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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지식사전 - 애호가들을 위한 위스키 상식 324
한스 오프링가 지음, 임지연 옮김 / 미래지식 / 2022년 4월
평점 :
와인 못지 않게 한국인들이 요즘 부쩍 관심 갖게 된 주종이 위스키인 것 같습니다. 사실 아직 가난했던 1960년대에도 몇몇 위스키 브랜드는 한국에서 (일부 계층 사이에서나마) 무척 큰 인기를 끌었고 이제 다시 제2의 붐이 일고 있죠. 증류주 특유의 풍취라든가, 남성들끼리 중후한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잘 어울리는 속성 등이 그 이유인 듯 보입니다. 저자는 최고의 위스키 전문가이며 우리 동시대인이기 때문에, 이 책은 충분히 권위를 갖추었으면서도 잘 업데이트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용은 좋지만 약간 올드한 정보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라서 더 좋습니다. 그래서 원서 제목도 "필드 가이드"라는 말이 들어갔나 봅니다. 필드 가이드로만 쓰기에는 내용이 또 넉넉하지만 말입니다.

한국도 대량으로 제조하는 상품과 전통주 등 소량 특산품에 가하는 규제가 서로 다릅니다. p31을 보면 세계의 위스키 제조 현황에 대한 정보가 나오는데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소규모 양조업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미 주 정부들이 규제를 대거 해제했다"고도 알려 줍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위스키는 1) 깨끗한 물, 2) 곡물 재배, 3) 효모 등의 최소 요건만 충족하면 어디서나 제조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 점이 와인과 특히 구별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대만, 남아공, 일본, 터키 등에서도 자체 브랜드 개발에 열심이라네요.
p19를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조니 워커"가 사실상 세계 1위의 브랜드입니다. 수치상의 세계 1위는 인도의 "오피서스 초이스"라고 하나 인도 밖에서는 잘 소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외 영화에서 자주 나와 익숙한 "잭 대니얼스", 또 시바스라든가 발렌타인, 시그램 세븐 크라운 등이 언급됩니다. 이 중 어떤 것은 버번이고, 어떤 것은 스카치입니다. p145에 보면 잭 대니얼스가 왜 버번이 아니고 테네시로 분류되는지 간략한, 그러나 명쾌한 이유가 설명됩니다. 이름이 왜 잭 대니얼스인지에 대해서는 p267에 나옵니다.
이 책 제3장의 제목은 "프롬 그레인 투 글래스"입니다. 그만큼 위스키에서는 바탕이 되는 곡물의 특성이 중요하며, 몰트 위스키의 주된 원료인 보리에 대해 자세하고 쉬운 설명이 나옵니다. 이 책은 특히 이론을 체계에 맞춰 길게 서술하는 식이 아니라, 우리 평범한 소비자들이 위스키에 대해 당연히 떠올릴 볍한 의문, 질문들을 먼저 떠올려 주고, 거기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답을 제공해 주는 형식이라서 내용이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는 게 또 큰 장점입니다.
어느 나라이건 인지도와 책임감을 두루 지닌 위스키 메이커에 대해 일정 기준을 충족시켰는지 비교적 엄격한 검사를 행하는 게 보통입니다. 책에도 매싱, 워시백, 언더백, 드래프 등 여러 과정이 언급되는데 우리가 풍취 가득한 위스키라는 반응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려면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증류주는 아무래도 증류 과정이 또 핵심인데 한국의 서민 술인 소주는 대부분 희석식이라서 이 책에서 설며명하는 고급 위스키류의 풍미를 사실 느끼기가 매우 어렵죠. p74에 나오는 트리플 디스틸레이션에 대한 설명을 보면 이런 점이 분명히 확인됩니다. 한국에서도 강남구의 특정 구역을 지나다 보면 이 점을 강조해 놓은 업소가 몇몇 눈에 띕니다. 요즘은 또 던니지다 랙이다 하며 여러 요소가 애호가들의 화제에 오르기도 하는데 책 p76을 보면 둘 사이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영미 소설을 읽다 보면 "캐스크"라는 독특한 저장, 운반 단위가 나오는데 우리가 영화에서 보곤 하는 허리가 볼록한 그 통입니다. 책에는 이런 캐스크에 대한 여러 상식이 설명되며, 아무래도 주류는 자연손실분이라는 게 있는데 더운 기후에서 이런 증발분이 더 많기 마련이며 이걸 "천사의 몫"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블렌드(블렌디드) 위스키도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데 이 책에서는 이걸 독립항목으로 다뤄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런 블렌딩도 마스터가 따로 있으며 p100에서는 "증류가 기교라면 블렌딩은 예술"이라고 하여 오히려 숙성 위스키의 배합을 더 높은 수준의 기술로 쳐 주고 있습니다. 참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p114를 보면 이런 블렌딩이 유행하게 된 건 역사적으로 의외의 계기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출신이 이처럼 비천했지만(?) 오늘날에는 까다로운 혀를 만족시키는 또다른 수단으로 발전했다는 게 역설적이면서도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위에서 일본 위스키를 즐기는 분을 못 봤으나 이런 권위 있는 책에서까지 일본 위스키를 특별히 언급하는 걸 보면 세계적으로는 그 나름의 입지가 있는 듯합니다. 여기서도 "법적으로(p167)" 3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할 것이 요구된다고 합니다. 이런 신뢰가 확실히 지켜져야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대한 일정 충성도를 유지하게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p298 같은 데를 보면 일본 전국에 걸쳐 분포한 증류소를 소개하는 지도가 나오는데 저자께서 일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꽤 높으신 듯도 보입니다(물론 9장에는 세계 각지의 증류소가 다 소개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 책 곳곳에서도 그렇고 보통 알코올 도수를 나타낼 때 ABV라는 단위를 쓰는데 이런 소소한 것도 그냥 당연하다는 듯 넘어가지 않고 p179에서 설명을 해 줍니다. 그래서 이 책은 "상식 사전"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소소하면서도 일반 소비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점을 잘 짚어가며 해소해 준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모든 사물은 그 정체성이 일정 기간 유지되기만 해도 투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p223을 보면 "위스키가 투자 대상이 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저자 나름대로 답을 줍니다. 아마 현실에서 저자에게 이런 점을 자문한 이들이 있었던 듯하며, 저자 자신도 아마 셀러에 위스키를 저장해 두고 즐기는 분이겠으니 이런 생각을 한 번 정도 떠올리는 게 당연합니다. "가용 가능한 예산 범위 안에서 행동하라!" 만고 불변의 진리입니다.
영화에 보면 시골 구석에서 밀주를 만들어 수익을 올리는 소소한 범죄자가 묘사되기도 하는데 그런 밀주를 문샤인이라고 부릅니다. p266에 자세한 설명이 나와서 현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위스키는 의외로 역사의 주요 국면, 주요 인물과 긴밀히 얽힌 대목도 많은데 인류의 영원한 친구 중 하나가 주류라는 이유가 또 있겠습니다.
"상식 사전"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풍부한 정보는 담아야 우리 독자들이 읽고 나서 남는 게 있겠으며 또 의문 나는 게 있을 때마다 요긴하게 참조할 수 있겠습니다. 간단하고 친절하게, 핵심만 잘 가르쳐 주는 책이면서도 권위와 깊이를 잃지 않아서 역시 대가의 저술이다 싶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