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스 한 권으로 끝내는 공기업 기출 일반상식 (최신판) - 윤종혁의 취업 치트키 최신 시사상식 무료 강의ㅣ공공기관·공사·공단ㅣ최신 시사상식 100선+핵심 공략 상식+기출동형문제 수록
김태형 외 지음 / 해커스공기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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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입사 준비에서 의외로 수험생 발목을 잡기도 하는 과목이 일반상식입니다. 사회가 아주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디어에서 쓰는 용어도 낯선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 쓰이는 기술도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며 일반 대중 수준에서도 알아 둬야 하는 것들이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시험에 출제되는 용어의 수준도 예전하고는 비교가 안 되니만큼 적어도 기출에 어떤 항목이 여태 출제되었는지 정도는 확실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교재는 사이즈도 그렇고, 종이 질이라든가 편집 형태 같은 것이 마치 중고교 VOCA 교재와 몹시 비슷합니다. 그래서 수험생 입장에서는 더 친근하고, 수회독을 하면서 특히 잘 잊어버리는 항목, 이해하기 어려운 항목을 나중에 다시 체크하기 좋습니다. 뜻만 알려 주는 게 아니라 비슷한 말, 반대말(이 역시도 출제 범위 안에 들어갑니다), 실제로 이 말이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까지 잘 알려 줍니다. 이 책은 "기출"에 포커스를 두었으므로 실제 출제되었을 때 어떤 형태의 문제였는지도 항목 밑에 함께 나옵니다(출제 기관도 함께 표기). 한마디로, 혹 따분하게 공부하다가 질리지 않도록 수험생을 최대한 배려한 편집이 돋보입니다. 


시사용어에는 비슷비슷한 용어들이 무척 많습니다. 예를 들어 p150의 낙수효과를 보면, 일종의 반의어랄까 "분수 효과"에 대한 설명이 같이 나옵니다. 낙수 효과는 대기업의 실적이 저소득층에까지 두루 혜택을 준다는 뜻이지만 분수효과는 반대로(?) 서민층의 활발한 경제활동이 기업 레벨에까지 올라가 긍정적 효과를 끼친다는 뜻입니다. 둘 다 어느 하나가 맞고 다른 게 그른 게 아니라 경제의 구체적 활동 국면에 따라 타당할 때가 있고 그렇지 못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튼 이 두 개를 같은 페이지에서 설명하면 수험생 입장에서 잘 헷갈리지 않고 함께 차이점을 대조하며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특이한 점이 "최신 상식 100선"을 따로 모아서 올컬러 편집으로 책 맨앞 48페이지까지를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상식책은 책마다, 혹은 연도마다 내용이 비슷비슷한 게 많습니다. 그래서 아예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용어(이전판에 안 나오던 것)들을 따로 묶어 기억이 잘 되도록 컬러로 제시한 듯 보이네요. 읽어 보면 물론 미디어에서 많이 거론해서 익숙한 것도 있지만 여튼 기존 교재에서는 못 보던 게 많습니다. 오커스, 파이브 아이즈, 시세션(shecession), 고스팅, 네온스완(스완 시리즈가 여기까지 왔네요), 국가수사본부, 2개의 100년 등이 아마 가장 최근에 등장한 용어들일 것입니다. "문센족"도 있던데 문센은 이전부터 아줌마들이 쓰는 말이라서 여기에도 끼나? 싶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 파트는 올컬러라서 관련 사진도 함께 나오거나 한 덕에 공부하기가 더 편했습니다. 시세션은 뜻에 따르자면 "쉬"세션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국어원의 규범 표기법에 따르자면 저리 되는가 봅니다. 


삼부요인(p55)에서 3부는 행정 입법 사법이므로 혹시 행정부 요인이 대통령이 아닐까 착각할 수 있으나 여시기서는 국무총리를 꼽습니다. 이런 것도 그냥 말로만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시각적으로 더 잘 들어오도록 표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항목 설명을 해 줍니다. p71중에서 설명되는 "추가경정예산"의 경우 자체 뜻이 설명될 뿐 아니라 본예산, 수정예산, 준예산 등 세 개의 비슷한 개념이 함께 설명되는데 이 역시 표 안에 들어 있습니다. 


