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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에게 - 내 몫이 아닌 비합리적 죄책감과 이별하기
일자 샌드 지음, 정지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1월
평점 :
덴마크인인 저자 일자 샌드는 심리치료사, 상담 전문가, 목사, 교수 등 다채로운 경력을 지닌 분이고 과학 저널인 <뇌와 행동>에 실린 논문으로 극찬을 받았다고 책날개에 나옵니다. 신학과 심리학, 뇌과학 등의 분야를 두루 넘나드는 저자는 드물게 보는 것 같아서 평소보다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네요.
책의 주제는 "과도한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란, 죄책감이 없다면 그건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죄책감이 없는 사람과 과한 사람, 둘 중 하나를 조직에서 골라야 한다면 당연 후자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죄책감은 그 사람 자신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조직에서도 그 직원의 효용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겠으므로 손해가 됩니다. 또 신상필벌이 확실해야 조직이 잘 돌아가니만큼 엉뚱한 사람이 책임을 뒤집어쓴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겠습니다.
저자는 "당신이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왜 당신이 죄책감을 갖는가?"라고 묻습니다. 또 저자는 "한 국가의 사법 시스템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운영된다(p50)"고 덧붙입니다. 인과관계도 선명하게 따져야 할 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법정은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저자는 "어려서 겪은 문제 때문에 현재까지 괴로워하는 엄마"라든가 "갑자기 불어온 폭풍우" 같은 걸로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죄책감을 좀 느껴야 할 상황도 있을 것입니다. 독자인 저는 지금 우연히 이 책과, 원로 소설가 최일남 선생의 <마(馬)>라는 작품을 함께 읽는 중인데, 작중에서 주인공 길중은 그 처 춘자를 제때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결국 폭풍우 속에 길에서 죽게 만듭니다. 이런 경우는 남편으로서 임신 중인 아내에 대해 보호 의무를 충분히 다하지 않았기에 그런 끔찍한 결과가 벌어졌으므로, 폭풍우나 도로 교통 사정의 열악함과는 별개로 그의 귀책 사유가 분명하므로, 평생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하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죄책감을 좀 느껴야 할 인간들은 뻔뻔스럽게 일상을 잘 사는 수가 많더군요.
이 책에는 딸의 난독증(dyslexia)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느 어머니의 내담 사례가 나옵니다. 저자는 일단 딸의 병을 고치는 게 가장 급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시적이든 항구적이든 간에 딸의 난독증에 엄마 소피가 얼마나 원인을 제공했는지부터 분석합니다. 딸의 난독증이 다 나아 책 같은 걸 문제 없이 읽게 되더라도, 엄마는 그 죄책감의 후유증으로 한동안 고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를 보면, 어려서 자칫 폐병으로 딸을 죽게 할 뻔한 어머니가 그 죄책감 때문에 헬리콥터맘이 되어 과잉보호를 벌여서 딸을 다른 방법으로 망치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그 부모의 죄책감은 별개의 증상으로 보고 그 원인을 따로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양심의 가책, 혹은 죄책감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거의 모든 심리학자가 동의하는 사항이라면서 인간 감정의 구성요소를 넷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 분노 2) 두려움 3) 슬픔 4) 행복. 사람의 어떤 감정도 이 네 가지 기본 요소가 합하여(혹은 단독으로) 작용되며, 저 네 가지는 더 잘게 쪼개기 힘듭니다. 이 중에서 "슬픔"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다고 합니다(p29). 우리 상식으로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슬픔이 큰 문제들의 원인일 듯한데 말이죠. 정작 큰 문제를 일으키는 건 "분노"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책의 주제인 "죄책감"은 저 네 가지 기본 감정 중 어떤 것에 의해 생길까요? 이건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책에서는 두려움이 70%, (내 안으로 향한) 분노 20%, 슬픔 8%, 행복감 2%인 죄책감이 나옵니다.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어떤 경우에 드는 죄책감이냐에 따라 저 구성비는 달라진다는 거죠. 구성 성분 중에 심지어 (비록 그 비중이 적다고는 하나) "행복"도 있다는 게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나를 지치게 하는 건 "나 자신을 향한 분노"입니다. 물론 내가 정말로 잘못했다면 이런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비생산적이고 "사람 잡는" 감정의 희생양으로 나를 계속 방치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책에서 권하는 방법은, 마틴이라는 내담자의 예(p60)를 통해, 주치의 선생, 직장(의 상사), 부모님, 여자친구 등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것입니다. "왜 선생님은 더 효과적인 방법을 내게 찾아주지 못하시나요?" "부장님은 부하직원을 그런 식으로밖에 다루지 못하십니까?" 이런 건 확실히, 실제 그 편지를 당사자에게 보내지는 않더라도 한 번 정도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중얼중얼하는 게 나쁜 버릇이냐?"고 묻던데, 남들 보는 앞에서 그러면 안 되겠지만 그 사람이 뭔가 마음에 쌓인 게 많아서 그런 식으로라도 풀어서 속이 시원해진다면 그것 역시 정신에 병이 들지 않게 하는 하나의 방법일 듯합니다.
이 책에서는 과도한 피해의식으로 인해 오히려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자신은 피해자라고 생각하면서 그 "덫"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제6장에서 이런 유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이 하이라이트는 오히려 이 후반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주제는 "나의 죄책감"인데 왜 이런 유형이 분석되는 걸까요? 조직이든 어떤 공간이든 간에, 과도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좀먹는 사람 옆에는, 반드시 이런 가짜 피해자가 도사리면서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유형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가짜 피해자한테 제 정신을 차리게 해 줘야 엉뚱한 사람이 죄책감 때문에 고생을 않게 된다는 게 책의 주장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이런 처방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종의 "반전"이었습니다.
피해의식에 가득한 사람들 중에는, 정말로 가짜 피해의식에 자신이 속아 빠져나오지 못하는, 크게 보아 그들도 일종의 피해자이기는 한 사람도 있으나, 피해의식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서는 남들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가로채며, 남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종하려는 끔찍한 의도를 가진 인간도 있습니다. 이런 유형은 각자가 알아서 특별히 경계하면서 천천히 "손절"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책에서는 첫번째 유형, 즉 의도는 아니지만 어쩌다 피해의식을 갖게 되어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자신도 스스로 위축된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이 책에서는 좋은 퇴행과 나쁜 퇴행을 나눕니다. 퇴행은 어른답지 못하고 아이와도 같은 무책임한 행동을 가리키지만, 정말 내 감정이 슬픔에 북받쳐 감당이 안 될 때는 아이처럼 체면 던져 버리고 목놓아 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겁니다. 이와는 달리 나쁜 퇴행은 자신이 그 정도까지 힘들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남의 도움을 별 필요도 없이 계속 바라는 상태입니다. 피해의식에 가득한 사람이 엄청난 민폐를 끼칠 때 그 주변 사람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저자는 그렇게 하는 사람의 감정이 "분노"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점을 빨리 인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들어 주는 사람 입장에서 더 이상 미안함을 안 느끼고, 아 이 이상은 들어줄 필요가 없다며 알아서 선을 긋게 된다고 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가, 또 실제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만약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이는 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다면, 우리의 제한된 역량이나마 그것에 집중하여 조금이라도 내 생을 행복하고 더 낫게 개선할 수 있게 되죠. 이 정도로도 우리는 자신을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