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전쟁 -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새로운 지정학 전투,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클라우스 도즈 지음, 함규진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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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2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여러 방면에서 공격했다고 하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전쟁이 개시된 듯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문제는 단순한 국경 분쟁은 아니고 여러 복잡한, 또 오랜 세월에 걸친 분쟁, 모순, 갈등의 산물이긴 합니다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말살, 절멸시킬 속셈까지는 아닌 듯하니 국경분쟁의 범주에 넣어도 될 듯합니다. 


지금처럼 어떤 선(線)을 기준으로 삼는 국경은 서양에서 발전시킨 개념이며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선이 아닌 면으로 경계를 삼았습니다. 또 서구열강이 본격적으로 동점을 시작하기 전에는 부족, 민족 단위로 각자에게 주어진 자연 영역이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인위적으로 획정된 특정 국경 안의 국가, 그 시스템 주도권을 두고 내전을 벌이는 일도 없었고, 국가 내의(국가 자체가 없기도 했지만) 종족 분쟁 같은 것도 지금처럼 파멸적인 양상까지 치닫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현재까지 이어지는 국경 분쟁이나 국가 내 분쟁은 서양 편의로 정해진 질서의 모순에 기인한 바 크며, 냉전 질서가 해체되고 이제 어떤 강압적 분위기가 해소되다 보니 그간 잠복했던 병통이 크게 터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p57에서는 "국토의 완성"이란 (집단) 욕망을 저자가 지적합니다. 이는 비단 21세기에 들어 새로 부각한 게 아니고, 19세기의 이탈리아 이리덴타 같은 것처럼 어느 지역에서나 있어 왔던 보편적인 움직임에 가깝습니다. 책에서는 아르헨티나, 헝가리의 예를 드는데 아르헨티나의 경우 그들이 주장하는 코 앞의 영토 말비나스 같은 문제가 있죠. 이는 1980년대 당시 군부 독재 정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하다 큰코 다친 바 있습니다. 헝가리에서 요즘 비정상적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포퓰리즘 독재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역시 "상처 입은 과거의 영광" 등을 자극하는 정치적 술책에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p65 이하에 상술되는 인도의 경우 20세기 초의 벵골 분리령 당시에는 전 인도인들이 종교를 떠나 협력하여 영국 제국주의에 대항했는데, 정작 2차 대전이 끝나고 독립을 얻자마자 힌두교와 이슬람 사이의 다툼이 벌어지고 동파키스탄이 인디아로부터 갈라져 나갔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이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여 인도와 소강 상태이지만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에는 도통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2장에서는 우리 독자들이 쉽게 예측하기 힘든, 재미있는 팩터 하나가 소개됩니다. 만약 전근대 동양의 관습처럼 면 단위로 국경이 정해진다면 훨씬 유연성 있게 운용되었을 것을, 각박하게(?) 경도와 위도의 정확한 측량에 따라 정의되다 보니, 기후 환경이나 지형이 크게 변화할 때 국경이 "움직이는" 현상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책에 따르면 고지대, 빙하 지대 등에서 이런 일이 잦다고 합니다. 


한반도는 예로부터 지진이 적고 화산 활동의 피해로부터도 안전한데다 무엇보다 마시는 물을 별다른 처리 없이 그대로 얻을 수 있는 게 큰 장점이었습니다. 이웃한 중국만 해도 차(茶) 문화가 그처럼 발달한 게, 식수로 바로 이용할 수 없는 오염된 물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했죠. 그러던 것이 선 국경이 보편화되면서부터 자연 국경 중 강(江)이 기준이 되는 경우에는 이 강의 이용권을 누가 갖느냐를 놓고 큰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는 아이훈 조약, 베이징 조약 등이 등장하는데 과거 네르친스크 조약 체제에서는 스타노보이 산맥이 경계였던 걸 이제 우수리 강, 아무르 강 등이 러- 중 간의 경계로 부각되었던 거죠. 이 싸움은 심지어 1960년대, 두 나라가 같은 공산 진영에 속한 상황 하에서도 진행되었습니다. 


