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바른 비즈니스 영어 - 억대 연봉 글로벌 인재들의: MP3 음원 제공
Hyogo Okada 지음 / 베이직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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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손짓 발짓 섞어가며 문법에 맞지도 않은, 단어만 간신히 이어붙인 걸 영어랍시고 해도 상대방이 애써 이해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이 책 p5, 6에 나오는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나 딜로이트 같은 일류 조직에서 그런 식으로 소통을 시도하다간 어떤 결과를 맞는지 이 책 저자가 잘 알려 주고 있네요. "회화는 문제가 없었는데..."  사실 회화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본인이 그걸 몰랐고 상대방이 너그로운 마음으로 (참아 주고) 이해를 여태 해 줬다는 것뿐입니다. 


우리도 외국인들이 엉터리 한국말을 해도 다 너그러이 받아 주지 않습니까. 이런 게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에서는 전혀 안 통한다는 것뿐이며, 그런 자리에 가야 할 필요가 있는 이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영어를 구사할 필요가 있겠죠. 물론 본인이 탁월한 아이템을 갖추었다면 상대방을 이쪽 기준에 맞추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보다 차라리 고급 영어를 새로 배우는 편이 쉬울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경우"에는 이 책 p8에 (바람직하지 못한 예시로) 나오는 대로 Once more, please?라고 했다간 상대방의 표정이 안 좋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please 역시 결국에는 명령에 섞는 말이므로 이 경우 큰 효과를 못 내겠으나, 더 큰 문제는 Once more에 있을 듯합니다. 이건 명백히 명령투이니 말입니다. Sorry?도 사실 발화자의 표정이 나쁘면 무례하게 들리긴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첫째 활용 가능한 구문을 많이 알아 두고 사용할 것, 둘째 상대를 배려하고 정중히 대하는 표현을 주로 쓸 것을 우리 독자들에게 권유합니다. 우리말도 존대 표현이 그렇게나 발달한 게 결국은 처음 보는 상대, 혹은 공적인 일로 만나는 이들을 정중하게 대하려는 고려에서 비롯했겠죠. 저자가 강조하는 이 원칙들만 마음에 잘 새겨도 학습의 능률이 크게 오르고 실전에서도 효과릃 톡톡히 볼 듯합니다. 


우리말에만 경어 표현이 잘 발달되었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영어야말로 어휘 사용을 통해 세심하게 상황에 따른 표현을 하는 영어이므로 함부로 경우에 맞지도 않은 말을 쓰다가 큰코다치기 쉽습니다. 우리말은 어휘도 어휘이지만 문법이나 어미, 접사의 기능이 크지만 영어는 어휘의 뉘앙스가 그 구실을 다 대신하다시피하므로 네이티브라고 해도 자라온 환경이 나쁘면 이걸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인 기준으로 나는 이게 통하던데 이렇게 구는 게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고 생각하고 겸손하게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에조차 (한국 식으로)  우물쭈물하고 소극적으로 구는 건 또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 자신만 손해 볼 뿐이죠. 


"네이티브에게는 조금 과하다 싶은 표현도 외국인이 하면 잘 통하는 수가 있다.(p9)" 어떤 책 저자를 보면 "이런 튀는 표현을 써 봐야 '이 사람은 직업이 코미디언인가?' 같은 냉소적 반응이나 얻는다"고도 합니다. 저는 그 말에 반대하고, 실제로 이렇게 해 보고 주변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본 이 책 저자님처럼, 너무 판에 박힌 말만 할 게 아니라 긍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다채로운 표현(p47)을 쓰는 게 맞다고 봅니다. 설령 좀 과해도, 말하는 사람이 우리 외국인이니만치 너그럽게 봐 주지들 않을까요? 


