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에서 한양까지 2 - 권력투쟁으로 본 조선 탄생기 개경에서 한양까지 2
이승한 지음 / 푸른역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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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저자의 다른 책들에 대해서는 여태 23기 33주차, 또 22기 36주차에 리뷰한 적 있습니다. 이 책은 고려 말과 조선 초를 다룹니다. 


조민수는 본디 명 정벌군을 편성함에 있어 이성계보다 상위 권한을 지닌 지휘관이었으나 이성계에 설득되어 위화도에서 함께 회군합니다. 이후 그는 이성계 측에 의해 실각하고 숙청되었는데 만약 위화도에서 그가 다른 스탠스를 취했더라면 군사정변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으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권력과 정쟁의 무정함, 무상함을 새삼 한탄하게 됩니다. 또 이는 이성계와 그 일파의 계획이 의외로 치밀히 준비되었겠음도 짐작게 하는 사실입니다. 


신종의 먼 후손인 공양왕은 폐가 입진의 명목으로 우왕 창왕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릅니다. 드라마 <태종 OOO>을 보면 이 군주가 생각 외로 만만치 않은 행보를 보였다고 묘사되나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망국 군주로서 고조선의 우거왕, 고구려의 보장왕, 백제의 의자왕, 신라의 경순왕 등과 함께 기억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공양왕은 간성왕이라고도 불렸는데 강원도 간성에 유배되었던 사실 때문입니다. 간성은 현재 강원도 고성군과 대략 일치합니다. 강원도, 그것도 영동 지방이라고 하면 교통도 불편한 오지라고만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한국사의 결정적 고비마다 그 나름 중요한 기능을 행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고성군의 북쪽에는 김화현이 자리하는데 이곳은 나말 여초에 금성이라 불렸고 한자로는 신라의 수도 금성과 표기가 같습니다. 즉 나말에는 한글로 금성이라 적힐 수 있는(아직 한글 창제는 안 되었으나) 지명이 세 곳이 있었던 셈입니다. 나머지 한 곳은 현 전남 나주인 금성으로서 이 한자 표기는 비단 금(錦)입니다. 이 역시 고려 태조가 둘째 부인을 위해 특별히 지어 주었다고도 하죠. 


저자는 공양왕의 경우 왜 양위가 아닌 폐위를 택했을까 하는 의문을 특별히 제기합니다. 위나라를 건국한 조비는 구태여 선양의 "쇼"를 벌였고 이후 중국 남북조 여러 나라들도 찬탈시 비슷한 절차를 거쳤습니다. 한국은 비교적 왕조의 교체가 드문 편이었는데 신라 폐조의 경우에는 귀부의 형식을 취했죠. 왕조의 위신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시점에서 비로소 나라의 문을 닫은 경향이 있으며 이 때문에 과도한 명분 갖추기가 덜 필요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건, 여러 재해가 발생하자 민심을 일단 추스리기 위해 개경으로 도로 천도했던 방원은 이후 마음을 다잡고 다시 계획 도시인 한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한양은 야심가인 삼봉 정도전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도읍이므로 방원의 재천도는 상당한 결심이 필요했겠다는 독자로서의 짐작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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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인공지능 수업
김진우 지음 / 메이트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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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이제 산업 부문 불문하고 전방위적으로 쓰이는 유력한 도구가 될 전망입니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에게 의존할 수도 있지만 평범한 우리들도 마치 30년 전 사회가 PC 활용법을 막 배워 나갔듯이 이제 인공지능의 원리에 대해 기초적인 건 좀 알아야 앞으로 생존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p49에는 인류 문명이 어떤 단계를 밟아 오며 지금에 이르렀는지 간단한 도식화로 보여 줍니다. 이 책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와 함께 "지능화 사회"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현재도 단순 반복 업무는 컴퓨터가 대신하고 있고, 영화관이나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버스터미널, 기차역에 가도 일부 서비스를 키오스크가 수행하듯이 인간의 섬세한 판단이 개입할 필요 없는 일들은 이런 지능화한 장치가 더 높은 효율을 뽐내며 인간을 대체 중입니다. 


이와 더불어 모바일 혁명이 일어남에 따라 연결성이라는 편의가 획기적으로 증진되었고 일일이 개인이 비싼 장비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 "공유"를 통해 그 기능성만, 자신의 필요에 맞게 흡수할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이런 편의를 누리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이렇게 변화한 사회에서 자신의 기여 방법을 잘 찾아 안정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을 찾으려면 우리들부터가 인공 지능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합니다. 


