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 서양 편 지리로 ‘역사 아는 척하기’ 시리즈
한영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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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할 때, 혹은 그저 재미로 읽어나간다고 해도, 지도를 보고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 어느 지형에서 이러이러한 세계사적 사건이 일어났다면서 입체적으로 이해를 해야 그게 올바른 지식으로 머리에 자리하는 듯합니다. 역사는 추상적인 수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호 뭉치의 암기, 텍스트 위주의 억지 스토리 추종은 독자에게 아무런 교훈이나 각성을 남기지 못합니다. 심지어 역사를 그저 글로만 배운 사람은 극단적으로 왜곡된 어떤 도그마만을 찌꺼기처럼 추출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기까지 합니다. 역사에서 진실을 찾는 노력에 지도가 동반되지 않으면 어떤 위험한 결과가 나올지 모릅니다. 


서남아시아, 중동이라고 하면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만 떠올리는 게 보통이지만 책 p24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듯한 땅 레반트에 대해 설명합니다.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아랍어의 마쉬리크라는 단어로 이곳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라틴어 레반트와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치열한 대립이 전개되는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 지구는 사실 지리적으로 떨어진 곳들입니다. 지도를 통해 이런 사정을 정확히 알지 않으면 왜 그토록 격렬한 갈등상이 벌어져야 하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란도 석유가 많이 나는 사막지대뿐 아니라 험준한 산악지형, 고원 지방이 큰 비중인데 책에서는 이란 영토에서 산악지형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까지 합니다. 한국도 사정이 비슷하죠(고원이나 사막은 거의 없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용맹한 전투종족이 이 지역의 패권을 일단 차지한 후에는 그 주변으로까지 패권을 확장할 수 있었겠습니다. 책에서는 "이란은 중동으로 함께 묶이지만 아랍으로는 엮이지 않음"을 가르치며 이 나라가 오랜 역사에 걸쳐 어떻게 독자적인 정체성을 다졌는지 독자에게 알려 줍니다. 이란이라는 국호 자체가 "아리아"에서 유래했으며 나치가 지어낸 아리아인의 고대 활동상의 실황이 어떠했는지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아리아인이라는 종족이 실재했던 것만은 사실이겠습니다. p51에서는 미국 컨텐츠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에 무관하게, 페르시아라는 문명권은 동시대 그리스보다 더 관대한 편이었다는 평가를 합니다. 


발칸반도가 유럽의 화약고로 불린 건 꼭 1차 대전 직전 시기만의 사정은 아닙니다.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지역의 안정을 책임질 권위도 함께 실종되자 발칸 서부 일대는 세르비아 패권주의가 갑자기 부상하며 "인종 청소"라는 무서운 단어를 전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당시 NATO는 즉각 개입하여 반인도적 만행을 일단 중단시켰지만 "남슬라브인이라는 일체감보다는 종족 간의 적대감이 훨씬 강한(p88)" 정치적 대립상은 현재까지도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세르비아와 매번 붙어다니다가 최근에서야 갈라선 몬테네그로에 대해서도 책은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짚으며 그 정체성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p84의 간략한 지도는 직관적으로 발칸 각 지역의 정체성을 가르칩니다, 


유럽은 원래 남부 지역이 역사 발전을 주도했고 더 풍요로우며 문명화한 삶을 누려 왔습니다. 그러던 게 중세 이후 서서히 북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는데 책에서는 "(그 이유를) 자연지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p102). 남유럽은 본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고, 다만 중동으로부터 더 빨리 선진문명을 전달 받을 수 있었던 이점에 기대었다고 합니다. "꼭 하나가 아니어도 좋은 이유"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유럽은 구태여 하나됨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강점을 지키며 발전해 왔습니다. 다만 대립이 너무 날카롭게 진행되면 이제는 모두가 생존이 힘들어지는 만큼 EU 같은 체제로 수렴점을 형성하는 거겠죠. p106의 지도들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지적처럼 "만성적 분열"과 "만성적 통일"을 전개시킨 두 지역의 개성이 지형에 맞게 발달해 온 이유를 통찰하게 돕습니다. 


