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났다, 그림책 책고래숲 3
김서정 지음 / 책고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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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꼭 어린이만 읽는 책은 아니며, 때로는 어른이 읽어도 좋습니다. 물론 어린이들이 읽으면, 아직은 어렵게 느껴질 텍스트 위주의 책에 대한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줄일 수 있고, 멋진 글에 알맞은 아름다운 그림도 함께 감상할 수 있기에 더욱 좋겠습니다. 이 책은 그런 멋진 그림책들이 어떤 게 있을지 친절히 김서정 평론가가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책은 모두 3부로 나뉩니다. 좀 특이하게도 1부에서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책들을 먼저 소개하며, 2부가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책들, 3부가 모두 함께 읽을 만한 책들로 구성됩니다. 읽으면서 우리 주변에 이렇게나, 읽을 만한 그림책들이 많이 나와 있었나 싶었습니다. 1부가 제법 길고 3부가 약간 짧은 편입니다. 


p87에 소개된 <빅 피쉬>는 "희망적 미래 뒤에 숨은 절망적 과거"를 다뤘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기훈 저자의 작품이며, 작가의 전작인 <양철곰>과 함께 읽으면 더 이해가 깊어진다고 합니다. 한 편의 영화처럼 내용이 전개된다니 내용 자체의 박진감도 기대되며 그림도 함께하니 더하겠다 싶었네요. 혹시 <양철곰>도 따로 소개가 있을까 싶었으나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빅 피쉬> 꼭지에 실린 소개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책 맨 앞 모든 목차에는 저렇게처럼 작품에 대한 평론가의 한 줄 평들이 실려 있고, 각 부로 들어가서 맨 앞 페이지에 그 책의 제목들이 나옵니다. 


휘황찬란히 빛나는 도심이지만 그 이면에는 차마 말 못할 어두운 사정도 있기 마련이죠. <한밤중에 강남귀신>을 보면 강남이란 우리들 누구나 선망하는 곳이지만 그에 대해서는 "극단의 자본적 욕망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행태"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할 수 있다는 걸 독자에게 깨우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사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바로 사람이며, 이 책은 어린이 주인공 자미를 통해 독자에게 뜨끔한 교훈을 전달한다고 합니다. 그림은 회화와 판화가 적절히 섞여 미학적 효과를 더한다고도 하네요. 


해적이라고 하면 그간 무섭고 섬뜩한 캐릭터가 대부분이었으며 어린이라고 해도 아마 이런 고정관념에 묶여 있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마 세이조 작가의 <해적>은 이런 독자의 고정 관념에 보기 좋게 도전장을 던집니다. "하고 났더니"라는 거듭된 연결어구로 이 작품의 내용을 재미있게 요약하고, 동시에 플롯의 매력에 이끌린 자신의 감정도 표현합니다. "슬프고 아름다운 판타지로 삶을 고양..." 그런데 아름다움보다는 "슬픔"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많은 판타지가 그처럼 슬픈 결말을 맞은 게 그런 까닭들이 있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어떤 그림책은 그림이 메인이고 텍스트가 적기도 합니다. 그러나 좀 그러면 어떻습니까? 저자는 <이 작은 책을 펼쳐 봐>를 소개하며, "'책의 내용은 곧 글자'라는 선입견을 이 책은 유쾌하게 뒤집어 준다"고 평합니다. 이어 "유려한 그림과 풍부한 색채, 발랄한 구조 자체가 곧 훌륭한 이야기이자 이야기의 재료(p160)"라고도 합니다. 평론가의 설명은 확실히, 많은 것을 예사로 봐 넘기던 독자의 눈을 틔워 주기도 합니다. 


