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 입원일기 - 꽃이 좋아서 나는 미친년일까
꿀비 지음 / 포춘쿠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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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 전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라는 영화(원작은 소설)가 개봉되어 정신병원의 비인간적인 환자 관리와 인권 침해를 고발하는 데 일조한 적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무려 40년도 더 된 이야기이며 오히려 요즘은 저런 작품이 정신병동 환우들에 대한 고정된 편견을 강화할 우려마저 있습니다. 실제로 정신병동 역시 내과나 외과처럼 병이 길어지면 누구나 입원할 수 있는 하나의 의료기관일 뿐입니다. 정신병동에 실제로 입원한 적 있는 작가님이 그림과 함께 들려 주는(사실상 만화가 메인입니다. 다른 작품들은 p76 이하에 실려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라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병원식 하면 "맛이없다"라는 이미지가 거의 자동으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병원식이란 건 여튼 환자의 건강 등 이런저런 요소를 고려하여 그리 나오는 것이므로(대체로는요) 환자 입장에서는 여튼 준수해야 하는 식단이겠습니다. 그런데 정신과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느날 (선택사항으로) 라면이 나왔나 봅니다. "나는 이렇게 건강한 맛 나는 라면은 처음 먹어 봤다.(p26)" 라면은 사실 집에서 먹을 때에도 가장 싸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메뉴입니다. 건강 생각하면 먹질 말아야 하는데 장소와 상황이라는 게 있다 보니...


"우울하다 보면 못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p140)." 물론입니다. "못된 생각, 나쁜 생각"이란 표현을 우리가 이럴 때 종종 쓰곤 하죠. 그건 분명 못되고 나쁜 생각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우들에게 그런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게 바로 (소위) "정상인들"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혹은 "우리들")은 결코 정상인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정상인"이다 뭐다 하는 표현은 요즘 쓰지 않는 게 권장되는지도 모릅니다. 


작가님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지만 p62에 자신이 잘생긴 줄 모르는 어느 신입 남성 환자를 두고 "꽃돌이"라 표현한 걸 봐서 여성이 아니실까 저는 짐작합니다. 하긴 이 역시 근거 없는 선입견일 수도 있죠. p141에 보면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 이런 말을 읽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집니다. 아니, 왜 안 되겠습니까? 책날개에 보면 작가 꿀비님이 스스로를 소개하길 "아직은 앞에 나서기가 쑥스러워요"라고 합니다. 이 말이 좀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약간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작가님 본인도 "자신이 충분히 멋진 분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빨리 확신을 가지고 독자들 앞에 나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독자들이 더 성숙해질 필요도 있을 겁니다. 아니 그래야만 하겠죠. 작가님 나이에 대해서는 p224, 또 p27에 직접 언급이 있습니다. 

p59에 보면 작가가 "반성"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틈날 때마다 영문 논문 들고 다니며 보시는 주치의 선생님, 언제나 바쁘게 뛰어다니시는 간호사 선생님들. 방탄소년단보다 바쁜..." 정신과에는 무섭게 생긴 덩치 큰 남성 여성 간호사들만 있고 의사쌤들은 편집증적이고 가학적인 싸이코들만 진을 칠 것 같다는 게 사실은 저런 픽션이 끼친 악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저 영화에서 배우 루이스 플레처가 열연한 그 캐릭터나 <양들의 침묵>에서 칠튼 원장 같은 사람 말입니다. 작가님의 말은 "더 바쁘게 살지 않았던 데에 대한 반성"이지만 우리들도 정신과 하면 환자건 의료인에 대해서건 간에 대뜸 이런 이미지만 떠올리던 그 관성을 반성해야 하겠네요. 


주치의 선생님이 사실 뭘 들고 다니는지 아마 다른 환자라면 눈여겨 보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작가님이 그게 "영문 논문"인지 알아봤다는 데 저는 주목했습니다(물론 개인적으로 물어 봤을 수도 있지만). p199를 보면 작가님이 "RISS에 가면 논문을 음성으로 읽어 준다"고 한 걸로 봐서 대학원 재학 중이지 싶습니다. 등록금 다 냈으니 반드시 학위를 따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 영문 논문이 눈에 더 잘 띄었을 수도 있죠. 이렇게 학구적인 분이니 회복(참고로 이미 퇴원은 하신 분입니다. p188 이하, 혹은 p27 등)도 더 빠를 것입니다. 교수님에 대한 얘기는 pp. 44~51, 간호사 선생님들과 다른 고마운 분들에 대한 얘기는 pp. 52~60에 나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님과 일면식도 없는 제가 다 고마웠는데 정신병동 환우들에 대해 이처럼 잘해 주시는 게 뭔가 마음이 든든해서였습니다. 우리나 우리 주변의 지인들이 혹시 입원하거나 하면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겠다는 안심 때문이죠. 


