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부터의 자유 -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메멘토 모리 독서모임 엮음 / 북에너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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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개인적으로, 예를 들어 남녀간의 사랑, 처세의 핵심 교훈, 뭐 이런 주제를 놓고서는, 단일 저자, 혹은 여러 분의 필자가 각각 고른 여러 좋은 책들에 대한 감상 앤솔로지를 종종 읽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제가 사랑, 성공 이런 밝고 달달한 주제가 아니라, 무겁기 짝이 없는 "죽음"이라면, 감상문 앤솔로지는 고사하고 이를 정면으로 분석한 책도 그리 많지가 않았습니다. 이 역시 최근 들어 관심이 늘었는지 개인적으로는 올해 두 권 정도를 만나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책은, 무려 20년을 넘게 이어온 독서 모임에서 "죽음"에 대한 주제 하나만으로 각각 자신의 favorite을 뽑아 그 정수만 엮은 내용입니다. 비록 주제가 죽음이라는 무거운 성격이지만 회원분들, 필자들이 한 권씩 뽑아 쓴 내용들이라서 지루할 틈도 없습니다. 목차에서 제가 일일이 세어 봤는데 1~3장이 각 10권, 4, 5장이 각 9권, 6장이 4권, 이렇게 해서 총 52권이 소개되더군요. 두 페이지 앞의 서문에도 52권이라고 나옵니다. 52에 1년 52주의 성격이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이 책 한 권으로 52권의 엣션설만 일단 맛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20년을 이어 온 독서 모임이라서인지, 서문에 보면 회원분들의 연치도 좀 높은 편이라고 스스로들 밝히고 계십니다. 또 보면 하나같이 사회적 성취라든가 위신도 높은 분들이더군요. 이런 걸 따지는 게 약간은 속물 같습니다만 이제 어떤 권위, 지위 등은 흔한 명품 치장 따위가 아니라 이처럼 독서와 교양의 축적을 통해 증명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이제 졸부들의 유치한 과시 레벨에서는 벗어날 만큼 충분히 성숙해지기도 했죠. 게다가 이처럼 사회적으로 일정 성취를 거둔 분들이 몰두하는 독서, 관심 갖는 주제로 "죽음"이 선택된 게, 이런 주제를 꺼낼 만한 분들이기도 하기에 더 적절하고 설득력도 있습니다. 책 p376 이하에 보면 이 모임("메멘토 모리")이 마쳐 낸 독서 목록이 있는데 205권을 포함합니다(영화 단체 관람 등 타 컨텐츠 포함). 이 205件의 컨텐츠도 정말 필독 필람의 쟁쟁한 이름들입니다. 


손현준 충북대 의대 교수는 하이더 와라이치 著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을 추천합니다. 저자가 심장학 전문의이다 보니(추천자 손 교수님은 해부학 전공이시고 아직 환갑이 안 된 분입니다) 더욱 이 주제가 무겁게 와 닿기도 하네요. 다윈 이후에는 적자 생존이 아니라 부적격자 생존의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른바 연명의료 같은 걸 생각하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될 겁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는 최전선의 전문가가 하는 말이라 말의 무게 자체가 다릅니다. 손현준 교수는 얼마 전 위드코로나 관련으로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기도 한 분입니다. 


박점분 필자는 국립중앙박물관 도슨트입니다.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에 선 인간>을 추천하는데 원제가 번역과정에서 다소 의역되었음도 지적합니다. 사실 불어도 그렇고 영어도 image라는 단어가 참 다양한 의미를 가지므로 그저 포괄적으로 이해하면 될 듯도 합니다. 여기서 박 도슨트는 프랑스 역사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아날학파에 대한 깔끔한 설명까지 덧붙입니다. 아날 학파 한 테마만 해도 책 열 권이 필요한 주제이나 요령 있는 설명 덕분에 가외의 교양까지 독자는 더불어 얻습니다. 뤼시엥 페브르, 마르크 블로크 등 다른 거장들도 언급됩니다. p92에 이 전체 독서 모임 명칭이기도 한 "메멘토 모리"라는 라틴어구가 다시 환기되네요. p94에 "앙리마르 베르만"이 언급되는데 스웨덴 국적 레전드 연출자인 잉마르 베리만의 오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 이름은 프랑스식으로 읽어도 마찬가지이니 말입니다. 예전 분들이 "잉그마르 베르히만"으로 잘못 부르던 바로 그 감독이죠. 


p115에는 이미 고인이 되신 발제자께서 고른 책이 나오고, 집필자는 다른 분입니다. 박영호 씨의 <죽음 공부>인데 심오한 구절이 참 많습니다. 어찌보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데 "웰빙에서 웰다잉 시대로의 전환"이 그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면 무상(無常)한 인생이 비상(非常)한 생명이 된다" 얼마나 멋진 말씀입니까. 사실 어떤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목표, 성과가 꼭 나와야 값있는 인생은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자신과 가족, 또 이웃을 위해, 어떤 가식이나 정치 구호가 아니라 진심어린 유대와 공감을 투영하는 헌신, 이런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인생은 남들이 몰라줘도 이미 그 자체가 부처요 예수며 공자입니다. 