인간의 지능은 신비로운 영역입니다.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당연하다는 듯 우리의 지능을 발휘하며 일상 혹은 직무상의 과제를 해결하며 살고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우리 두뇌가 작동하는지 일일이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p70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간단히 도해한 다이어그램이 있는데, 알고 보면 PC라든가 인공지능도 이런 인간의 지능, 두뇌 작동 방법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CPU는 연산을 행하고, 램은 단기기억을 맡아하고, 하드디스크(혹은 SSD)는 다양한 자료를 저장하고... 


사물의 모든 인과관계를 우리가 다 경험하고 나서야 아는 게 아닙니다. 어떤 건 추론과 상식을 통해 유추하고, 짐작하고, 논증하여 미래를 예측합니다. 인공지능도 모델이라는 걸 다양한 학습을 통해 만들어 내고 그를 통해 결론을 뽑아냅니다. 이 결과가 인간이 의식적으로 집중하여 도출한 것보다 더 정확할 수 있기에 이런 AI들이 서서히 사람을 대체해 나가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인공지능에도 "자아의식"이라는 게 논의되고 있다고 하는데 사람을 돕는 보조 도구 노릇만 잘하면 충분하지(아직 이 정도도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추상적이고 한참 멀리 떨어진 과제까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허나 사람의 경우 요즘 이른바 메타인지가 핫이슈이듯 기계와 차별화될 수 있는 포인트를 이 같은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컴퓨터가 최초로 발명되고 나서 기계어라는 게 연산의 빠른 수행을 알고리즘적으로 완성하는 핵심적 노릇을 했습니다. 그래픽 UI가 개발된 후에야 일반 유저들이 기계어나 컴퓨터 언어 학습 없이 직관적으로 PC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 p136 이하에서는 자연어 처리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데 자연어는 문법, 포네틱스, 시맨틱스 등 다양한 이론으로 그 원리를 파고들지만 사실 이런 것만으로는 언어의 미묘한 성질을 구명하기에 미흡합니다.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AI에게 이런 걸 가르쳐 자연어를 무리 없이 습득하여 인간과 동등한 소통을 시킬지 사실은 까마득한 단계입니다. 여튼 연구는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는 중입니다.


책 p139에 IBM과 조지타운대의 협업으로 러시아어-영어 통역 시스템이 연구되었다고 나오는데 책에도 나오지만 결과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속담을 러시아어로 옮기고 다시 이를 영어로 옮겼더니 blind idiot라고 나왔다는 웃지 못할 실화가 유명하죠. 그러나 현대 들어서는 이른바 빅데이터로 불리는 것을 "말뭉치(corpora)"로 삼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니 향후 추이를 지켜 볼 일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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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리마스터판)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정세랑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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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의 기쁨과 만족을 아는 동물은 인간뿐일 것이다(p29)." 저자는 도시인으로서 사는 외로움을 토로하며, 아마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몸부림들 중 하나가 수집과 만남, 혹은 잘해주기 등으로 나타난다고 암시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어떤 욕구든 한 방향으로만 치달으면 해로울 수 있고, (적어도) 세련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미니멀 라이프의 가치를 말하며 뭘 모으든 적정선에서 멈추고, 친구나 지인한테 잘해주는 것도 적정선을 지키며 일정선을 넘었다 싶으면 반대 방향을 보는 게 필요하다고 독자에게 충고합니다.



"옷은 옷집 주인의 취향을 사는 일이다(p24). 우리 나이쯤 되면 체형, 선호하는 스타일, 취향 등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고민이 필요치 않다. " 나이 들어서 확실히 편한 점이기도 하겠거니와 새삼 뭐가 슬퍼지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저 문장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 분명히 와 닿지 않았으나 아마도 "옷을 사는 일이 옷만 사는 게 아니라 그 샵 주인의 취향을..."이란 뜻 같습니다. 그렇다면 옷을 사는 일은 곧 나와 통한다 싶은 가게 주인을 (몇) 알아 두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정 연령대 이상에게만 해당되겠는데, 이게 옷뿐 아니라 음식 등 다른 구매행위에도 두루 통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음식을 사 먹는 건 그곳의 요리사나 사장의 취향(입맛)을 사는 것과 같다"라든가. 참고로 저 위 문장은 저자께서 여성이라는 점 감안해야 더 정확히 이해됩니다. 속옷에 관한 지론(?)은 p86 이하에 잘 나옵니다.