현재는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듯, 티벳 고원에서 발원하는 여러 강들의 이용권을 두고 중국이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인도나 동남아시아 국가 들과 분쟁이 잦습니다. 이런 분쟁은 딱히 합리적인 기준이나 대안이 쉽게 마련되기 어려우므로 분쟁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이 문제가 대수층(帶水層)을 둘러싼 분쟁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대양의 식민지화, "푸른 가속화(p158)" 등의 이슈에까지 이르면 정말 머리가 아파집니다. 싸움이란,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라는 지점을 맞이해야 하는데 과연 이 싸움에 어떤 합리적 절충점이 있겠으며, 혹 힘에 의해 해결된다면 그 결과가 과연 누구한테만 이익이겠냐는 거죠. 


기후 온난화에 따라 섬들은 이제 서서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일부 섬나라들의 경우 그 존립이 걱정되는 상황이죠. 이런 나라들에 과연 어디까지 배타적 경제수역을 인정하여 정당한 이익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이런 문제를 겪지 않는 나라들조차도 서로 접하는 이웃 국가가 어떠한지에 따라 EEZ는 크게 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EEZ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영해가 불안정해지기도 합니다. 


남극과 같은 무인지대는 어떠한가? 강대국은 종종 절실한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이른바 "힘의 투사(p211)"를 위해 실력 행사 또는 어깃장을 놓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북극해 등 전통적인 현지 강국들이 맞보고 있는 지역에서조차 러시아 등이 과도한 권리 주장을 하기도 하죠. 무인지대가 아닌 곳에서도 분쟁은 벌어지는데 근래 들어 대만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타이페이 정부와 그 국민들이 중국 본토와 진행 중인 신경전이 그것입니다. 이 분쟁 역시 여차하면 열전(hot war)으로 비화할 수 있습니다.


솅겐 조약은 EU에 가입한 모든 나라가 국경을 여는 의무를 부과하는데 여기에 동의할 수 없었던 영국이 탈퇴하여 2016년에 큰 소란이 있었습니다. 꼭 EU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이제는 월경자들을 심사하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스마트 국경(의 문제)"로 규정합니다. 이것이 만약 해킹이라도 되면, 국경 자체의 기능이 침해될 뿐 아니라 개인정보의 완결성이 문제되는 등 그 여파가 큽니다. 


책에서는 국경의 우주로의 확장, 또 팬데믹 시대에 질병 관리 문제와 연결하여 국경을 입체적으로 고찰하고 통찰합니다. 어떤 제도, 시스템이건 간에 시대가 지나면 그 효용이 다하거나 더 이상 온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지혜를 안출하여, 시스템이 인간의 살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장애물로 행세하는 끔찍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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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우주를 건너는 너에게 - 수학자 김민형 교수가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김민형 지음, 황근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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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멋진 답을 찾아보렴." 우리가 선현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고 과거의 지식을 배우는 것도 뜻깊은 활동이지만, 문제를 스스로 설정하고 그 답을 스스로 찾아나서는 것도 멋있는 모습입니다. 동화 <피터 팬>의 결말부에 "젖은 미소"라는 표현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 뜻은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을 뜻한다고 합니다. 지금 이 책은 저자 김민형 교수님이 그 아들 오신 군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벌써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나 개정한 내용이라고 하는군요. 그래서인지 IBM에서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 "딥 블루"에 대한 언급도 있고 여러 모로 시대상이 반영된 대목이 있습니다. 


여튼 저자는 여기서 "목적 없이 유식하기만 한 것, 뛰어난 성능으로 계산을 해 내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지 아들에게, 혹은 자신에게 반문합니다. 저자는 영국에 체류하면서 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곡 <포스터스 박사의...>의 연극판을 관람(p39)합니다. 물론 다 아는 대로 이 작품은 한참 뒤 괴테가 극시로 확대 창작한 <파우스트>의 원전이기도 하죠. 이 이야기에서 포스터스 박사, 혹은 파우스트는 대체 왜 악마한테 영혼을 팔았을까? 결국 그가 얻어낸 건 하찮은 잔재주일 뿐 아닌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근본이 되는 지혜, 삶의 궁극의 비의에는 여전히 눈이 먼 채, 국소적인 디테일 몇을 알았다고 그것이 거대한 성취가 못 됨을 제발 잊지 말고 살자는 취지이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디테일을 모르고 기초도 채 마련되지 못한 거대담론의 허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결국 삶의 개별 진실을 판판이 놓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오류임은 마찬가지입니다. 의사이기도 했던 예전 말레이시아의 총리 마하티르는 "과학은 어떻게만 가르쳐 주지, 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대답이 낡아빠진(때로 해롭기까지 한) 종교 담론에서 낱낱이 찾아지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p67에서 저자는 <포스터스 박사> 이야기를 다시 꺼냅니다. 연극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건 독자인 제 생각에는, 지금 수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첨단에서 세계 최고의 지성인들과 대화하며 업적을 공유하는 저자이지만, 문득 그 모든 디테일에 대한 천착이 다 무슨 소용인가, 어떤 지적인 성장이 과연 영혼의 성장과 비례하는가(p47)에 대한 끝없는 회의를 떨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아드님에게 말합니다. "때로는 시 읽는 기쁨을 느껴 보렴."


