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자이너 블루 - 지극히 사적인 섹슈얼리티 기록
임은주 지음 / 비비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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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남자라서 고독하고 힘든 부분이 있고 여성은 여성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우울하고 힘들며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포인트가 따로 있습니다. 책표지에는 "지극히 사적인 섹슈얼리티 기록"이란 부제가 붙었으니 남성 독자가 읽기엔 다소 삼가게 되는 기분도 들었으나 오히려 이런 기록, 고백은 남성이 더 적극적으로 읽고 여성 보편의 감성과 소통을 시도할 필요도 있겠다 싶었네요(라고 하기엔 수위가 좀 높긴 합니다). 


부친께서는 매우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나 그 내면에는 엄청난 에너지, 창조성, 어떤 디오니소스적 이데아를 향한 열망 등이 깃드신 분이었던 듯합니다. 그저 난봉꾼인 것과 이처럼 예술가 기질 다분한 분의 스타일은 곁에서 보기에도 뭔가 차별화되며 그 나름 이유와 정당한 근거가 있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도 됩니다. 물론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결코 아니며, 그런 자유분방함 속에 나를 지키는 게 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배우자(있다면)를 힘들게 하며 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데 이 역시 평범한 사람이 태연히 감수할 성격은 아닙니다. 본인은 편하지 않겠나 싶어도 별반 그렇지 않지 싶습니다. 뭐 당사자가 아니니 알 수는 없지만. 


"OO는 새로운 상대와 할수록 더 OO된다(p5)." 물론 그렇긴 하겠습니다만 매번 새로운 상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행위는 일종의 모험이라 상대에게 나의 모든 걸 드러낸다는 게 여간 간이 크지 않고는.... 여튼 그렇게 자유롭게 상대를 만나고 행동에 옮긴 분도 "여전히 못다 푼 문제(p6)"가 있어 딸에게 물려줬다는 걸 보면...(물론 대놓고 그렇게 말했다는 건 아니겠죠)


"OOO에서 약 1cm 살집이 올라왔다. 이대로 여자가 되는가보다 상상했다(p36)" 이게 초5때의 경험이라고 하는데 물론 다 그 맘때 이런 과정을 겪습니다만 어른이 되어서도 잘 생각이 날까요? 본문의 화자는 아마 40대 정도인 분으로 짐작되는데... 화자는 J여고(구체적인 학교 이름이 나오네요)에 다녔다고 하는데 아침 등교길마다 그짓을 하고 달아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합니다. 저로서는 이게 대체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잘 안 됩니다. 그냥 화자의 상상이 아닐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p38에는 의사가 산부인과보다는 신경정신과로 갈 것을 권했다는 대목이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나는 이 기억을 재편집하고 싶다(p22)." 보통은 어렸을 때 끔찍한 경험(꼭 성 관련이 아니라도)을 하거나 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이런저런 회고들은 하나같이, 더군다나 아무리 읽어 봐도 분명한 여성인 화자가 끔찍한 일들을 당한 기록입니다. 정말로 누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재편집이 아니라 아예 지우개로 빡빡 지우고 새 내용을 적어 넣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자인 저는, "OO가 되고 싶었다(p32)"는 화자의 말에서 짐작 가능하듯, 여기 담긴 내용이 사실은 화자가 직접 이런 일을 겪었다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한계까지 끔찍하고 더러운 일을 겪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화자가 그냥 상상으로 치러낸 OO 오디세이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말하자면 역 재편집이자 창작이 아닌지... p30에는 어느 양복을 입은 남자와 밤을 보낸 후 신촌에 있는 장미여관(!)을 빠져나온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얼마 전에 타계한 그 교수님의 핵심 테마(?)가 아닙니까? "인생은 OO와 얼마나 가까운지에 의해 결정된다(p31)." 그럴까요? 


"B는 여자였다. 여자였던 걸로 추정하지만 성별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p49)." 그럴 수도 있을까요? "머리가 짧고 키도 작고 목소리도 몸가짐도 크지 않았다." 확실치 않으면 애초에 안 엮이면 되는데 저 앞에 p23를 보면 성은이를 향한 화자의 태도는 진짜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여성인 자신이, 남자들의 시선을 닮으려 하는 건지요? 그렇게 "봐서" 무슨 쾌감이 느껴집니까? 그래서 (한참 뒤에) B와 함께 잔 건가요? 한참 뒤 p110에서는 필리핀 출신 어느 여성 청소년과 자신이 "단절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다"는 말이 나오긴 합니다. p182에는 "퀴어 모임"도 언급됩니다. 