미국은 보통 축복받은 땅이라고 말합니다. 광대한 농업 지역, 유전(油田), 쾌적한 주거지, 사막, 산악 지형 등이 골고루 분포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수백 년 동안 살아오면서도 저 북미지역에서는 그닥 발달된 문명권을 일구지 못했습니다.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면서 전에 없던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많은 인구를 부양하는 지역으로 거듭나게 한 건 확실히 초기 유럽 이주민들, 그 중에서도 북부인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러나 책에서는 원주민들의 고통과 19세기 이후 미국이 걷게 된 제국주의적 행보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고찰합니다. p156의 지도는 현대 미국을 인문적으로 구분하여 독자로 하여금 개념을 잡게 해 줍니다. 델라웨어와 메릴랜드를 남부 대서양권에 묶어서 그 위의 중부대서양권, 뉴잉글랜드와 구별 지은 태도가 눈에 띕니다. 


남미는 크게 포르투갈어권과 스페인어권으로 나뉘며, 후자 중에서도 여러 그룹으로 나뉘는데 여기에는 자연지리적 분단 요인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p176의 심플한 지도가 그 이유를 큰 범위에서 알아 보게 돕습니다. p189의 지도는 식민지배를 벗어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남미 대륙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한눈에 알아 보게 합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는 남미 식민지에서 수탈한 부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낭비했다는 말이 있는데(p190), 인플레만 고스란히 떠안고 재화와 자본은 유럽의 나머지 지역이 고스란히 챙긴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죠. 


인류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종족들입니다. p207의 지도는 아프리카 대륙이 얼마나 큰지 비교를 통해 독자에게 알려 줍니다. 아프리카에는 비슷한 모습의 흑인들만 사는 줄 알지만 사실 언어도 다르고 신체적 특징도 지역에 따라, 혹은 같은 지역 안에서도, 현격히 차이가 납니다. 앞으로 한국이 아프리카에 본격 진출하여 현지인들과 공존공영을 도모하려면 이곳에 대한 지리적, 인문적 지식도 늘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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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 한권의책 18
심훈 지음 / 학원사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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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사르비아문고와는 달리 과거 학원사 한권의책 시리즈는 표지들이 상당히 예쁘고 컬러풀했습니다. 이 책도 (제 눈엔) 여전히 그러며, 표지 버프를 받기라도 하는지 등장인물들도 매력이 넘칩니다. 


사실 <상록수>는 이미 근대의 물을 상당히 먹은 시대라서, 지난주에 리뷰했던 신소설류와는 달리 문체도 답답하지 않고 이야기 전개도 시원시원합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모두 알듯 주제의식과 인물들의 지향이 너무나도 빤하게 정해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실제로 읽어 보면 그리 신파조가 아니며 (앞에서 말했듯) 캐릭터 채영신과 박동혁도 그리 판에 박힌 성격이 아닙니다. 물론 둘 다 우국충정과 사명감, 계몽적 민족주의에 쩔어 있는 영혼들이지만 둘이서 티키타카를 벌이기도 하는 등 생각외의 면모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도 어느 "신문사"의 주도로 두 남녀가 운동에 뛰어드는 발단인데, 일단 채영신의 진취적이고 활달한 면모부터가 매력적이고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냅니다. 이 소설이 1935년도에 창작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놀랍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는데 동아일보가 주도한 건 (러시아의 선례를 따) 브나로드 운동이었고, 조선일보 측에서 벌인 건 문자보급운동이었죠. 사실 후자는 당대 기준 영향력이나 인지도가 전자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데도 양사의 경쟁의식 때문에 근자에 와서 더 홍보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소설을 보면 채영신이 스트레스를 받아 암 같은 걸로 죽은 게 아니라 각기병이라고 병명이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사실 각기병은 빈곤으로 인한 영양부족도 영양부족이지만, 원래 도정된 곡류를 섭취하는 문화권에서 빈발하는 질환입니다. 피부가 본디 검은빛에 가까웠던 인류가 동아시아인이나 코카서스인종처럼 되기도 한 건 널리 특정 영양분의 부족 때문이며 이것이 농경혁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유력합니다. 