"모든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기독교의 구약에 나오는 거인 골리앗을 위시로 한 블레셋(필리스틴) 사람들은, 실제로는 "집을 잃어버린 미케네 인, 트로이 원정 등으로 주인이 집을 비운 새에 탈출한 도리아의 노예 등이 패를 이뤄 떠돌다 가나안에 들어온(p29)" 것이라고 학자들이 추정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 즉 일견 아무 관련도 없어 보이는 그리스 설화와 유대인들의 전설이 절묘한 교차점을 찾는 이 사연이 너무도 매혹적이지 않냐고 합니다. 아마 저자는, 일견 모두 파편화되어 아무 연관점이 없어 보이는 수학 각 분야의 지식, 혹은 물리학 각 분야의 지식들이 언젠가는 거대한 합일점을 찾아 하나의 맥락에서 그 모든 의문들을 풀어 주는 날이 오지 않겠냐는 어떤 기대를 갖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닐까요? 


p121에는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가 논의되는데 저자는 그의 광범위한 사상 중 "공장에서 부품으로 노예처럼 노동하기보다 전원에서 사는 삶이 더 낫다"는 대목을 꺼냅니다. p122에 나온 그의 그림 세 점 중 첫번째 것은 폴 데이비스의 <God and new...>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죠(구판). 윌리엄 블레이크는 토머스 해리스가 쓴 스릴러 장편 <레드 드래곤>에서 핵심 테마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많은 고뇌를 갖고 산 사람의 작품은 그 고뇌의 흔적이 작품에 그대로 배어 있기에 후세 사람들에게도 끝없는 생각의 소재를 던져 주기도 하죠. 천주교에서 첫째로 꼽는 "교사" 바울로와, 신교의 토대를 놓은 마르틴 루터에 대한 (균형 잡힌) 언급도 흥미롭습니다. 


"오늘날 과학의 최대 수수께끼는 큰 대상의 이론을 어떻게 하면 작은 대상의 이론과 정확히 접목할 것이냐 하는 거야. 다시 말하면 중력이 어떻게 양자역학과 접목되어서 양자중력 이론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하고 싶은 거지(p163)." 그러게 말입니다. 양자역학의 역설은 현재 많은 이들에 의해, 그저 역설만은 아님이 점점 밝혀지고 있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정작 완강한 신비에 싸인 영역은 중력이겠죠. 접목은 고사하고 중력 자체의 본질도 명쾌히 해명이 못 되었으니 말입니다. 수학적 매개 이론이 먼저 밝혀지고 그 신비를 말로 풀어내는 과정이 이후에 이어질까요, 아니면 말로 먼저 (어렴풋하게나마) 감을 잡고 그 다음에 수학적 정당화가 따라갈까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수 속에 깃든 오묘한 조화를 음표로도 표현할 수 있는 쇼팽 같은 천재의 작품도 같이 사랑하게 되나 봅니다. 야상곡에 대한 별난 애정을 숨기지 못하고 스페인 마요르카에 남은 그의 흔적을 거론하자 독일인들이 그런 사연도 있나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들려 줍니다. 한국에서는 마요르카 하면 바로 쇼팽을 떠올릴 정도(p177)인데도 정작 유럽인들이 이를 모르다니... 예전에 배철수씨가 미국에 가서 왕년의 컨트리 락 밴드 CCR을 거론하자 "그게 누구요?"라며 되묻던 미국인들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배철수씨한테는 거의 신앙의 대상과도 같은데 본토에서 정작 인지도가 낮다니 말입니다. 동남아의 한류 팬이 한국까지 와서 어떤 젊은이에게 1970년대 산울림을 묻자 어리둥절해하는 격이라고나 할지. 