C는 확실히 남자(!)였는데 화자에게 실망했다고 하며 어떤 운동(뭔지는 생략합니다)을 권합니다. 그런데 더 읽어 보면 문제는 화자가 아니라 그 C에 있었던 듯합니다. 지가 OOO면서 남의 OO를 탓하다니 본인은 대체 무슨 운동을 해야 그 문제가 극복되겠습니까? 운동 갖고는 안되고 아마 시술을 받아야 할 듯합니다. 세상에는 이처럼 주제 파악이 안 되고 남탓을 제딴엔 한다는 게 그만 자기 소개를 하고 마는 바보들이 꼭 있습니다. 어이가 없죠. "내 판단력에 하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맞습니다. 이와 대조되는 남자는 p59에 나옵니다. length로 2.5배 차이 나는군요. p52:4에서 "주우러"가 맞겠죠? p79에 나오는 "상식은 부족했던 남자"도 기술은 매우 좋았다고 하나 다만 데이트 폭력이 큰 문제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침에도 불구하고 "흉물스럽다(p55)"거나 숭헌 것(p35, p39)" 소리를 듣는 게 있습니다. 이건 다 위선이고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자가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시며 반대로 남동생의 OO에 대해서는 대놓고 예찬하는 모습인데 사실 나이 든 여성들이 남성의 사고와 관점을 이식받아 사는 전통 사회에서 드물지도 않게 봐 오던 거죠. 그 왜곡상과 병폐는 새삼 지적하기도 번거롭습니다. 이런 남동생에 대한 편애는 할머니뿐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인데 이 남동생은 몇 년 전 경영하던 사업체가 부도나서 해외로 도피했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래도 학교는 좋은 데를 나와서(화자도 마찬가지) 일단 버젓한 자리는 만들었던 셈이네요. 


"연대 알 독수리 다방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p65)." 이 세대분들이 매우 자유분방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글로 읽으니 더 충격입니다. 얼마 전 모 대학(공교롭게도 아마 지금 이 대학인듯?)에서 남녀가 벌인 행각이 영상으로 찍혀 큰 문제가 되었는데 여기도 "관음숲"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네요. 설마 이름이 그리 붙었을까 싶기는 한데. 여튼 정성을 다하는 남자가 여자를 가장 크게 감동시킨다는 점은 여기서도 확인 가능하네요. 주로 활동하신 곳이 이 근방(신촌, 홍대앞)인가 봅니다. 그런 데가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p112에는 "홍익산부인과"도 언급됩니다. 물론 강남역 "O진O산부인과"도 등장하고, p130, p150, p178, p185에서는 저 멀리 부산 개금역 근방이나 보수동, 광안리, 망미역(각각)도 볼 수 있네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는 아주 예전 영화가 있었습니다만 이 책에선 유독 "배낭여행"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p74 이하. 또 p70). 여기서도 아주, 참, 읽기만 해도 갑갑해지는 경험담이 등장하네요. 지금 이런 건을 고소하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나은 대우를 받겠죠? 스위스는 사실 아주 보수적인 곳이라서 기대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야마시타 상, 모토코, 닉, 스티브, 조지(p112), 어느 재미교포 혼혈(p120), 또 이태원에서 일할 때 만났던 외국인 손님들 등 다양한 남자들에 대한 기억이 이어집니다. 약간 머리가 아프기도 합니다. "공부하면서 일하는 가운데 춤추며 맛본 OOOO는 나에게 빛이었다(p105)." 이때 "빛"이라 함은 초등학생 때 남동생과 해변에서 주운 조약돌을 (부싯돌처럼) 마주치며 보게 된 그런 빛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 연상이 흥미롭기도 합니다. 


아주 긴 여행기를 읽는 느낌이었습니다만 에필로그에 나오듯 주된 테마 중 하나는 폭력과 그에 대한 트라우마입니다. 왜 이렇게 성(性)은, 가장 아름답고 달콤해야 할 것이 비극적이게도 폭력과 자주 결부될까요? 남성이든 여성이든(특히 전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대로 우울하거나 아주 어둡지만은 아닌 분위기인데 독자는 다시 저 앞의 "OO가 되고 싶었다(p32)"라든가 "OO는 아름다웠다" 같은 화자의 말을 곱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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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이후의 삶 - 지속가능한 삶과 환경을 위한 '대안적 소비'에 관하여
케이트 소퍼 지음, 안종희 옮김 / 한문화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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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손으로 퇴행시킨 세계,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극도로 어두워지는 세계(p20)". 이는 저명한 언론인인 데이비드 월러스웰즈의 말을 저자가 재인용한 것입니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앞으로는 훨씬 더 나아지리라는 확신에 거의 차이가 없다시피했습니다. 21세기를 20% 넘겨 지낸 지금 과거에 기대했던 것보다 우리가 이뤄낸 게 훨씬 적을 뿐 아니라, 전염병의 만연으로 과연 예전의 안정과 행복 수준이나마 회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인류는 여태 계속 진보만 이뤄온 게 아니고, 예를 들어 몽골 훌라구가 일으킨 바그다드 대학살 같은 사건은 문명의 수준을 수백 년 퇴보시켰을 뿐 아니라 도덕성과 자존감에까지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진보와 향상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 자각은 우리 마음을 무척 우울하게 만듭니다. p21에는 <통섭>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도 인용됩니다. 


확실히 인류는 2차 대전 이후 분수에 넘게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1970년대 미국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고생했는데 이 같은 달러 과잉은 1960년대까지 미국 정부가 금 태환을 계속 실시했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해외로부터 작정하고 달러로 금을 교환하는 공급이 이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미국 시민들의 과소비(부채에 기반한)가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이제 미국은 달러 증발에 신중할 뿐 아니라(최근 같은 코로나 시국은 예외), 금 태환이 중지되었으니 외국에 푼 달러가 이상 유입되는 경우는 드물어졌습니다. 미 정부도 대외 금융 스킬이 더욱 노련해진 거죠. 허나 이는 재정금융정책 면에서 그러하다는 것일뿐 실물에서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력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더 이상 가솔린 등 탄소 연료를 사용한 차를 만들 수 없게 되어가며 미국 자동차 업체도 (아무리 내수 시장이 크다고 하나) 이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면 거시경제를 선도하는 자동차업계의 성장부터가 벌써 둔화됩니다. 테슬라 등 새로운 전기차 섹터의 성장성은 아직 기대만큼 충분치는 않습니다. 