맨앞에 "최신"상식 항목이 나오고 난 뒤에는 일반상식 1180항목이 이어집니다. 이 항목들은 다시 정치/경제경영/사회/국제/역사/스포츠 등 여러 분야로 나뉘어집니다. 항목 하나하나에는 고유 번호가 붙어 있고 페이지수와는 별개입니다. p446 이하에는 가나다순 인덱스가 있는데 이때 나오는 숫자들은 페이지수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항상 꼬인다고 여기는 "머피의 법칙"은 30년전부터 잘 알려진 내용이긴 한데 이게 한국보훈복지공단 입사시험에 실제 출제되었다고 합니다(p158). 비슷한 용어(그 뜻은 반대)로 샐리의 법칙, 줄리의 법칙도 있는데 역시 항목 밑에 나란히 소개되기 때문에 함께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p176의 "놈코어" 같은 것도 저는 낯설었는데 이게 몇 년 전 신조어였던 한국말 "꾸안꾸"와도 뜻이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과거에는 칼라(collar) 종류가 블루/화이트 두 가지였으나 그레이, 골드, 뉴, 퍼플, 핑크, 다이아몬드, 레인보우 등이 다 나오는데(pp. 186~187) 이 역시 겉모습들이 비슷하므로 함께 외워 둬야 하겠네요. 


국제 외교 용어도 어려운데 페르소나 논 그라타 같은 것은 대략 20년 전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큰 사달이 나서 일반 대중 사이에도 널리 퍼진 적 있습니다. 모두스 비벤디, 투키디데스 함정, 아그레망 등의 용어도 있고, 종속 이론 같은,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통할 법한 아주 오래된 용어도 있습니다. 근대사에서 천주교 박해 같은 건 해의 간지가 비슷하게 들려 구별하며 외우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p248에 잘 구별해서 정리되었습니다. 


중고교 보카책도 그렇지만 단원이 끝나면 내가 이걸 얼마나 잘 이해하거나 기억하는지 스스로 테스트를 해 봐야 합니다. 이 교재도 마치 어휘책처럼 단원마다 자체 테스트를 제공합니다. 이게 꼭 필요한 건 아니겠으나 공부 과정의 지루함을 더는 데에 도움이 되긴 합니다. 책이 다 끝나면 기출동형 모의고사가 3회분 제공되며, 책 말미에는 틈새상식이라고 하여 24절기, 필수속담, 잘 틀리는 맞춤법, 한국문학사(史) 등이 깔끔하게 나와서 상식의 빈틈을 촘촘하게 메워 줍니다. 진짜 이 책 한 권으로 일반상식은 다 커버될 것 같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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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중국의 위험한 관계 미디어워치 세계 자유·보수의 소리 총서 7
앙투안 이장바르 지음, 박효은 옮김 / 미디어워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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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프랑스 대선 개표 완료가 몇 시간 지난 시점에서 극우 스탠스의 마린 르펜이 거의 40%에 가까운 지지를 얻었다는 보도를 보면 놀라운 감이 있습니다. "우파"도 아니고 "극우" 단일 진영의 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미있는 건 오늘날 프랑스의 극우 진영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 자유진영에 대립하는 독재 체제 국가들에 대해 오히려 연대감을 표방한다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 이 책은 프랑스의 좌파가 아니라 오히려 우파 진영에 친중 정치인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제기합니다. 프랑스가 오랜 세월 동안 일정한 영향력을 지녀 온 아프리카에 중국이 공격적으로 진출함으로써 국익이 크게 침해되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임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히 흥미로운 주장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마린 르펜 지지세를 "극우"로 분류하는 기준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고 보지만. 


중국 통신 기업 화웨이가 이익을 추구하는 순수 민간 기업이 아니라 중국 군부와 강하게 연계된 조직이라는 의혹은 여러 소스로부터 그간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특히 p39 이하에서, 화웨이가 프랑스 고위직이나 중요 기업인들을 타겟으로 삼아 효과적인 로비를 펼쳐 온 끝에, 어떻게 프랑스 대표 통신 기업 중 하나인 알카텔을 "넉다운"시켰는지에 대해 자세한 분석이 나옵니다. 책을 읽어 보면 프랑스처럼 기본이 튼튼한 나라도 타국으로부터의 로비라든가 스파이행위를 대처하는 방법이 허술하기 짝이 없으며, 이런 방식으로 핵심적인 국익을 침해당하거나 극비 정보를 넘겨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항공기 제조사 중 보잉은 북미를 대표하고, 에어버스는 유럽을 대표한다는 게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공식입니다. 중국이 언필칭 G2의 하나로 떠오른 지금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기업 하나쯤은 중국 본토에 세워져 있을까요? 그렇기는커녕 이 부문 관련하여 중국이 뉴스에 오를 일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p56에 나오는 대로) 벌써 2013년 4만여명을 동원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 유력한 주체가 바로 중국군 측이라는 보도입니다. 사이버 공격은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허세의 제스처가 아니라 "기술 탈취"라는 분명한 목적을 지닌 전략적 생동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지난 20년 동안 몇 차례나 중국의 눈밖에 나서 공개적으로 무역 보복을 당하기도 했고, 이처럼 암암리에 재산권을 침해당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르몽드紙는 잘 아는 대로 프랑스 지성의 한 상징이자 진보진영의 오랜 정론지이기도 합니다. 이 오랜 언론의 PDF판을 위조해서 해커들은 재경부 공무원들로부터 정보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본문 중 소제목이 마치 르몽드가 중국에 부역이라도 한 듯 착시를 부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처럼 해킹을 손쉽게 당한다는 건 해당 공무원들의 방심과 무신경, 직무태만의 소지도 큽니다. 이런 문제점은 비단 프랑스뿐 아니라 기강이 상대적으로 해이한 자유 민주 진영 공통의 문제입니다. 