가곡이라고 해도 어떤 연주자가 부르냐에 따라 느낌은 사뭇 달라집니다. p245에는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의 CD가 언급되는데 아마 CD라는 매체가 갓 나와 세계의 음악팬들을 처음 찾을 무렵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CD의 세상은 사실 십 년 남짓 지속되었을 뿐이고 1999년에 이미 mp3 포맷이 나오는 통에 기대보다 오래가지를 못했지요. 슈베르트의 가곡 <인 뎀 프륄링>에서 어떤 느낌이 나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학창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큰 소리로 부르던 여러 명곡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 좋고 벅찬 느낌을 자신의 분신인 아들과 고스란히 나누고 싶은 부정(父情), 우리 독자들도 공유할 수 있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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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에게 - 내 몫이 아닌 비합리적 죄책감과 이별하기
일자 샌드 지음, 정지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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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인인 저자 일자 샌드는 심리치료사, 상담 전문가, 목사, 교수 등 다채로운 경력을 지닌 분이고 과학 저널인 <뇌와 행동>에 실린 논문으로 극찬을 받았다고 책날개에 나옵니다. 신학과 심리학, 뇌과학 등의 분야를 두루 넘나드는 저자는 드물게 보는 것 같아서 평소보다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네요. 


책의 주제는 "과도한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란, 죄책감이 없다면 그건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죄책감이 없는 사람과 과한 사람, 둘 중 하나를 조직에서 골라야 한다면 당연 후자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죄책감은 그 사람 자신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조직에서도 그 직원의 효용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겠으므로 손해가 됩니다. 또 신상필벌이 확실해야 조직이 잘 돌아가니만큼 엉뚱한 사람이 책임을 뒤집어쓴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겠습니다. 


저자는 "당신이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왜 당신이 죄책감을 갖는가?"라고 묻습니다. 또 저자는 "한 국가의 사법 시스템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운영된다(p50)"고 덧붙입니다. 인과관계도 선명하게 따져야 할 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법정은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저자는 "어려서 겪은 문제 때문에 현재까지 괴로워하는 엄마"라든가 "갑자기 불어온 폭풍우" 같은 걸로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죄책감을 좀 느껴야 할 상황도 있을 것입니다. 독자인 저는 지금 우연히 이 책과, 원로 소설가 최일남 선생의 <마(馬)>라는 작품을 함께 읽는 중인데, 작중에서 주인공 길중은 그 처 춘자를 제때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결국 폭풍우 속에 길에서 죽게 만듭니다. 이런 경우는 남편으로서 임신 중인 아내에 대해 보호 의무를 충분히 다하지 않았기에 그런 끔찍한 결과가 벌어졌으므로, 폭풍우나 도로 교통 사정의 열악함과는 별개로 그의 귀책 사유가 분명하므로, 평생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하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죄책감을 좀 느껴야 할 인간들은 뻔뻔스럽게 일상을 잘 사는 수가 많더군요. 