니나라고 해서 저는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에 나오는 그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전이성 유방암으로 투병하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니나 리그스라는 시인이었으며 랠프 왈도 에머슨의 5대손이기도 하다고 나오네요. 장상애 전 고교 교사께서 추천하고 집필한 부분인데 죽음을 준비하는 구간을 총 4기로 나눕니다. 또 얼마 전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된 <숨결이 바람될 때>라는 책도 필자가 함께 추천합니다. <The Bright Hour>는 제가 읽지 못했으나 두 책이 내용도 잘 통하는 듯하고 한데 묶은 추천이 멋진 큐레이션이 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윌리 오스발트의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도 같은 집필자께서 후반부에 또 소개해 줍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어린이와 죽음>은 제목부터가 상당한 아이러니를 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p169에서 필자도 "어린이와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구상 시인의 말도 인용되지만 죽음은 본디 삶과 쌍둥이처럼 한날한시에 난 운명입니다. 살아 있다는 건 곧 언젠가 죽는다는 뜻이며 이 이치를 뿌리까지 깨달을 때 삶은 비로소 평안을 맛볼 수 있죠. 과연 사후생, 즉 내세나 천당, 지옥 같은 게 있을까요? 퀴블러 로스는 내세라는 의미에서 사후생을 확신하는 분입니다. 이는 논자에 따라 죽음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용기가 없는 자들이 꾸며낸 판타지라는 평가도 있습니다만 유한한 생을 한탄한 필멸의 인간들이 그 간절함으로 인해 도달한 인식의 한 종착점인지도 모릅니다. 즉 이게 사실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사후생이라는 게 있어야 현세에서 인간들이 최선을 다해 살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안덕희 전 서울대병원 수간호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추천합니다. "아름다운 죽음은 (사실) 없으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는 말이 참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고어물인 <호스텔 3>를 보면 어느 젊은 여행객이 살인자들에게 질질 끌려갑니다.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울부짖자 "마! 남자답게 받아들여!"라고 어느 폭력배가 고함칩니다. 과연 그 폭력배는 자신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남자답게 받아들일" 의연함과 배짱이 있을까요? 또 여기서 폭력배는 물론 조직의 하수인이지만 어느 정도는 그 젊은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인데도 뻔뻔스럽게 국외자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과연 울부짖는 그 젊은이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있겠나 싶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사실 없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편안하게,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게 사회가 돕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죠.


집필자 김금희씨도 전직 서울대병원 수간호사이시라고 나옵니다. 샘솟는기쁨에서 나온 책인데 출판사에서 서평책과 함께 호의로 보내 주신 걸 제가 아직 서평을 못 쓰고 있어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ㅠ 사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건 투병중이신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과정입니다. 이 <슬픔학 개론>은 또한 지금 이 책처럼 죽음을 주제로 한 여러 좋은 책들을 저자 윤득형 박사님이 여러 권 소개해 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김금희 집필자도 책에 소개된 여러 훌륭한 책들을 우리 독자에게 재인용해 줍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요즘은 우리 한국에도 죽음에 대한 전문적이고 깊이 있으며 감동적인 책들이 여러 권 나오는 트렌드입니다. 이미 번역 소개된 외국의 책들이 궁금하다면(한국 책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이 책을 일별할 필요가 있겠으며 공력 깊은 독서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발제, 집필한 책인만큼 짧은 서평, 혹은 논문을 읽는 보람과 재미도 쏠쏠합니다. 강추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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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란 무엇인가
이인화 지음 / 스토리프렌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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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의 작가로 유명하신 이인화님이 쓴 메타버스 설명서입니다. 핵심 주제는 메타버스이지만 같이 논하는 키워드가 상당히 많고, 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은 인문학자의 심원한 통찰, 유려한 문장과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책날개에 그의 간단한 이력이 나와 있고, 본문 p98에는 10년 전인 2011년 기준 이화여대 가상세계 문화기술여연구소(저자가 몸담았던)가 국내 유일의 메타버스 연구기관이었다는 (저자 자신의) 평가가 나옵니다. 


최근 구글이 과도한 수수료를 받는다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런 대기업의 행태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이 몇 달 전에 국회를 통과했으며 이런 입법례가 세계 최초라고 해서 다른 나라 미디어들이 집중 보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플랫폼이 있어야 개별 생산자, 크리에이터들이 뛰놀 공간도 생기는 법인데 다만 안드로이드처럼 특정 회사가 독점을 하면 이게 문제인 것입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메타버스는 1개의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플랫폼을 독점하는 게 (그 본성상) 어렵다"고 예측합니다(p84). "독립 플랫폼이 아니라 통합 플랫폼이 될 것이다"라고도 합니다. 저자가 "1개의 기업" 외에 "공공기관"도 덧붙여서 그 예상되는 독점의 주체에 넣은 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결론은 독점이 불가능하다는 거지만 추이는 두고 봐야 알 일입니다.


