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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종, 계급 ㅣ Philos Feminism 2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9월
평점 :
마음을 더 단단히 먹고 읽기 시작했어야 마땅한 고전이었습니다. 앤젤라 데이비스는 여러 책이나 미디어에서 매우 자주 거론, 인용되는 저자이며 활동가인데 한때 가장 과격하고(?) 괄괄한 액티비스트의 대명사로 꼽혔고, 그런 면모는 이 책 중에서도 다시 확인됩니다만 책에는 그 이상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녀의 지성을 증명하듯 꼼꼼하고 치밀한 논증이 펼쳐지며, 또한 다양한 소설, 논문, 저서가 인용되어 그녀의 꼼꼼함과 부지런함을 확인하게 됩니다.
책에서 펼쳐지는 고발 그 내용은 처절하고 어조는 정의로우며 길이는 면면합니다. 1장은 노예제의 유산을 다루는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사례와 증언을 통해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던 남북전쟁 이전 남쪽 여러 주들의 사회상을 다룹니다. 특히 흑인 여성들이 겪었던 온갖 모멸적인 처사들이 자세히 묘사되니 독자들은 주의해서 독해를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이 고전은 특히 저명한 사회학자 에드워드 프랭클린 프레이저(1894~1972)의 <The negro family in the US(1939)>에서 여러 대목을 인용하는데, 잘 알려진 저서이긴 하나 책의 후주들에서 op.cit가 여러 번 쓰이므로 17번까지 거슬러가야 비로소 풀네임을 볼 수 있는 저 책 제목을 비망 목적으로 이 독후감에 적어 둡니다. 또 앤젤라 데이비스의 성향과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레퍼런스 중 하나로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이게 영어 번역서가 아니라 독일어 원본이라는 데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남북전쟁 전후의 흑인 차별 참상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으로 대중에 알린 작품은 누가 뭐라 해도 스토 부인의 장편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겠습니다(당대에나 지금이나). 이 고전 중에서 데이비스는 특유의 날카로운 비평적 안목을 과시하며 저자의 의도를 짚는데 때로는 분석적이며 때로는 비판적입니다. 비판적이라 함은, 믈론 스토 부인은 흑인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처지에 대해 대단히 동정적이었고 당대 대중의 태도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으나, 그녀 역시 출신 성분상의 한계 때문에 여러 인식상의 문제를 노정하고 있음을 데이비스가 예리하게 지적한다는 뜻입니다.
대개 미국 현대사에서 흑인이 비참한 처지에서 해방된 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시혜적 조치(1863)에 의한 결과라고만 알고 있으나, 이 고전에서는 예컨대 1831년 냇 터너 주동의 반란까지 짚어가며 흑인의 주체적 노력과 투쟁 과정에도 충분히 주목합니다. 미국 본토를 벗어나면,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감연히 봉기했던 투생 루베르튀르 같은 지도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론 가짜 해방자 나폴레옹 1세의 진압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짓밟히긴 했지만(30년 후의 냇 터너도 존 플로이드 버지니아 주지사에 의해 비슷한 운명을 맞았습니다).
여성해방은 흑인해방과는 또 별개의 평면에서 검토, 인식, 실현, 완성되어야 할 과제였지만 19세기에는 아직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어떤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미 남북전쟁 당시에도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 같은 선구자가 이 점을 명쾌하게 지적합니다. "이류 남성의 노력에 힘을 보태거나, 그 성별을 자신보다 치켜세우지 말라." 인상적인 쿼트입니다. 또 북군 진영 핵심이었던 당시 공화당 주류가 엄연히 백인, 남성, 산업자본가 계급 이익을 위해 이 전쟁을 주도했음을 잊지 말라고도 합니다. 이때 같으면 아직 칼 마르크스가 현역 혁명가로 활동을 할 무렵이니 이런 인식과 주장이 얼마나 시대를 앞섰는지 짐작이 가능하죠.
독자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건, 19세기에 만연했던 흑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었습니다. 이는 단지 가해자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자존을 완전히 깔아뭉갬으로써 자신의 지배자로서의 위상을 굳히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장면은 예를 들어 1984년작 스필버그 감독, 우피 골드버그 - 오프라 윈프리 주연 영화 <컬러 퍼플>에도 나옵니다. 저자는 이런 효과를 가리켜 "인종주의의 혹세무민 능력"이라 규정짓습니다.
일본 혐한 진영에서도 한국인들의 심성이 다분히 폭력적이라든가, 강간이 만연하다거나 하는 식의 왜곡된 프로파간다를 통해 식민지배 역사를 정당화하고 양국간 적대상태를 심화 선동하는 데 씁니다만 이 책에서는 프랜시스 윌러드 같은 여성 선동가가 "흑인 강간범 신화"를 어떻게 퍼뜨렸는지에 대해 자세히 다룹니다. 특히 이 사례는 같은 여성에 의해 주도되고 여성 진영을 크게 약화, 분열시켰다는 이유에서 주목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책은 "조립라인의 노예"가 "부엌가사노동의 죄수"와 어떻게 연대해야 이 모든 예속, 착취의 기제를 끝장낼 수 있을지를 말미에 가서 환기합니다. 데이비스의 결론은 모호하지 않고 분명합니다. 그 모든 모순을 종식시키려면 자본주의 자체를 끝장내고 사회주의로 이행해야 한다는 거죠. 이에 대한 판단은 물론 책을 읽는 독자들 각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