<두더지의 소원>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처럼, 이런저런 소원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들의 마음을 두더지와 어느 아이를 통해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여느 동화들이 혹은 서사물이 가는 길과는 살짝 다른 경로를 취하는 이 작품을 보며 저자는 놀라움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저자는 예술의 소명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의 논의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저자는 책을 평론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어떻게 삶의 원동력을 얻곤 하는지도 고백합니다.(p246) 그래서 우리는 이런 평론가의 책을 읽으며 공부도 하고 동시에 같은 독자로서 응원도 얻고 공감도 한 지점에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림이 함께하여 더 따뜻한 책 구경, 평론가의 소개라서 더 두둑한 설명과 가르침을 접한 듯하여 한결 흐뭇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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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의 친절한 인문학 - 고전 20권 쉽게 읽기
임수현 지음 / 인간사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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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기술 진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의 우리들은 경제나 산업, 혹은 IT 분야에서의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기에도 벅찹니다. 학교에서 아직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 매진 중인 어린 학생들이라면 수능 대비하는 데에만도 벅차서 정신이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인문, 고전까지 읽을 여유가 과연 있을까요? 한국 최고의 명문대를 나오신 재원이자 인기 강사, 유튜버인 저자는 바쁜 우리들에게 고전 읽기를 오히려 권합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문 고전 읽기를 필수 과제로까지 꼽습니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저자가 꼽은 것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①첫째, 고전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②둘째, 고전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③셋째, 고전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이 말은 책의 뒤표지에도 나오고, "들어가는 말" p16 이하에도 보다 자세히 풀어서 설명됩니다. 첫째 고전에는 세상의 작동 원리가 녹아 있고, 세상의 디테일은 수시로 바뀌어도 이런 "근본" 원리는 쉽게 바뀌지 않으니 오히려 고전을 통해서만이 이런 근본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고전에는 무수한 인간 군상의 속셈과 본성과 이해타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선명하게 풀어 놓은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인생은 실전이라고들 하죠?"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밈이기도 합니다만 그를 떠나서도 사회 생활에서 무수히 마주치는 사람들, 사람들의 다양한 계산과 전략과 움직임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고전이 간파해 놓은 인간 속성과 책략과 행동 패턴에 대한 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 하는 게 지식과 지혜이며, 타인에 대해 아는 게 공감과 소통의 능력이라면, 마지막 "자신에 대핸 이해"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궁극의 목적과 관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에 진학하고 직장을 얻으려 애쓰며, 그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직분을 실천합니까? 속된 말로 출세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아실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설령 높은 직위에 오를 만큼 올랐다 해도, 돈을 벌 만큼 벌었다고 쳐도, 내 마음이 어딘가 불편하고 정서의 안정을 찾지 못한다면 이는 모두 뜬구름과도 같은 것입니다. 출세건 돈벌이이건 모두 본인이 내심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인데, 결국 이 단계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평생을 헛되이 산 셈일 뿐입니다. 고전은 그 무엇보다.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공붓길입니다. 대(大)철학자 "테스형" 소크라테스가 괜히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게 아닙니다. 

 

또한 이 책은 1) 바빠서 인문 고전 모두를 섭렵할 시간이 안 나는 직장인에게, 고전의 정수와 핵심만 최단 시간 안에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내용만 앙상하게 요약된 게 아니라, 명석한 저자분의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설명이 있어서 이해가 더 잘 되고 읽어내려가는 게 재미있습니다. 설명이 재미있고 뚜렷한 줄기가 잡히기에 관련 서적이나 아예 고전 본책을 더 찾아 읽어 볼 동기가 생깁니다. 이 책에는 인명, 개념의 원어, 원저명 등이 괄호와 함께 일일이 병기가 되어서 심화 독서를 위한 길잡이가 잘 마련되었습니다. 2) 수능과 논술을 대비하려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수능 국어 영역에서 인문, 철학 지문은 내용도 어렵고 분량이 방대하여 도저히 정해진 시간에 파악이 안 됩니다. 미리 그 내용이 내 머리에 파악이 되었다면 실전 시험에서 시간도 절약되고 더 여유 있게 문제를 공략할 수 있죠. 또 인문 교양 부문 지망자라면 이 책은 논술 대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됩니다. 논리적이고 정확한 설명을 이어가는 저자의 말을 듣다보면 개념 자체도 잘 이해될 뿐 아니라 이해된 내용을 이제 나의 언어로 바꿔 남에게 풀어낼 수 있는 바탕이 생기죠. 

 

이 책에는 철학 서적 열 권, 문학 작품 열 권이 소개됩니다. 그저 제목과 저술 배경, 요지 등만 나오는 게 아니라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풍성하고 권위 있는 학적 배경을 지닌 이 저자분만의 명쾌하고 일관된 평석이 담겨 있기 때문에 책 읽는 재미와 보람이 뚜렷합니다. 열 권의 철학 서적은 우리가 철학 하면 떠올리기 쉬운 형이상학, 현상학 등의 어렵고 추상적인 분야 외에도, 정치학(사실 정치학이나 외교학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도덕학, 교육학 등 그보다는 소프트한 분야의 고전도 포함됩니다. 