사실 이 책의 그림만 봐도 작가님은 엄청 밝은 분입니다. "하긴 내가 봐도 나는 엄청 밝아 보인다(p158)" ㅎㅎ 작가님은 자신이 안 불쌍하다고 화를 내시는데 무척 귀엽습니다. 순수회화를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뭐가 불쌍하냡니다. 이제 다 낫고 활동 시작하시면 그 웹툰이 인기 끌어서 돈 좀 버시겠죠. "호박꽃도 꽃이고 너도 나도 세상 모두가 다 꽃이다(pp. 182~183, 또 p77 이하)"라고 하십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 잘 알려진 문장을 웅변학원 교재에서 처음 봤는데 정확한 출전을 모르겠습니다. 여튼 건강에 안 좋으므로 담배(p183)는 좀 피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골치 아픈 문제가 나를 괴롭혀도 말입니다. 


p63을 보면 "정신과에는 괴물이 있을 줄 알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카툰을 보면 괴물이라기보다는 좀 귀여운 이들이 보입니다만... 여튼 이게 정신병원 하면 가장 많은 이들이 먼저 떠올리는 편견 가득한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그곳도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다." 이 말도 뭔가 뜨끔하지만 더 찔리는 건 다음의 한 마디입니다. "솔직히 당신은 용기 없어 오지 못하고 있잖아." 아니 과장이 아니라, 우리 현대인은 워낙 복잡한 소통을 하다 보니 정신에 상처 난 곳 한둘 없는 이가 없습니다. 그럼 가서 치료를 받아야죠. 치료를 받아야할 상황에서 안 가고 버티는 건 어리석고, 버티고 싶지 않으나 병원에 가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안 가는 건 (작가님 말대로) 용기 없는 짓이 맞습니다. 어리석거나 용기 없음을 넘어 근거 없이 누구를 이상하게 보는 건 심지어 나쁘기까지 합니다. 


p11을 보면 "의사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해 주길 바랐다. 입원하면 진짜 정신병자가 되는 거니까"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게 우리 모두의 평균적인 정서입니다. 용기 있게 찾아갔고 입원까지 하며 병을 거의 다 낫게 하신 사례를 보며 아마 독자들 중 많은 이들도 함께 용기를 낼 수 있겠습니다. 책도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어둡고 무서워지는 대목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서도 이 책이 참 뜻깊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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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끝에서 만나
안지숙 지음 / 문이당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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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은 박현도, 도원재, 추미림, 박현서(박현도의 여동생), 오홍규, 정미소, 강민주, 성용(성씨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탐욕스럽고 음흉한 자이언트 社 대표 등입니다. 박현도의 부친과 모친, 경비 아저씨도 잠깐 등장합니다. 아마도 가상세계, 혹은 현도의 꿈 속으로 여겨지는 프롤로그에서만 잠시 "박현도"로 3인칭화하고 소설 본문에서는 내내 "나"라는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입니다. 


소설 속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여러 번 언급됩니다(p128 등 여러 곳). 박현도가 도원재를 자신의 데미안으로 여긴다는 암시, 아니 암시가 아니라 명시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도원재는 뭐랄까 더 자기 감정을 성숙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인격이며, 업무 능력도 더 뛰어납니다. 여기 등장인물들은 모두 게임 개발, 혹은 앱 개발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입니다. 박현도의 여동생인 현서는 전문계 고교를 나와 회계 쪽에 적성이 있는 인물인데도 오빠의 회사에서 게임 개발 업무를 (본연의 직분도 물론 하면서) 돕습니다. 


p44를 보면 추미림이 자신의 경험을 박현도에게 털어놓는 대목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발레를 배웠는데 턴이 그렇게나 안 되더라는 겁니다. 이유는 미림 자신 생각으로, 더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웠고 아마 그때 몸에 힘이 들어가는 버릇이 이미 들어서라고 합니다. 이 말이 체육학적으로 맞고 그르고를 떠나, 일단 현도는 왜 미림이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지를 이해 못합니다. 