"자연이 문화속으로 흡수되고, 문화가 자연으로 흡수되는(p30)" 관점을 저자는 포스트휴머니즘 여러 진영의 주장으로부터 공통점으로 추출합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이란, 그 "포스트"라는 접두어에서 보듯 어느 정도는 휴머니즘을 극복 지양하는 사조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오로지 인간이, 인간만을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며 논증을 기초로 사고와 행동을 조정하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을 통해 응답을 모색(p31)"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즉 저자는 포스트휴머니즘보다 더 강력한 환경친화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족보를 하나하나 짚으며 그 철학적 근거부터를 공격하는데 이 부분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어떤 입장은 자연에 대해 "신 애니미즘적 의의"를 부여하며 유기체와 비유기체, 남성과 여성,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 등의 구분은 애초에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특히 현대 대중들에게 그 신선함으로 큰 지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부실한(?) 철학적 기초로부터 친 환경적 결론을 도출하는 건, 환경 오염과 생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호도, 오도한다는 점에서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마 이것이, 이런 진영들에서 오가는 논쟁에 익숙지 않은 독자 입장에서는 제법 큰 충격일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은 근본적으로 구분이 되는 영역, 존재들이며 이런 바른 전제로부터 환경 위기, 문명 위협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그 극복을 위한 올바른 대책이 나온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저 결론만 환경 보호만 외친다고 무조건 옳고 동료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뜻이죠. 


또한 저자는 전통적인 좌파 진영의 입장, 즉 각성한 노동계급이 모든 사회 변혁의 주체이며 원동력이라는 대전제도, 크게 변화한 현대 산업 구조에 비추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책 p47에서 인용되는 폴 메이슨의 "글로벌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 모든 사람이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언표를 들며 노동계급의 특권적 독점적 위치를 부정하는 한 논거로 씁니다. 마오와 소련 공산당 사이에 벌어졌던 "농민이 노동자와 함께 혁명의 동등한 주체가 될 수 있는지"의 논쟁도 약간 생각이 나고 그렇습니다. 


사실 토니 블레어 같은 사람은 등장 당시 "제3의 길"을 주장하며 책 p52에 나오는 대로 New Labour(신노동당)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는데 정말 오랜 동안 보수당이 장기 집권하던 터였으므로 이는 큰 기대를 부르는 변혁의 선구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는 앙마르슈라는 당을 새로 만들어 기존의 넌덜머리나는 좌우파 정당을 대체한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의 노선과도 닮았으나 그 역시 현재 많은 한계에 부딪히는 중입니다. 


과거에는 선정적인 모델을 앞세워 즐겁고 원색적인 소비의 즐거움을 내세우는 마케팅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소비 행태가 자연을 착취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피됩니다. 그런데 최근 한 세기 동안의 폭발적인 성장은 이런 인간의 본성에 의해 견인되었지만, 이제 이런 소비가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게 여겨진다면 성장의 동력은 무엇에 의해 마련될까요? 그 대안 중 하나가 "대안적 쾌락주의(p69)"입니다. 무엇이 즐겁다 아니다는 그리 여기는 인간의 마음가짐, 사고 체계, 가치관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면, 비건인들도 육류 섭취 거부를 통해 큰 인간적 자존감을 높이고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얻으며 더불어 육체적 건강, 날씬한 셰이프까지를 얻어내니 이게 마인드셋 개조를 통한 대안적 쾌감의 마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실천에 옮기기 힘든 행위를, 도덕적 의무감만으로 억지로 자기부정을 해 가며 행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것이 기뻐서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이 새로 생겼는데(p106) "위태하다"는 뜻의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자동화는 이미 1990년대부터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해 왔고 그보다 훨씬 전 1차 산업혁명 당시부터 공장 노동은 인간 자존을 낮추고 생산, 경제, 사회, 삶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켰습니다. 주당 노동시간의 과도한 부여는 단지 사용자 중심의 노동력 추출이라는 목적 외에도, 비인간적인 노동이 끼친 정신적 위축을 보상하기 위해 약탈적, 감각적, 쾌락지향적 소비를 부추기며 해당 산업을 필요이상으로 키우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노동자의 혹사와 자연 파괴는 서로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사람은 자유시간이 있어야 진정한 자기계발을 할 수 있으며 이 전제를 고도로 발전시킨 입장이 바로 대안적 쾌락주의입니다. 사람에 따라 무엇을 쾌락으로 삼느냐는 천차만별이며 사회의 대세를 이루는 쾌락 추구 방식을 어떤 이유로건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쾌락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를 이루는 게(저자의 분류에 따르자면) 기술 유토피아주의입니다. 특히 제레미 리프킨 같은 분은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로 인해 앞으로는 거의 모든 서비스와 재화의 한계생산비용이 0에 가까워지며 더 이상 희소성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반대로 풍요의 원칙이 지배하는 경제가 도래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회 일각의 경향성을 잘 반영했을 뿐 전면적 현실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입니다. 


