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평점 :
"왕이 죽었고, 왕비가 죽었다, 이것이 내러티브이다. 반면 왕이 죽자 왕비가 비탄에 빠져 따라 죽었다, 이것이 플롯이다." E M 포스터가 남긴 유명한 예시이며 지금 이 책 저자 잭 하트가 p39에서 저 구절을 인용합니다.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고, 더군다나 소설 작법 같은 건 따로 그 비결을 좀 알아내서 퓰리처 상을 받을 만큼 뭇 독자들의 주목도 받고 싶은 게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가져 봄직한 소망일 수 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p53을 보면 "독자는 비록 퓰리처 상은 받지 못하더라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이 시행착오를 통해 간신히 배운 바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p70 같은 곳을 보면 저자는 팟캐스트 작가 같은 이들의 상담 요청에도 자주 응하는가 봅니다.
이 책은 소설보다는 "논픽션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둔 내용입니다. 원제도 그러하며, "퓰리처"가 이 번역서 제목 안에 들어간 건 저자 잭 하트가 오랜 동안 퓰리처 상 심사위원으로 봉직했고 글쓰기 코칭을 통해 여러 작가를 길러낸 분이라는 이유가 있겠습니다. 퓰리처 상을 받기라도 하면 글쓰는 일이 직업인 이들에게야 물론 더없는 영광이겠지만, 상이 중요하다기보다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의도가 전달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가 대단한 성취이자 능력입니다. 특히 준(準) 논픽션 포맷은 전업 작가가 아니라 해도 업무상 자주 작성이 요구될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에 일반인도 요령을 알아 둘 필요가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소설 작법에도 참고될 여지가 많은지, 저자 서문에 앞서 한국 작가들 세 분의 추천사가 따로 나와 있네요. 서문애서 저자 스스로 밝히듯 "이 책에는 편집자의 관점이 (주로)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앞서 E M 포스터의 유명한 문장이 나왔지만 어떤 플롯(논픽션에서도 당연히 플롯이 있습니다)이 특히 선호되는지, 혹은 편집자나 코치의 입장에서 더 선호되는지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입장이 다 다를 것입니다. p46 같은 곳에서 로버트 맥키 같은 이(p72 같은 데서 다시 나옵니다)는 헐리우드 영화 각본 등의 (대체로는) 분명한 엔딩을 두고 "닫힌 결말"이라 규정하는데 이에는 어느 정도 비판적인 뉘앙스가 포함되었겠습니다. 저자는 이런 닫힌 결말은 주로 소설가들이 선호한다면서 논픽션에서는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암시하지만, 자신은 차라리 존 프랭클린의 입장에 찬성한다며(p48) 오히려 누가 승자이고 패자인지 분명히 드러내는 결말이 좋다고 거의 단정합니다. 이런 지론은 지금 이 책이 바람직한 논픽션 작성법을 다루기 때문에 더 강조되는 면이 있을 듯합니다.
구조를 잘 시각화(p60)한 다음, 발단부에서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사건의 흐름 속으로 끌어들어야(p71) 합니다. 이후 이야기는 상승(발전)되고, 위기를 맞은 후 절정에서 해결을 맞은 후(p83), 대단원에서 하강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의 순서를 차분히 따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플래시백 혹은 플래시포워드를 주렁주렁(p84) 달며 기교를 부릴 수도 있습니다. 이때 독자가 흥미와 집중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가능하면 KISS 원칙, 즉 "간단명료하게 쓰기"를 준수하라고 합니다. 저자가 이때 드는 예시는 헐리웃 영화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액션영화 <더티 해리> 시리즈에서 감동서사물 <용서받지 못한 자>로 어떻게 넘어갔는지입니다.

오리건 주는 미국 서북부에 있죠. 이 책에서 수시로 <오레고니언> 誌의 기자들과 소통한 일이 언급되는 건 그가 25년 동안 저 매거진의 편집장으로 일했기 때문입니다(이 책 앞날개 中). 추상적이고 타인의 저서에서 인용한 문구 위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고 가능하면 자신이 직접 겪은 일에서 소재와 예화를 찾는 건 미국 저자들의 공통점 같습니다. 논픽션 글쓰기가 주제이다 보니 당연히 저널리즘 방면의 (명) 아티클들이 자주 언급되며 그 중에는 스튜어트 톰린슨의 르포 기사 한 대목(p111)도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톰린슨 필자의 "카메라 스탠스"를 언급합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카메라워크의 빼어남이듯, 잘 쓰여진 논픽션 역시 독자의 욕구를 미리 짐작하여 효과적인 스탠스로 카메라를 요리조리 잘 잡습니다. 카메라맨의 발놀림이 능란하면 독자는 그의 존재를 눈치도 못 채고 이야기 속으로 마법처럼 빨려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글 쓰는 이들이 이처럼 카메라의 시야를 염두에 둘 것을 충고하는 저자의 노련함이 돋보입니다. 이 책에서 영화 관련 사항들이 자주 언급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나는 메리가 쓴 글이라면 매체를 가리지 않고 찾아 읽는다(p130)." 누군데 편집장님한테 이런 칭찬을 들을까요? 작가 메리 로치를 가리킵니다. 그녀는 글도 실물도 재기발랄하다고 저자는 평합니다. 이와는 달리 글솜씨나 실제 옷 입는 스타일, 사람 상대하는 매너가 한결같이 단정한 예로는 작가 존 맥피를 꼽습니다. 