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디지털 -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어떻게 디지털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는가?
폴 레인원드.마하데바 매트 마니 지음, PwC 컨설팅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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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혁명 이래 기업에게 중요한 건 기술이라고 다들 평가했습니다. 구글 역시 빼어난 검색 기술을 통해 최고의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고, 예전의 중후장대 산업과 달리 적은 인력만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구조라야 이제는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저자들은, 모두가 디지털 혁신에 적응한 지금, 기술만으로 과연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디지털 그 너머를 추구하는 단계를 "비욘드 디지털"이라 이름짓고, 비욘드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겠는지를 묻습니다. 그 답으로 요약되어 제시된 건 "기술 차원이 아닌 역량의 구비"입니다(p16). 역량이 그럼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대답하기 어렵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뛰어난 역량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독보적이고 지속성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잇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나 다 따라할 것 같으면 누가 글로벌 일류 기업이 못 되겠냐는 뜻이겠습니다. 


저자들은 현재의 상황 변화를 가져온 세 가지 요인을 다음과 같이 꼽습니다. 1) 수요 혁명 2) 공급 혁명 3) 경영환경 변화. 이 셋 중에서 기업 경영자를 어렵게 하는 건 특히 세번째 팩터입니다. 과거에는 그저 기업의 수익 창출과 증가를 위한 부문만 신경 썼으면 충분했습니다. 현재는 그렇지가 않아서, 시민사회의 평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나 기여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거버넌스에 대한 올바른 참여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고려되며 이를 소홀히한 기업은 더 이상 수익조차도 올바로 창출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두고 저자들은 ESG라는 새로운 표준이, 기업들이 준수해야 할 새로운 규범으로 확립되어 가는 것으로 보며 또 이것이야말로 기업 역량 강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는 듯합니다. 


똑같은 상품이라고 해도 포지셔닝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매출과 수익의 규모가 크게 달라집니다. 포지셔닝을 포함해 기업은 전체 시장 구조 속에서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소비자 상대로 어떻게 어필하느냐를 놓고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경쟁사가 흉내를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p60)." 과거에는 거대 시설을 구축하고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진입 장벽을 만들었다면, 요즘은 이처럼 구조와 사업모델의 독창성으로 무형의 강력한 진입 장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여기서 저자들은 "역량"의 구체적 내용으로 "기술, 지식, 데이터, 능력, 프로세스, 조직 모델, 문화 등이 모두 결합된 것"이라 설명합니다. 


"창의적인 에너지를 모아 그 대부분을 새로운 포지셔닝에 집중시키는 것"이 기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p83). 이 책에서 매우 자주 강조되는 개념 중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건 "포지셔닝"인데 성공적인 포지셔닝이 일단 이뤄지면 기술 자체의 참신성과 혁신성에 과하게 집착할 필요도 없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할 수만 있으면 혁신의 극한까지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옳겠으나 어디 그게 쉽겠습니까. 경영이란 현실적 한계, 자원 동원과 자본 조달의 한계 안에서 이뤄지는 활동이니 말입니다. 특히 "포지셔닝은 독보적이어서 우리 기업이 없어지면 시장에 공백이 생기는 것이라야 한다(p83)"라는 말에서 저자들의 관점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p122 같은 곳에서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예를 드는데 제주 등에 혁신, 첨단 병원을 설립하려 드는 요즘 한국에서도 이를 참고해야 할 이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조직 전체의 실행 방식과 역량을 강화시키는,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가져온(p123)" 혁신 중 하나는 역학습이라고 합니다. 역(逆)학습은 reverse learning이라는 것으로서, 중동 최고의 의료센터로 꼽히는 아부다비 지점에서의 성공 사례를 통해 역으로 본점에서도 조직 내에 혁신의 결과를 확산시킨 과정을 뜻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일일 문제 해결 회의 등 여러 개의 디지털 툴(tool)입니다. 


고객에 대한 독보적인 인사이트를 갖추는 것도 핵심 역량으로 꼽힙니다. p138에서 저자들은 "그저 고객 인사이트를 갖추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데, 이런 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 어떠해야 하는가? 그 인사이트가 남이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데이터의 단순한 수집으로는 이것이 달성되지 못하며, 조직 내, 혹은 경쟁 생태계 전체, 혹은 직접 고객으로부터, 이런 인사이트를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얻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고객과의 신뢰 구축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하긴 신뢰가 구축되어야, 고객으로부터 생산적인 피드백이 이뤄지고 더 정직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겠습니까. 