미인계를 통해 요인들을 매수하여 중요 정보를 빼내는 건 역사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브르타뉴는 프랑스 역사상 주류 문화에 가장 늦게 동화된 지역에 속하며, 따라서 주류로부터 따돌림,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온 편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미인계를 동원한 전대미문의 스파이 사건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에서 중심이 되었다는 리리황(Li Li Whuang)은 마치 몇 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또 이번 중국 남부 여객기 추락 사고의 희생자였다는 루머가 도는 팡팡(方方)과도 매우 닮은 패턴의 행적을 보입니다. 


p101 이하 챕터4부터가 이 책의 진짜 본론이 전개되는 부분입니다. 사르코지라는 단신의 전직 기업인이 당시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저때로부터 4여년 전 지금 코비드19와 비슷한 호흡기 전염병인 사스(Sars)가 대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책 전반부에서 자세히 기술된 대로) 프랑스는 가뜩이나 중국측으로부터 피해를 입어 가는 편이었고 전통적으로 중국 견제론이 팽배했던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한국은 이 시기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정체 불명의 중국 대세론이 휩쓸며 근거 불비의 친중론이 횡횅했습니다. 반중 여론은 최근에서야 형성된 거고), 사르코지 대통령이 국방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정보를 자진해서 중국 측에 제공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이 책은 주장합니다. 이미 당시에도 이런 정보를 이용해서 중국 측이 생화학무기를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우파 대세 전환의 원조 격이 된 자크 시라크 전 파리 시장, 전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과의 균열 조짐은 있었습니다. 아니 아득히 거슬러올라가자면 샤를 드골부터 따져야 하겠지만. 이라크 개전을 둘러싸고 미 네오콘 측과 시라크는 격렬히 대립했는데 어쩌면 이때부터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대립의 골이 생겼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p122에 보면 로랑 파비위스 총리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21세기뿐 아니라 이미 1980년대에 미테랑 대통령 때에도 총리를 지낸 거물입니다. 누드 모델을 부업으로 삼는 젊은 정치인이 총리직에 올랐다고 해서 당시에도 크게 화제가 되었죠. 당시에는 대통령은 좌파 사회당인 미테랑, 총리는 우파 파비위스가 되었기에 이른바 "동거(코아비타숑)" 정부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르코지 행정부에서도 친중 일변의 움직임만 있었던 건 아니고 베르나르 바졸레(p150)처럼 중국을 적극적으로 경계하는 인사가 있기도 했습니다. 올랑드 좌파 정부를 거쳐 현 마크롱 대통령도 기본 노선은 우파에 가까우나 대중 노선은 내내 불명확했고 심지어 대통령 자신이 "나는 친중"이라고 공언하는 등 이분은 대체 기본 지향점이 뭔지가 의심스러운 편입니다. AUKUS 결성 당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호주 측의 계약 파기(?)를 지탄하는 등 누가 봐도 중국 측에 도움을 주는 입장입니다. 국익에 도움이 되면 중국 아니라 누구하고도 손을 못 잡겠습니까만 이미 기 소르망 같은 석학은 20년 전부터 중국과 프랑스 사이의 근본적 이해 상충을 경고한 적 있습니다. 


