 타입보다는 (별 매력도 장점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과(도) 널리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물론 에밀리 브론테 같은 은둔형 작가도 없는 건 아니지만 이는 시대상을 감안해야 하며 요즘처럼 대중 사이에서 널리 호응을 얻어야 할 풍조라면 작가는 항상 오픈된 마인드를 가진 인싸라야 할 듯합니다. "쇼를 찾아 준 내 청중(audience)들을 사랑한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어떤 대장장이의 아들로부터 그를 극구 찬양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자인 저도, 이미 널리 유명세를 얻은 분이라고 해도 이런 편지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의외로 느낀 적이 많았는데 이를테면 모 대학 교수 P 선생님 같은 분이 그랬습니다. 어떤 고등학생한테 받으신 편지가 그렇게나 기분이 좋으셨나 본데 그 고교생이 이후 교수님한테 발탁되어 출세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저 대장장이의 아들 홀 케인은 이후 로세티의 주선으로 세상에 알려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큰 부와 명성을 쌓았다고 하죠. 저자는 그런데 여기서 "로세티 역시 홀 케인 이전 다른 누군가가 그를 칭찬해 주었더라면 그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p155)"라고 합니다. 이 대목은 솔직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p175에는 석가모니와 링컨의 말이 인용되는데 둘 다 어떤 분쟁을 미움과 투쟁 기술로 풀려 들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특히 링컨은 누군가를 논쟁으로 이기려 들지 말라고 합니다. 의도했던 효과가 전혀 나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만 부르기 쉽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럼 그 대안은 (논쟁 외에) 무엇인가. <Bits and Pieces>라는 매체에 (아마도) 저자 본인이 기고한 내용을 이 책에서 다시 요약하기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견을 환영하라

2) 직관적인 첫인상을 마냥 신뢰하지 말라

3) 먼저 상대의 말을 들어라

4) 합의가 가능한 영역을 찾아라

5) 상대가 관심을 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


적어도 이런 것들이, 어떤 사람과 특별히 원수를 지지 않게 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이라고 합니다. p183에는 어느 젊은 변호사 S(아마 데일 카네기의 지인인가 봅니다)의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나오는데 법정에서 어느 판사가 "해사법의 공소시효에 의하면..."이라고 말하던 중 이 변호사 S가 대뜸 "판사님, 해사법에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라고 타당한 지적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해사법(maritime law)이라 해도 개별 조항에 형사 처벌 조항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 경우는 아니었나 보죠. 이 판사는 그 젊은 변호사의 총기와 명석함에 감복했을까요? 그렇기는커녕 옹졸하게도 이후 재판의 진행에 내내 젊은 변호사는 곤란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판사의 협량이 비판 받아야 마땅하겠으나, 젊은 변호사는 재판 중 그를 공개 망신 주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조용히 착오를 알려 주었어야 더 현명했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판사도 젊은이의 사려 깊음에 고마운 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알며 자신의 잘못을 고쳤겠죠. 


요즘 반려동물 데리고 다니는 이들이 많은데 공공장소에서 지키야 할 바를 안 지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목줄을 하지 않고 개를 끌고 다니다 경찰에게 지적을 받았고, 잘못을 모두 시인했으며 이 선택이 훌륭했다고 자평을 합니다(p196). 책을 읽으면서 이 대목이 살짝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불필요한 논쟁은 오히려 인간관계를 악화시켜 역효과를 낳을 뿐이라는 게 요지이지만, 만약 데일 카네기가 작정을 하고 그 경관과 논쟁을 벌였다면 과연 어떤 논거를 내세웠을지 말입니다. 여튼 근엄하기만 한 이미지를 깨고 이런 실수도 솔직히 털어놓는 저자가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데일 카네기가 얼마나 예전 사람인데 미국에는 벌써 그때에 이런 관련 법규가 다 마련되었다는 뜻이어서 놀라웠습니다. 


p222에는 중국의 금언이 하나 인용됩니다.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사람이 (결국) 멀리 간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요지는, 격한 어조를 상대를 단박에 굴복시킬 생각을 하지 말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상대를 설득시켜 나가는 방법이, 거의 언제나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gadfly of Athens라는 별명이 있었던 소크라테스 역시 가장 큰 설득술로 이런 방식을 꼽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도 이를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빼어난 화술로 그를 설득, 설복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나의 의견을 슬쩍 눈치채게 한 후, 적당히 시간을 주어 숙고하는 동안 마치 자신 스스로 그 의견을 떠올려 생각을 바꾸게 된 것처럼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네요(p235). 이러면 이 사람은 스스로 의견을 바꾼 것이지, 누구한테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존심을 다치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이야말로 조직의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비결입니다. 