"상대방이 뭔가를 묻는다면, 같은 질문을 나한테도 해 달라는 신호일 수 있다(p65)." 우리도 사실 이런 이치는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보면 친한 사람끼리는 별의별 소리를 다 하다 선을 넘고 싸우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하고는 아예 말을 안 하니 이게 잊기 쉬운 원칙이 아닐까 싶습니다. "Any great news?" 같은 표현은 상대에게 뭘 묻거나 할 때 꺼내기 좋은 말이라고 합니다. 이걸 딱딱하게 "Do you have some....?" 같은 딱딱하고 어색한, 번역기에 돌린 듯한 콩글리시보다 훨씬 좋을 것 같아요. 또 우리는 news라고 하면 TV나 신문에서 보는 아티클 같은 것만 생각하는데 훨씬 쓰는 범위가 넓습니다. 


"Could you clarify your...?" 이런 표현은 확실히, 우리가 이른바 "회화"니 "생활영어"니 하는 교재들에서는 드물게 배우는 표현입니다, 더 격식을 갖추자면 amplify도 쓸 수 있겠죠. 그러나 상황이 상황일 때에는 이런 말도 쓸 줄 알아야 하며, 이것이 이른바 1950년대 슈사인보이 잉글리시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겠지요. 예전에 제가 전철역에서 어느 젊은 여성분(모르는 사람)이 외국인과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여성분이 "The data is manipulated."라고 하자 상대방 원어민이 What?하고 흥분하여 대꾸하더군요. 이게 아마 그 여성분 직급에서 그리 단정하듯 말할 수 없는 성격이라고 (상급자인 듯한) 그분은 생각했었겠죠. 제 생각에는 "I think"나 "In my opinion"를 먼저 붙인 후 "compromised"나 "fixed" 같은 표현을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저도 구체적인 상황을 모르는 입장이긴 했지만... 


모른다고 했을 때 I don't know라고 하면 너무 잘라서 말하는 투라고 합니다(p209). not sure 같은 표현이 낫다고 하며, guess나 assume 등 조금이라도 뒤에 뭘 붙여서 설명할 수 있는 동사를 쓰라는 게 저자의 권유입니다. 물론 이것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정말로 모르겠거든 I don't have the slightest idea 같이 분명히 나의 무지를 상대에게 밝혀 줘야겠죠. 중요한 건 내 의사나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려는 노력이겠습니다. 


저도 의외로 참 자주 만나는 표현이, authorize라는 동사였습니다. 이 책 p238에서 이야기하듯, I'm not authorized to 동사원형이라고 하면 "저는 그렇게 할 권한이 없습니다."라는 뜻이 되죠. 물론 나뿐 아니라 상대를 책망할 때도 이걸 쓸 수 있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를 합니까?" 같은... 이게 예의는 없지만 상항이 이 정도까지 가면 예의를 고려할 환경 자체가 아니겠죠. 그리고 p266에도 나오지만 영어권에서는 직장의 상급자나 아이의 부모가 "I am proud of you."라는 표현을 상황에 따라 참 적절히 씁니다. 책에선 이게 최고의 칭찬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책에선 하급자도 상급자에게 쓸 수 있다고 하는데 뜻을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죠. p286에 나오듯 let, have, get, make 등이 미묘하게 다르므로 잘 모르겠거든 have를 쓰라고 합니다. 