저자는 대안적 쾌락주의를 특히 5장에서 자세히 설명하며 "그 특유의 상상력이 주는 효용과 즐거움"을 강조합니다. 어쩌면 이는 아주 부분적인 교차점을 갖기는 하나 아마존이 초기에 대박을 친 원인인 롱테일 마케팅과도 닮았습니다. 비주류 소비는 개개로 놓고 보면 아주 소수라서 종래의 오프라인 마케팅과 설비로는 이를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아마존은 이런 작고 작은 소비 수요를 모두 자신으로 끌어들여 큰 볼륨의 매출로 합산할 수 있었고 이것이 아마존을 세상에 널리 알린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종래의 주류(主流) 소비는 예컨대 패션을 따라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구매한다는 착각을 얻는 패턴이었습니다. 내일 생활비도 조달하기 어려우면서 빚을 내어서라도 명품을 사야 한다는 멍청한 부류가 이에 속하죠. 지역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생태환경을 지키는 소비(p168)를 하는 게 대안적 쾌락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나 "대안"인 만큼 그 양태는 이 외에도 여럿이 있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사상가인 프루동이 이 맥락에서 다시 소환됩니다. 또 저자는 p178에서 기독교의 구약에 나오는 착한 며느리 룻이나 19세기 낭만주의 시인 키츠도 인용합니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이상향을 묘사한다는 맥락에서입니다. 


사실 영국(잉글랜드)은 아일랜드를 오랜 시간 동안 정복과 교화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같은 섬나라지만 민족 구성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고 특히 아일랜드는 일본에게 큰 시련을 당한 우리 민족 입장에서 큰 공감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책 8장에서는 아일랜드 특유의 켈트적 문화, 영적 분위기 등 고유의 자연친화적 성격이 자세히 설명되는데 올해 팔순을 맞는 옥스퍼드 출신 노장 페미니스트 여성학자로서 사실 아일랜드 배경은 없는 분이 이처럼 큰 비중으로 아일랜드 예찬을 펴는 태도가 흥미롭게 보입니다. 


저자의 결론은 대안적 쾌락의 추구, (기술 만능주의를 경계하면서도) 네트워크 기술의 존중, (비과학적 범신론을 비판하면서도) 아일랜드식 문화에의 주의깊은 관찰, (포스트휴머니즘을 지양하면서도) 자연친화적 삶의 지향, (전통적 마르크시즘을 비판하면서도) 좌파 이념의 새로운 정립 등을 강조합니다. 허술히 지나칠 대목이 없는 꼼꼼한 이론서로서 읽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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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사용설명서 - 블록체인과 메타버스가 바꿀 거의 모든 돈의 미래 NFT 사용설명서
맷 포트나우.큐해리슨 테리 지음, 남경보 옮김, 이장우 감수 / 여의도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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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NFT는 프로그램 코드의 조각이다(p56)." 30년 전에 존 네그로폰테가 "디지털이다"를 발표했을 때 이미 우리 주변의 모든 아날로그는 디지털로의 변환을 예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non-fungible이라 하면 오히려 디지털의 가장 큰 약점을 지적하는 테마였는데, 디지털은 단시간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걸 핵심 본성(때에 따라 장점이기도 한)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쯤 영화 등 저작물의 불법 유통이 일상처럼 이뤄지던 걸 떠올리면 더 실감이 나겠습니다. 그런데 역시 7~8년 전쯤,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이 이른바 "비잔티움 장군의 문제" 해결이라는 수학적 근거에 뒷받침되어 디지털의 저런 약점을 보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아날로그에서 원품과 복제품의 결정적인 분별이 (인간의 오감으로는) 불가능한 걸 디지털이 이를 대체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물론 디지털은 필요에 따라 여전히 뛰어난 복제품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흔히 채굴이라고 부르는 작업은 원본의 진정성 확인 과정입니다. 비트코인이 처음 나왔을 때 이것이 원본의 가짜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지가 모두의 관심사였습니다. 누군가가 보유한 돈을, 다른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똑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돈은 휴짓조각이 될 수 있습니다. 초강대국의 법화(legal tender)에 대해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일개인이 만든 디지털 화폐(따라서 화폐라 할 수도 없는)라면... 그래서 이 과정을 불특정 다수가 검산하고 복제가 아님을 증명하며 그 계산의 대가로 일정량의 화폐가 지급되며 이걸 편의상 채굴이라 부릅니다. 처음에는 채굴이 전기요금도 보전 못한다고 비웃었으나 비트코인 자체의 가치가 오름에 따라 공장까지 차려놓고 채굴하는 이들까지 생겼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무엇인가 가치 있는 걸 모으는 이들(p34)이 반드시 있는데 본인들의 주관적 만족, 재미를 위해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고 거래에서 차익을 얻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미술품도 그렇고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무엇이 원본인지를 어떻게 증명하느냐인데 지금까지는 사실상 확실한 방법이 없었습니다(p85). 이른바 프로비넌스(p98)라 해서 믿을 만한 출처에서 구입하여 그 증명서를 받거나 일류 감정가들의 확인을 얻는 정도였는데 이 역시 그저 명망이나 위신 등에 기대는 거지 어떤 확실한 수단이 아닙니다. 어느 미스테리 소설에서는 시 의회가 소집되어 진품 다수 의결로 증명을 대신했는데 이런 건 증명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는 희망사항에 지역 유지들이 보증을 서 준 것에 불과할 뿐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이 비로소 진정성 확인에 어떤 확실한 방법을 제공한 것입니다. 그 원리는 특정 비트코인 화폐가 가짜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방법과 비슷합니다. 