원작 소설과는 달리 해방 이후 이를 영화로 옮긴 작품은 눈뜨고 보기 민망할 만큼 평면적이고 신파풍이므로 안 보시는 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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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 미디어워치 세계 자유·보수의 소리 총서 4
조너선 맨소프 지음, 김동규 옮김 / 미디어워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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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21세기에 접어들며 이른바 "대국굴기"의 기치를 내세우고 세계 곳곳에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펴 왔습니다. 물론 자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노력은 어느 나라나 하는 것이고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심지어 한국 같은 중진국도 그 능력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펼쳐 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그 방향성이 대단히 공격적이거나 심지어 약탈적이기까지 했고, 상대국의 이해를 심각히 침해하는 결과도 빈발했기에 여러 이유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이 정도로까지 주목을 받지는 않았으나, 최근 몇 년 들어 심각하게 외교 마찰까지 빚어지는 단계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 책들도 다양한 저자들로부터 저술되곤 하는 것입니다. 


"시 주석은, 2차 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핵심이 되어 온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p27)." 물론 이는 이 책 저자의 주장이며, 독자인 저는 개인적으로 시 주석이 여태 그런 분명한 워딩으로 "인권에 관심이 없다"고 한 적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2015년 필리핀과의 영토 분쟁 당시 헤이그의 국제 재판소에서 내려진 판결을 두고 중국 정부가 낸 성명은 명백히 국제 질서의 근간을 부정하는 표현으로 가득했습니다. 또 위구르, 티벳 등지에서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도 논점을 흐리거나 박약한 근거만을 들어 파렴치한 변명을 일삼는 태도 등으로 볼 때 저자의 저런 주장, 평가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면이 있죠. 


전(前) 대통령 트럼프가 화웨이에 대해 제재를 내릴 때, 평소에는 미국과 일정 부분 대립각을 세워 온 캐나다 정부와 그 총리가 유독 이 사안에 대해서는 멍완저우를 구금하는 등 즉각 보조를 맞추기도 했습니다. 이는 캐나다 정부가 종래 반중 스탠스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간 중국이 보여 온 행보에 대해 드디어 우려 섞인 반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캐나다에는 중국계가 많이 살며, 이들은 그간 거침없이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해 왔기 때문에 과연 인종차별의 실태가 북미에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물론 존재하지만).


파룬궁 같은 경우 우리 나라에서도 서울, 경기 외곽 등에서 그 옹호자들이 전단지도 나눠 주고 비교적 활발히 움직이는 편입니다. 이들의 움직임이 역사가 오래된 만큼 중국 정부측의 대응도 뚜렷한데, 책에서는 이를 두고 "(중국 정부의) 혐오 선전(p55)"이라 규정합니다. 이 대목을 읽어 보면, 이미 2003년 사스(급성 호흡기 증후군) 유행 당시부터 중국 정부가 특히 캐나다 같은 곳에서 아주 열심히, 소송 같은 적극적 조치도 불사하며 파룬궁에 대응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 저 즈음만 해도 중국에 대한 이미지기 그리 나쁘지 않았고 젊은이들이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등 미래를 좌우할 강대국으로 존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한국의 기독교(개신교) 분포를 보면 개화기에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등에서 온 선교사들의 활동 여부에 따라 현재의 교파 정착이 이뤄진 흔적이 뚜렷하죠. 이 책에서는 예컨대 p105 같은 곳에서 "캐나다 국민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 선교사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것이었으며..."라는 구절을 통해 기독교 선교 활동이 이 나라의 가치관과 정체성 형성에 어느 정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설명합니다. 캐나다는 또한 프랑스계 주민들의 지분도 매우 높은 나라이므로 로마 가톨릭의 영향력도 아직은 무시 못합니다. 책의 이 파트에서는 20세기 전반, 즉 아직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기 전에 캐나다의 선교사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또 당시의 중화민국 정부와 서양 여러 나라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제법 자세히 조망합니다. 이 책의 가치는 이처럼 현재의 상황을 지난 역사에 비추어 입체적 맥락에서 들여다보는 데에도 넉넉히 있다고 하겠습니다. 