이상은 기업 외적인 부문으로부터 혁신과 변화를 꽈하는 방법론이었으며(p163), 기업은 또한 내적인 방향으로부터도 꾸준히 변신을 도모해야 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내부를 객관화하며 가감없이, 또 필터링 없이 들여다보는 이 시도가 외부에의 관찰보다 더 어려운 작업일 수 있습니다. 성과 지향적 팀(p179)은 다음의 네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1) 장기적 유지

2) 차별화 역량의 구축 업무를, 풀타임으로 또 메인 업무로 맡김

3) 자체 자원 확보(타 부서 의존 자제)

4) 고위 임원 배치를 통한 조직 내 중요성 도모. 


특히 이 챕터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 커머셜 트랜스포메이션인데,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말 그대로 기업은 과거의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었던 방식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에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듯합니다. 책에서는 대표 사례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일라이릴리를 듭니다. 댄 스콘브론스키라는 R&D 혁신 공동리더는 일라이릴리의 이런 나쁜 조직 습성을 일신한, 성공적인 CEO의 대표로 논의됩니다. 아 논의가 p238까지 이어지는데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케이스스터디인 듯했습니다. 어떻게 타성에 젖은 한 조직이 정반대의 지향성으로 거듭나는지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과정이 묘사됩니다. 일라이릴리뿐 아니라 MS의 장 필립 쿠르트와 역시 성공적인 리더의 표본으로 소개되며, 그 외에 한때 위기를 맞았던 필립스나 히타치의 사례도 재미있게 분석되는데 필립스 사례는 다른 경영서에서도 여러 차례 다뤄지곤 했습니다. 


인재의 중요성은 어느 기업 어느 시대에나 결코 소홀히 다뤄질 수 없습니다. 앞서 나왔던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예가 내부 역량 강화 단원에서도 다시, 다른 각도에서 상세히 제시됩니다. 이 경우에도 여전히 중요한 건 직원들의 경영 참여입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창의성과 시야가 강화되고 넓어진 직원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명령만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며 의사결정의 매 프로세스마다 기여를 할 수 있고 또 기여를 해야만 합니다. 사실, 현장에서 문제를 직접 다뤄 본 직원만큼 문제의 심각성과 해결 방도를 일찍 눈치챌 만한 이들이 또 있겠습니까. 


리더십이 언제나 패러독스를 안고 있음은 경험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이 이슈를 해결하려 들면 저 이슈가 걸리고, 하나의 목표가 달성되면 다른 목표에 지장이 생기곤 합니다. 책에서는 p279에 이러한 패러독스의 구조를 표로 정리해서 독자에게 설명합니다. 이러한 패러독스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CEO는 "강직한 정치인", "기술에 밝은 휴머니스트", "겸손한 영웅", "전통에 밝은 혁신자" 등의 바람직한 상(다소 역설적이지만)을 이미 달성해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변화가 극심한 환경이라고 해도 변화하지 않는, 언제나 적용 가능하고 효과를 발휘하는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이 기술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며 또한 혁신의 본체입니다. 변하지 않는 경영상의 진리와 규범, 비결에 대해 저자들은 풍부한 사례 연구와 쉽고 명쾌한 진단을 통해 독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엇이 본질인지를 모르는 멍청한 CEO의 손에 조직이 맡겨지면 그 기업은 당장이라도 침몰하고 말 운명인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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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중국의 예정된 전쟁 - 오커스(AUKUS) 군사동맹의 배경은 무엇이었나 미디어워치 세계 자유·보수의 소리 총서 6
겟칸하나다 편집부 지음, 신희원 옮김 / 미디어워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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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먼 남태평양상에 떨어진 나라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중동부 기준 한국의 서울과 시차가 나지 않습니다. 물론 위도상으로는 먼 거리지만(그리고 계절도 반대이지만), 시차가 나지 않는다는 건 생각 외로 가까운 생활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중국과도 이 나라가 긴밀한 이해관계 혹은 지정학적으로 미묘한 사이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요즘 캐나다라든가 호주와, 저 중국 사이에 작다고만 볼 수 없는 분쟁이 잦다는 뉴스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이 책은 아예 노골적으로 전쟁이 임박했다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멀리 떨어지기라도 했지만, 호주는 중국의 시각이라면 자기 앞마당에 놓인 나라 쯤으로 인식될지도 모르니.