야구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에서는 특정 야구 선수를 기념한 카드 같은 것이 희소성 여부에 따라 거액에 거래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가격이 너무 올랐다 싶으면 위조품 문제가 반드시 등장합니다. 이 문제도 이제는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합니다. 한국도 과거 과자나 식품 포장 안에 저런 야구카드가 끼워져 팔리기도 했으나 제품이 오래지 않아 단종되고 유저들 사이에 인기가 없어 미국 같은 수집 아이템의 위상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타지마할도 얼마 전 오염과 자연마모 등으로 대대적인 정비를 맞는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나 우리 나라의 각종 문화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명화는 변색 때문에 일본 업체에 보수를 맡겼다가 대중이 알던 모습과 너무도 달라지는 바람에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제 NFT가 일반화하면 세월의 장난으로 훽손된다거나 하는 일은 적어도 없습니다. 


위대한 아날로그 본품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는 특히 디지털 아트에 대한 언급이 아주 자주 나오는데(p157 이하 등. 특히 chapter 4는 메인 토픽이 디지털 아트입니다) 이미 예술은 미켈란젤로나 루벤스의 작품처럼 위대한 최초 기술이 들어간 공예품이 아니라 "아이디어, 컨셉"으로 바뀐지 오래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건 과연 뛰어난 가치를 지닌 것인지 일종의 사기인지 구별이 안 되지만 외모 장점 하나로 아티스트의 흉내를 내며 대중의 호응을 돈으로 바꿔 먹고사는 연예인들과 그 소속사라고 해서 다를 게 없습니다. 여튼 (부유하고) 젊은 세대 중심으로 디지털 아트는 큰 호응을 얻기 시작하며 이 역시 새로운 시대의 대세가 될 듯합니다. 마르셀 뒤샹이나 앤디 워홀 등도 처음에는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컴공 졸업자만 코딩을 하는 게 아니고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누구나 코딩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블록체인에서 민팅 역시 누구나 할 수 있고 어쩌면 자신만의 디지털 아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 6장은 민팅하기, 7장은 그것을 판매하는 방법입니다. 어쩌면 이 책을 고른 많은 독자들이 가장 관심있어 할 분야이겠습니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게 가장 간단한 포맷으로 가르칩니다. 누군가는 "총이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고 했는데 개개인의 힘과 운동 신경과 순발력 같은 게 대량으로 총포가 공급되고 물량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판도에서는 큰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제 특별한 손재주, 붓을 잘 놀리고 칼로 돌이나 석고를 잘 다듬는 능력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도구 덕분에 큰 의미가 없어지는 걸까요? 혹은 IQ 같은 것도 인공지능이 유용한 도구 노릇을 하니 둔재도 컴퓨터의 도움으로 천재 흉내를 낼 수 있다거나 말입니다. 


문제는 구매인데, 현재 자신만의 수집품을 갖는 이들은 돈 많은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디지털 아트 컬렉션은 그런 재력보다는 안목 뛰어난 이들이 저가에 미리 될성부를 떡잎을 알아보아 선취매를 한 후 이를 비싼 가격에 되파는 이들이 승자의 전유물로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말하자면 주식 투자와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려면 NFT 마켓플레이스의 특징과 구조를 먼저 (이 책 9장 같은 내용을 읽고) 잘 공부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10장에서는 특히 NFT의 미래를 메타버스와 연결하여 설명하는데 어쩌면 메타버스에서 NFT 같은 핵심 기술 요소 없이 무엇을 논하는 자체가 무리일 수 있습니다. 책의 논의가 매우 상상력이 풍부하며 독자에게 먼 시야를 갖도록 돕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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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BS 공인중개사 기본서 1차 부동산학개론 2022 EBS 공인중개사 기본서
이종호 지음 / 랜드하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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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다. 여러 번 반복학습하자.(p2)" 생각보다 부동산학개론은 난이도가 높으며,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이를 처음 준비하는 사람은 1차 과목인 이 학개론에서부터 좌절하기 일쑤입니다. 본디 4년 동안 정식으로 전공해야 이해가 가능한 걸 시험 통과 목적으로 속성 학습하는 게 쉬울 리가 없습니다. 이 책의 편저자는 여러 번 반복학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할 것을 권하네요. EBS에서 연계된 강의를 제공하기 때문에 캐이블 채널이나 IPTV 검색을 통해 방송 일정과 함께 공부를 진행할 필요가 았겠습니다. 혹은, www.landhana.co.kr에서도 수강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본서이다 보니 총론, 경제론, 시장론, 정책, 투자론, 금융론, 개발/관리/마케팅론, 감정평가론 등 모든 이론 분야를 꼼꼼하게 설명합니다. p2에서는 경제, 투자, 정책, 감정평가론 등 네 분야에서 최근 출제 빈도가 높다고도 알려 줍니다. 이론 위주의 책이지만 수험서이니 만큼 실전 문제에서 어떻게 출제가 되는지도 수험생에게 "맛뵈기"로 알려 줍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기본 예제"들이 매 단원 끝마다 나오는데 모두 기출 문제들이기도 합니다. 문제마다 몇 회차 기출이었는지가 표시됩니다. 빈출대표지문 OX 체크도 실려 있습니다. 