미국 등 북미에도 좌파 성향의 개인, 단체는 언제나 있었고 그 뿌리도 깊습니다. 냉전 시대에도 이들은 대중에 무시 못할 영향력을 행사했었으며 이 책에서는 체스터 로닝 같은 좌파 포퓰리스트(책의 표현입니다)에 대해 그와 저우언라이(주은래)와의 관계까지 거론하며 자세히 설명합니다. 선교사라고 해서 언제나 우파 스탠스이리라는 짐작이 어느 정도 큰 오류를 낳을 수 있는지도 잘 일깨워주는 대목입니다. 이 사람은 캐나다가 중국을 1970년대에 승인하는 데 유의미한 기여를 했다는 게 책의 평가이며, 그저 미국의 키신저와 닉슨만 알고 있던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받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베트남 전쟁은 해당 국가의 운명을 크게 바꾸었을 뿐 아니라 미국 등 서양 여러 나라에서의 세대간 대립을 격렬히 부르는 역할도 했습니다. 빌 클린턴 부부로 대변되는 특정 세대는 이후 미국 정치가 좌성향으로 선회하는 주체 노릇이었으며 프랑스의 이른바 68세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5장의 제목은 "중국이 미국의 뒷마당에 만들어 놓은 친구"인데, 그동안 미국의 뒷마당이라면 쿠바 등 중남미 국가들만 생각했고 캐나다는 오랜 동안 영국의 주권이 미쳐 온, 어찌보면 미국보다도 더 서구적인 나라로 여겨 왔으나 이 책은 중국이 오랜 동안 이 나라에 공을 들여 왔다는 걸 설명하고자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자의 관점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캐나다는 지금(1986년 당시) 중국이라는 환상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중국과 대화를 많이 나눠도, 중국이 캐나다를 (자신과 같은) 대국으로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중국은 소련, 동유럽 국가들과 더 닮은 나라이며, 폐쇄된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들 특유의 이기주의, 자기중심성을 노출한다. 게다가 이 나라는 제국으로 군림해 온 오랜 과거 역사를 들먹이며 극단적인 우월감을 표현한다.(p212)" 이게 1986년 당시 주중 캐나다 대사의 보고 문건 중에 나오는 문장들인데 오늘날 우리가 중국에 대해 갖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뿐만 아니라 간만에 문호를 개방하고 세계를 맞이했던 과거의 대국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호기심과 동경, 반가움 등도 우리가 한때 지녔던 느낌과 비슷합니다. 배울 점도 많고 새롭게 사귀게 된,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친구에 대한 급작스러운 실망감(을 넘어 공포감)이라는 게 캐나다와 우리가 닮았다는 뜻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캐나다에는 중국계가 많이 삽니다. 한국은 본래 화교의 불모지에 가까웠고 몇 안 되는 화교들도 사실상 한국인과 별 차이가 없을 만큼 완벽히 동화되었었으나 최근 조선족의 대거 이주 때문에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여튼 중국계가 많이 사는 이유 때문에 캐나다에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언론 매체가 발달해 있으며, 이런 기관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은 마치 몇 해 전 홍콩의 저널리스트들이 경험한 것과 유사한 곤경을 츠치르는 중이라고 합니다. 사실 책의 이런 대목뿐 아니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여러 명이 있습니다)에서 발표하는 성명 같은 것을 보면, 정말 외교관의 처신이 맞는지가 의심스러울 만큼 원색적이고 무례한 언사들이 많습니다. 