"세상사 중 억지로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남녀상열지사다(p63)." 물론 이것 말고 뭘 억지로 밀어부쳐서 기어이 이루고 만 사람이라면 대단한 근성이거나 능력입니다. 반대로 뭘 억지로 추진 안 해도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사람끼리 절로 합이 맞아 달성되는 일도 있습니다.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자신의 능력치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일 때 이런저런 불필요한 수고나 미련 없이, 되는 일은 되는 일대로,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대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끝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되는 일은 그저 단념하면 그만인가. 그렇지는 않고 오히려 끝까지 노력하여 손에 넣되 쉽게 포기하지 말 일은 따로 있다고도 합니다. "4050 여성 사이에는 주반골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p109)." 주식, 반려동물, 골프를 각각 가리킨다고 하는데 저자는 이 키워드 뒤에 숨은 건 "돈과 여유"라고 합니다. 돈, 돈...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고 더 나이 들어서 곤란한 지경에 안 빠지려면 반드시 이 돈만은 손에 꽉 움켜쥘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해당 연령대가 되는 여성들이나 아직 젊어 별 걱정이 없을 여성들이 더 마음에 새길 만합니다.



이상형의 변천사... 남자들은 이게 자동차 선호(의 변화)와 함께 가고 여성들은 신발이라고 합니다.(p123) 제 주변에 아직 이 연배 분들이 안 계셔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듯도 보입니다. 여성들에게 신발이 긍그렇게 중요한 의미일까요? 좋은 예는 아니나 예전 어느 독재자의 배우자는 장에 신발이 3000켤레가 있었다고도 하죠. 여성들이 그렇게나 소중히 여기는 신발이 얼굴을 닿는 지면에 함부로 담배꽁초나 침, 혹은 반려동물의 배설물을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건 남자들이 더 조심해야 합니다(?).



요즘은 이혼이 큰 흠도 아니고 애초에 전혀 다른 배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끝까지 잘 맞기를 바란다는 게 어쩌면 사행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p138에서 쿨하게 자신의 이혼 스토리를 털어 놓습니다. "단연코 쉬운 이혼은 없으며 누구에게나 이는 아픔이다." 그러니 이혼 한 번 해 봐야 생의 쓴맛도 알고 더 성숙해진다고 말해도 너무 나간 소리는 아닙니다. 문득 저자의 약력을 다시 보고 싶어 앞날개로 돌아갔는데 <여성시대>, <지금은 라디오 시대>등 특정 방송국의 간판 프로그램 그 전성기에 활동하던 작가님입니다. 새삼 고개가 숙여지기도 하네요. 함께한 진행자들도 다들 쟁쟁한 셀럽들입니다.



반려동물만 있는 게 아니라 반려식물도 있습니다.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누가 그랬으나 이에 단호히 반대하는 의견도 있죠. 독자인 저도 혼자 칼라를 키우다 끝내 다 죽인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만 식물 잘 키우는 금손은 따로 있습니다. "용기(p173)"라는 표현도 보이는데 애착을 갖고 반려식물을 곁애 둬 본 분만이 쓸 수 있는 말이지 싶습니다.



"젊음은 좋고 늙음은 나쁘다." 이 말에 단호히 반기를 들 수 있는 나이와 경륜이 부럽습니다.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이 좋지, 억지로 당기고 희게 만든 부자연스런 얼굴이 과연 찬양의 대상이겠습니까. 요즘은 연예인들도 겉모습에 집착하지 않고 늙고 주름진 그대로, 염색 없이 TV에 나오는 듯도 합니다. 이게 나라며 당당하고 자존감 있게 타인을 대할 수 있는 마음가짐 앞에 우리 모두 자연스러운 존경, 경의를 보낼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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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문화탐방기 - 마을의 소년들
지현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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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만연한 폭력, 사회악 등을 줄이려면 아무래도 어린 시절부터 그 성원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소년들은 그 넘치는 혈기 탓에 말썽에 휘말리곤 하며, 사회의 관심과 계도가 더 필요한 신분, 위치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리터러시(literacy)는 우리말로 보통 "문해율(文解率)"이라 번역됩니다. 사람이 온전히 사회화가 이뤄지려면 글자를 알아야 올바른 정보를 습득할 수 있고 바람직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디지털 리터러시(p33)라는 게 따로 있어서 웹 공간에서 올바른 소통을 기하고 실수 없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도 따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특히 소년들은 분위기에 휩쓸려서, 혹은 일시적인 기분 탓에 웹상에서 큰 실수를 할 우려가 있습니다. 심각한 경우 거액의 배상금을 물거나 소년원에 갈 수도 있는데 언행의 심각성을 본인은 미처 모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물론 청소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마치 큰 정의나 실현하듯 좀스럽고 비겁한 처신을 하는 엉터리 위선자들이 문제이긴 하나 함정에 쉽사리 빠지지 않게 청소년을 잘 계도할 필요도 있습니다.