이미 공연하기로 모든 일정이 잡혔는데 그저 목 상태가 안 좋다는 이유로 그냥 공연을 취소해 버리자고 우기는 가수(p254)가 있습니다. 공연 기획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 제정신입니까? 당신을 무대에 올리기로 한 우리의 손해가 얼마나 클지 생각해 봤나요? 당신을 보려고 먼 데서 찾아온 수백 명의 팬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당신에게 거액의 손해 배샹을 청구하고, 다시는 무대에 못 서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그 기획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겠죠. 그러나 이 시점에서 기획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은 그 가수를 잘 설득하여 무대에 예정대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목이 안 좋으시다니 어쩔 수 없죠. 손해가 크겠지만 말이에요. 금전적 손해보다 더 아쉬운 건 당신의 명예에 금이 가는 거지만 어쩌겠어요. 뜻대로 하셔야죠." 제멋대로였던 가수는 이 말을 듣고 결국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예전 잡지들 중 "리뷰"라는 말이 이름에 붙은 건 대개 문학 저널이더군요. p291에는 유명 설교자 비처의 아내분이, 남편의 설교 원고를 읽고 "이 글은 노스아메리칸 리뷰에 실려도 될 만큼 훌륭하네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비처 목사는 순간 아차! 싶어서 원고를 바로 찢어버리고 더 쉬운 말로 고쳐 썼다네요.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잘못을 직설적으로 지적하지 말고, 당사자가 스스로 깨닫게 돌려서 말하라는 것입니다. 


p328에는 우드로 윌슨이 저지른 실수(저자의 판단으로는)를 하나 언급합니다. 국제연맹을 창설하려는 그의 의도는 최상의 것이었으나, 정작 국내의 카운터파트인 공화당 측에 이 기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주어 가입을 쉽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수십 년 후 제2차 대전의 한 단초가 되어 새로운 비극을 낳기에 이르렀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아무리 올바른 방안이라도 상대의 자발적인 동의를 유도할 수 있어야 그 올바름이 현실에서 증명된다는 것, 타인과의 공감이 모든 관계의 초석이 된다는 저자의 결론에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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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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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죽었고, 왕비가 죽었다, 이것이 내러티브이다. 반면 왕이 죽자 왕비가 비탄에 빠져 따라 죽었다, 이것이 플롯이다." E M 포스터가 남긴 유명한 예시이며 지금 이 책 저자 잭 하트가 p39에서 저 구절을 인용합니다.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고, 더군다나 소설 작법 같은 건 따로 그 비결을 좀 알아내서 퓰리처 상을 받을 만큼 뭇 독자들의 주목도 받고 싶은 게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가져 봄직한 소망일 수 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p53을 보면 "독자는 비록 퓰리처 상은 받지 못하더라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이 시행착오를 통해 간신히 배운 바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p70 같은 곳을 보면 저자는 팟캐스트 작가 같은 이들의 상담 요청에도 자주 응하는가 봅니다. 


이 책은 소설보다는 "논픽션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둔 내용입니다. 원제도 그러하며, "퓰리처"가 이 번역서 제목 안에 들어간 건 저자 잭 하트가 오랜 동안 퓰리처 상 심사위원으로 봉직했고 글쓰기 코칭을 통해 여러 작가를 길러낸 분이라는 이유가 있겠습니다. 퓰리처 상을 받기라도 하면 글쓰는 일이 직업인 이들에게야 물론 더없는 영광이겠지만, 상이 중요하다기보다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의도가 전달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가 대단한 성취이자 능력입니다. 특히 준(準) 논픽션 포맷은 전업 작가가 아니라 해도 업무상 자주 작성이 요구될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에 일반인도 요령을 알아 둘 필요가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소설 작법에도 참고될 여지가 많은지, 저자 서문에 앞서 한국 작가들 세 분의 추천사가 따로 나와 있네요. 서문애서 저자 스스로 밝히듯 "이 책에는 편집자의 관점이 (주로)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앞서 E M 포스터의 유명한 문장이 나왔지만 어떤 플롯(논픽션에서도 당연히 플롯이 있습니다)이 특히 선호되는지, 혹은 편집자나 코치의 입장에서 더 선호되는지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입장이 다 다를 것입니다. p46 같은 곳에서 로버트 맥키 같은 이(p72 같은 데서 다시 나옵니다)는 헐리우드 영화 각본 등의 (대체로는) 분명한 엔딩을 두고 "닫힌 결말"이라 규정하는데 이에는 어느 정도 비판적인 뉘앙스가 포함되었겠습니다. 저자는 이런 닫힌 결말은 주로 소설가들이 선호한다면서 논픽션에서는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암시하지만, 자신은 차라리 존 프랭클린의 입장에 찬성한다며(p48) 오히려 누가 승자이고 패자인지 분명히 드러내는 결말이 좋다고 거의 단정합니다. 이런 지론은 지금 이 책이 바람직한 논픽션 작성법을 다루기 때문에 더 강조되는 면이 있을 듯합니다. 