영어 역시 어떤 기계처럼 내 의견을 전달해 주는 장치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담긴 언어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만 제대로 갖추어도 큰 실수는 면하겠습니다. 또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결국 영어는 어휘력에 달려 있으므로 꾸준히 익히는 게 첫째 방법이며 구문을 잘 익혀 쉴새없이 응용하고 발휘해 보는 게 최고라는 점이었습니다. 구문이 다양해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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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1-23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 복지국가 스웨덴은 왜 실패하고 있는가
박지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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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여러 나라들의 놀라운 복지 수준은 그간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개발 독재 시대에는 한국도 어서 노력해서 저런 공동체의 본을 받아야 한다고들 했다고 하죠. 그런데 그 실상을 알고 보면, 반드시 훌륭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런 유형의 사회로 전면 이행한다고 할 때 한국인들의 전폭적 동의가 과연 가능할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많은 숙고와 토의가 뒤따라야 할 그런 이슈 같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올바른 근로 윤리를 지닌 이들조차 시간이 흘러 고복지 체계에 익숙해지면 도덕적 해이에 바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p56)." 도덕적 해이도 물론 문제이겠거니와, 사람의 능력은 그것을 계발하고자 하는 절박한 의지가 있을 때 제 모습을 (힘들게) 찾곤 합니다. 오히려 여유가 있을 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적성이 잘 다듬어진다는 반론도 가능하나, 사람은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일도 그저 부러운 마음이나 허영심, 잘못된 자아상, 착각 등 때문에 시도하다 결국 실패하곤 하는데 이런 비용도 사회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면 그것도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감독, 뮤지션, 프로야구 1군 선수 등은 대한민국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정도는 되어 보고 싶어하는데 과연 이런 일을 직업으로 해낼 만한 자질을 타고나는 이들이 오천만 중 몇이나 될까요. 2군에서 고생고생하는 이들도 청소년기에 다 천재 소리를 들었으나 성인이 되어 정규 리그에 올라오면(그 전에, 구단에 지명되는 일 자체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공에 손 한 번 못 대어 볼 만큼 기량 차가 큽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간 노력을 게을리했겠습니까, 그렇다고 절실함이 부족했겠습니까. 안 되는 걸 어쩌겠습니까. 


"복지 수혜자의 입장에서는 무임승차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경제학에서 밝혀낸 여러 역설 중 하나이며, 시장이 만능이고 효율적이라는 가정에 대한 가장 유력한 반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하물며 제도로서 복지 배분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면 그 부작용은 상상이 안 될 정도이겠죠. 이어서 책은 핀란드에서 최근 시행된 기본소득제에 대한 비판을 가합니다. 모든 곳이 다 그렇지는 않으나, 적어도 핀란드의 경우 그간 시행되던 복지제도가 모두 폐지된 후 기본소득이 시행되었는데 이것이 과연 바람직할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책은 말합니다. 찬반을 떠나서 기본소득제를 한국에서 시행하려면 그 준비 작업이 상상을 초월하리라는 점 다시 생각해 봅니다. 


스웨덴의 어느 젊은이는 교환학생으로 한국 모 명문대에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주던" 사회 분위기에 대해 행복해했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스웨덴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스웨덴은 지형이나 기후 등의 조건이, 그 나라가 처음부터 보유한 자원과 산업 구조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이며 이런 나라에서는 각자가 각자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일하기보다 그저 주어진 역할에 "남들만큼만" 충실한 게 훨씬 바람직합니다.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주의가 모두 망한 지금 오히려 스칸디나비아 인근 3국만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는데, 이들 나라가 냉전 체제 당시 큰 말썽 없이 살아남은 것도 어쩌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습니다. 애초부터 사회 분위기 자체가 공산주의와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던 거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에서는 de 같은 접두어가 성 앞에 붙는다고 해서 과연 그 사람의 출신이 귀족인지 바로 신뢰할 수 없다고도 합니다. 한국도 현재 본관이나 족보 없는 사람이 없지만 과연 액면대로 누구나 양반가의 혈통인지는 여러 모로 의심스럽죠. 스웨덴은 귀족 아닌 사람이 귀족 성싸를 쓰는 게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귀족은 귀족만의 거주지에 확고한 장벽을 치다시피하고 살며 평민들과의 삶이 완전히 구별됩니다. 한국도 물론 비슷한 면이 있으나 이런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것도 어찌보면 한순간이며 자신의 부가 그 직계혈족에 바로 세습되거나 법으로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다릅니다. 상속세율도 엄청나며 바로 자녀 대에 서민으로 떨어지는 게 부지기수죠. 


