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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 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속 명언 320가지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11월
평점 :
책 제목 그대로, 우리 어른들도 가끔은 티없이 맑은 동화의 세계로 돌아가서 지치고 상처 입은 마음을 힐링받기도 합니다. 천재 시인, 작가였던 안데르센은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동화 창작에 몰두했는데 오히려 우리는 그의 이름을 주옥 같은 동화와 더 자주 연결시킵니다. 톨스토이 역시 그의 중수필이나 장편 대작보다 경건하고 심오한 주제를 담은 동화가 더 감동적이라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어린 아이가 머물고 있습니다(p5)." 그 아이는 자주 눈물 짓고, 지인들과 다투고, 길에서 넘어지고, 회사에서 할당한 업무를 잘해내지 못하고, 퇴근길 전철에서 사람들에 부대끼며 파김치가 됩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안에 머무는 어린아이를 동화 속의 주인공들이 편안히 감싸줘서 내일 아침 출근길이 부디 덜 힘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잃어버린 소중함"을 다룬 1부에는 다섯 편의 작품이 소개됩니다. <샬롯의 거미줄>, <어린 왕자>, <파랑새>, <어부와 영혼>,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롤>입니다.
영화판 <샬롯의 거미줄>은 몇 달 전 EBS에서도 휴일에 방영했던 것 같은데 두 여성배우의 멋진 연기 덕에 원작의 잔잔한 감동이 배가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널 도와줌으로써 내 삶을 조금씩이나마 승격시키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어(05번)" 등 열한 개의 대사가 이 책에 실렸습니다. "우리는 우리 충고를 들어 주는 사람에게 감사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있죠. 남을 돕는 일은 그 사람에게 선심을 쓰는 게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이 그 행위를 통해 우리를 스스로 돌아보고 우리 내면을 더 깨끗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넌 네가 길들인 것에 영원한 책임이 있어(19번)." <어린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입니다. 위에서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공감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이 "길들임"의 일종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예전에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잃거나 잊은 것"을 아련히 되새기는 작품의 목소리에 특히 끌리는지 모른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지금 우리는 어린 시절 아무 사심 없이 그저 어울리는 게 좋아서 학교 운동장, 골목길, 근린공원에서 같이 뛰놀던 친구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내가 길들인 친구들, 나를 길들인 친구들, 책임 질테니 (혹은 책임 지러) 지금 뛰어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를 두고 저자는 "세상에 당연하다는 듯 내놓은 악의 앞에, 오히려 당신은 희망을 가져 마땅하다"고 합니다. 멋진 말입니다. 파랑새는 책 p31에 나오는 대로 "의미 없는 희망"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정말로 아무 의미 없는 희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겨울을 맞은 잎새는 곧 나무에서 떨어지기 직전이지만 오늘내일을 다투는 환자는 자신의 생명을 그 뻔한 운명에 걸 수도 있고 이것은 그의 권리입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백단장이 프런트 직원들에게 그토록 큰 신뢰를 얻은 건 "불가능하다 여겼던 희망"을 그들에게 진심으로 품게 도왔기 때문입니다.
2부의 주제는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입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꽃들에게 희망을>, <비밀의 화원>, <빨간머리 앤>, <하이디> 등 다섯 편입니다.
호지슨 부인은 <비밀의 화원>외에도 <소공자>, <소공녀> 등을 지었는데 모두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어렸을 때 설날 연휴에 TV에서 방영이라도 하면 정말 콧등 시큰해지면서 집중해서 보곤 했죠. "얘야, 네가 장미를 가꾸는 곳에 엉겅퀴가 자랄 수는 없단다(97번)." 저자는 말합니다. "아이들은 죽어가던 모든 것에 마법 같은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p71)" 이 문장은 작품 속의 메리, 콜린, 딕콘 등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이들 보편을 지시하는 걸로 새기고 싶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때로 너무도 잔인하여 아파트 옥상에서 병아리들을 "낙하 훈련"시키기도 하며(김동길 교수의 어느 수필에 나온 실화입니다) 벽돌로 길고양이들 때려 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머무는 아이들은 그렇게나 나쁜 영혼은 아니죠. 심지어 저 잔인한 아이들도 본성은 친절하며 다만 우리 어른들의 나쁜 마음이 일시 그들 안에 깃든 탓일 뿐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엉겅퀴와 잡초 가득한 곳에 우리의 선의가 불어넣어지면 반대로 장미가 피어나는 기적은 사실 가능합니다. 그 반대는 불가능하더라도.