p32를 보면 토지정착물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제목 옆에 25회, 29회 출제 이력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중요도라든가 최근으로 올수록 빈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감 잡을 수 있습니다. 머리말에서는 "수험서다 보니 너무 자세할 수는 없고 수험용에 맞도록 편집했다"고 하지만 초심자가 보기에도 충분히 자세합니다. EBS 강의까지 있으니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임차인 정착물은 동산으로 간주되는 게 원칙이다."라는 지문 옆에 [기출]이라고 표시가 되었네요(p34). 임차인 소유가 아닌 것은 부동산에 부착되어 하나가 되므로 부동산 소유주에게 귀속되는 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겠습니다. 


나지(裸地)에 대해 "공법상 제약은 있지만 사법상 제약은 없다"는 말이 제목 옆에서부터 나오는데 이런 말은 타 교재에서는 본문에서 설명하는데 이 책은 제목 옆에 바로 뽑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출제 연도도 나오는데 이처럼 이 책은 기본서인데도 오로지 수험 참조만을 염두에 두고 편집되었다는 점 확인 가능하네요. 연도가 이처럼 본문 설명에 하나하나 붙어 있는 건, 저 개인적으로는 타 교재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강약을 조절해 가며, 혹은 출제 빈도가 높은 항목에 대해 주의를 더 집중하며 공부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2부 경제론에 들어가면 타 교재(기본서 기준)에서 비교적 간략히 짚고 넘어가는 대목, 예를 들어 보완재(혹은 대체재)의 가격이 상승(혹은 하락)하면?이란 질문에 일일이 네 가지 경우 답을 다 달고 있습니다. 만약에 어느 정도 내용이 익숙한 수험생이라면 이런 서술이 번거롭게 느껴질 겁니다. 그러나 여태 "아니 그래서 결론이 뭐란 거임?" 같은 헷갈림에 시달려 왔던 초심자에게는 이런 직관적인 서술이 아마 막힌 데를 뻥 뚫어 주는 것 같아 속이 시원해졌을 겁니다. 제 생각으로, 이 책은 처음 시험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기초서와 기본서를 겸하는 성격 같습니다. 


그럼 재시 이상의 수험생은 어떻게 할까? 이 책 앞표지 다음에 보면 자사에서 나온 공인중개사 시리즈 광고가 있는데, 거기 보면 "재도전 전용 교재"라는 게 있습니다. 그 책은 아직 제가 보지 못해 알 수 없긴 하지만 아마 이 책이 좀 번거롭다 싶은 사람들에게는 더 적합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재시가 아니라도 애초에 이쪽 내용에 밝은 분들 역시 그 시리즈에 한번 눈길을 돌려 볼 만합니다. 


사실 초보자에게는 p91의 문제처럼 방정식(P와 Q의 이원일차[혹은 이차]방정식)뿐 아니라 그래프도 어렵습니다. p91을 보면 여러 상황에 따른 그래프가 많이 나와 있는데 수학적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이처럼 변수의 움직임과 전체 그래프의 움직임이 어떻게 따라가는지 이런 걸 봐야 비로소 감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117 이하에는 기출문제들이 나오는데 양이 좀 많습니다. 아무래도 경제론 관련 해서 이렇게 나온다는 어떤 감을 처음 시도하는 수험생에게 이 정도로 문제를 제시해 주는 게 맞긴 할 듯합니다. 경제론 관련은 출제 유형도 다양하니 여기서 문제 수를 더 줄일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해답은 별권 처리되지는 않고, 각 문제의 끝에 해설과 함께 달려 있으니 그 부분도 조금은 주의해야 합니다. 


부동산시장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당효율적 시장, 하향 여과 같은 게 타 교재에 비해 설명이 자세합니다. 교재의 형식적 아름다움(?)만 살리자면 필요 최소한의 서술만 하고 최대한 토픽을 많이 다루는 게 보통이나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고 수험생의 현실적인 필요를 더 중시한 것입니다. p180에 보면 정보의 현실가치에 대한 기출문제가 나오는데 해설에 보면 이 문제와 연관 있는 다른 토픽도 설명해 줍니다. 이처럼 본문에서 혹 설명이 빠진 부분이라 해도 문제 해설에서 언급을 해 주므로 이리저리 해서 결국은 빠진 내용이 없게 됩니다. 


요즘 들어 부쩍 출제 빈도가 높아진 정책론 파트를 보면 "시장 실패"는 앞 2부 경제론에도 나온 토픽인데 여기 4부에서도 또 나옵니다. 내용은 같지만 맥락에서 강조하는 포인트가 각각 다르므로 두 번 나올 만합니다. "주택 바우처 제도" 같은 건 같이 설명된 다른 토픽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지지만 경향성으로 보아 앞으로 나올 만하므로 별개로 박스를 쳐서, 타 교재들에 비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양가 규제와 자율화(p269)"는 요즘 부쩍 출제 빈도가 높아진 항목입니다. 이 교재는 확실히 출제 빈도에 대해, 본문 학습 중 직관적으로 또 저절로 바로 눈에 들어오게 만든 게 좋습니다. p271의 선분양제도와 후분양에 대한 비교 설명도 좋습니다. 요즘 토지공개념이 정계 일각으로부터 강조되던데(정작 본격 대선 국면에 들어가니까 두 후보 모두 이야기를 안 하네요) p277에 보면 헨리 조지의 토지단일세론이 나옵니다. 최근은 아니지만 22회, 24회에 출제된 적도 있고 무엇보다 비교적 최근에 정계에서 언급이 되었으므로 출제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고 이 교재에서 적절히 잘 짚은 듯도 합니다. 


