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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운에 맡기지 마라 - 후회를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선택의 기술
애니 듀크 지음, 신유희 옮김 / 청림출판 / 2022년 1월
평점 :
저자 애니 듀크는 모티베이터, 컨설턴트, 기업체 대표, 저술가이기도 하지만 직업 포커 플레이어이기도 하다고 나옵니다. 포커처럼 운에 크게 좌우되는 게임에서 "직업 선수"로 뛰었다는 건 실력이 그야말로 탁월하다는 건데, 저자 스스로는 "매 순간 결정이 필요할 때마다 가장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해 온 결과"라고 합니다. 포커 플레이어가 아니라 해도 우리들은 인생에서 매번 이것인지 저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성공적일 때가 많았다면 그 인생 자체가 성공에 가까워지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실패자가 되어 가는 거겠죠. 이렇다면, 인생의 성패(成敗)는 결국 "의사 결정을 하는 능력"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처음에 이 책을 펴 들었을 때는 나이 지긋한 남성 저자 같은 분이 자신의 인생 역정을 회고하며 이리이리 살아왔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일단 예상보다 두께도 두꺼웠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내용이 사례들의 분석과 논증에 기반하여, 독자의 사고 방식을 체계적으로 개조해 주는 내용에 가까웠습니다. 일종의 정신적 PT를 받는 느낌이라 할지. 아무튼 수필 읽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꼼꼼한 스케줄에 따라 어떤 빡센 실습을 하고 나온 듯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올바른 판단을 막는 여러 가지 편향이 있는데 책 p64 이하에서는 "사후 확신 편향"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내가 코인에 투자해서 결과가 좋았으니 당신도 해 보라고 막무가내로 권합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과정을 통해 비슷한 지점에서 마주친 두 사람에게, 방법만 우연히 같았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같으란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은 결론을 그저 자신에게 편할 대로 끼워맞추며 자신뿐 아니라 남의 판단까지 왜곡하고 방해하려 듭니다. 한두 번 정도면 모르겠으나 매번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부정확한 생각으로 일관하면 설령 금수저로 태어난 인생이라 해도 언젠가는 파산, 파멸에 이를 것입니다.
내가 그 시점에 이러이러한 선택을 했으면 지금과는 다른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까?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직관적으로 바로 도출되는 답은 틀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차피 그 선택 여부가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었기에 결국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그 선택이 아니라 인접한 다른 상황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기에 결국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걸 분명히 알아내려면 p99에서처럼 의사결정 나무 그림(樹形圖)을 그려 보는 게 가장 확실합니다. 가지에 가지를 치는 상황의 변화 추적을 통해 단지 그 시점에서의 결과 분포뿐 아니라 다른 상황으로의 변화 가능성도 체크할 수 있습니다.
나무그림에 그치자 말고, p107 이하에 나오듯 결정과 그 결과를 상상을 통해 계속 자세히 써 내려가는 것도 좋습니다. 이걸 책에서는 반사실적 사고라고 부르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if의 연쇄 속에서 나의 진로가 어떻게 변할 수 있었겠는지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책에서는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 같은 대체역사 소설을 그 예로 듭니다. 이는 역사를 소재로 삼은 소설일 뿐이지만 (PKD의 플롯 설계처럼) 치밀한 방법을 통해 자기 인생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참 멋진 일이겠습니다.