이와 관련 책 저 뒤 p207 이하에 보면 스웨덴 기업은 아예 상속세라는 게 없기에 총수가 탈세로 구속되고 사회적 지탄을 받고 할 여지도 없습니다. "착한 기업" 역시 허상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비판이나 단 저자는 이 대목에서 마냥 한국의 재벌에 온갖 규제 철폐 등 특혜를 주자는 주장에도 역시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한국의 재벌은 구조적으로 역사적으로 다른 문제점이나 특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는 스웨덴 등의 복지체계를 주로 진보진영에서 지지하는 편이나, 스웨덴 등에서 자국에 노동이민을 온 소수자에 대한 차별상은 실로 목불인견이라 할 만합니다. 물론 전통적으로 스웨덴 등에서 존중해 온 가치는 관용과 타협, 평등 등입니다만 이민자의 수가 늘고 이들의 가치관이 스웨덴 전통의 관념과 충돌하기 시작하자 스웨덴인들 사이에서 극우정당 등이 새로이 발호할 여지가 생긴 것입니다. 물론 차별적 구호와 혐오 선동은 주로 극우정당의 소행입니다. 그러나 극우정당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일반 대중 사이에 이런 뚜렷한 움직임이 있었기에 극우정당도 없던 게 새로 생긴 거죠. 이는 결국 기존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못 한 소치입니다. 


한국의 문화와 우수한 제품이 세계를 휩쓰는 시대이지만 스웨덴인들은 아직도 Korea라고 하면 대뜸 북한을 떠올리기에 현지 거주 한인들의 우편물이 북으로 발송되는 촌극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아직도 스웨덴인들이 세계화의 추세에 뒤떨어지는 면이 크다는 방증입니다. 한국인 등 이민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종사해야 하는 직업이 따로 있는" 엄연한 차별이 지배합니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평등사회"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죠. 이민자는 이민자대로, 스웨덴 토종 백인들은 (일부이기는 하나) 그들대로 불만이 팽배한 것입니다. 


책에는 "무상의료국가에서 코로나 사망률이 더 높았던 이유"를 조목조목 짚습니다. 물론 무상의료하고는 하늘과 땅만큼 거리가 먼 미국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의료 서비스만큼은 남다른 줄 알았던 스웨덴에서 그토록 부실한 대처에 머물렀던 건 충격입니다. 사실 스웨덴은 놀랍게도 "자연면역"을 추구하여 당국이 초기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지금 보면 미친 짓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데 이 역시 그 사회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어느 사회건 단점도 있고 배워야 할 점도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건, 무엇 하나를 절대선으로 보고 무작정 따라하려는 무모한 시도입니다. 배워야 할 건 당연히 두려워말고 배워야 하겠으며 그것이 지난 세월 동안 우리 나라가 남다른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장점을 그 와중에서 잃는다면 이는 애초에 시도 안 함만 같지 못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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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자
귀곡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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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지금까지 고 신동준 씨의 책은 읽고 독후감을 남긴 게 두 건(件) 정도였습니다. 15기 41주차, 그리고 16기 37주차였는데... 신동준 저자는 그 독특한 박식함과 중국 저작을 광범위하게 참조하는 능력이 돋보이죠. 뭐니뭐니해도 현대 중국 연구진이 새로이 추가한 연구성과를 널리 읽고 이를 자신의 저술에 인용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가 능력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신동준 저자는 엄청난 수의 책을 남겼으며, 이 이유 때문에 요즘 독자들 중 그의 이름을 못 들어 보거나 한 권 정도의 저서를 안 읽어 본 사람이 거의 없지 싶습니다. 


이 고전에 수록된 여러 이야기는 정사와 기타 저작들에도 적힌 게 많아서 이야기의 큰 줄기에만 주목하자면 아마 많은 독자들의 눈에 익은 게 많을 겁니다. 제1 벽합 편에 보면 종횡가 중 한 명인 장의, 그리고 범수가 다뤄집니다. 범수는 사마천의 사기에 <범수 채택 열전>의 메인 주인공으로서 유명하며 두 사람 다 젊은 시절 입신하기까지 엄청난 신산함을 겪은 사실로도 유명합니다. 