p76부터 이십 여 쪽에 걸쳐 이어지는 이야기는 박현도의 어린시절에 대한 것입니다. 그의 부친은 원래 사업가였는데 무슨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느 교회의 열성 신도가 되었고 집사 일을 보다가 드디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열성은 가득했으나 그의 마음은 평온을 찾을 날이 없었고 가족들에겐 엄격 잔혹했으나 신도들 앞에서는 자애로운 인격을 전시하는, 일종의 정신분열증 환자로 보입니다. 마음이 평안치 못하고 잘못된 인격 설정으로 인해 스트레스도 극심했을 테니 암에 걸린 게 이상하지 않고,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납니다. 20억을 받을 수도 있었던 건물과 부지를 어느 기독교 단체에 8억이란 헐값에 팝니다. 죽어서까지 가족에게 손해를 끼친 셈입니다. 이때 어린 현도에게 심어진 강박이, 그 실존이 의심되는 가상의 이상향인 에덴입니다. 소설 결말에 밝혀지지만 에덴은 사실 모든 시공간이 사멸하는 블랙홀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습니다. 생명과 죽음이 사실 동전의 양면이었듯 말입니다. 


박현도에게 이런 어린 시절의 불쾌한 기억은 아마 어려서 태권도를 "잘못" 배워 몸에 힘 빼는 법을 잊었다는 미림의 체험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는 충분히 자신을 더 좋은 행동과 판단, 감정으로 유도할 능력이 있고 사리 판단이 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도원재와 엮이는 대목에서는 부도덕한 행동을 곧잘 합니다. 미림은 원래 도원재의 여자친구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미림을 놓고, 도원재의 복무 기간 중 유혹도 아니고 뭣도 아닌 이상한 액션으로 결국 결혼에까지 이릅니다. 명백하게 절친의 애인을 가로챈 파렴치한 행동으로서 자칫하면 뭐 칼부림이 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또 부도덕한 짓입니다. 미림을 그리 간절히 원하자도 않았기에 더 이상합니다. 어려서 그 부친에게 강요받았던 과시용 선행에 대한 반발감도 있고, 도원재에 대한 이런저런 열등감, 질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 <데미안>이 자주 언급되지만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는 박현도와 도원재의 관계와 별로 닮은 데가 없습니다. 물론 도원재가 외모, 지능, 인격 모든 면에서 박현도보다 나은 걸로 보이지만 그는 박현도를 patronize할 의도도 없고 남 일에 그리 개입하는 성향도 아닙니다. 적어도 데미안은 결코 도원재처럼 내향적인 성격이 아닙니다. 도원재가 거의 언제나 손해 보고 양보하고 이해하며 넘어가는 편이지만 박현도에게 어떤 우월적 지위를 점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호구 취급 당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박현도는 (그리 큰 필요가 없는데도) 비정상적으로 보냈던 어린 시절 사실상 "부친의 부재"에 대한 보상을 원했는지 친구 도원재에게 데미안 역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이처럼 함부로 하질 못했습니다. 감히 말이죠. 따라서 박현도가 하는 짓은 일종의 복수이며 물론 엉뚱한 상대를 잡아 부친 대용으로 쓰는 겁니다. 이게 일종의 "어렸을 때 잘못 배운 태권도"라고 하겠습니다. 힘을 얼마든지 빼고 잘 할 수 있는데도 심인성으로 그게 안 되는 거죠. 


이해가 안 되는 건 추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2002년작 샘 레이미 연출 <스파이더맨>을 보면 메리 제인은 사실 모든 면에서 피터보다 우월한(우월했던) 해리를 좋아합니다. 잘생기도 돈도 많고 학교에서 인싸고... 메리 제인은 배우를 향한 꿈이 깨지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는 초라한 모습을 피터에게 들키면서도 끝까지 하는 말이 "해리한테는 말하지마"입니다. 그 말은 피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죠. 메리 제인은 자신의 진정한 내적 특성, 감정 등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외적 조건만 보고 해리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철저히 속물이고, 해리하고 끝까지 잘할 자신이 없어 일단은 피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비겁하기까지 합니다(초능력은 일단 나중 문제). 저는 이 소설 속의 추미림이 그 메리제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추미림은 처음부터 박현도를 거의 경멸하기까지 했지만 결혼을 그와 했고, 그런 결혼이 오래갈 리 없습니다. 나쁜 건 박현도도 마찬가지여서 원하지도 않은 채 남의 애인을 가로챘고 원나잇도 아닌 결혼까지 감행하여 퇴로 차단의 도장을 찍은데다 나중엔 대충 살다가 헤어지기까지 합니다. 남의 감을 찔러 터뜨린 후 먹지도 않고 버리는 심뽀입니다. 