이 책 후반부에 나오는 대로 전통적 파트너십 관계였던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는 속속 밀려납니다. 19세기 식민지배의 끔찍한 역사가 있었다고는 하나 그 속죄(?)를 이런 방식으로 하는 건 또 아니죠. 중국은 기본적으로 상대국에 호혜를 제공하기 위한 게 아니라 이상한 복수심, 설욕의 마음가짐을 갖고 나중에 뒤통수를 크게 치려는 목적이 모든 행동의 뒷배에 깔려 있습니다. 전체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자체 이견이라는 게 있을 수 없어 타국 입장에서는 더욱 위험합니다. 이란의 경우 공화당 정부에서는 좀 피곤해지지만 지금처럼 민주당 정권일 때는 우호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미국은 상대하기가 편한 겁니다. 하지만 중국에 야당이라는 게 어디 있습니까? 프랑스가 불과 6주만에 히틀러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에 1940년대 세계 평화가 근본에서 흔들렸고 같은 나라가 또다시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또다시 세계 정세를 파란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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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 2 : 잠명.서장.기문.서문.원문 - 수행은 중생의 복밭
원순 엮음 / 법공양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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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은 초로와 같습니다. 사람의 배포는 마치 천하를 다 내 것으로 만들 양 하늘을 찌르지만, 왕성한 활력을 발휘하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칠십 년 정도입니다.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조언 폰테인, 또 커크 더글라스 등은 백 년에 가까운 수명을 누렸습니다만 이는 예외적인 사례일 뿐입니다. 이처럼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들이기에, 내세와 영원의 아득한 지점에 대해 끝없이 상념에 빠지며 영혼을 바로하고 도덕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본디 중국에도 제자백가의 사상이 꽃핀 적이 있습니다만 중국인들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은 건 유가뿐이었습니다. 공연히 괴력난신과 사후구원을 논하지 말고 현세에 충실하자는 취지이겠는데, 그 정도로는 그러나 중생의 갈증이 달래지지 않았는지 남북조 시대 이민족과의 접촉과 교류가 잦아지며 인도의 불교, 그 중에서도 대승불교가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삼국도 중국을 통해 불교를 수입했고,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직접 천축까지 찾아가 법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 중에는 양걸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송나라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로서의 영달도 누리던 인재였습니다. 말년에 불교에 귀이하여 그 지극한 깨달음의 경지를 자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은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를 방문했을 당시 직접 접대역을 맡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말에 MBC에서 제작, 방영한 사극 <한중록>을 보면 남양 홍문의 일가인 홍봉한이 간절히 아들을 기대했으나 끝내 딸을 낳고서는 그 서운함을 달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뒤에 두른 병풍에 보면 


邂逅南軒須水濆 名言間發蘭桂芬

道義相投有餘樂 賓主交照無繁文

忠臣寤寐在北闕 古風歌詠追南薰

出關不覺行役苦 舉頭時見孤飛雲


이란 시가 등장합니다. 이 시의 제목은 和謝判官宴南樓(화사판관연남루)인데, 이 시의 작자(作者)가 바로 양걸입니다. 참 독특하다는 느낌이 드라마를 보며 들었는데, 이 작품은 한국인들이 사실 잘 접하기 어려운 것이라서 어떻게 저 내용이 방송사 소품 병풍으로 들어갔을까 보는 내내 의아하고 흥미로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현세의 부귀영화란 모두 뜬구름과 같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돈이 많이 쌓일수록 더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큰 실수를 피하고 널리 인심을 얻어 더 궁극적인 성취가 가능한 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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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
전상국 지음 / 세계사 / 198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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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발표된, 중견 작가(그 당시에도) 전상국씨의 중편소설이며 당시 작가의 경향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게, 길이상으로도 일단 중편이며 주제도 현실고발풍으로 묵직합니다. 윤정모의 장편 <고삐>가 약간 떠오르기도 하는 진행입니다. 씨의 기존 작품들이 보편적인 세팅을 깔고 무색무취의 세태 풍자를 기해 온 것과 달리 이 중편은 한국사의 특정 국면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정면으로 현실 고발에 나선다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1987년 민주화 바람을 정면으로 받고 새로운 작풍을 시도한 듯도 보입니다. 


여주인공은 빈곤과 여성 차별이라는 이중의 시대 모순에 시달리는, 다소의 전형성을 갖춘 캐릭터입니다. 간호 장교 출신이라면 여타의 기지촌 여성과 처지가 달라 보이는 듯도 하지만 월남전 당시 현지 파견 간호장교라면 지금 우리가 떠올리곤 하는 해당 직종의 상황과는 크게 달랐나 봅니다.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은 고달픈 현실에 대한 일종의 출구로 그 길을 택했다는 듯 암시됩니다. 