그 다음 말이 재미있는데 "현재의 메타버스들은 그저 편의상 메타버스라고 부르지만 이는 메타플레이스에 가까우며 (미래에 실현될) 진짜 메타버스들은 우주보다 큰 곳"이라고 합니다. 하긴 우리의 우주는 (아직) 3차원 공간이니 그게 진짜 메타버스이기만 하다면 그저 우주보다 큰 정도가 아니라 차원을 달리하겠죠. 마치 수학자 게오르그 칸토어가 고안해 낸 알레프-0, 알레프-1... 등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p85의 그래프를 보면 저자가 생각하는 미래상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는데 가로축이 시간이긴 하나 본문의 설명과 맥락을 고려하면 시간과 적어도 선형비례 관계에 있는 정보의 양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주식 하는 분들은 작년 이맘때부터 부쩍 "로블록스"란 이름을 자주 들었겠습니다. 대략 메타버스가 일반에까지 널려 알려진 것도 그 정도 됩니다. 어떤 이들은 BTS(p239)를 만든 하이브(舊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주가와 관련하여 메타버스란 개념을 처음 접했겠는데 애초에 이를 상업화하여 미래 비전으로 삼기 시작한 섹터가 연예 쪽이므로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습니다. 저자는 로블록스가 시장 개척 기업일 뿐 지배자는 아니라면서 이 회사의 장래가 그리 밝지는 않으리라고 전망합니다. 검색이 어렵고 핑 수치가 크며 보안에 취약하다는 세 가지 약점을 듭니다. 


본문 중 일부에는 열성적인 리니저 유저였던 그의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교수님뿐 아니라 린저씨들이 모두 공유하는 대목이기도 하죠. "... 로블록스가 노출한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매타버스 산업이 리니지플러스알파(단계)로 후퇴하지는 못할 것이다." ㅎㅎ 이 문장에 숨은 뉘앙스는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입니다. 여튼 그 다음에는 "지금까지는 개발자가 신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메타버스에서는 단지 플랫폼 오너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말이 나옵니다. "개발자와 사용자가 각자의 한계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혁신을 추구(이상 모두 p98, p99가 출처)"하리라는 건데...


메타버스를 설령 전혀 모르는 독자라고 해도, 최근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피드백과 항의(?) 등에 영향을 받아 제작진이 스토리와 방향성을 도중에 바꾸거나 아에 기획 자체가 엎어지고 방송이 중단되는 등 유저가 더 이상 과거의 수동적인 시청자, 독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이 경제 규모가 아무리 커져도 그 생산하는 컨텐츠가 저질이고 세계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못 받는 건 애초에 소비자가 참여할 공간 자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전망대로라면 메타버스야말로 실존 공간을 넘어선 완벽한 민주주의가 구현, 완성되는 곳입니다. 


예전에 영화배우 잭 블랙은 한국의 예능쇼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진행자들더러 "놀 줄 아는 사람들"이라 평가한 적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별의별 개성을 지닌 이들이 유튜브에 자기 채널을 만들고 예전 같으면 이런 게 과연 사람들 앞에 내세울 거리가 되나 싶은 컨텐츠로 많은 수입도 올리고 자아실현도 하는 중입니다. 돈 버는 게 주목적인 이들도 있겠으나 상당수는 그저 저렇게 방송에 나와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게 더 크지 않나 싶은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요즘은 잘 놀 줄 아는 게 실력이고 돈 버는 자산이 되는 시대인데, p107에는 "로블록스 유저들은 (린저씨들을 보고) 도대체 노는 게 뭔지를 모른다며 혀를 찰 것"이라는 저자의 평가가 나옵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으나 여기서도 리니지를 향한 (구) 열성 유저의 분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p106에는 매슬로의 5단계 욕구와 로블록스 유저들의 "활동"들을 저자 나름으로 매칭시킨 표가 나오는데 재미있기는 합니다. 


7장에는 "왜 기획하면 죽고 거주하면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31세의 가상인물(인 줄 알았는데 저자가 만난 실재 인물인가 봅니다) "아놔안해"씨의 사연이 나옵니다. 서사의 역설이란 "사용자 서사의 플롯이, 거의 항상 예측 불가의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p134). 여기서 저자는 복잡계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부분은 언제나 전체의 한 요소로만 기능하고 존재하던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음을 다시 환기합니다. 비선형적, 상호작용적 서사가 이 메타버스의 특징(p135)이기도 하죠. 어쩌면 저는 민주주의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하지 않나 싶습니다. 독재나 왕정은 왕의 특성만 파악하면 국정과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결국은 이성적으로 추론,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허나 민주주의는 아무리 설계자가 영리하게 기획해도 변수를 통제할 수 없으므로 당초의 목표 달성이 누구에 의해서건 간에 불가능합니다. 그 목표가 단지 특정 소수만을 위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쥬라기 공원>에도 "시스템의 통제란 원래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죠. 생명은 알아서 제 살 길을 찾아나가기 때문에. p145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메타버스의 운영은 시스템 오퍼레이션이 아니라 유닛 오퍼레이션이다." 