저희 때에도 아이들은 주로 골목에서 놀곤 하다가 취학 후에 비로소 제대로 놀거나 배울 공간이 마련되곤 했지만 여튼 골목(p42)은 처음으로 또래를 만나고 소통하며 사회화의 첫발을 디디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뭔가 크게 달라진 조건 하나가 있으니 바로 소셜 미디어입니다. 저자인 지현 선생님의 고민도 아마 이 지점에서 시작하는 듯합니다. 저자는 특히 1997년이라는 이른 시점부터 페미니스트 가수로 활동했다고 하니(이 책 앞날개), 소년들, 잘못 길들여지면 혐오와 차별의 주체로 오도될 가능성이 큰(저자의 눈에 그리 보이는) 소년들에게 각별히, 각별히 온라인에서의 바른 소통 방법을 교육할 동기를 가질 수바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스마트폰을 쥐는 순간부터 24시간 연결 가능 상태가 된다(p92)" 책에 나오듯이 이런 사정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어른들 역시 자신들이 주로 활동하는 오프라인 공간에서만 그간 국지적 제한적 연결 상태에 놓였지, 인터넷처럼 순식간에 전세계로까지 연결이 확대되는 체험은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죠. 미숙하고 덜 적응하기로는 아직은 모든 세대가 다 마찬가지이나 여튼 성인은 보편 규범에의 숙지가 더 광범위합니다. 청소년은 그렇지 못하기에 계도와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대안학교는 아마도 아직 이런저런 규칙이 완성되어 가는 도중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안학교가 일반학교보다 못하다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섣불리 결론 내릴 일은 전혀 아니죠. 일반 학교에서 규범으로 통하는 건 사실 모두의 동의를 채 받지 못했거나 아직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강요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p95에서 나윤이가 하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맞이하는 도전과 상황의 어려움은 사실 어른들이 겪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에 더 조심스럽고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합니다.



밴, 블락, 이 모든 게 앞선 세대에게는 낯선 영단어이나 청소년들이 주로 머무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일상처럼 접하는 용어(p105)입니다. 이곳 역시 엄연한 사회이며 "가상"이란 한정어를 붙일 필요도 거의 없는 절박한 현실이고 하루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발산되고 머무는 곳입니다. "그런 걸로 어그로 끌고 관심 받으려는 거죠.(p125)" 이런 행위에는 음란 동영상의 업로드도 간혹 포함되는데 이런 어두운 모습은 사실 못난 어른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 심어 둔 못된 싹으로부터 비롯했을 뿐입니다.



아이들은 출신 성분, 성별의 구별 없이 잘 어울릴까요? 그래야 마땅하지만 못난 어른들의 배려 부족으로 오히려 아이들 레벨에서 더 극심한 차별과 갈라치기, 혐오, 따돌림이 만연한 게 현실입니다. 상업 공간에서 여튼 아이들 나름대로 역할 놀이가 이뤄지는 걸 보며(p150) 자신들 때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게 잗가님 말입니다. 주식 하는 어른들이 하도 손절 손절 해 대니 아이들도 절교 대신에 이 말을 쓴다고 하며(p169) 한편으로 쓴웃음이 나기도 하나 본디 "절교"는 고도의 교양을 갖춘 문우 사이에서나 오가도 오가던 말이었으니 이제서야 언어 생활이 제자리를 찾나 싶기도 합니다.



"마을"이란 단어가 주는 정겨움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 "마을"이란 말을 뺏기고 살았습니다. 이기주의, 도시화, 경쟁 등에.... 아이들 때부터 이 말을 찾아주고 애들에게 올바른 심성을 심어 줄 때 마을도 동심도 이타주의도 사랑도 모두 누리에 귀향할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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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 - 상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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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속담에 "나도 살고 남도 살린다(Live and let live)"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나라 말에도 활인지불이라는 게 있어서 결정적인 상황에 척 나타나 궁지에 몰린 이들을 돕는 정의로운 존재를 칭송하는 어구로 삼기도 합니다. 신분제의 족쇄가 엄연하고 특히 천인으로 낙인 찍힌 이들에게는 사회 곳곳에서 숨통을 조이며 활로를 막는 전근대 사회였다고 해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어서 운명적인, 혹은 기묘한 우연이 끼어들어 귀한 목숨을 살리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통쾌하고 감동적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고귀한 행동은 꼭 영웅적인 결단 같은 게 아니라 해도, 그저 소소한 선의에서 비롯했다 쳐도 결과가 심대하며 아마 어디서건 어떤 방법으로건 그 의당한 보상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아니라면 그건 이미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대비원은 동서 두 곳이 있어서 고려 시대부터 급한 환자를 살리고 빈민을 돕는 기능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름도 부처님의 대자대비에서 유래했겠죠. 의료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을 살리는 필수적인 사회 직능인데도 이상하게 고려, 조선 시대에는 중인의 몫이었고 근세 유럽에서도 간호사는 천시되던 게 일반적이었다 하니 모순도 이만저만 모순이 아닙니다. 캐릭터 탄선(p39)은 명문가의 자제라고 나오지만 양홍달은 노비 출신의 어머니를 만나 태생부터 천인이었습니다. 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심지어 더 나은 숙련도와 기여를 하는데도 천대를 받아야 할까요? 부당한 게 당연히 여겨지니 그게 미개한 시대인 겁니다. 여튼 그들이 하는 일이 활인, 즉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에 그 기관은 활인원(p39)으로 불립니다.