확실히, 이 교재는 여태 출제가 안 되었으나 앞으로 가능성이 높은 주제를 "보충학습"이란 타이틀로 정리를 잘합니다. p303을 보면 "인플레이션 헤지"라는 개념이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헤지는 주로 유가증권이나 선물 투자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부동산으로 헤지 대상을 삼는다는 겁니다. 포트폴리오 이론 중 CAPM 같은 것은 현대에 들어 많이 극복되었다고는 하나 시험 출제는 여전히 되는 편이므로 알아 둬야 하겠습니다. 또 투자론의 기본적 얼개를 여기서보다 더 잘 알 수는 없기도 하죠. pp. 341~342를 보면 영업 현금흐름에 대한 표가 잘 나오는데 보기가 좋고 이해하기 편합니다. 


바로 출제되기에는 난이도가 낮지만 초심자가 텍스트만 보고 이해가 어려운 항목은 문제로 바꿔 주는 게 이해하기 좋습니다. p395에 보면 인플레와 명목금리, 실질금리 관계를 문제 하나로 잘 이해되게 돕네요. p402에도 각 상환방식에서 어떻게 그 부담이 줄어드는지 그래프로 잘 보여 줍니다. 이런 그래프는 그 자체로 출제 가능성도 있을 뿐더러 본문을 더 쉽게 이해하게 돕습니다. 이 학개론에서 조문 문제는 안 나오지 싶지만 혹시 모르니까 p434 이하에 "부동산투자회사법" 일부가 발췌되었습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8부 감정평가론에서 p552에 감정평가규칙 원문이 실린 것도 성격이 비슷합니다. 


한계지의 성격, 도시회춘 현상 등(p458)도 아직까지는 출제가 안 되었습니다만 혹시 모를 일입니다. p461에 보면 부동산개발의 7단계가 나오는데 의외로 설명이 자세합니다. 한 페이지 넘겨 보면 기출 연도는 안 밝히자만 어떤 걸 물었는지 좀 더 풀어서 설명합니다. p488에 나오는 관리방식의 장단점 비교도 한눈에 잘 들어와서 좋습니다. 


감정평가론에서 가치제원칙은 내용이 평이하다 보니 대강 하고 넘어가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런 토픽도 다른 교재에서 잘 안 짚는 점을 강조해 주더군요. 이거는 강사마다 미래 (출제) 예측이 다르기 때문이며. 평소 보던 책과 다른 책을 보면 확실히 이런 게 눈에 잘 띄어서 유익합니다. p531에 나오는 표 같은 게, 이 교재의 특징이 뭔지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p584에 환원이율산정법 설명 같은 것도 수험생의 평균적인 눈높이에 맞춘 서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핸드북 같은 건 이 책에 (부록으로) 없고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별개의 교재를 구입해야 하겠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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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할까말까할까말까영상
임솔이 지음 / 빈빈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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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꿈과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그렇죠.


이 책의 제목은 "계속할까말까할까말까영상"입니다. "할까말까"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들어갔습니다. 컨텐츠 제작 분야뿐 아니라 어디라도 마찬가지여서 과연 여기가 내 뼈를 묻을, 아니 내 소중한 청춘을 바쳐야 할 곳이 맞을지 확신이 서는 곳이 없습니다. 할까말까, 할까말까. 두 번도 부족하고, 아무리 (첵 제목이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이라지만) 두 번은 더 써야 그 마음이 표현될 듯합니다. 


"얼마나 예전인가 하면 화면 비율이 4:3이다.(p10)" 요즘도 어쩌다 예전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채널에선 이른바 필러박스로 화면을 처리하고 4:3으로 송출합니다. 대개는 화질도 덩달아 구립니다. 그래도 그런 컨텐츠에서조차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게 있는데 출연진과 (보이지 않는) 제작진의 열정입니다. 오히려 때깔 좋은 요즘 방송보다 그때 작품들이 더합니다. 그때도 어려운 여건에서 "내일은 태양"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던 영상 노동자, 내일의 감독들이 땀흘려 저 작품의 완성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을 터입니다. 


"일종의 덕통사고였던 걸까? 화면에 담긴 모든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p12)" 젊은 시절은 그래서 문제입니다. 사실 저는 어떤 젊은이들에게도, 이런 콩깍지가 씌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이게 콩깍지인 줄을 모릅니다. 이게 일종의 착시나 과잉열정인 줄 알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고 나의 열정과 인생 지표 같은 건 벌써 무엇에 저당이 잡힌 상태이며 빠져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내 열정이 순수하기에 아무 후회는 없습니다. 없어야 마땅하고 말입니다. 