X세대도 처음에는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율과 개성을 추구하는 혁신의 주체로 평가받았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그들은 "어른은 무시하고 애들은 근거없이 평가절하하는 가장 노답인 꼰대"로 매도당합니다. 사실 개성과 자율을 추구하는 건 이후 나타날 모든 젊은 세대의 공통 속성이지 그들만의 특권이나 자질이 아니었는데도 뭔가 단단히 착각했던 거죠. 아마도 지금의 Z세대는 그런 자기객관화가 안 되는 선배들의 실패한 스텝을 훌륭한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자녀 세대에게 추태를 떨지 않을 것입니다. p158에는 저자가 정리한 각 세대의 메타버스 체험 표가 나옵니다. 여기서도 강조하는 건 "컨비비얼리티"의 체험에 각 세대가 얼마나 노출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과 매우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얼마나 (다르다는 것이 일단 부과하는 불편함과 다툼을 딛고) 부대끼며 즐겨봤느냐가 그 기준입니다. 실제로 특정 세대는 자신과 특정 신조가 불일치하면 살인도 불사할 듯한 증오감을 바탕으로 비이성적인 공격을 퍼붓거나 아예 자폐에 침잠하기도 하는데 이게 다 콘비비얼리티의 결핍에 기인하는 것 아닐까 생각도 됩니다. 물론 이 역시 상대적이며 개인차가 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 방법으로 세상을 가르칠 수 있다. 수학의 방정식, 담론적 설명, 그리고 시뮬레이션이다(p223)." 이 중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물론 세번째 수단이나 애초에 시뮬레이션 초기 설정에 오류가 있으면 앞의 두 수단보다 더 비효율적이고 해로울 수 있습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잡한 세계의 행동들을 모사할 뿐 아니라 코딩한 알고리즘으로 그것을 계산한다." 그런데 역시 이 과정에도 수학의 방정식은 필수이며 크게 보아 코딩 역시 모두 수학에 포함됩니다. 저자가 말씀하시는 이런 미래상이 펼쳐지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물론 잘 노는 능력, 공감력, 콘비비얼리티가 모두 중요하겠으나 제 생각에는 어려서부터 수학을 단단히 훈련시켜야겠다 싶습니다. 아무래도 유능한 개발자는 1/n의 위상에 머물지는 않을테니 말입니다. 콘비비얼리티 등은 사회 성원에 끼기 위한 원초적 자격이겠고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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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c 러시아어 모의고사 IM - 12시간으로 무조건 합격하는 제가 먼저 합격해보겠습니다
최수진 지음, Svetlana Shchetinina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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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픽은 외국어 말하기 시험입니다. 영어만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러시아어 등 다양한 외국어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소문자로 저렇게 c가 붙었으면 사람 앞이 아니라 컴퓨터 앞에서 시험을 친다는 뜻입니다. IM은 intermediate mid(dle)의 약자입니다. 


이 교재는 총 150페이지 분량이며 15개 문항으로 구성된 모의고사와 그 해설이 나옵니다. 그런데 모의고사 해설 중에, 그 문제 해설만 나오는 게 아니라, 실전에서 만날 수 있는 다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여러 요령과 만능 "템플릿"을 제공해 줍니다. 물론 책에도 나오듯이 너무, 너무 정형화한 대답을 암기만 하면 그건 그것대로 감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적절히 융통성을 발휘하여 실전에 임할 필요가 있겠네요.


일단 모의고사 두 세트 중, 첫번째 세트는 15문항의 음원과 해설이 무료 제공됩니다. 두번째 세트는 해설(그리고 이른바 템플릿)과 답은 이 책에 나와 있으나, 음원과 강의는 별도 결제를 해야 합니다. 


책 앞날개에 보면 쿠폰 번호가 은박에 가려져 있으니 이걸 긁어 내야 합니다. russia.siwonschool.com에 접속하여 회원가입 후 로그인을 하고(처음 회원 가입하면 일단은 로그인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 책 저자인 "마샤" 최수진 강사님 개인 페이지 말고, 일단 책에는 "이벤트 페이지"로 가라고 나오는데 이 신간 교재 안내가 아주 크게 쓰여 있으므로 안 보일 수가 없습니다. 클릭 후 거기다가 쿠폰 번호를 입력하고 다시 "나의 페이지"로 이동해서(안내가 나옵니다) 쿠폰 란을 다시 클릭하고 "사용"을 누르면 됩니다. 조금 번거롭지만 어쩔 수 없죠. 


russia.siwonschool.com에는 최수진 강사님 말고 다른 분들 코너도 있습니다. 이분들 강의도 (지금 이 교재와는 무관하게) 발음, 철자, 문법, 토르플 기초 등 무료로 제공되는 게 있으니 필요에 따라 활용하면 좋을 듯합니다. 