작년(2021) 6월 클라이브 해밀턴의 책을 읽고 저도 리뷰한 적 있는데 중국 공산당 측에서 얼마나 집요하게 호주 정가에 친중파를 심어 놓고 효과적인 공작을 펼쳤는지에 대해 자세히 분석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 p24에서도 그 책에 대한 언급이 직접적으로 나옵니다. 또 그 책의 효과에 대해 "호주를 일깨운 한 권의 책"이라며 높이 치켜세웁니다. 이 책보다는 훨씬 두꺼운 볼륨이며, 아마 지금 이 책을 읽고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독자라면 해밀턴의 책을 읽으면서 요 앞의 사정을 개관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 전반부에는 중국의 대부호 황샹모(한국 한자 발음으로는 황상묵이라 읽습니다)라는 이가 주로 다뤄지며, 이 사람이 호주 정치인 여러 명을 "후원"하여 확고한 영향력을 이식하는 과정이 충격적으로 묘사됩니다. 또 주민선(한국식으로는 주민신) 같은 재력가도 등장하여, 선거 자금 후원, 사무실 운영 경비 대납, 고가의 와인(?), 중국 여행 경비 지원(!) 등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국 측이 접근해 온 정치 세력이 있다면 아무래도 좌파에 가까운 노동당 인사들이 타겟이었겠거니 짐작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책(과 저 해밀턴의 책)에 따르면 호주의 보수계열 정치인들도 광범위하게 로비의 대상이 되었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한 달 전 앙투안 이장바르의 책을 읽고서도 알 수 있었지만, 중국의 로비는 오히려 최근 각국(프랑스를 포함)의 극우파에 집중되기도 하며, 이 결과인지 우파 진영의 일부 부패한 인물들이 뜻밖의 행보로 친중 스탠스를 취하는 게 오히려 트렌드(!)이기도 하니 그저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특히 프랑스라는 나라는 근본적으로 중국과 양립 불가능한 국가 이익을 지닌 나라이니 말입니다. 


방공식별권(圈)은 한국의 경우에도 중국, 러시아 등이 수시로 침입해 들어와서 많은 문제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이 책 p29를 보면 호주에 대해 중국이 자체 ADIZ(한국은 KADIZ라고 하죠)를 일방적으로 선포한 사건을 두고 호주의 정치인 샘 데스티에리(노동당)가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한 일이 다 있었다고 합니다. 책은 그를 두고 "중국 공산당의 대변인이나 다름없다"고까지 합니다. 물론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라면 전후 맥락을 두루 살펴야 하겠으나 워딩이 비록 부분이라도 저 정도 강도라면 지탄을 면할 수 없을 듯합니다. 아니면 (선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소통 능력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든지 말입니다. 


왜 하필이면 호주인가? 여기에 대해 책은 호주의 지난 역사에서 그 해답을 찾습니다. 한국인들도 "벡호주의"라는 단어를 (나이 든 층이라면) 모르지 않는데, 그만큼 한때 오스트레일리아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가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호주가 "피붓빛"에 민감하게 된 건 바로 지난세기부터 중국 이주노동자가 매우 많았던 현실도 한몫했다는 거죠. 호주는 선주민만 탄압한 게 아니라. (자신들도 이민자였으면서) 나중에 이주해 온 황인종인 중국인을 몹시 궁지에 몰았던 전력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와 이에 대한 반성의 물결이 일었고, 그 틈을 중국 공산당이 파고들었다는 겁니다. 어쩌면 중국 입장에서는 과거의 원한을 푸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여기기도 했겠습니다. 원한을 풀려면 설령 결과가 단호하고 강력할지라도 그 방법은 정정당당하게, 문명인의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패턴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은 뭐 말할 필요도 없겠고요. 