제2편은 "반응"인데, 요즘 쓰는 한자어와 표기는 같아도 뜻이 사뭇 다르다는 점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장량과 역이기의 왕패도를 다루는데, 왕패도는 왕도와 패도를 함께 이름입니다. 예전에 국무총리를 지냈던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은 1990년대 초반 김영삼과 정치 투쟁을 벌이면서 상대의 스타일을 "패도 정치"라며 비난한 적 있죠. 뭐 그렇다고 본인의 방식을 왕도로 평가한 건 아닌 듯도 합니다만 지나친 구태와 술수 위주의 정치는 패도 정치 축에도 못 끼는 악질의 정치임이 분명합니다. 역이기는 그 食이라는 글자를 "이"라는 음으로 읽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조나라의 염파 장군은 6편에 나옵니다. 5대 십국 중 중원의 두번째 왕조를 연 후당은 그 도읍지가 타이위안, 즉 태원인데 군벌 이극용, 이존욱 부자가 세운 나라입니다. 타이위안은 진양이라고도 불렸으며 진(晉)이 한위조 삼국으로 쪼개졌을 때 조나라의 중심지 중 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또 진(晉)의 옛 명칭이 당(唐)이므로 여러 모로 잘 통하는 국명이자 도시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염파 장군은 물론 명장이었지만 성정이 급해서 처세술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위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정치적으로 컴백에 성공하자 그를 한때 떠났던 이들이 돌아왔는데 크게 노해 다들 나가라고 꾸짖자 손님 중 한 사람이 세상 이치가 본래 그런 것을 어찌 이리 융통성 없이 구느냐면서 책망한 고사가 유명헙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제나라의 맹상군이 식객들을 크게 나무라려고 하자 그의 책사 풍환이 "사람들이 세와 이를 좇는 건 시장에 동이 트면 사람이 모여들다 날이 저물면 떠나는 것과 같을 뿐"이라며 타이르는 장면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사마천의 사기 중 열전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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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미친 남자 - 미친 급 남자시리즈
정종화 지음 / 맑은소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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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가이자 영화학자이며 한 사람의 열렬한 영화팬이기도 한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보아 온 영화와 영화인이 대한 회고를 쓴 책입니다. 


1950년대 서울 단성사에서 본 여러 영화들에 대한 회상이 눈에 띕니다. <자이언트>는 어느 대지주 가문에얽힌 픽션 연대기인데 한 여인을 향해 품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한 제임스 딘의 연기가 유명합니다. "당신은 이 사과와도 같아...." 끝도 없이 펼쳐진 농장과 그 농장보다 더 큰 부를 담은 유전 등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삼아 펼쳐질 수 있는 사연은 다 펼쳐지는 그 스케일이 정말 볼만합니다.


이예춘 씨와 박노식 씨에 대한 저자의 회고도 있습니다. 이예춘 씨는 중견배우 이덕화씨의 부친이며 이덕화씨가 바이크 사고를 당했을 때 그 충격으로 타계한 사실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박노식씨는 KBS 드라마 <무인시대>에서 이고(李高) 역을 맡은 연기자 박준규 씨의 부친이기도 하며 당대 최고의 액션스타로서 기억되는 배우입니다. 


특히 이 책에는 마릴린 먼로에 대한 언급이 잦습니다. 먼로는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미군 위문차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 먼로는 아직 우리가 알던 만큼 엄청 유명해지기 전인데 여튼 그런 식으로 한국과 인연을 잠시나마 맺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커리어를 영리하게 만들어나간 그녀의 흔적이 여기서도 발견된다는 점이 또 재미있고요. 


일세를 풍미한 한국 배우들, 즉 최민수 씨의 부친인 최무룡, 김진규 씨 사이의 라이벌 관계도 조명됩니다. 김진규씨의 딸이 김진아씨인데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손탁 부인 역을 맡은 적도 있습니다. 김승호씨는 "서민의 영웅"이라고 이 책에서 규정되는데 그가 주연한 <마부>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당시 상을 받기도 했다고 나옵니다. 1980년대에 여러 드라마에 출연한(이전 책프 21기 3주차 리뷰에서 언급한 <추동궁마마>에서 이숙번 역을 맡았습니다) 원로 배우 김희라씨(남성입니다)가 그의 아들이기도 한데 이 시절 배우들은 그 2세가 대를 이어 연기자로 활동한 경우가 참 많네요. 이 독후감 중에서 언급된 예만 해도 100%입니다. 