구조를 잘 시각화(p60)한 다음, 발단부에서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사건의 흐름 속으로 끌어들어야(p71) 합니다. 이후 이야기는 상승(발전)되고, 위기를 맞은 후 절정에서 해결을 맞은 후(p83), 대단원에서 하강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의 순서를 차분히 따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플래시백 혹은 플래시포워드를 주렁주렁(p84) 달며 기교를 부릴 수도 있습니다. 이때 독자가 흥미와 집중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가능하면 KISS 원칙, 즉 "간단명료하게 쓰기"를 준수하라고 합니다. 저자가 이때 드는 예시는 헐리웃 영화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액션영화 <더티 해리> 시리즈에서 감동서사물 <용서받지 못한 자>로 어떻게 넘어갔는지입니다. 


오리건 주는 미국 서북부에 있죠. 이 책에서 수시로 <오레고니언> 誌의 기자들과 소통한 일이 언급되는 건 그가 25년 동안 저 매거진의 편집장으로 일했기 때문입니다(이 책 앞날개 中). 추상적이고 타인의 저서에서 인용한 문구 위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고 가능하면 자신이 직접 겪은 일에서 소재와 예화를 찾는 건 미국 저자들의 공통점 같습니다. 논픽션 글쓰기가 주제이다 보니 당연히 저널리즘 방면의 (명) 아티클들이 자주 언급되며 그 중에는 스튜어트 톰린슨의 르포 기사 한 대목(p111)도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톰린슨 필자의 "카메라 스탠스"를 언급합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카메라워크의 빼어남이듯, 잘 쓰여진 논픽션 역시 독자의 욕구를 미리 짐작하여 효과적인 스탠스로 카메라를 요리조리 잘 잡습니다. 카메라맨의 발놀림이 능란하면 독자는 그의 존재를 눈치도 못 채고 이야기 속으로 마법처럼 빨려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글 쓰는 이들이 이처럼 카메라의 시야를 염두에 둘 것을 충고하는 저자의 노련함이 돋보입니다. 이 책에서 영화 관련 사항들이 자주 언급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나는 메리가 쓴 글이라면 매체를 가리지 않고 찾아 읽는다(p130)." 누군데 편집장님한테 이런 칭찬을 들을까요? 작가 메리 로치를 가리킵니다. 그녀는 글도 실물도 재기발랄하다고 저자는 평합니다. 이와는 달리 글솜씨나 실제 옷 입는 스타일, 사람 상대하는 매너가 한결같이 단정한 예로는 작가 존 맥피를 꼽습니다. 이처럼 글에 배어나는 무언가가 글쓴이의 정체성을 일부 규정하는데 이걸 두고 "목소리"라 일컬으며 내러티브와는 완전히 구별됩니다. 이 4장에서는 "목소리와 스타일"이 어떻게 다른지, 논픽션에서 이 둘은 각각 어떤 기능을 뚜렷이 수행해야 하는지 풍부한 예문을 통해 설명됩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도 그렇지만 글쓰기 책들은 그 일류 저자가 여러 작가의 여러 책에서 인용한 문장, 문단 들만 따라가며 읽어도 재미가 있으며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등장인물들은 그 캐릭터가 분명해야 일단 독자의 주목을 받으며 심지어 유튜브나 아프리카TV의 진행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어로 쿠세라고도 하는, 인물의 "버릇" 역시 독자의 주목을 높이고 특유의 매력을 환기할 수 있습니다. 5년 전 힐러리 클린턴의 러닝메이트였던 팀 케인 버지니아주 미 연방상원의원은 눈썹을 독특하게 치켜올리는 습관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p169에서는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거나 팔짱을 꼈다거나 하는 묘사가 "지면을 거의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의 일단을 잘 살리는 효과를 낸다는 점을 독자에게 강조합니다. 사소하지만 이런 작은 매력(잘 보이지도 않는)들이 모여 멋지고 효율적인 논픽션 완성에 기여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좋은 내러티브는 속도감이 있어야 한다(p226)." 저자는 이 책에서 동시대, 혹은 앞선 시대의 다양한 평론가들, 문필가들을 인용하며 문장론을 들려 주는데 그 와중에도 자신만의 주장은 그것대로 구별을 하면서 타인의 의견들은 일반적인 것들(독자인 제 생각에는)까지 일일이 인용출처를 밝히는 게 눈에 띕니다. 여튼 이 중에는 무려 2800년 전에 활동한 헬라 고전 작가 호메로스도 있습니다. 특히 이 책 저자가 속도감의 모범으로 칭찬하는 건 "독자에게 그 순간을 음미할 만큼 여유를 주면서도 아킬레스가 최후의 일격을 당한 후 몸이 앞으로 쏟아지는 장면에서는 특별한 긴박감을 주는" 작가의 기교를 언급합니다. 