여기서 그녀는 미군 백인 군의관을 만나 깊은 정분을 쌓습니다만 본인의 과실이 다소 개입하여 밀수품을 다루게 되어 치안당국의 조사를 받습니다. 억울한 면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구태여 그런 일이 엮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게, 장교 신분으로 경솔했다는 비판을 들을 소지가 많아 보입니다(독자인 제게는). 이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사실혼 관계를 맺어 온 백인 군의관은 갑자기 본국으로 소환되는데, 그렇다고 마음이 떠났다든가 하는 사정은 (독자가 걱정하게 되는 것과는 달리) 전혀 아닙니다. 


이별 통고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인공은 그저 참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약점을 잡고 당국에 고발한다는 등 협박을 받고 질 나쁜 흑인 병사 등에게 성폭행을 당하여(윤간 상황이었습니다) 급기야 흑인 아기를 출산하게 됩니다. 사실 작가의 작중 포인트도 은근 여기 있습니다만 이 여성은 불행과 고난을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초하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물론 성폭횅을 가한 놈들이 나쁜 건 당연합니다만 이 상황은 구태여 그 단계까지 가기 전에 방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조금 힘든 고비가 다가오면 이 여성은 선제(?) 자폭을 해 버리는 이상한 선택을 합니다. 시대상을 감안하더라도, 설령 당국에 신고하는 과감한(쉽지는 않았겠지만)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않더라 해도, 거주지를 옮기거나 최소한의 자기 방어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녀는 마치 이웃 기지촌 여성과 똑같은, 수시로 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자포자기 신세로 스스로를 떨어뜨립니다. 이 단계에서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겠으나) 그 군의관에게 절연당한 처지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뭔 이유인지 이런 선택을 하고 난 후에는 기지촌 여성들에게 공개리에 모욕을 당하는 등 아예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혀 버립니다. 


이 다음이 더 놀라운데 본국에 송환된 군의관은 아예 초청장을 보내어 정식으로 혼인관계를 맺을 것을 제안합니다. 정말 놀라운 건 이 사람이 주인공의 흑인 영아 출산 사실도 알고 있고, 주인공이 도미를 한사코 거절하자 취학연령에 도달한(그래서 한국 현지 학교에서 몹쓸 짓을 당하기도 한) 그 사생아만이라도 미국으로 보내라고 한 것입니다. 


"내 외할머니가 흑백 혼혈이라서, 나한테서 흑인 자녀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매한 인격적 처신을 보인 덕분에 아이는 미국으로 건너가 잘 성장합니다. 그러나 편지도 곧잘 쓰고 나중에 한국을 재방문하기까지 한 그녀는 생모에게 매몰차게 대합니다. 이 대목을 읽는 독자들은 딸의 저런 태도에 이상하게도 분개하거나 비판할 마음을 품지 않게 됩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출신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생모의 비합리적인 자기 파괴 행태, 한 술 더 떠 이를 대물림까지 하려는 이상 심리 기제를 꾸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생아가 딸이라는 점에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작가는 (당시 기준) 한국 여성들의 무의식 속에 유전되는 체념적이고 비관적인 세계관 자체를 고발하려는 의도이며(누가 봐도 분명합니다), 이는 비단 이 작가뿐 아니라 이규태 같은 관찰자들에 의해서도 지적된 바 있습니다. 원초적 가해자야 물론 당대의 야만적인 남성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체제였겠습니다만, 정말로 대를 이어 내려온 듯한 이 이상심리와 적대감, 얼마든지 당대에서 끊어버릴 수 있었던 피해의식이나 르상티망 등이 이제 궤를 달리 틀어 새로운 국면의 성 대결 양상으로 발전한 게 아닌지 우려되는 면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기지촌 학교에서 별난 동정심으로 사생아를 보호해 온 교사가 현지 토호와 대립하다 치안 당국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공개 분신 자살을 하는 등 비극적인 에피소드가 매우 풍성하여 작가의 기존 스타일과는 몹시도 차별됩니다. 이 작품은 MBC에서 단막극으로 제작, 방영도 되었는데(1989) 주인공 역에 놀랍게도 윤여정씨가 나옵니다. 작년(2021) 이분의 수상에 대해 뭔가 마뜩지 않은 듯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행여 그녀의 필모그래피 중 지금 이 대목에 시선이 이르기라도 한다면 미 영화아카데미의 깊은 배려에 경의를 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해당 단체의 선택에 그렇게나 깊은 뜻이 있었다고는 뭐 전혀 생각되지 않습니다만(이 작품을 누가 알아서).  