해리 오스본이나 데미안에 비길 건 아니지만(?) 도원재는 이미 업계에서 이름이 난, 능력 있는 개발자입니다. 박현도의 작은 스타트업 직원들도 그의 이름을 다 알 정도입니다. 박현도가 이런 작은 회사 하나 제대로 못 꾸려 가며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는 동안(이것도 그 부친을 닮았죠), 도원재는 특유의 능력을 잘 살려 얼마든지 큰 돈을 벌고 박현도의 회사 같은 것 정도야 여럿을 차릴 만한 그릇이 되건만 돈 벌고 출세하는 데 관심이 없어서인지 내내 알바 인생인 것 같습니다(오라는 데는 많지만). 친구 같지도 않은 녀석이 페이도 넉넉히 못 주면서 알바 뛰어 달라는 뻔뻔한 요청을 무슨 대의명분이나 지키는 양 넙죽 받아 열심히 합니다. 


박현도는 참 우스운 게, 아직 벌어지지도 않았을 단계부터 누군가가 배신하여 자신의 에덴 프로젝트를 파국으로 몰고가리라는 의심에 빠집니다. 물론 그 일은 실제 벌어지기 직전까지 가긴 합니다만 박현도는 어떤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특유의 망상 강박으로 스스로를 들볶는 겁니다. 자신이 예전에 융통성 없이 군 덕에 구치소까지 갔다 온 오홍규(물론 이건 박현도를 비난할 게 아니며 그는 원칙대로 했을 뿐입니다. 만약 홍규를 봐줬으면 그도 공범으로 몰렸겠고 무엇보다 정미소에게 몹쓸 짓을 하는 거죠), 언젠가는 자신에게 복수를 할 것으로 의심되는 도원재 등을 의심합니다. 희한하게, 도원재를 의심하면서도 면전에서는 무척 관대하게 굽니다. 물론 자신의 원죄가 있어서이지만. 


결말에는 반전이 있습니다(이 서평에서는 생략). 에덴이 알고보니 블랙홀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예수와 유다도 한몸인지 알 수 없는 게 우주의 섭리입니다.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현실입니까? 박스 안의 고양이는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한 길 사람 속을 모른다는 속담처럼, 어쩌면 모든 물리 방정식도 그 풀이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답이 없는 게 결국은 답"인지도 모릅니다. 배배꼬인 현도, 미림이 못지 않게 걔네들 버릇을 끝까지 안 고쳐 주고 방치하는 "가짜 데미안, 가짜 형(오빠)" 도원재도 멍청이이거나 위선자입니다. 아니 정말로 순수하고 착했던 건 주인공 박현도(와 그의 부친)인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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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간의 썸머 특서 청소년문학 24
유니게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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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고든 레빗 주연의 <500일의 썸머>라는 영화가 있고 이 작품 중에도 언급(p13)됩니다. 그 영화에서 썸머는 여성이고 물론 멀쩡한 사람이며 언제나 어디가 약간 부족한 듯한 역할만 맡는 고든 레빗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줍니다. 그 남자한테는 과분할 정도로. p73을 보면 주인공 소녀인 지유가 "그 영화에서는 썸머가 여자였다는 걸 알고 화들짝 놀랐다"는 대목이 있는데 사실 놀랄 이유는 없죠. 썸머는 여성한테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하고. 아마도 지유는 썸머를 거진 남친으로 여기고 깊숙이 감정을 부착했는데 얘가 남자가 아니라면! 하는 생각에 잠시 놀랐을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얘가 사람이 아닌 AI라는 건 진즉부터 알던 사항입니다. 입장이 반대였다면 썸머는 논리적으로 생각할 줄 알기에 전혀 안 놀랐겠죠. 어쩌면 이럴 때 놀랄 줄 아는 게 사람만의 특성이지 싶기도 합니다. 뻔히 아는 걸 두고도 놀라기도 하는 것, 아니 놀랄 줄 아는 것. 