책 앞표지에 보면 OR 코드가 나옵니다. 이걸 스캔하면, 모의고사 첫째 세트 1번~5번까지의 음원 페이지가 나옵니다. 이건 회원가입 로그인 필요 없이 그냥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6~15의 음원이 없으므로 결국 모의고사를 다 치를 수 없습니다. 꼭 PC에서 해야 하는 게 아니며, 스마트폰에서도 가능합니다. 


강의듣기를 클릭하면 그냥 폰에 내장된 플레이어로는 재생이 안 됩니다. 구글플레이(혹은 애플스토어)에서 "스타 플레이어"라고 시원스쿨에서 만든 앱을 따로 깔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스트리밍을 선택하든, 다운로드 받은 후 듣기를 선택하든 하면 됩니다. 요것도 조금 번거로운 부분이긴 하지만 처음에 한 번만


하면 되고, 특히 데이터 사용시에는 부담스러우므로 와이파이 환경에서 일단 폰에다 다운 받은 후 필요할 때마다 반복 재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세트 1의 해설은 책 p56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pp.56~58에는 일단 문제에서 물어 본 질문 스크립트 전 내용이 다 나오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p56의 5번 부분을 보면 Когда и с кем вы обычно ходите туда?(까그다 이 스키엠 브이 아비취나 하지쩨 뚜다)까지만 스크립트가 나옵니다. 그러나 p70의 상세 해설을 보면 저 뒤에, Олишите ваш любимый парк(подробно). (알리쉬쩨 바슈 류블리므이 빠르크 [빠드로브나])라는 부분이 더 있습니다. 또 음원에서도 저 부분까지 원어민이 더 읽어 줍니다. 


p73 하단을 보면 여기서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모의고사 해당 문항의 해설만 나오는 게 아니라 "시험장에 꼭 챙겨갈 단어&표현"이 또 있습니다. 이런 걸 알아 두어야 현장에서 융통성 있게 답이 적절히 변형되어 입에서 나올 것입니다. "자전거"라는 뜻의 велосипед는 키릴 문자를 로마자로 변형해 보면 velociped죠. 프랑스어 velocipede를 러시아에서 그대로 들여온 것이며, 현재는 프랑스에서 비씨끌레뜨라는 단어를 더 많이 씁니다. 영어에도 velocipede란 단어가 있기는 하나 거의 쓰지 않고, 좀 다른 의미입니다. 러시아인들만 저걸 "자전거"라는 뜻으로 계속 쓰는 셈입니다. velocipede 자체는 라틴어 어근을 활용해 만든 (당시로서는) 신조어였겠죠. 

 

p61을 보면 "недалеко от + 생격" 이란 표현을 소개합니다. 책에 나와 있듯 "~로부터 멀지 않다"란 뜻이며 여기서 생격(生格)이란 말은 러시아어에만 있는 문법용어인데 영어의 소유격, 독어의 2격, 기타 언어의 속격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영어의 소유격은 전치사의 목적어가 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그 점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p73에 играть в + 대격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책에 나오듯이 "운동 종목 같은 걸 하다"라는 뜻입니다. 대격은 영어의 목적격, 독어의 4격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러시아어는 전치사 뒤에 오는 격이 다양해서 어려운 면이 있더라구요. 


최수진 마샤쌤의 장점은 초보 수강생의 마음을 잘 알고 공감해 주는 게 좋은 것 같았습니다. 1회 모의고사 끝나고 나서 "좌절하신 건 아닌가요?"라고 영상 중에서 물어보시는데 이건 딱 저한테 하는 말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러시아어 오픽이 타 언어에 비해 아주 고난도는 아니므로 열심히 해 보자구요.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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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 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속 명언 320가지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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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그대로, 우리 어른들도 가끔은 티없이 맑은 동화의 세계로 돌아가서 지치고 상처 입은 마음을 힐링받기도 합니다. 천재 시인, 작가였던 안데르센은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동화 창작에 몰두했는데 오히려 우리는 그의 이름을 주옥 같은 동화와 더 자주 연결시킵니다. 톨스토이 역시 그의 중수필이나 장편 대작보다 경건하고 심오한 주제를 담은 동화가 더 감동적이라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어린 아이가 머물고 있습니다(p5)." 그 아이는 자주 눈물 짓고, 지인들과 다투고, 길에서 넘어지고, 회사에서 할당한 업무를 잘해내지 못하고, 퇴근길 전철에서 사람들에 부대끼며 파김치가 됩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안에 머무는 어린아이를 동화 속의 주인공들이 편안히 감싸줘서 내일 아침 출근길이 부디 덜 힘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잃어버린 소중함"을 다룬 1부에는 다섯 편의 작품이 소개됩니다. <샬롯의 거미줄>, <어린 왕자>, <파랑새>, <어부와 영혼>,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롤>입니다. 