지상파 세 곳, 경향신문, 뉴스타파, 한국일보, CJ E&M 등을 지원한 1992년생(p18, p13)인 저자는 원서 접수, 서류전형, 필기시험 등을 치며 이 시대 한국의 취업 시장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를 실감합니다. 이렇게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그들은 교내 언시(=언론고시) 스터디, 저널리즘 스쿨, 문센 강좌 등을 다 거치고 고작 한두 명을 뽑는 결과를 확인한 후 씁쓸히 발길을 돌릴 뿐입니다. 수백 명이 몰렸는데 고작 한두 명의 합격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좌절이라니! 인적성 시험에 떨어진 후에는 "도대체 이 몇 쪽의 시험지가 내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날 떨어뜨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후 저자가 조직 생활을 오래하지 않고 도중에 그만둔 걸 볼 때 "어느 정도 정확"했다며 스스로 고백하는 대목입니다. 그렇기야 하겠습니까만 이처럼 자기 객관화, 반성 과정을 거치는 정신에게 무슨 발전이 있어도 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어르신들은 한 직장에 진득하니 오래 버티는 이들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자녀(p54)든 남의 자녀든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직업 자체가 한 가지를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풍토이기도 합니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에서 이끼는 이제 부정적인 뜻으로 새겨지기 시작하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이직을 십수차례 하며 연봉도 더 높여 가고 캐라어도 멋지게 꾸립니다. 프리랜서 기간은 나쁘게 말하면 그냥 백수입니다만 저자의 말대로 사회의 다양한 면을 겪고 나의 능력 역시 다방면으로 계발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내게 어떤 기회, 어떤 업무가 할당될지 아예 알 수가 없습니다. 사회가 이런 식으로 가면 아예 정규직이라는 게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저런 일을 순발력, 융통성 있게 잘하는 인재만 살아남을 수 있죠. 또 정규직이란 혜택이 공짜가 아니라서 특정 조직의 업무에만 사람 능력이 갇히는 면이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계발)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멀티플레이어는 1을 쥐어주고 10을 뽑아내야 하는 후려침(p64)을 언제까지 당해야 하는가. 사실 이건 영상업계뿐 아니라 어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을의 입장에서 이건 어느 정도 숙명입니다. 물론 도가 지나치면 저항을 해야 합니다만 한계가 있죠. 그런데 저는 이 역시 아예 능력도 적성도 없는 처지라면 한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는 건데 그래도 능력이 있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무리 비정한 조직이라고 하나 현장에서 남다른 열정, 재능으로 기여를 한 사람에게 보상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자신들도 젊었을 때 다 같은 모습이었을 텐데. 독자인 저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조연출이 그렇게 귀하다면서도 정규적으로는 결코, 네버, 채용하지 않아요(p68)." 이런 이야기는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고 들었는데 21세기인 지금도 해결이 안 된다는 게 참... "스스로 몸값을 낮추지 마세요. 재능거래 플랫폼의 저가 경쟁이 정말 싫어요. 과몰입을 경계하세요. 제작진이 아닌 출연자가 되세요." 과몰입(p109)과 열정 사이의 경계는 습자지보다 얇습니다. 나의 열정은 순수하고 정직한데 현실은 그걸 고작 어리석은 과몰입 정도로 후려치는 거죠. 보상받지 못한 열정은 그게 바로 "후회되는 과몰입"이 되는 겁니다. 출연자는 그저 프론트맨, 광대에 불과하고 본질의 창조는 온전히 제작진의 크레딧인데 현실에서의 분배는 정반대로 갑니다. 정말 문제입니다. 


저자는 세 가지 수확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 세계의 확장, 둘째 두번째 인격, 세번째 사람들(나의 친구들). 이중에는 다소 냉소적, 반어적 표현도 있지만 사람, 사람이 자산으로 남았다는 말은 사실 저자뿐 아니라 어느 영역 누구에게도 진실입니다. 사람이 안 남고 돈만 남게 산다는 이도 있지만 결국 그런 경우는 돈도 사람도 다 달아나는 결과를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라도 남았다면 그 사람은 잘 산 것입니다. 미래도 아마 밝을 것이입니다. 저자는 이 책 여러 군데(p88, p10 등)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준 직종 선배, 은인들을 거론하는데 이러면 벌써 된 겁니다. 이제 서른 살이신데 잘 하고 계신 거죠. 


영상 제작이라고 하면 기술적인 측면을 먼저 떠올립니다. 잘은 몰라도 TV에서 언뜻 스쳐지나가는 그 비싼 기계만 봐도 기가 죽고 저걸 어떻게 다 잘 다뤄야 진짜 피디가 되나 싶지만 저자는 반대로 말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촬영 편집은 전문가가 다 따로 있기에 저자는 그간 받아온 실습 수강 시간이 다 후회된다고 합니다. 그럴 시간에 책을 더 읽고 사회와 세계에 대한 안목을 더 키울 건데 하는 생각이 든다(p113)고 합니다. 젏은 지망생들이 새겨 둘 필요가 있는 충고입니다. 


이 책의 제목을 잘 읽어 보면 "계속"과 "영상" 부분만 하얀색입니다. "할까말까"에서 마음이 어두워지더라도, 나(청년을 대표하는 이 책 저자)의 꿈인 "영상"과 "계속"에서는 표정이 밝아집니다. 미국 속언에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게 있습니다. 청년의 꿈도 계속, 계속, 계속되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책 제목에 대한 저자의 authentic한 해제는 pp. 102~103애 따로 나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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