책은 네 편의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지유 등이 주인공인 <50일의 썸머>와 <그 두번째 이야기>, 전혀 다른 주인공들이 나오는 <썸머 베케이션>과 <나의 인공지능 친구 썸머>. 그런데 <썸머 베케이션>에서 지호라는 애가 마치 모 사이트 멤버처럼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 반응(p105)"을 잔뜩 털어놓는 바람에 AI 썸머는 (다소나마) 여성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갖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그것도 인풋된 데이터라고 당연한 진리로 간주하는 게 아니라 "어떤 아이가 나한테 이런 말을..."이라며 그 입력 경로를 기억하고 일종의 메타인지를 행한다는 점입니다. 멍청하지 않고 똑똑한 AI인 셈인데, 이걸 두고 세번째 이야기인 <나의 인공지능 친구 썸머> 안에서 한빛이가 지적(p141)을 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그러니 네 이야기들은 완전히 분리된 시공간이 아니라 각각의 주인공들이 여차하면 서로가 만날 수도 있다는 거죠. 


<50일의 썸머>에서 주인공은 지유입니다. 지유의 엄마는 발랄하고 다감하며 아빠는 워커홀릭인데 원래 어마가 그 부친(즉 지유의 외조부)를 싫어하여 정반대성향의 남성을 골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엄마가, 그 싫어하던 자기 부친을 닮은 구석(아마도 자유분방한 한량기질)이 있기에, 결국 자신이 고른 배우자(갑갑한 안정 추구형)와도 크게 안 맞는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p55). 정말 재미있죠. 지유에게는 친구인 닭살 커플 민서와 현우가 있는데 이 둘도 마치 지유의 부모님과 비슷한 관계라서 여자인 민서가 변덕스럽고 롤러코스터 감정선을 달리며 남자인 현우가 차분한 타입입니다. 언제나 현우가 참고 양보해 왔으나 한계점에 이르러(p59) 드디어 결별을 선언합니다. 이 경우 누가 봐도 민서 잘못이지만 민서는 거꾸로 현우가 자신을 버렸다며 분을 못 이겨합니다. 지유 엄마도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유형인 민서를 탓하는데 아이러니죠. 주인공이 지유라면서 하는 일이 없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이 모든 난리통을 정리해서 우리에게 들려 주며 인공지능인 썸머에게 자료를 제공(ㅋ)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입니다. 아 물론 썸머는 지유의 외사촌 오빠인 윤수가 지유에게 "남자친구"로 쓰라고 이용권을 준 것이고요. 곁다리로 지유의 외조부도 등장하여 사람 사이의 관계, 특히 남녀관계의 본질이 뭔지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고졸 오타쿠였으나 적성을 잘 살려 어느새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 된 윤수 역시 의미있는 비중입니다. 


<썸머 베케이션>에서는 명문 원일고에 전학온 채원이라는 완벽주의자 여학생이 왕따와 이상한 실연(?)을 겪고 방황하다가 참된 인간관계에 눈떠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아 학교 적응 이슈 같지만 채원에게는 곁에서 엄마가 불어넣은 과도한 기대로부터 해방되는 과정, 비정상적인 미래상을 당연하다는 듯 가졌던 목적지향적 청소년이 점차 바른 인성을 회복한다는 다른 사연도 깔려 있습니다. 채원과 비슷한 처지의 청소년이 지호인데 얘도 자기 엄마가 성적에의 집착이라든가 어떤 타인지배적 모범생상을 자녀에게 실현시키려는 강박을 가졌다는 환경이 닮았습니다. 얘네들한테도 AI인 썸머가 일종의 큐어를 해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번째 이야기가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고 여겼습니다. 