 

철학 서적 열 권을 엄선하시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만 문학 작품 역시 하늘의 별처럼 많은 그 걸작들 중에 이렇게 열 권을 뽑는다는 게 보통 힘들지 않습니다만 일단 정말로 누구나 읽어야 힐 필독서들 아닐까 하고 일개 독자로서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열 편의 작품을 보면 시대별, 국가별, 주제별로 참 잘 안배된 선별 같습니다. 문학작품이니만큼 아무리 고전이라고 해도 일단 읽기에 좀 재미가 나야 하겠는데 이 열 편은 재미로만 읽어도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5년 전 탄핵 사태 때 많은 이들이 "이게 나라냐?"라며 탄식했던 일을 저자는 상기시킵니다. 그 말의 이면에는 "나라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당위의 요구가 들어 있겠으며(혹은 그래야 하겠으며), 그저 불만과 탄식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그럼 무엇이 올바른 나라인지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그 내용을 채우고 대안을 제시하려면 공부가 필요합니다(p34). 그런 공부의 첫걸음을 떼려면 이 책에 가장 먼저 소개된 플라톤의 <국가(론)> 같은 책을 읽고 아득한 예전 이 고전 철학자가 국가의 이상상에 대해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 필요가 있겠습니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 국가의 원어가 Kallipolis라고 책에 나오는데 고대 그리스어로 Καλλο?(아름다운)와 우리가 잘 아는 (도시)국가 폴리스라는 두 단어들의 결합입니다. 짧은 소개이긴 하나 고전 <국가>의 본체적 내용이 모두 담겨 있는 데다 저자의 시원시원한 통찰까지 감상 가능한, 참으로 유익한 아티클이었습니다. 참고로, "이게 나라냐"라는 우려와 허탈감이 끝을 모르고 이어질 때 우리는 국가의 본질이 본디 깨어있는 시민이 통제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될 "괴물, 리바이어던(존 로크의 맥락에서)"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도 책 중반부(p97)에서 저자는 말합니다.


 

어떤 정치인은 "권력은 잔인하게 써야 한다"라고도 했다지만, 이 말에의 찬반을 떠나 권력의 속성 자체가 원래 비정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난세가 시대의 영웅을 낳는다고 중세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 국가들의 항쟁과 명문가들의 각축 때문에 바람잘 날이 없었지만 대신 각처의 인재들이 세력가에 의해 널리 발탁되어 명성을 떨치거나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는데 마치 저때로부터 천 수백 년 전의 중국 제자백가 시대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 중 책략가 혹은 정치사상가로서 큰 활약을 한 사람이 마키아벨리인데 저자는 그가 "역량과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군주론>을 썼다고 소개합니다. 물론 이 책은 로렌초 데 메디치에 대한 신앙고백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치의 본질에 대한 그의 지론(p56)"이기도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묘파한 인간성과 정치의 본질은 대단히 부정적이고 때로 불쾌하기까지 하지만,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인격이나 관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인간사의 그런 부정적 본질 자체를 마키아벨리가 윤색이나 왜곡 없이 우리에게 그대로 밝혔을 뿐이라고 합니다. 정치도 외교도 이를 학문적으로 분석할 때는 "현실주의, 리얼리즘"의 시야에 크게 의지하기도 하는데 임수현 저자님의 전공이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외교학이기도 하며 한국 외교학의 권위자들이신 그 스승님들도 한스 모겐소 류의 현실주의 학파이신 분들(이나 그분의 제자분들)이 많으셨으리라 짐작됩니다. 