이런 방법을 "의사결정 다중우주 탐험하기(p125)"라 부를 수도 있겠는데 이 과정에서 유의할 건 사람마다 우선시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의사결정의 분기점마다 다른 선택들이 생기고 트리의 모양도 크게 달라지며 결과 세트(p128) 안의 상승잠재력, 하강잠재력 등의 값도 다 다른 계산이 나오겠죠. 용어가 좀 어려운 것 같아도 실제 책을 읽어 보면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합니다. 이런 내용이 어렵게 서술이 되면 말이 안 되는 거고(어떻게 따라하겠습니까?), 다만 독자 입장에서는 눈으로만 훑고 넘어가지 말고 펜을 쥐고 실제 칸을 채워가며 따라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이론은 이론 자체보다 실제로 내가, 내 인생이 바뀌는 그 결과, 그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제목도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핵심적으로 체화해야 할 내용은 "대충 찍지 말라"는 겁니다. 아무리 처한 상황이 복잡해도 문제는 가능한 한, 풀이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분석하고 풀어야 하며 그 풀이는 합리적인 근거를 갖춘 풀이어야 하죠. 읽으면서 계속 뜨끔했던 게, 나는 여태 참 대충 감에 의존하며 대충도 살았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 책 저자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 책에서 설명하는 대로 하나하나 포인트를 짚으며 경우의 수를 나누고 확률을 계산하여 자신이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가장 큰 쪽을 고른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계산 방법을 힘들여 가며 배운 이유는 바로 내 인생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지 않겠습니까. "대충 짐작해야지 뭐." 이렇게 상황을 모면하는 태도는 인생을 그저 운에 되는 대로 맡기는, 아주 무책임한 방식입니다. 이렇게 살았으면서 과연 결과가 좋기를 기대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사실 대충 찍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살아온 데에도 이유가 없는 건 아닙니다. 책에서는 1) 일단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너무 적다 2) 그 정보조차도 오류가 없으란 법이 없고, 잘못된 정보 투성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니 아마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계산을 해 봐야 결과는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제법 높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의 소중한, 한 번뿐인 인생을 대충 찍으면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찍어도 계산을 조금이라도 진행한 후에 찍어야 확률이 더 높아집니다. 그걸 떠나서, 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그저 운에 맡긴다는 자체가 불성실하고 부끄러운 태도입니다.
하물며, 이 두꺼운 책에 제시된, 여러 문제 해결 도구들은 쳬계적이고 합리적이며 유용하기까지 합니다. 이미 오랜 세월 많은 사례에 적용해 가며 그 타당성이 어느 정도는 검증되었으니, 아무래도 그냥 찍는 것보다는 그 결과가 더 유리할 것입니다. 이렇게 체계적인 도구를 쓸 때에도 주의해야 할 점은, 언어, 특히 일상언어에는 모호한 점이 많으며 최대한 모호성을 제거한 후 적용해야 그래도 가장 만족스러울 결과가 나오겠다는 점입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걸려들까? 나는 왜 항상 운이 없을까? 많은 이들이 이런 불만을 품거나 좌절감을 안고 삽니다. 머피의 법칙이니 뭐니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평균보다 훨씬 나쁜 결과가 자주 생긴다면 이는 내 자신에 그런 요인이 내재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그 원인을 바로 제거할 생각을 않는다는 건,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외부로부터의 시각(p205)" 사이에 너무 갭이 커서입니다. 물론 책에서 강조하는 건 후자, 즉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의 전환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자기객관화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각자의 방안을 도출하고 때로는치열한 논쟁을 벌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문제 해결"이라는 당초의 목표를 잊고 자기 의사 관철이라는 샛길로 빠져 불필요한 집착을 하거나 감정싸움을 벌입니다. "다른 사람이 좋은 의도로 내 의견에 반대할 때는 오히려 그 친절에 감사해야 한다(p229)." 그렇지 않고 설령 그가 나쁜 의도라고 해도 그 결과가 여튼 해답 도출에 도움이 되었다면 속으로나마 쾌재를 부를 일입니다. 구태여 그 작자에게 감사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대충 사는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오늘의 이익을 위해 내일을 희생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시간에 따른 이익의 할인이라든가 저축의 계산 같은 개념이 아예 들어서질 않습니다. 그러니 미래를 위한 장기 전략이 서질 않고 그저 당장의 위험만 모면하거나 순간의 쾌감을 노리고 모든 걸 희생합니다. 극단적인 경우 마약 등 파멸적인 유혹에 자신을 맡기는데 가뜩이나 부실한 두뇌가 더 망가질 수밖에 없죠.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이 책에 제시된 여러 전술을 다양한 상황에 응용하다 보면 사실 그 자체가 재미도 있을 뿐더러 매번 발생하는 이런저런 손실을 줄이다 보면 결국은 내 손에 남는 이익이 커집니다. 책은 데이비드 카너만 등의 행동경제학 이론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으며,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이익을 기대하는 방식이 체질화, 내면화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람, 쾌감이 생각 외로 크다는 점도 확인시켜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