영화판 <샬롯의 거미줄>은 몇 달 전 EBS에서도 휴일에 방영했던 것 같은데 두 여성배우의 멋진 연기 덕에 원작의 잔잔한 감동이 배가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널 도와줌으로써 내 삶을 조금씩이나마 승격시키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어(05번)" 등 열한 개의 대사가 이 책에 실렸습니다. "우리는 우리 충고를 들어 주는 사람에게 감사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있죠. 남을 돕는 일은 그 사람에게 선심을 쓰는 게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이 그 행위를 통해 우리를 스스로 돌아보고 우리 내면을 더 깨끗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넌 네가 길들인 것에 영원한 책임이 있어(19번)." <어린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입니다. 위에서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공감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이 "길들임"의 일종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예전에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잃거나 잊은 것"을 아련히 되새기는 작품의 목소리에 특히 끌리는지 모른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지금 우리는 어린 시절 아무 사심 없이 그저 어울리는 게 좋아서 학교 운동장, 골목길, 근린공원에서 같이 뛰놀던 친구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내가 길들인 친구들, 나를 길들인 친구들, 책임 질테니 (혹은 책임 지러) 지금 뛰어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를 두고 저자는 "세상에 당연하다는 듯 내놓은 악의 앞에, 오히려 당신은 희망을 가져 마땅하다"고 합니다. 멋진 말입니다. 파랑새는 책 p31에 나오는 대로 "의미 없는 희망"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정말로 아무 의미 없는 희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겨울을 맞은 잎새는 곧 나무에서 떨어지기 직전이지만 오늘내일을 다투는 환자는 자신의 생명을 그 뻔한 운명에 걸 수도 있고 이것은 그의 권리입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백단장이 프런트 직원들에게 그토록 큰 신뢰를 얻은 건 "불가능하다 여겼던 희망"을 그들에게 진심으로 품게 도왔기 때문입니다. 


2부의 주제는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입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꽃들에게 희망을>, <비밀의 화원>, <빨간머리 앤>, <하이디> 등 다섯 편입니다. 


호지슨 부인은 <비밀의 화원>외에도 <소공자>, <소공녀> 등을 지었는데 모두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어렸을 때 설날 연휴에 TV에서 방영이라도 하면 정말 콧등 시큰해지면서 집중해서 보곤 했죠. "얘야, 네가 장미를 가꾸는 곳에 엉겅퀴가 자랄 수는 없단다(97번)." 저자는 말합니다. "아이들은 죽어가던 모든 것에 마법 같은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p71)" 이 문장은 작품 속의 메리, 콜린, 딕콘 등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이들 보편을 지시하는 걸로 새기고 싶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때로 너무도 잔인하여 아파트 옥상에서 병아리들을 "낙하 훈련"시키기도 하며(김동길 교수의 어느 수필에 나온 실화입니다) 벽돌로 길고양이들 때려 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머무는 아이들은 그렇게나 나쁜 영혼은 아니죠. 심지어 저 잔인한 아이들도 본성은 친절하며 다만 우리 어른들의 나쁜 마음이 일시 그들 안에 깃든 탓일 뿐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엉겅퀴와 잡초 가득한 곳에 우리의 선의가 불어넣어지면 반대로 장미가 피어나는 기적은 사실 가능합니다. 그 반대는 불가능하더라도. 


"알프스의 소녀"로 유명한 저 요한나 슈피리의 작품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이디가 클라라를 낫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언제나 보금자리, 요람 안에서 살 수 없으며 언젠가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현실의 의무와 성숙을 가르칩니다. 사자새끼도 그저 귀여운 모습으로 언제나 엄마 품에 안겨 있을 수 없으며 때가 되면 아빠에 의해 무리에서 내몰리는 이치나 같습니다. 저자는 말하기를 "영원히 고향에 머물 수는 없으나 마음이 머무는 고향에 평화가 머물길 기도할 수는 있다(p87)"고 합니다. 그 자체로 멋질 뿐 아니라 이 작품의 주제를 이만큼 잘 정리한 말이 또 없을 것 같네요. 


3부는 "긴 여정을 이겨낼 힘"에 집중합니다. 작품들은 <모모>, <톰 소여의 모험>, <마당을 나온 암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등 다섯 편입니다. 


이 책에서 唯三하게 한국 작품이 다뤄진 게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입니다(다른 작품 둘은 정채봉의 <오세암>, 이현의 <푸른 사자 와니니>입니다). 사실 동화는 잔혹 동화만 잔혹한 게 아니라 모든 동화가 다 잔혹합니다. 아이들이 커서 장차 나가야 할 세상이 본디 잔혹한 곳이기 때문이죠. "이별과 만남을 동시에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언제나 슬퍼하기만 할 수는 없다(162번)." 태어나고 죽는 게 무상합니다. 누가 태어난다고 해서 각별히 기뻐할 것도 없고 또 누가 떠난다고 해서 너무 슬퍼할 것도 아닙니다. 족제비만 무조건 나무랄 것도 아니고 잎싹, 오리, 암탉도 언제까지나 슬픔에 잠길 수도 없습니다. 세상은 본디 그렇게 생겨먹은 곳이고 우리는 여튼 먼 여정이 어떤 얼굴로 우리를 기다리든 무관하게 갈 길을 떠나야 합니다. 


