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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전쟁 - 세금과 복지의 정치경제학
전주성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2월
평점 :
정부에서 국민에게 베푸는 복지는 어떤 특혜의 개념이 아니라 이제 어떤 보편적인 권리의 일종이 되어 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어떠해야 하며, 무엇을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입니다. 이 책에서는
1) 먼저 최종적인 정책 목표가 무엇일지부터 정해야 하며
2) 올바른 여론 형성을 통해 정책이 결정되어야 하므로, 정책 결정자는 물론 대중 사이에 뿌리 깊게 남은 각종 편견도 교정할 필요가 있고(예: 특히 "증세 없이는 복지 없다" 같은 주장이 조폭의 구호(p14)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3) 특정 (재정)지출이 어떤 우선순위에 의해 결정될지 그 원칙을 합리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합니다.
우선 유례가 없던 전염병이 유행하다 보니 자영업자 등의 피해가 커졌습니다. 이들에게 현금성으로 보상을 살포(?)하는 정책은 당장 큰 호응을 부를 수 있고 이는 포퓰리즘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당장의 현금"보다 "앞으로 살아갈 대책의 마련(p67)"이 보다 근본적인 도움이며, 이를 위해 각종 인프라 구조를 바꾸어 이둘에게 어떤 항구적인 수입이 보다 쉽게 흘러들어올 수 있게 하는 대책이 훨씬 유익하리라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조세 구조부터 선진국형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책 초두부터 저자는 한국이 각종 간접세 등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소득세가 차지하는 세수의 비중이 적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면 감면 조항을 대거 폐지 축소하여(p93) 인위적으로 소득세의 비중을 올릴 것인가, 여기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세원 자체를 이동시켜(소득세 아닌 다른 곳으로) 엉뚱하게 중산층과 서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책 곳곳에서 거듭 강조되는 주장은 "저소득층이라 해도 세금은 적지 않게 부담하며, 단지 '소득세'를 덜 내거나 안 낼 뿐이다"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한국이 소득세 세원 위주로 돌아간다면 저소득층의 낮은 부담을 지적할 수 있으나 그렇지가 않으므로 저런 지적은 틀린 것이라는 게 저자의 입장이죠. 아무래도, 소득세라는 게 가장 조세저항이 큰 영역이다 보니, 소득세를 내는 계층의 체감적 기여도가 더 큰 양 체감의 착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결론도 나올 법합니다. 반대로 저소득층도 알게 모르게 세금을 내면서도 자신은 과도한 혜택을 받는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겠고 말입니다.
또 소득의 절대금액 자체가 판단의 기준이 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말씀입니다. 자영업자의 5000만원 소득은 직장인의 동일한 5000만원과 동일하게 평가되기 어려운 이유는, 후자의 경우 정해진 (하루) 8시간 노동 외에 다른 여가를 활용할 수 있기에 자영업자의 그것보다 질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입니다(p97). 이런 숨겨진 요소 역시 정책 결정시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한국은 유독 목적세의 각종 세목이 많은데, 저자는 이에 대해 재정 투명성 증가로 조세 저항을 줄이는 데에 이 제도가 요긴하게 쓰여 온 면이 있다(p129)고 합니다. 확실히, 당신이 지금 내는 이 부분의 세금은 이런 목적에만 쓰인다고 명확히 정하면 꾹 참고 내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것이 아무리 국가 운용에 필요하여 소액씩을 징수한다 해도 어디에 쓰이는지 명확하지가 못한 세금은 예나 지금이나 징수가 어렵습니다. 저자는 이제 보편적 복지로 지출 구조가 바뀌면 이런 목적세가 대거 개편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이 책 여기저기에서 자주 강조되는 건, 부자 증세는 결코 부당하지 않으며 "이미 부담을 많이 하고 있는데 더 부담시키는 게 부당한 게 아니라, 애초에 부자 중심으로 경제 구조가 짜여졌으므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핵심입니다. 사실 일정 수준의 자본이 형성되었을 때 추가로 별 노력 없이 들어오는 부분이 지나치게 큰 것도 사실이고 이 모든 것이 과거 노동의 대가라고 보기에도 모호한 대목이 없지 않습니다. 앞에서 세원의 이동으로 납세를 피한다고 했는데 그 예로 p157 같은 데서 거론되는 게 "양도소득세"입니다. 당장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잠시 자산을 lock-in해서 이의 납부를 유예 내지 회피할 수 있다는 거죠.
부자이기만 하면 세금을 그저 더 내야 하는가, 저자는 물론 이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그런 단순 논리로는 "멀리 가기 힘들다"고도 합니다(p189). 편익원칙, 자원분배왜곡크기 등의 부가 원칙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하며, 특히 편익원칙에 대해 책에서는 여러 예를 들며 자세히 설명합니다. 당신의 온전한 능력으로 그만한 부를 벌 수 있었겠느냐는 온당한 질문이 제기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또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사치세의 효율 비용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는 "생각보다 크지는 않을 것(p205)"이라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을 할 때 대개의 독자들은 아 이분 진보성향의 저자구나 하고 지레짐작하기 쉽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게 개인적 느낌입니다. 우선 요즘 진보성향 저자들은 대뜸 "성장의 종말"을 논하는 게 보통인데 저자는 오히려 "성장이야말로 최고의 복지(p232)"라는 주장을 폅니다. 경제 전체가 활력에 가득차서 성장을 거듭하면 설령 고율과세가 이뤄지더라도 저항감도 적고 오히려 "당연히 내야 할 돈"이라며 징수에 더 많은 편의가 실리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습니다. 진영의 좌우를 갈라 소모적 논쟁만 할 것이 아니라 좌우가 어느 지점에서 편한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 그 합일점을 찾는 게 먼저일 수도 있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