 

그저 철학 자체의 대명사로도 여겨지는 임마누엘 칸트의 이름은 누구나 알지만, 정작 그가 무엇을 주장한 사람인지는 언뜻 떠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분은 너무도 많은 업적과 주장을 남겼기에 한 마디로 요약한다는 자체가 무모한 시도이긴 합니다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대로 그의 3대 저작 중 <실천이성비판>의 내용을 둘러보다 보면 그의 심오한 세계에 대해 개략이나마 일면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p145에는 그의 저술에서 한 대목이 인용되었는데 강제(Neigung), 의무(Pflicht), 구속(Zwang) 등의 개념이 어떻게 분화되고 구별되며 나아가 발전적으로 변모하는지 세심하게 다뤄진 명문입니다. 또 저자는 이를 인용하며 정확한 번역과 함께 핵심 개념어에는 일일이 독일어 원어를 다 병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원어를 알아야 나중에 깊이 있게 더 공부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기는 법입니다. 

 

고 미셸 푸코는 이제 꽤 오래전에 전성기(?)가 지난 철학자로 여겨질 만한데도 대표작 <감시와 처벌>이 현재까지도 워낙 임팩트있게 환기될 만한 상황이 많이 벌어져서인지 정치 진영의 좌우를 막론하고 꾸준히 인용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푸코의 판옵티콘 개념을 설명하면서, 딱히 청와대나 백악관, 혹은 중남해 같은 곳에서 국민을 향해 들이대는 간교하고 집요한 감시와 통제의 눈초리뿐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도 아닌, 사기업(보험회사라든가), 단체, 교육기관, 심지어 1인 미디어나 개인조차도" 이런 권력의 위치에서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조종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이야말로 미셸 푸코가 저 고전에서 대중을 일깨우려고 했던 본지이며, "감시의 일상화"가 가장 우려되는 기본권 침해가 되어 버린 요즘, 우리 독자들이 더 높은 우선순위로 성찰하고 경계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짚어 준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세계사를 대표할 만한 문학 작품 10선을 놓고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돈키호테"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읽지 않은 책(p15)"이란 오명이 있을 만큼, 심지어 이 보편적인 고전 명작 중에도 우리가 "이런 대목이 있었나?" 같은 의문이 절로 들 만큼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둘시네아의 본명이 알돈사 로렌소라는 점, 그의 기사도 행각을 포기하게 만든 하얀 달의 기사가 구체적으로 그에게 무슨 제안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세히 들려 줍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을 통해 "인생에 대해 겸손히 돌아보게 돕는" 세르반테스의 진짜 의도, 혹은 고전의 참된 의의에 대해 생각하게 이끕니다. 

 

다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통해 위대한 빅토리아 치세기에 무서울 게 없이 세상 위에 군림하던 대영제국 수도 런던에서 일약 팔자를 고칠 듯했던 하층민 핍이 자기 주제를 깨닫는 과정에 대해 저자는 책 한 권을 실제로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들려 주고, 또 숨은 의미까지 짚어 가며 독자를 매혹합니다. 일개 치정극으로 읽힐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에, 당시 제정 러시아 사회의 어떤 모순과 위선이 그 지배 구조를 좀먹어갔는지에까지 저자는 천착하며, 또한 이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남녀의 애정사에 대해 그 핵심을 통찰합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아마 서양 문학을 모든 면에서 완성지었다 할 대작인데, 저자는 이 대작의 복잡다단한 구조 속에서 살인 미스테리의 줄거리를 요령껏 잘 뽑아내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한편, 일견 종교, 철학, 역사로 난해하게 구축된 듯한 작품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 본성 몇 가닥을 예리하게 추출하여 도스토옙스키가 이 작품 안에 얼마나 많은 인생의 비의를 이스터에그처럼 숨겨 놓았는지 증명하기도 합니다. 


 