"알프스의 소녀"로 유명한 저 요한나 슈피리의 작품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이디가 클라라를 낫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언제나 보금자리, 요람 안에서 살 수 없으며 언젠가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현실의 의무와 성숙을 가르칩니다. 사자새끼도 그저 귀여운 모습으로 언제나 엄마 품에 안겨 있을 수 없으며 때가 되면 아빠에 의해 무리에서 내몰리는 이치나 같습니다. 저자는 말하기를 "영원히 고향에 머물 수는 없으나 마음이 머무는 고향에 평화가 머물길 기도할 수는 있다(p87)"고 합니다. 그 자체로 멋질 뿐 아니라 이 작품의 주제를 이만큼 잘 정리한 말이 또 없을 것 같네요.
3부는 "긴 여정을 이겨낼 힘"에 집중합니다. 작품들은 <모모>, <톰 소여의 모험>, <마당을 나온 암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등 다섯 편입니다.

이 책에서 唯三하게 한국 작품이 다뤄진 게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입니다(다른 작품 둘은 정채봉의 <오세암>, 이현의 <푸른 사자 와니니>입니다). 사실 동화는 잔혹 동화만 잔혹한 게 아니라 모든 동화가 다 잔혹합니다. 아이들이 커서 장차 나가야 할 세상이 본디 잔혹한 곳이기 때문이죠. "이별과 만남을 동시에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언제나 슬퍼하기만 할 수는 없다(162번)." 태어나고 죽는 게 무상합니다. 누가 태어난다고 해서 각별히 기뻐할 것도 없고 또 누가 떠난다고 해서 너무 슬퍼할 것도 아닙니다. 족제비만 무조건 나무랄 것도 아니고 잎싹, 오리, 암탉도 언제까지나 슬픔에 잠길 수도 없습니다. 세상은 본디 그렇게 생겨먹은 곳이고 우리는 여튼 먼 여정이 어떤 얼굴로 우리를 기다리든 무관하게 갈 길을 떠나야 합니다.
"어린 시절과 달리 우리의 세계는 더 이상 이상한 나라가 아닐 것입니다(p130)." 저자의 이 말은, 우리가 어렸을 적 이 세계는 무척 이상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고, 이제는 어지간히 우리들이 초심을 잃어가며 세상에 적응해 간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이상한 곳이 맞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잃고 못된 짓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게 이상한 나라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간 모험을 거치며 간직한 우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p130)." 그래서 설령 빈손으로 여정을 마쳐도 이야기가 있는 덕에 그리 쓸쓸히 죽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든든합니다.
4부의 주제는 "조금은 다르고 더욱 소중한 것들"입니다. 스릴러나 냉소적인 단편을 즐겨 썼던 로알드 달은 어린이 작품들도 많이 창작했고 이 때문에 일부 학부형들은 그를 동화작가로만 알기도 합니다. <마틸다>에서 주인공은 힘 없는 어린이에 불과하지만 못된 어른들을 혼내 주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복수는 일반적으로 나쁜 일로 평가되지만("Two wrongs don't make a right.") 마틸다의 복수는 독자 모두가 응원하게 되는데 여튼 보는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만큼 심각하지 않고, 웃는 것을 좋아하거든요(211번)." 그냥 마틸다와 함께 웃으면 될 것을 괜히 인상 쓰고 있었나 봅니다.
<아름다운 아이>는 그 원제가 <원더>라고 책에도 나옵니다. 영화판도 있어서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관람했고 TV에서도 종종 틀어 줍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기립박수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극복하니까(257번)." 사실 사르트르의 말이 아니라 해도 타인은 본디 지옥인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수파가 되지 않으려고, 소외되거나 낙오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정 안되면 낙오자끼리 모여 오히려 주류 세상을 저주하는 중 한 번이라도 가해자 입장이 되어 보려고(?) 이상한 발버둥을 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온갖 미친 바보가 들끓으며 지옥이 되기도 하고, 이 소설의 주인공 어기 같은 이들이 반대로 희망을 보여 주며 천국을 살짝 흉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사랑과 온기의 힘"이며 5부의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처구니없는 낙천주의자의 대명사로 코인된 "폴리아나"는 사실 알고 보면 미라클 워커였으며 어린 시절 듬직한 누군가가 나를 도와 줬으면 하는 판타지를 완전히 충족시켜 준 <키다리 아저씨> 역시 지금 읽어도 결코 신파가 아닙니다.
모든 작품 소개가 끝날 때마다 독자는 나만의 노트에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끔 배려된 편집이 더욱 좋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