<나의 인공지능 친구 썸머>는 좀 더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어느 식당에서 갑자기 서비스로 밥 한 공기 더 받아본 적 있을까요? 주인이 갑자기 변덕이 생겼거나 해서 그럴 수도 있죠. 한빛이와 그 엄마는 폭력적이고 제정신이 아닌 가장 때문에 거의 도망을 다니는 신세인데 어느날 우연히 들른 국밥집에서 주인장인 할머니가 별난 호의를 베풉니다. 결국 그 엄마는 직장을 잡고 한빛이도 안정을 찾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고 예의 AI 썸머도 만나게 됩니다. 훈훈한 내용이긴 하나 할머니의 존재, 역할이 좀 뜬금없었고 어쩌면 이 할머니가 하늘에서 떨어진 일종의 도라에몽(!)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 그 두번째 이야기>에선 첫번째 사연의 주인공인 지유가 다시 등장하여 자기 남친인 썸머와 가상공간에서 만나 더 깊은 소통을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친구지요. 조각 같이 잘생긴 애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앞에 나왔습니다만 웃을 때 치아가 예쁘다는 게 지유의 말입니다. 청소년 때는 확실히 자신의 감정과 생각 등을 공유할 만한 듬직한 친구가 좀 필요합니다. 이성 친구를 갖고 싶은 어떤 욕망 이런 거보다도 말입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대중화, 상용화되면 우리들의 이런 정신적인 갈증이 많이 해결되고 여러 사회 문제나 범죄 등도 다른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겠다 싶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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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 -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 인문여행 시리즈 17
이향우 지음 / 인문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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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우 작가님의 힐링 시리즈를 여러 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신간 역시 거의 모든 페이지에 컬러 사진 등 도판이 실려 있기에 이 귀한 시각적 자료만으로도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미술 전문 출판사인 인문산책의 멋진 제책 솜씨 덕에 더욱, 읽는 게 행복한 멋진 책입니다. 


p64에 "봉황문"이 나옵니다. 물론 문은 門이 아니라 紋이며 이 책 제목부터가 문양을 다룬 책이라고 이미 밝힙니다. "태평성대에만 나타나는 상서로운 새"인데 이런 태평성대는 지혜롭고도 용감한 임금이 노력을 통해 가꾼 성과물이어야 하죠. 하늘은 그저 봉황을 아래로 보내 주지 않습니다. 이 책은 참 놀라운 게, 봉황의 생김새 같은 걸 그저 그림이나 후세에 가공된 이미지로 유추하지 않고 고문헌의 묘사로부터 일일이 고증을 시도한다는 겁니다. 심지어 <설문해자>도 출전에 포함됩니다. 그러니 이 책은 그저 문양 분석이 아니라(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지만) 고예술품에 나오는 여러 이미지나 개념을 해제한 사전(事典)도 겸합니다. 


용(龍)은 중국의 천자만 독점할 수 있었으나 봉황은 반도의 제후국이 마음 놓고 그 상징으로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창경궁 명정전의 조각은 "작위적이거나 딱딱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우아하다(p69)"고 저자가 평가합니다. "조양에서 우는 봉황"은 직언을 서슴지 않는 신하를 상징한다고 하니 이 영물의 함의에 왕뿐 아니라 신하가 참여할 공간이 함께 마련되어 더 흐뭇합니다. 


서수(p112)는 한자로 瑞獸라 쓰겠죠? 이 책 3부 처음에 소개되는 사령(四靈)은 네 가지 상서로운 동물이란 뜻으로 四瑞와 동의어로 삼습니다. 기린, 봉황, 영귀, 용 등 네 마리를 뜻합니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등의 사방신과는 다르죠. 책에도 나오듯이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 등에는 우리가 아는 사방신(으로 해석할 수 있는. p116)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p117에는 아주 선명한 사진들이 나와서 독자의 이해를 꼼꼼히 돕습니다. 


대개 서수는 네 마리씩 표현되는 공통점은 있으나 이 책 p124에 나오듯 그 종류가 일관된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天祿은 매우 생경한데 책에는 <후한서>가 그 출전이라 하니 한번 찾아보고 싶습니다. 물론 상상 속의 동물이고요. 저자는 특히 "왜 '메롱'이라 하듯 혀를 내밀었는지?"를 궁금해합니다. 물론 이를 메롱이라 새기는(느끼는) 것도 우리 현대인들만의 감각, 습관이겠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 당시 왜 하필 이 천록상만 이리저리 위치가 바뀌었는지도 짚고, 중국 등과 달리 우리네 조각상들은 유독 해학적 성격이 짙은 것도 눈여겨 봅니다. p132 이하에서는 용생구자설을 기반으로 전통적인 서수 9종을 소개합니다. 역시 일일이 도판과 함께하는 설명이라서 독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서양의 군주들이 그 다스림을 받는 신민들에게 무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그저 군림하려 들었던 것과 달리 동양의 지배자들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인의를 내세웠으며 군주 역시 부지런하고[勤] 절약하는[儉] 태도를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월대(月臺)는 궐 앞에 세우는 부속물인데 이를 오"르"는(p138) 계단이 붙는 게 보통입니다. 이를 답도(踏道)라 부르는데 p138 이하에서 이 구조물이 집중 분석됩니다. 공작, 해치(p150), 봉황 등 다양한 서수가 양각되어 있네요. p147에는 28수(宿. 별자리를 뜻할 때 "수"라 읽습니다)와 그것이 상징하는 동물이 매칭된 표가 나옵니다. 또 p146에는 월대의 방위과 서수 배치를 설명한 그림이 있는데 크~ 한마디로 기가 막힙니다. 근거 문헌은 <경복궁 영건일기>라 합니다. 