이 책에는 딸의 난독증(dyslexia)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느 어머니의 내담 사례가 나옵니다. 저자는 일단 딸의 병을 고치는 게 가장 급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시적이든 항구적이든 간에 딸의 난독증에 엄마 소피가 얼마나 원인을 제공했는지부터 분석합니다. 딸의 난독증이 다 나아 책 같은 걸 문제 없이 읽게 되더라도, 엄마는 그 죄책감의 후유증으로 한동안 고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를 보면, 어려서 자칫 폐병으로 딸을 죽게 할 뻔한 어머니가 그 죄책감 때문에 헬리콥터맘이 되어 과잉보호를 벌여서 딸을 다른 방법으로 망치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그 부모의 죄책감은 별개의 증상으로 보고 그 원인을 따로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양심의 가책, 혹은 죄책감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거의 모든 심리학자가 동의하는 사항이라면서 인간 감정의 구성요소를 넷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 분노 2) 두려움 3) 슬픔 4) 행복. 사람의 어떤 감정도 이 네 가지 기본 요소가 합하여(혹은 단독으로) 작용되며, 저 네 가지는 더 잘게 쪼개기 힘듭니다. 이 중에서 "슬픔"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다고 합니다(p29). 우리 상식으로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슬픔이 큰 문제들의 원인일 듯한데 말이죠. 정작 큰 문제를 일으키는 건 "분노"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책의 주제인 "죄책감"은 저 네 가지 기본 감정 중 어떤 것에 의해 생길까요? 이건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책에서는 두려움이 70%, (내 안으로 향한) 분노 20%, 슬픔 8%, 행복감 2%인 죄책감이 나옵니다.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어떤 경우에 드는 죄책감이냐에 따라 저 구성비는 달라진다는 거죠. 구성 성분 중에 심지어 (비록 그 비중이 적다고는 하나) "행복"도 있다는 게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나를 지치게 하는 건 "나 자신을 향한 분노"입니다. 물론 내가 정말로 잘못했다면 이런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비생산적이고 "사람 잡는" 감정의 희생양으로 나를 계속 방치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책에서 권하는 방법은, 마틴이라는 내담자의 예(p60)를 통해, 주치의 선생, 직장(의 상사), 부모님, 여자친구 등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것입니다. "왜 선생님은 더 효과적인 방법을 내게 찾아주지 못하시나요?" "부장님은 부하직원을 그런 식으로밖에 다루지 못하십니까?" 이런 건 확실히, 실제 그 편지를 당사자에게 보내지는 않더라도 한 번 정도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중얼중얼하는 게 나쁜 버릇이냐?"고 묻던데, 남들 보는 앞에서 그러면 안 되겠지만 그 사람이 뭔가 마음에 쌓인 게 많아서 그런 식으로라도 풀어서 속이 시원해진다면 그것 역시 정신에 병이 들지 않게 하는 하나의 방법일 듯합니다. 


이 책에서는 과도한 피해의식으로 인해 오히려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자신은 피해자라고 생각하면서 그 "덫"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제6장에서 이런 유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이 하이라이트는 오히려 이 후반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주제는 "나의 죄책감"인데 왜 이런 유형이 분석되는 걸까요? 조직이든 어떤 공간이든 간에, 과도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좀먹는 사람 옆에는, 반드시 이런 가짜 피해자가 도사리면서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유형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가짜 피해자한테 제 정신을 차리게 해 줘야 엉뚱한 사람이 죄책감 때문에 고생을 않게 된다는 게 책의 주장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이런 처방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종의 "반전"이었습니다. 


피해의식에 가득한 사람들 중에는, 정말로 가짜 피해의식에 자신이 속아 빠져나오지 못하는, 크게 보아 그들도 일종의 피해자이기는 한 사람도 있으나, 피해의식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서는 남들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가로채며, 남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종하려는 끔찍한 의도를 가진 인간도 있습니다. 이런 유형은 각자가 알아서 특별히 경계하면서 천천히 "손절"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책에서는 첫번째 유형, 즉 의도는 아니지만 어쩌다 피해의식을 갖게 되어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자신도 스스로 위축된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이 책에서는 좋은 퇴행과 나쁜 퇴행을 나눕니다. 퇴행은 어른답지 못하고 아이와도 같은 무책임한 행동을 가리키지만, 정말 내 감정이 슬픔에 북받쳐 감당이 안 될 때는 아이처럼 체면 던져 버리고 목놓아 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겁니다. 이와는 달리 나쁜 퇴행은 자신이 그 정도까지 힘들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남의 도움을 별 필요도 없이 계속 바라는 상태입니다. 피해의식에 가득한 사람이 엄청난 민폐를 끼칠 때 그 주변 사람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저자는 그렇게 하는 사람의 감정이 "분노"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점을 빨리 인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들어 주는 사람 입장에서 더 이상 미안함을 안 느끼고, 아 이 이상은 들어줄 필요가 없다며 알아서 선을 긋게 된다고 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가, 또 실제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만약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이는 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다면, 우리의 제한된 역량이나마 그것에 집중하여 조금이라도 내 생을 행복하고 더 낫게 개선할 수 있게 되죠. 이 정도로도 우리는 자신을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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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 전 학부모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질문 TOP 90
안상현 지음 / 메이트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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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올바른 성장, 학교 적응 등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가장 절실한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학부모이겠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해 올바른 답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부모님 품을 이제 벗어나서 학교에 막 적응해 가는 아이들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분들은 아마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일 것입니다. 이 책은 어떤 번거로운 개인적 회상이나 느낌은 최소로 줄이고 책 펴자마자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부터 단도직입으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비소집은 꼭 가야하는가? 사실 어떤 부모님이 예비소집을 빠지겠습니까만 이게 꼭 필요한 것인지는 의문이 들 때도 있고 간혹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불참해야 하는 부모님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비 소집이 5단계로 진행된다는 말은 이 책을 통해 개인적으로 처음 알았습니다. 예사로 봤는데 확실히 기술적으로는 이런 면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모범 답안을 알려 주면서도 "현실적으로" 학부형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부분은 그것만 딱 짚어서 또 알려 준다는 겁니다. 5단계 중 진짜 알아야 하는 건 3단계부터이니 정 시간이 없는 부모님들은 거기서부터 읽으면 된다고 하는데 책이 편집도 이쁘게 되어 있어서 3단계를 찾아가기도(?) 쉽습니다. 핵심은, 혹 못 가시는 분들은 학교에 미리 전화를 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런 예비소집을 시행하는 건 우리 모두가 짐작할 만한 그런 이유(가정 폭력 등)가 있습니다. 