11장에서는 특히 화웨이가 그간 캐나다의 지적재산권을 어떻게 약탈해 왔는지를 자세히 분석합니다.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실상만으로도, 중국 기업(을 가장한 정부의 에이전시)들의 기술 침해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는데 사실 이게 남의 이야기하듯 할 게 아닙니다. 당장 한국만 해도 중국에게 핵심 기술을 탈탈 털려 바로 경쟁력을 잃는 경우가 많고, 이처럼 명백한 불법이 있는데도 "원래 중국이 한국을 추월하게 되어 있었지" 같은, 체념인지 자포자기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태도로 현실을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합니다. 중국이 과거에 얼마나 위대했건 관계 없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자존과 생명을 지키고 번영을 이어가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처럼 사대주의에 흠뻑 젖어 간도 쓸개도 다 내어 주는 게 약소국으로서의 분수를 지키고 전통을 따라 효도(?)하는 길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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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꽃밭 그림, 소설을 읽다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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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인호 작가님은 1970년대 내내 베스트셀러 작가였고 엄청난 다작을 한 분입니다. 대중성 면에서 가히 최고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렇다고 작품성이 아주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대체로는). 요즘 같으면 이런 작가가 나오기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집에는 그의 여러 단편들이 수록되었는데 여기에 더해 눈길을 끄는 건 화가 김점선의 일러스트입니다. "기확자의 물음에 화가가 말한다"를 읽어 보면 그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겠습니다. 


"순례자의 꽃밭"이라는 제목을 정확히 가진 작품은 없고 그의 잘 알려진 단편 <순례자>가 있긴 합니다. 그의 명작들이 (더군다나 그림까지 곁들여) 이처럼 한데 모였으니 "앤솔로지"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한 "꽃다발"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제가 눈여겨 본 작품은 <천상의 계곡>입니다. 노년에 접어든 이들의 사랑, 집착, 회한 등을 다뤘는데 어찌보면 시대를 앞서간 면이 있습니다. 최인호 작가가 이 작품을 썼을 때면 아직 한창 활동을 하던 장년기였는데 참 소재를 다양한 곳에서 찾았다 싶기도 합니다. 


두 노인 남녀의 애틋한 로맨스가 제재인데, 그나마 남 눈치를 보느라 감정을 나누기는커녕 제대로 데이트를물리적으로 진행도 못합니다. 자녀들이 일단 눈치를 주고, 동료(?) 노인들도 곱지 않은 시선을 주는 게 특이합니다. 노년에 접어든 이들은 경제적으로도 궁핍하고 건강도 좋지 못한데, 당시 사회가 그런 데에까지 배려를 하지 못한 탓이 크기도 하죠. 단 이건 21세기인 지금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며 작가가 딱히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서사는 아니라고 보입니다. 


여성 노인에게는 1남 2녀가 있는데 아들이 그나마 어머니를 이해하는 편이고 막내딸이 가장 극성스럽게 반대합니다. "내 시댁에서 뭐라고 하겠어?" 근데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저 말도 이해가 가는 면이 있습니다. 사실 요즘이라고 자녀들이 이 문제를 흔쾌히 찬성하고 나서겠습니까. 당연히 극력 반대를 하겠고, 경우에 따라 이는 상당한 추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자에 대해서는 당연히 강력한 형사 조치에 나서야 하겠고 말입니다. 