고전은 복잡하게 접근하면 한도 끝도 없이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운 고전을 쉽고 조리있게 풀어내는 건 명석하고 맑은 혜안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룬 똑똑하신 저자분이라서 이런 깔끔하고 재미있으며 유익한 책이 나올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문 고전 중에서 문학과 철학 편을 다루셨으니 다음 저서에서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저자의 전공이신 외교학 그 현실주의 관점이 잘 반영된 유익한 저작이 나오면 어떨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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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웨이, 대한민국을 구한 지휘관 대한민국 정체성 총서 9
복거일 지음 / 백년동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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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맥아더 미 육군 원수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북한의 초기 기세를 결정적으로 좌절시킨 업적은 우리 모두가 잘 압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높이 평가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후 중공군이 본격 참전하고, 대단히 노련한 야전사령관이었던 그들의 영웅 펑떠화이가 놀라운 전술로 전세를 역전시킨 후에는 미군 측이 이에 잘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한 느낌으로, 아무리 합리적이고 냉철한 상황 판단으로 유명한 미군이라지만 몇 번의 패퇴 끝에 제주도, 나아가 태평양상의 서 사모아로 한국 임시 정부를 옮기려 들었다는 사실을 접하면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남의 나라 일이었다지만... 사모아 섬은 말할 것도 없고, 만약 제주도에 정부가 옮겨갔다면 대만처럼이나마 우리가 번성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지금 아프간이 망하는 것처럼, 길어야 1970년대 후반쯤 가서 북한 정권에게 전토가 점령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은 그저 미국일 뿐이며, 우리 자신의 생존과 번영은 우리 말고 아무도 대신 책임져 줄 나라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주 국방이 중요하다는 것이며 현 정부에서도 이에 힘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맥아더 원수가 해임된 후 부임해 온 사람이 리지웨이인데, 이 사람은 맥아더처럼 외적으로 화려한 지휘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냉철하고 현실적인 판단력으로 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으로 일찍부터 유명한 장군이었습니다. 미군 다른 참모들이 저런 한심한 생각이나 할 때 그는 중공군의 약점을 바로 꿰뚫어보고 정확한 대처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덕분에, 앞에서 상실했던 서울 등을 수복할 수 있었으며, 38선 이북으로 동부 전선은 조금 더 북상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서울을 도로 찾지 못하고 밀린 채 휴전 협정이 이뤄졌을 경우를 상상해 보십시오. 과연 한국은 지금의 한국일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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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 일본의 사례, 1945-2012년 메디치 WEA 총서 1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양기호 옮김, 문정인 해제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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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미국은 일본과 친한 사이였습니다. 물론 페리 제독이 포함 외교를 시도하던 당시 둘은 어느 한쪽의 뭉력 앞에 다른 쪽이 무릎을 꿇던 국면이었으나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의 틀이 갖춰진 후에는 영국 측의 친일 기조와 그레이트 게임 양상 때문이었는지 미국도 덩달아 일본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라든가 포츠머스 회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루스벨트(TR)가 용인해 줬다든가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의 문구를 헌신짝처럼 저버린 예 등을 들어 미국의 친일 성향(?)을 매우 크게 원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고종 황제가 예전부터 앵글로색슨과 사이가 극히 나쁘던 러시아에 느닷 기우는 외교를 펼친 것을 계기로 그처럼 악화되었다는 사정이 있으므로 지나치게 우리 입장에서만 서운해할 건 아닙니다. 유능한 외교 정책이었다면 영미에 더 적극적으로 손을 뻗어 대미 친분에서 일본을 추월할 생각을 했었어야죠. 러시아와 친한 건 실리 외교이며 미국과 친한 건 사대 굴욕입니까?


여튼 일본은 좀 늦긴 했으나 1차 대전 당시 협상국 측에 적극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1918년 전후 처리 과정에서 대접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이미 1915년에 중국 위안 스카이 정권을 핍박하여 21개조를 관철시키고 독일의 영향권이었던 칭따오 등 산둥 반도 일대를 점령하는 등 구미의 이권(중국 내의)을 크게 침해했습니다. 이러니 미국이나 영국이 오랜 동맹 관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의심의 눈길로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미국은 1930년대 일본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석유 금수 조치(소위 ABCD 포위망)를 단행하는 등 적대 정책으로 본격 돌아섰습니다. 이에 일본은 1941년 진주만 기습으로 응수하고 본격 태평양 전쟁을 여는데,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대로입니다. 일본은 이제 소련이라는 거대한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 앞에 놓였고 미국은 태평양 아시아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해야 했으므로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합니다. 이 끈적한(?) 관계는 1980년대에 절정에 달했으며 레이건과 나카소네 사이의 돈독한 유대는 매우 유명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무서운 경제 성장, 수입을 기피하고 오로지 내수 위주로 돌아가는 경제 구조는 미국과 유럽 측에 큰 무역 적자를 안겼으며 이에 G7 중 구미 국가들은 일본에 플라자 협정을 강조합니다. 정치나 군사적 대립은 겉으로 각자의 국가들이 내세우는 가치, 명분과는 거의 무관하게 악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미국은 1980년대 소련보다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더 큰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제2차 태평양전쟁>이라는 책도 당시 나왔던 거죠.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입니다. 왜 트럼프는 일본측 수뇌부와 회동할 때 그처럼 극진한 대접을 받고도 끝내 일본과 핵심 사항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을까요? 달리 말하면 일본이 절실히 필요할 텐데도 그는 이상하다 싶을 만큼 일본을 밀어붙였습니다. 이 책은 2013년에 나왔고 지금은 지역안보협력체인 쿼드가 결성된 시점입니다만 여전히 미국과 일본은 사이가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냉전이 종결된 후 일본은 미국에게 최대의 위협으로 떠올랐다." 아니,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구요? 일본은 1980년대에 비해 국력이 크게 쪼그라든 상태인데도요? 답은 경제, 경제에 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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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김은식 지음 / 이상미디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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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나온 책인데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번 정도는 읽어 봤을, 재미있는 책입니다. 전직 대통령과 프로야구 구단이 무슨 관계냐 하면, 1980년대 호남 사람들이 힘들어할 무렵 최강의 야구단과 어느 핍박 받던 정치인이 기층 민초들에게 무한한 희망을 심어 줬다는 뜻입니다. 해당 지역 분들(중 일정 연배 이상)은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무슨 내용일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될 만도 합니다. 


