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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신의 오후 (앙리 마티스 에디션)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앙리 마티스 그림, 최윤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평점 :
<목신의 오후>는 아마 니진스키의 발레 작품으로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 작품은 스테판 말라르메의 이 시집이라는 원작이 있었고, 이 책 기준으로는 p84부터 전개되는 <목신>이란 파트가 따로 있습니다.
또 이 책은 그 유명한, 야수파의 기수 앙리 마티스가 직접 그린 단색화 여러 점이, 출판 당시의 모습대로 수록되었습니다. 터치가 매우 간략하기에 그 의도는 바로 짐작하기 어려우나, 말라르메의 특정 작품과 나란히 붙여 놓은 것들은 독자가 보고 곰곰히 생각해 볼 만합니다. 선이 워낙 간략하기에 그만큼 더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말라르메의 시들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사는 것도 악마처럼 살았고 시풍도 그러한 말라르메의 작품 중 "성 요한의 송가"가 있는 건 의외로 느껴집니다. 이 성 요한은 아마 존 더 뱁티스트, 즉 세례자 요한 같습니다. 시의 맨 마지막 행 "내 머리는 침례를 받고" 같은 구절 때문입니다.
"불가사의한 정지 상태로 고양되었던 태양은 곧 다시 하강한다" 이 다음 행이 "이글이글 타오르면서"입니다. 이렇게 무섭게 타오르는 게 한때나마 정지 상태였다는 게 불가사의하며, 여전히 타오르는 게 이제는 내려온다는 게 역시 이해가 안 됩니다. 시인은 이를 두고, 그 뜨거운 정열을 주체 못 했던 세례자 요한이 마치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려는 양 침례의 화신이 되었다고 표현하려는 것 같습니다.
"낫의 칼날"은 그 서슬퍼렇던 예언자의 직언, 저주, 예언 등을 가리키는 것도 같고, 칼날 하에 잘려 쟁반에 담겨 요녀의 앞에 바쳐졌던 그의 머리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불꽃 같이 살다 불꽃 같이 져버린 위대한 예언자의 삶, 아마 말라르메는 광인과도 같았던(그러나 동시대인들로부터 외경의 대상이었던) 그의 삶을 보며 묘한 동질감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허나 세례자 요한은 모르긴 해도 대단히 금욕적인 위인이었겠고, 그런 자제와 절도로부터 단호하게 음녀(헤로디아)를 꾸짖는 힘이 나올 수 있었던 반면 말라르메는 적어도 성적인 면에선 남한테 그리 내세울 게 많지 않았습니다. 목신인 판 역시 왕성한 그것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마티스의 간략한 단색 삽화도 빛(?)을 발합니다. 뭔가 나른하고, 그러면서도 욕구에 가득한....
"오 고요한 시칠리아 늪의 기슭, 태양을 질투하는 내 허영심이 너를 약탈..." 아마 이 구절에서 "약탈"은 원문에서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늪이니 태양이니 하는 단어들도 다른 심상을 자극하고요. 맞은편의 삽화 중에서 상당수의 인물들은 아마도 여인이지 싶고 그 짐작은 신체의 윤곽으로부터 가능합니다. 어떤 이는 엉덩이에 꼬리가 달린 듯도 하고 입에 긴 담배를 물고 있는 듯도 합니다. 부디 그것이 그저 담배이길 바랍니다.
"할 수 없지! 다른 여자들이 내 이마의 뿔에 머리채를 감고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리라" 바로 앞 페이지에는 어디가 상체미며 어디가 하체인지 모호한 어느 몸이 나옵니다. 언제나 음욕에 가득한 판은 이 순간 님프들에 이끌리는 수동적 존재입니다. 사실 욕망에 지배당하는 그는 단 한 번도 능동적인 적이 있었을까 싶은데 바로 이런 자신을 냉소하듯 "재능으로 길들인 속이 빈 갈대(p86)"란 말이 나오죠.
모든 작품들이, 마치 백아와 종자기처럼 서로를 이해했던 벗인 마티스의 기묘한 삽화 덕에 그 의미를 더 풍성히 갖는 듯합니다. 이 에디션을 읽기 전 우리는 결코 말라르메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하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