문양에는 동물만 나오는 게 아니라 식물도 빠질 수 없습니다. 우선 p166 이하 4부부터 "꽃담"이 나오는데(p243도 참조) 이 역시 한국에서만 유독 자주 발견된다고 하네요. p186 이하에 매화, 모란, 난초, 국화, 대나무 등 전통적인 유교 덕목을 계절과 함께 상징하는 식물들이 소개됩니다. 연화, 석류, 포도 등은 불교 신앙이나 민간에서 그 나름 고유한 상징으로 널리 미술에 표현되는 소재들이겠습니다. 특히 연화는 불교의 핵심 상징인데 책 저 뒤 p270에는 만자(卍字)문(紋)도 소개됩니다. 이를 "천지의 조화"라고 새길 때에는 주역(유교 삼경의 하나)의 태극과도 연결된다고 하네요. 


저자는 코끼리를 뜻하는 象과 길하다는 뜻의 祥이 음이 같으므로 건축에 널리 즐겨 쓰였다고 합니다. 다만 현대 중국어 기준으로는 전자는 4성, 후자는 2성으로 서로 성조가 다르긴 하죠. 창덕궁 희정당 굴뚝의 장식(p242)을 보면 기린, 학, 사슴, 코끼리가 각각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서수입니다. 잉어(p250) 같은 물고기도 입신출세를 상징했다고 하네요. 특히 조선 시대는 일반 양민들도 과거 급제를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할 수 있었으므로 민간에서 두루 누렸을 인기를 짐작게 합니다. 

p281을 보면 쌍희자(문)가 나오는데 사실 글자라기보다는 문(紋)에 가깝죠. 네이버 사전을 보면 이걸 두고 한국에서 만든 글자라고 설명하지만 중국에서도 널리 쓰는 문양입니다. p292 이하에는 단청이 소개되는데 단청 역시 고유한 상징을 지녔으며 특히 그 반자초에 대한 책의 설명이 탁월합니다. 6부의 편액문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입니다. p317의 <요지연도>도 참으로 신비한 그림입니다. 50년만에 고국에 돌아왔다고도 하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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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아이패드 여행 드로잉 퇴근 후 시리즈 15
이거니 지음 / 리얼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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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후라고 해 봐야 고작 대여섯 시간도 안되는 짜투리인데, 이 지쳐 있고 짧은 자원을 어떻게 잘 활용하는지도 직장인의 능력입니다. 재충전만 잘해도 이 시간은 보람과 의미로 채울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은 탈진한 자신에 대한 비생산적인 연민으로 날리기가 일쑤입니다. 이 시간을 "여행"으로 어떻게 보낸다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되었으나, 포인트는 "드로잉"에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p64의 "이탈리아 베네치아, 부라노 섬의 독특한 집"을 보면 이 집을 예쁘게 그리는 방법이 나옵니다. 아마 작가님이 실제로 여행을 다녀오시고 현지에서 찍은 사진을 모델로 삼아 이렇게 그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림 하나, 형태 하나를 그리는 데도 마치 네이버 한자 사전에서 획수 하나 하나 쓰는 법을 순서대로 gif파일로 보여 주듯 단계별로 정지화면을 잡고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따라해보기가 아주 쉽다는 게 단연 좋습니다. 진짜 이렇게 가르쳐 주면 적어도 이 작가님의 스타일 안에서는 못 그릴 형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하는 걸 가르치는 책은 이렇게 예시 그림과 함께 자세히 가르쳐 주는 게 최고입니다. 따라해보라고 하면서 중간과정이 생략된 책들을 보면 인강이라도 따로 끊으라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세로선을 그을 때 마치 윈도 그림판에서 shift키 누르고 그리면 직선이 반듯이 표현되는 것처럼 아이패드도 <모양편집> 기능을 이용하면 선이 불안하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p66을 보면 문 안의 정사각형 무늬들은 그리 반듯반듯한 모양이 아닌데 이건 자연스러운 빈티지 느낌을 살리려고 의도적으로 그리하신 듯 보입니다. 