한글은 꼭 떼어야 하는가? 정규 교과 과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다 배려가 되지 않겠나 싶지만 남들 다 하는 걸 혼자만 못하면 애가 따돌림 당할 수 있다는 부모님의 우려는 너무도 당연합니다. 선생님은 참 모범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답을 해 줍니다. 우선 7~80% 정도는 한글을 이해하고 들어오지만 아주 능숙한 편도 아니라는 겁니다. 또 1-1학기에는 받아쓰기, 일기 같은 걸 안 시킨다고 합니다. 아이들한테 부담을 안 주기 위해서라는 거죠. 그러니 혹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가 입학이 임박했는데 한글을 모른다 해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1-1 여름방학 기간이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고 "나는 1-1때 과연 받아쓰기, 일기쓰기를 했던가?"를 되돌아 보았습니다. 1-1이 너무 오래전이라 생각이 안 나더군요(그 이후에는 엄청 빡세게 하긴 했습니다만).


이 책엔 참 별의별 질문이 다 있습니다. 그 중에는 "내년에는 저 친구와 같은 반을 떼고 싶은데 방법이 있나요?" 같은 것도 나오네요. 이 질문뿐 아니라 친구 관계라는 게 아무래도 부모님 입장에서는 민감한 문제라서인지 아이의 친구관계에 대한 질문만 거의 한 챕터를 차지합니다. 내가 어떤 의문을 가졌을 때 그게 꼭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사실 갖기는 어려운데, 이 책은 그걸 넘어 생전 품어보지도 못한 질문에 대한 답들도 아주 충실하게 나옵니다. 알차고 유익한 책이란 이런 책을 가리키지 않나 싶습니다. 여튼 위 질문에 대한 답은 네 가지 상황으로 저자가 분류를 해 놓았습니다. 읽어 보니, 반드시 떨어뜨려 놓아야겠다 싶은 것도 있고, 정반대로 이 경우는 둘을 꼭 붙여놔야겠구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부형들이 각각 읽어 보시고 상식선에서 해답을 찾아야겠구나 싶더군요. 이미 비슷한 경우가 몇 십년 동안 축적되었으므로 의외로 내게 큰 도움이 되는 해결책이 있을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소풍"이라고 부르던 걸 요즘은 "현장체험학습"이라고 더 적절한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줄여서 "현체"라고 하죠. 소풍은 그저 김밥 싸들고 놀러가는 거였는데 요즘의 현체는 다른가. p303을 보면 그저 이르름만 달라진 게 아니라 내용 또한 적지않게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저희 때에도 수련활동이란 게 있었고 사실 재수 없는 학급이 하나 걸려들어 귀찮게 야외활동을 하고 오는 식어었으나 현재는 꽤 다르더군요. 수학여행의 정확한 성격에 대해서도 이 책은 잘 설명해 줍니다. 바람직한 학부형이란 자신의 자녀뿐 아니라, 각종 제도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고 담임교사와도 적절한 소통을 하는 분들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런 대목을 잘 읽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각 챕터에는 QR코드가 붙어 있습니다. 스캔하면 저자의 동영상 강의로 이어집니다. 챕터 시작에만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목차에도 따로 쫙 정리가 되어 있어서 독자가 이용하기 편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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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알고, 바로 쓰는 빵빵한 영단어 우리 아이 빵빵 시리즈 7
박빛나 지음, 현상길 감수 / 유앤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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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쉽게 주제를 설명해서 애들한테 인기 높은 "바로 알고 바로 쓰는" 시리즈는 그림도 예쁘고 내용도 잼있어서 어른들도 한번 펴면 몰입하게 됩니다. 일곱번째 책인 이 영단어 편도 박빛나 작가님이 계속 이어가며 내용감수는 현상길 전 교장선생님이 하셨다고 나옵니다. 