공작이라고 하는 건, 그 대상자(타겟 그룹)와 책략, 전술 등이 사전에 정교하게 연구되고 고안되며 집행되어야 그 실효(實效)를 낼 수 있습니다. 책 p110을 보면 중국 공산당이 호주 정치인과 언론인 등을 상대로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이중삼중의 검토를 마쳤는지 그 계획의 빈틈없음에 대해 오히려 감탄하게 됩니다. 하긴 세계의 패권을 노린다면서 주먹구구로 그저 요행만 바란 채 대충 진행된다면 말이 안 되는 거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상대가 이처럼 꼼꼼한 스텝을 밟는 모습에 대해 반대편에서 차라리 배우고 교훈을 얻을 일입니다. 역설적이게도요. 정말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들 공산당이 생산하고 세계에 전파하려 노력하는 "대안으로서의 중국 모델" 수출이 과연 뭔지에 대해서도 국가 차원에서의 심층 분석이 필요합니다. 타조처럼 눈만 감고 고개를 모래밭에 파묻은 채 "별일 없겠지"를 외친다고 다가올 암울할 미래가 절로 해소되겠습니까? 


일본인들은 열도에 살 때만 충성스러운 일본인이지, 다른 나라에 일단 정착하여 귀화라도 하면 철저히 현지의 법질서와 권위에 복종하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 역시도 다소 우스운 행태지만, 또 중국인은 저런 일본인들에 비하면 정반대 기질입니다. "설령 귀화했다고 해도 출신 국가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절대 할 수 없다(p118)." 한국인들은, 한국에 귀화해 사는 외국인들에 대해 막연히 "귀화까지 했으면 생각과 의식이 완전히 달라졌겠지" 같은 기대를 품습니다만 대단히 안이한 반응입니다. 적어도 중국인은 절대 그렇지 않으며, 이런 성향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도 유럽 중에서는 대단히 친중 성향을 띠는 나라인데 이 책 p119를 보면 "화조중심"에 대해 긴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태도와, 실제 경계 태세의 진지함 정도는 차이가 있나 봅니다. 


한국에서도 이번 지방선거에 중국인 투표권을 주는 문제에 대해 논쟁이 붙고 있습니다. 원래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와는 달리 지방선거는 거주 외국인에 한해 투표권을 주는 게 보편 상식에 가까우므로 총론적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만 각론으로서 외교상의 상호주의라든가 중국이라는 특수한 국가에 대해 안보의 문제 같은 게 대두되는 거죠. p151을 보면 중국 공산당은 수도가 아닌 지방을 노린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중국의 첫째 관심사는 자원이며 이런 자원의 각국의 "지방"에 분포하는 게 보통이라서이며, 둘째 지방권력을 먼저 구워삶기가 용이할 뿐 아니라 지방정부의 특수한 (중국 의존) 상황을 어필함으로써 점차 중앙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게 더 쉬운 방책이라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물론 이 말도 맞지만, 애초에 중국은 외국의 중심부,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공략도 대단히 적극적입니다. 단지 세심하게도, 지방으로부터 시작해 중앙으로 올라가는 전략까지도 동시에 구사하는 게 기발하고 창의적이라는 것뿐이죠. 


지방의 여러 도시들이 외국에 있는 비슷한 위상의 다른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는 건 매우 아름다운 관행입니다. 도시, 혹은 국가, 선박 등은 인도유럽어권에서 전통적으로 여성(female gender) 취급하므로 "자매"결연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무척 자연스럽고 아름답게까지 들립니다. 어떤 멍청이는 이런 것도 성차별이라며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겠지만. 여튼 이 오래된 자매결연이라는 관행을 이용하여, 중국의 일부 도시는 타국의 취약한 도시를 공략하여 특유의 약탈적 행태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체코의 프라하 같은 경우 구 공산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징과의 자매결연을 취소하고 대신 타이베이와 새로 유대를 맺었다(p153)고 합니다. 하긴 프라하는 오랜 역사를 거쳐 압제와 획일화를 거부하고(수백 년 전 30년 전쟁의 발단이 된 디페네스트레이션 같은 걸 떠올려 보세요) 자유와 관용을 추구해 온 보헤미안의 본향 아니겠습니까? 