이처럼 글에 배어나는 무언가가 글쓴이의 정체성을 일부 규정하는데 이걸 두고 "목소리"라 일컬으며 내러티브와는 완전히 구별됩니다. 이 4장에서는 "목소리와 스타일"이 어떻게 다른지, 논픽션에서 이 둘은 각각 어떤 기능을 뚜렷이 수행해야 하는지 풍부한 예문을 통해 설명됩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도 그렇지만 글쓰기 책들은 그 일류 저자가 여러 작가의 여러 책에서 인용한 문장, 문단 들만 따라가며 읽어도 재미가 있으며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등장인물들은 그 캐릭터가 분명해야 일단 독자의 주목을 받으며 심지어 유튜브나 아프리카TV의 진행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어로 쿠세라고도 하는, 인물의 "버릇" 역시 독자의 주목을 높이고 특유의 매력을 환기할 수 있습니다. 5년 전 힐러리 클린턴의 러닝메이트였던 팀 케인 버지니아주 미 연방상원의원은 눈썹을 독특하게 치켜올리는 습관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p169에서는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거나 팔짱을 꼈다거나 하는 묘사가 "지면을 거의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의 일단을 잘 살리는 효과를 낸다는 점을 독자에게 강조합니다. 사소하지만 이런 작은 매력(잘 보이지도 않는)들이 모여 멋지고 효율적인 논픽션 완성에 기여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좋은 내러티브는 속도감이 있어야 한다(p226)." 저자는 이 책에서 동시대, 혹은 앞선 시대의 다양한 평론가들, 문필가들을 인용하며 문장론을 들려 주는데 그 와중에도 자신만의 주장은 그것대로 구별을 하면서 타인의 의견들은 일반적인 것들(독자인 제 생각에는)까지 일일이 인용출처를 밝히는 게 눈에 띕니다. 여튼 이 중에는 무려 2800년 전에 활동한 헬라 고전 작가 호메로스도 있습니다. 특히 이 책 저자가 속도감의 모범으로 칭찬하는 건 "독자에게 그 순간을 음미할 만큼 여유를 주면서도 아킬레스가 최후의 일격을 당한 후 몸이 앞으로 쏟아지는 장면에서는 특별한 긴박감을 주는" 작가의 기교를 언급합니다.
논픽션이라고 해도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마치 소설처럼 직접인용으로 전개될 때가 많습니다. 이게 한국 독자들에게는 아직 낯설기 때문에 논픽션 장르가 큰 인기도 못 끌고 혹 잘된 작품이 있어도 그 참된 가치를 잘 못 알아보는 거죠. 현실 속에서 나누는 자연스러운 대화는 인터뷰 같은 것과는 또 달리 스토리 전개나 인물 구축에 기여한다(p248)."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소설적 재미까지 덩달아 안깁니다.
우리는 TV 등에서 유명인사(존경 받는 인물이건, 지탄의 대상이건 무관하게)들의 기이한 행동이나 그 실체가 드러나는 언행을 보도를 통해 비로소 접하고 충격을 받곤 합니다. 예전 말로 이런 "특종"은 보통 잠입취재를 하는 기자들의 근성에 의해 잡힙니다. 어떤 특종을 어느 기자가 했는지까지는 대중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단한 특종(단독 보도)을 했다 해도 무슨 큰 보상이 될까 싶은데 동종 종사자들끼리 공유되는 어떤 평판, 인정, 직장 상사의 유무형 포상으로 충분한가 보죠. 여튼 저자는 편집장님답게 이 "잠입 취재(p277)"의 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성공적인 내러티브 논픽션의 필수 전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톰 프렌치의 말을 인용하며 "작고 소소한 순간과 힘의 중요성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p299)"고 합니다. 특히 기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며 지나가는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도 합니다. 마치 낚시에서 월척을 낚아올리는 그 순간이 중요하듯, 혹은 스트라이커에 크로스 되었을 때 골키퍼와 대치하는 그 짧은 순간 킬러 인스팅트로 정확히 골넷을 가르게 하는 그 순발력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해설 내러티브에는 두 가지 임무가 있는데 그것은 액션과 설명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저자는 자사 민완 기자인 리치 리드(p339)의 멋진 활약상을 들면서 꺼냅니다. 내러티브는 물론 집중력을 잃지 않고 탄탄한 일관성, 맥락을 지켜 나가야 하겠으나 간혹은 "옆길로 새기"도 필요한데 이는 지나치게 이야기의 팽팽한 긴장의 끈을 때로 늦출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p392에서 E B 화이트의 작품을 예로 들며 생각지도 않은 반전으로 결말을 짓는 우수한 기법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책은 날카로운 안목, 깊은 지혜, 투철한 양심을 지닌 편집자의 손을 거치기 마련이라서 특히 회고록류의 경우 대체로는 그 안에 진실만이 담겼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예컨대 p419에서는 논란 많았던 프랭크 매코트의 예, 혹은 스스로 거짓임을 이후에 자백한 재닛 쿡의 예를 거론합니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고 독자를 사로잡는 글을 쓰는 저자라 해도, 그 안에 끔찍한 허위와 날조가 깃들었다면 이미 이는 애써 창조한 우주를 근본으로부터 무너뜨리는 짓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글 잘 쓰는 사람 이전에 먼저 인격과 도덕을 갖춘 인성이 필요하며, 어쩌면 이것이 모든 글쓰기에 앞서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의 마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