"어린 시절과 달리 우리의 세계는 더 이상 이상한 나라가 아닐 것입니다(p130)." 저자의 이 말은, 우리가 어렸을 적 이 세계는 무척 이상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고, 이제는 어지간히 우리들이 초심을 잃어가며 세상에 적응해 간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이상한 곳이 맞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잃고 못된 짓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게 이상한 나라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간 모험을 거치며 간직한 우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p130)." 그래서 설령 빈손으로 여정을 마쳐도 이야기가 있는 덕에 그리 쓸쓸히 죽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든든합니다. 


4부의 주제는 "조금은 다르고 더욱 소중한 것들"입니다. 스릴러나 냉소적인 단편을 즐겨 썼던 로알드 달은 어린이 작품들도 많이 창작했고 이 때문에 일부 학부형들은 그를 동화작가로만 알기도 합니다. <마틸다>에서 주인공은 힘 없는 어린이에 불과하지만 못된 어른들을 혼내 주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복수는 일반적으로 나쁜 일로 평가되지만("Two wrongs don't make a right.") 마틸다의 복수는 독자 모두가 응원하게 되는데 여튼 보는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만큼 심각하지 않고, 웃는 것을 좋아하거든요(211번)." 그냥 마틸다와 함께 웃으면 될 것을 괜히 인상 쓰고 있었나 봅니다. 


<아름다운 아이>는 그 원제가 <원더>라고 책에도 나옵니다. 영화판도 있어서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관람했고 TV에서도 종종 틀어 줍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기립박수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극복하니까(257번)." 사실 사르트르의 말이 아니라 해도 타인은 본디 지옥인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수파가 되지 않으려고, 소외되거나 낙오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정 안되면 낙오자끼리 모여 오히려 주류 세상을 저주하는 중 한 번이라도 가해자 입장이 되어 보려고(?) 이상한 발버둥을 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온갖 미친 바보가 들끓으며 지옥이 되기도 하고, 이 소설의 주인공 어기 같은 이들이 반대로 희망을 보여 주며 천국을 살짝 흉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사랑과 온기의 힘"이며 5부의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처구니없는 낙천주의자의 대명사로 코인된 "폴리아나"는 사실 알고 보면 미라클 워커였으며 어린 시절 듬직한 누군가가 나를 도와 줬으면 하는 판타지를 완전히 충족시켜 준 <키다리 아저씨> 역시 지금 읽어도 결코 신파가 아닙니다. 


모든 작품 소개가 끝날 때마다 독자는 나만의 노트에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끔 배려된 편집이 더욱 좋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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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희의 수제청 정리노트 - 새콤달콤 나만의 홈카페 즐기기
손경희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유자청 등은 동네 슈퍼에서도 팔지만 제법 큰 업체에서 나온 제품이라고 해도 어째 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너무 달지는 않은지, 첨가물이나 방부제가 얼마나 들어갔을지도 걱정입니다. 편하긴 하지만 사실 가격도 그리 싸지만은 않고, 혹 싸다고 해도 싸면 싼 대로 불안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어느 이름 없는 회사에서 나온 병입 모과청을 사 먹어 본 적 있는데, 아니, 이게 과연 모과청 맛이 맞는지, 어디서 유통기한이 지난 이상한 재료를 짬처리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고발 후기를 남기려다가 귀찮은 게 싫어서 그냥 말았지만 아무튼 그래서라도 수제청에 더 관심이 가게 된 게 사실입니다. 


앞 책날개와 p23, p100 등에는 저자 손경희 선생 사진이 나옵니다. 사람 인상을 너무 믿을 건 아니지만 음 이분이 자기 이름 걸고 만드는 제품은 뭔가 믿음이 간다, 제 주관적인 느낌은 그러했습니다. "나는 요리할 때 가장 즐거워. 내가 만든 걸 누가 맛있게 먹는다고 생각할 때 가장 행복해.(p6)" 서문에서는 아마 자녀분들이 공부를 잘하는지 "엄마, 학교에서는 내가 다 아는 것만 가르쳐서 너무 지루해."라고 했다는 푸념을 소개하는데 이게 은근 플렉스입니다. 그 와중 김미경 강사의 강연을 듣고 문득 스친 생각이 바로 이 분야에서 자신이 가슴 뛰는 일에 몰두하는 꿈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p22에는 둘째 아이 아토피 때문에 명의 찾아다니느라 고생을 했고 실제로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만들기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것이 "브랜드 스토리"가 되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요즘 보면 별나게 아이 먹거리를 챙기는 집 아이들이 실제로 아토피를 피해가며 안 그런 집 애들이 고생을 하니, 아이가 이쪽으로 고생을 하면 어머니들이 죄의식 갖는 게 당연하기도 합니다(꼭 가지셔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럴 법도 하다는 거죠). 아무튼 아이 때문에 관심을 더 갖게 된 분야에서 이제 상업적으로도 우뚝 서셨으니 성취감이 참 크실 듯합니다. 요즘은 진심으로 다가서야 소비자들도 호응을 보내는 세상이죠. 