사족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성취, 절절한 서사와는 별개로, 제목이 과연 작품 내용에 적실하게 붙었는지는 개인적으로 약간 의문입니다. 뻐꾸기의 그러한 습성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고 작품 중에도 설명이 나오기까지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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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 「임철우」 - 사평역, 눈이 오면, 붉은 방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 20
임철우 지음, 권일경 엮음 / 사피엔스21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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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모래 사라고 할 때는 두 가지 글자가 있는데 하나는 물 수변의 沙이며 다른 하나는 돌 석변의 砂입니다. 두 글자 다 윈도에서 지원하며 뜻도 (여러 개 중에) "모래"가 첫머리에 옵니다. 9호선 고터역 다음에 소재한 곳은 후자를 쓰며, 전라남도 화순군 소재의 한 면에 붙은 이름에는 전자를 씁니다(평은 平으로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배경으로 삼은 곳은 물론 전남 화순군 사평면입니다. 서울의 해당 지역에는 이 소설 창작 당시 전철역 같은 건 생기지도 않았고, 소설에는 먼 남도의 향토색이 물씬 배어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화자는 인심 좋은 역장님인데, 늦은 밤 이곳을 지나치는 열차를 기다리는 객들은 추운 겨울 날씨에 벌벌 떨며 각자의 애잔한 사연을 속으로 삭이거나 조용히 이웃과 공유합니다.


사평역이라는 곳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는지는 (개인적으로) 모르겠습니다. 다만 버스 노선이나 기타 대중 교통 인프라가 완비되지도 않았고 개인 소유 차량이 많지도 않았을 과거에는 삼등얼차가 지방 곳곳을 다녔겠고, 이 소설 중에서 자주 나오는 묘사대로 "급행열차(보통은 새마을호)를 먼저 보내는 이유로" 지방의 작은 역에 열차가 자주 서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이 소설 중에는 사평역뿐 아니라, 인접한 학구역, 또 임촌역이 언급되는데 이들 모두 실존했었으므로 아마 철도역으로서의 사평역도 거의 틀림 없이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독특한 건 이 소설 중에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가 길게 인용된다는 점입니다. 아마 해당 시로부터 어떤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임철우 소설가가 창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이 배경이다 보니 역사 안에서도 객들은 벌벌 떨며 고작 톱밥으로 온기를 뿜는 난로 곁에 모여 고생들을 하는데, 역사 구석에는 어떤 여인이 굽은 자세로 잠을 자는 중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추운 곳에서 사람이 잠을 잘 수 있다니..."


대학교를 다니다가 현실에 절망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아우슈비츠를 탄식하는" 이상주의자 청년도 있고, 집에는 화장품 회사를 다닌다고 속였지만 사실은 술집에서 몸을 파는 젊은 여인도 있으며, 가게에서 돈을 훔쳐 도망친 동생을 잡으러 이 먼 곳까지 내려온 뚱뚱한 서울 사모님도 있습니다. 그녀는 마치 주변 사람들과는 자신이 완전히 다른 부류라도 된다는 양 거만한 분위기지만, 그런 표현이 효과를 내기까지 들여야 하는 노력이 꽤나 버거워 보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고민과 삶의 무게에 치인 통에, 옆의 대단하신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하려 드는지에 신경 쓸 여유마저도 없습니다. 


각자의 애달픈 사연이 독자에게 하나씩 소화되고 나서 드디어 기다리던 기차가 역에 도달합니다. 기차에 올라타면 당장의 추위도 면하고, 또 이 차를 막상 놓쳤을 시 그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과 손해 따위는 일단 피하게 된 셈입니다. 그러나 목적지에 내리고 난 후 이들의 인생 길목에서 기다리는 또다른 장애와 과제는 여전한 무게로 남아 있겠으며, 이들이 그런 지점을 어떻게 맞을지는 자신들을 포함해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오로지 세월의 진행을 한 자리에서 오래 지켜 본, 마치 역사 건물만큼이나 늙은 역장만큼은 어떤 그림이 그려진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띱니다. 


이 책에는 1988년 임철우 작가가 한승원씨의 <해변의 길손>과 이상문학상을 공동으로 받았던 <붉은 방>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프 25기 11주차 리뷰에서 이 작품 "사평역"에 대해 짧게 언급한 적 있고, 24기 36주차 리뷰에서도 임철우 작가를 거론한 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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