논픽션이라고 해도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마치 소설처럼 직접인용으로 전개될 때가 많습니다. 이게 한국 독자들에게는 아직 낯설기 때문에 논픽션 장르가 큰 인기도 못 끌고 혹 잘된 작품이 있어도 그 참된 가치를 잘 못 알아보는 거죠. 현실 속에서 나누는 자연스러운 대화는 인터뷰 같은 것과는 또 달리 스토리 전개나 인물 구축에 기여한다(p248)."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소설적 재미까지 덩달아 안깁니다. 


우리는 TV 등에서 유명인사(존경 받는 인물이건, 지탄의 대상이건 무관하게)들의 기이한 행동이나 그 실체가 드러나는 언행을 보도를 통해 비로소 접하고 충격을 받곤 합니다. 예전 말로 이런 "특종"은 보통 잠입취재를 하는 기자들의 근성에 의해 잡힙니다. 어떤 특종을 어느 기자가 했는지까지는 대중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단한 특종(단독 보도)을 했다 해도 무슨 큰 보상이 될까 싶은데 동종 종사자들끼리 공유되는 어떤 평판, 인정, 직장 상사의 유무형 포상으로 충분한가 보죠. 여튼 저자는 편집장님답게 이 "잠입 취재(p277)"의 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성공적인 내러티브 논픽션의 필수 전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톰 프렌치의 말을 인용하며 "작고 소소한 순간과 힘의 중요성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p299)"고 합니다. 특히 기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며 지나가는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도 합니다. 마치 낚시에서 월척을 낚아올리는 그 순간이 중요하듯, 혹은 스트라이커에 크로스 되었을 때 골키퍼와 대치하는 그 짧은 순간 킬러 인스팅트로 정확히 골넷을 가르게 하는 그 순발력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해설 내러티브에는 두 가지 임무가 있는데 그것은 액션과 설명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저자는 자사 민완 기자인 리치 리드(p339)의 멋진 활약상을 들면서 꺼냅니다. 내러티브는 물론 집중력을 잃지 않고 탄탄한 일관성, 맥락을 지켜 나가야 하겠으나 간혹은 "옆길로 새기"도 필요한데 이는 지나치게 이야기의 팽팽한 긴장의 끈을 때로 늦출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p392에서 E B 화이트의 작품을 예로 들며 생각지도 않은 반전으로 결말을 짓는 우수한 기법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책은 날카로운 안목, 깊은 지혜, 투철한 양심을 지닌 편집자의 손을 거치기 마련이라서 특히 회고록류의 경우 대체로는 그 안에 진실만이 담겼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예컨대 p419에서는 논란 많았던 프랭크 매코트의 예, 혹은 스스로 거짓임을 이후에 자백한 재닛 쿡의 예를 거론합니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고 독자를 사로잡는 글을 쓰는 저자라 해도, 그 안에 끔찍한 허위와 날조가 깃들었다면 이미 이는 애써 창조한 우주를 근본으로부터 무너뜨리는 짓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글 잘 쓰는 사람 이전에 먼저 인격과 도덕을 갖춘 인성이 필요하며, 어쩌면 이것이 모든 글쓰기에 앞서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의 마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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