재미있는 건, 뜻있는 이들(주로 유생)에게 천하의 패륜이자 역적질로 여겨졌던 이성계의 역성 혁명이, 탄선 같은 이들에게는 은둔과 두문의 계기가 되었으나, 반대로 양홍달 같은 이에게는 그나마 신분 이동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이는 호재였다는 사실입니다. 천인뿐 아니라 많은 빈농들에게도 권문 세가의 대거 몰락과 과전법 실시 등 전제 개혁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변화와 조치, 정책 전환이었습니다. 양홍달(과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방원의 총애를 얻어 역으로 권문세가의 반열에까지 올랐다는 건데 소설 속 사정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천한 신분을 말끔히 씻고 문자 그대로 팔자를 고친 이들이 많았습니다.



여흥 민씨는 조선 말뿐 아니라 고려 시대부터 명문가였고 심지어 신흥 무인 이성계 가문과 처음 혼사를 틀 때에도 여전히 많이 자측으로 무게가 기우는 대단한 벌열이었습니다. 노상직, 윤철중 등을 이방원의 장인이자 원경왕후의 부친인 민제가 가르쳤다고 나오는데(p90), 민제는 요즘 방영되는 KBS 사극 <태종...>에서 사위 이방원도 직접 가르치는 걸로 설정될 만큼 학식이 높은 이였습니다. 하필이면 이방원의 즉위 후 그 처가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이뤄지는 통에 (이미 죽은) 노상직 등에 대한 공초가 더욱 불리하게 진행됩니다. 제아무리 한때 세도가 등등하던 이들도 한번 권세로부터 끈이 떨어지면 이처럼 처량한 신세로 떨어지니 권력이란, 위세란, 이처럼이나 무상하고 무상합니다.



"의술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러나 중례는 소비로부터 받은 제안을 마치 화두처럼 숙고한 끝에 몸을 추스리고 공부를 향한 새로운 마음을 먹습니다(p100). 공부는 누구든지의 진로를 열어 줄 만큼 힘이 있는 옵션이며 본디 셋째여서 대통을 이을 가망이 없던 충녕대군도 <대학연의>를 파고드는 그 학구열과 재능 덕에 부왕에게 주목 받습니다(이 소설 속에서요). "그놈 참 귀도 밝다. 잔소리 말고 어서 활인원으로 가자!(p124)" 충녕은 노대에게 핀잔을 줍니다만 그 마음 속은 사뭇 다릅니다.



몸에 꼭 중병이 들어야 사람이 죽는 게 아니겠으며 이런저런 소소한 잡병이 하나 둘 들어서면 어느 순간부터 육신이 버텨내질 못합니다. 소철의 아내(p165)도 이런저런 압박, 스트레스, 시름으로 반쯤은 벌써 저세상에 발을 들여 놓았었으나 중례의 호침, 환약은 죽을 사람을 살립니다. 말 그대로 활인(活人)의 도(道)입니다.



"활인의 길을 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살인(殺人)의 길입니까?(p201)" 탄선의 일갈입니다. 실제로도 세종은 천인 장영실을 아끼는 등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죠. 세종(이 소설에서 내내 주상으로 호칭되는)은 어려서 그 부왕(즉 이방원)이 책상을 걷어차며 모후(원경왕후)의 이마에 상처를 입힌 일을 기억합니다. 소설에서는 이 세종이 배우자인 심 왕후와 함께 곡기를 끊는, 즉 단식투쟁을 벌이려 하는 걸로 나오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런 면이 있어야 인간미가 풍기죠.



"마의 따위가 뭘 안다고 함부로 침을 놓은 것이냐!(p243)" 이 질문에 대해선 앞으로 이어질 소설의 모든 뒷이야기에서 차차 답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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