이 책에서는 <가스등>이라는 1944년작이 소개되는데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을 맡았던 이 작이 바로 요즘 자주 운위되는 "개스라이팅"이란 말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악질 남편이 불순한 목적으로 아내의 심리를 조종하려 들죠. 윌리엄 홀든 주연의 <스탈락 17>은 처음에는 유쾌한 코미디처럼 전개되다가 나중에 미스테리물 혹은 비장한 탈출극으로 변하는 전개가 일품입니다. 유독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들은 흑백 영화가 많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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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당 평전 - 진리의 길 구국의 생애 이상의 도서관 27
조영록 지음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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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에 대해서는 유독 기이한 설화가 많습니다. 왜에 건너가 임란 때 잡혀간 동포들을 쇄환하게 하는 과정에서 길을 지나며 병풍에 쓰인 문구를 다 암기했다거나, 끓는 방에 얼음 빙(氷) 자를 쓴 종이 한 장을 던져 냉골로 만들었다거나, 그 스승 서산대사(휴정)과 도술을 겨루었다거나 하는 괴력난신의 민담이 대단히 많습니다. 


물론 이것이 사실일 수는 없고, 다만 다른 구전 설화에서 비슷한 줄거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개성이 유독 그에 관한 기록에서만은 많이 발견되는 게 특이합니다. 또 양적으로도 다른 임란 때 위인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풍성합니다. 임란 때 활약한 다른 의병장들 중에도 승려가 있고, 공적이 혁혁한 인물도 많지만 오로지 이분에 대해서만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창작된 건 확실히 특별합니다. 


저자는 "설화적으로 덧칠된 사명당을 객관적으로 복원"하는 게 이 책의 의도라고 밝힙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조선시대는 창업 이래 내내 유학자들이 객관적 관념론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이를 치국의 원리로 삼았으며 향촌 질서를 재편하려 들었기 때문에 전조인 고려에서 크게 존숭되었던 불교를 의도적으로 집요하게 또 조직적으로 폄하하곤 했습니다. 


저자는 이 때문에, 당당히 정사에서 큰 비중으로 조명되었어야 했을 사명당의 역사적 행적이 문자로 된 기록에 담기지 못하자, 그를 보충 혹은 설욕하고자 민중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를 현창하여 남은 게 바로 다양한 저 설화들이라고 규정합니다. 저자 조명록 교수는 사학계의 원로이며, 저자의 고향이기도 한 밀양(사명당의 탄생지이기도 합니다)에는 다름 아닌 사명당이 두터운 족적을 남긴 사찰 표충사가 소재하기도 합니다. 


특히 임진왜란의 큰 향방을 가름한 전투 중 하나인 평양성 전투에서 사명당의 지략 전술은 아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사명당은 속명이 임응규이며 본디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사찰에 몸을 의탁하여 성장했습니다. 조선조 내내 숭불 행각으로 유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던 문정왕후 시절 시행된 승과에 급제하여 두각을 나타낸 그는 나라가 모처럼만에 불가에서 인재를 데려다 쓴 보람이 있었는지 이백여년 만에 닥친 큰 국난을 맞아 종횡무진 활약했습니다.


왜는 우리와 달리 열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기층민중에 침투해서나 집권층 사이에서나 큰 비중으로 숭앙되었고 이는 무로마치 막부 통치기나 오다 노부나가의 승승장구 시기나 비슷한 추세였습니다. 천주교를 믿었던 고니시와 달리 가토는 전통에 따라 불교를 적잖이 존중했으며 이에 따라 적장과 말이 통할 만한 기개 있는 승려였던 유정을 조선 조정에서도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담에서 조선의 보배를 묻는 가토에 답하여 "조선의 보배는 조선 것이 아니라 일본에 있으니 가토 당신의 머리가 바로 그 보배"라고 답한 유정의 호방하고 재치있는 발언은 일본에서도 유명해졌습니다. 이것은 인물의 호연지기와 지적 재치가 극에 달해야 그 자리에서 나올 법한, 실로 천재의 징표라 하지 않을 수 없죠. 이런 큰 인물이 국난의 시기에 출현했다는 자체가 천운의 현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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