수제청이란 무엇인가? p24에 그 정의가 나옵니다. "과일을 일정 비율의 설탕과 잘 버무려 두면, 설탕에 의해 삼투 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수분과 영양분이 함께 배출되는데.. " 그러니 수제청의 본질은 과일과 설탕입니다. 과일이야 좋지만 설탕은 꽤 찜찜한데 이 책에서 특히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다 해 볼 생각으로 말입니다.


1부에서는 앞으로 나올 모든 레시피에 공통으로 적용될 사항을 설명합니다. 믹싱 볼(bowl) 같은 경우 스테인레스 재질은 산성을 담을 때 녹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며 철 재질은 비타민을 파괴할 수 있으니(p15), 결국 가장 안전한 건 유리인 듯합니다. 용기도 그냥 세척만 할 게 아니라 소독을 먼저 하라고 책에서 권합니다. p18 이하에는 수입 과일 세척하는 법이 나옵니다. 굵은 소금, 베이킹소다, 수세미를 쓰는데 특히 수입 과일은 수세미로 잘 씻어야 왁스가 벗겨진다고 합니다. 왁스의 뜻도 나오는데 저는 처음에 이 왁스도 수제청의 준비물로 쓰이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왁스는 제거해야 할 물질입니다. 자몽, 키위 등은 수입산이 대부분이겠으니 이 과정이 필수이겠습니다. 그러나 감귤 등에도 왁스는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세척 후 헹구는 것도 정수에 하라고 합니다(p36 등). 


p68에는 도라지배청 레시피가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도라지와 배가 재료입니다. 도라지는 2뿌리, 배는 반 개라고 합니다. 설탕은 이 책 모든 레시피에서 공통이지만 유기농을 씁니다. 다만 그램수가 다 다른데 여기서는 280g을 씁니다. 꿀 3T(T는 계량스푼 15ml라고 p14에 나옵니다), 베이킹소다, 식초가 더 필요합니다. 이 책은 총 5챕터로 나뉘는데 3부는 수제 식초 제조법입니다. 


감귤청은 320g, 복분자청에는 400g의 설탕이 필요합니다. 감귤청은 뜨거운 물과 1대 4 비율로 타서 감귤차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제가 그동안 너무 청을 적게 타서 맛이 없었던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나 청을 너무 많이 넣어도 좀 그렇죠. 파인애플청으로 에이드를 만들려면 탄산수를 1대 4로 섞으라고 책에 나옵니다. 파인애플은 3x3cm 단위로 썰어 넣으라고 합니다. 이때 병에 가스가 차니 처음에는 하루 한두 번씩 두껑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빼 주라고 합니다(p43). 이 부분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 파인애플 자체에 효소가 많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블루베리레몬청은 블루베리 100g, 레몬 200g, 유기농설탕은 240g이 필요합니다. 냉장고에서 3개월 동안 보관 가능하다고 하는데 저는 개봉한지 1년이 넘은 공산품 유자청을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으!


저한테는 다소 난이도가 있겠지만, 이 책에서 수제청보다도 어쩌면 더 쓸모가 많을 것 같은 레시피가 수제식초 만드는 법입니다 이걸 먼저 만들어 두면 앞 2부의 수제청에도 필수로 쓰는 식초를 수제식초로 쓸 수 있으니 말입니다. 특히 딸기초(p113) 제조법에 눈이 많이 갔습니다. 실온 보관도 가능하나 냉장 보관이 더 상큼하다고 나옵니다. 


4부는 코디얼 제조법인데 코디얼이 뭔지를 몰랐으나 책에 다 설명이 나옵니다. 정수에 과일을 끓여 설탕 꿀을 첨가한 시럽을 뜻합니다(p130). 책에는 네 종류가 나오는데 네 군데 모두 레몬이 들어갑니다. 


5부는 건조과일 정리노트입니다. 일단 수분이 빠지면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는 게 첫째 장점이라고 합니다. 과일은 아니지만 저도 지금 건조생강을 오래 두고 먹는 중입니다. p147에 보면 건조과일의 용도는 1) 과일워터 2) 간식 3) 장식용 이라고 하는데 생강을 2)의 용도로 먹어 보니 좋았습니다. 책에서는 레몬, 오렌지, 키위, 무화과 등 총 10종의 건조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단계별로 컬러 사진들이 일일이 실려 있어서 따라해 보기가 좋았습니다. p128과 p178에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인기 강사로 변신한 저자의 짧은 성공담이 나옵니다. 창업 강좌도 있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알아 보시면 좋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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