p67에 보면 레이어가 많아질 때 각기 그룹을 만들어 정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tip 박스 안). 이 책에서 단계별로 자세히 설명된 건 레이어 단위로 그렇게 한 게 많습니다. 바로 뒤 페이지에도 나오지만, 이렇게 레이어를 그룹별로 정리해 두면 같은 레이어가 반복될 때 한 번에 복사하여 여럿을 붙여 넣을 수 있습니다. 통일성(필요하다면)을 기할 수도 있고 시간과 노력을 절감하겠죠.


p52를 보면 아마 빈(비엔나)의 어느 카페에서 즐긴 메뉴인 듯 마치 르누아르와 고흐가 반반씩 섞인 듯한 풍으로 단아한 테이블을 배경으로 삼은 그림이 나옵니다. 커피가 컵이 아니라 글래스에 담겼나? 싶게(책에는 컵이라고 나옵니다만)내용물이 다 비치는 듯 표현됩니다. 에스프레소는 특히나 투명컵으로 음미하는 게 제격일까요? 모르겠습니다. p58에서 12번째 그림, 커피 크림을 어떻게 그려 넣느냐가 중요해 보입니다. 크림 자체도 커피의 층이지만 크림 안에 다시 음영을 그려서 그 안의 층을 표현하는 게 정말 멋집니다. 그러고 보니 층(그림 표현의 단계) 안의 층(물리적 레이어)이네요. 


p152에는 이탈리아 포지타노,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숙소 그림이 나옵니다. 여행 장소를 배경으로 일일이 사진을 찍어 두는 것도 추억을 환기하는 멋진 매개이지만 참 이렇게 정감어린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먼저 바다(해변)을 두 레이어로 나누어 그리고, 이어 바다를 표현합니다. 마치 앞에서 커피를 그리고 그 위에 크림층을 덧대어 그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레이어 순서상으로는 파도가 먼저지만 그리는 순서는 바다가 먼저라는 겁니다. "블러시 불투명도(p154)"를 어떻게 활용하냐가 포인트입니다. p174에서도 에펠탑 그림에서 거리불빛은 두번째 레이어이나 그리는 순서는 일곱번째입니다. 

p183에서 여행사진, 이미 완전히 형태와 색이 갖춰진 사진을 "'균등'을 체크하고 양 끝점을 잡고 확대하여" 사진을 캔버스에 맞춘 후(이런 건 아이패드뿐 아니라 갤럭시탭에서도 비슷합니다), 세번째 단계에서 건물 전체를 검정으로 칠합니다. 이때부터 "그리기"가 시작되는 거죠. 다섯째 단계부터 석양 빛깔이 표현되며 그림 역시 사진을 닮아갑니다(그러나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갖춰 가는...). 노점상 지붕들이 그려지면 완성되는데 노점상 지붕이 마치 궁전의 벽면을 장식하는 듯 멋집니다. 


프로 여행러는 무엇보다 준비의 달인이라야 합니다. p10부터 기본 개념을 이해시키고 어떤 작동법이 그림 그리는 데 핵심 기법으로 쓰이는지 잘 설명됩니다. 레이어 레이어 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분들은 pp. 27~29를 잘 읽어 보면 됩니다(브러시도 그 다음에 나옵니다). 


이 책에서 "여행"이라 함은, 정말로 퇴근 후에 배나 비행기를 타라는 게 아니라 일상을 여행의 느낌으로, 여행을 일상의 느낌으로 표현하는 그림 연습(의 세계로 여행을 감)을 뜻합니다(p51). 지치고 피곤해도 이처럼 멋진 손재주를 개발해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태블릿 안에 나만의 작품으로 영원히 남겨 놓으면 힐링이 따로 필요 없을 듯합니다. 참 멋지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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