해태그룹은 외환위기 당시 부도가 났고 이 그룹에서 운영하던 야구단 역시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해태제과, 빙과 등도 현재까지 브랜드가 남아 있으나 이제는 각각 크라운, 빙그레가 오너이며 박건배 씨나 그 가족은더 이상 해당 회사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2002년 뜻밖에 정몽구 회장이 기아차를 통해 야구단을 인수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으며 이 과정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아마도 영향을 행사했으리라 짐작되므로 김대중 대통령과 타이거즈가 아주 무관하지는 않겠습니다. 


해태 타이거즈는 누가 뭐래도 초기 20년 이상을 막강 화력, 투수력으로 리그를 지배하던 구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모기업의 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 언제나 짠물 운영을 했고 이 때문에 선수들이 고충을 겼었으며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하여 임한 바 있습니다. 초기(1984)에 박건배 그룹회장 겸 구단주가 불고기 회식을 가진 바 있었는데 선수 처우가 전년도 우승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나빠지자 선수들이 항명 차원에서 불고기 화형식을 가진 사건은 아주 유명합니다. 이 37년 전 사건은 불과 몇 달 전에 관련 선수들(당시)이 어느 채널을 통해 새로운 진상을 처음으로 공개하여 다시 화제가 되었고 저도 그걸 계기로 이 책을 다시 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불펜에서 몸을 풀면 경기는 끝났다." 오늘도 준 플레이오프 3차전이, 싸늘한 날씨와 코로나 유행에도 불구하고 큰 잠실 구장을 가득 채우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만 저 구절에서 가리키는 "그"는 선동열 선수를 가리킵니다. 그는 한국 시리즈 1차전 당시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던 빙그레 이글스(당시 명칭)과의 경기에서 부상으로 등판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불펜에서 몸 푸는 시위만 펼쳤는데도 상대 팀 선수들이 지레 위축되어 결국 해태가 승리를 거둔, 정말 유명한 사건이 있었죠.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는 고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브라보콘을 팔아 연봉 주는 팀" 이 말이 당시 해태그룹의 어려운 사정을 드러낸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더한 말도 있었습니다. 롯데는 껌 팔아서 연봉 준다고 어느 분이 말을 꺼냈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죠. 물론 롯데는 부동산, 유통에서도 거인이었기에 해태보다는 재계 서열이 한참 위긴 했지만. 책에는 "서태지의 은퇴, 김대중의 컴백"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서태지가 말도 많고 탈(RATM 표절 논란)도 많았던 4집을 내고 그 젏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여 한창 이슈의 중심에 섰던 그 무렵에 공교롭게 김대중 당시 아태재단 이사장이 정계 복귀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국민회의라는 정당을 만들어 15대 총선에서 자민련과 함께 많은 의석을 확보하여 이른바 DJP 연합을 시작했고 이를 그대로 가져가서 1년 뒤 대선에서 정권을 잡습니다. 책은 그 무렵을 감개어린 어조로 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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