p166에서 저자는 "중국의 일방적 승리"가 코로나 19 사태를 통해 거의 굳어져간다고 단정합니다. 책 내용을 읽어 보면 팬데믹 초기까지의 사정만 반영된 듯하지만 여튼 중국의 대처와 책략이 미국의 그것보다 훨씬 영리하고 민활하며 효과적인 면 있었다는 점 도저히 부인 못 합니다. 마스크 외교, 백신 외교 등은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는 미국보다 훨씬 능동적으로 전개되었더랬습니다. 반면 미국은 순식간에 수천만의 감염자가 나오며 세계 최악의 코로나 지옥으로 떨어진 적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을 한때나마 이겼던 대목입니다.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원로 중 한 명인 고 습중훈의 아들이며 소위 태자당 중에서도 황금 혈통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습중훈이 마오에게 호된 시련을 당할 때 젊은 시진핑 역시 엄청난 고난을 겪고 지방에서 밑바닥까지 내려간 적 있습니다. 이처럼, 이른바 하방을 통해 고생했다는 점만 알려져 있지, 그가 한때 정보당국에서 일하며 공작 업무에 종사한 건 경력상 잘 알려진 바는 아닙니다. 현재 러시아를 다스리는 푸틴도 젊은 시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으나 KGB 경력자 정도로만 막연히들 알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 점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최고지도자부터가 젊은 시절부터 해외 공작에 이미 잔뼈가 굵은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해외에 널리 퍼져 있는 중국의 인적 네트워크가 해당국가에 각별한 안보 위험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려는 의도이겠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 각자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저자는 해밀턴의 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책 말미인 p187에서 다시 해당 작가의 공저 <보이지 않는 붉은 손>을 소개합니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원서를 찾아 보든지, 번역서가 또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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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島万次, 임진왜란연구의 재조명
기타지마 만지 지음, 김문자.손승철 엮음 / 경인문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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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도만차가 무슨 뜻일까 하는 분도 있을 텐데 이 책 저자 이름을 우리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그런 발음이니까 너무 고개를 갸웃할 건 없습니다. "북해도"를 기타규슈라고 하고, 섬 도를 "시마" 등으로 읽지 않습니까. 


저 히데요시라는 자는 과연 조선을 손에 넣고 명나라까지 치고 들어갈 생각이었을까요? 아니면 전국 시대의 종식 후 이른바 내부 모순의 해결 방책으로 그리 과장된 제스처를 취한 것일까요? 아마 둘 다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본래 출신이 미천한 자가 한번 벼락출세를 하고 보니 눈에 뵈는 게 없어 폭주했을 수도 있고, 그 기세등등한 무사와 영주들의 혈기를 (부족한 권위로) 미봉했으니 언젠가는 한 번 터질 것을 꾹꾹 눌러담은 것일 수도 있겠고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일본인 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한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秀吉의 격노와 明皇帝의 진노" 그런데 독재자들은 왜 이렇게 화를 자주 내는 걸까요? 하긴 꼴에 군주라고 이 시기 조선의 선조도 걸핏하면 화를 내었으니 말입니다. 명황제는 자신이 다스리던 나라에서 재상이나 기타 세력가, 환관, 심지어 일반 백성들이 자신의 뜻대로만 다스려지지 않는 게 무척 못마땅했습니다. 그런 판에 난데없이 반도에서 사달이 난 걸 두고 "오래 지켜 온 평화가 깨어진 것"에 대해 당황해했다기보다, 오히려 음, 이번에 내 식대로 한번 포부를 펼쳐 볼까? 같은 마음을 먹었는지 의외로 빠른 결단을 내려 파병을 했습니다.