캐릭터들 생긴 모습들은 전작과 비슷합니다만 이번에는 반 친구들로 다들 세팅된 것 같습니다. 항상 보면 초자연적인 존재가 하나 등장해서, 아직 나이가 어린 통에 문제를 해결 못 해 고생 중인 친구들을 돕곤 합니다. 이번에는 "잠깐 양호 선생님인 척을 하는(p22)" 헬퍼 유령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학교 안에 평화가 깃들지 않고 자꾸 어떤 소동이 생기는 건, 평화의 상징이 사라져 버린 탓이라고 헬퍼 유령은 말합니다(p25). 그래서, 밤만쥬 모양을 하고 있는 "쥬리"는 그 평화의 상징(뭔지는 아직 모릅니다)을 찾아 낸 후 이 학교의 정신사나운 유령들을 모두 쫓아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재미있는 건, 상황에 맞게 영어 단어를 말하면 학교 안에서 배회하는 유령들이 마법의 주문을 맞은 듯 사라진다는 겁니다. 공격을 해 오는 유령들을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퇴치하기 위해 공격을 해야 한다(p76)는 말은 마치 "최선의 수비는 바로 공격"이라는 오랜 금언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이 말도 밤만쥬 모양을 한 쥬리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적절한 공격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p117의 점토인형 유령은 덩치도 매우 큽니다. 덩치가 "크다"는 점에 유의하여 아이들은 divide라는 영단어를 말합니다. 큰 덩치는 조각조각 나뉘어서 마침내 무력해집니다. 이걸로는 불충분합니다. 쥬리는 "점토가 딱딱하게 마르면(dry) 부서지기 쉽다는 점에 착안하여 break라는 단어까지 함께 말합니다. 점토 유령은 이제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유령 퇴치와는 직접 관계가 없으나 p124에서 주인공들은 갖가지 꽃말 이름을 외우면서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해바라기, 장미, 백합, 나팔꽃...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들은 충격적인 경험을 하는데 교장선생님이 알고보니 모양만 그렇게 꾸민 가짜였고 그 정체는 유령이었으며 자신도 영단어를 자유자재로 외우며 드디어 주인공들을 위험으로 몰고간다는 거죠. 그러나 역시 주인공들은 지혜를 발휘하여 이것도 극복하고 쓰러져 있던 진짜 교장선생님도 돕고 "평화의 상징"인 화살표도 찾습니다. 이제 최종 목적인 평화의 상징만 구하면 됩니다. 


이 작품은 생각보다 서사가 꽤 깁니다. 시리즈의 앞 작품들보다 모험이 더 어려워졌고 퀘스트도 복잡합니다. 상대해야 할 적은 더 까다롭고 강합니다. 아마 영어가 (앞 주제들보다) 공부하기 더 어려운 과목이라서일까요? 그래서인지 결말은 더 통쾌합니다. 아이들 힘만으로만 본래 이길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들을, 어떤 조력자를 통해 결국은 무찌르고 평화를 되찾는 설정은 앞 작품들과 같습니다. 영단어들도 공부하고 해피 엔딩 덕분에 기분도 좋아지기에 더욱 보람 있는 독서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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