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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지 않습니다 -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과 웃으면서 소통하고 해결책을 찾는 법
마이클 브라운 지음, 윤동준 옮김 / 알파미디어 / 2022년 8월
평점 :
하나의 의견으로 완전히 통일이 된 조직은 겉으로만 보면 평온하고 효율적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그 내부는 곪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조직은 내부의 다양한 의견들을 두루 수렴하게끔 큰 그릇을 지녀야 하는데, 그러려면 갈등과 이견을 조정하는 시스템이랄까 성원 간의 컨센서스가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이치는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라서, 설령 아주 마음에 안 들거나, 뭔가 좀 부족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싶어도 일단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중인지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보면 이좌거가 스스로 겸손하게 이르기를 "우자(愚者)도 천려일득"이라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에게서도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야 진정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네요.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게 유도한다면 그 직원의 적성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p49)." 요즘은 유능한 지도자, 경영자라면 직원들 기를 죽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직장에서 최대한 기가 살게 북돋우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저자는 각자가 자신의 미래 청사진을 자랑스럽게 제시하도록 조직이 도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물론 이런 비전은 우선 그 개인(직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조직 문화를 개선한다거나, 보다 협력적인 팀을 만드는 데까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저자는 다소 뜻밖의 조언도 하는데, 이미 시행착오를 통해 실패로 드러난 협업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p62). 저자는 기본적으로 수직과 수평이 충돌하는 교차점에서 갈등이 발생한다고 보는데, 참 우아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협업은 본질적으로 수평이며, 각 파트너나 참여 인원들은 각자만의 수직 이해 관계가 있습니다. 진행해 봐야 나한테 이익이 안 생기는데 뭐하러 이 프로젝트에 열의를 갖고 참여하겠습니까. 리더라면 이처럼, 수직과 수평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각자에게 그 입장을 정리해 줄 만한 능력과 수완이 있어야 합니다.
그레고리 1세는 서유럽 역사에서 대교황으로 불리는데(p88), 그만한 이유가 물론 있겠으나 책에서는 유머러스하게, 그가 일곱 가지 대죄 그 순위를 규정한 일을 우리 독자에게 환기합니다. 중세 가톨릭에서는 자만이 큰 죄였으나, 치열한 경쟁 체제 하에 조직 안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자존심과 양면 관계(책에서는 둘이 "이복 형제"라는 비유도 씁니다)인 자만은 마냥 터부시할 건 아니겠습니다.
다만, 자존심이라는 게 유치하게도 타인에 대한 우월감 과시 형태로 나타나서는 곤란하며, 저자는 나의 자존심이 타인 사이에서 "신망(信望)"의 외형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말로는 저렇게 신망으로 번역되었고, 저자 마이클 브라운은 원어로 prestige라는 말을 썼다고 이 책 본문에 나옵니다.
"훼방꾼들을 훼방해라(p125)." 대안도 없으면서 무작정 부정적인 기류만 확산시키고 화합을 저해하며 막상 책임 있는 자리에 앉혀 놓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조직 안에서 활개를 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사회자의 역할이 강력해야 한다는데 구체적으로 회의를 운영하는 이들이 이 부분 꼭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각 성원에게는 평등한 참여 기회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런 참여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어떤 성원들은 마음놓고 의사 표시를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가 성장한 문화나 전통이 그런 행동이나 선택을 무의식적으로, 혹은 대놓고 억눌러와서일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르완다의 참담한 예를 드는데 우리 독자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유리한 환경에 대해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 알게모르게 침투한 무의식적 편견을 또한 주의해야 하며 책에서는 비교적 많은 비중을 할애하여 이 부분을 강조합니다.
미국 같은 나라도 지금 보수주의자와 개인주의 사이에 전쟁과도 같은 갈등이 벌어지는 판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스스로를 평가하기를 개인주의자, 자유주의자라 하며, 미국뿐 아니라 요즘은 어디나 다문화, 다인종의 환경과 조건이 크건 작건 전개되는 형편입니다. 꼭 인종적 차이가 아니라 해도, 1차 집단이든 회사든 간에 성원들은 다양한 출신 배경을 지니게 마련인데, 이런 경우에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고 의견을 무시하는 풍조가 여전하다면 그 조직은 소정의 성과를 낼 수가 없습니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이런 다양성의 표출이 용인되어야 하며, 이를 품에 안지 못하는 편협한 조직은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어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라고 경고합니다.
책 표지를 보면 I DON'T AGREE 라는 텍스트에, 흰색 취소선으로 N'T 부분을 살짝 가려 놓았습니다. 그러면 I DO AGREE라는 정반대 뜻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동의한다." 조직의 주류 의견에 대해 반대를 표시하는 사람은, 조직의 앞날을 막겠다, 딴지를 걸겠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조직의 앞날을 그 누구보다도 걱정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당 태종이 자신의 반려동물인 매를 죽게 한 위징에게 분노하려 들자, 그 처인 장손황후가 진정 충신을 곁에 두셨다면서 오히려 하례를 올렸다는 고사를 새겨야 하겠습니다. 갈등이 없는 조직은 이미 죽은 조직이며, 문제는 이런 갈등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승화시키느냐는 것입니다.