이 전쟁은 이처럼 양측 최고 책임자들이 "격노"해가며(왜 그랬는지는 후대인의 눈으로 볼 때 황당할 뿐입니다. 뭣때문에 지들이 화를 냄?) 이끌어가려 했지만, 객지에서 개죽음하기 싫었던 양측 군의 지휘관들에 의해 그냥저냥 매조지되었던 전쟁이기도 합니다. 벽제관과 평양에서 세게 부딛힌 후로는, 두 쪽 장군들 모두 "왜 싸워야 하는지, 뭐하러 만만치 않은 상대와 내가 싸우다 다쳐야 하는지"에 대해 큰 회의를 품고 때로는 자신의 군주를 속여 가며 여튼 정전으로 치달았습니다. 1차 대전 당시에도 장군들이 먼저 "전쟁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며 크게 후회했다고도 합니다. 누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왜 무리수를 두며 애꿎은 목숨을 희생해야 하는지 먼저 고민을 해 봐야 그게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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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과 팔기군 - 만화로 보는 세계사 9
이원복 지음 / 계몽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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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번주에는 일이 많아서 책프를 거를 뻔 했었으나, 그래도 어린이책이라도 보고 이어가기로 마음 먹고 이틀 전 금요일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읽었던 여러 교육용 만화를 지은 이원복 선생입니다. 이 교수님의 만화는 어린이책에만 실린 건 아니고, 예전에 <월간조선> 같은 성인용 시사지에도 게재되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 이 책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책은 명과 청 두 왕조를 다룹니다. "질서의 회복"이라고 부제가 붙었는데 물론 일차적으로는 원대 말 엉망이 되었던 사회 질서를 수습함을 가리키겠으나 은연중에 "한족인 명조가 세워진 게 질서"라며 정통 중화사상에 경도되는 느낌도 풍깁니다. 영락제의 세계 제국이라는 평가가 내세워진 챕터도 있는데 사실 그의 해외 원정(환관 정화를 앞세운)은 기간도 한정적이었고 효과도 의문이었습니다. 조공을 받는다면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것이어야 하는데, 지배 관계도 영속적이지 못하고 원정 비용이 더 드는 결과라면 그걸 어떻게 위신을 세운 결과라고 부르겠습니까.


청은 팔기군을 앞세워 중원을 정복했습니다. 이 때문에 청나라의 군사력을 육군 위주로만 파악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사실 명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 역사상 해군이 강했던 적은 원래 없었다는 소리입니다. 앞서 언급한 정화의 해군을 어디 영속적인 상비군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이 분야는 아마 연구가 더 필요하지 싶습니다.


책은 여튼 현재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범위에서 받아들여지는 명, 청대의 지식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잘 전달합니다. 저자 이 교수의 저력이 돋보이는 또하나의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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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 조선역사
임균택 지음 / 도서출판 대경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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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는 중국 설화에 등장하며 유교 경전에서 모호한 태도로 이상화한 고대 정치를 상징하는 존재들입니다. 다들 덕치를 표상하는 초인적 행보를 보이지만, 비교적 근래에 발견된 <죽서기년>을 보면 현대인의 눈에 적잖게 충격적인 사실도 자주 보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유교 경전에서 이상화하여 논의된 내용은 이후의 윤색에 가까우며, 저 <죽서기년>에 나온 기술이 보다 팩트에 가깝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삼황도 과연 누구누구가 삼황인지 고대나 중세의 논자나 저자에 따라 규정이 매우 다릅니다. 대체로 한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삼황은 복희씨, 신농씨, 수인씨입니다. 이 규정은 역시 중국 고전 <상서대전>의 것인데, 사마천 등은 전혀 다른 정의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여기서 신농씨는 염제라고도 불리며, 대체로 복희씨와 신농씨는 삼황에서 빠지지 않고 늘 꼽히지만, 수인씨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제는 삼황보다는 배리에이션이 덜한데, 황제, 전욱, 제곡, 요왕(당요), 순왕(우순) 등이 보통 거론됩니다. 황제는 헌원씨라고도 불리며, 이분은 출전에 따라 삼황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황제는 黃帝라고 쓰며 진시황이 처음 쓴 칭호 皇帝가 아닙니다. 진시황은 우리가 다 잘 아는 대로 삼황오제에서 한 글자씩 따서 이 호칭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삼황오제와 우리 한국사의 접점을 천착합니다. 우리도 이 중국설화와 같은 맥락에 등장하는 치우 등을 2002년 피파월드컵 당시 응원에 활용한 적도 있죠(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동이족과 현대 우리 한국인들, 또 중국인들과의 관계를 저자 특유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내용인데, 그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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