이 작품은 TV로도 극화되었는데 원작과 드라마는 설정 면에서 다른 점이 많습니다. 드라마는 시대가 1980년대라서 한국이 이제 먹고사는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듯한 풍요로운 아파트촌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자녀들은 모두 변변한 사회적 기반을 다진 상태에서 이제 간신히 노년 로맨스에 시선을 줄 여유가 생긴 국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긍/부정은 다음 문제이며). 어머니 역의 여운계씨와 맏아들 김세윤 씨는 나이 차가 얼마 나지도 않으며 오히려 부인(며느리)인 김창숙 씨와 훨씬 차이가 날 정도입니다. 노인 남성 역엔 엄청난 피지컬을 자랑하는 김성겸씨가 나오는데 이분도 김세윤씨와 불과 한 살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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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 범우문고 277
백시종 지음 / 범우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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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종 씨는 장편 <돈황제>로 1990년대초 큰 화제가 되었던 문제적 작가입니다. 저 책은 몇 년 전 어느 출판사에서 다시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배경은 어느 어촌이며 연근해로 출항하여 어로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주인공은 아주 낡은 어선을 한 척 보유했을 뿐이지만 때를 잘 만나 만선이 되기라도 하면 그럭저럭 재미를 보는데... 이분에게는 갓 만기출소를 한 (잘생긴?) 아들이 하나 있지만 마을에 알려지지 않게 감추고 다녀야 합니다. 


이 아들이 술집에 들러 우연히 눈이 맞은 작부 하나를 섬 밖으로 탈출시키는데, 술집 여주인은 첫눈에 알아보길 아 서울에 가서 일한다고 하더니 자리를 잡긴커녕 고생만 직사게 하다 돌아왔구나 짐작하는데 정확합니다. 대신 더 중요한 다른 변이 이미 터졌다는 건 아직 깜깜합니다. 


작부는 본래 서울 사람이었는데 고교생 때 빚을 지고 이곳까지 팔려온 것입니다. 그냥 술만 따르면 불만이 없겠는데 춤을 춰 봐라, 그냥 추는 것도 안되고 특정 자세를 취해 보라는 등 가관입니다. 이 무렵 서울 모 룸살롱에서는 실제로 어떤 접객원이 벌주를 마시다가 현장에서 사망한 일이 터져 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루 사이에 참 많은 일이 터지기도 하는데 출소한 걸 알고 대처에서 깡패들이 찾아와서는 다시 범죄에 합류할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이미 호된 대가를 치른 저 아들은 다시는 그 세계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고 버티며 이에 화가 난 깡패들은 아들을 몹시 구타합니다. 이 광경을 보고 누가 경찰에 신고하며, 비록 전과가 있었지만 워낙에 일방적으로 당한 폭행이라서 혐의 없이 무사히 풀려납니다. 


마을에는 갖가지 사연을 지닌 이들이 있습니다. 어느 젊은이는 부모가 모두 나병환자라서 출생 직후 그 부모로부터 격리된 안타까운 과거기 있습니다. 행여 이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혼삿길도 막힐 판이라 그저 쉬쉬하고 다니는데, 그 사정이 아니라 해도 경제적 형편이 딱해서 쉽게 배우자를 찾을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출어를 나갔는데 배가 너무 낡았던 것이 기어이 큰일로 번지고 맙니다. 제목대로 "망망대해"까지는 아니지만 한반도 연근해, 특히 황해와 남해라면 잔잔한 곳이 거의 없습니다. 이 무렵 용어를 반영해서 황해 먼 곳을 지칭할 때 "동지나해"라는 게 눈에 띄기도 합니다. 


여튼 엔진은 고장나서 배는 오갈데 없는 신세라 조류를 따라 중국으로 흘러갈 판입니다. 이때 중국은 아직 적성국가, 미수교국이라서 "중공"이라 불릴 때이며 어부들은 공산국가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며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태풍경보까지 발령되며, 간신히 지나가는 배를 발견하며 구조를 요청하지만 상대는 큰 돈을 요구합니다. 해난구조법이 허용하는 최소 한도까지만 도와 주겠다는 건데 선주(주인공)은 그렇게 큰 돈을 사례하면 파산한다며 강력 반대하지만 피용인들이 이런 낡은 배로 사기를 치고 위험에 빠뜨린 책임을 지라며 사례 요구를 수락하라고 강요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걱정하던 통에 배는 드디어 귀항하지만 한 사람은 행방이 보이질 않습니다. 한 어촌에서 빚어진 소탐대실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다뤘으며, 다른 판본은 현재 다 없어진 상황에서 유일하게 범우문고판으로 이렇게 전해지는 점도 독자의 추억을 상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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